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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대국의 빈(嬪): 악의 딸
작가 : 써니벨
작품등록일 : 2017.7.15

도덕심이든 윤리의식이든 단 1g도 없는 야만인의 아가씨, 야낙(여주)의 피말리는 궁중생존기와 위태로운 로맨스 스릴러! 살육과 약탈을 생업으로 삼는 야인족의 영애로서, 가벼운 마음으로 입궁한 대국의 내명부는 그야말로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세계였다. 그러나 얼마못가 궁에서 낙오되어 사라질 것 같았던 야만인 소녀는 정말 강하고 사악했는데?! 아름답고 가련한 '마왕(魔王)'과 그 마왕을 사랑하고 만 '대마왕(大魔王)'의 사극 로맨스 스릴러.(실제 역사와 아무런 상관없는 중세시대 사극물입니다. )

 
9.내명부의 높으신 그녀들.
작성일 : 17-07-15 01:53     조회 : 273     추천 : 0     분량 : 8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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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야낙의 입궁 6일 차가 당도했다.

 

 국왕, 목종의 환갑진연까지 앞으로 하루 전.

 

 전야제(前夜祭).

 

 이 무렵, 왕후가 거처하는 중궁(中宮)에선 국왕의 탄신일을 맞이해 내명부만의 호사스런 다과회가 열리는 중이었다. 날이 날인만큼, 왕후비빈을 비롯한 모든 후궁들이 참석한 중대한 자리다.

 

 12개 거대한 상으로 차려진 거대한 식탁 위에는 듣도 보도 못한 갖은 산해진미와 값비싼 찻잔이 올라와 사치스러움을 자랑했고, 계급에 따라 제 자리에 앉아있는 10명 후궁들 모두 잔뜩 예장을 한 채로 저마다의 개성을 뽐내며 자리를 빛내고 있었으며 웃전이 모인 전각 아래로 100명에 이르는 상궁과 나인들이 대열에 맞춰 웃전의 하명을 기다리는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중궁마마 듭시오!”

 

 다과회에 불참한 ‘두 사람'을 제외하고....

 

 나머지 비빈들이 왕후의 등장에 모두 일어선다.

 

 “오랜 만입니다. 여러분들, 다들 안녕하셨습니까.”

 

 고상하고 엄중한 분위기 속, 병색이 완연한 왕후가 자애로이 웃으며 상석(上席)에 다가서고 있었다. 자신을 향해 허리를 굽히며 깍듯하게 예를 갖추는 후궁들을 모두 둘러보며, 그녀가 더없이 따뜻하게 웃음 짓는다.

 

 “공사다망한 가운데 모두들, 예까지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초청에 감읍하옵나이다. 홍복을 누리어주시옵소서, 중궁마마.”

 

 토시하나 안 틀리고 정확하게 맞춰 합창하는 후궁들이다. 수발상궁의 부축을 받으며 겨우 자리에 앉은 왕후가 낮게 기침을 토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만들 앉으세요.”

 

 “..........”

 

 수발상궁의 부축을 받으며 겨우 자리에 앉은 왕후가 참석한 후궁들을 다시 한 번더 둘러보며 근엄하게 허리를 핀다.

 

 자신의 지척으로 두 명의 비(妃)가, 그 비들의 휘하에 놓인 빈(嬪)과 삼부인(*귀인,미인,재인을 일컫는 내명부 품계의 호칭)들이 두루 자신의 앞에 모여 있는 걸 일일이 눈으로 확인하던 왕후가 이제 곧.

 

 “........후우.”

 

 자신의 바로 앞, ‘비어있는 자리’를 보며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이번 모임에도 후궁의 최고 지위를 가진 귀비가 ‘또’ 불참해버렸으니 말이다.

 

 제조상궁을 비롯한 각 처소의 수발상궁들의 얼굴에도 벌써부터 긴장감이 서리기 시작했다.

 

 “아아.”

 

 불쾌하다는 듯 아주 조금 미간을 찌푸리는 왕후다. 공적인 모임에 얼굴하나 비추는 법 없기로 유명한 귀비에게 이번 다과회만큼은 반드시 참석하라고 오늘만 벌써 3번 기별을 보냈었다. 그런데 답장하나 없이 끝까지 무시라니....

 

 “온귀비께선, 이번에도 불참이십니까. 이 상궁?”

 

 “그것이.... 망극하옵니다.”

 

 “..........”

 

 심지어 명확한 불참사유까지 없는 모양이었다. 상궁이 죽을상으로 쩔쩔매며 연신 고개만을 조아리고 있자 알겠다는 듯 손짓하는 왕후다. 기분이 그만 상했는지, 말없이 찻잔을 드는 그녀에게로 얼른 한 명의 비가 나서고 있었다.

 

 “귀비마마께선, 춘추가 많으시지 않사옵니까. 요즘엔 몸이 많이 허하다고 외출마저 꺼리신다합니다. 거기다 이미 폐하까지 ‘포기’하신 분이신데 마마께서 이만 너그러이 봐주시지요.”

 

 나이는 얼추, 20대 중후반대. 여기 모인 후궁들 중에서도 제일 뚱뚱하고 얼굴마저 돼지상인 후궁이었다. 만혜궁의 궁주, ‘혜비’라 불리는 이 여인은 생김새만큼이나 먹성마저 좋았는지 아직 음식에 손도 대지 않은 다른 후궁들과 달리 그녀 앞으로 빈 접시만 벌써 5개나 쌓여 있었다.

 

 “본궁은 괜찮소, 혜비(慧妃), 귀비께서 편찮으시다는 데 그런 분을 억지로 모임에 부르게 할 순 없지 않겠습니까? 본궁이 참아 줄 수 밖에요.... 이보게, 이 상궁!”

 

 “네, 마마.”

 

 “귀비께서 몸이 허하다 하니, 내의원을 찾아가 어서 보약을 달아 올리라 하게나. 하루빨리 쾌차하셔야지.”

 

 사실, 귀비에 대한 것이면 왕후인 그녀도 어느 정도 체념한 게 있었다. 이런 식의 불경과 무례는 항상 있었던 거라, 왕후가 결국 고집과 체통을 꺾고 한 수 접자 후궁들 사이로 안도의 한숨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분부 받들겠습니다.”

 

 “과연, 자애로우십니다. 마마, 신첩은 마마를 존경치 아니할 수 없사옵니다!”

 

 혜비 옆에서 엄숙한 표정으로 침묵하는 숙비의 뒤로, 빈(嬪) 계급의 젊은 여자하나가 목청을 높이며 아부하기 시작했다. 못생기고 뚱뚱한 혜비와 달라도 너무 다른 ‘절세미녀’다, 20대 초반으로 추정되는 이 여자는 요즘 후궁들 사이에서 제일 많은 총애를 받는다는 주인공, ‘공빈’이었다.

 

 “어허! 이보게, 공빈! 지금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언성을 높이는 겐가!”

 

 그리고,

 

 다짜고짜 공빈을 꾸짖고 나서는 이 여인은 그 ‘공빈’의 상관이 되는 연혜궁의 궁주, ‘숙비’

 

 30대 초반으로 추정되는 이 여자는 그냥 봐서도 정말 고지식하게 생겼는데, 성격마저 어지간히 극단적이고 깐깐한 모양인지.... 사소한 실수하나 저질렀다고 공빈을 꾸짖는 그녀의 어조가 극심한 분노에 차있었다.

 

 “소, 송구하옵니다. 마마.”

 

 “아아 보살님! 그대는 입궁한 연치가 벌써 3년이 되어가는 데도 어찌 이리 경솔하오!!! 아아아 중궁마마! 신첩이 죽을죄를 졌사옵니다! 아래 후궁을 제대로 이끌지 못한 신첩의 불찰이 너무도 크옵니다!!! 벌을, 벌을 내려주시옵소서, 마마 신첩은 벌을 받아야 합니다!!!”

 

 “아니... 벌은... 무슨.... 지, 진정하시오. 숙비. 본궁은 괜찮습니다.”

 

 “아니, 공빈은 중궁마마의 깊은 자비심에 감탄한 것뿐인데... 숙비께선 왜 우리 공빈의 기를 죽이고 그러십니까?”

 

 숙비의 강경한 태도에 왕후까지 당황하고. 결국 이 상황을 보다 못한 혜비가 유하게 웃으며 중재에 나서려고 하자, 숙비의 매서운 눈빛이 바로 혜비에게 향해지고 있었다.

 

 “공빈은 제 관할의 사람이니 참견하지 말아주시지요, 혜비. 제 일이고 제 불찰입니다!”

 

 “크으으! 평소에도 저런 식이더니... 기어이 중궁마마 안전에서조차 이러시는 군요. 제가 졌습니다, 숙비. 어느 누가 당신을 이겨먹겠습니까? 갑입니다. 숙비께서 진정 갑이에요.”

 

 엄지를 척 꺼내들며, 이 와중에도 원리원칙을 따지는 숙비에게 칭찬을 보내는 혜비였다.

 

 

 “........치이.”

 

 괜히 잘 보이겠다고 아부하고 나섰다가 무안만 당한 공빈이 입을 다물며 골을 내자, 기분이 풀어졌는지 왕후가 다시 웃어 보이고 있었다.

 

 “자, 그만.. 그만! 오늘과 같이 진중하고 즐거운 자리에 말다툼이 오가야 되겠습니까! 폐하의 탄신일을 감축하는 자립니다."

 

 "송구하옵나이다, 마마."

 

 "또한 진연이 끝나고 나면, 본궁은 새로이 입궁한 갈마 씨 영애에게 첩지를 내려줄 거랍니다. 내일 모레 동이 트는 대로... 우리 내명부로 새로운 식구가 하나 생길 터인데, 여러분 모두가 한 마음으로 즐거이 받아 들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번 다과회는 폐하와 새 가족의 무강과 행복을 바라는 자립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을 이리 모이라 한겁니다. ”

 

 “...............”

 

 순간,

 

 환하게 웃으며 찻잔을 드는 왕후 아래로 아주 미묘하고도 살벌한 분위기가 후궁들 사이로 흘러가고 있었다.

 

 “마마, 새로운 식구라 함은 혹,작년에 간택 받은 야인족의 아가씨를 말씀하시는 건지요.”

 

 “그렇습니다. 혜비.”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되었습니까. 세상에....”

 

 “...........”

 

 조용히 상황을 주시하고자 함이었는지, 저마다 다과를 즐기는 후궁들을 뒤편으로 두 명의 비가 서로 상반된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우선 혜비 쪽은 ‘새로운 식구’에 대해 호의적인 모양이었다. 언제 또 집은 건 지, 유과를 와작와작 씹어대는 그녀의 입가로 달덩이 같은 미소가 피어오르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옆의 숙비는 전혀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까보다 더 어둡고 심각한 표정으로 침묵을 유지하던 숙비가 기어이 한숨을 내쉬자, 왕후가 조심스럽게 운을 뗀다.

 

 “무엇이 그렇게 근심스러운 겁니까, 숙비.”

 

 “..........”

 

 “숙비, 마마께서 하문하시지 않습니까.”

 

 “마마,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이번 몽혜당에 배정된 영애에 대한 책봉식은 뒤로 무르심이 어떻겠습니까?”

 

 “!!!”

 

 이외의 말에 왕후도, 다른 후궁들도 짐짓 놀란 눈치였다. 결국 궁녀들 사이에 마저 술렁이는 분위기가 역력하자 결심이 선 듯 숙비가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있었다.

 

 “어제 저녁. 몽혜당의 상궁으로부터 첩보를 받았나이다. 이 지엄하고 지엄한 왕궁에 한낱 영애라는 자가 자신에게 불경을 저질렀다는 죄목 하나로.....”

 

 “하나로....?”

 

 “나인들을 잔인하게 고문했다 하옵니다.”

 

 “?!”

 

 고문.

 

 이 두 단어가 숙비 입에 떨어지는 그 순간이었다.

 

 “세, 세상에 맙소사!!!”

 “어떻게 그런 입에 감히 담기도 끔찍한....!”

 

 “서 재인! 장 첩여!”

 

 경악해하며 헛웃음을 들이키는 후궁들 사이로, 야낙의 동년배로 추정되는 두 사람만은 어지간히 놀란 듯 체통을 잊고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자리 배치로 미루어 보건대, 숙비 쪽의 사람들인 듯했다.

 

 “.....쉿!”

 

 아까 잔뜩 욕을 먹은 지라, 공빈이 숙비의 눈치를 보며 목소리를 낸 두 사람에게 바로 눈짓을 주고 있었다. 하지만 소식을 전하는 숙비마저도 아래 후궁들을 얼른 꾸짖을 만큼 그렇게 여유로워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불쾌하다는 듯 고개를 흔들며 혀를 차고 있었고, 그것을 들은 왕후의 반응도 크게 놀라워하고 있었다.

 

 “어허, 숙비! 그것이 참이옵니까?”

 

 “이런 자리에 감히 아뢸 말씀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사태가 워낙 심각하고, 중대한 진연을 하루 앞둔 상황에서 이 자리 말고는 감히 중궁마마께 아뢸 시간이 없었사옵니다. 신첩의 불경을 용서하여주시옵소서.”

 

 “.....경악할 만 한 일입니다.”

 

 부루크라는 낯선 타지에서 갓 올라온 영애를 배려해 혹, 낯선 궁중생활에 적응치 못할까봐 일부로 직접 본인 나서 상궁과 나인들을 선별해 몽혜당에 파견한 왕후였다. 예법에 서툴지 말라고 고향에 자신을 가르쳤던 예절 상궁까지 보냈는데....

 

  아니, 그런데 가타부타 중궁에 아무 기별도 안 보내고 제 멋대로 궁인들을 고문하다니?

 

 “이런 배은망덕하고 무엄한지고!! 혹여 궁녀들이 잘못을 저질러 폐를 범했다 해도, 그에 관한 처벌은 응당 내명부 수장이신 왕후 폐하께서 판단하고 결정하실 일이거늘. 더군다나 이번에 파견한 궁녀들은 왕후 폐하께서 직접 선별한 아이들이기도 하지 않았습니까!”

 

 야낙에 호의적으로 보였던 혜비도 격분하여 다과상을 내리치고 있었다. 이에 숙비도 싸늘하게 눈빛을 번뜩이며 말을 잇기 시작했다.

 

 “.........”

 

 “중궁마마께서도 잘 아시겠사옵니다만, 몽혜당의 수발상궁으로 파견된 이는 신첩이 입궁 초기 때 많은 신세를 졌던 예절 상궁이기도 했습니다. 신첩이 특별히 아끼는 자라, 중궁마마 또한 몽혜당 배정을 망설였지 않습니까!”

 

 이건, 뭐 가면 갈수록 가관이었다. 상황이 영애의 처벌로 이대로 기워지는가 싶었으니까.

 

 얼음장을 끼얹은 것처럼, 다과회의 분위기가 엄청 차가워진다.

 

 “.........”

 

 아까부터 계속 웃는 상이었던 왕후의 안색마저 벌써부터 검게 굳어지고 있었다. 귀비의 불경에 이어, 첩지도 안 받은 영애의 안하무인격인 행패까지. 중궁마마가 격노를 해도 전혀 이상치 않은 상황인지라, 후궁 모두가 숨죽여 상황을 주시하는 사이.

 

 “숙비.”

 

 드디어 왕후께서 입을 여셨다.

 

 “네, 마마. 하문하시옵소서.”

 

 “숙비께서 올린 보고에 따르면, 영애가 본궁에게 불경을 저지른 건 맞습니다. 법도도 어기고 방자하게 행동한 것 또한 맞고요. 허나, 앞 뒤 상황을 들어보지 않고 몽혜당의 영애를 무조건 탓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이왕, 이리 된 것 소상하게 사정을 설명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

 

 숙비의 표정이 오묘해지고 있었다.

 

 “상궁의 보고에 따르면, 일단 잘못은 나인들이 먼저 저질렀다 합니다. 영애의 불학(배우지 못함)을 핑계로 치기어린 행동을 하였는데....”

 

 “그 치기어린 행동이라 함은?”

 

 화가 난 듯했어도, 숙비를 취조하는 왕후의 어조는 한없이 침착하고 부드러웠다. 숙비가 잠시 주춤하며 숨을 고른다.

 

 “그것이.... 영애를 모독하는 언사를 했다하였는데 영애가 이를 알아듣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패물을 주며 칭찬을 해주다 나중에 이를 알아들었는지 어쨌는지... 신첩은 잘 모르겠고... 그것이.”

 

 “나인들이 모독을 해요? 무슨 모독을 하였답니까. 본궁의 당부를 받고 파견한 자들이 어떻게 그런 무례를 범할 수가 있어요!”

 

 “..........”

 

 자애로웠던 왕후의 안색으로 분노라는 격정적인 반응이 서서히 올라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분노 초점은 아무래도 다른 방향으로 향해진 것 같았다. 드디어 중궁마마의 언성이 높여지자, 숙비가 얼른 고개를 조아리며 떨기 시작한다.

 

 “하지만 아랫것이 아무리 죄를 범했다하나, 그들을 처벌하는 것은 마마의 몫이옵니다. 정식으로 첩지도 받지 아니한 영애가 그들을 처벌한 건 명백한 월권으로 법도에 어긋나는 크나큰 대죄입니다. 천하고 배우지 못한 야만인의 여인입니다. 내명부의 기본적인 법도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심지어 잔학하고 불학하기 까지 한 그 아가씨를 어찌 신첩들과 같은 내명부의 일원으로 맞아들이시려는 겁니까!”

 

 “실망했습니다, 숙비.”

 

 결국엔 본인의 의도를 드러내며 자신에게 항의하는 숙비에게 딱 한마디만 답하고 말을 마치는 왕후였다.

 

 “!”

 

 왕후의 뜻밖의 태도 앞에 숙비를 위시한 공빈도 표정을 바꾸며 몸을 굳히기 시작했다. 마주보지 않아도 두 사람 사이로 싸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

 

 “부루크 영애의 간택은 폐하와 조정에서 결정한 사항으로, 왕후인 본궁이 이제와 왈가불가할 일이 아닙니다. 물론, 입궁한 지 한 주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나인들을 고문했단 소식은 분명 경악할 만 한 사건인 건 확실합니다. 허나, 숙비의 보고만을 듣고 영애의 처우를 결정하기엔 시기상조인 감이 있군요. 그에 대해 조사하고 처분을 내리는 것 또한 본궁의 권한이니, 숙비께선 이제 이 일을 그만 덮어주심이 어떻겠습니까?”

 

 “!!!!”

 

 “중궁마마의 말씀이 옳사옵니다. 숙비께서도 중궁마마의 안전 앞에 언행이 너무 지나쳤던 감도 있고요. 숙비.... 모든 후궁들이 모인 이런 공적인 자리에 ‘굳이’ 그런 보고를 올렸어야 했습니까. 그것도 내일 폐하의 환갑진연을 앞두고요?”

 

 “........”

 

 아주 잠시나마, 숙비와 혜비 사이에서 강렬한 눈빛이 오고갔다. 그러나 모른 척, 숙비를 비웃듯 혜비가 콧방귀를 뀌며 찻잔을 들어올린다.

 

 “그래, 그건 그렇고 이제 5왕자께선 무탈하십니까, 숙비?”

 

 “........!”

 

 싸늘해진 분위기를 전환하겠다고, 왕후가 어느 덧 화제를 돌리고 있었다. 그러나 아들이 언급됨과 동시에 숙비가 어쩔 줄 몰라 하며 더더욱 고개를 떨궜다.

 

 “황송하게도 그러하옵니다.”

 

 태어날 때부터 장애를 안고 태어난 숙비의 5왕자는 올해 4살이 되었지만 여전히 걸을 줄도 몰랐고 매일 크고 작은 병을 달고 살았다.

 

 얼마 전에는 심장발작까지 일으켰던 터라, 무리하게 약과 의원을 구한다고 내명부 재정에 크게 부담을 주었었다.

 

 아들 일은 정말 면목 없는 일이라 숙비가 아무 말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사이, 혜비가 바로 자랑하듯 얘기를 꺼내들고 있었다.

 

 “마마, 4왕자가 이번에 소학을 다 학습하여 진연이 끝나면 소소한 책거리를 열까 하온데. 윤허해줄 수 있으신지요.”

 

 “뭐라? 4왕자가 소학(小學)을? 천자문을 고작 3 주 만에 모두 암송해 모두를 놀라게 하더니... 벌써 학문의 진전이 그렇게나 된단 말입니까!”

 

 5왕자와 동갑인 혜비의 아들, 4왕자는 궁중에서 이름난 ‘영재’로, 병약하고 멍청한 5왕자와 사사건건 비교됐었다. 혜비는 숙비와 동등한 공신의 가문을 친정으로 두고 있었으나, 12명의 후궁들 중 유일하게 건강하고 정상적인 왕자를 생산한 사람이었다.

 

 같은 비의 신분이었지만, 혜비의 위세는 숙비의 것보다 한 수 더 위였다.

 

 ‘.........’

 

 그리고

 

 아들 얘기가 나오면, 숙비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왕후마저 부루크 영애 일은 깡그리 잊고 왕자에 대한 화제로 이야기꽃을 피우자 그녀가 곧 의기소침하게 입을 다물고 있었다.

 

 ........

 

 한 편,

 

 저녁이 깊어, 어느 덧 궁중의 밤하늘에 초승달이 얼핏 기워질 무렵.

 

 “............”

 

 다과회에 오긴 했지만, 모두가 모인 전각에는 오르지 못하고 중궁 밖에서 연신 대기 중인 한 후궁의 시녀가 어느 덧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낭랑....”

 

 정말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홀대와 따돌림을 받는 주인이 너무도 가여운 그녀였다.

 

 ‘귀인 오아씨’

 

 귀비에 이어 불참한 것으로 처리 된 또 다른 빈자리의 주인공이자, 다과회가 진행되는 내내 아예 언급조차 되지 않은 후궁이다. 그녀는 첩지를 받고 입궁한 지 이제 두 달이 되었지만, 그 동안 후궁으로서, 공적인 자리에 초대만 받았다 뿐이지 그녀는 단 한 번도 환대를 받은 적이 없었다.

 

 귀인의 첩지를 받고, 그 때 범했던 단 한 번의 실수 때문에 웃전의 눈 밖에 ‘아예’ 나버린 주인을 두고 시녀가 울상을 짓는다.

 

 “낭랑, 다과회가 이제 끝나간다는 데 이만 물러가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전각 위에 오르려고 하면, 그 웃전과 상궁들이 아예 길을 막았고 이대로 중궁에서 물러나자니 왕후의 초청을 거절한 무례를 범하는 꼴이 되었다. 주인은 후궁의 신분으로 상궁과 나인들과 같은 자리에 서서 다과회를 보내는 끔찍한 굴욕을 겪는 중이었지만, 당신은 요지부동이었고 불쾌해하시지도 않았다.

 

 “낭랑...”

 

 “아지, 시끄럽구나. 모두들 즐거이 환담하시는 데 우리가 떠들어 방해하면 되겠느냐?”

 

 주인과 자신을 완전히 투명인간 취급하며 즐겁게 웃고 떠드는 후궁들을 두고, 주인은 오히려 보는 것만으로도 기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 주인이 답답하기만 해 시녀가 울상을 지으며 애걸하고 있었지만 전혀 소용없었다.

 

 “보세요, 중궁마마께서도 낭랑을 신경 쓰지 않고 계십니다.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하십니다. 낭랑은 결코 이런 대접을 받아선 안 되는 데요!”

 

 “초청해주신 은혜에 답하고 싶구나. 물러가고 싶으면 먼저 물러가도 돼. 나는 여기에 계속 남겠어. 보렴, 정말 예쁘구나.”

 

 오히려 시녀를 나무라며 자리를 지키는 그녀였다. 날이 어두워 등불을 밝힌 전각을 제외하고 사방이 깜깜했지만, 어느 누구도 이 후궁에게 길을 밝혀주는 이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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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롤로그>야인족의 영애, 야낙. 2017 / 7 / 15 421 0 100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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