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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드레이크 방정식
작가 : 카시니
작품등록일 : 2017.7.8

6천 년 전 외계로 끌려갔던 지구인의 후손이 평범한 지구인과 사랑에 빠진다. 인간과 교신할 수 있는 지적 외계 생명체의 수를 계산하는 '드레이크 방정식'을 이용하여 혹시 우주 어딘가에 존재할 수도 있는 내 사랑을 찾을 확률을 계산해 보자!

 
03 도플갱어?
작성일 : 17-07-14 01:32     조회 : 249     추천 : 0     분량 : 8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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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야, 관심 없는 척 빼더니 그렇게 급했냐?

 “그냥 빨리 해치우고 말려고. 그런데 어떤 사람이야? 아는 대로 말해줘 봐.”

 -글쎄, 그냥 감각 괜찮은 사진작가, 인물 좋고, 말 별로 없고, 너 부산스런 남자 싫어하잖아.

 “잘 되면 한 턱 쏠게. 약속장소 다 왔다. 끊어.”

 

 만나기로 한 카페가 전방에 보인다. 다시 머리를 매만지고 목을 가다듬은 후 부엉이 모양 풍경이 달린 카페 유리문을 열었다. 풍경소리가 청아하니 좋은 일이 일어날 듯한 예감이 든다.

 

 지수가 들어서서 테이블이 예닐곱뿐인 작은 카페 안을 쭉 눈으로 훑었다. 창가 구석자리에 혼자 앉아있던 남자가 벌떡 일어서서 다가온다. 맙소사, 지수는 풀 메이크업 상태라는 것도 잊고 눈을 비볐다. 워터프루프 마스카라를 사용한 것이 다행이었다.

 

 “송지수씨? 김재민입니다. 반가워요.”

 “어……. 굉장히 낯이 익어요. 저희 구면인가요?”

 

 첫인상 관리도 못하고 어버버 거리다가 재민이 잡아주는 의자에 얼떨결에 앉았다. 테이블 위에는 지수가 좋아하는 아메리카노가 이미 놓여있었다.

 

 “하연씨한테 물어봤어요. 아메리카노만 드신다고 해서 미리 시켜뒀는데 괜찮으신가요?”

 “네……. 그보다 저희 구면 맞죠? 분명히 낯익은 얼굴인데. 어디서 뵀는지 기억이 안 나요.”

 “글쎄요, 저는 잘 모르겠는데요?”

 

 재민이 눈을 초승달 모양으로 만들며 미소 짓자 지수는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눈앞이 핑 돌며 한 사람을 떠올릴 수 있었다. 실제로는 만나본 적도 없는 자칭 외계인이라 주장하는 남자, 자르트.

 

 어깨에 닿는 검은 머리에 검은 눈동자인 자르트와 달리, 이 남자는 탈색을 한 건지 은발에 가까운 블론드에 짧은 헤어스타일이었으며 연한 갈색 눈동자였다.

 

 깔끔하게 다린 셔츠에 면바지, 갈색 로퍼까지 평범한 듯 하면서도 스타일리시해서 잘난 마스크가 더 돋보였다. 주변 테이블의 여대생 무리가 지수를 부러운 듯 쳐다보며 저희들끼리 수군거렸다.

 

 그런데 이목구비며, 조금 전 서있을 때 확인한 키에 목소리까지, 염색하고 컬러렌즈를 낀 자르트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똑같이 생겼다. 지수는 혼란스러웠지만 여기서 ‘우리 이틀 밤 동안 꿈에서 만났잖아요.’ 라고 말할 수도 없고 마른 침만 꿀꺽 삼켰다.

 

 “아, 제가 착각했나 봐요. 만나서 반가워요.”

 “하연씨랑 아주 친하시다고 들었어요. 저는 원래 인물과 풍경 사진들을 많이 찍는데, 하연씨 회사와 같이 가끔 작업을 해요. 제가 오지의 풍경들을 촬영해 오면 적당한 것을 참고해 게임 배경을 만드신대요.”

 “네……. 저는 아시다시피 교열하는 일을 해요. 재미없는 직업이죠?”

 “저 같은 사람에게는 아주 대단해 보이는 직업인걸요. 전 언어 쪽에는 정말 소질이 없거든요.”

 

 자르트와 똑같이 생긴 재민 때문에 혼란스러운 지수는 무슨 말로 대화를 이어가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재민도 워낙 말수가 적다고 하더니 둘 사이엔 침묵이 이어졌다.

 

 “제가 말주변이 없어서 죄송해요. 이런 만남에서는 어떤 얘기를 해야 하죠?”

 “저도 그런걸요. 보통 취미나 관심사에 대해 얘기하다가 공통분모를 찾지 않나요?”

 “네, 그럼 저부터 할게요. 제가 좋아하는 건 바닷가에서 책 읽기, 밤에 별 보기, 교외에 나가 자전거 타기, 서울 같은 도시에서는 미술관 가기, 큰 서점에서 책 읽기, 요즘엔 첼로를 배우고 있어요. 실내 클라이밍도 가끔 하고요.”

 “와, 말씀하신 건 저도 다 좋아해요. 책은 일하느라 많이 접하기 때문에 평소에는 만화책을 많이 봐요. 다만 첼로나 클라이밍은 해본 적이 없네요. 대신 저는 기타를 조금 치고요, 플라잉 요가를 해요.

 

 대화와 어색한 침묵이 번갈아 이어지는 가운데에도 둘은 계속 대화를 나눴다. 어렸을 때 주로 외국에 있었다는 재민과 순수 서울파인 지수 사이에서 그리 많은 공통점을 찾을 수는 없었지만 좋아하는 음식을 얘기하다가 둘 다 매운 떡볶이에 의견 일치를 보고 근처 유명한 떡볶이 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매운 거 잘 드신다면서요.”

 “좋아한다고 했지 잘 먹는다고는 안 했어요. 어휴, 매워라.”

 

 연신 물을 마셔가면서도 매운 떡볶이를 흡입하는 재민, 그런 재민을 바라보며 정말 닮았는데 아닌가, 또 혼란스러워 하는 지수. 떡볶이 집에서 나온 둘은 간단히 한 잔 하자는 재민의 말에 가까운 칵테일바로 향했다.

 

 무드 있는 재즈 음악이 흐르고 어두운 조명 아래 카시스 프라페, 테킬라 선라이즈의 예쁜 색깔이 은은하게 비친다.

 

 “인물이나 풍경 사진을 주로 찍으시는 이유가 있나요?”

 “그냥, 다양한 삶의 모습을 담으려고요. 수천, 수만 명의 사진을 찍다 보면 그들의 삶이 보이는 듯 하거든요. 풍경은 사실 하연씨 회사 일처럼 부업하는 기분으로 하는 경우가 더 많아요.”

 “그럼 나중에 제 사진 예쁘게 찍어달라고 부탁해도 되나요?”

 “물론이죠. 그 말은 앞으로도 만나자는 뜻이죠?”

 

 갑자기 말문이 막힌 지수가 얼굴을 붉혔다. 어두운 조명이라 다행이다.

 

 “저는 앞으로도 지수씨 계속 만나보고 싶어요. 지수씨도 그런 거라면 좋겠는데, 거절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답하기 힘드시면 나중에 집에 가셔서 문자로 통보해주세요. 바로 앞에서 거절당하기 무섭거든요.”

 “저도 계속 만나보고 싶네요. 거절 아니니까 바로 앞에서 말해도 되는 거죠?”

 “고마워요, 지수씨.”

 

 그 싱그런 미소를 또 시전하는 재민. 아무리 봐도 자르트와 닮았는데 단순히 오늘의 인연에 앞선 우연한 꿈이었던가, 지수는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어찌된 일인지 영문을 알아내기 위해서라도 계속 만나볼 거다.

 

 집이 가깝다는 말에 집 앞까지 데려다 주겠다며 나서는 재민을 극구 말려봤지만 막무가내였다. 많이는 아니어도 술까지 한 잔 했는데 여자를 혼자 보낼 수 없다며 택시로 바래다주었다. 지수가 저 불 꺼진 집이 자기 집이라며 알려주자, 올라가서 불 켜지는 것 보고 가겠다며 그녀를 올려 보냈다.

 

 집에 들어선 지수가 불을 켜고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 재민이 손을 흔들고 큰길가 쪽으로 걸어간다. 그 뒷모습을 보면서도 너무도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떨쳐낼 수 없다. 지수는 얼른 씻고 오늘 꿈속에도 자르트가 나타날지, 나타나면 어떻게 행동할지 궁금해 잠자리에 든다.

 

 

 *****

 

 

 “얼른 와요, 기다렸어요.”

 

 검은 머리, 검은 눈동자의 자르트가 지수를 반긴다. 다시 꿈속에서 만난 것도 이상하고, 재민과 똑같이 생긴 저 얼굴도 신기하다. 지수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혹시 낮에 나 만났어요?”

 “낮에 낮잠이라도 잤어요? 그럴 줄 알았으면 찾아갔을 텐데 몰랐네요.”

 “아니, 현실에서 나 안 만났어요? 낮에 자르트, 당신이랑 똑같이 생긴 사람을 만났어요. 진짜 똑같아요. 얼굴, 키, 목소리……. 아아악, 도대체 무슨 일이지?”

 “글쎄요, 그럼 우연히 닮은 사람일 수도 있죠. 그런데 그게 왜요?”

 “진짜 아니라고요? 믿을 수 없어. 이리 좀 와 봐요.”

 

 지수는 자르트의 얼굴을 가까이서 꼼꼼하게 뜯어보았다. 웃어보라고도 시키고, 어깨에 닿는 긴 머리를 하나로 묶듯이 잡아 올려놓고도 꼼꼼히 살펴보았다.

 

 “아무리 봐도 똑같아. 어떻게 이런 일이……. 절대 우연 같지 않은데 어쩌죠? 당신을 더 못 믿을 것 같아요.”

 “도대체 왜 그러는지 이유라도 말해 봐요.”

 “그게……. 오늘 소개팅을 했는데, 참, 소개팅이 뭔지는 알죠? 상대가 당신이랑 똑같이 생겼어요. 눈동자와 머리 색깔만 다르고, 다른 건 모두 다 똑같아요. 혹시 쌍둥이? 아니면 도, 도플갱어? 아닌데, 그럼 왜 당신은 꿈에서만 보이는 거죠?”

 “일단 진정해요. 그냥 우연히 닮은 사람 아닐까요? 난 당신이 잠들 시간을 기다렸다가 이렇게 꿈속으로 찾아왔잖아요.”

 “아니야, 아냐. 이건 진짜 꿈속이 맞나요? 당신은 진짜 외계에서 온 게 맞나요? 다 믿을 수 없어.”

 “송지수씨, 당신이 우리가 쓰는 피라스트의 문자를 해석해서 올린 글을 보고 피라스트와 리켄트를 대표해서 내가 왔어요. 첫날부터 말했는데 잊지 않았죠?”

 

 자르트가 냉장고 쪽으로 손을 휘젓자 냉장고 문이 열리더니 물병이 천천히 날아왔다. 저런 장면을 보면 꿈 속이 맞긴 한 것 같다. 자르트가 건네 준 물을 조금 마시고 심호흡을 했다.

 

 “그래요. 그냥 많이 닮아서 내가 착각한 거겠죠. 기묘한 일이지만 외계인이라 주장하는 당신을 꿈에서 만나고 난 뒤라 그 사람이 더 당신과 닮아 보였을 수도 있고요. 그래요, 그 얘긴 그만해요.”

 

 어차피 한 사람은 꿈속에서만, 다른 한 사람은 현실에서만 만날 거라면 사실 별 상관이 없는 것이 맞다. 지난 번 끝낸 교열 작업이 많이 어렵더니 스트레스성 환각일 수도 있고. 그냥 잊고 즐기자. 낮이나 밤이나 미남만 만나는 건데 아무래도 상관없다.

 

 

 *****

 

 

 

 점심을 같이 하자면 지수가 하연의 회사 앞으로 찾아왔다. 자유로운 분위기의 게임 회사라 그런지, 오랜만에 친구도 왔는데 야박하게 굴 수 없다며 대표님이 하연에게 두 시간의 자유 시간을 하사했다.

 

 “이 회사에 뼈를 묻겠나이다.”

 “웃기지 말고 맛있는 거 먹고 얘기도 하고 와.”

 “예썰! 우리 회사 최고야!”

 

 근처 뼈다귀 해장국으로 유명한 집에 두 아가씨가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다. 눈 밑이 퀭한 지수가 심각한 표정으로 젓가락을 들며 말한다.

 

 “넌 필연, 운명 이런 거 당연히 안 믿겠지.”

 “당연히 안 믿지. 그런 거 없다니까. 또 왜? 설마 김재민씨가 운명이라고 말하려고?”

 “아니, 그런 게 아니고. 그럼 도플갱어는 믿어?”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소리야? 도플갱어를 믿느니 차라리 우리 동네 엉터리 무당을 믿겠다.”

 “그치? 세상에 그런 게 어딨겠어. 그럼 우연은 믿어?”

 “우연이야 확률이 낮을 뿐, 실제로 일어날 수는 있지.”

 

 이모님이 가져다주신 펄펄 끓는 해장국에서 좋아하는 우거지부터 건져 먹는 지수. 반면 하연은 숟가락을 들고 연신 국물부터 떠먹는다.

 

 해장국 그릇에 얼굴을 처박듯 폭풍 흡입을 하던 두 아가씨가 계산을 하고 나가자 아저씨들이 신기한 듯 쳐다본다.

 

 “와, 그 아가씨 둘이 진짜 잘 먹네.”

 “그러게. 그릇 뚫어지는 줄 알았어. 허허.”

 

 지하의 해장국 집에서 나와 1층의 카페로 바로 올라갔다. 인테리어는 좀 오래됐고 촌스럽지만 커피 가격에 비해 맛은 아주 좋은 카페였다. 40대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주인인데 커피를 내릴 때엔 흡사 장인이 뼈를 깎아 뭔가를 만들어내는 듯한 진지한 표정이 되곤 했다.

 

 “그래서, 김재민씨랑은 잘 된 거야?”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뭐가 뭔지 모르겠다.”

 “왜, 다시 만나자고 했다며. 집에도 바래다주고. 뭐가 문젠데?”

 “도플갱어……. 음, 아냐. 하연, 너 오늘 퇴근하고 계획 있어?”

 “아니, 없는데.”

 “그럼, 퇴근하고 우리 오늘 불금을 좀 즐겨보자. 나 아무래도 스트레스가 너무 쌓였나 봐.”

 “나 퇴근할 때까지 너 뭐 하려고?”

 “새로 교열 들어갈 원고 가져왔어. 카페에서 읽으면서 기다릴게.”

 “그래라, 그럼. 근데 김재민씨 얘기나 더 해봐. 맘에 들어?”

 “맘에 들건 안 들건 일단 계속 만날 거야. 만나야만 해.”

 

 잘하면 옷 한 벌 얻어 입는 거냐며 하연은 벌써부터 설레발이다. 이 때 하연은 전혀 몰랐을 거다. 운명이라는 우주의 섭리가 이러고도 안 믿나 보자며 그녀를 향해 슬금슬금 마수를 뻗쳐오고 있었던 것을.

 

 

 *****

 

 

 “지구인은 아직도 인가?”

 “예, 꿈속으로 찾아간 것이 세 번인데, 아직도 믿는 것 같지 않습니다.”

 “다른 리켄트인을 뽑았어야 했나…….”

 

 데라토는 미심쩍다는 눈으로 자르트를 위아래로 훑었다. 분명 지구에서 미남형인데다가 신뢰를 주는 타입에 가장 매치한다고 시뮬레이션에 나와서 뽑은 건데…….

 

 “너무 서두르지 마십시오. 원래 사기꾼들은 화려한 언변으로 막 몰아쳐서 마음을 조급하게 하지 않습니까. 천천히, 편안하게 믿도록 해야지 서두르면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래, 자네의 그 사기꾼 아닌 듯한 말발에 넘어가서 한 표 던졌지. 이제 와서 믿어봐야지 어쩌겠어. 기다려보자.”

 “리켄트의 부모님들께 안부나 전해주십시오.”

 “그래, 그럼 계속 수고하게나. 자네 어깨에 모든 게 달렸다는 것 잊지 말고.”

 

 

 *****

 

 

 카페에 앉아 번역된 일본 추리소설을 읽다 보니 시간가는 줄 몰랐다. 꽤 재미있고 반전이 기가 막힐 정도로 훌륭했다. 많이 알려지지 않은 작가인데 일본에서 이번 작품이 히트했다더니, 이 소설이 그 히트했다던 작품인가보다.

 

 문득 현준 선배 생각을 며칠이 지나도록 한 번도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났다. 희한한 일이었다. 김재민씨 때문인가? 아니면 자르트? 이상하게도 시원섭섭한 기분이다. 핸드폰을 꺼내 현준 선배에게 깨톡을 날렸다.

 

 [이번 교열 재미있겠어요. 소설 내용도 재미있고, 번역도 너무 일본스럽지 않게 깔끔하게 잘 하신 것 같아요. 솔직히 말해 봐요, 선배. 그 분한테 관심 있죠?]

 

 마지막 문장을 입력하면서 씁쓸한 미소가 떠올랐다. 나의 첫사랑, 오랜 짝사랑. 내 인생의 가장 찬란하던 시절 내 맘 속을 지켜주던 사람. 그래, 어차피 이렇게 될 거였잖아. 다 털어버리고 새 출발 하는 거야.

 

 [티 많이 났어? 사실 오늘 고백하려고. 여자들은 어떤 고백을 좋아하니? 이럴 때 너처럼 믿음직스런 여자 후배가 있어서 다행이다.]

 

 믿음직스런 여자 후배라는 대목에서 저도 모르게 이를 빠직, 하고 갈아버린 지수. 하지만 곧 체념했다. 역시 먼저 고백하지 않길 잘했어.

 

 [너무 요란하지 않게요, 주변 사람들이 다 쳐다보도록 요란하면 안돼요. 거절하려고 해도 난처하고, 받아들이더라도 쪽팔리거든요. 로맨스 소설에서 읽었어요.]

 [그냥 평범하고 조용하고 소소하게? 꽃다발 같은 건 어때?]

 [꽃도 과하면 안돼요. 작고 예쁜 파스텔 톤으로 하세요. 빨간 장미 백송이, 이런 건 안돼요.]

 [참고할게. 고맙다, 내 사랑하는 후배야!]

 [네네, 잘 해보세요. 저도 소개팅해서 애프터 받았으니 나중에 더블데이트라도 한 번?]

 [콜. 드디어 너도! 잘 되길 바란다. 그럼 나중에 보고할게.]

 

 깨톡을 마치기에 가장 좋은 적당한 이모티콘을 하나 날리고 핸드폰을 테이블에 내려놨다. 이렇게 첫사랑을 떠나보냈다. 서운하면서도 기분은 개운했다. 진작 끝낼걸.

 

 김재민씨랑 잘해봐야겠다. 내 첫사랑 훈남 현준 선배여, 안녕. 난 더 잘생긴 김재민씨한테 갈게요. 지수가 다 식은 아메리카노를 한 입에 털어 넣고 씁쓸함을 삼킬 때, 하연이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빨리 퇴근했네. 역시 대표님의 배려?”

 “응, 대표님 짱이지. 학교 다니면서 못 볼 꼴 다 봐서 그렇지, 사실 되게 괜찮은 선배인데.”

 “아서라. 대표님이 아깝다.”

 “푸하하. 나도 사심 없거든. 못 볼 꼴 안 봤으면 친구들 소개라도 할 텐데, 다 봐버려서 소개도 못해줬더니 삼십 대 중반에도 아직 솔로잖아. 그게 안타까워 그렇지.”

 “어디 갈까? 인디밴드 공연한다는 거기?”

 “좋지. 보컬 새로 왔대. 꽃미남이라던데?”

 “남자한테 관심도 없으면서 꽃미남 타령은. 가자.”

 

 

 *****

 

 

 그녀가 잠들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꿈속에 들어오질 않는다. 잠에 들지 못하고 뒤척이는 건가 싶어 계속 기다려봤지만 만날 수 없었다.

 

 겨우 몇 번 만나지도 않은 사이였지만 왜 꿈속에 들어오지 않는지 자르트는 걱정이 됐다.

 

 ‘지구에서 밤에 돌아다니면 위험할 수도 있는데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겠지?’

 ‘매일 밤 규칙적으로 수면을 취하라고 했는데, 약속을 잊었나?’

 ‘아니면 이 캡슐에 문제가 있어서 접촉이 안 되는 건가?’

 

 자르트는 캡슐을 벗어나 확인해봤지만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자꾸만 그녀에게 안 좋은 일이 일어났을까 봐 신경이 쓰였다. 지구의 문화를 익히기 위해 많은 영화, 드라마, 소설을 섭렵했다. 그 중에서도 왜 지금 생각나는 키워드는 납치, 살인, 강간, 사체유기 이런 것들뿐인 거야.

 

 자르트는 동 틀 무렵까지 기다리다가 캡슐 작동을 해제했다. 걱정과 아쉬움을 접고, 오늘은 접촉하지 못했다는 기록을 작성했다.

 

 

 *****

 

 

 새로 왔다는 보컬은 정말 꽃미남이었다. 왜 저런 얼굴에 가죽바지를 입고 괴성을 질러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잘난 얼굴이긴 했다.

 

 주먹만 한 얼굴에 귀공자 타입의 순한 인상인데다 록커로서는 결점일 수도 있을 정도로 착해 보였다. 그걸 감추려 스모키 화장을 짙게 하거나 피어싱으로 기괴한 액세서리를 주렁주렁 달았다면 오히려 더 어울리지 않았을 테다.

 

 순딩순딩해 보이는 꽃미남의 영입 때문인지 원래 이 밴드가 꽤 잘나가는 밴드인 건지, 이 작은 공간은 미어터질 만큼 많은 관객, 그것도 거의 여자들로 꽉 차 있었다.

 

 보컬이 새로 합류한지 얼마 안 됐다고 들었는데 나름 궁합이 잘 맞나 보다. 열광적으로 몇 곡을 뽑아내고는 잠시 후 다시 오겠다며 공연이 일단락됐다. 관객들은 이젠 비교적 조용한 록 발라드 곡을 배경으로, 같이 온 친구나 지인들과의 수다 삼매경에 빠졌다.

 

 “진짜 잘 생겼네. 여기 온 사람들 거의 다 여자야, 봐봐.”

 “……”

 

 이상하게 하연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말이 없다. 괜히 머리를 계속 쓸어 넘기고 체크무늬 남방 단추를 풀었다, 잠갔다 하며 한숨만 내쉰다.

 

 “왜, 답답해? 아니면 너무 시끄럽나? 나갈까?”

 “아, 아냐. 공연 좋은데, 뭘. 맥주나 한 잔 더 마셔야겠다.”

 

 하연은 손을 들어 맥주를 한 병 더 주문했다. 알코올 섭취 때문인가, 얼굴이 벌건 하연이 손부채질까지 하다니, 이런 장면은 길이 보전해야 한다며 지수가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러고 보니, 너 원래 주당이잖아. 소주 몇 병은 거뜬하더니 늙었냐? 맥주 몇 병에 얼굴이 벌개?”

 “그, 그런가? 왜 이리 덥지? 후.”

 “저, 실례합니다. 잠깐만 얘기 좀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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