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와! 언니가 울 오빠 여자친구였다니! 그면 그 동안 욕한 울 오빠랑 언니 남친이 같은 인물이었네요. 세상에나!”
“둘이 내 욕을 했다고?”
동원이 시인을 쳐다보았다.
시인은 딴청을 피우며 아직도 지원의 눈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고 있었다.
“언니, 아직도 부끄러워요? 크크크. 나 순정만화 그린다고 에로영화 엄청 봤어요. 그림을 그리려니 뭘 알아야 그리죠. 헤헤. 게다가 오빠 뒤통수 밖에 못 봤으니 뭐 본 것도 없어요. 그니까 그만 부끄러워해요.”
“흠흠.”
동원도 연신 헛기침만 해댔다.
지원이 장바구니를 냉장고에 정리하면서 계속 중얼거렸다.
“그면 오빠가 옷 빌려줬다는 여자도 시인언니였어? 진짜 신기하다 신기해.”
“언니, 오빠. 이왕 이래 된 거 내가 집을 비워주고 싶지만 내가 시인언니 방에서 자고 언니가 여기서 잠을 자면 마을에 소문이 순식간에 날거니 그냥 둘 다 아쉬움을 접고 다른 밤을 기약해요.”
“지..지원씨. 아하하. 무슨! 밤은 무슨!”
“너 오늘 동해랑도 가서 자라.”
“작가님!”
시인은 소리를 꽥 질렀다.
동원은 못 들은 척 귀를 팠고, 지원은 깔깔 웃었다.
“제가 오늘 솜씨 발휘 할게요. 우리 진짜 맛있는 해산물 스파게티 먹겠습니다. 오다가 이장님한테 싱싱한 해산물 잔뜩 받아 왔지요.”
동원은 잔뜩 아쉬운 표정을 했고, 시인은 너무 맛있겠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빨리 화제를 돌려야 할 것 같았다.
시인은 정말 맛있는 - 시인이 먹어본 스파게티 중에 제일 맛있었다. - 스파게티를 먹으며 긴장이 풀렸다.
스캔들이 터지고 제대로 잠을 못 잤는지 지원이 깎아 준 과일을 먹으며 계속 졸음을 쫓아내야 했다.
“저는 이만 가볼게요. 갑자기 잠이 쏟아져요.”
“언니, 이제 진짜 언니 되는 것 같아서 더 좋네요. 헤헤헤.”
“지원씨, 고마워요. 오늘 본의 아니게 놀라게 해서 미안해요.”
“언니 다시 말이 높아지네요? 시누이라서 그런가? 뭐 일단 보류 합시다. 하하하.”
동원은 시인을 데려다주기 위해서 같이 산길을 올라갔다.
정상에 오르자마자 시인을 돌려세우고 다시 뜨거운 키스를 퍼부었다.
시인은 안 그래도 힘이 없는데 계속 몸이 뜨거워지자 정말 녹아버릴 듯 힘이 빠졌다.
하지만 시인도 멈추게 할 수가 없었다.
“진짜 정말 조금 은유림씨한테 흔들린 적 없어요. 정말 그냥 그 사진 뿐이예요.”
"알았어요. 알았어."
"나 계속 같이 일해야 하는데.. 또 술먹고 쓰러지면 파출소에 데려다 줄게요."
"작가님.. 그냥 상황보고 적절하게 행동해요. 지금 눈빛 거짓말하는 거 아닌게 느껴져요. 만일에 이게 거짓말이래도 나는 그냥 믿을래요. 혹시나 나중에 작가님 나쁜놈인거 밝혀지면 온갖 저주가 쓰인 부적을 만들어 3대에 걸쳐......"
"그만해요. 그만! 나 무서워서 못 그래요. 김치따귀도 있었는데 부적까지.. 하하하. 나 진짜 그거 무서워서 나쁜놈 안할래요."
"그러는 게 신상에 좋겠죠?"
"근데.. 오늘 우리 진짜 따로 자요? 지원이 옆에 창고같은 집 하나 더 있어서 거기서 재우면 되는데.."
“작가님, 나 기절하기 직전이에요. 작가님때매 며칠 밤을 뜬눈으로 세웠단 말이예요.”
“알았어요.”
동원은 다시 또 입을 맞췄다.
잠시지만 시인이 자신을 떠나갈까봐 얼마나 걱정을 했던지 계속 이렇게 시인의 존재를 확인하고 있었다.
마치 아이스크림을 먹듯 시인의 입술을 핥아 먹는 동원을 강제로 떼낸 시인이 몸을 돌려 걷기 시작했다.
“지원이 저거 한 번 오면 언제 갈지.. 우리 데이트는 어쩌죠? 우리 똥도 갈까요. 우리 둘만 있을 수 있는데..”
“안돼요. 내 입술 없어지면 어쩌려고..”
“하하하. 그건 또 그렇네요.”
어느 새 이장님댁이었다.
한 번 더 안으려는 동원을 밀어내며 시인이 대문속으로 쏙 들어갔다.
“사람들 보면 어쩌려구 그래요. 나 진짜 기절할 거예요. 전화하지 말아요.”
동원은 더 잡지 못했다.
시인의 방문이 닫히는 소리까지 듣고서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동원도 피곤이 밀려왔다.
하지만 오늘은 뜨거운 몸을 식히느라 쉽게 잠들 것 같지 않았다.
섬을 몇 바퀴 뛰어야 할지도 몰랐다.
“오빠, 시인언니 너무 좋은 사람이더라. 잘 해 봐.”
“그래.”
“연수 언니 그렇게 가고...... 오빠가 계속 혼자라서 엄마랑 아빠랑 진짜 걱정 많이 했는데.... 연애 잘 하고 있다고.. 소식 전해도 될까?”
“그래라. 곧 소개 시켜 드린다고..”
“지원아..”
“왜?”
“오랜만에 운동 한 번 하자. 매트 펴라.”
그 날 지원은 얼마나 심하게 당했는지 한 동안 온 몸이 뭉쳐 일어날 수가 없었다.
**
"선수 오빠, 작가님 왔다 갔다면서요?"
은화가 선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뭐 들어보니 별 거 아니드만. 괜히 기자 새끼들이 일을 크게 만들어가지고.."
"뭐가 별 거 아니예요? 남자들은 왜 이러는지 몰라. 왜 굳이 딴 여자한테 친절하냐구요!"
"야, 그럼 예쁜 여자가 술 취해 있는데 그냥 땅에 둬? 세상이 얼마나 험한데.."
"어머? 오빠 작가님 죽이러 간다고 하지 않았어요? 갑자기 왜 그렇게 입장이 싹 바뀐건데?"
"은화야, 니가 이 오빠의 넓은 마음을 어찌 알겠냐? 다 우리 시인이 잘 되라고 그러는 거지. 우리 마라톤 연습 하러 갈까? 끝나고 오빠야가 맥주 쏠게."
"진짜요? 알았어. 바로 준비하고 나갈게요."
선수의 눈빛이 흐믓하게 발을 향했다.
한정판 운동화가 블링블링 빛나고 있었다.
**
"며칠 전에 온다던 응급환자 아직 안 와? 해결 됐어?"
"어. 올 필요가 없어졌어."
"그래? 근데 자기 그 셔츠는 못 보던 건데?"
"어...... 예쁘나?"
아름은 저 명품브랜드를 가수가 어떻게 사 입었을지 궁금해졌다.
**
동원과 박피디가 회의실에서 만났다.
"이작가, 뜬금없이 무슨 스캔들이야? 그나저나 큰일 났어."
"아닌 것 아시지 않습니까? 게다가 방금 보니 열애 아니라고 공식 보도 나갔던데요?"
"그게 아니라.. 좀 전에 국장님이 불러서 갔더니.. 어떤 신문사에 블랙박스 동영상이 들어왔대."
"무슨.."
"그날 이작가가 유림이 호텔에 데려다주는 택시 안 영상.."
"별 거 없는데요? 그거 나가면 열애설 아니라고 확실히 알 게 될텐데.. 더 좋은 것 아닙니까?"
"그게.. 우리 아직 드라마도 종영 안했는데.. 유림이 이미지 나빠질 것 같아."
"유림씨는 자기만 했는데요?"
"허.. 참.. 일단 보게. 국장님이 힘 써서 일단 드라마 종영때까지 좀 보도 연기해달라고.. 힘쓰고 있는데.."
동원에게 박피디가 노트북을 건넸다.
별 생각 없이 동영상을 틀었다.
동원이 대리기사와 이야기를 나눴고.. 유림은 뒤에서 자고.. 응?
유림이 중간 중간 눈을 뜨며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긴 머리칼에 가려.. 또 동원이 유심히 보지 않아서 당연히 자고 있을거라고 생각했던 그녀의 눈이 떠져 있었다.
그리고 동원에 도착했다고 알리는 찰나 급하게 감기며 자는 척(?) 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찍혀 있었다.
하필 블랙박스 렌즈 방향이 뒷자리 가운데를 향하고 있어서 마치 영화를 찍은 듯 유림만 클로즈업 되어 더 적나라하게 보였다.
동원은 황당함에 헛웃음이 나왔다.
"하.. 무슨.. 안.. 잤네요."
"그러게 말이네. 이거 영상 나가면.. 괜히 열애설이랑 맞물리면서.. 민폐 끼치는 캐릭터가 될 것 같네. 대중들 알잖나? '거짓말'이라는 코드랑 맞물리면 한 순간에 매장 되는 거.."
"뭐 그렇게까지.. 거짓말로 연결이 될까요?"
"어휴.. 오늘 기사 내용에.. 허.. 한숨만 나오네.. 우리 드라마 캐릭터가.. 어휴.."
동원은 더 이상 묻지 않고 인터넷 기사를 찾아 다시 읽었다.
**
....
캐릭터를 연구하기 위해 먼 섬까지 매니저를 동행하여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었고..
....
그 날, 회식 끝 연이은 촬영으로 몸이 힘들어진 은유림씨가 휴식을 위해 서울호텔에 묶으로 가다가 깊은 잠에 빠져 들었습니다. 거의 기절 수준이었던 터라 이동원 작가가 업어서 이동할 수 밖에 없었던...
....
언제나 노력하는...
앞으로 배우의 건강...
**
동원이 박피디를 쳐다보았다.
"이제 중반부 방송됐는데.. 어쩝니까?"
"일단 기획사 사장이랑 국장님이랑 대책부터 논의해야지. 나 전화 좀 받고.."
박피디가 회의실 문을 열고 나가니 유림이 문 너머 동원을 보고 아는 척을 했다.
"작가님, 많이 당황하셨죠? 열애 사실 없다고 정정 보도 나갔어요. 아니라고 했는데도 안 믿어주는 분위기라.. 미안해요."
동원이 유림을 쳐다보는데 표정이 무척 어두웠다.
'역시.. 엄청 싸웠나 보네. 큭큭..'
"은유림씨는 어떨 것 같습니까?"
"네? 뭐가요?"
"남자친구가 다른 여자랑 열애설나면.."
"당연히 화가 나죠. 그 여자가 나보다 더 예쁜 여자면 더하지 않겠어요? 작가님 여자친구분도 많이 화나셨겠어요."
"뭐.. 자기보다 더 예쁜 여자랑 난 건 아니니까요."
'미쳤어? 눈 삐었어?'
"그.. 그런가요? 호호호호. 그래서 아무렇지도 않아 해요? 작가님 거기에 속으면 안돼요. 여자들은 아무렇지도 않을 수가 없어요. 쿨한 척 하는 거죠."
"제 여자친구는 전혀 경쟁의식 없던데요? 단지.."
"단지?"
"누구라도 또 스캔들나면 그 여자 머리털을 다 뽑아 버린다고.. 그러던데.. 유림씨 저랑 이야기 많이 하면 안 될 것 같습니다."
"호호호호. 당분간 경호원 늘려야겠어요. 호호호호. 저는 이만 나가볼게요."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내며 유림이 회의실을 나갔다.
돌아 선 유림의 얼굴빛이 붉으락푸르락했다.
그 뒷모습을 보는 동원의 표정이 어두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