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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대국의 빈(嬪): 악의 딸
작가 : 써니벨
작품등록일 : 2017.7.15

도덕심이든 윤리의식이든 단 1g도 없는 야만인의 아가씨, 야낙(여주)의 피말리는 궁중생존기와 위태로운 로맨스 스릴러! 살육과 약탈을 생업으로 삼는 야인족의 영애로서, 가벼운 마음으로 입궁한 대국의 내명부는 그야말로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세계였다. 그러나 얼마못가 궁에서 낙오되어 사라질 것 같았던 야만인 소녀는 정말 강하고 사악했는데?! 아름답고 가련한 '마왕(魔王)'과 그 마왕을 사랑하고 만 '대마왕(大魔王)'의 사극 로맨스 스릴러.(실제 역사와 아무런 상관없는 중세시대 사극물입니다. )

 
10.이게 어디서 개수작이야.
작성일 : 17-07-15 20:37     조회 : 243     추천 : 0     분량 : 9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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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리고.

 

 드디어, 국왕의 환갑진연이 열리는 당일.

 

 각 영지의 수장들과 관료들이 모여 국왕의 탄신일을 축하하기 위해 속속히 입궁하고, 궁중에 초청받은 예인들과 악사들이 각종행사를 펼치는 동안.

 

 “.........”

 

 오늘 밤 ‘첫 시침일’을 치루는 몽혜당의 영애는 하루 종일 시침에 관해 상궁들에게 교육을 받는 중이었다. 주인이 왕과 독대하는 중요한 순간을 배우고 있는 만큼, 야낙의 두 혼수시녀도 내방 밖으로 쫓겨난 상태였다. 그리고 엊그제 있었던 껄끄러운 사건 탓이었는지, 1주일 동안 야낙을 모신 수발 상궁과 나인들도 모두 제각기 처소로 돌아갔는지 몽혜당에서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폐하께서 먼저 하문하시기 전에 말씀을 올려서는 아니 되옵니다. 먼저 웃음을 흘려서도 아니 되옵고, 폐하께서 어떤 행동을 하시던 절대 소리를 내어서도 아니 되옵니다.”

 

 아침에 일하는 대로 벌써 4시간 째 저런 수업을 받는 중이다. 조목조목, 첫날 밤 때 금기시되는 것을 설명하는 상궁의 태도가 대단히 진중하고 엄했다. 하지만, 그것을 집중해 듣는 야낙의 태도는 그보다 더 했다.

 

 “오늘 아침, 소인들이 아가씨의 손톱과 발톱을 깎아드린 것은 행여 그것을 세워 폐하의 옥체를 상하게 할까봐 그러한 것입니다. 그 어떤 일이 있어도 폐하께 위해가 되거나 무례가 되는 행위는 절대, 절대! 해선 아니 되오니 아가씨께선 행동거지에 관해 각별히 주의하여 주시옵소서.”

 

 “알겠네.”

 

 “그렇담, 소인들이 아가씨께 해드릴 말은 이제 모두 끝났사옵니다.”

 

 ‘드디어 인가....’

 

 주인의 첫날밤이 오늘 환갑진연이 끝난 뒤에 이루어진단다. 상궁의 말이 끝나고 드디어 내방이 침묵으로 고요해지자, 이 모든 상황을 주시하던 마나가 땀으로 번들대는 주먹을 꼭 쥐었다. 드디어 주인이 넘어야 할 최대의 고비이자 위기상황이 닥쳐온 것이다. 당사자인 여주인도 마찬가지겠지만, 시녀인 자신도 미치도록 떨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왕과의 첫날밤을 치룰 때에 있어, 준비한 것에 조금이라도 실수가 있다면 전부 다 ‘죽는’ 수가 있었으니 말이다.

 

 “...........”

 

 특히, 마나는 여주인의 첫 승은과 관련하여 영주로부터 특별히 ‘명령’까지 받은 몸이기도 했다. 란초이조차 모르게 해치워야하는 중요한 임무를 눈앞에 두고, 잔뜩 긴장한 탓인지 마나의 얼굴에는 지친 기색만 가득 할 뿐 생기라곤 찾아 볼 수 없었다.

 

 “마나?”

 

 오매불망, 주인이 내방으로 나오기만을 기다리며 침묵하던 란초이도 동료의 창백한 얼굴을 보며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책임지고 방각시를 조사한다고 엊그제부터 바쁘게 움직이더니, 저 방정맞은 녀석이 무슨 실수라도 벌인 건가 싶었으니까.

 

 “멍청한 년. 나는 위아래 모르는 이방인 년과 대화하고 싶지 않아.”

 

 “죄송합니다, 선배님 뭐가 잘못 되었습니까?”

 

 “아니. 그럴 리가.”

 

 “선배님의 표정을 미루어 보건대 말입니다. 어떤 문제가 있는 게 분명합니다.”

 

 “이 더러운 이방인 년이 이젠 말대꾸까지 하네? 야! 내가 무슨 표정을 짓든 네 알 바 아니잖아? 문제가 있든 없든 이건 내 일이고 내 임무야. 너 따위 이방인년은 상관할 바 아니라고.”

 

 창백해진 얼굴만큼이나 마나는 그 여느 때 이상으로 날카로워져 있었다. 여기서 더 건드리면 사태만 악화될 것 같아 다시 입을 닫으려던 란초이가 곧, 눈을 번뜩인다. 자신의 귀로 ‘인기척’이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덜컹!

 

 출입문이 열리고 못 보던 두 상궁이 작은 항아리를 품에 들고 내방의 안뜰로 걸음하고 있었다. 란초이가 바로 자세를 낮추며 경계하자 마나가 곧 날카롭게 눈을 번뜩이기 시작했다.

 

 “........”

 

 단연컨대,

 

 갑자기 등장한 저 상궁들은 추가적인 훈육을 위해 찾아온 궁인들론 보이지 않았다. 특히 들고 온 ‘항아리’가 너무도 수상해서 당장 이들을 막아야할지 말아야할지 마나가 제대로 판단하기도 전에, 내방으로 훈육상궁의 근엄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엄 상궁은 도착하였는가?”

 

 “네, 마마님. 준비한 것을 대령했나이다.”

 

 “..........아니, 저.”

 

 “무엄하다! 비키시게.”

 

 마나와 란초이가 어떻게 대처하기도 전이었다. 감히, 혼수시녀 따위가 낄 자리가 아니라는 듯 상궁들의 매서운 눈초리가 자신들에게 향해지고 있자 마나가 곧 고개부터 숙이고 말았다. 여기서 경거망동하게 행동했다간 상황이 더 악화될 수도 있음을 인지했기 때문이었다.

 

 “.....뭐지?”

 

 눈치에 유독 둔한 란초이도 불안한 분위기를 읽었는지, 드물게 초조해하며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결국 내방 안으로 들어서는 항아리의 상궁들이다.

 

 그 무렵, 여러 훈육 상궁들에게 둘러싸여 향후 일정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던 야낙 또한 자신의 앞으로 등장하는 낯선 상궁들을 두며 가볍게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것을 이리로 가져오게.”

 

 대표 상궁인 듯, 야낙과 제일 가까운 거리에 앉아 있던 늙은 상궁이 항아리를 두며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지시에 따라 항아리가 바닥에 조심스럽게 놓여지고, 그것에 시선을 두던 야낙이 어느 덧 침묵을 깨고 입을 열고 있었다.

 

 “무엇인가.”

 

 “이것도 일정의 일환입니다, 아가씨. 불쾌하실 수도 있겠사오나, 이것도 관례이니 미리 말씀드리지 않았다하여 분노치 말아주시옵소서.”

 

 “........?”

 

 항아리를 챙겨온 상궁 옆으로 또 다른 상궁 하나가 이번엔 깨끗한 무명천과 ‘바늘’을 꺼내들고 있었다.

 

 이거 갈수록 가관이다.

 “가타부타 별다른 말도 없이, 바늘과 천을 꺼내들다니 이건 무슨 의미로 받아들어야 하는 지요, 상궁?”

 

 불쾌감을 이기지 못한 야낙이 결국 미간을 찌푸리자, 늙은 상궁이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며 덤덤히 설명해나가기 시작했다.

 

 “간택 받은 영애아가씨라면 첫 시침을 들기 전, 누구든 치르는 과정입니다. 혹여 아가씨께선 앵무새의 전설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으신지요.”

 

 “앵무새의 전설?”

 

 부하 상궁이 내려놓은 항아리의 뚜껑을 조심스럽게 열어 올리는 늙은 상궁이 공손하게 얘기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옛날, 나라가 세워지기 전 이 땅에는 ‘태산’이라는 영험한 신산(神山)이 존재했습니다. 신령스럽고 거대했던 태산의 정상은 천계까지 통하였기에 옥황상제께선 당신의 ‘선녀’를 파견하여 하계의 인간이 함부로 태산에 오르는 일이 없도록 하였습니다. 하지만, 태산을 지켜야했던 선녀는....”

 

 “............”

 

 “그만 하계의 인간 장군과 사랑에 빠져 천상의 계율을 어기게 되었고 그에 대한 천벌로 자기 말은 못하고 남의 말만 따라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옥황상제로부터 천계에서 추방당한 선녀는 그 길로 장군을 찾아 나섰으나, 마침 장군을 해치려는 그의 부하를 만나게 되었고 이를 막아주었답니다. 하지만, 그 부하는 오히려 장군에게 선녀가 부정한 짓을 하였다고 그녀를 모함했습니다. 자기 말밖엔 할 수 없었던 선녀는 부하가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따라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선녀가 자신을 배신했다고 생각한 장군은 분노하여 선녀의 목을 베어버렸답니다.”

 

 전설이라기에 뭔 내용인가 했더니....

 

 결국엔 사랑타령에 미친 멍청한 선녀와 중증 편집증 환자인 것이 분명한 장군의 정신나간 사랑얘기였다. 뜬금없이 이런 얘기를 하는 상궁의 저의를 모르겠다는 듯, 그녀가 어이없다는 듯 너털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근데 그것이 어쨌다는 겁니까?”

 

 “그리 죽은 선녀의 원혼은 앵무새가 되었는데, 이 앵무새는 억울하게 죽은 선녀의 넋이 남아... 앵무새의 피는 대국 왕실 대대로 ‘금사미단(금사는 처녀막, 미단은 아직 끊어지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순결한 여인을 말한다.)’의 여부를 파악하는데 쓰였답니다.”

 

 “.........!”

 “여인의 손목에다 앵무새의 피를 묻혀, 그 피가 흘러내리지 않고 모여 있으면 처녀요. 그렇지 않으면......”

 

 “결국엔, 처녀성 검사로군요. 그리 간단하게 말하면 될 것을 너무 장황하게 설명하셨습니다.”

 

 설명을 하면서, 야낙의 손목을 붙잡으려는 늙은 상궁이었다. 이를 먼발치 서 잠자코 엿듣고 있던 마나가 곧 크게 기함을 하며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아, 안 돼.... 안 돼!”

 

 대 위기였다!

 

 이런 상황은 입궁 전에도 들은 적 없었고, 예상한 바도 없던 것이었다.

 

 이번엔 머리보다 몸이 앞섰는지, 다급하게 내방으로 다가가는 마나에게로 이를 눈치 챈 야낙이 어느 때보다 근엄하게 입을 열고 있었다.

 

 “이 손 치워주세요, 상궁.”

 

 “....하오나.”

 

 “제 소매는 제가 걷겠습니다.”

 

 앵무새 피 얘기는 예절 상궁에게조차 들은 적 없던 것이었다. 하지만 위기에 직면한 야낙에게선 그 어떤 초조함도 공포도 없어보였다.

 

 “............”

 

 “그 바늘로 내 손목을 찌르는 것만 아니라면야.”

 

 당당하다 못해, 떳떳한 영애의 태도에 오히려 당황한 쪽은 상궁들이었는지 잠시간 내방으로 초조한 분위기가 흐르더니, 야낙이 먼저 호기롭게 소매를 걷어붙이자 결국 일을 진행하는 그녀들이다.

 

 늙은 상궁이 침착하게 앵무새의 피가 담긴 항아리에 바늘을 담근다. 그것을 유심히 지켜보던 야낙이 이내 마른 침을 삼키며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여기 궁인들은 하나같이 누굴 믿고 저러는 지 의문이군, 그래.’

 

 바늘의 끝으로 방울방울 크게 맺히는 앵무새의 피를 보며 야낙이 조용히 긴장하며 때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한어(漢語)에 대해 무지할 거라 장담하며 경솔하게 행동했던 나인들이나, 물질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 같은 건 당연히 모를 거라 생각하고 저런 짓을 벌이는 상궁들이나.

 

 부루크의 야인족이 대국 사람들에게 어떤 일족으로 취급받는 지 잘 알고 있었지만.... 자신까지 이런 식으로 못 배워먹은 오랑캐로 취급받을 줄은 몰랐다.

 

 사람 바보 취급하는 것도 정도껏이지, 쇠붙이에 핏방울이 저렇게 크게 모여든다는 건 바늘에 어떤 수작을 부렸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심지어, 자신의 손목을 닦고 있는 무명천에도 어떤 ‘물질’이 발라져 있었다.

 

 이것은 분명 ‘유채 기름’. 촉감과 미미한 냄새로 미루어보건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대국 남부 지역은 대체적으로 기후가 따뜻해 유채꽃이 잘 피어난다는 도시들이 몇 있다고 들은 바 있어.... 시기상으로 미루어보건대 그곳에서 난 특산품이로군. 그래도 상궁들이라 나인들보다 치밀하네.... 유채꽃은 봄꽃이니 이런 개수작을 피우는 데도 몇 달이 걸렸을 터이니까.’

 

 우두머리의 친조카이자, 일족 차기 수장마저 될 수 있는 후계권자로서, 야낙은 13살 때부터 능력을 인정받아 일족의 재정을 잠시간 관리하고 맡은 적이 있었다.

 

 고향인 부루크는 외부로부터 물자를 강탈하거나 도입하지 않고서는 사람이 살 수 없는 불모지였던 터라 사춘기 시절 그녀는 부하들을 데리고 옛날 ‘작은 삼촌’이 했던 일을 물려받아 외지의 거래처를 돌아다녔었는데, 그 과정에서 야낙은 타지의 수많은 물건을 접하고 그것의 쓰임에 대해 똑똑히 배운 바가 있었다.

 

 그리고 한 번 보고 배운 건 절대 잊은 적이 없었다.

 

 유채기름에 대해 조사할 때도, 그것이 ‘백반’과도 관련 있는 물질이라는 걸 기억해낸 그녀가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며 가늘게 숨을 고르게 시작했다.

 

 백반은 피를 모이게 하는 성질을 가진 하얀 가루였지만, 유채기름은 그와 ‘반대’되는 성질을 가졌다고 분명 들은 적 있었다.

 

 “............”

 

 모이면 처녀, 모이지 않으면 비처녀.

 

 ‘이 개년들....’

 

 입궁 전부터, 여자들이 모인 장소는 반드시 ‘독사의 소굴’이라고 후궁이라는 곳은 더더욱 그럴 거라면서.

 

 좋은 곳에 시집보내고 싶었는데, 마지막까지 자신을 지키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에르구 삼촌의 마지막 말이 떠올라져 버렸다.

 

 ‘성격 한 번 화끈한 흑막이로군. 첫날밤 치르는 일마저 없이 속전속결로 날 제거하겠다니.’

 

 어차피, 승은 첫 날밤은 마나가 굳이 나서서 손을 쓰지 않아도 ‘자신’부터 어떻게 할 참이었다. 어차피 자신은 결코 ‘숫처녀’일 수 없었으니까. 이래나 저래나 자신이 처녀가 아님이 밝혀진다면 너무 당연했지만 다 끝이었다.

 

 설명이 필요할까? 백부부터 처녀도 아닌 조카딸을 입궁시켰으니, 백부는 군주기만과 모독죄로 목이 날아갈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일족의 구심점이 백부가 죽으면 일족은 자연스럽게 멸망하겠지.

 

 사실.... 백부고 백모고 일족 사람들이고 다 뒤지든 말든 야낙으로선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백부의 어린 사촌들은 죄가 없었다. 더군다나 자신을 그나마 거둬주고 길러준 에르구 삼촌은? 그 무능력자는 자신이 지켜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이 헛먹은 철부지였다.

 

 뭐, 가족 따위 소중하게 생각해본 적 없었고 가족을 위해 살아가야 한다느니 일족의 영광을 위해서라느니..... 그런 시시한 이유 같은 걸로 앞으로의 궁중생활을 살아갈 생각도 없었지만.

 

 야낙은 스스로의 자존심을 위해서라도 순순히 당해주고 싶지 않았다. 이젠 짜증이 나려고 했으니 말이다.

 

 “아가씨, 이제 부동하여 계시주시지요.”

 

 피를 머금은 바늘 끝이 기름으로 살짝 번들대는 손목으로 향해가고 있었다. 벌써부터 두 상궁이 양 쪽으로 모여 자신의 어깨를 붙들고 있자, 몸을 움직일 수조차 없게 된 야낙이 낮게 헛웃음을 들이키며 더 없이 차갑게 운을 떼기 시작했다.

 

 “궁중 아니랄까봐, 검사방식도 참으로 정중하기 이를 데 없군요. 상궁.”

 

 “네?”

 

 손목으로 핏방울을 떨어뜨리다 말고 대놓고 빈정대는 야낙의 태도에 상궁이 조금 당황한 것 같았다.

 “쓸데없이 정중해서 비현실적이라는 겁니다. 아무리 관례라지만 그 까짓 짐승의 피로 소녀가 처녀인지 아닌지를 어찌 가린다는 건지요.”

 

 “아가씨, 이것은 대대로 내려진 궁중의 관례입니다. 거부하실 참입니까?”

 

 ‘흥, 세게 나오시겠다?’

 

 이제 보니 시침에 대한 교육은 핑계고, 훈육상궁들은 애초부터 이를 위해 작정하고 나온 것 같았다. 두 혼수시녀를 일부러 내방 밖으로 내쫓은 것도 만일의 사태까지 대비한 술책인 듯했고 말이다. 10명에 이르는 노련한 상궁들이 뿜어내는 근엄한 분위기는 감히 거부 따윈 할 수 없을 압도적이었으나, 분노했음에도 야낙은 마지막까지 침착했고 차가웠다.

 

 여기서 상궁들에게 휘말렸다가, 초창기부터 약점이 잡히는 엿같은 상황이 발생될 수도 있었다.

 

 “상궁, 숫처녀를 가리는 일은 이것 말고도 여러 방법이 있다는 걸 혹 아시는 지요.”

 

 말조심을 해야 한다는 걸 모르지 않았지만, 야낙은 이때만큼 부루크의 영애가 아닌 ‘야인족의 여자’로 돌아가 있었다. 조신한 영애 행세 따위 지금은 모른다.

 

 “네?”

 

 “앵무새의 피는 나로서도 처음 듣는 궁중의 방식이었으니, 소녀도 괜찮다면 상궁께 몇 가지 가르침을 주고 싶은 데 그래도 되겠습니까? 이 나라 저잣거리에 쓰이는 것과 저희 일족의 방식입니다. 유용한 정보일 터인데 한 번 들어나 보시지요.”

 

 “아가씨,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옵니다. 그만 부동하여 계세요.”

 

 마지막까지 물러서지 않고 도전적으로 나오는 늙은 상궁이었다. 나이 어린 영애 같은 건 가볍게 제압할 수 있다 생각한 것인지 그녀로부터 오만한 태도가 물씬 풍기자, 그를 가볍게 비웃은 야낙이 드디어 한 꺼풀 가면을 벗어던져버리고 있었다.

 

 “이봐, 상관이 말을 하면 아랫것은 주둥이를 다물고 들어야지. 지금 내가 첩지도 못 받은 영애 나부랭이라고 상궁 따위가 감히 함부로 나대는 것 같은데 웃전의 지시를 받고 나한테 왔으면 행동이나 잘하든가, 내가 존대를 해주니 그리도 만만해보였나 보군. 아니면 어디 믿는 구석이 있는 겁니까?”

 

 “!!!!!!!!!!!”

 “웃전이 먼저 하문하기까지, 하인은 답하지 않는다. 웃전이 부르면, 하인은 그것을 최우선시하여 하던 일마저 멈춰야 한다. 이것은 부루크에서 내가 예절 상궁들로부터 궁중 예법을 배우던 때에 첫날 가르침을 받았던 구절이오. 이보게, 훈육 상궁 내가 지금 잘못 배운 건가! 자네가 잘못 된 건가!”

 

 “..............”

 

 상궁들의 삼엄한 분위기를 한 번에 뒤엎을 정도로, 영애의 어조는 야만적이었고 권위에 가득 차있었다. 붙잡힌 상태에서조차 영애의 태도가 너무 뻔뻔하고 심지어 무례하기까지 하자, 상궁들도 깜짝 놀란 듯 늙은 상궁까지 앵무새의 피를 떨구려다 일단 행동을 멈추고 있었다.

 

 “나는 다른 영애와 태생이 달라서, 고상하게 말하는 것도, 정중하게 예절을 갖추는 것도 잘 모릅니다. 하지만 나는 세상일에 대해 아주 무지하지만은 않아서 상궁들께서 내 팔목에 뭘 묻혔는지 알면서도 모른 척은 할 수 있습니다.”

 

 “!!!!!!!!!!!”

 

 야낙의 말은 엄청난 비수와도 같았다. 일을 시행하려는 늙은 상궁들도 주변의 상궁들도 모두 할 말을 잃은 듯 크게 동요하고 있었으니까.

 

 “내 일족 사람들이 어떤 종자들인지 다들 ‘소문’을 통해 잘들 알고 계실 겁니다. 저 또한 그들과 다르지 않은 야만인 태생이지요. 상궁, 이번 일이 끝나고 보고를 올리러 갈 때 ‘웃전’에게 똑똑히 전해주십시오. 처녀성 여부를 확실하게 알고 싶으면 좀 현실적인 접근을 쓰라고, 저잣거리도 그렇고 한낱 기루도 그렇고, 저희 일족도 마찬가지지만 여자가 처녀인 걸 굳이 확인하고 싶으면 직접 아랫도리를 벗겨 여자의 ‘xx’를 관찰하면 될 일입니다. 상궁들은 다들 숫처녀라 처녀막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몰라 이러는 겁니까? 아니면 하다못해, 첫날밤을 치룬 여자의 허벅지에 무명천을 대어 ‘xx’로부터 피가 나오는 지 그러지 아니한 지 확인하는 방법도 있는데 어디서 되어먹지 않은 싸구려 사랑얘기를 들고 와서 앵무새 피 따위로 내 처녀성을 확인하려 드는 겁니까?”

 

 “아가씨!”

 

 배워먹지 못한 오랑캐 여자라고 낮잡아본 건 사실이었지만, ‘xx’같은 정말 입에 올리기 힘든 저속한 말을 너무도 태연하게 쓰는 야낙을 보며 상궁들은 전원 기겁을 하고 있었다.

 

 “기름이 발라진 손목에 피를 묻혀봐야, 피는 백발백중 다 떨어집니다. 이리 된 이상 폐하께 정말 송구스러운 일이나, 상궁들께서 관례라니 할 수 없지요. 이 자리에서 제가 직접 제 처녀성을 확인하게 해주겠습니다. 처녀성이 뭐겠습니까, 결국 처녀막이 있는 지 없는 지 따져보는 게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된 이상 제 처녀막이 어디에 어떻게 있고 어떻게 생겼는지까지 일일이 설명해주지요. 이 보다 더 확실한 증명이 어디 있겠습니까!”

 

 “됐습니다, 아가씨. 그만하세요!”

 

 이미 유채기름을 썼다는 걸 들킨 와중에 더 이상 일을 진행 시킬 순 없었다. 아니, 그보다 야낙이 주절대는 저속한 말을 더는 들을 수 없었던 상궁들이 저마다 질색하며 앵무새 피를 도로 가져가려고 하자, 바로 그것을 다시 막는 그녀였다.

 

 “성교육이라면 입궁 전에도 충분히 받았습니다. 같은 여자끼린데 부끄러울 것이 뭐가 있겠고, 또 이것은 관례라 하지 않았습니까! 이대로 물러가면 저는 관례를 거부한 영애가 되는 데요.”

 “목간(목욕)이 끝나시면 소인들은 다시 오겠습니다.”

 

 “.........”

 

 이 자리에서 얼른 도망치고 싶어 하는 상궁들의 당혹감이 눈에 훤했다. 아쉬운 척하면서도 굳이 그들을 막지 않은 야낙이 피 항아리를 드는 늙은 상궁에게로 말을 건넨다.

 

 “이보게.”

 

 가려다 말고 상궁이 흠칫하며 몸을 떤다. 더 이상 허튼 수작을 부리지 말라는 듯, 그녀에게 조곤조곤 경고하는 야낙의 어조가 몹시도 살벌했다.

 

 “기름 묻은 무명천은 내가 가지고 있을 걸세. 그 바늘까지 가지고 싶지만 피 묻은 바늘따위는 그다지 중요한 증거품은 되지 않을 거야.”

 

 “.........”

 

 “목간이 끝나고 관례를 행하고자 다시 나를 찾아올 땐 이와 같은 일은 없어야 할 거야. ‘웃전’께서 잘 말씀드리게. 응? 내 말 알아듣겠나?”

 

 “소인은 이만 물러가겠나이다.”

 

 대답대신 황황한 걸음으로 내방을 벗어나는 상궁이다. 그녀를 바라보는 야낙의 입가에 비릿한 조소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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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8.사람은 개와 다를게 없어서. 2017 / 7 / 15 243 0 4179   
8 7.내가 그러니까 까불지 말라고 했잖아. 2017 / 7 / 15 258 0 9899   
7 6.역겨운 사랑의 서막. 2017 / 7 / 15 276 0 6729   
6 5.아름다운 아가씨 2017 / 7 / 15 260 0 5442   
5 4.뜻 밖의 개수작. 2017 / 7 / 15 246 0 4218   
4 3.당신...누구야! 2017 / 7 / 15 252 0 4126   
3 2.붉은 머리의 남자. 2017 / 7 / 15 250 0 4015   
2 1.까불지마. 2017 / 7 / 15 259 0 5086   
1 <프롤로그>야인족의 영애, 야낙. 2017 / 7 / 15 419 0 100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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