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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대국의 빈(嬪): 악의 딸
작가 : 써니벨
작품등록일 : 2017.7.15

도덕심이든 윤리의식이든 단 1g도 없는 야만인의 아가씨, 야낙(여주)의 피말리는 궁중생존기와 위태로운 로맨스 스릴러! 살육과 약탈을 생업으로 삼는 야인족의 영애로서, 가벼운 마음으로 입궁한 대국의 내명부는 그야말로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세계였다. 그러나 얼마못가 궁에서 낙오되어 사라질 것 같았던 야만인 소녀는 정말 강하고 사악했는데?! 아름답고 가련한 '마왕(魔王)'과 그 마왕을 사랑하고 만 '대마왕(大魔王)'의 사극 로맨스 스릴러.(실제 역사와 아무런 상관없는 중세시대 사극물입니다. )

 
7.내가 그러니까 까불지 말라고 했잖아.
작성일 : 17-07-15 01:44     조회 : 258     추천 : 0     분량 : 9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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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튿날, 아침.

 

 드디어 별다른 사건 없이 평화롭고 조용했던 몽혜당의 분위기가 엄청 뒤숭숭해져 있었다.

 

 “얘, 얘 너도 봤지?”

 

 “어....응... 그 야만인 못 보던 반지 꼈더라?”

 

 영애의 식사 담당을 맡는 나인의 제보에 따르면, 그 꾀죄죄한 야만인 계집이 범상치 않아 보이는 반지 하나를 꼈다고 했다. 그것도 무려 보석 반지다.

 

 뭐, 그까짓 가락지 하나. 영애가 친정에서 가져온 패물일 수도 있었고, 설사 그게 귀한 거라 해도 웃전들의 장신구 같은 거에 궁녀들이 감히 신경 쓰고 눈여겨볼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이 왕성에 일하는 ‘궁중여관’이라면 절대 모를 ‘궁중의 비밀’이 있었다. 그 비밀은 별나고도 쓸 데 없이 낭만적이었는데.

 

 

 올해로 즉위 10년 차인 현 성상 폐하께선,

 

 이따금 대담하고도 낭만 소설에나 나올 법한 달달한 연애를 즐기셨다.

 

 최근에 공주를 출산하고 첩여(婕妤:대국 내명부 하위품계 중 하나)가 된 승은상궁 장 씨가 제일 대표적인 경우였다. 그녀는 일반 궁녀도 아닌 장안의 기녀 출신이었는데, 신분을 숨기고 나타난 폐하와의 교제 끝에 후궁이 된 사람이었다.

 

 제일 총애 받는 공빈(恭嬪)마마께서도, 영애 시절 민간에 암행하시던 폐하와 만나 사랑에 빠졌다는 (다소 믿기 힘든) 얘기가 있었고

 

 아니,

 

 당장 중궁에 계시는 왕후 폐하께서도 불임이 되셨지만 현격한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폐하와는 도타운 부부 사이를 유지하고 계셨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설마 지엄하고 지엄하신 성상 폐하께서 마지못해 간택했을 게 분명한 야만인 여자 따위에게 행차하셨을 리 없었다.

 

 정말 그렇게라도 믿고 싶은데

 

 하지만, 나인들 입장에서

 

 유감이게도 정말 유감이게도 말이다.

 

 부루크의 영애가 낀 반지의 ‘자수정’은 올해 국구(國舅:왕의 장인)이자 재상이신 마 승상께서 폐하의 진찬을 감축하기 위해 진상한 ‘보석’이 틀림없었다.

 

 자수정은 외국으로부터 극히 한정으로 수입되는 매우 귀한 예물이었다. 동시에 그것은 왕실에서 상서로움을 간직한 지존의 보석으로 통했기 때문에, 승상 각하께선 매년 폐하의 탄신일이 올 때마다 자수정으로 만든 장신구를 진상하셨다.

 

 이것도 궁중에서 꽤나 유명한 얘기다. 거기다 올해는 분명 ‘반지’라고 했지.

 

 “..........”

 

 “야야... 설마, 있잖아. 그 야만인 설마 폐하와 만났다거나.”

 

 얼마 전, 야낙에게 사과를 바치면서 마음껏 조롱했던 나인들의 얼굴은 벌써부터 흙빛이 되어 있었다. 야인족 인지 뭔지 그래봐야 오랑캐 아니냐며 다른 후궁마마들도 대놓고 무시하며 조롱하는 판국인데 총애는 고사하고 바로 소박이나 맞을 줄 알았더니.

 

 “거기, 너희들.”

 

 “아, 네 마마님.”

 

 업무 도중에 근심어린 표정으로 잡담을 나누던 나인들이 다가오는 상관 앞에 얼른 허리를 숙인다. 궁중 생활 20년 차. 나인들도 이미, 돌아가는 분위기나 상황은 어떤지 웃전의 ‘안색’만 봐도 눈치 챌 수 있었다.

 

 나인들이 벌써부터 울상을 짓는다.

 

 “아가씨께서 너희들을 부르시더구나. 가 보거라.”

 

 “!!!!!!!!!!!”

 

 마마님께선 자신들을 꾸짖지도 나무라지도 않으셨다.

 

 하지만

 

 상궁 마마님의 안색은 이미 ‘격노’로 푸르스름하게 변해져 있었다. 아까, 내방으로 소환되시더니 기어이 빌어먹은 야만인에게 무슨 안 좋은 얘기를 들은 게 틀림없었다.

 

 “아가씨께서 나를 칭찬해주시더구나. 너희들의 교육을 잘 시켰다면서 감동했다고.”

 

 “네, 네?”

 

 “몽매하고 용렬한 왕후폐하께서 보잘 것 없는 당신에게 훌륭한 하인을 주었다고 감탄하셨다. 본인이 어로불변하여 책봉식 때 무어라 감사해야할지 모르겠다고 하시던데 아가씨께서 너희들에게 좋은 말을 배웠다고, 오늘도 너희들에게 또 배우고 싶어 하신다.”

 

 말씀은 나긋나긋하고 지극히 차분했지만 이미 극대노하신 상궁마마님의 표정은 이미 부하 나인들을 죽여 버리고 싶어 했다. 간택된 영애의 잘못은 입궁 전 예법을 가르쳤던 예절 상궁과, 영애의 일행을 모시는 수발상궁의 책임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 책임이 ‘죽음’으로 다뤄진다는 걸 생각하면....

 

 이 한심한 나인들은 그 사실을 망각하여 경솔히 행동했지만, 영애는 자신의 처지는 물론이고 신분에 따른 궁중의 책임에 관해서도 제대로 숙지하고 있었다.

 

 늘그막에 인생 은퇴 당하고 싶지 않으면, 부하들을 순순히 넘기는 게 좋을 거라고 아가씨가 말씀하셨다. 당연했지만, 수발 상궁인 자신에게 선택의 여지란 게 없었다.

 

 협박조로 입을 연 노상궁이 이내 부하 나인들을 위협하기 시작한다.

 

 “............”

 

 “가서 어련히 행동할 거라 나는 믿겠다.”

 

 충격과 공포로 뭐라 말을 잇지 못하는 나인 셋이 결국 절망어린 표정을 짓고 말았다.

 

 

 

 

  *************

 

 

 “못 보던 얼굴이구나.”

 

 오늘도, 오른 편에 마나를 왼 편에 란초이를 두면서 책을 읽는 야낙이 심드렁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몽혜당에 배정된 ‘나인’들의 얼굴은 이미 다 파악한 상태였다. 그래서 지금 내방에서 청소하다, 내놓은 빨랫감을 주어드는 여자가 처음 보는 사람이란 걸 알 수 있었다.

 

 탁.

 

 책을 덮으며 궁녀를 노려보는 야낙의 눈길이 덤덤하면서도 매서웠다.

 

 “아, 네!”

 

 독서에 집중하던 영애가 갑자기 자신한테 관심을 줄 줄 몰랐던 모양이었다. 여자가 눈에 띄게 당황하고 있자 혼수 시녀로서 마나도 주인을 따라 눈을 번뜩이고 있었다.

 

 “여기 배정된 수발 나인들을 모두 보았지만 너 같은 나인은 본 적 없다. 옷차림도 궁관의 의복이 아닌 걸 보니 너는 궁녀도 아니로군.”

 

 과연, 예리했다. 여자가 마른 침을 삼키며 곧 헤실헤실 웃기 시작했다.

 

 “저는 비자의 신분입니다, 아가씨.”

 

 “오, 그래?”

 

 비자(卑子)라면

 

 예절 상궁에게 내명부 품계에 관해 배우면서 들어본 적 있었다.

 

 물을 긷는 무수리, 궁인들의 편지 심부름을 한다는 글월비자, 수라간의 보조를 맡는 잡부 등등 그녀들은 왕성에 선발된 ‘공노비’로서 일반 궁녀들이 수행하기에 잡다하고 험한 업무를 도맡는다 했다.

 

 경계를 푸는 척, 여자를 떠보기 위한 속셈으로 야낙이 어느 새 슬쩍 미소 짓고 있었다.

 

 “입궁한 이후로 이 시간만 되면 산책했던 터라 오전에 내방을 청소하고 빨래를 걷어가는 줄은 미처 알지 못했군. 그보다 나나, 내 시녀들의 옷감을 세탁하는 건 비자가 하는 일인가? 수발 나인들의 업무인 줄 알았더니 그건 아니었나 보군.”

 

 “아, 청소당번인 항아님들 사정이 당장 여의치 않아서요. 항아님들을 대신해 어제부터 제가 대신하여 했습니다.”

 

 "어제부터...아, 그래서 내가 너를 알아보지 못한 게로군."

 

 웃으며 비자의 정체를 파악해가는 그녀의 눈동자는 무서울 정도로 재빨랐다.

 

 나이는 서른 즈음.

 

 머리 가르마 사이로 탈모가 진행되고 있었고, 허리는 굵었으며 여자에게서 약간의 젖내가 났다. 이것은 분명 수유한 지 얼마 안 된 아기의 냄새였다. 냄새의 정도로 보건대 저 여자는 해산한 지 몇 달 된 산모로 숫처녀가 아니었다.

 

 ‘궁에 선발된 노비라 해도, 여긴 후궁이다. 후궁에 내정된 비자들은 분명 일반 궁녀들과 마찬가지로 정조를 지켜야 할 터인데?’

 

 야낙이 의심하며 눈을 가늘게 뜨자, 이 때를 기다렸다는 듯 마나가 얼른 허리를 숙이며 주인의 귓가에 입을 댄다.

 

 “야낙 님, 저 여자 방각시네요.”

 

 “?”

 

 잠자코 침묵하던 마나가 의심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 야낙에게로 나작하게 속삭였다. 모시는 주인이상으로 궁중에 대해 공부했던 터라 마나의 어조는 제법 자신감에 차있었다.

 

 “주인님은 웃전을 상대하셔야 하잖아요. 아랫것들에 대한 정보라면 저 열심히 공부했으니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요.”

 

 “.........”

 

 “방각시도 비자이긴 한데 상궁의 처소를 관리하는 잡부라고, 상궁 개인이 고용하는 하인이래요. 궁에서 선발된 정식 인원이 아닌 만큼 유부녀도 방각시가 될 수 있다고 예절 상궁에게 들었어요.”

 

 “아아, 그래?”

 

 마나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다시 허리를 피자, 잠시 짧게 웃음을 퍼트린 야낙이 조소 짓는다.

 

 “이 봐.”

 

 “아 네! 아가씨.”

 

 빨랫감을 여전히 손에 든 채로 안절부절 못하는 여자의 모습이 다소 우스꽝스러웠다. 그런 여자에게 더없이 태평한 표정을 지은 그녀가 곧 손가락을 들어 침대 옆 탁자를 가리킨다.

 

 탁자 위에는 이틀 전, 마나가 꽃으로 장식했다 치웠던 백자가 놓여 있었다.

 

 “아까부터 열심히 청소하던데, 저 탁자 위의 도자기도 깔끔하게 닦았느냐?”

 

 “도자기라 하심은... 아아, 저 '화병' 말씀하시는 겁니까. 네 당연히 닦았습니다.”

 

 “그래? 알겠다, 이만 물러가 봐도 좋다.”

 

 “............”

 

 서둘러 내방에서 나가는 비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야낙이 험악하게 인상을 찌푸린다. 골치 아프다는 듯 깊게 한숨을 내쉬던 그녀가 마찬가지로 이를 부드득 가는 마나에게로 살벌하게 입을 열었다.

 

 “마나.”

 

 오른 편의 부하는 딱 한 마디면 됐다.

 

 “네에! 맡겨주세요, 야낙 님.”

 

 문답무용.

 

 둘 사이에 어떤 대화도, 신호도 오가지 않았지만 더없이 사악하게 미소 짓는 마나의 얼굴은 이미 마귀처럼 변해져 있었다.

 

 “?”

 

 영문을 모르겠다는 란초이의 눈빛이 당혹감으로 흔들린다. 마나보다 교활함이 부족한 왼 편의 부하가 아직도 상황을 눈치 채지 못해 머뭇대며 침묵하자 야낙이 차갑게 지시를 내린다.

 

 “이 일은 마나한테 맡긴다. 너는 신경 쓰지 마라.”

 

 “............”

 

 입궁한 이래로, 눈치 면에서 여러모로 마나에게 밀리고 있는 중이다. 그의 표정이 썩 밝진 않았다.

 

 “음.”

 

 하지만,

 

 비자가 나가고 얼마 되지 않아 내방 밖으로 누군가가 주저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세 사람의 인기척이 나는 걸 보니, 아침에 불렀던 나인들이 분명했다. 하지만 한꺼번에 여러 아랫것들을 상대하려니 벌써부터 귀찮아진 모양이다. 나인들이 왔다는 걸 알면서도 야낙이 모른 척하자, 주인을 대신해 마나가 목청을 높였다.

 

 “들어와.”

 

 드르륵.

 

 “........”

 

 문이 열리고.

 

 내방 안으로 힘들게 발걸음 하는 세 나인들의 품으로 저마다 ‘보따리’가 안겨져 있었다. 흙빛으로 굳어져 죽을상을 하고 있는 나인들의 얼굴이 참으로 볼만했다.

 

 

 

 쭈뼛쭈뼛 긴장하며 떠는 저 꼴들 좀 보라지. 주제에 지은 죄는 아는 모양인지, 나인들의 낯빛은 사약이라도 마시러온 사람 같았다.

 

 “키득키득.”

 

 일족 사람들 중에서도.

 

 여주인님은 죄인을 상대로 정신적인 고통을 주는 것에 제일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셨다.

 

 그동안 여러 사람 자살시킨 전문가이자 노련한 경력자로서... 모처럼 여주인의 솜씨를 구경할 좋은 기회가 생기자 마나도, 란초이도 고소해죽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가씨께 문안드리옵니다.”

 

 “오냐.”

 

 바닥에 가져온 보따리를 펼치며 자신에게 큰 절을 올리는 나인들의 모습이 저번 때보다 더 정중했고 예의가 발랐다.

 

 나인들이 보따리에 싸갖고 온 것은 ‘돈과 패물들’이었다. 저번에 주었던 것까지 포함에 ‘몇 곱절’이나 되는 보석과 장신구들이 바닥에 놓여 있자 그녀가 곧 비열하게 입술 끝을 말아 올렸다.

 

 '과연 궁중의 개들.'

 

 상대를 가늠하는 안목이 부족했다 뿐이지, 웃전을 대하는 여관들의 처세는 나름대로 현명한 편이었다.

 

 나인들은 위기상황을 타개할 해결책으로 무작정 싹싹 비는 감정적인 호소보다 금전적 보상 같은 현실적인 타협안을 선택한 것같았다.

 

 흥,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란 건지 아니면 섣부른 행동은 독이 될 수 있다는 걸 인지한 건지.

 

 그녀들은 다짜고짜 살려 달라 애걸하지도, 용서를 구하지도 않았다. 패물들을 바치며 자신의 눈치만을 살피는 그녀들에게 야낙이 시선을 돌린다.

 

 “웬 패물들이더냐.”

 

 “.......”

 

 “웬 패물들이라 물었는데도.”

 

 “아가씨께서 하문하신다!!! 웃전이 말씀하는 데 정당한 이유도 없이 침묵을 해?”

 

 긴장과 공포가 감도는 상황에, 마나의 사나운 고함까지 나오자 더는 견뎌낼 재간이 없었던 모양이다.

 

  야낙이 천연덕스럽게 손가락에 낀 자수정 반지까지 보란 듯이 치켜올리자, 단번에 기에 눌린 나인 하나가 얼른 납작 엎드리며 훌쩍이기 시작했다.

 

 “아가씨, 부디 저희들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용서? 무슨 용서?”

 

 턱을 괴며, 야낙이 도통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두 눈을 껌벅인다. 눈동자를 또르르 굴리며 가벼운 웃음까지 내뱉은 그녀가 더없이 부드럽게 말을 잇는다.

 

 “너희들이 이러는 연유는 모르겠으나. 내가 너희들은 부르고자 함은 너희들을 꾸짖고자함이 아니라 고마움을 표시하고자 함이다.”

 

 “아가씨.... 쇤네들은 그러니까....”

 

 “나는 배움이 모자라서 어려운 궁중용어와 우아한 말에 대해 잘 모른다. 허나, 너희들은 내게 좋은 말을 하며 나를 공경해주었어. 나는 내 ‘빚’은 반드시 갚는 사람이다. 그러니 너희들의 공적도 잘 기억해두었다가 얼마 있을 ‘내 책봉식’ 때, 왕후 폐하께 잘 말씀.....”

 

 “아가씨이!!!!!! 차라리 쇤네들을 이 자리에서 죽여주시옵소서!!!”

 

 지나가는 어투로 말했을 뿐인데 왕후 폐하의 위력은 대단했다.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나인들은 전부 지옥이라도 본 것처럼 절규하고 있었다.

 

 사람이라고 목숨은 아까웠나봐?

 

  소심 해 보이는 나인 하나는 벌써 공황상태에 접어들었는지 아무 말도 못하고 덜덜 떨고만 있다.

 

 “나는 도통 영문을 모르겠구나. 글쎄 나는 너희들에게 은혜를 갚을 거라니까?”

 

 “그 때 저희들이 아가씨와 아가씨의 아버님께 불경을 저지른 것입니다. 쇤네들이 아가씨를 낮잡아보고 경솔히 행동했습니다. 용서하여주시옵소서 아가씨. 그 땐 쇤네들이 진심으로 송구했습니다.”

 

 “불경....? 불경은 무엇이냐. 경솔은 뭐고 송구는 또 무엇이고.”

 

  뭐든 배우겠다는 의지로 눈을 반짝이는 야낙의 모습이 가증스러울 정도로 순수해 보였다. 일자무식인 척 딴청을 피우는 영애를 상대로 나인들이 부들부들 떨며 서로 눈치를 본다.

 

 “패물은 필요 없다. 존경받는 것도 좋지만, 웃전이란 사람이 이유도 없이 아랫사람의 재물까지 탐해서야 쓰겠나. 너희들의 충심은 아주 잘~~ 알겠으니 이제 물러가 봐도 좋다.”

 

 정말 멍청하지 않고서야, 야낙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 지 모를 턱이 없었다. 대놓고 빈정대며 협박하는 그녀를 두며 나인들이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최악의 상황이란 건 이런 걸 두고 말하는 것이다. 영애가 패물을 받아주지 않으면, 그녀들 입장에서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으니까. 당연했지만, 웃전을 능멸한 죄의 대가는 정말 컸다.

 

 특별한 연줄이 있으면 모를까, 그녀들은 그런 것도 없는 일개 궁녀의 처지였다. 이제 정말 다 끝난 거다.

 

 비참한 최후를 끝으로 궁중생활을 마감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나인들의 머릿속을 강타하는 그 순간.

 

 “뭐.”

 

 천만다행이게도

 

 끝날 줄 알았던, 영애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아 있었다.

 

 “하지만 너희들의 태도는 보아하니 나한테 뭔가 정말로 잘못한 모양이로군. 그렇담, 나도 그냥은 넘어갈 수 없다. 죄를 범했으면 그 대가를 치러야지. 안 그러느냐?”

 

 “.....어, 어? 네, 네!! 당연합니다. 아가씨.”

 

 바로 아까만 해도 무자비하게 굴던 야만인이 왜 갑자기 태도를 바꿨나 싶었다.

 

 어쨌든 이게 웬 떡이냐!

 

 절망의 도가니 속에 희망 한 가닥이 보이자 부질없이 그것을 부여잡는 그녀들이다. 그러나 뒤를 잇는 그녀의 말은 나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렇다 해도 역시 나는 너희들이 내게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모르겠다. 그러니 네들이 알아서 처신해라.”

 

 “네?”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판단해서 네들이 나한테 잘못을 저지른 만큼 그 죗값을 바치란 소리다. 무슨 말을 하는 건 지 설마 궁인들이 너희들이 못 알아먹는 건 아닐 테지.”

 

 의외의 상황에 혼란에 빠진 듯 나인들이 어안이 벙벙한 얼굴을 하고 있자, 그녀가 사악하게 웃으며 말을 마친다.

 

 “아~ 물론, 나한테 잘못한 게 하나도 없다 판단이 들면 아무것도 바치지 않아도 좋다. 나는 어떻게든 너희들에게 ‘은혜’를 베풀고 싶은 입장이니 말이다.”

 

 “저, 아가씨 그러면.....”

 

 동료들이 야낙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이를 딱딱 떨며 긴장하는 동안, 나인 한명이 얼른 자신이 가져온 패물을 더 앞으로 내밀고 있었다.

 

 “그것이 너의 죗값이냐?”

 

 패물만이 아니라, 입고 있는 저고리와 치마까지 벗으며 야낙에게 진상하는 나인이었다. 머리장식부터 시작해서, 버선은 물론 신고 있는 신발까지!

 

 맨몸에 속치마만 딸랑 남기고 동료가 가지고 있는 모든 걸 바치자, 나머지 나인들이 바로 질색하며 경악하고 있었다.

 

 “아가씨!! 송구하옵니다. 쇤네는 일개 나인이온지라 가진 거라곤 이것이 전부이옵니다! 원하신다면 이번 달 쇤네의 봉급도 오늘 안으로 갖다 바치겠사옵니다.”

 

 “네가 나한테 범한 죄가 그 정도였구나. 알겠느니, 용서해주겠다.”

 

 코에 먼지가 다 묻을 정도로 바닥에 바짝 엎드린 나인에게로 더없이 차가운 빈정거림이 뒤를 이었다. 영애의 시선이 자신이 입고 있는 속치마로 향해가 있자 결국 울면서 그마저도 벗는 나인이다.

 

 “아아, 내게 냄새나는 속옷까지 주다니... 무례한 아랫것이구나. 마나 이 쓰레기, 오늘 안으로 불태워버려라.”

 

 “분부대로 합죠, 아가씨.”

 

 완전한 나신이 되어 훌쩍이는 나인의 울음소리가 안쓰러울 만치 처량했다. 하지만, 영애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잔인하기만 했다.

 

 “...........”

 

 그래도 야낙의 입에서 ‘용서’라는 말이 나오자 앞 선 상황에 크게 질색하던 다른 한 명도 결국 결심이 선 모양이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자리에서 일어나 아까 동료가 그랬던 것처럼, 가지고 있는 패물은 물론 옷까지 모두 벗어 바친 다른 나인이 수치심에 얼굴을 붉히고 몸을 부들부들 떤다.

 

 "어머, 언니들 되게 마르셨다."

 

 두 나인의 알몸을 관람하는 마나의 눈빛이 즐거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한명.

 

 “.........”

 

 동료들이 알거지가 되어 수치를 당하는 동안에도, 여전히 요지부동인 나인에게로 야낙의 시선이 향해갔다. 마지막 남은 나인은 아무것도 안하고 사시나무마냥 몸을 떨고 있었다.

 

 셋 중 가져온 패물도 제일 적었고, 옷차림도 앞 선 두 사람과 달리 남루한 것이 아무래도 가진 것이 제일 없는 궁녀였던 듯 했다. 적극적으로 나서는 두 사람과 달리 울상만을 지을 뿐 끝까지 아무 행동도 안하는 나인을 두며 야낙이 차갑게 조소를 짓는다.

 

 “두 사람은 나한테 잘못했다고 하는 데, 너만은 내게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은 게로구나?”

 

 “..........”

 

 질문에 대답조차 안하는 나인이었다. 그렇다고 딱히 담대한 성격도 아닌 듯했다. 대답하지 못하는 건 그냥 공황상태에 빠져서 그런 것이었으니 말이다.

 

 “알았다. 셋 다 이제 물러가라.”

 

 “아가씨....”

 

 알몸인 상태로 어쩔 줄 몰라 하며 내방을 나가지 않으려는 두 나인에게로 야낙이 능청스럽게 고개를 갸웃한다.

 

 “왜? 생각해보니 그만큼 잘못한 건 아닌 것 같으냐?”

 

 영애의 말에 결국 할 말이 없어졌는지 나인들은 결국 두 손으로 어떻게든 국부를 가리며 내방을 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 와중에도 공황상태인 나인은 멍 때리며 어찌할 줄을 모르고 있었다. 이를 두며 란초이가 말없이 끌고 갈려고 다가가자, 드디어 정신을 차렸는 지 바닥에 납작 엎드리는 그녀다.

 

 “아가씨!!!! 저, 저는 가진 게 저 두 사람만 못합니다. 사, 살려주십시오!!!!”

 

 “나는 너를 죽일 마음이 없다는 데도.”

 

 “.......”

 

 어물어물, 야낙한테 변명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그대로 란초이에게 끌려가는 나인이다.

 

  끌려가면서도 훌쩍이는 나인의 눈빛이 팔려가는 송아지 마냥 저렇게 슬퍼 보일 수 없었다. 마지막 나인까지 내방에서 사라지자, 바로 획득한 패물의 가치를 가늠해보는 마나다.

 

 비상금으로 써먹기에 충분한 양의 돈이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독서에 전념하는 주인에게로 마나가 패물을 챙겨들며 즐거운 어투로 툴툴댄다.

 

 “야낙 님도 많이 물러지셨어요. 겨우 이 정도로 끝내시다니요. 쳇 머리까지 삭발 안시키고. 모처럼 잔뜩 기대했는데....”

 

 “저런 조무래기 상대로 털어먹을 게 얼마나 있다고 털어먹느냐. 이 정도면 됐다. 여긴 부르크가 아냐. 정도가 더 지나치면 오히려 역효과다."

 

 그래도 못내 아쉬운 마나였다.

 

 평소의 주인 같았으면, 절대 이 정도로 안 끝냈을 텐데. 주인은 이런 식으로 간단히 끝낼 것 같았으면 바로 상대를 죽이는 사람이었다. 잡은 약점을 빌미로 상대를 정신적으로 괴롭히고 고문하면서 가진 걸 있는 대로 털어 가시는 분이신데.... 그녀에서 야낙은 그런 점이 매력적이었고 존경스러운 상관이었다.

 

 그러나,

 

 입궁이 결정된 이후로 주인은 어째 예전의 독기를 많이 잃으신 것 같았다.

 

 “아까 그 애. 우리 일족 전리품이었으면 꽤 괜찮았을 것 같은 데요.”

 

 “조용히 해. 말이 많다, 마나. 너는 그 방각시부터 어떻게나 해 놔. ‘상궁’은 내가 처리하마.”

 

 “...물론이죠.”

 

 이번엔 자신의 차례였다. 주인이 말없이 자신에게 기대를 걸자 교활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마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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