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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천사는 울지 않는다
작가 : 소설부부
작품등록일 : 2017.7.15

영겁의 세월동안 고독과 마음의 평온만을 추구하던 천사 프라.
그가 복잡한 관계로 뒤얽힌 지구의 삶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

...팽팽한 긴장의 줄을 싹둑 잘라 먹었다.

모두가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세라는 잔뜩 힘주어 숨을 참고 있던 참이었었다.

에이씨. 지지려면 빨리 지질 것이지. 할랑 말랑 하는 게 더 고문인 거 모르나.

키가 보통 명마보다 큰 흑마는 구경꾼들을 당당하게 가르고 장교 앞에까지 왔다. 떠오르는 태양을 등지고 검은 후드망토를 길게 늘어트린 존재가 말 위에 앉아 있었다.

 
세라 파갈
작성일 : 17-07-15 14:12     조회 : 44     추천 : 0     분량 : 8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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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꿇어!”

 

 

 꼴뚜기처럼 생긴 병사 하나가 꼴에 황군 문장을 달고 나니 기고만장하지.

 

 윽! 꼴뚜기가 그녀의 어깨를 찍어 누르는 바람에 거친 돌바닥에 무릎이 찍혔다.

 

 찌릿한 고통 후에 새벽의 싸늘함이 바닥에서 느껴졌다.

 

 무릎을 꿇고 허리를 숙이자, 며칠사이 험하게 취급당해 헝클어지고 떡 진 붉은 머리카락이 쏟아져 내려왔다.

 

 고개를 틀어 눈을 치켜뜨자,

 

 움찔하는 꼴 봐라. 배짱도 없는 놈.

 

 더 이상 귀족도 아닌 여자가 째려보는 눈빛에 해 될게 뭐가 있다고…….

 

 

 “이름.”

 

 

 저만치서 장교 하나가 꼴뚜기를 향해 소리쳤다.

 

 꼴뚜기가 발로 툭 치며,

 

 

 “너, 이름 뭐야?”

 

 

 내 이름. 징글징글하게 따라 붙어 다니는 단어 조합. 누가 부르는 것 듣기도 싫고 제 입으로도 뱉고 싶지도 않았다.

 

 꼴뚜기가 좀 더 세게 찼다.

 

 

 “이름 말해.”

 

 

 타고난 것이 시대에 먹히지 않으면, 신경 써서 갈고 닦은 후천적인 매력으로 어필 할 수 있으련만 이 꼴뚜기는 지 생긴 대로 쭉 살 작정인가 보았다.

 

 분명 연애 한 번 제대로 못하고 ‘도대체 왜 여자들이 저를 안 좋아해요?’라고 평생 묻고 다닐 놈이었다.

 

 헤벌레~ 여자 구경꾼들을 의식하는 모양새를 보니, 꼴뚜기 놈 앞날이 안 봐도 펼쳐 놓은 그림책이었다.

 

 그녀의 입이 벌어지지 않자, 녀석이 검집을 들어 때리려 했다.

 

 

 “그 여자가 세라 파갈입니다.”

 

 

 누군가가 대신 말했다.

 

 종이 뭉치에 코를 박아 넣고 있던 장교가 고개를 들어 그녀의 꼬락서니를 응시했다. 꼴뚜기도, 주변들도 ‘설마’하는 의심을 얹어 바라봤다.

 

 그래. 그렇겠지. 상상이 안 될 거다.

 

 씻지도 빗지도 못하고 흙바닥에서 구르는 세라 파갈. 너희들도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지?

 

 그런데 나는 오죽할까.

 

 

 “세라 파갈 맞……습니까?”

 

 

 말투를 바꿔, 장교가 그녀에게 확인했다.

 

 신세가 처량하게 되었다 해도 자존심이 있으니 눈에 힘을 빡! 주고 담담하게 큰소리로,

 

 

 “그.렇.소.”

 

 

 하려 했으나 모기가 앵앵거리는 소리가……모양 빠지게 나왔다. 배가 고팠다.

 

 반역죄를 지은 죄인들이 뭐가 예쁘다고 제 때 제 때 끼니를 챙겨 주겠냐마는 안 줘도 너무 안 줬다. 기품 있는 대답으로 자존심을 살릴 수 없을 정도로.

 

 장교는 잠시 더 응시하다가 들고 있던 종이를 뒤적이더니 체크를 했다.

 

 

 “제 5 감옥, 소아 2명 포함 총 26명, 이상입니다.”

 

 

 꼴뚜기가 그녀를 마지막으로 보고를 마쳤다. 다른 감옥에 수감되어 있던 여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차례대로 열을 맞춰 꿇려 앉혀 지며 이름을 확인하는 작업이 계속되었다.

 

 새벽공기가 서늘해서인지 옆에 서 있는 꼴뚜기가 코를 훌쩍였다. 이리저리 그녀를 훑고는, 작은 소리로,

 

 

 “세, 세라 파갈이었소?”

 

 

 앞만 바라봤다.

 

 

 “진즉 말하지 그랬소.”

 

 

 저게 저게…… 확, 데쳐 먹을 수도 없고, 그러니까 니가 꼴뚜기인거야 알어?

 

 요놈이 며칠 간 그녀가 속해 있는 무리를 담당하는 놈이라 대충 꼬라지가 파악되서 측은함이……젠장, 이런 처지에도 불구하고 발동 될 정도니 얼마나 찌질이인지 알겠지?

 

 이 순간이 지나면 다시는 스치지도 못할 찰나의 인연이지만 적선하는 셈 치고 꼴뚜기 인생에 길이 남을 레슨을 남겨 주기로 했다.

 

 

 “군인 양반.”

 

 

 묵묵부답이던 그녀가 낮게 부르는 소리에 꼴뚜기가 반갑게 쳐다봤다.

 

 그녀는 앞만 보았다. 그를 보면 욕 아니면 토악질이 나올까봐. 먹은 것도 없는데.

 

 

 “그대 덕에 그나마 5 감옥에 있던 우리는 행복했음을 말해주고 싶습니다.”

 

 “……?”

 

 “그대가 내 어린 조카들을 위해 몰래몰래 음식을 흘려 준 거 모두 알고 있어요.”

 

 

 굶주린 그들 앞에서 보란 듯이 빵을 쑤셔 넣는 꼴뚜기가 생각났다.

 떨어져 나간 빵조각들.

 

 

 “그대는 연약한 자들에게 동정을 베푸는 남자…….”

 

 

 그가 밟고 지나간 그 조각들을 여자들은 창살 밖으로 팔을 뻗어 주워 아이들에게 주었다.

 

 

 “제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남자였는데……안타깝습니다.”

 

 

 까닭모를 칭찬에 입꼬리가 실룩거리며 올라가다 꼴뚜기의 표정이 금새 아쉬움으로 바뀌었다.

 

 세라 파갈이 찾던 남자가 자기 같은 남자라니 믿겨지지 않을 거다.

 

 1시간 안으로 이곳에서 사라질 처지니 이런 막말을 뱉고 보는 거지.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꼴뚜기 같은 눈치도 매너도 뭣도 없는 멍충이 같은 놈이 이상형이라고 지껄일 수 있으랴.

 

 

 “제대로 된 눈을 가진 여자라면 ……어린 아이들을 챙기는, 보석 같은 당신을 몰라 볼 수 없습니다.”

 

 

 오랜 전쟁으로 부모를 잃고 천둥벌거숭이처럼 망나니가 되어 가는 아이들까지 품을 수 있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길에 쓰러져 있는 아이에게 들고 있던 빵 한쪽만이라도 던져 줄 수 있는 남자가 된다면 그 모습에 반할 여자는 많을 것이다.

 

 결혼 할 마음이 있는 여자들은, 아이에게 친절한 남자한테 후한 점수를 준다는 것을 저 꼴통이 알아들었다면, 하산해도 될 것이다.

 

 진짜 꼴통이라면 이런 말들이 무슨 소용 있으리요.

 

 황군이 될 정도면 꼴뚜기는 완전 꼴통은 아닐 것이다.

 

 억지로 고개를 돌려 꼴뚜기를 그윽이……? 실제로는 측은히 바라봤다.

 

 꼴뚝아, 앞으로 잘 해라. 그래야 장가가지. 응?

 

 세라 파갈은 서서히 새벽을 몰아내는 빛을 느꼈다. 그 빛을 닮은 자를 기억하며 씁쓸히 태양을 바라보았다.

 

 아론, 네가 없는……이 거지같은 세상, 거지같은 날들, 거지같은 기억들.

 

 그래도 살아남을 거야.

 

 

 

 

 *

 

 

 

 

 파갈성 현관 앞마당에 150여명의 여자들이 집결되었다. 열을 맞춰 앉아 있는 그들은 값비싼 옷들을 걸치고 있었지만 그것들은 찢기고 얼룩져 빛을 잃은 사치품이 되어 있었다.

 

 그들의 눈은 공포와 좌절로 끊임없이 흔들리고 젖먹이 아기와 소녀, 노인 등 나이를 불문하고 병사들이 시키는 대로 따르고 있었다.

 

 세라도 흐트러진 붉은 머리와 옷차림으로 그들 사이에 속해 있었다.

 

 황군들이 파갈 여자들 둘레를 지키고 있었고 그 뒤로 각양각층의 구경꾼들이 이른 새벽부터 자리 잡고 파갈가문의 최후를 지켜보며 숨죽이고 있었다.

 

 장교가 현관 계단을 올라 황제의 공문을 낭독하기 시작했다.

 

 

 “파갈 가문의 여자들은 들어라. 대반역죄를 지은 그대들의 5세 이상 남자들은 모두 처단되었다. 숨어 있는 자들은 발각되는 즉시 남녀노소 불문하고 전원 처결될 것이다. 지금부터 너희들은 모두 귀족작위를 박탈당하고 노예 신분이다. 먼저, 황족에서 너희들의 1할을 선별하여 인장을 찍겠다. 후에 귀족 대표에서 2할, 상인대표 7할로 배분 할 것이다.”

 

 

 파갈 여자들의 속으로 삼키는 흐느낌이 귀신소리처럼 웅웅거리며 공기를 진동시켰다.

 

 여자들은 그나마 황족의 노예가 되기를 바랬다. 그러나 대부분 노예상인들에게 넘어가 말로 담을 수 없는 고통을 맛보게 될 것을 알기에 침통했다.

 

 장교는 황족대표로 온 남자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가 줄을 맞춰 앉아 있는 여자들 사이를 천천히 다녔다. 그러다가 멈춰 손짓을 보내면 군사들이 대열에서 끌고 나갔다.

 

 끌려 나간 여자들은 왼쪽 어깨부위에 황족의 소유를 나타내는 인장이 찍혔다. 인두로 된 인장이 화로에서 달궈져 여자들의 살을 태우는 냄새가 역했다.

 

 살을 태우는 냄새에 이끌려 왔는지 매 한 마리가 창공 위를 빙빙 맴돌고 있었다. 간간히 울어대는 소리가 지상까지 다다랐다.

 

 매의 울음소리, 파갈 여자들의 탄성, 무기력한 저항과 억압의 장면이 뒤섞였다. 이것들이 처절하게 세라 앞에서 소용돌이치며 그녀의 의식을 갉아먹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눈을 감지 않고 그것들을 눈에 담으려고 애를 썼다.

 

 잊지 않으리라. 절대 잊지 않고 기억하리라.

 

 권력의 마지막은 비참함이란 것을.

 

 그녀의 생각은 늘 옳았다는 것을.

 

 황족 대표는 마지막 한 명을 고르기 위해 신중한 척했다. 사실은 이미 누구를 선택할지 처음부터 잘 알고 있었다. 이런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그는 세라 파갈 앞에 섰다. 그리고 그녀를 지목했다.

 

 병사 둘이 다가와 그녀의 팔을 각각 잡아 일으켰다. 앞으로 끌려 나와 무릎을 꿇렸다.

 

 취아악.

 

 목 뒤에서 옷이 찢어져 어깨가 드러났다. 병사가 옷을 유독 힘주어 잡아내려 가슴골까지 보였다. 잡티하나 없이 깨끗하고 하얀 어깨에 남자들은 침을 삼켰다.

 

 아무도 밟지 않은 하얀 길을 더럽혀야 한다는 안타까움이 들었으리라.

 

 이글대는 뜨거운 인두 따위로 동요될 만큼 유약한 그녀가 아니었다. 세라는 최대한 당당하게 이 순간을 맞으려 이를 악물고 견뎠지만 결국 속살을 드러낸 수치심에 눈을 감고 말았다.

 

 그렇다 해도 지켜보는 사람들 눈엔 그녀는 귀족답게 비장했다.

 

 당대 최고 가문의 수장이었던 파갈 공작이 그토록 사랑했던 손녀딸, 유일하게 살아남은 직계 혈육.

 

 울지만 말자. 절대 울지 말자. 이자들은 조롱거리를 찾는다. 내가 몸부림치며 애걸하기를 기다리고 있겠지?

 

 뜨거운 기운이 목 뒤에서 느껴졌다. 달궈진 쇳덩이가 공기와 만나 공포스런 소리를 만들었다.

 

 곧 닥칠 고통은 그저 뜨거움 일 뿐.

 

 난 이런 걸로 무너질 수 없어. 없어. 없다아아아으으으으으악 무서워. 그건 어쩔 수 없었다.

 

 감은 눈을 더 꾹 눌러 감았다.

 

 타다닥 타다닥.

 

 숨 막히는 절정을 깨는 편자 소리.

 

 시뻘건 불덩이가 살을 지지려는 팽팽한 긴장의 줄을 싹둑 잘라 먹었다.

 

 모두가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세라는 잔뜩 힘주어 숨을 참고 있던 참이었었다.

 

 에이씨. 지지려면 빨리 지질 것이지. 할랑 말랑 하는 게 더 고문인 거 모르나.

 

 키가 보통 명마보다 큰 흑마는, 구경꾼들을 당당하게 가르고 장교 앞에까지 왔다.

 

 떠오르는 태양을 등지고 검은 후드망토를 길게 늘어트린 존재가 말 위에 앉아 있었다.

 

 제자리에서 말이 허공에 발길질을 쳐대자, 고삐를 쥔 검은 가죽장갑을 낀 손과 검은 가죽부츠를 신은 발이 능숙하게 말을 진정시켰다.

 

 쓰디쓴 독초향기가 퍼졌다.

 

 후두 속 그늘 안에 있는 얼굴에서 음산하고 강렬한 기운이 느껴져 장교는 주춤거렸다.

 

 

 “누, 누구시오?”

 

 

 역광으로 인해 모습을 확인하기 힘들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말 탄 남자가 구깃구깃 대충 접힌 종이 한 장을 가슴에서 꺼내 내밀었다.

 

 장교는 하얀 턱 선만 드러난 어둠 속의 존재를 응시하다가 종이를 펼쳐 봤다.

 

 모두들 무슨 일인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장교의 눈이 가늘어지더니 말에 탄 존재를 다시 올려 다 보았다.

 

 

 “카라스영주께서 보내신 기사입니까?"

 

 

 검은 망토의 존재가 고개를 한번, 까딱했다.

 

 말에서 내리지도 얼굴을 드러내지도 않는 것이 매우 무례하고 거만한 행동이었으나 아무도 그 존재에게 항의 할 엄두를 낼 수 없었다.

 

 검은 기사의 등장과 동시에 퍼지는 쓰디쓴 독초향과 주위를 제압하는 강력한 기운이 파갈성 마당을 짓눌렀다.

 

 눈치를 살피며 소곤거리는 구경꾼들도 ‘카라스 영주’라는 단어에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장교는 서신을 낭독했다.

 

 

 “나, 라시스 황제는 카라스영주에게 명하노라. 북쪽 국경을 지키는 그대의 노고를 높이 치하하여 특별 하사품을 내리노라. 파갈성의 최후의 날 아침, 동틀 때 있을 노예배분시간에 맞춰 그 하사품을 전달 받도록 한다. 배분시간에 늦을 시 특별하사품은 자동 취소된다. 황제의 특별하사품은 세라 파갈이다.”

 

 

 장교는 황제의 서명과 인장을 확인했다.

 

 사람들은 또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황족대표는 뭔가 항의하려고 입을 열다가 포기해버렸다.

 

 세라는 미동도 없이 듣고 있다가,

 

 자, 자, 잠깐……뭐, 누구?

 

 특별하사품…… 카라스 영주에게 주는?

 

 미친! 라시스 황제. 옛정을 생각해서 선처해 준다는 게 이거였어?

 

 파갈가문은 이렇게까지 도륙하지 않기로 해놓고, 남자들을 ……어린 아이들까지 모조리!

 

 황제는 철저히 파갈가문을 짓밟으려 작정한 것이리라.

 

 자신의 최후가 미치광이 영주의 식사거리라니.

 

 그는 북쪽지역의 큰 영토를 가진 영주다.

 

 약탈과 기습을 일삼는 말코족으로부터 40년 넘게 국경을 지키는 위대한 수문장이 분명했음에도 그에 대한 소문은 끔찍한 것들이었다.

 

 영지 밖으로 절대 나오지 않아 더욱 소문이 무성해져갔다.

 

 

 “카라스라면……미치광이 영주 아냐? 황제가 보내주는 여자들을 잡아먹는다는.”

 

 “그래서 늙지도 않는다잖아.”

 

 “야수로 변하면 적이고 뭐고 모조리 물어뜯어 버린다는데.”

 

 “닿기만 해도 몹쓸 병에 걸려 죽는대요 글쎄.”

 

 

 어느새 말문이 트인 구경꾼들이 소문들을 씹어대고 있었다.

 

 사람이기보단 괴물에 가까운 그에 대한 묘사는 매일 잔인하고 끔찍하게 진화하고 있었다.

 

 파갈 공작의 마지막 직계혈육인 손녀딸이 그런 카라스 영주에게 보내진다니, 이것은 사형선고와 같은 것이었다.

 

 세라는 동정의 눈빛을 담은 시선들을 느꼈다.

 

 황제가 반역죄에 대한 명목으로 파갈을 완벽하게 유린하고 있음을 모두가 느끼는 순간이었다.

 

 

 “인장을 준비하셨소?”

 

 

 장교가 검은 기사에게 묻자, 그가 소매 속에서 둥글고 넓적한 금속을 꺼내 휙 던졌다.

 

 장교는 그것을 어떨 결에 받고 잠시 당황스러워했다. 부하에게 건네주니, 쇠꼬챙이에 꽂아 화로에 박아 넣었다.

 

 파갈 여자들에겐 피를 말리는 장면들이었다.

 

 오, 불쌍한 세라. 낮은 탄식의 소리가 파갈 여자들 사이에서 들려왔다.

 

 무시무시한 카라스 영주가 보낸 자라 그런지 검은 기사 또한 음산하고 기묘한 느낌이었다.

 

 

 “저 여자가 세라 파갈이오. 막 황족소유인장을 찍으려던 찰라였는데, 다행이오.”

 

 

 장교가 가리키는 쪽으로 검은 기사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세라도 그를 응시했다. 몰아쉬는 숨 때문에 그녀의 가슴이 크게 들썩였다.

 

 반듯하고 날렵한 턱선만 보일 뿐이지만, 자신을 묘한 시선으로 훑어보고 있음을 세라는 짐작할 수 있었다.

 

 달궈진 인장을 들고 병사가 다가왔다. 다른 두 명의 병사가 세라의 팔과 어깨를 고정시켰다.

 

 검은 기사를 응시하는 세라의 눈빛에 불안과 공포가 들어차기 시작했다. 세라는 소리를 지르지 않으려고 이를 악 물었다.

 

 검은 기사도 그런 세라를 응시했다. 고삐를 쥐고 있던 주먹이 미세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인장을 든 병사가 등에 내려온 세라의 붉은 머리카락을 거칠게 옆으로 치웠다.

 

 검은 기사를 태운 흑마가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 와중에도 검은 기사의 시선은 세라에게 고정 되고,

 

 뻘겋게 달궈진 인장의 열기가 가까워 질 때,

 

 세라는 망토의 그늘 속에서 짐승의 송곳니가 하얗게 번뜩였다고 생각했다.

 

 휘리릭. 윽

 

 누구도 믿지 못할 정도로 짧은 순간에, 검은 기사가 말에서 뛰어 내려 인장을 찍으려던 병사의 목을 잡아 들어 올렸다.

 

 병사의 발이 허공에서 허우적댔다.

 

 쨍그랑.

 

 인장이 땅에 떨어졌다. 일련의 움직임을 제대로 볼 수가 없을 정도로 빨랐기에 모두 놀라 굳어 있을 뿐이었다.

 

 세라가 고개를 돌려 올려 봤을 때 섬뜩한 송곳니가 착각이 아니었음을 확인 할 수 있었다.

 

 검은 기사는 화난 야수처럼 이빨을 드러내며 낮게 으르렁거렸다.

 

 맹수처럼 크고 두드러진 것은 아니었으나 보통 인간의 송곳니보다는 약간 길고 날카로운 것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저 반듯한 턱선과 콧날의 생김새가 낯설지 않다는 것.

 

 그녀가 그토록…… 그리워하는 사람의 것이었다.

 

 

 “아론?”

 

 

 그가 살아 있을 리 없겠지만 입에서는 벌써 그의 이름이 나와 버렸다.

 

 으르렁 거리던 윗입술이 서서히 송곳니를 덮으며 내려왔고 곧 일자로 굳게 닫혔다.

 

 검은 기사는 세라를 차갑게 내려 보더니 병사의 목을 잡고 있던 손에 힘을 풀었다. 병사는 툭 떨어져 쾍쾍 거렸다.

 

 장교가 가까이 다가오지는 못하고 몸을 사리며,

 

 

 “이게 무슨 짓이오?”

 

 “소유표시는 우리가 알아서 하겠다.”

 

 

 목젖을 누르며 갈라져 나오는 저음이 장교의 항의를 일축해 버렸다.

 

 지옥의 소리처럼 어둡고 무거운 울림은 사람들의 저항을 짓밟는 소리였다.

 

 검은 기사는 세라의 팔꿈치를 잡아당겨 일으키더니 말 쪽으로 끌고 갔다.

 

 황족대표가 용기를 내어 끼어들었다.

 

 

 “반역죄로 노예가 된 이들은 반드시 그 자리에서 인장을 찍는 것이 황명이오. 황명을 어기려는 거요?"

 

 

 검은 기사의 턱이 움찔했다. 그 모습을 본 황족대표는 한 발 물러서다가 황제의 위상이 곧 황족의 위상이기에 용기를 내기로 결심했다.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었다. 황명을 지키게 해야 했다.

 

 

 “황명은 지엄한 것이오. 그대가 직접 집행하여 그것을 보여 주시오.”

 

 

 황족대표가 턱짓을 하자 병사가 바닥에 떨어진 카라스 영주의 인장을 들고 왔다.

 

 

 “건네 드려라.”

 

 

 병사는 벌벌 떨며 검은 기사의 손에 쇠꼬챙이를 대충 건네주고 얼른 멀찌감치 떨어졌다. 동시에 다른 이들도 뒤로 더 물러섰다.

 

 황족대표를 노려보던 검은 기사는 꼬챙이 끝에 고정된 인장을 내려 봤다. 뜨거운 열기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기사는 잠시 생각을 마치더니, 빠르게 쇠꼬챙이를 회전시켜 고쳐 쥐었다.

 

 동시에 세라의 팔꿈치를 잡고 있던 손에 힘을 실어 순식간에 그녀를 눌렀다.

 

 세라는 짓누르는 억샌 힘에 무릎 꿇을 수밖에 없었다.

 

 머리가 숙여지도록 한 번 더 깊이 누르니 긴 머리카락이 앞으로 쏟아져 하얀 어깨가 드러났다.

 

 그는 재빨리 인장을 찍었다.

 

 아악!!!!!

 

 세라는 살이 타는 고통에 비명을 지르곤 쓰러져 버렸다.

 

 번개처럼 빠른 기사의 동작에 당황한 사람들이 두 눈을 껌뻑였다.

 

 검은 기사는 쇠꼬챙이를 옆으로 던져 버렸다.

 

 기절한 세라를 어깨에 들쳐 메고는 말에 올라타 그녀를 자신의 품안에 내려놓았다.

 

 구경꾼들 사이를 빠져나가자마자 속력을 내어 이내 사라졌다.

 

 쭉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은 잠깐 정신이 쏙 빠졌다 들어온 듯했다.

 

 쓰디 쓴 독초향만 여운으로 사람들 코끝에 남아 있었다.

 

 역시…… 카라스 영주와 관련 되는 것은 전부 기괴한 것 뿐이네.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똑같은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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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이정도면 너한테 상냥한 거 아닌가? 2017 / 7 / 25 272 0 6379   
46 아론과 카라스 영주의 조우 2017 / 7 / 25 306 0 6239   
45 관객과 배우를 속인 연극 2017 / 7 / 25 285 0 5304   
44 회상 - 잘 가라 아론 2017 / 7 / 24 261 0 5689   
43 회상 - 나, 깨끗한 남자입니다! 2017 / 7 / 24 270 0 6040   
42 회상 - 소년에서 남자로 2017 / 7 / 24 288 0 5749   
41 새로운 신부감을 찾아 줄 텐가? 2017 / 7 / 24 277 0 6785   
40 내 여자 덕에 산 줄 알아 2017 / 7 / 24 270 0 7563   
39 네가 자백하면, 열 한명이 살아 2017 / 7 / 24 276 0 7165   
38 이름 부르고 싶어? 조건이 있어. 2017 / 7 / 22 287 0 7850   
37 걸어다니는 병기도서 2017 / 7 / 22 304 0 6664   
36 똑같이 그려봐. 2017 / 7 / 22 304 0 8073   
35 에라, 꼬추나 떨어져라! 2017 / 7 / 22 266 0 5699   
34 회상 - 늑대가 보여 준 고독의 무게 2017 / 7 / 22 259 0 6090   
33 회상 - 벼랑 끝, 어둠과 빛이 공존하는 순간 2017 / 7 / 22 268 0 6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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