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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소희유희
작가 : 미루하
작품등록일 : 2017.6.24

완벽쟁이 까탈스러운 상사/덜렁거리는 평범한 여직원 부하/
둘이 함께 이계 이동하는 로맨스판타지.

 
그 남자의 사정
작성일 : 17-07-12 11:30     조회 : 298     추천 : 1     분량 : 5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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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이 들지 않는 동굴 안에는 자그마한 빛의 구가 송송이 천장에 박혀 어슴푸레한 빛을 뿌리고 있다. 높은 천장은 오피스텔 3층 높이는 될 듯 싶다. 수도 역할을 하는 물줄기가 패인 벽을 타고 흘러서 바깥을 향한다. 차가운 공기에 손끝이 싸늘해지나, 이 정도는 중요하지 않다. 박진우는 심호흡을 하고 다시 가부좌를 했다. 저려오던 다리를 주무르자 좀 나았다.

 

 그는 이곳에 홀로 있었으나 혼자가 아니었다.

 

 눈을 감으면 영상이 떠오른다. 차라리 DVD나 블루레이였으면 2배속 재생이라도 할 텐데 그건 안 됐다. 이건 누군가의 <기억>이다. 일 년, 이 년, 삼 년, 삼십 년, 오십 년, 백 년. 누군가의 삶이다. 그는 어딘지 모를 시골 동네의 소년이 되어 열 살이 되어 굶어 죽었다. 마법사의 제자로 들어가 스승보다 더 뛰어난 재능을 보여 십대 후반에 독살당했다. 열여섯 번째 왕자로 태어나 그럭저러 잘 사나 싶었는데, 큰형이 반역죄를 씌워 이십대 후반에 사형당했다.

 

 그는 냉정하게 상황을 평가했다. 일련의 삶에 공통되는 점은 단 하나, 그들이 <왕국>의 국민이라는 점이었다. 왕에 대한 복수를 원하는가? 복수를 해서 뭐하지? 그는 실용적인 성격이었다. 권력자와 척을 지고 싶은 생각이 없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미 소년을 죽였던 자도 제자를 죽인 스승도 동생을 죽인 형도 다 죽어버린지 오래일게 아닌가.

 

 얻은 것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산골 소년답게 먹을 수 있는 풀과 독초를 구분할 수 있을 자신이 생겼다.

 왕족다운 예절로 귀족의 식탁에서 식사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테이블 매너는 소소한 점이 달랐으나 서양식 예절과 그리 다르지도 않았다. 몇 가지 순서만 구분하면 충분하다. 창과 칼, 활을 다룰 수 있다.

 

 본래 지식을 얻는 것과 사용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학교에 나란히 앉아 같은 수업을 들었던 같은 반 아이들이 모두 같은 성적을 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어떤 것을 배우는 것과 그것을 이해하는 것, 그리고 실제로 응용해서 사용하는 건 아예 다른 차원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는 마치 죽은 자들의 일부였던 것처럼 삶에 빙의해서 지식을 훔쳤다.

 

 그가 원했던 '힘'은 '지식'이었다. 현재 상황에 대한 지식, 소희에 대한 지식, 자신의 능력과 한계에 대한 지식.

 

 세번째에는 자신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체력이 어느 정도인지 명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 맞추어 오버타임 스케쥴을 계획했고 결코 체력 이상으로 무리하지 않았다. 한 시간 동안 읽을 수 있는 책의 양을 알고 있었기에 업무상 필요한 독서 계획을 짤 때도, 책을 구입할 때도 일 년치를 미리 계획해서 달마다 다섯 권씩 도착하게 주문해 두었다. 승진을 위해 필요한 학위와 능력을 위해서 주말까지 꽉꽉 채워서 공부를 하고 강의를 독파했다.

 

 두번째는 이제 정보를 수집하는 단계였다. 그러니까 본래대로라면 부동산 투자계획서를 미리 계획하며 주변을 돌아보아야 할 시간에, 전철에서 내리는 낯익은 모습을 발견하고 그대로 따라갔던 것이다. 어두운 골목길로 접어드는 그녀를 지켜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따라간 것이었는데,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지하에 있는 민속주점으로 내려갔다. 그는 본래 용건대로 옆에 있던 부동산을 방문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신경이 쓰여 다시 그 민속주점을 향했다.

 

 그리고 이렇게 되었지.

 

 그는 한 점 후회도 하지 않았다. 그녀를 혼자 보내느니 따라 오는 것이 나았다. 말짱히 회사다니며 실종된 그녀가 어떻게 되었을지 불안해 할 자신을 상상해 보면 끔찍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던, 아직 젊은 자신이 그리웠다. 순진하고 솔직하고, 완벽주의적인 강박에 휩싸여 단순하게 살던 자신은 이제 없다. 그는 그 자신의 짦은 인생 속에서 배신이라 할 만한 것을 겪어본 적이 없었다. 영화에서만 간접적으로 보았을 뿐이다.

 

 "그러니까, 말이지..."

 

 영화를 보듯 애써 객관화하려 했으나, 자신의 삶인 것처럼 그들을 겪고 나니 남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진우는 자신의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깨끗하고 고운 손은 누구와도 닮지 않았다.

 

 그가 겪은 소년들은 분명히 천재에 가까웠다. 아니, 천재였다. 시골 소년은 뛰어난 사냥 실력으로 두 가족을 먹여 살렸으며 마법사는 피를 토하며 산을 옮겼다. 왕자는 놀라울 정도로 자신의 몸을 잘 다루었다. 그는 뛰어난 검사였으며 창을 잘 썼고 활에도 능했다.

 

 그런데...

 

 그는 마법을 쓸 수 없었다.

 

 골프와도 같다. 골프 중계를 본다고 골프를 칠 수 있게 된다면 세상은 유능한 골프 선수로 넘쳐날 것이다. 스크린 골프장에서 연습을 수백번 수천번 한다면? 실제 골프장에 간다면 또 달라진다. 그는 마법사의 곁에서 <힘의 언어>를 함께 익혔으며 그 체험이 끝나면 꼭 마법을 써보리라 하고 벼르고 있었다.

 

 이 세계는 험난하다. 로마처럼 구획되고 개발된 도시와 개척민들이 살아가는 시골은 삶의 수준이 아예 다르다. 신분이 없는 자들이 시골에서 살아가면서 겪는 일은 비참하고 괴로우며 평균 수명은 30세가 안 된다. 빵굽기나 대장장이 같은 고급 기술은 피붙이에게만 전수하며, 귀족과 왕족을 구경할 일은 아예 없다.

 

 마법사나 학자 또한 가문 대대로 이어내려오는 직업이다. 다만 드물게 마법에 대한 재능이 있는 이들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경우에는 양자라는 형식으로 제자를 들인다. 마법사와 용병, 음유시인과 떠돌이 상인을 제외한 이들은 평생 자신이 살던 곳에 머문다. 옆 마을에 한 번도 가보지 않고 죽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귀족과 왕족의 삶은 다르다. 삶의 질은 현대보다 조금 떨어질 정도이나, 권력 투쟁이 치열하여 살아남기가 힘들다. 오히려 귀족이라면 좀 나을지도 모르겠는데, 애매하게 능력이 있는 서열 낮은 왕자라면 어린 시절 죽기 딱 좋다. 20대 때까지 살아남았던 것이 용할 정도다. 차라리 공주였다면 먼 나라에 시집을 갔을 텐데, 운이 나빴다. 오히려 시골 소년이 더 편했다고 생각할 정도로 삶에 제약이 많았다.

 

 박진우는 왕비에 대한 소문을 들었다. 시골 소년은 천국에서 내려온 왕비님이 제안했다는 <호구 조사>의 대상이 되었다. 마법사는 새로운 개념을 배웠다. 왕자는 왕비의 초상화를 보았다. 그녀는 명백한 동양인, 아마도 한국인이었다. 다행히 소희는 아니었다.

 

 그러니까 그는 소희를 구출해야 했다. 왕비가 되기 전에.

 

 그가 처음에 깨어났던 곳은 신의 탑이었으며 옮겨진 곳은 신전이었다. 분명 소희도 그곳에서 깨어났으리라. 아마 90% 이상, 소희는 왕궁에 있을 것이다.

 

 시간이 없었다. 그는 감옥에서 헛되이 시간을 보냈으며 여기서도 오랜 시간을 보냈다. 그뿐 아니라 힘이 없었다. 뛰어난 마법사로 초빙을 받아 왕궁에 들어가거나, 외국의 왕족인 척 가장하여 들어가거나. 핸드폰과 위성 네트워크가 없으니 그만큼 외국의 왕족으로 가장하는 것도 그리 어렵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초능력을 가진 영화 주인공들은 쉽게 쉽게 힘을 얻던데 왜 이 모양이냐.

 

 <지식>이 아니라 <힘>을 선택해야 했을까.

 

 아니다, 지금 이 환경과 세계에 대한 지식은 분명히 도움이 되었다. 이제 그는 이 나라의 말을 완벽하게 이해했으며 산골 소년의 말투도, 마법의 언어도, 고급스러운 상류 사회의 말투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다.

 

 그는 다시 가부좌를 하고 마음을 평안히 한 후 뚫어져라 벽을 노려보았다.

 불꽃은 나타나지 않았다.

 

 <빛이여>

 

 단시간에 체력을 기르고 검술을 익힐 수는 없다. 시간을 두고 체력을 쌓으며 근력을 만들며 훈련해야 한다. 지금 그에겐 그 '시간'이 부족했다. 반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마법사의 힘은 잘만 한다면 훨씬 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다.

 

 물론 평생동안 그 깨달음을 얻지 못하는 자도 있다.

 

 그는 다시 한 번 간절하게 벽을 노려보았다.

 

 <비이이이잋이여어어어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바스락하는 소리가 들렸다. 진우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퉁명스럽게 말했다.

 

 "안 산다."

 

 긴 그림자가 그늘져 진우의 시야를 가렸다. 매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남자가 다가왔다. 진우와 똑같은 얼굴을 한 남자가 기분나쁘게 웃었다. 가면보다 더 기분이 나쁘다. 하지만 진우는 기분나쁜 티를 내지 않았다. 동요하도록 만든 장치에 일일이 동요해줄 필요는 없다.

 

 "하루라도 빨리 그녀에게 가고 싶다며?"

 오해하고 있는 거야, 하고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 가면 짐만 된다."

 

 진우는 천천히 팔짱을 끼었다. 느긋하게 미소를 지으며, 인간이 아닌 자를 마주보며 거울같은 미소를 지어 주었다. 이놈이 나한테 뭔가 원하는 것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렇게 살갑게 다가올리가 없다.

 

 "내가 빨리 가지 않으면 네 목적에 도움이 되지 않나 보지?"

 

 손끝부터 갈라지던 날카로운 통증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지금 양손이 온전하고 양발이 말짱하다 해도 그때 그 경험은 평생 동안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그는 지금도 밤마다 악몽을 꾸었다. 하지만 더 끔찍한 것은 어둠 속에 그녀가 천천히 잠겨가던 것이다.

 

 지식은 아지 부족했다. 거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인간이 아닌 존재가 거래 댓가로 내민 지식은 그가 원하던 것이 아니었다.

 

 질문은 단순했다.

 

 왜 그녀는 여기에 끌려 왔는가?

 그는 여기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괴물은 다른 세상이 있는지도 몰랐다. 그렇다고 해서 어리석은 것은 아니었다. 토지 전문 경매꾼이 상가는 잘 모르는 것처럼 전문 분야가 달랐다. 이 괴물 새끼의 전문 분야는 ‘인간의 영혼에 새겨진 기억’ 이었다. 진우가 허락하지 않았기에 진우가 알고 있는 것들은 아직 알지 못했다.

 

 그녀가 끌려온 이유는 아마도 왕에게 정통성을 주기 위해서가 아닐까?

 

 진우의 물음에 괴물은 모른다고 대답했다. 왕자의 기억을 얻고 나서는 왜 괴물이 그렇게 대답했는지 알 수 있었다. 어쩌면 왕에게 비정통성을 주고 오히려 왕을 폐위하기 위한 구실일 수도 있다. 신이 주었다는 신탁도 사실인지 어떤지 알 수 없다. 단서가 너무 적었다.

 

 상대는 진우의 모양에서 다시 스르르, 비늘이 덮인 동물 모양으로 바뀌었다. 에일리언을 죽 잡아다가 머리를 납작하게 눌러 인간 형태로 만든 다음에 세워 놓으면 저렇게 되겠다. 그러고보니 아직 이름도 모른다. 직립 보행하는 도마뱀은 티라노 사우르스 외에는 본 적이 없는데 그것과도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말해라."

 

 진우는 다시 한 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 것도."

 

 네가 필요한 것을 먼저 주기 전에, 내가 먼저 말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거래의 기본을 상기하며 그는 다시 웃었다. 소희야, 기다려. 조금만 더 기다려. 아무 일 없이 돌아가자. 초조해지는 심장을 움켜쥐고 아무렇지 않은 척, 태연한 척 연기를 계속했다.

 

 혼인하지만 마라.

 그러면 넌 돌아갈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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