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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황혼에서 여명까지
작가 : 암달구
작품등록일 : 2016.8.15

(제목 변경합니다)
저주받은 꼬마 스케빈져 성장물.판타지.로맨스

 
돗가비와 꼬마 스케빈져
작성일 : 16-08-15 14:22     조회 : 319     추천 : 0     분량 : 7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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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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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차례 돌풍이 불어닥치고 바람이 날숨과 들숨을 토해내자 살아남은 새싹이 머리를 내민다.

 

 꼬마 스케빈져는 조금 길어진 다리만큼 발이 빨라졌고 눈빛은 깊고 예리해졌다. 눈에 익은 것들을 빠르게 가로지르면 특유의 퀴퀴한 냄새가 난다. 땅바닥 위로 툭 불거진 나무뿌리를 밟고 두 팔을 편 것보다 굵은 나무 위로 올라가자 낙인촌이 한눈에 보인다.

 

 꼬마 스케빈져는 아릿한 통증에 발가락을 들었다. 발톱 사이에 가시가 박혀있다. 발가락을 빨자 아래에서 은밀한 기척이 느껴졌다.

 

 "좋아. 아무도 없어."

 

 그리드를 선두로 세 명이 발뒤꿈치를 들고 따라왔다.

 

 가지 말라고 하면 더 가고 싶은 게 사람의 심리. 울타리 너머는 그야말로 미지의 세상, 어른들의 세계.

 두려움과 설렘은 한 끗 차이인지라, 마른 천에 물기가 스며드는 것처럼 모험이란 이름이 주는 쾌감은 다디달았다. 처음에는.

 

 "이제 우린 어린아이가 아니야. 레드존을 벗어나면 뭐가 있는지 이 두 눈과 귀로 보고 듣고 오겠어."

 

 낙인촌에서부터 겨우 일각을 걸어왔을 뿐인데 공기마저 다른 세상처럼 느껴졌다.

 

 그리드가 어깨에 걸친 낡고 구멍 난 보라색 망토를 의도적으로 펄럭였다. 우리들의 앞날엔 빛나는 꿈과 밝은 미래가 있으니 갖은 고난과 역경을 딛고 이겨내리라. 시작도 전에 사자도 때려잡을 것처럼 패기가 넘쳤다.

 

 "응. 대장."

 

 러스트의 뺨이 복사꽃 빛으로 물들었다.

 

 "잠깐, 언제부터 그리드가 대장이 된 거야? 나도 대장 할래."

 

 "어제 작전 중에 네가 간식을 먹어야 한다고 가버린 후 가위바위보를 했다. 뚱보야."

 

 프라이드가 불친절하게 말하자 앤비가 볼을 불룩거렸다.

 

 "아니야! 난 아주 조금 통통한 거라고 엄마가 그랬어! 밥 잘 먹는 게 예쁘다고 했단 말이야!"

 

 “그래. 너무 잘 먹어서 탈이지.”

 

 프라이드가 비웃었다.

 

 "쉬- 조용히 해."

 

 홍일점 러스트는 불안한지 연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야심 차게 마을을 떠난 지 반나절이 지났다. 시간이 흐를수록 늪에 빠진 것처럼 다리가 무겁고 산불처럼 타오르던 열정이 작은 불씨로 사그라든다. 걸어도 걸어도 이 나무가 저 나무요. 이 길이 저 길이고. 갈증은 나고 몸은 쳐진다.

 

 앤비의 발이 바닥에 붙은 듯 걸음을 멈췄다.

 

 "왜 그래 앤비?"

 

 앤비가 그리드를 향해 머뭇거리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가 보고 싶어. 집에 갈래. 집에 가자 그리드. 나 배고파."

 

 "어린애 같은 소리 말아 앤비! 여기까지 와서 아무런 성과 없이 돌아갈 순 없어! 우린 식량을 아껴야 해. 밥은 내일까지만 참자."

 

 "하지마안 난 어린애란 말이야아."

 

 러스트가 찡찡거리는 앤비의 등을 다독였다.

 

 '길을 잃은 것 같아.'

 

 그리드는 뒷말을 꾹 삼켰다. 두 어깨가 무겁다. 이미 한 참 전에 낙인촌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방향을 틀었다.

 

 내가 동요하면 친구들까지 당황할 거야. 그리드는 애써 자위했으나 망토에 땀 자국이 흥건했다. 정신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한계에 다다랐다.

 

 "꺄아악!"

 

 러스트의 비명에 남자아이들의 몸이 긴장으로 굳었다. 러스트가 안보였다. 그리드는 집에서 훔쳐온 철검을 빼 들었다. 이가 듬성듬성 빠졌지만 없는 것보다야 마음이 놓였다. 프라이드와 앤비도 석궁과 푸줏간에서 훔쳐온 식칼을 쥐었다.

 

 "꺄아- 꺄- 꺄하하-."

 

 혓바닥 여러 개를 붙인 모양의 거대한 꽃받침 안에 러스트가 스프링처럼 튀어 올랐다.

 

 "나도 하고 싶어."

 

 앤비가 벌집 모양의 구멍 위로 뛰어들어가 러스트처럼 튀어 올랐다.

 

 그리드는 김이 빠져 철검을 칼집에 꽂고 양손을 허리춤에 걸쳤다.

 

 "우린 놀러 온 게 아니야!"

 

 "호오. 정말 혐오스럽게 생긴 식물이야. 저런 건 백과사전에서도 보지 못했어. 그보다 그리드?"

 

 프라이드가 수첩에 식물의 특징을 묘사했다. 긴장이 풀렸는지 가부좌한 채 턱을 괸 그리드가 성의 없이 말했다.

 

 "뭐."

 

 "무슨 냄새 나지 않아? 익숙한… 아! 위위타 아줌마의 냄새야!”

 

 “이곳에 위위타 아줌마가 있을 리가 없잖아.”

 

 “잘 봐 고기 비린내가 나잖아. 어? 저 꽃받침 모양이 바뀐 것 같지 않아?"

 

 "그럴 리가 없잖아. 저건 꽃이라고. 조금 큰 꽃일 뿐이야."

 

 "처음 보는 꽃이지. 약초인지 독초인지 눈으로 봐선 모르는 거야."

 

 그리드는 프라이드의 말을 건성으로 들으며 옆으로 팔을 괴고 누웠다. 러스트와 앤비가 세상 물정 모르게 놀고 있는 곳을 바라봤다.

 

 ‘속 편한 녀석들.”

 

 섬뜩한 전율이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그리드는 황급히 일어섰다.

 

 늘어져 있던 꽃받침이 서서히 오므라들고 있었다.

 

 "러스트! 앤비! 당장 빠져나와!!"

 

 그리드와 프라이드가 달려왔을 때 꽃받침은 간격 없이 닫혀있었다.

 

 그리드는 날도 서지 않은 철검으로 꽃받침을 찌르고 두드렸지만, 흠집만 났다.

 

 "내 친구들을 돌려줘 이 괴물 같으니! 도와줘 프라이드!… 프라이드?"

 

 프라이드가 물어뜯은 손톱에서 피가 났다.

 

 "비상행동지침 어디에서 이런 내용은 나오지 않았는데. 우, 우린 죽을 거야."

 

 겁에 질린 프라이드가 석궁의 방아쇠를 당겼고 식물의 몸통에 화살이 꽂혔다. 지면이 진동하더니 손목보다 굵은 덩굴이 튀어나와 뱀처럼 살아 움직였다. 좌우로 한번 휘젓자 무방비 상태의 그리드와 프라이드가 공중에 붕 떴다. 그대로 바닥을 구른 두 사람은 나무에 부딪히고서 멈췄다.

 

 프라이드는 눈이 뒤집고 혼절했다. 그리드는 이를 악물고 일어섰다. 그리드가 곡선을 그리며 다가오는 덩굴에 철검을 찍어 내렸다.

 

 한순간 움직임이 멎은 덩굴이 꿀렁임을 꽃받침까지 전달하더니 사납게 날아와 그리드의 몸을 감싸 올렸다. 소름 끼치는 고통에 숨이 넘어가려는 찰나 덩굴이 느슨해지더니 끈 떨어진 인형처럼 떨어졌다.

 

 곤두박질친 그리드는 흙먼지 속에서 힘겹게 눈을 떴다. 거대한 등이 보였다. 아니, 다시 보니 작고 가냘픈 등이다.

 

 “너…는!?”

 

 꼬마 스케빈져가 물어뜯은 덩굴을 입에 물고 있었다. 덩굴을 퉤 뱉고 남은 덩굴을 향해 달려든다.

 꼬마 스케빈져의 몸은 만신창이였다.

 

 “그만해… 그러다 죽어… 네가, 왜!”

 

 덩굴이 지나간 땅이 움푹 팬다. 눈 뜨고 보기 처참했다. 꼬마 스케빈져는 지독하게 다시 일어났다. 덩굴이 무릎을 후들거리는 꼬마 스케빈져의 머리 위로 치솟았다.

 

 다음에 벌어질 끔찍한 광경에 그리드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때, 어디선가 쐐기처럼 날아온 화살이 덩굴을 바닥에 내리꽂았다. 연사로 날아온 화살에 덩굴이 모두 땅에 박히자 들썩거리며 부풀어 올랐다.

 

 활대를 어깨에 건 채 걸어 나온 남자는 마무리로 닫힌 꽃받침을 갈라 수액에 뒤덮인 러스트와 앤비를 양손에 들쳐멨다.

 

 "존 아저씨!?"

 

 그리드는 구세주를 만난 것처럼 온몸에 힘이 빠져 주저앉았다.

 

 "집으로 돌아가자. 부모님들이 기다리고 계신단다. 저 아이 업을 수 있겠니?"

 

 그리드가 눈물 콧물 범벅으로 일어섰다. 울음을 참아보지만,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멈추지 않는다. 프라이드를 업자 갈비뼈가 욱신거렸다.

 

 존의 보폭은 짧고 느렸다. 그는 그리드가 뒤처지면 기다렸다. 그리드는 뒤에서 망가진 다리가 바닥을 끄는 소리에 귀 기울여 보폭을 조절했다.

 

 등에 업힌 프라이드보다, 괴물 꽃의 뱃속에서 죽다 살아난 러스트와 앤비보다, 저 소리가 신경이 쓰여 그리드의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저것은 흉악하고 위험한 돗가비다.

 

 그리드는 물끄러미 존의 굳게 닫은 턱을 올려다봤다. 눈이 마주치자 존의 눈이 반달로 접힌다.

 

 그리드의 뱃속에서 꺼져가던 불씨가 되살아났다.

 

  * * *

 

 "이런… 또 왔다 갔군."

 

 존은 지저분하게 튄 핏자국과 부러진 비늘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조악한 오두막 앞에는 입을 쩍 벌린 주먹만 한 어류의 사체가 놓여있었다.

 

 존은 과일을 한 입 베어 물고 씨를 손바닥에 뱉었다. 씨앗을 튕겨 숲 어귀로 던졌다.

 

 "쥐새끼처럼 훔쳐보지 말고 나와라. 숨어 있는 녀석이 있으면 죽여버리고 싶어지니까.”

 

 수풀이 갈라지며 꼬마 스케빈져가 깨진 궤짝을 바닥에 내려놨다. 손. 아니, 앞발로 궤짝을 두드린다.

 

 “보은… 같은 건가.”

 

 존은 궤짝을 집어 들었다. 위험하다. 심장을 간지럽히는 기분. 저 꼬마와 자신 사이에 질긴 유착이 생겼다. 겁을 줘 쫓아내 볼까. 위협을 하고, 무시하면 정이 떨어질까.

 

 “내가 미친 짓을 했군."

 

 이 나이 먹고 깨달은 게 있다면 책임지지 못할 짓은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는 것. 존은 벌목한 듯 까슬 거리는 머리카락을 손바닥으로 거칠게 비볐다.

 

 그날은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천재지변이라도 내리는 것처럼. 존은 등 뒤에서 식어가는 체온을 느끼며 간절히 기도했다.

 

 ‘살아!’

 

 사고뭉치 4인방의 야심만만 모험극은 하루 만에 종결됐다. 아이들은 분노한 스캇의 불호령에 눈물이 쏙 빠지게 혼쭐이 났고, 부모님과 즐거운 면담시간을 가졌다. 존은 마을 사람들과 작별 후 제자리에 멈춰 하늘을 바라봤다.

 

 비가 오려는지 먹구름이 무겁게 걸려있다. 죽음의 땅에서 약하면 도태되고 아프면 사형선고를 받는 것만큼이나 위험하다. 비정해야 살아남는 약육강식의 세계다.

 

 "아오- 진짜!"

 

 존은 같은 곳을 맴돌더니 발길을 돌렸다. 한 발 두 발 걷던 걸음이 빨라지더니 달음박질이 되었다.

 

 존은 숨을 고르며 작은 생명체 앞에 도착했다.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꼬마 스케빈져 위로 한줄기 빗방울이 떨어진다. 존은 꼬마 스케빈져를 심장 가까이 끌어당겼다. 심장 소리가 미약하게 들린다. 조금씩 생명이 꺼져가는 소리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저주받은 돗가비라고!? 이 겁쟁이 낙인촌 어른 놈팡이들아!"

 

 너무 작고 가벼워서 건드리면 부서져 버릴 것 같다. 눈물처럼 흘러내리는 빗줄기가 온몸을 적신다.

 

 흙이 유실되고 썩은 수목은 부러졌다. 지형이 낮은 곳은 침수되고 물바다가 돼서야 날이 개었다. 물기 먹은 숲이 스며든 빗물에 활기를 찾을 무렵.

 

 온몸을 두들겨 맞는 통증을 느끼며 꼬마 스케빈져가 눈을 떴다.

 

 "하아- 하아-"

 

 뜨겁게 달아오른 몸에서 뜨거운 숨결이 토해진다. 젖은 나무 냄새, 풀냄새, 흙냄새, 그리고 체취. 급하게 몸을 일으킨 꼬마 스케빈져는 어지러운 기운에 다시 쓰러졌다. 이마에 올려진 물수건이 떨어졌다. 온몸이 불덩이였다.

 

 “더 자렴. 죽다 살아났으니 기력이 많이 쇠했을 거다.”

 

 꼬마 스케빈져는 모퉁이에 등을 대고 날을 바짝 세웠다.

 

 존은 아랑곳하지 않고 꼬마 스케빈져의 앞에 주저앉아 묽은 액체를 상처 난 곳에 펴 발랐다.

 

 "끄-응?"

 

 시원하고 화끈거리는 생경한 감각에 젖은 몸을 터는 것처럼 부르르 떨었다. 꼬마 스케빈져는 몸에 발라진 즙을 핥았다. 고약한 맛인지 괴상한 표정을 짓더니 혀를 입 밖으로 내밀었다.

 

 "알로에는 그렇게 먹는 게 아니야. 얌전히 있으렴."

 

 존은 나무그릇에 담긴 액체를 싹싹 긁어 꼬마 스케빈져의 콧등에 찍었다. 꼬마 스케빈져는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미끄러지는 점액질을 핥고 또 묘한 표정을 짓는다.

 

 "맛이 없는 걸 왜 자꾸 먹는지 모르겠구나. 배가 고픈 거냐?"

 

 꼬마 스케빈져의 까만 눈동자에 초췌한 남자의 얼굴이 비쳤다. 존은 반원기둥 모양의 잎을 들어 꼬마 스케빈져의 눈앞에서 흔들었다.

 

 "이건 알로에야. 아픈 걸 낫게 해줄 거야."

 

 단도로 두꺼운 잎 가장자리의 가시를 자르고 잎을 자르자 촉촉한 속살이 나온다.

 

 "즙은 상처 치료에 탁월하지만, 쓴맛이 나지. 그래서 꿀과 레몬즙, 사과를 넣고 빻을 거란다."

 

 절구에 재료를 넣고 방망이로 다졌다. 즙이 터지고 섞이며 달짝지근한 냄새가 나자 꼬마 스케빈져가 코 평수를 벌름거렸다.

 

 존이 둥근 잎의 끝을 깔때기 모양으로 말아 가는 쪽을 손가락으로 잡고 그 안에 다진 반죽을 부었다.

 

 "몇 살이지? 이름은?"

 

 존은 순식간에 잎까지 통째로 씹어먹고 입맛을 다시는 꼬마 스케빈져에게 남은 반죽을 내밀었다.

 

 "카카."

 

 도저히 인간의 언어라고 볼 수 없는 말. 날 것 그대로의 반응. 적어도 지금은 기분이 좋아 보였다.

 

 존은 마른세수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생명을 죽음에서 건져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고민이 많아져서 그런가? 요즘 유난히 머리가 지끈거린다. 그는 견딜 수 없는 수마에 빠졌다.

 

 * * *

 

 [이 매국노!!]

 

 [인간의 탈을 쓴 악마!!]

 

 존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잠에서 깨어났다. 말린 약초 냄새가 나는 오두막 안에는 깊은 적막감이 가득했다. 귀에서 이명 소리가 들린다.

 

 눈꺼풀이 뻑뻑한 걸 보니 몇 시간 자지 못한 것 같다. 잠은 오지 않았다. 존은 겉옷을 걸치고 손을 뻗은 채 문 앞에서 멈췄다. 손끝으로 물방울을 건드리듯 문을 밀자 새벽의 공기가 폐부로 밀려든다. 그는 습관처럼 발밑을 내려다봤다.

 

 그는 가볍게 땅을 박차고 지붕 위로 올라갔다. 울퉁불퉁한 지붕에 몸을 뉘인 채 하늘을 바라봤다. 눈을 감지 않고 한참을 바라보면 찰나에 반투명한 장벽에 흐르는 전류가 보인다.

 

 저 벽 너머에는 다른 세상이 있다. 이 땅에서 나고 자란 인간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무지렁이들은 꿈도 못 꿀 낙원이 있다.

 

 하지만 모르는 게 약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어리석은지라. 했던 실수를 반복하고, 정답을 알면서도 기대하고. 모든 걸 잊고 나서야 깨닫는다.

 

 한 번 지나간 시간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후회도 미련도 없이 살아야 한다.

 

 비록 화려한 명예와 권력은 없으나 그는 지금의 안락하고 조용한 삶에 만족했다. 그는 너무 지쳤다. 멍하니 생각에 잠겨있는데 날갯짓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얼마나 큰지 따귀를 힘껏 때릴 때 나는 소리와 비슷했다. 존은 지붕 아래를 내려다봤다.

 

 그 꼬마다.

 

 품에 제 덩치만 한 새를 안고 걸어오고 있었다. 양 볼이 잔뜩 부푼 것이 새의 머리를 입안에 머금고 있는 게 분명하다. 몸통과 날개, 다리만 보이는 새가 죽을 힘을 다해 몸부림쳤고 날갯죽지와 깃털이 꼬마 스케빈져의 얼굴에 생채기를 남겼다. 존은 멀거니 꼬마 스케빈져의 동태를 지켜봤다.

 

 꼬마 스케빈져는 뾰족한 깃털이 눈을 찌르자 턱에 힘을 줬다. 꽁꽁 언 호수에 돌을 던졌을 때와 같은 소리가 나자 입가로 선혈이 흘러내렸다. 존은 건초를 씹는 듯한 꼬마 스케빈져의 천연덕스러운 표정에 혀를 찰 뻔했다.

 

 지붕 밑에서 꼬마 스케빈져가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존은 지붕에 엎드린 채 고개를 아래로 내밀었다. 낡은 지붕에서 삐거덕 소리가 나자 꼬마 스케빈져가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올려다봤다.

 

 존과 눈이 마주치자 꼬마 스케빈져는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뒷걸음질 쳤다.

 

 존은 머쓱하게 뒷머리를 긁적이며 지붕 아래로 뛰어내렸다.

 

 "놀라게 할 생각은 없었다."

 

 존의 직시하는 시선에 돗가비도 눈을 피하지 않았다. 존은 문 앞의, 머리에 이 자국이 난 새를 외면했다.

 

 "밥… 먹고 갈래?”

 

 존이 오두막의 문을 열었다. 그가 먼저 들어가자 조심스럽게 꼬마 스케빈져가 들어왔다. 꼬마 스케빈져는 존이 건넨 가죽 주머니에 든 양젖을 빨아 먹었다. 존은 복잡미묘한 얼굴로 알로에 조각을 꼬마 스케빈져의 생채기 난 볼에 붙였다. 다행히 도망가진 않았다.

 

 "이것들은 어디서 가져오는 거냐?"

 

 창고로 변해버린 집에는 각종 쓰레기가 쌓여있었는데 그중 검은 육신의 살의가 풍기는 길쭉한 쇳덩어리를 곁눈질했다. 겹겹이 쌓인 쇳덩어리는 짙은 암흑처럼 기기한 흉기가 어렸다.

 

 그건 존의 역린을 건드렸다. 두통이 재발하자 존의 이마에 핏줄이 튀어나왔다.

 

 “어디서 온 거냐. 누가 이걸 너한테 준거야?”

 

 꼬마 스케빈져가 존의 이마에 알로에 조각을 붙였다.

 

 “뭐, 뭐하는 거야?”

 

 꼬마 스케빈져가 조각을 붙인 부위에 호 바람을 불었다.

 

 “내가 해준 걸 기억하는구나.”

 

 존은 꼬마 스케빈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꼬마 스케빈져가 갸릉갸릉 하는 소리를 내며 눈을 감았다.

 

 “집이 어디니?”

 

 꼬마 스케빈져는 두꺼비처럼 두 눈을 끔뻑거리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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