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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소녀 류하 시리즈
작가 : 루날
작품등록일 : 2017.7.9

비정한 청부업자들과 범죄조직들이 판치는 부산을 배경으로, 오갈 데 없는 한 소녀가 방황한다. 무기력하고 무감정한 소녀가 거친 세계 속에서 살아남으며 성장하는 하드보일드하고 피카레스크한 이야기, 지금 여기서 개막.

 
13 - 소녀는 신을 믿지 않는다
작성일 : 17-07-10 20:42     조회 : 243     추천 : 0     분량 : 4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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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13.

 뭔가가 내 배를 밟았다.

 입에서 물을 토해냈다. 물과 함께 온갖 토사물이 흘러나왔다. 온 힘을 다해 가슴을 쥐어짰다. 토하는 기분은 언제나 더럽다. 계속해서 뭔가 뱉어내고 싶고, 뱉어내고 있는데 목에 걸리는 기분이다. 그럼에도 끊임없어 뭔가 뱉어낸다. 토사물은 엉겨서 서로 길에서 충돌하고 교통사고를 낸다. 막힌 길을 뚫어내는 과정은 고통스럽다. 불도저가 와서 자동차들을 모두 망가뜨려 버린다.

 겨우 일어섰다. 날 물 속에 집어넣었던 그림자들은 피를 흘리고 있었다. 배, 심장, 폐, 허파, 안 찔린 곳이 없었다. 검은색에 붉은 피. 붉은 피가 너무나 생동감 있어서 겁에 질렸다. 마치 수묵화의 흰 여백에 한 줄기 그어놓은 선 같다.

 선은 식칼에게로 모인다.

 식칼을 들고 있는 건 연화였다. 그 식칼에 묻은 피 만큼이나 붉은 동공이었다. 사람의 눈이 붉을 수 있나? 나는 몰랐다. 연화가 아닌 다른 존재. 언젠가 연화가 떨면서 이야기 한 게 생각났다.

 누군가 다가와. 문을 열어달라고 두드려.

 저건 연화인가? 내가 연화에 대해 알고 있는 건 어디까지인가? 나는 저게 연화인지 아닌지 이제 감이 오길 않았다. 나는 용기를 내서 말했다.

 “연화……. 야……?”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연화지? 그렇지?”

 대답이 돌아오지 않을 걸 알면서도 억지로 던지는 질문

 “연화지? 찾았잖아. 돌아가자. 여긴 위험해. 그 사람들, 미친 것 같아. 같이 도망가자. 응?”

 “아니.”

 연화는 눈을 감았다.

 “난 돌아가지 않아.”

 말문이 막혔다.

 “이제 연화를 기억하는 사람은 너밖에 없어. 연화를 쳐다보는 사람은 너밖에 없어. 하지만 난 널 그냥 놓아버리기로 했어. 연화를 포기하기로 했어. 그러니까 돌아가. 연화는 더 이상 없어. 여기서 죽었어. 그러니까 가버려. 다시는 돌아오지 마.”

 연화는 뒤돌아섰다. 그리고 눈을 떴을 것이다. 눈동자는 여전히 붉은 색이겠지. 나는 멀뚱히 서 있었다. 아무것도 이해되지 않았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나는 모든 게 사라진 다음에 지쳐버려서, 팍 주저앉고 말았다. 마침내 나는 말했다.

 “무슨 소리야?”

 

 “경찰이다.”

 공포탄을 쏜 직후인데도 사람들은 그저 한현과 경찰 나으리를 쳐다보기만 할 뿐,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한현은 공포탄 소리를 듣고도 놀라지 않는 사람들에 질색했지만, 경찰은 무덤덤했다. 오히려 그는 생각했다. 그냥 팀을 끌고 올 걸 그랬나. 하지만 그는 팀으로 행동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집사 한현을 유선영 살해 혐의로 체포하러 왔다. 지금부터 방해하면 공무집행 방해다.”

 이번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오히려 살기가 등등해졌을 뿐이다. 하, 그럼 어쩔 수 없지. 정현석은 싸움에서 이기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는 난처한 표정의 한현에게 손을 내밀었다.

 “왜, 뭐?”

 “날붙이.”

 “내 사시미는 싫어. 내 칼이라서 다 들킨다구. 아 잠깐만.”

 한현은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류하가 이미 훔쳐가고 없는 커터칼을 찾는 중이었다. 그 꼴을 보며 정현석은 한숨조차 내쉬지 않았다.

 “그냥 주먹으로 해라.”

 “그럼 그러지 뭐.”

 한현은 정현석의 얼굴을 주먹으로 후려갈겼다. 가할 수 있는 온 힘을 다해 최대한 세게 꽂았다. 정현석은 그 주먹을 이를 악문 채 버텼다. 정현석은 피 섞인 침을 바닥에 뱉었다. 씹새끼 존나 세게 치네. 탁 내뱉고는 그가 말했다.

 “야, 한현아. 저 새끼들이 나 먼저 선빵 날리는 거 봤지?”

 “어, 나중에 물어보면 그렇다고 할게.”

 “자, 그럼 지금부터 가하는 모든 폭력행위는 정당방위다.”

 승리의 법칙, 선빵필승. 늑대가 고삐를 풀었다.

 

 목적이 사라졌다.

 의미도 사라졌다. 이해도 사라졌다. 그저 유령만 내 안에 남아 이 복도를 걷고 있을 뿐이다. 더 이상은 삶의 의미도 의욕도 없다. 돌아갈 곳은 있지만 돌아가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다.

 정처없다. 이 단어가 좋겠다.

 그래도 몸은 걷고 있다. 좋은 의미인지, 나쁜 의미인지는 나도 모른다. 그저 학습한 것을 기억해서 행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냥 걷는 걸 배웠으니까 걷는 걸 하는지도 모른다. 뇌가 태어나기 이전으로 돌아가버려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작은 것을 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몰라, 무슨 개같은 헛소리야.

 어질어질 걷다가 바닥에 넘어졌다. 이대로 숨을 끊어버리고 싶었다. 목에 커터칼을 긋던 그 시절이 생각났다. 그래, 그 시절, 참 좋았지. 그때 죽었어야 했는데, 죽어버렸어야 했는데. 그 검은 커터칼, 어디에 있더라? 잃어버렸다. 좋아하던 물건이었는데.

 좋아하는 것들은 항상 사라져간다. 커터칼도, 밴드 씬도, 하찮은 복수도 전부 내 곁에서 떠나갔다.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연화마저도 나를 거부해버렸다. 나를 놓아버렸다. 이제는 더 이상 나를 붙잡아 줄 무언가가 없다. 될 대로 되라지. 하고 엎어지고 싶다.

 나를 받아줄 곳은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일어섰다. 이 커다란 교회도, 아까 전의 그림자들도, 연화도 그 누구도 나를 받아줄 것이 아니기에. 여기에 가만히 누워서 시체를 남길 수도 없었다.

 그럼 어디로 가지?

 나가는 길?

 싫어.

 끝을 볼 거야.

 죽기 전에 끝을 볼 거야. 모두 망하는 꼴을 지켜보고 말 거야.

 그래, 오기 전에 전화를 했다. 한현과 그 뭐시깽인지 하는 경찰이 경찰들을 몰고 와서 다 쓸어버릴 것이다. 그 전까진 살아있을 것이다.

 일어서서 몸을 질질 끌며 걸어갔다. 긴 복도, 위층. 그래, 위층에는 성전이 있을 것이다. 처음 들어왔을 때 몰래 쳐다봤던 그 성전이 생각났다. 존나게 컸었지 그거. 가는 길은 알고 있다. 체력이 문제일 뿐이다.

 복도는 길고 좁았다. 어두웠다. 문득 혼자 살던 방이 떠올랐다. 어수선하고 좁디 좁은. 아무것도 제대로 정돈되어 있지 않은. 어딘가 내가 제대로 생각할 수 없는 곳, 아니다. 복도는 깨끗하고 어두웠다. 모르겠어. 생각을 가다듬기 힘들었다. 꺼져. 꺼지라고.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헛소리가 튀어나왔다. 씨발놈들. 올 테면 와봐라. 아무것도 오지 않는다. 이봐. 천천히 가. 천천히 가라고.

 한 남자는 벌레가 되었다. 기계적으로 돈이나 벌어주던 그 남자는 가족으로부터 무시당하고 완전한 벌레가 되었다. 징그러운 벌레. 모두가 그를 벌레라고 쳐다보았기에 그는 완전한 벌레가 되었다. 남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 사람은 파랑색이었다. 파랑색의 일과는 검정색을 쳐다보는 것이었다. 파랑색은 검정색을 하루종일 쳐다보았다. 검정색이 커피를 마시는 것도 잠을 자는 것도 책을 읽는 것도 밥을 먹는 것도 문서를 쓰는 것도 자기 손목에 칼을 들이대는 것도 다 쳐다보았다. 오랜 관찰 끝에 파랑색은 깨달았다. 검정색도 나를 지켜보고 있었어.

 징그러운 벌레. 바퀴벌레. 씨발 책으로 후드려 패 말린 신문지로 때려죽여 전자 파리채로 지져버려. 결국 벌레는 도끼에 찍혀 죽었다. 잔인해. 어쩜 네가 벌레에게 그럴 수가 있어. 어떻게 도끼로 대가리를 찍어버릴 수가 있어. 좆까. 내가 한 게 아니야. 다른 누군가가 했으니까 알아서 치워 버리겠지. 어차피 벌레랑 나랑은 아무 상관도 없어. 내 오빠가 조금 벌레를 닮긴 했지만

 한 남자는 소송에 걸렸어. 그의 행동은 제한되었고 재판을 기다려야 했어. 경찰이 그를 죽어라 따라다녔어, 그는 발버둥쳐보았지만 소용없었어. 누구도 그에게 소송이 무엇인지 소송의 이유가 무엇인지 누가 소송을 했는지 가르쳐주지 않았어.

 검정색도 파랑색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동안 파랑색이 한 건 검정색을 지켜보고 있었다. 검정색이 여러 일을 하는 동안 파랑색을 지켜보지 않았다면 파랑색은 그 자리에 존재한 걸까? 파랑색은 애초에 무엇이었을까? 검정색이 그를 쳐다보지 않았다면 파랑색은 애초에 그 자리에 존재한 걸까?

 소송에 이의를 제기하던 사람은 총을 맞고 입을 닥쳤어. 그는 마땅히 입을 닥쳐야 했고 총을 맞는 것도 당연해. 세상은 부조리하니까. 거기에 이의를 제기하는 새끼는 어떤 병신이냐. 너네도 총이나 처맞아라. 샷건을 처맞아라. 붐스틱이다. 권총에 맞은 새끼는 일어날 수 있어도 샷건에 쳐맞은 새끼는 일어나지 못한다. 대가리에 산탄을 쳐맞아라. 헤드샷.

 애초에 파랑색에게 일을 시킨 사람은 누구야? 하얀색 유령.

 총을 쏜 사람은 터키인을 쏘았다. 그는 사람을 쏴죽였다는 이유로 사형에 처해졌다. 누구도 그의 항변을 듣지 않았다. 아니 씨발 좆같은 세상에 사람 한 명쯤 쏴죽일 수 있는 것도 아니야? 왜 사람을 죽이는 건 불법이지? 세상은 합법인가?

 전부 자기 목을 그었어. 자기 목을 긋고 바다에 몸을 던졌어. 저기 해운대 사는 놈들이나 서울 사는 놈들은 이런 인생이 태어났다는 걸 모를 거야. 목을 그은 시체 따윈 환경미화원이 와서 치워버리겠지. 뭘 위해 태어나고 뭘 위해 길러지는 거지? 누군가는 방역을 위해 시체를 태워버릴 거야. 뼈는 가루가 되어서 납골당에 들어가지도 못하겠지.

 내가 누구에게 화를 내고 있는 거지? 살아있다는 건 그냥 상태야. 바람이 불어야 살아야겠다 니애미 씨발 좆이나 까먹어 태풍에 날아가버려. 전부 그냥 목숨이 붙어있으니까 살아있을 뿐이야. 심지가 다 타지 않았으니까 살아있는 거라고 촛농이 다 녹아야 불이 꺼지겠지.

 연화야. 이 작디 작고 좁디 좁은 빡빡한 세상에 왜 우리 둘에게 이름이 있는 걸까? 이겨내야 해. 살아가야 해. 그런데 그러지 못할 것 같아.

 너무 늦었어. 도망칠 곳은 없어. 우린 이미 이 사이비 종교의 복도를 걷고 있어. 걸을 때마다 지나온 길은 무너지고 있어. 비명을 지를 수도 있어, 소리칠 수도 있어. 하지만 너무 늦었어. 왜냐하면

 우리는 서로를 쳐다보고 있지 않으니까.1)

 

 

 

 

 

 

 

 

 

 1) 라디오헤드의 ‘2+2=5’, ‘Wolf At The Door’와 카프카의 ‘소송’, ‘벌레’, 카뮈의 ‘이방인’, 폴 오스터의 뉴욕 3부작에 수록된 단편 ‘유령들’을 이 소설 내용에 맞게 잘라 편집하고 섞고 추가한 내용임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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