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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채운몽
작가 : 채헌
작품등록일 : 2017.6.19

조선 최초의 레즈비언으로 기록된 세종의 두 번째 며느리 세자빈 월, 기루 무사 소쌍을 만나 운명인 듯 우연인 듯 사랑에 빠진다. 아니라 해도, 아니 된다 해도 돌아설 수 없었던 그녀들의, 무지개빛 로맨스

 
41장. 가는 걸음걸음 붉은 꽃잎 점점이 떨어지네
작성일 : 17-07-11 13:28     조회 : 246     추천 : 0     분량 : 7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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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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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은 불 꺼진 별궁을 홀로 거닐고 있었다.

 

  한 번도 제 발로 와보지 못한 곳을 주인이 사라진 뒤에야 찾다니, 참으로 얄궂은 일이었다.

 

  월이 그리운가.

 

  아니었다. 그리워하기엔 월에 대해 아는 것도, 나눈 것도 없었다.

 

  다만 처음 침소에 들던 날, 자신의 정인이자 지기가 되겠다, 지극한 마음으로 마음을 구하겠다 당돌하게 말하던 월만은 생생히 떠올랐다.

 

  그 말대로 월은 끊임없이 향에게 손을 내밀었다.

 

  동그란 눈을 반짝이며 향에 대한 것을 물었고, 수줍은 낯빛으로 글을 써서 건네기도 했다.

 

  친정에서 맛있는 것을 보내면 꼭 수라간에 보내 자신의 상에도 오르게 하였다.

 

  그 반짝이던 눈이, 수줍은 낯빛이, 음식을 보내던 그 마음이 스러지기 시작한 것은 정확히 언제부터였을까.

 

  반짝이던 눈에는 설움이 어리었고, 발그레하던 낯빛은 파리해졌고, 음식을 보내던 그 마음은 합궁을 할 때조차 두렵고 꺼리는 마음으로 변질되었다.

 

  월에게 단 한 번도 살갑지 못했던 향은 자신이 그것들을 잃었음을, 그것도 아주 오래 전에 잃어버렸음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못난 지아비를 원망했겠지. 그 원망이 깊어 다른 이와 정을 통했던가.

 

  문득 사통을 했다 한들 자신 앞에서만큼은 당당하다 했던 월이 떠올랐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그러고 보면 월을 본 처음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한 순간도 이해해본 적이 없었다.

 

  월은 늘 진심이었기에, 거칠고 볼품없을지라도 늘 자신의 진심을 내밀었기에, 월을 대하고 이해하기가 더욱 어려웠는지도 몰랐다.

 

  어리석고 미욱한 일이지.

 

  궁에서 제 마음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은 목을 내어놓고 다니는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 순간―,

 

  늘 무시당하고 외면당하면서도 끝끝내 자신의 진심을 꺼내어놓았던 월이 영영 없을 거라는 사실이 조금쯤 아쉬워졌다.

 

  진심 따위로는 궁 안에서 아무것도 구할 수 없으리라 비웃었지만 어쩌면 속으로는 그 진심이 무엇이든 구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내가 아니면 너라도. 저하가 틀리셨습니다, 싱긋 웃으며 말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겐가. 이제 와 이런 생각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다고.

 

  향이 잡념을 떨치려는 듯 빠른 걸음으로 별궁을 빠져나갔다.

 

  동궁으로 돌아가려는 향의 귀에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내사옥 쪽에서 나는 소리였다. 의아한 얼굴로 들어서던 향의 얼굴이 굳어졌다.

 

  “뭣들 하는 게냐! 물러들 나거라!”

 

  뒤늦게 향을 발견한 옥졸들이 매질을 멈추고 고개를 조아렸다. 피투성이가 되어 엎어진 소쌍을 본 향의 관자놀이가 불룩거렸다.

 

  “나가들 있거라.”

 

  “허나 세자 저하, 한시도 이놈 곁에서 떨어지지 말라는 어명이 있었사옵니다.”

 

  “어서 나가래도!”

 

  향의 호통에 옥졸들이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밖으로 나갔다.

 

  소쌍이 힘겹게 몸을 추스르려 버둥거렸다. 얼마나 맞았는지, 몸을 쉬 일으키지 못했다.

 

  향이 경멸에 찬 눈으로 소쌍을 내려다보았다.

 

  망한 나라의 왕족으로 구차하게 숨어 살아야 하고, 여인이면서 여인으로 살지 못하고, 이치를 거스르는 사랑을 한답시고 목숨까지 잃게 생겼는데도 소쌍이 가엾지가 않았다.

 

  태어나 처음 느껴보는 이 미묘한 감정은 바로, 시새움이었다. 누군가를 사랑하여 온전히 자신을 내던질 수 있는 월과 소쌍을 향한 강렬한 시새움.

 

  “참으로 어리석구나. 마음이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인데 어찌 그깟 것에 목숨을 거느냐.”

 

  복잡한 마음결을 부정하려는 듯 향이 차가운 말투로 내뱉었다. 소쌍이 겨우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저하의 말씀이 옳습니다. 참으로 어리석고 어리석습니다.

 

  헌데, 그 마음이란 것이 말입니다, 참으로 신묘한 것입니다.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것인데 그 마음으로 인해 꽃이 피고, 새가 날고, 바람이 불고, 비가 떨어지더이다.

 

  그 마음으로 인해 사는 법을 알았고, 저의 생이 새로이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그냥 저인데 그 사람을 만나고부터는……, 그 전의 제가 아니더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그저 그 사람 하나 마음에 품었을 뿐인데…….”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면서 소쌍의 얼굴에 피어나는 희미한 미소에 향은 입술을 깨물었다.

 

  어쩐지 열패감이 들었다.

 

  아무와도 싸운 적이 없으나 지고 말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 번도 져본 적 없는 자신이, 누구에게든 진 것 같았다.

 

  “옥졸은 들어와 이 자의 족쇄를 풀거라!”

 

  향의 호통에 옥졸이 쪼르르 달려와 바닥에 엎드렸다.

 

  “저하, 아니 되옵니다.”

 

  “내 명을 거스르겠다는 것이냐.”

 

  “그런 것이 아니오라, 어명이 있었기에……,”

 

  “지금 네 눈앞에 선 것이 누구냐? 전하냐, 나냐?”

 

  “아이고, 그냥 소인을 죽여주시옵소서!”

 

  향이 옥졸의 허리춤에서 검을 빼들었다.

 

  “그래, 좋다. 어명을 따르고 너는 내 손에 죽거라!”

 

  옥졸이 죽을상을 하고선 마지못해 열쇠를 꺼내 족쇄를 풀었다. 소쌍이 의아한 듯 고개를 들었다.

 

  “가거라.”

 

  “……?”

 

  “생을 사는 법을 배웠다지 않았느냐. 새로 살게 되었다 하지 않았느냐.

 

  그러니 살으라. 그걸 알려준 너의 정인과, 반드시……, 살아남으라.”

 

  소쌍이 미심쩍은 얼굴로 느리게 몸을 일으켜 세웠다.

 

  “무얼 하느냐. 어서 가지 않고!”

 

  소쌍이 비칠거리는 걸음으로 내사옥을 나서려는데 옥졸들이 불러온 내금위 군사들이 앞을 막아섰다. 향이 검을 앞으로 향하며 외쳤다.

 

  “물러서거라!”

 

  내금위장이 예를 표하고 대답했다.

 

  “저하, 어명을 거스르는 이는 세자저하라 하여도 벨 수밖에 없습니다.”

 

  소쌍이 다른 옥졸의 허리춤에서 검을 빼들었다. 내금위장도 검을 뽑아들었다.

 

  군사들이 일제히 검을 빼들고 향과 소쌍을 둘러쌌다. 어두운 밤, 파르스름한 검기가 냉랭하게 대치하고 있었다.

 

  그 순간, 갑자기 한 무리의 왈짜패들이 두 무리 사이로 뛰어들었다. 순식간에 내금위 군사들이 절반쯤 나가떨어졌다.

 

  “네놈들은 누구냐!”

 

  내금위장이 긴장한 얼굴로 소리쳤다.

 

  “내가 뉘신 지는 네놈 따위가 알 것 없고.”

 

  나뭇가지를 씹으며 이죽거리는 것은 양녕의 수하 옥니박이였다. 놀란 얼굴의 소쌍을 보며 옥니박이가 히죽 웃었다.

 

  “여긴 우리가 치울 테니 넌 가봐라.”

 

  “뭐하고 있느냐, 저놈들을 어서 잡아라!”

 

  정신을 차린 군사들이 왈패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옥니박이가 고갯짓을 하자 덩치가 소쌍을 번쩍 들고 담장을 향해 냅다 뛰었다.

 

  “니놈이 이뻐서 살려주는 거 아니다. 나중에 내가 몸소 복수하려고 살려두는 거니까 꼭 살아있어야 한다.”

 

  덩치가 소쌍을 담장 밖으로 휙 던졌다. 소쌍의 날렵한 몸이 짚단처럼 담장을 넘었다.

 

  “애먼 놈한테 뒈지면 가만 안 둘 줄 알아, 이 개뼈다귀 같은 자식아!”

 

  덩치의 투덜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소쌍이 힘겹게 걸음을 옮겼다. 향이 소쌍이 사라진 쪽을 물끄러미 보았다.

 

  잘 가거라. 이것이 내 지어미였던 이에게 주는 처음이자 마지막인 나의 진심이니라.

 

 

  * * *

 

 

  “에그머니나, 깜짝이야! 소쌍이가 아니냐!”

 

  등을 내걸려던 옥금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소쌍이란 말에 기생들이 우르르 달려 나왔다.

 

  “뭐야, 소쌍이가 왔어?”

 

  “소쌍 언니 살아 돌아온 거예요?”

 

  난앵과 춘섬이 울음을 터뜨리며 와락 안겼다.

 

  소쌍이 둘의 머리를 쓸어주며 천향을 보았다. 천향은 저만치 떨어져서 담담한 얼굴로 소쌍을 보고 있었다.

 

  소쌍이 천향을 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늘 저렇게 멀찍이 서 있었다. 한 발자국도 다가오지 않고, 물러나지도 않고 늘 저만큼 떨어져서.

 

  저리 얼음 같은 표정을 하고 있지만 그 속이 끓는 물처럼 뜨겁다는 것을, 그 속이 뜨거우면 뜨거울수록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는 것을 소쌍은 알고 있었다.

 

  소쌍의 눈빛을 읽은 설매가 기생들의 등을 밀며 안으로 들어갔다. 마당에 둘만 남게 되자 소쌍이 말했다.

 

  “고맙다.”

 

  천향이 예의 싸늘한 말투로 대꾸했다.

 

  “먹퉁아, 누가 너한테 고맙단 소리 듣고 싶댔느냐.”

 

  “너 아니었음 진작에 스러졌을 생이었다. 고마웠다, 진심으로. 그리고 미안해.”

 

  “옥에 들어갔다 오더니 철이 났나 보구나. 미안한 줄도 알고.”

 

  “정말 미안하다.”

 

  “무얼 미안해해야 하는지는 알고 미안하다 하는 게야?”

 

  “그냥, 모든 게 다. 그 중에서도 네 마음 받아주지 못한 거……, 그게 제일 미안해.

 

  너같이 좋은 사람이 나 따위를 좋아해주는데도 그 마음 받아주질 못해서…….”

 

  천향의 가슴이 쿵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좋아한단 티 한 번 못 내고, 사랑한단 말 한 번 못 한 사람이었다.

 

  다가서면 멀어질까봐, 영영 볼 수 없게 될까봐 마음을 거두고 또 거두어들였는데……, 알고 있었던가.

 

  “인사를 하러 왔다. 너한테 이 말도 하지 않으면 내가 너무 나쁜 사람인 거 같아서.”

 

  “넌 원래 나쁜 놈이지 않으냐.”

 

  그리 쏘아붙이면서도 천향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잘 있어야 한다. 씩씩하고, 당차게, 오래오래 그렇게, 붉은 꽃처럼…….”

 

  소쌍이 힘겹게 눈물을 삼키며 천천히 돌아섰다. 문턱을 넘으려는데 천향이 달려와 소쌍의 팔을 붙들었다. 천향의 양 볼에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가지 마라. 가면 죽을 것이다. 가지 말고 내 곁에 있어라. 마음 같은 거 없어도 돼. 마음 없이도, 그냥 너를 볼 수라도 있게…….”

 

  소쌍이 천향의 손을 부드럽게 떼어냈다.

 

  “천하의 천향도 먹퉁 같은 소리를 할 때가 있구나.”

 

  “기어이 죽으러 가겠다는 게냐? 대체 그 사람이 무엇이기에!”

 

  처음으로 보는 천향의 원망 어린 눈빛이었다.

 

  단 한 번도 자신을 원망하지도, 질책하지도 않았던 그 눈빛.

 

  그 눈빛을 다시 볼 수 없다는 생각을 하자 젖은 종이를 삼킨 듯 목구멍이 꽉 막혀왔다.

 

  “천향아, 너는 나를 살렸지만 그분은 나를 살고 싶게 만들었다. 내 보잘것없는 생에 처음으로 이유를 만들어주신 분이다.

 

  생의 이유를 잃고 내가 어찌 살겠느냐.”

 

  “…….”

 

  “천향아.”

 

  천향이 눈물을 닦으며 몸을 틀었다.

 

  “샛문 밖에 말을 매어놓았다. 네 짐도 챙겨 묶어두었으니 아주 가버리거라.

 

  다시는 돌아오지 말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거라.”

 

  자신이 어찌할지까지 알고 있는 사람. 소쌍은 애틋한 눈빛으로 천향을 일별하고는 샛문으로 달려갔다.

 

  소쌍이 사라지자 천향이 털썩 주저앉았다. 깨물린 입술 사이로 붉은 꽃처럼 설운 울음이 비어져 나왔다.

 

 

  * * *

 

 

  한참동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았던 서운궁은 음산하기 짝이 없었다.

 

  문에 발린 창호지는 너덜거리고 문짝도 제대로 달린 것이 하나 없었다.

 

  여기저기 거미줄이 늘어졌고, 세간에는 희부연 먼지가 두툼하게 쌓여 있었다. 폐가라고 해도 좋을 궁의 몰골에 가마꾼들은 몸서리를 치며 가버렸다.

 

  “초가 어디 있을 텐데.”

 

  석가이가 손을 더듬거려가며 여기저기를 뒤졌다.

 

  월은 대청마루 기둥에 기대 멍하니 밤하늘만 올려다보고 있었다.

 

  지금쯤이면 부모님께도 기별이 갔겠지.

 

  금쪽같은 딸을 궁에 들이느라 눈물을 쏟으셨는데 이젠 그 딸이 궁에서 나와 눈물을 쏟으셔야겠구나.

 

  너무 울어 짓무른 눈에서 또 눈물이 툭 떨어졌다.

 

  “여기 있었네!”

 

  석가이가 몽당 초와 부싯돌을 용케 찾아내고는 몇 번의 실패 끝에 초를 켰다.

 

  “으악!”

 

  으쓱거리며 대청으로 나오던 석가이가 허벅지를 감싸 쥐며 쓰러졌다.

 

  “왜 그러느냐!”

 

  “마, 마노라, 오, 오지 마셔요!”

 

  석가이가 다가서는 월을 향해 손을 내저었다. 석가이의 허벅지에서 피가 물컹물컹 흘러나왔다.

 

  표창!

 

  지난번 월을 노렸던 자객이 쓴 것과 같은 표창이었다.

 

  월이 양 팔을 벌려 석가이를 가리고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사방은 암흑일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순간 쉬익,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났다. 월이 눈을 질끈 감은 채 석가이를 감싸 안았다.

 

  차앙!

 

  “아악!”

 

  월이 가녀린 비명을 질렀다.

 

  “다친 데는 없으십니까?”

 

  이 목소리는……!

 

  월이 퍼뜩 고개를 들었다. 소쌍이 한쪽 눈썹을 실그러뜨리며 웃고 있었다.

 

  “너무 늦어 송구합니다.”

 

  “어, 어찌 네가……!”

 

  “설명은 나중에 드리겠습니다. 일단은 피하시지요.”

 

  월과의 재회를 기뻐할 새도 없이 세 번째 표창이 날아들었다.

 

  소쌍이 마당에서 흙을 한 줌 쥐어 초의 불을 끄고 월을 일으켰다. 월이 석가이도 부축해 일으켜 세우려는데 석가이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두 분 먼저 가세요.”

 

  “내가 너를 두고 어찌 가느냐.”

 

  “저 걸음 빠른 거 아시잖아요. 상처만 터매고 금세 쫓아갈 테니까 얼른 가셔요. 제발요, 마노라!”

 

  석가이가 소쌍에게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그 사이 표창이 소쌍의 등허리에 꽂혔다. 다행히 등에 맨 바랑 덕분에 다치진 않았다.

 

  “가셔야 합니다.”

 

  소쌍이 억지로 월을 잡아끌었다. 마당을 가로지르며 소쌍이 물었다.

 

  “말을 탈 줄 아십니까.”

 

  “내 무관의 딸이니라.”

 

  소쌍의 등을 디딤대 삼아 월이 가볍게 말에 올라탔다. 소쌍이 뒤따라 오르며 바랑에서 활을 꺼냈다.

 

  “고삐를 잡으실 수 있겠습니까.”

 

  월이 망설이지 않고 고삐를 잡았다.

 

  지붕 위에 숨어있던 자객도 나는 듯이 내려와 말등에 올랐다.

 

  소쌍이 뒤쫓아 오는 자객을 향해 활을 쏘았다. 거푸 활을 쏘았지만 간발의 차로 빗나갔다. 두 말의 거리가 점점 더 좁혀졌다. 월이 사력을 다해 고삐를 챘다.

 

  쉬이익.

 

  자객의 표창이 말의 뒤쪽 허벅다리에 꽂혔다.

 

  히히힝, 말이 몸을 뒤채며 풀쩍 뛰어올랐다. 월과 소쌍은 그대로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소쌍이 재빨리 월을 일으켜 세우고, 달리기 시작했다. 말발굽 딛는 소리가 금방이라도 두 사람을 덮칠 듯 쫓아왔다.

 

  소쌍은 자객의 말을 따돌리기 위해 뛰는 방향을 연신 바꾸었다. 하지만 그들의 움직임을 예상이라도 하는 듯 자객은 집요하게 따라왔다.

 

  얼마 안 가 숨이 턱밑까지 차올랐다. 초가을 스산한 바람이 목구멍까지 밀고 들어와 숨을 쉴 때마다 고통스러운 갑갑증이 일었다. 금방이라도 숨이 막혀버릴 듯했다.

 

  당혜는 언제 사라졌는지 월은 버선발이었다. 진흙과 낙엽 부스러기로 엉망이 된 버선에는 선홍색의 피가 옅게 배어나오고 있었다.

 

  분명 다리를 움직이고 있는데 전혀 움직이고 있는 것같지 않았다. 칠흑같이 내려앉은 어둠 속에서는 방향조차 가늠이 되지 않았다.

 

  지금 어디로 가는지, 언제까지 달려야 하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헐거워진 손힘을 느꼈는지 소쌍이 뒤돌아보았다. 걸음을 늦춰주지 못하는 미안함과 안쓰러움이 담긴 눈빛이었다.

 

  괜찮으십니까.

 

  소쌍이 눈으로 물었다.

 

  괜찮다.

 

  월 또한 눈으로 대답했다.

 

  두 사람의 손가락과 손가락이 다시금 엉켰다.

 

  두 사람의 뒤로 붉은 꽃잎 같은 핏방울이 점점이 떨어졌다. 그 붉은 꽃잎의 행렬에서 도망치기라도 하듯 두 사람은 달리고 또 달렸다.

 

  꽃잎이 한없이 이어졌다. 붉디붉은 꽃잎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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