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소녀 류하 시리즈
작가 : 루날
작품등록일 : 2017.7.9

비정한 청부업자들과 범죄조직들이 판치는 부산을 배경으로, 오갈 데 없는 한 소녀가 방황한다. 무기력하고 무감정한 소녀가 거친 세계 속에서 살아남으며 성장하는 하드보일드하고 피카레스크한 이야기, 지금 여기서 개막.

 
9 - 소녀는 돌아보지 않는다
작성일 : 17-07-10 20:49     조회 : 239     추천 : 0     분량 : 4114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9.

 애송이의 말은 거기서 끝났다. 알 만큼 알았고, 더 이상 아는 것도 없으니 보내줘야겠다 싶었다. 녀석의 전화번호도 알아둘 겸 이름을 물었더니 이런 말을 했다.

 “그냥 야쿠자라고 써놔. 깡패새끼 이름 알아서 뭐 하려고.”

 “새끼 허세부리네.”

 결국 나는 전화번호부에 녀석의 이름을 ‘애송이’라고 저장했다. PTSD는 도망가는 놈을 딱히 붙잡지 않았다,

 “어차피 교통은 내 관할 아니니까.”

 관료제에 참으로 충실한 사람이었다.

 “도와줘서 고마워.” 나는 땅을 한 번 발로 찼다. “이번 일로 고작 내가 당신을 용서할 거라고 생각하지 마. 여전히 난 당신이 증오스러우니까.”

 “증오해라, 영원히. 신경 안 쓸테니까.”

 아까부터 하늘이 우중충했는데 슬슬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니 괜스레 말이 나오는 건 어쩔 수가 없는 노릇이다.

 “저기 말이야, 당신이 연화를 죽이지 않았으면 우리 사이가 좀 친했을까?”

 경찰은 담배를 꺼냈다. 마침 흡연석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까의 살풍경한 심문 과정을 본 사람들이 전부 자리를 옮겼기 때문이었다. 후. 하고 내뿜어지는 연기. 허공에 흩뿌려진다.

 “의미 없는 말이군.”

 “그래, 의미 없네.” 내 말에 바로 그가 대답했다. “맞아. 무의미해.” “그래, 무의미해. 푸하하하하하하하.” 나는 웃었다. 경찰도 처음으로 내 앞에서 웃음을 보였다.

 웃겨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냥 집이 불타고, 서아가 사라진 것 뿐인데, 정말로 서아가 죽기는 한 걸까?”

 

 밤하늘을 보며 걷는데 전화가 왔다. 애송이였다. 거칠게 전화를 받았다. 전화기 너머에서는 아무런 목소리도, 숨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나는 전화를 끊지 않고 내버려두었다. 장난전화는 아닐 것이다.

 한참이 지난 뒤에,

 “리노스케.”

 라는 이름이 튀어나왔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죽었다. 사람 이름. 너 때문에.”

 “잠깐.”

 그가 끊을 게 분명해보였기 때문에 나는 그만두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천천히 물었다.

 “네 이름은 뭐지?”

 약간의 침묵 끝에 대답이 돌아왔다. “헷켄.”

 뚝. 뒤이은 침묵은 길었다. 한참동안 전화기를 귀에서 떼지 못했다.

 

 헷켄 그 놈은 내가 있는 곳 따윈 어디든지 알고 있을 것이다. 부산 어디든 아카-카이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은 없을 것이다. 피해망상이라고?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이게 단순한 피해망상으로 끝날 수 있었으면, 그랬다면 오히려 내가 두 손 들고 환영할 것이다.

 이건, 더 이상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이미 사람이 죽었다. 그 애송이, 이름이 있었구나. 노리스케라고 했다. 왜 이름을 가르쳐주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죄책감이라도 느끼라는 것인가. 누군가에게 놀아나고 있다. 짜증이 났다.

 너무 깊게 빠져들어버렸다.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남에 이야기에. 소담이 죽거나 말거나 남의 일인데, 서아가 어떻게 되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인데 그저 친한 사람과 친한 사람의 동생이라는 이유로, 고작 그런 가당치도 않은 이유로 이제는 죽게 생겼구나. 결국 나 스스로 여기까지 몰아온 셈이다.

 후회해봤자 소용없어. 류하. 나는 소파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 자리에 앉아서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그럼 앉아있는 거 말고 뭘 하라는 거야, 젠장. 테이블 위에 아무렇게나 내던진 책은 이미 다 읽은 지 오래다. 이렇게나 머릿속이 피곤한데도 잠은 올 생각을 않았다. 그러니 앉아있을 수밖에 없다.

 죽음, 죽음이 한 발짝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조금만 기다리면 헷켄이 들어와서, 내가 류하가 맞는지 확인하고, 커다란 손으로 내 배를 뚫어버릴 것이다. 그러면 그 손이 얼마나 큰지 구경이라도 할 수 있겠구나. 죽음이 찾아오는 데도 이런 어이없는 생각이나 하는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앉아서 죽음을 기다린다. 그 자체만으로도 감각이 예민하게 살아 올랐다. 이 시꺼먼 어둠 속에서도 시계의 시침이 움직이는 것마저도 포착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따분한 초침의 소리만이 규칙적으로

 똑. 딱. 똑. 딱.

 역시 너무 깊게 들어왔다. 나 또한 죄인이라는 걸 깨닫기에는 엄청난 시간이 걸렸다. 서아의 마지막 그림을 찢은 건? 나다. 이 일에 적극적으로 끼어들으려고 했던 것도 나다. 나를 죽이러 온 그 야쿠자를 상대로 커터칼을 박아 넣은 것도 나다. 노리스케의 죽음에도 결국 내 탓이 있는 것이다. 나 혼자 깨끗한 척 하고 빠져나갈 수는 없다.

 그런데 그게 죽을 죄인가? 그것 때문에 내가 죽어야 하느냔 말이다. 애초에 세상이란 게 이 정도 잘못 정도는 하고 살아가게 만들어져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건 누구냐. 그래, 그 커터칼을 야쿠자의 배에 꽂을 때 느껴졌던 류하가 아닌 또다른 무언가.

 그것도 결국은 나였다. 여태껏 죽으려고 발버둥쳐왔는데, 정작 죽을 때가 되면 살고 싶어서 아등바등 하는 것이다. 좋아 류하, 그렇다면 지금은 뭘 기다리고 있지? 뭘 기다려서 이렇게 얌전하게 죽음을 기다리고 있느냐는 말이야.

 모르겠다. 숙고의 시간은 끝났다. 그가 왔다. 문고리가 찌그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악력만으로 문고리가 찌그러진 것이다. 그가 왔다. 헷켄.

 당장 눈에 들어오는 건 그의 커다란 손이었다. 그 손 크지가 과장 조금 보태서 사람 한 명 머리 만했다. 당장 저걸 못질하는 데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못 대용으로 쓰이는 건 아마도 사람이겠지. 그는 머리를 빡빡 밀고 있었는데, 그 때문인지 머리의 흉터가 더 도드라져 보였다.

 “헷켄?”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머리를 끄덕이지도, 함부로 주먹을 날리지도 않았다. 다만 그저 입을 열었을 뿐이었다.

 “헷켄.”

 잠깐 침묵이 흘렀다. 나는 일어나, 양 팔을 뻗었다. 항복의 제스처. 할 거면 빨리 해라. 체크메이트였다. 원래의 류하도, 며칠 전에 야쿠자에게 칼을 꽂아넣었던 류하도 여기서는 무릎을 꿇었다. 체크메이트. 도망칠 수도, 반항할 수도 없었다.

 그가 자세를 잡았다. 나는 눈을 감았다. 곧 있으면 내 배에도 대포를 맞은 것 같은 구멍이 뚫리고, 모든 게 편해질 것이다. 사실 이런 결말은 원하지 않았어. 물에 빠져 죽거나, 아니면 최소한 목매달아 죽는 걸 원했어. 아니면 전의 그 야쿠자처럼 교살이라거나. 뭐, 하지만 어쩔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받아들여야지. 하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야 씨발, 뭐하는 짓이야! 받아들이지 마! 피해!”

 창문을 깨고 누군가 달려들었다. 체온이 따뜻한 누군가가 내 몸에 안겼다. 그 사람 덕분에, 헷켄은 정권은 아슬아슬하게 빗나갔다. 누구야. 감았던 눈을 떴다. 소담이었다. 어딘가로 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나를 구하러 여기로 와준 것이다. 아무런 생각도, 감정도 들지 않았다. 당장 상황이 허락한다면, 그냥 여기서 소담을 붙잡고 울어버리고 싶은 기분이었다.

 소담은 옷에 묻은 먼지를 탈탈 털고 똑바로 일어섰다. 어디서 뭘 하다 온 건지 한 쌍이던 도끼는 한 쪽밖에 들고 있지 않았는데, 그마저도 멀쩡하질 않았다. 도끼 날에 금이 가 있었다. 하지만 소담은 그 도끼를 놓지 않았다. 오히려 어느 때보다도 강하게 쥐고 있었다.

 “소담 언니?” 나는 실감이 나지 않아서 소담에게 물었다.

 “하, 참나, 넌 진짜 이해가 안 되는 꼬맹이라니까. 너 분명 처음 만났을 때도 대놓고 죽으려고 했었지.”

 소담은 손에 쥔 도끼를 붕붕 돌렸다. 본격적인 게임을 시작하기 전의 손풀기.

 “웃기지 마. 사람 목숨 그렇게 쉽게 포기하는 거 아니다. 받아들이지 마. 네가 대체 뭐 때문에 이런 식으로 뒈져버리고 싶어서 난리를 피우는지 모르겠는데, 이제 그만 받아들여. 너는 ‘살아있어.’”

 “아뇨, 저는…….”

 “아이고, 시끄럽게 뭐가 또 저는, 저는, 거리고 있어. 다시 말할 게, 너는 살아있어. 이건 내가 보증하지. 좀 더 열심히 살고 싶으면 말이야, 살아있다고 느끼고 싶으면 억지로 세상에 비집고 들어가서 네 자리를 만들어 내. 그 과정에서 상처를 입어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혀도 좋다고 생각하는 그런 자리를 만들어 내란 말이야. 도망치지 마. 뭐가 널 방해하건 운명이니 뭐니 하면서 받아들이지 마.”

 소담은 미소지었다.

 “적어도 그게 내가 사는 방식이야. 자, 그럼 셋 세면 도망쳐. 내가 시간을 끌 테니까.”

 “네?”

 “한-셋!” 소담은 둘을 건너뛰었다. “당장 튀어!”

 나는 눈을 꼭 감고 사무소 뒷문으로 달렸다. 고마워요, 소담 씨. 하지만 어디로 도망쳐야 할지, 어디가 안전한지 감이 오질 않았다. 무작정 발이 닿는 데로 달렸다. 땅으로, 벽을 넘어서 남의 집으로, 옥상으로. 쫓아오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혼자 도망치는 것이었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47 13 - 소녀는 돌아보지 않는다 2017 / 7 / 10 224 0 4390   
46 12 - 소녀는 돌아보지 않는다 2017 / 7 / 10 238 0 3780   
45 11 - 소녀는 돌아보지 않는다 2017 / 7 / 10 248 0 4888   
44 10 - 소녀는 돌아보지 않는다 2017 / 7 / 10 241 0 6063   
43 9 - 소녀는 돌아보지 않는다 2017 / 7 / 10 240 0 4114   
42 8 - 소녀는 돌아보지 않는다 2017 / 7 / 10 243 0 5658   
41 7 - 소녀는 돌아보지 않는다 2017 / 7 / 10 236 0 3368   
40 6 - 소녀는 돌아보지 않는다 2017 / 7 / 10 235 0 4493   
39 5 - 소녀는 돌아보지 않는다 2017 / 7 / 10 264 0 3734   
38 4 - 소녀는 돌아보지 않는다 2017 / 7 / 10 228 0 3282   
37 3 - 소녀는 돌아보지 않는다 2017 / 7 / 10 230 0 4539   
36 2 - 소녀는 돌아보지 않는다 2017 / 7 / 10 236 0 5349   
35 1 - 소녀는 돌아보지 않는다 2017 / 7 / 10 241 0 3002   
34 0 - 소녀는 돌아보지 않는다 2017 / 7 / 10 245 0 3638   
33 15 - 소녀는 신을 믿지 않는다 2017 / 7 / 10 225 0 2256   
32 14 - 소녀는 신을 믿지 않는다 2017 / 7 / 10 223 0 1648   
31 13 - 소녀는 신을 믿지 않는다 2017 / 7 / 10 248 0 4708   
30 12 - 소녀는 신을 믿지 않는다 2017 / 7 / 10 242 0 4871   
29 11 - 소녀는 신을 믿지 않는다 2017 / 7 / 10 254 0 4794   
28 10 - 소녀는 신을 믿지 않는다 2017 / 7 / 10 232 0 5827   
27 9 - 소녀는 신을 믿지 않는다 2017 / 7 / 10 233 0 6658   
26 8 - 소녀는 신을 믿지 않는다 2017 / 7 / 10 261 0 4866   
25 7 - 소녀는 신을 믿지 않는다 2017 / 7 / 10 238 0 5833   
24 6 - 소녀는 신을 믿지 않는다 2017 / 7 / 10 253 0 5482   
23 5 - 소녀는 신을 믿지 않는다 2017 / 7 / 10 236 0 3513   
22 4 - 소녀는 신을 믿지 않는다 2017 / 7 / 10 230 0 3621   
21 3 - 소녀는 신을 믿지 않는다 2017 / 7 / 10 233 0 3544   
20 2 - 소녀는 신을 믿지 않는다 2017 / 7 / 10 231 0 4479   
19 1 - 소녀는 신을 믿지 않는다 2017 / 7 / 10 217 0 4778   
18 0 - 소녀는 신을 믿지 않는다 2017 / 7 / 10 210 0 2899   
 1  2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