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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소희유희
작가 : 미루하
작품등록일 : 2017.6.24

완벽쟁이 까탈스러운 상사/덜렁거리는 평범한 여직원 부하/
둘이 함께 이계 이동하는 로맨스판타지.

 
왕국의 그녀
작성일 : 17-07-12 11:19     조회 : 274     추천 : 1     분량 : 5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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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국에 대한 책을 가져와."

 

 곧 제국의 사신이 온다. 그 전에 결혼하지 않으면 죽는다. 어제 들었던 말은 너무나 생생해서 잘못 들었을 리가 없다. 낯선 시녀가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왼손에 찬 시계를 어루만지며 소희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시녀는 금방 돌아오지 않았다. 푹신푹신한 방석이 깔린 의자에 앉아 부르기도 전에 갖다준 차를 마시며 소희는 손가락으로 탁자에 그림을 그렸다. 나, 팀장님, 왕, 제국.

 

 모나미 볼펜과 백지 한 장이 있으면 좋겠다.

 

 이 세계의 종이는 얇지 않았고 펜은 불편했다. 고풍스러운 잉크병에 깃털 펜촉을 찍어서 한 자 한 자 쓰다보면 펜촉을 부러뜨릴 것처럼 힘을 주게 된다. 사무실 책상에 꽂혀 있던 수많은 펜들이 그리워진다. 아니, 이 생각은 위험하다. 아침 출근길에 있던 편의점과 거기서 파는 오뎅하고 아이스크림, 사무실에서 화장실 가는 복도에 있던 정수기부터 그립지 않은 것이 없다. 오른손 엄지와 검지 사이에 잉크가 묻었다. 주변을 둘러봐도 싸구려 화장실 두루마리 휴지는 없다. 잠시 고민하다가 치맛자락 안쪽을 뒤집어 보드라운 천 안에 잉크를 슥슥 문대 버렸다.

 

 소희는 왼쪽 위- '나'에서 오른쪽 위 '팀장님'에게 화살표를 그렸다.

 

 '결혼할 테니 팀장님을 도로 살려내라고... 이건 안 되나.'

 

 자신의 생명이 댓가로 걸려 있는데 거기에 댓가를 하나 더 건다고 해서 그 뻣뻣한 왕놈이 말을 들어줄 리가 없다. 목에 칼을 대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는데 지금와서 순순히 협조한다고 해도 무슨 소용이 있나 싶다. 소희는 갑자기 사내 온라인 강좌 중 유난히 눈이 가던 프로그램이 무지하게 그리워졌다.

 

 '협상의 법칙...이었나.'

 

 필수 직무 교육이어서 꾸역꾸역 억지로 틀어놓고 스페이스와 엔터를 연타하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지금 틀어준다면 각잡고 앉아서 목차부터 필기할 자신이 있다. 그렇게 성실하게 들었다고 자랑할 사람도 없지만 말이다.

 

 왼쪽 아래 '왕'에서 왼쪽 위 '나'에게 다시 화살표를 그린다. 그리고 오른쪽 아래 '제국'에서 '왕'에게로 화살표를 그어 보았다. '제국'이 어떤 국가인지, 왕국과 어떤 관계인지조차 제대로 모른다. 어째서 자신이 죽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모르는 것 투성이라서 결론을 내릴 수 없다.

 

 "투자전략을 세우기 전 주변 시세 파악부터 우선...."

 

 부동산은 위치가 중요하다. 화장실이 2개인지 1개인지는 나중에 리모델링을 통해 변경할 수 있는 사항이지만, 위치는 절대로 바꿀 수 없다. 그러니까 물건 자체를 볼 때 주변 동네를 제대로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그 지역의 지금 시세만이 아니다. 여태까지 얼마만큼 가격이 올라왔는지, 떨어졌는지, 이 주변의 주택 보급율은 어떻게 되는지, 이 지역 인구의 평균 소득은 어떤지, 가구 수는 어떤지 - 가족이 많은지 싱글가구가 많은지. 시간과 공간을 아울러 정보를 파악해야 한다고 해서 우와 그거 낭만적이네요 하고 한 마디 했다가 꿀밤을 맞을 뻔했다.

 

 다가올 호재와 악재도 놓치면 안 된다고, 도시계획입안서와 개발계획서부터 시작해서 떠도는 소문까지 놓치면 안 된다고. 전부 팀장님이 가르쳐준 것들이다. 심지어 헛소문에도 의미를 두어야 한다고 했다. 이 지역 땅값이 오를 거라는, 근거 없는 소문이 돌고 있다면 그 소문이 어째서 났는지, 누군가 의도적으로 한 것인지 어떤지 알아야 한다고 하였다.

 

 팀장님은 정말로 죽었을까.

 

 소희는 눈을 깜빡였다. 팀장님이 죽었다는 말은 여러 번 들었다. 하지만 소희는 그 사실을 확인하지 못했다. 왜 죽었는지도 듣지 못했다. 정확히는 뭐라고 말을 해주었는데 이해하지 못했다. 시신을 확인하지도 못했다. 자신이 그에 대해서 언급할 때마다 공작은 불편해했고 왕은 화를 냈다. 왜 자신은 '신의 사도'취급을 받는데 팀장님은 그렇지 않지?

 

 '팀장님이 남자라서?'

 '머리가 짧아서?'

 

 소희는 왕과 결혼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여섯 살 어렸을 적 꼬마 시절에야 사실 자신이 어떤 먼 나라의 숨겨진 왕족이 아닐까하는 기대를 품고 동화책을 보곤 했다. 공주님들은 전부 금발이었다. 하지만 검은색 머리는 마법으로 물들여진 거니까 잘 감으면 금발이 튀어나오지 않을까 싶어 한 시간 넘게 머리를 감아본 적도 있다. 물론 그러다가 어머니에게 혼났지만.

 

 지금은 알고 있다. 책임과 의무가 따르는 자리다. 능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 높은 직위에 있으면 아랫사람만 고생하는 게 아니다. 본인도 고생한다. 박팀장님이야 그 뛰어난 능력으로 이것저것 잘해내가고 있지만, 팀장님의 상사는 그렇지 않았다. 부하가 일을 잘하는 걸 감싸안아줄 수 있는 능력도 그릇도 안 되었다. 박팀장님이 일을 너무 잘한 탓에 점점 더 가려지면서 실수가 늘었다던가. 결국은 먼 지방으로 쫓겨나다시피 좌천되어 갔다. 저런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 싶었다.

 

 이 나라 글자도 읽을 줄 모르는데 왕비는 무슨.

 

 '꼭 공무원 강제 발령 같네...'

 

 원치 않는 직장이 멋대로 자신을 취집시키려고 한다.

 

 이 직장에는 다른 문제가 있다. 바로 '결혼'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 그 남자를 평생동안 남편을 삼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소희는 나름 결혼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남자가 무릎꿇고 반지와 꽃을 내밀며 청혼하는 것. 함께 아이 둘이나 넷을 낳고 시골의 전원 주택에서 사는 것.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면서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손님들을 맞이하는 것. 제일 중요한 조건은 따로 있었다.

 

 소희는 자신을 세상에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할 남자를 원했다. 그 사람이 내게 제일 중요하고, 그 사람도 나를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하지만 왕은 그런 남자가 아니었다. 그는 어떤 계산이 있어 소희를 왕비로 맞이하려 했고 그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팀장님이 일하는 것처럼 여자를 만난다면 그 여자는 진짜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기분일텐데...'

 

 잠을 줄여 정보를 수집하는 걸로 모자라, 퇴근하고 나서도 회사가 진출할 지역의 시세를 알아보기 위해 집 산다고 판다고 빌린다고 온갖 소릴 해대면서 동네 부동산을 돌아다니고. 성격은 또 얼마나 꼼꼼한지 어딜 가기 전에 미리 위성사진까지 동원해서 동선을 계산한 다음 최소한의 시간으로 효율적으로 돌아다닌다며 줄을 긋곤 했다. 소희 생각에는 그냥 가서 헤매도 그 나름대로 장점이 있을 거 같은데 절대 그렇지 않다며 소희가 갈 길도 미리 브리핑해주곤 했다. 2호선 전철역 1번 출구로 나가서 직선 500미터, 이런 식의 단순하고 흔한 약도 수준이 아니었다.

 

 <정시마다 15분 간격으로 오는 1번 마을버스가 있어. 2번 출구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마을버스가 올 거야. 그걸 타고 5정거장 후에서 내려서 스타벅스를 끼고 왼쪽으로 가. 세 건물 지나면 2층 계단 위 부동산>

 

 잊지 말고 커피도 사 가라며 쿠폰까지 챙겨주곤 했다. 그런 세심함으로 데이트를 계획한다면 누구라도 감동하지 않을까? 절대로 생일이나 기념일 따위를 까먹을 일은 없을 것이다.

 

 '어쩌다 보니 하루 종일 팀장님 생각만 하네...'

 아무것도 모르던 자신을 그럭저럭 한 사람 몫을 해내는 사원으로 만들어준 사람이다.

 

 소희는 자신과 팀장님을 마음의 저울에 놓고 달아 보았다. 제 결혼과 팀장님 목숨을 걸고도 달아보고, 제 목숨과 팀장 목숨을 걸고도 달아 보았다. 팀장님 명예와 제 삶도 걸어 보았다.

 

 하지만 저울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가벼워서가 아니다. 너무 무거워서 그렇다. 제 것이 아닌 것을 달아보는 것도 어려웠다. 처음에는 팀장님은 분명히 목숨보다 명예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내가 팀장님 살린다고 결혼은 할 수 있는데, 살린다고 죽고 싶지는 않고.'

 

 미안한 말이지만 죽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정말 정말 싫지만, 팀장님을 살리기 위해서 꼬옥 해야만 한다면 결혼 정도는... 아, 진짜 이걸 해야 하나. 소희는 머리를 쥐어 뜯었다.

 

 내가 이렇게 고민하고 있는 걸 팀장님은 전혀 모르겠지. 내가 파워포인트 만들어 간다고 밤새서 해온 것도 팀장님은 몰랐어. 진짜 내가 이정도까지 해야 해?

 

 '팀장님이 만일 이미 돌아가셨다면 결혼도 안 하고 싶은데... 지금 여기서 팀장님이 노예가 아니었다! 하고 외치면서 명예를 회복시켜봤자 뭐 여기 역사책에만 나오는 거고 팀장님도 모르고 나도 알 바 아니고....'

 

 그러니까 문제는, 팀장님이 살아 있느냐 죽어 있느냐로 다시 돌아온다. 소희는 다른 쪽 머리카락을 쥐어 뜯었다. 시녀들이 정성들여 달아준 진주 구슬이 또르르 떨어져 바닥에 굴렀다. 굴러가는 구슬처럼 소희의 머리도 핑핑 돌았다.

 

 “…아차."

 

 그러고보면… 저 왕 새끼가 약속을 지킬지 어떨지도 확신할 수 없다. 모든 사람이 약속을 지키는 것은 아니다. 당장 돈 빌려간 친구년도 월급날 되면 갚겠다더니 막상 25일이 되선 자기가 또 급해졌다는 둥 좀 기다려달라는 둥 친구 좋다는게 뭐냐는 둥 얼버무리곤 했다. 애초에 잘 모르는 사람과는 거래를 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 거래를 하지 않아서 팀장님이 죽으면?

 

 소희는 정말이지 그것은 원치 않았다.

 

 팀장님은 진짜 별로였다. 소희의 짧은 사회생활 중 싫은 상사를 쭉 줄세워 보라면 베스트 1에 꼽을 수 있다. 하지만 당장 팀장님을 눈앞에 세워놓고 손에 총을 들려준 다음에 ‘이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네가 죽는다!’라고 한다면…?

 

 ‘아니. 절대로 안 쏠 거야.’

 

 그래도 난… 살아서 가야 하는데. 내 몸뚱아리 하나 아무도 안 챙겨 줄 건데. 내가 나 챙겨야 되는데.

 하지만 팀장님은….

 

 도돌이표처럼 끝없이 고민이 도는 사이 문이 열렸다. 아까 시녀가 들어와 낯선 두루마리를 탁자 위에 놓았다.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서 바닥에 구르던 진주알을 주워 수습했다. 소희는 흠흠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두루마리는 이집트에서나 쓸 법한 고풍스러운 형태였다. 여태까지 가정교사가 읽어주던 책들은 가죽을 얇게 펴서 책 형태로 장정한 것들이었는데, 이건 정말 오래되어 보였다. 좀이 슬거나 한 데는 없이 얇고 깨끗했는데, 잘못 건드리면 그대로 파스스 부서질 것 같았다.

 

 조심스럽게 두루마리를 폈다. 노오란 바탕에 변색되어 흐린 회새 글씨가 소희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당연히 읽을 수 없으리라 생각하고 읽어줄 사람을 부를 참이었다.

 

 모르는 꾸부렁 글씨가 아랍어처럼 구불구불하게 흘러간 이게 제목인 듯 싶다. 그건 예상대로 읽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 아래에 있는 글자가 아주 낯익었다.

 

 "<저 말고는 아무도 읽지 못할 글씨라 이래 적습니다...?>"

 

 얼마만에 보는지 모를 한글이었다. 소희는 정신없이 집중해서 읽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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