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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대국의 빈(嬪): 악의 딸
작가 : 써니벨
작품등록일 : 2017.7.15

도덕심이든 윤리의식이든 단 1g도 없는 야만인의 아가씨, 야낙(여주)의 피말리는 궁중생존기와 위태로운 로맨스 스릴러! 살육과 약탈을 생업으로 삼는 야인족의 영애로서, 가벼운 마음으로 입궁한 대국의 내명부는 그야말로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세계였다. 그러나 얼마못가 궁에서 낙오되어 사라질 것 같았던 야만인 소녀는 정말 강하고 사악했는데?! 아름답고 가련한 '마왕(魔王)'과 그 마왕을 사랑하고 만 '대마왕(大魔王)'의 사극 로맨스 스릴러.(실제 역사와 아무런 상관없는 중세시대 사극물입니다. )

 
4.뜻 밖의 개수작.
작성일 : 17-07-15 01:28     조회 : 246     추천 : 0     분량 : 4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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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어...어허허.”

 

 최대한 능글맞게 살금살금 다가서려던 사내가 일순 당황하며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따, 딱히 골려줄 생각이라든가 그런 건 없었는데 여자들은 눈치한 번 진짜 빨랐으니 말이다. 자신을 발견하기 무섭게 죽일 듯 노려보는 두 시녀의 눈빛이 매우 살벌하다. 저 시녀들의 여주인의 것은 더 말할 것도 없고.

 

 “당신은 누구지?”

 

 이런 상황은 처음이야.

 

 정말 당황했는지 얼굴까지 살짝 붉힌 남자가 뒷걸음치며 머리를 긁적인다.

 

 “하아! 낭만과는 거리가 먼 상황이로세. 이보게나, 낭자들. 나는 그냥 지나가는 사람이오!”

 

 “?!”

 

 처음 보는 남자다.

 

 “.........”

 

 그것도 대놓고 수상한 냄새가 나는.

 

 ‘야낙 님!’

 

 시녀들이 긴장하며 자신의 결정을 기다리자 그녀가 곧 눈을 번뜩이며 날카롭게 사내를 훑어본다.

 

 일단 어제 만났던 적발 머리와는 다른 사람이다. 얼굴에 정돈된 수염이나 체격으로 봐선 ‘내관’도 아니었고.

 

 

 나이는 40대 중후반으로 추정. 갈색 빛을 띄우는 흑발에 검은 눈동자. 키는 약 5.5자(166cm).

 

 턱 봐도 값나가는 푸른 비단 장옷에 통이 넓은 백단바지.

 

 머리에 쓴 갓 너머로 보이는 상투에는 ‘금’으로 만들어 동곳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은으로 섬세하게 세공된 귀걸이가 햇빛에 눈부시게 반짝인다. 남자의 손가락을 장식한 가락지들은 보기 황홀할 정도로 예쁘고 화려했고 .

 

 “..........”

 

 그리고, 남자에게서 풍기는 이 은은한 향기는 분명 ‘유향’이었다. 서역에서 최근 인기리에 수입되고 있다는 그 겁나 비싼 ‘향료’말이다.

 

 일단 높으신 분은 확정이다.

 

 단 몇 초안으로 장년의 사내를 훑어본 야낙이 곧 곱게 허리를 숙이며 예를 갖춘다.

 

 “공(公)께 무례를 범하여 송구하옵니다.”

 

 “아아!”

 

 어째 위엄이라곤 전혀 없어 보이는 사내다. 우물쭈물 대던 남자의 인상이 인사를 받기 무섭게 화색이 돌고 있었으니 말이다.

 

 주인을 따라 공격태세를 거둔 시녀들도 이어 무릎을 꿇으며 절하기 시작한다.

 

 “결례를 범했사옵니다. 부디 관용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나리.”

 

 “되었네, 일어나게나.”

 

 수상한 건 맞는 데 그렇다고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일개 시녀가 귀한 신분인 자신에게 살기를 보였으니 역정을 낼 법도 한데, 그는 화를 내기보단 파안(破顔:얼굴빛을 부드러이 하며 활짝 웃음)하며 용서해주었으니 말이다 아니, 굳이 행동으로 보여주지 않아도 말끔한 얼굴에는 오랜 자상함이 듬뿍 묻어져 나왔다.

 

 물론.

 

 저게 본모습일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마나.”

 

 “네, 아가씨.”

 

 “???”

 

 

 아까만 해도 격하게 으르렁 대던 갑자기 마나가 히죽이며 조용히 뒷걸음질하고 있었다. 이미 야낙과 마나 사이에서 무언의 대화가 이루어진 모양이다. 란초이의 팔목을 붙잡는 마나의 힘이 제법 셌다.

 

 “????”

 

 입은 웃고 있지만, 눈빛으로 육두문자를 날리며 얼른 따라오라고 압박을 주는 마나다. 아직 아무것도 눈치 채지 못한 란초이가 영문을 몰라 하며 주인의 눈치를 보자, 야낙이 가라는 듯 엄히 신호를 보낸다.

 

 “아가씨, 쇤네들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아니, 시녀는 왜 무르는 게요?”

 

 란초이 만큼이나 영문을 모르겠다는 사내였다. 그러나 떠나려는 시녀를 굳이 막을 생각은 없어보였다.

 

 아니, 왠지 엄청 좋아하는 눈치다.

 

 두 시녀 모르게 야낙에게 슬쩍 시선을 준 사내의 표정이 어느새 엉큼해지고 있었다.

 

 “제 측근입니다. 마침 제 처소에 일이 남았는데, 마저 시켜야 하니 먼저 보냈습니다.”

 

 “허허....”

 

 왕실의 정원을 얼마두지 않은 시점에서 장년의 사내와 10대의 소녀가... 아니, 정확히는 두 남녀가 남겨지게 되었다.

 

 “이히히히히히히!”

 

 “?????”

 

  연신 웃어대며 서둘러 동료를 데리고 자리를 피하는 마나의 표정이 올해 들어 어째 가장 즐거워 보인다. 그러나 영문이야 모르는 란초이는 낯선 사내와 남겨지게 된 주인을 돌아보며 걱정 어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오스스....

 

 궁의 거리를 장식한 벚나무의 잎들이 가을바람에 힘없이 흔들리며 시원하고도 청명한 느낌을 주었다. 산책하기 너무나도 좋은 날씨다, 그린 듯이 청명한 하늘에, 적당히 따사로운 햇볕이 사람의 기분을 상쾌하게 해주었으니까.

 

  아름답게 지저귀는 정원의 새들. 각양각색의 국화들. 맑은 공기. 고풍스러운 궁궐의 담들.

 

 “..........”

 

 뒷짐을 지며 앞장서는 사내의 뒤로, 그녀가 말없이 손을 모으며 다소곳하게 걸어간다.

 

 허리까지 늘어뜨린 긴 검은머리에, 단정하지만 어딘가 차갑고 날카로운 눈매. 통이 넓은 대국의 복식을 입었어도 몸매가 굴곡지고 날씬하다는 걸 단박에 알아챌 수 있었다.

 

 나이 17세, 어린티를 완전히 벗어 이제는 성숙한 여자의 내음이 물씬 풍겼지만, 얌전한 규수처럼 야낙의 모습은 어딘가 어울리지 않게 소녀다움이 느껴졌다. 점잖게 걸어가면서 슬슬 그녀에게 눈길을 주는 사내의 눈길이 음흉하고 사악하다.

 

 그녀가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정원을 거의 앞두고 다시 한 번 샐쭉 미소 짓던 그가 걸음을 멈추며 어느 순간 짐짓 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무엄하오.”

 

 “..........?”

 

 “그대는 분명 명망 높은 가문의 영애일 터인데, 어째서 낯선 사내일 터인 이 몸과 내외하지 않고 단신으로 내 뒤를 따른 것이오? 예법과 체통에도 어긋나는 일이로다.”

 

 어쩔 줄 몰라 하며 절절매는 소녀의 모습을 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시커먼 속내를 숨기며 정색한 얼굴로 야낙을 꾸짖던 사내가 순간, 그녀의 답을 듣고 흠칫 놀라고 말았다.

 

 “공(公)께선 소녀가 영애의 신분이라는 걸 어찌 알고 계시는 지요.”

 

 다소곳하게 내리까던 시선을 올리며 사내와 눈빛을 마주하는 야낙의 시선은 잘 손질된 칼처럼 날카로웠다. 잠시 말을 잇지 못하던 그가 바로 눈을 가늘게 뜨며 응수한다.

 

 “차림새는 궁인이 아니오, 올리지 않은 머리는 아직 혼인하지 않은 아가씨라는 증표로다. 거기다 시녀를 데리고 왕성을 활보할 수 있는 신분의 아가씨라면 분명 내명부에 간택된 영애겠지.”

 

 “공녀라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일부러 제게 접근한 공’께선 제가 내명부에 간택되었다는 것도 잘 알고 계시는군요.”

 

 “.............”

 

 “하문치 아니한 말씀에 감히 답한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소녀가 아직 예법에 밝지 않사옵니다.”

 

 거참.

 

 당황할 때 머리를 긁는 건 아무래도 버릇인 것 같았다. 또다시 뒷머리를 긁적이던 사내가 어느 덧 툴툴대고 있었다.

 

 "귀엽지 않은 아가씨일세. 젊은 사람이 낭만에 서툴러서야 쓰나.”

 

 “제 신분을 알고도 접근할 수 있을 정도의 배짱을 가진 분이시라면 분명 제게 목적이 있어서 다가오신 것이겠지요.”

 

 “딱히 그런 건 아뇨. 우연이야, 어 우연!”

 

 “어머 이런 외진 장소에까지 ‘우연’으로 오실 수도 있다니 놀랍네요.”

 

 “쯧쯧 새파랗게 어린 아가씨가 어떻게 어른을 상대로 한 마디 지지 않으려 하는 거요? 됐소, 됐소.”

 

 눈매나 눈빛부터 예사롭지 않다했더니, 소녀를 놀리며 기를 죽이려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자 사내가 조금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관찰하듯 남자를 살펴보던 야낙이 살짝 입 꼬리를 올린다.

 

 한숨을 내쉬며 잔뜩 골이 난 듯 입까지 비죽 내민 사내가 토라진 어조로 투덜대기 시작한다.

 

 “이 몸은 멀쩡한 성인 남성이라 곧 친척이 될 아가씨에게 덕담을 주었으면 주었지. 혼내는 취미는 없소이다. 일부러 접근했다니 그런 오해의 소지가 될 만한 언행은 삼가주었으면 하는데.”

 

 “친척?”

 

 예상 외의 정보에 놀란 듯 눈을 가늘게 뜨는 야낙에게 사내가 드디어 근엄하게 씩 웃는다.

 

 “얼마 안 있어 하나뿐인 사촌 형님의 환갑진찬이 벌어진다네. 왕족의 신분이라 올해 진찬에 초청받았다만 한 주 내내 객방에만 지내려니 원체 좀이 쑤셔야지. 날도 좋겠다, 단신으로 산보나 나가볼까하다 자네를 우연찮게 보게 되었고 일이 이렇게 되었다네. 이 몸이 호기심 많아서 말일세.”

 

 “.............”

 

 국왕, 왕후, 서열높은 후궁이나 고관대신들에게 갖출 인사법이나 예절에 대해 배우긴 했지만 일반 왕족에게 갖춰야 할 예법에 대해 아직 잘 모르는 그녀였다. 미래 남편 될 왕의 사촌 동생이라니. 그런 사람에게 어떤 인사법을 갖춰야 할까 고민하는 야낙에게로 사내가 먼저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는다. 방심하는 사이에 손을 허용하고 말았다. 바로 경계하며 흠칫 손을 쳐내려는 야낙에게로 사내가 더없이 능글맞게 웃고 있었다.

 

 “아가씨, 이 몸은 오랜 세월을 살아오면서 여러 처세를 익혀왔다네.”

 

 “이게 무슨 짓입니까!”

 

 “쉬잇, 들키지만 않으면 죄가 되지 않아. 모른 척 오늘만큼은 날 따라주었으면 하는군.”

 

 “!!!!!”

 

 반항도 잠시.

 

 “..........”

 

 눈을 치켜뜨며 뱀처럼 사악하게 수작을 부리는 사내를 쳐다보던 야낙이 어느 순간 스리슬쩍 손에 쥔 힘을 풀고 있었다. 뭔가를 알아챈 모양이다. 침묵을 유지하며 사내의 손을 가볍게 떼어난 그녀가 더없이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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