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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대국의 빈(嬪): 악의 딸
작가 : 써니벨
작품등록일 : 2017.7.15

도덕심이든 윤리의식이든 단 1g도 없는 야만인의 아가씨, 야낙(여주)의 피말리는 궁중생존기와 위태로운 로맨스 스릴러! 살육과 약탈을 생업으로 삼는 야인족의 영애로서, 가벼운 마음으로 입궁한 대국의 내명부는 그야말로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세계였다. 그러나 얼마못가 궁에서 낙오되어 사라질 것 같았던 야만인 소녀는 정말 강하고 사악했는데?! 아름답고 가련한 '마왕(魔王)'과 그 마왕을 사랑하고 만 '대마왕(大魔王)'의 사극 로맨스 스릴러.(실제 역사와 아무런 상관없는 중세시대 사극물입니다. )

 
12.초야의 대위기(1)
작성일 : 17-07-15 21:07     조회 : 262     추천 : 0     분량 : 9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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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

 

 

 같은 날, 저녁.

 

 진연이 마무리 되는 시각.

 

 -몽혜당으로부터 떨어진, 궁의 목욕탕.

 

 

 

 "흐음."

 

 따뜻한 목간통으로 몸을 담군 야낙이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잘 말린 쑥과 창포, 박하가 동동 띄어진 목욕물이 기분좋게 미지근했으니까. 추가적으로 뭘 넣었는지 향마저 달달하니 좋았고. 죽염을 타 넣었다는물은 조금 짰지만, 궁녀들의 설명에 따르면 약간의 소금은 피부 미용에 유용히 쓰이는 것이라 하였다.

 

 

 “..........”

 

 오전에 있었던 앵무새 피 수작질 이후로, 상궁들과 나인들의 태도는 눈에 띄게 고분고분해져 있었다. 필요한 질문 외에 말을 걸어오는 일도 없었고, 오히려 아까 일로 약점이 잡혀버린 터라 상궁들은 초조해하며 자신의 눈치만을 보고만 있었다.

 

 ‘이 정도면 괜찮은 대접이군.’

 

 첫날밤은 첫날밤이고.

 

 간만에 제대로 된 목욕을 하자니, 기분이 퍽 좋아진 듯 야낙이 어느덧 부드럽게 하아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입궁한 이후로 기본적인 식사와 잠자리만 주어진 열악한 몽혜당에서 이런 저런 일을 겪느라 안 그래도 많이 피곤하던 참이었는데.....

 

 ‘흥, 또 무슨 수작을 벌일 작정이지?’

 

 다소 여유로운 표정으로 목욕을 즐기던 야낙이 곧 목간통 앞으로 다가오는 상궁들을 보며 혀를 차기 시작했다. 아침에 그렇게 한 번 당해봤으면 이제 그만 정신을 차릴 법도 했건만, 늙은 상궁은 마지막까지 꿋꿋하게 앵무새 피 단지를 들고 재등장하고 있었다.

 

 “............”

 

 뭐, 그렇다고 저 비과학적인 검사방식을 끝까지 거부하고 싶진 않았다. 뭣보다 이제 거릴 낄 것도 없었으니 말이다.

 

 당당하게 깨끗한 팔을 내미는 야낙에게로, 상궁 또한 말없이 그녀의 손목 위로 피를 떨군다.

 

 똑, 또옥.

 

 목욕물에서 올라오는 뿌연 수증기 사이로, 앵무새의 피가 떨어지지 않고 야낙의 팔목에 방울방울 모여들고 있었다. 사악하게 웃어보이는 야낙에게로 상궁이 공손하게 머리를 조아린다.

 “이제 되었습니다.”

 

 “원래 이 관례는 목욕 도중이나 이후에 치러지던 것이었나 보군. 진작 ‘관례’대로 했으면 서로 얼굴 붉힐 일이 없었을 텐데 나로선 참으로 유감이야.”

 

 “..........”

 

 유채기름이 묻은 천을 수중에 가지고 있는 이상, 상궁들은 더 이상 자신에게 함부로 할 수 없었다. 그녀가 곧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이것으로 처녀성 검사도 무사히 끝났겠다. 첫날밤만 무사히 넘기면 입궁 초기는 무난하게 흘러갈 듯싶었으니까. 거기다 목욕을 하면서 긴장까지 풀려버린 모양이었다.

 

 “?!”

 

 아까부터 자꾸만 멍한 표정을 짓던 야낙이 이윽고 움찔하며 도리질을 치고 있었다.

 

 “날이 저물고 처소에서 기다리시면, 내관들이 아가씨를 모시고 갈 것입니다.”

 

 촤악.

 

 “아니, 큼!”

 

 상궁과 시중 나인들이 당황해하거나 말거나, 알몸인 상태에서 그대로 일어나는 그녀였다. 부끄러움조차 느끼지 못하는 건지, 태연하게 나인으로부터 수건을 잡아챈 야낙이 약간의 현기증을 느끼며 목간통에서 나온다.

 

 “...........”

 

 햇볕에 그을린 구릿빛 피부에, 남자 못지않은 장신. 그리고 군살하나 없는 날씬한 몸매. 소녀의 것이라 볼 수 없는 풍만한 가슴이 수증기 사이로 설핏 가려져 보이자 궁녀들이 다른 의미로 놀라며 혀를 차기 시작했다.

 

 야낙이 이윽고 신경질적으로 얼굴을 닦으며 다시 고개를 휙 쳐든다. 하지만, 아까부터 아찔했던 시야는 나아질 기미가 없었고, 목간통에 나오기 무섭게 아랫배로부터 심상찮은 열기가 스물 스물 피어오르고 있었다.

 

 

 코끝으로 미처 맡지 못한 달콤한 향기가 풍겨져 온다. 그 냄새 때문인지, 몸은 끝없이 편안하고 안락한 느낌만이 들었고 정신은 갈수록 흐물흐물해져 갔다. 단순히 목욕을 통해 얻어지는 즐거움이라 생각했던 느낌이 곧 ‘불길한’ 징조로 다가오자 그녀는 곧 자신이 너무 방심했음을 깨닫고 입술을 꼭 깨물고 말았다.

 “비, 빌어먹을!”

 

 약초 지식에 관해 어느 정도 안다고 너무 자만했다. 목욕통에 한약재 말고도 다른 수작을 부릴 줄이야. 앵무새 피 일로 상궁들이 더 이상 경거망동을 피우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완전한 오판이었다.

 

 “아가씨, 무슨 일이옵니까?”

 

 “목욕물에 무슨 짓을 한 거지?”

 

 “............”

 

 상궁은 대답이 없었다. 다만 근엄한 얼굴로 아랫것들에게 말없이 지시만을 내릴 뿐. 나인들이 현기증으로 가만히 서 있질 못하는 야낙에게로 조심스럽게 다가오고 있었다.

 

 “아가씨,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읏!”

 

 혼수시녀인 마나와 란초이도 지금 몽혜당의 내방 밖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목욕탕에 영애 혼자 들어가는 것 또한 관례라 상궁들이 말했기 때문이었다. 몸을 정결히 해야 하는 자리니, 외부의 자가 출입해선 아니 된다고. 그 말을 들을 때만 해도 의심을 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이런 노골적인 수를 쓸 줄은 몰랐다.

 

 아 물론, 지켜주는 이가 없다 해서 이대로 당해줄 마음 같은 건 없는 그녀였다. 야낙이 기어이 욕설을 내뱉으며 거칠게 나오려고 하자, 침착하게 상황을 주시하던 상궁이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고정하십시오. 아가씨를 해치려는 것이 아닙니다.”

 

 “무방비인 상태에서 다수가 나를 덮치고 있는 와중인데 해치는 게 아니다? 개소리 집어쳐! 날 해치는 게 아니면 뭘 할 작정이지?”

 

 “오전에 보여주셨던 그 대담한 모습은 어디 가셨습니까. 아가씨는 성상 폐하께 진상되는 고귀한 몸이십니다.”

 

 “....뭐, 진상?”

 

 “얌전하게 따라주십시오. 이것 또한 관례이옵니다. 아가씨.”

 

 목욕탕 안으로, 커다란 이불보까지 들고 오는 궁녀들을 보면서 이를 부드득 가는 그녀였다. 사람이 말 그대로 ‘포장’이 되는 건 한 순간이었다. 10명의 나인들이 득달같이 달라 들어, 채 반항도 못하는 야낙의 두 눈과 두 귀부터 천으로 막고 있었으니까. 가져온 이불보로 전신을 휘감아버리며 그 와중에, 야낙의 젖은 머릿결을 다른 천으로 닦아내던 나인이 곧 상궁에게 신호를 보낸다.

 

 “마마님, 다 되었습니다!”

 “두 혼수 시녀 모르게 내관들에게 넘겨라. 아가씨의 행동이 거칠 것이니 포박한 이불로 동아줄 하나를 더 묶도록 해. 모든 건 관례대로다.”

 

 상궁의 명령은 무서울 정도로 엄숙했다. 그 명령에 따라 추가로 마련한 동아줄로 너무도 재빠르게 자신을 포박하는 나인들의 손놀림이 심지어 능숙하기까지 해, 야낙은 그만 헛웃음을 들이키고 말았다.

 

 관례고 나발이고 이건 명백한 납치였다. 사방이 어둠이 가운데, 자신이 공중으로 붕 뜨는 게 느껴지자 야낙이 곧 침착해하며 숨을 들이키기 시작했다. 일단 제대로 된 반항이나 판단을 하기 위해선 다소간 냉정해질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

 

 일단, 몽혜당 내방에 남기고 온 두 시녀부터 걱정이 들었다. 궁중 생활을 버티기 위해 일부로 데리고 온 ‘도구들’이 초창기부터 자신의 손을 떠나면 여간 곤란한 게 아니었다. 게다가, 자신이 이 날 잘못되기라도 하면 그들 또한 후일을 기약하기 어려우리라.

 

 그나마, 첫날밤에 쓰일 중요한 물건만큼은 마나에게 미리 건네받은 상태라 한 시름 덜 수 있었지만.... 유감스럽게도 이이상 남 걱정할 여유는 못되는 그녀였다. 야낙은 시시각각 달라지는 몸상태에 잔뜩 긴장하며 몸을 떨고 있었다.

 

 ‘.....정말 기분 나쁘군.’

 

 정신이 어지러운 건 둘째 치고, 배부터 시작한 이상한 열기가 전신으로 퍼지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이 증상은 그녀로선 처음 겪어보는 게 아니었다. 납치되는 와중에서조차 몸 상태를 곰곰이 살펴보던 그녀가 이윽고 경악하며 입을 굳혔다.

 

 ‘춘약, 춘약인가!’

 

 그 약에 대해 옛 기억을 되짚어 본 야낙이 몸을 굳히며 오랜만의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예전에, 13살밖에 안됐던 자신을 ‘반했다’고 끈질기게 쫓아다녔던 당시 스무 살 처먹은 미친놈이 한명 있었다.

 

 그 놈, 그래도 사냥과 씨름실력이 우수했던 인재라 기억되었다. 같은 또래의 청년들 사이에서인기가 드높아 당시 일족 수장이었던 백부에게도 신망을 받았다는 것도. 허튼 욕심을 부리지만 않았어도 지금쯤 백부와 같이 출세의 길을 걸었을 것을.

 

 가진 야망에 비해 머리는 한 없이 멍청했던 그 망할 놈은 백부의 조카였던 자신에게 해서는 안 될 짓만 두루두루 골라했었다.

 

 납치와 감금은 약과였다. 사랑한다고 자신을 제발 받아달라고 집까지 쫓아와 구애하는 건 애교 수준이었고.

 

 기회만 되면 언제고 구속과 감시를 일삼았던 그 새끼는 질투랍시고, 주변 남자들에게까지 행패를 부렸었다. 아, 잊을 만하면 멋대로 남의 집에 침입해 절도까지 일삼는 건 덤이었다.

 

 그 미친놈은 주로 속옷과 가재도구들을 훔쳐갔었는데, 그걸 가지고 '즐기는 게' 삶의 낙이라며 사랑하는 여자를 직접 느낄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본인이 ‘직접’ 자랑스럽게 말한 바가 있었다.

 

 그래도 누워 자는 ‘침상’위에다가 짐승 사체와, 본인의 더러운 결과물이 묻은 속옷을 ‘선물’로 놓고 가는 것보단 나았다.

 

 그 놈을 ‘없애버리기’ 위해 별별 수단을 다 썼지만 당시에 다 소용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백부는 그 새끼를 귀한 인재라고 사건이 생길 때 마다 그걸 덮으며 두둔해주었고, 보호자랍시고 곁에 있어주었던 에르구 삼촌도 별 도움이 되질 못했으니까. 우두머리와 어른들의 암묵적인 지지에 더더욱 기고만장했던 것일까.

 

 그 놈은 기어이 똘마니들을 데리고 날 납치해 일을 저지르려는 만행을 벌였었다.

 

 그래, 바로 그 과정에서 ‘춘약’을 썼던 것이다. 다행히 폭행은 미수에 그쳤고, 그 빌어먹은 미친 새끼는 영구추방을 당했지만 그 때 자신은 춘약을 먹어버린 덕분에 한 달 내내, 병상에 누워 반 폐인을 생활을 해야 했었다.

 

 아랫배부터 열기가 피어오르고, 정신이 혼미해진다.

 

 .... 그 때 경험했던 증상과 현재의 증상이 비슷하자, 야낙이 이를 갈며 절망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이 약에는 해독제마저 없어 당시에도 고생이 심했었으니 말이다.

 

 대체 왜, 무엇을 위해서?

 

 

 자신에게 쓰인 약이 정말 춘약인가 아닌가에 대한 여부는 이제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춘약은 결국엔 여성을 흥분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발정제같은 거였고, 첫날밤을 앞둔 시기에 춘약과 같은 효과를 내는 약물을 자신에게 썼다는 건 ‘누군가’로부터 소기의 목적이 있다는 것이었으니까.

 

 궁녀들이 단독으로 벌인 짓이 아닐 것이다. 흑막은 분명히 있었다. 누군지는 몰라도 속전속결을 대단히 애용하는 연놈은 분명했다.

 

 ‘아아......’

 

 궁녀들의 손을 벗어놔, 결국 내관들에게로 넘겨지는 것이 느껴졌다. 어디로 향해가고 있는지 조차 알 수 없는 지라 야낙이 이만 체념하듯 눈을 감고 있었다.

 

 

 ******

 

 얼마 뒤.

 

 찬의성 서쪽에 위치한 ‘연혜궁(聯蕙宮)’, 존영당(尊瑩堂)으로 몽혜당의 수발상궁을 자처하던 상궁이 방각시를 데리고 ‘웃전’을 알현하기 위해 늦은 밤 몰래 대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하수인을 데리고 웃전을 기다리는 상궁은 연신 흡족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그 멍청한 야만인들을 상대로 자신이 임무를 잘 수행했다 믿어 의심치 않았으니까.

 

 더욱이, 뒤처리까지 말끔하게 해냈다 자부하기까지 했다.

 

 하염없이 돌아오지 못할 주인을 기다리는 두 혼수시녀의 저녁식사엔 친히 ‘수면제’를 탔으니말이다. 주인을 닮아 시건방졌던 두 야만인 계집은 지금쯤 자느라 정신없을 것이었다. 그러니, 오늘 자신과 하수인이 웃전을 접견한다는 걸 함구못할 이는 아무도 없을 터였다.

 

 “마마, 몽혜당의 이 상궁이 와있습니다.”

 

 “.....들라할 것 없다. 문을 열어라.”

 

 밤을 맞아 사방이 암흑인 가운데, 불빛이 비추는 처소 너머로 근엄하고도 싸늘한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닫힌 문 너머로 ‘두 사람’의 그림자가 형형히 그려졌다. 존영당에 있는 웃전은 혼자가 아닌 듯했다.

 

 “네, 마마.”

 

 드르륵.

 

 명에 따라, 측근 상궁이 문을 열자 그 너머로 이 시간까지 자고 있지 않는 ‘두 후궁’이 전각의 상석에 앉아 찾아온 아랫것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존영당의 주인이자 이 자리에서 제일 높은 신분의 사람인 듯, 내방에서 제일 상석에 앉아 있는 이는 ‘숙비 인씨’. 연두색의 단정한 당의와 청색 긴 치마 옥빛 관을 얹은 그녀는 아름다우나 그 뿐인 ‘공빈 교씨’와는 다른 흉흉한 매력을 풍기고 있었다.

 

 공빈과 이 시간까지 담소를 나눴던 듯, 둘 사이에는 다과상이 차려있었다.

 

 “그래, 그 천한 것은 폐하가 계시는 전각으로 고이 ‘배달’되었느냐?”

 

 찻잔을 내려놓으며 야낙을 가리켜 말하는 숙비의 어조에는 다분한 적개심이 서렸다. 임금의 제일가는 사랑을 받는 중이라는 공빈 또한 어딘가 많이 분한 표정을 지으며 나직이 이를 가는 중이었고.

 

 “네, 망극하게도...”

 

 “그 배워먹지 못한 야만인이 감히 유채기름을 알아보더구나. 예의모를 건방진 년이 아니랄까봐 기름가지고 협박까지 했다지? 아아 이 무능한 것들... 약점을 잡힌 여죄는 본궁이 따로 물을 것이야! 그러니 너희들도 목숨을 구명할 생각 따윈 일찌감치 접어두는 것이 좋다.”

 

 “..........”

 

 칭찬은커녕, 벌써부터 실패에 대한 살벌한 꾸중이 시작되자 상궁이 당황해하며 더더욱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외부에서 고용되었다 뿐이지, 일의 전말에 대해 다 알지 못하는 방각시는 더더욱 말할 것도 없었다. 자신은 감히 우러러 볼 수 없는 두 분 후궁마마들 앞에서 그녀는 겁을 집어먹고는 벌벌 떨고 있었다.

 

 “아뢰옵기 망극하오나, 그것은 소인이 맡은 바가 아니라서....”

 

 “아아, 그야 그렇겠지. 누군들 이 일에 연대책임을 지려고 하겠어. 그래서 그리 말하는 너는 맡은 바 임무를 마쳤느냐? 본궁에게 보고를 올리러 왔으면 응당 성공은 했겠지?”

 

 “무, 물론입니다, 마마! 소인이 고용한 방각시는 아이만 다섯 낳은 산모로, 집안 또한 대대로 ‘산파’일을 했기 때문에 이 사람은 월경 전후일은 물론 속옷에 묻은 냉만으로도 ‘기일’을 제대로 알아맞히는 솜씨를 가졌습니다. 입 또한 무거우니 훗날에 대해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을 것입니다.”

 

 “그래?”

 

 “.............”

 

 숙비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향하자, 방각시가 부들부들 떨며 더더욱 고개를 조아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숙비가 비로소 표정을 푼다.

 

 “내명부의 일원도 아니요, 정식 여관도 아닌 너한테 본궁이 어찌 죄를 묻겠느냐. 임무를 맡느라 고생하였다, 내 너를 믿어도 되겠느냐?”

 

 “그...그..저....”

 

 “저런 저런, 웃전이 하문하는데 저리 대답이 시원찮으니.”

 

 옆에서 우아하게 차를 들이키던 공빈이 은근한 압박을 주며 대답을 강요한다. 서슬 퍼런 웃전의 위세에 눌린 방각시가 겨우내 침착해하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네, 마마. 쇤네는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함구할 것이옵니다.”

 

 “그래야지.”

 

 “..........”

 

 “집안 대대로 산파를 했다?”

 

 “그러하옵니다. 쇠, 쇤네의 어미부터 그, 근방 알아주던 산파였는데... 쇠, 쇤네는 어릴 적부터 어미를 따라 산파를 도왔사옵니다. 쇤네 또한 아들 다섯을 낳았고.... 이, 임신이나 해산이라든가... 그... 그 쪽 일이라면 자, 자신있습니다.”

 

 “야만인의 속곳도 잘 파악했겠지?”

 

 “......무, 물론이옵니다!”

 

 “감 상궁.”

 

 숙비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준비한 책자와 붓을 꺼내드는 측근 상궁이었다.

 

 “계속 말하여라. 알아낸 결과를 계속 말해.”

 

 말없이 내려만 보는 숙비와 공빈을 대신해, 상궁이 식은땀을 흘리며 방각시를 재촉한다. 돌아가는 분위기가 매우 심각하다는 걸 알아챈 그녀가 간신히 숨을 돌리며 계속 말을 잇기 시작했다.

 

 “그... 우선, 첫날 항아님에게 건네받은 것부터 해서 최근 것까지 알아내 본 결과. 속곳에 묻은 냉의 상태가 찰기가 많고 그것이 죽 늘어지며 조금 누렇고 냄새도 나는 것이 분명 월경을 마친 지 보름이 조금 넘은 상태였습니다. 여자가 잉태를 하는 데 있어 적기는 이 시기인지라, 영애 아씨께서 스, 승은을 받으신다면 회임을 할 공산이....”

 

 “뭬야?!!!!!!!!!”

 

 “히익!”

 

 말없이 침착하게 경청하는 감상궁과 숙비와 달리, 옆에서 주시만 하던 공빈이 금방 언성을 높이며 흥분하고 있었다. 방각시가 대번에 기겁하며 입을 다물자 숙비가 짜증을 내며 혀를 차고 있었다.

 

 “마마, 이건 큰일입니다. 큰일이에요!!!!!!!!!!!!!”

 

 “공빈, 닥치시오. 지금은 밤중입니다.”

 

 “...........”

 

 어쩔 줄 몰라 하며 부들부들 떠는 공빈에게 단 한마디로 입을 다물게 하는 그녀였다. 숙비는 그다지 노여워하지도 당황해하지도 않고 있었다. 경쟁자가 될 또 다른 후궁의 회임은 본인에게도 끔찍한 정보였을 텐데.

 

 “계속 말하거라, 그래서 그 계집이 폐하의 성은 받아 배태할 공산이 크다? 그것이 확실하느냐?”

 

 “네, 네... 마마! 쇤네의 경험과 배운 바에 따르면 확실합니다. 하, 하오나.... 사람의 체질에 따라 이것이 완전히 참이라 할 수가 없어서.....”

 

 “공산이 크다 아니다, 그것을 알고 싶은 것이다.”

 

 “크, 크옵니다. 마마, 크옵니다!”

 

 “알겠다.”

 

 어느덧, 기록을 마친 감상궁이 조용히 숙비에게 다가서며 귓속말을 하고 있었다. 무슨 얘기를 하는 지는 몰랐다. 다만, 어떤 소식을 들어서도 만족하는 법 없던 숙비가 드디어 한숨을 내쉬며 미소를 짓을 뿐이다.

 

 “잡음이 있었지만, 일이 잘 풀린 듯하구나. 유채 기름은 알아도, 그 계집이 본궁이 직접 개조하여 만든 ‘사향’까지 알아챌 턱이 없지. 후후후, 황송하게도 금야는 폐하께서도 잊지 못할 밤을 보내게 되었어.”

 

 “네, 네에?! 마마, 사, 사향이라니요. 그건 저번에 장 첩여에게 썼다가.....”

 “비천한 기녀 따위라해도, 중궁마마께서 천거하신 인물이니 본궁이 직접 도움을 준 것이야.”

 

 “마마, 첩여의 회임도 설마.”

 

 방각시의 말에 다소간 충격에 빠져있던 공빈이 별안간 화들짝 놀라며 숙비에게 말을 건네고 있었다. 야만인이 회임할 공산이 크단 얘기보다 더 충격적인 말을 들은 모양이었다. 그녀가 경악을 금치 못하자, 그마저도 모른 척을 한 숙비가 측근 상궁들에게로 무어라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

 

 “나인들을 고문했다기에 그 계집이 알아서 죽어주는 줄 알고 기뻤건만. 중궁마마는 너무도 아량이 깊으셔서 곤란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오. 그러니 어쩌겠소, 본궁이 직접 ‘제거’해줄 수밖에. ‘그것’은 필요 없는 ‘잉여’야. 잉여를 솎는 건 또 본궁의 역할이지.”

 

 “그런 그렇지만, 마마. 그 특별한 ‘사향’은 쓰이기에 너무도 위험한 것이 아닙니까. 장 첩여의 난산도 결국 그 사향 때문인데.... 더욱이 여기엔.”

 

 공빈의 시선이 주변의 궁녀들에게로 향해지고 있었다. 물론, 숙비로서도 부하가 무슨 말을 하는 지 못 알아듣는 게 아니었다. 확실한 침묵을 유지할 측근 상궁들을 제외하며 이 자리에는 어느 누구도 믿지 말아야 했기 때문이다.

 

 “.........”

 

 오랜 궁생활로 익혀진 감이 위험을 알리자, 바로 몽혜당의 상궁이 바들바들 떨며 눈물을 보이고 있었다. 존영당 근방으로 배치 된 전담 내관들이 썩은 고기에 모여드는 들개처럼 주변에 하나 둘 모이고 있었으니 말이다.

 

 “마마!”

 

 채 저항도 못하고 ‘방각시’부터 빠르게 처리되자, 상궁이 눈물을 보이며 발악하고 있었다. 그런 아랫것에게로 숙비가 더없이 차분하게 입을 연다.

 

 “수고했다. 너는 본궁이 입궁한 초기 때부터 예법을 가르쳐 준 은사였고, 여러 가지 수발까지 들어준 고마운 수하였어. 거기다 이번 일도 잘 해내주었다. 허나 네 나이도 이제 꽤 되었고, 은퇴할 때가 오지 않았더냐?”

 

 “마마... 살려...읍!”

 

 “약조한 대로 네 가족에게 평생 먹고 살 재산을 떼어주었다. 네 조카 내외의 뒤까지 봐줄 터이니, 이대로 편히 가거라.”

 

 죽음을 눈 앞에 두고 버둥대던 상궁이 숙비의 말을 듣고 바로 저항을 그만두고 있었다. 곱게 주름 진 눈가로 눈물이 방울방울 맺혔지만, 그것도 잠시 뿐.

 

 우드득.

 

 마지막으로 모시던 주인을 아련하게 쳐다보던 상궁의 목이 반대쪽으로 꺾기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 절명한 상궁과 방각시의 시신이 우르르 모여든 나인들에 의해 감쪽같이 자리에서 사라진다.

 

 “하아아....”

 

 이 모든 걸 지켜본 공빈의 표정 또한 한없이 어두웠다. 후궁이 되어, 궁중에서 살아 온 지도 3년 째. 저런 광경은 수도 없이 봤지만, 여전히 적응이 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런 부하를 두며 숙비가 안색하나 변함없이 덤덤히 말을 잇고 있었다.

 

 “감 상궁, 이 상궁은 오늘부로 은퇴하여 사가로 내려갔다 중궁마마께 고하게. 오늘 몽혜당에 파견된 훈육상궁들 또한 내일부로 은퇴하여 출궁할 것이니 마찬가지로 같이 고하고.”

 

 “네, 마마.”

 

 “...........”

 

 “이번에 유채기름을 공급한 상단의 입도 막았겠다. 이로서 본궁이 염려할 일은 없게 되었군. 모두들 수고했다.”

 

 “황송하옵니다, 마마. 소인들은 임무를 다했을 뿐이옵니다.”

 

 “증거인멸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지. 그 계집이 첩지를 받고 얼마나 버틸지 본궁이 두고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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