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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최초의 기억
작가 : 루룰루
작품등록일 : 2017.6.6

"난 죽으면 4년 후에 이름 모를 아이로 다시 살게 돼."
9번째 인생을 살고 있는 소녀, 소녀를 통해 음모를 파헤치려는 괴짜 청년.
소녀가 잊어버린 최초의 기억을 찾고자 한다.

 
2-3화. No Lie
작성일 : 17-07-15 16:30     조회 : 316     추천 : 1     분량 : 5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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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 엉켜있는 면발들이 국자를 비비 감싸 꼬았다. 어설프게 국자로 면을 건지려는 아빠는 테이블에 빨간 국물들을 지저분하게 흩뿌렸다. 냄비 속으로 다시 빠져드는 면을 보더니 결국 그릇에 덜어 먹기를 포기했다.

 "그냥 젓가락으로 집어 먹어야겠어."

 엄마는 호로록 소리로 대답했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저녁은 클래식 인스턴트, 라면으로 때웠다. 가족 모두 먹고 싶은 요리가 생각나지 않아 찬장에 남은 봉지 라면을 전부 끓였다. 설명서에 적힌 대로 끓인다면 늘 똑같은 맛이지만 오늘은 입에 맞지 않았다. 나는 그릇에 담긴 면을 가만히 응시했다. 노란 면발들이 어지럽게 뭉쳐진 채 붉은 국물 위에 섬처럼 둥둥 떠 있었다. 젓가락으로 몇 번 휘휘 저어보지만, 식욕이 생기지 않는다. 나와 달리 엄마는 빈 그릇을 테이블에 내리치며 또다시 국자로 라면을 건지기 시작했다.

 "클래식 인스턴트가 정말 신기해. 기분이나 분위기 따라 맛이 확확 바뀌는 것 같지 않아? 그냥 집에서 혼자 먹을 때랑 밖에서 다같이 먹는 거랑 맛이 달라. 만드는 건 큰 차이가 없는데 말이야."

 엄마 말대로 그래서 입에 안 맞는 것 같다. '기분'이라는 말을 들으니 몇 시간 전 일이 떠올랐다. 부서진 카메라 파편이 내 심장에 강진을 일으켰고, 지금도 바닥을 구른 둥근 렌즈를 생각하면 여진이 느껴진다. 안내 휴머노이드는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편지를 보낸 발신자가 누구인지 알려주지 않았다.

 더더욱 입맛이 없다. 젓가락을 내리고 일어서려는 찰나, 내 눈앞에 손가락이 나타나 테이블을 두드렸다.

 "안 먹어? 이거 내가 가져간다?"

 나는 "다 먹어" 하며 그릇을 엄마 쪽으로 밀었다. 금세 두 그릇을 비운 엄마는 젓가락을 옆으로 옮겼다.

 "내일은 보충수업 가야지?"

 "어, 가긴 가야... 어?"

 나는 엄마의 질문에 답을 멈추고 아빠에게 시선을 옮겼다. 아빠는 생방송 인터뷰 중 대본에 없는 당혹스러운 질문을 들은 표정을 지었다.

 "둘 다 너무 전쟁상태로 있는 거 아니야? 저 양반은 나한테 뭐 아무 말도 하질 않고, 지금이는 별일 아닌 것처럼 아빠를 무시하고."

 엄마는 물 대신 국물로 목을 축였다.

 "엄마도 알고 있었어?"

 "내가 먼저 알고 있었어, 너 보충 빠진 거. UTX타고 북한 갔잖아. 탑승권에 어린이 할인 쓰여 있어서 단박에 감이 왔지. 학교에 전화하니 너희 담임선생님이 확실하게 증인해줬어. 감히 현직 형사를 속이려고?"

 "타, 탑승권을 어떻게 조회?"

 나는 어안이 벙벙하여 입에 제대로 떨어지지 않았다.

 "그건 내가 말한 첫 질문의 의도와 전혀 무관한데? 나에게 솔선수범으로 가정의 평화를 위해 고발을 결심한 제보자의 신변 보호도 이해해야지."

 엄마는 흰 자를 돌려 아빠에게 위협을 표출했다. 손에 쥔 젓가락이 제압 도구처럼 보였다.

 "이 사람도 정말, 지금이랑 대화하라니까 묵언 수행이나 해?"

 엄마는 천천히 테이블에 젓가락을 내려놓고 말을 이었다.

 "뭐 너희 아빠가 딸 보호하겠다고 북에 왜 갔는지 내게 말하지 않으니, 나도 억지로 묻지 않을게. 너는 너대로 이유가 있겠지. 그래도 거짓말은 안 돼."

 아빠는 정말 조사라도 당하는 것처럼 양손을 허벅지에 비비적거렸다.

 "어휴, 너 가자마자 UTX에 탔다는 전화랑 같이 탑승권 스캔본을 보여줘서 어찌나 놀랐는지. 한지금, 나한테 사과할 거면 내일 보충수업에 꼭 가. 원래 판사한테 구형받아야 마땅하지만, 초범이라 훈계로 넘어간다. 또 거짓말하면 유예는 없어."

 그 순간 엉킨 줄이 갑자기 풀린 기분이었다. 어느 아이한테도 알려주지 않았던 가족 전화번호, 내 탑승권을 바로 확인할 수 있었던 것, 스캔본을 전송하면서 말을 할 수 있는 능력, 학교에서 나루의 소식을 전했던 보호자. 무엇보다 편지에 적힌 '친구'라는 단어.

 '비밀로 할게'

 협박인 줄 알았던 나루의 작은 진심이 내 뒤통수를 강렬히 후려쳤다.

 모모다. 이건 전부 모모의 짓이었다. 그렇지만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나루는 대체 어디에 있지?

 "갈 거야?"

 엄마가 내 머리에 손을 얹으며 내 눈을 보았다. 진범을 찾아낸 짧은 생각 동안 엄마는 몇 번이나 내게 되물었는지 긴 한숨을 입에 머금고 있었다. 나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고개를 연달아 끄덕였다.

 "응, 갈게. 죄송해요."

 냄비에 남아있던 라면은 미적지근하게 식었고, 면은 불어터졌다.

 

 다음날 엄마와의 약속을 지키고자 학교에 갔다. 학교는 언제나 역동적으로 숨 쉬는 곳이지만 보충일에는 침착한 분위기를 띠었다. 학생과 교사가 생명력의 원천처럼 느껴질 정도로 적적했다. 인원을 따로 모아놓은 보충수업 반으로 들어가 맨 뒤 창가 쪽에 앉았다. 앞에 앉은 아이들은 신체 한쪽이 불편했다. 어떤 아이는 골똘히 책만 보며 자신의 부족함을 지우려 했다. 어울리지 않는 옷차림으로 책상에 다리를 올린 채 뿅뿅거리며 게임에 집중하는 아이도 보였고, 고개를 숙인 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아이도 있었다.

 수업은 추가 근무를 신청한 선생님들이 주도하였고, 출근하지 않은 일부 과목 선생님을 대신해 휴머노이드가 딱딱하게 수업을 했다. 나는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고 나뭇가지에 남은 벚꽃잎을 봤다. 저 잎이 다 떨어져야 하교를 할 것 같다. 지긋지긋한 지금 이 순간이 어서 끝나기를 바랐다. 꽃잎은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가지를 더욱 꽉 쥐었다. 그 풍경도 점점 지루해 어젯밤에 아라와 나눈 대화 내용을 떠올렸다.

 

 ARARI : 진짜, 이건 사회를 뒤집을 소식인데요?

 NOW : 왜?

 ARARI : 모모는 나루 양을 간호하고 있다고 담임선생님께 전화했어요. 만약 모모가 거짓말을 했다면 상황이 2가지로 나뉘어요. 나루 양은 아프지 않은데 집에 갇혀있거나, 건강 상태에 관계없이 집에 없거나. 누군가 모모에게 악의적인 명령을 지시한 거죠. 거짓말을 하라고.

 NOW : 전자일 것 같아. 카메라까지 박살 내고 아예 집 근처에 얼씬도 하지 말라 했잖아.

 ARARI : 성인 휴머노이드면 아이 하나쯤이야 어떻게든 제압할 수 있겠죠. 그렇다고 본인이 나루 양인 척 편지까지 쓰다니.

 NOW : 모모를 무력화시키는 게 중요하잖아?

 ARARI : 경찰한테 연락하는 게 최우선 아니에요? 나루 어머니께 이 사실을 알려야죠.

 NOW : 응, 그럴 줄 알고 연락을 남겼는데 일이 바쁜지 소식이 없어. 경찰에 신고하더라도 그분이 직접 해야 해. 카메라 설치 사실을 경찰이 알게 되면 너도나도 힘들어져.

 ARARI : 그럼 뭐 어쩌죠? 마냥 기다릴 수 없잖아요, 사태가 더 심각해질 수 있어요. 빨리 모모를 먹통으로 만들어야 구출을 하죠.

 '무력화', '먹통' 두 단어를 듣자 불현듯 예전 일이 생각났다.

 NOW : 있어.

 ARARI : 예?

 NOW : 방법이 있어. 꽤 어마어마하고 효과적인 방법.

 이후 나의 아이디어를 들은 아라는 정말 그 방법밖에 없냐고 징징거렸다. 내 계획이 나쁘지 않지만 그중 하나가 너무 마음에 걸려 계속 수정을 요구했다. 나는 전적으로 아라의 도움을 청했고, 그것도 통하지 않자 '안돼'라는 말과 함께 메신저를 일방적으로 꺼버렸다. 지하실에서 한숨을 푹푹 쉬고 있을 아라의 모습이 훤히 보였다. 그리고 지금쯤이면 평양 순안공항에서 청명한 하늘을 보며 쌓여있는 구름 크기만큼 한숨을 쉴 것이다. 다시 창밖을 보니 꽃잎이 하나 떨어졌다. 하나밖에 안 떨어져 한숨이 절로 나왔다.

 

 광주공항은 학교보다 더 한산했다. 공항 가는 길에 심어진 나무와 에코트리만 보면 공원 가는 길 같다. 간간이 들려오는 비행기 소리가 이곳이 어디인지 뚜렷하게 알려줬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평일 이용객이 적은 광주공항은 어떻게 유지할까 싶었다. 이용객들의 목소리보다 안내원의 발소리와 방송이 자주 들려 손님 없는 시장을 보는 기분이었다. 넓은 대기실에 앉아 아라를 기다렸다. 이윽고 북한에서 들어오는 비행기 1대가 이곳에 착륙한다는 방송이 나왔다.

 아라는 검은 셔츠에 더워 보이는 두꺼운 청바지를 입은 채 대기실에 들어왔다. 저번에 본 산발 머리는 단정하게 다듬어졌고, 입가 주변에 거뭇거뭇한 수염들은 거의 사라졌다. 다만, 인중 위에 살짝 남은 콧수염에 그의 미숙함이 묻어났다. 첫 만남 때 흘려 말한 내 충고를 무시하지 않았다.

 "모습이 저번보다 많이 바뀌었네? 진작에 이러지."

 그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더니 고개를 저었다. 거칠거칠한 피부와 여드름, 눈가에 남은 다크서클은 어떻게 할 수 없었나 보다.

 "그래도 밖에 못 돌아다니겠어요. 입국 심사받는데 직원이 얼마나 제 얼굴을 빤히 보던지..."

 "그건 원래 그 사람이 하는 일이예요, 이 바보야. 그리고 네 생활습관이 피부에 다 녹아있는 것을 어떡해."

 나는 나루의 옆구리를 손으로 툭툭 치며 말을 이었다.

 "너 충분히 보기 좋아. 앞으로 자주 이렇게 밖에 나갈 수 있으니 적응 좀 해. 한국에 온 거 환영하고."

 아라는 그제서야 손을 내리고 알에서 깨어난 새처럼 눈을 찌푸리며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우리는 걸어서 카페 '트뤼포'에 갔다. 손님없는 이곳에서 작전을 시행하기 매우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게다가 오메가타워에서 나루가 나온다면 충분히 잡을 수 있는 거리다. 카페에 들어가니 저번에 봤던 중년 남자가 주인이 맞는지

  여전히 카운터를 지키고 있었다. 우리는 영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구석 자리에 앉았다. 주인은 테이블로 다가와 메뉴판을 내밀었고, 나는 곧바로 얼그레이 1잔을 주문했다.

 "저는요?"

 "너? 너 바로 일어날 거잖아. 헬멧 쓰고 가야지."

 아라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짓더니 안경을 매만졌다. 그리고 말없이 백팩에서 내가 말한 장비를 꺼냈다. 손에 쥘만한 소형 카메라와 자전거 헬멧과 플라스틱 조립 부품을 만지면서 입을 열었다.

 "정말, 너무한 거 아니에요? 거의 십 몇 년 만에 한국에 왔는데 이런 대접을 받다니."

 "뭐야, 너 북한 토박이 아니었어?"

 "저는 문화어에 미음도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에요. 하기야 이미 문화적으로 멸망한 국가인데 문화어가 남을 이유도 없죠."

 주인이 다시 돌아와 머그컵 한 잔을 내밀었다. 따뜻한 열기 사이로 홍차 향이 코를 간질였다. 아라는 내 컵을 슬쩍 보더니 아랫입술을 쭉 내밀었다.

 "알았어, 나루를 데려오면 한 잔 사줄게."

 내 말에 대꾸하지 않은 아라는 카메라를 장착한 헬멧을 머리에 쓰더니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었다. 그러더니 백팩에서 구형 노트북 한 대를 꺼내 열심히 키보드 자판을 두드렸다. 나는 차 한 모금을 마셨다.

 "앞으로 3분 뒤에 츄카가 저번처럼 전 네트워크에 글을 자동으로 올릴 거야. 글 마지막에 모모가 준 300개 메일 계정을 전부 기재했고, 글을 읽을 시에 자동으로 알림 메일 회신도 설정했어. 이 정도면 모모도 천문한적인 메일 처리

  과정에 문제가 올 거야."

 아라는 그러든지 말든지 카메라 각도를 섬세히 조정했다. 나는 또다시 차 한 모금을 마셨다.

 "내용이 많이 고민이었어. 모두가 메일을 보낼 도발을 적어야 하니까."

 아라는 노트북 화면을 내 쪽으로 돌렸다. 내가 노트북을 보는 모습이 화면에 나타났다.

 "잘 나오죠? 저 이만 일어날게요. 30초 후에 츄카가 글 전송 끝나면 저번에 받은 232조 메일도 모모 계정으로 다 전송해요."

 내 대답을 듣지 않고 황급히 가게를 나간 아라는 오메가타워로 이동했다. 격하게 흔들리는 카메라가 그의 마음이 어떨지 짐작됐다. 나는 점차 식어가는 차를 마시며 마음을 도닥였다. 흔들리는 아라를 위해 홍차 한 모금이라도 권할 걸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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