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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소녀 류하 시리즈
작가 : 루날
작품등록일 : 2017.7.9

비정한 청부업자들과 범죄조직들이 판치는 부산을 배경으로, 오갈 데 없는 한 소녀가 방황한다. 무기력하고 무감정한 소녀가 거친 세계 속에서 살아남으며 성장하는 하드보일드하고 피카레스크한 이야기, 지금 여기서 개막.

 
8 - 소녀는 신을 믿지 않는다
작성일 : 17-07-10 20:39     조회 : 261     추천 : 0     분량 : 4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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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사람이 많은 길은 짜증부터 난다.

 웃기는 일이다. 처음 살았던 곳은 부산대, 지금 사는 곳은 서면. 둘 다 사람이 넘쳐 흐르는 곳인데 사람이 많은 데가 짜증이 난다니. 생각해보면 집에 가만히 혼자 있을 때에도 짜증나서 여기저기를 뒹굴어 대는데, 이젠 짜증이 안 나는 곳에선 심심해서 못 버티는 게 아닐까.

 그래도 여기 광복동 거리는 짜증이 보통 거리에 비해 더욱 치솟는 거리다.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짜증이 나는 동네는 처음이다. 연화네 학교가 이 근처만 아니었어도, 아니면 그 철십자가 사건 현장이 영도다리만 아니었어도 이 동네에서 돌아다닐 일은 없을 텐데. 억지로 있기 싫은 곳에 있어야 한다니 참 평소에 운이 없는 편이라고 생각은 늘 했지만 참 지지리도 없다 싶다.

 가끔은 이 동네가 왜 다른 동네에 비해 더더욱 싫은지 생각을 해본다. 사실 이 거리에 대한 혐오는 이성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신경질적인 본능에 더 가까운 것이었다. 생리적 혐오감.

 그래도 혼자 너무 싫어하는 거 아닌가 싶어서, 언제는 한 번 내가 이 동네를 싫어하는 이유를 곰곰이 하나씩 골라본 적도 있다.

 일단 첫 번째. 사람이 쓸 데 없이 많아.

 그래도 이건 본질적으로 어쩔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하자. 이 동네는 유서도 깊은데다가 상점도 많으니까. 뭐 쓸데없이 화장품, 옷, 커피니 뭐니 나랑 상관도 없는 것들, 처 파는 것도 많아서는. 좀 꼰대스러운 생각인가. 여기까지는 나 혼자 그렇게 생각하는 걸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더 짜증나는 건 이 동네가 쓸데없이 유명하다는 점이었다. 왜 처 유명해빠진 거냐고. 부산대 앞은 적어도 학교 앞이니까. 아, 이 동네 앞은 학생이 많구나. 그럼 장사하는 사람들이 많겠구나. 그렇게 생각할 수라도 있지. 서면은 애초에 뭐 때문에 유명해졌는지도 까먹었다. 그냥 처음부터 거기는 상점이 모인 곳이니까. 그냥 신경을 끄게 된다.

 그런데 이 동네는, 뭐가 좋다고 그렇게 빨아제끼는건지.

 추억이 있는 동네, 역사와 전통이 있는 동네. 전부 개지랄.

 내 나이가 뭘 기억하고, 뭔가를 추억하며 간직하기에 모자란 나이라는 걸 알면서도, 이딴 거리에 추억할 것 따위가 없다는 건 보지 않고도 알 수 있다. 떡볶이 한 접시에 사천 원 받고 팔아처먹는 동네에 추억 따위는 지랄. 그냥 바가지에 한이 쌓인 사람들.

 바가지 처먹고 사먹는 인간들이나 바가지 못 씌워 안달인 인간이나 전부 쓰레기들이다. 있지도 않은 추억을 들이키면서 감성을 사고 팔고 앉아있다. 지랄이 염병할 노릇이다.

 그냥 서면이나 부산대에서 보던 대형 브랜드가 여기도 마찬가지로 있을 뿐인데 어디가 추억이고 어디가 옛날 감성이야. 옛날 어쩌고 할 거면 건물이라도 옛날 풍으로 뜯어고치고 개소리를 했으면 좋겠다.

 억지로 인파를 비집고 내려간다. 내려가면 갈수록 눈에 띄는 높은 건물들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눈살이 절로 찌푸려진다. 넓은 길에서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이 묘하게 행복해 보여서 재수없다. 개새끼들. 그래, 행복하게 살라지. 다 뒤져버렸으면 좋겠다 그냥.

 길 건너 커다란 백화점이 하나 보인다. 롯데백화점은 이 동네 랜드마크다. 랜드마크일 수밖에 없는 게 주변은 전부 차도라 아무것도 없는데 혼자 우뚝 서 있는게 황량한 벌판 위에 세워진 마왕의 첨탑같다.

 꼭대기에 눈알을 꽂아놓은 탑이 나오는 영화가 있었는데 그 영화 이름이 나니아 연대기였던가, 반지의 제왕이었던가. 영화를 잘 안 봐서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무튼 눈치도 없는 백화점 새끼.

 그리고 횡단보도를 건너고 길을 걸으면, 우리의 영도다리.

 쇠 십자가에 매달린 시체가 발견되었다는 영도다리.

 그래, 정신없이 걸어서 여기까지 다다랐구나. 나는 난간에 기대어 앉았다. 길을 지내는 사람이 있건 말건 신경 쓰이지 않았다. 다리가 아프다고. 내 다리가 아프다는데 무슨 지랄들이야.

 그 진한인가 뭔가 하는 인간이 이 다리 밑에서 죽어서 발견됐다. 아직 진한인지 아닌지 누가 뭐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진한일 것이다.

 아니다, 죽기는 했을까. 막 사흘만에 부활하고 그러는 거 아니냐.

 그나저나 미친놈들 같으니, 이 다리는 건너자마자 경찰서인데. 더 웃긴 건 시체는 다 불어터진 다음에야 발견됐다. 그동안 경찰은 뭘 하고 있었을까. 참 여기 누가 뛰어내서 빠져 죽어도 모르겠다.

 난간 아래를 쳐다보았다. 아직도 손짓하는 그림자. 뛰어내려. 자꾸 뛰어내리라는 말이 귀에속삭인다. 그제야 생각이 났다. 지하실의 시체. 그 그림자가 나에게 뭐라고 했는지.

 몸을 마구 긋고, 목을 조르고, 벽에 머리를 처박던 순간마다 생각했다.

 물에 빠져 뒤지면 좋읉텐데.

 그리고 지금 바로 그 생각이 들었다. 몸을 휘감는 바닷물. 입 안으로 짠물이 밀려오겠지. 몸은 물 속에서 허우적거릴 것이다. 숨막히는 바닷속에서 느껴지는 부유감. 고통없이 목을 조르는 죽음.

 다리 난간에 걸터앉았다. 아차 하는 순간에 빠져버릴지도 모른다. 뭐, 주변에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희안한 눈길로 쳐다볼 뿐,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길 건너 경찰서가 있긴 하지만, 바닷속 시체를 다 불어터진 다음에 찾아내는 인간들한테 뭔가를 기대하고 싶지는 않다.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익사가 편하냐니, 무슨 소리야?”

 “사람 다양하게 죽여봤을 거 아니에요. 패죽이기, 찔러죽이기, 차에 치어 죽이기, 떨어뜨리기, 감전사는 해봤나? 이건 안해봤을 거 같은데. 물에 빠뜨려 죽여본 적은 없어요?”

 “몇 번 없긴 하지만 있기는 해.”

 “얼마나?”

 “글쎄. 그냥 바닷속에 던져버리는 건 생각보다 성공률이 낮더라고. 죽고싶어하는 인간은 별로 없잖아. 특히 현상금이 걸리는 사람은. 그래서 억지로 헤엄쳐서 사는 사람이 꽤 되더라고.”

 “그걸 헤엄쳐서 살아요? 기력도 좋아.”

 “그래, 덕분에 그 놈을 다시 찾아서 확인사살하느라 죽는 줄 알았지.”

 한현은 차를 마셨다. 그에게도 아삼은 독한 차일까. 여러 차를 경험해봤으니까, 오히려 그에게 아삼은 덜 독한 축일까. 그는 차를 마시면서 표정 하나 바꾸지 않았다. 익숙하다는 듯. 하지만 그의 태도에서 씁쓸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지금 마시는 아삼의 떫음과 같은.

 “뭐, 남의 얼굴만 따로 물속에 처박아서 처리한 적은 있어. 그 다음에 바닷물에 던져놓으면 대충 익사라고 다들 생각하거든. 물고문하다가 실수로 죽는 경우도 있고. 이때는 손발을 묶어놓지 않으면 안 돼. 왜냐면 미친 듯이 살려고 발버둥치니까. 솔직히 혼자 하긴 힘들어. 애 머리 물 속에 처박는 것만 해도 살려고 발악하는데 몸부림까지 치면 보통 체력으로는 아무래도 무리지.”

 “저기.”

 “게다가 애들 뱉어내는 침이나 눈물, 토악질 같은 게 물속에 섞여서 더러워. 머리 붙잡고 물 속에 담그다 보면 손에 그게 안 묻을래야 안 묻을 수가 없는데 그걸 씻어내는 게 엄청 귀찮지. 게다가 그 새끼 머리 흔드는 그 느낌이 손에 남아있는 게 당장 손에 남아있는데 기분이 더럽지.”

 “…….”

 “너네 오빠가 총을 썼던 데에는 다 이유가 있어. 칼 쓰는 것도 기분 더럽다는 인간도 있는데, 그러니까 소담이 그 새끼가 미쳤다는 소리를 듣는 거야.”

 “제가 듣고 싶은 건 그런 게 아니에요.”

 “그럴 것 같았어. 넌, 물에 빠져 죽는 게 궁금한 거지?”

 “네.”

 한현은 눈을 지그시 감고 다시 한 모금, 차를 삼켰다.

 “솔직히 잘 몰라. 확인을 하려고 해도 물 속은 잘 안 보이니까.”

 찻잔을 내려놓고, 한현은 말을 이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대야에 머리 박아서 죽는 거랑 별 차이 없더라고. 손발을 묶이는 대신에, 손으로 목을 붙잡고, 온몸을 발버둥치며 괴로워하는 거 정도만 빼면.”

 

 난간에서 내려왔다.

 아주 뛰어내리고 싶지 않았던 건 아니다. 목이 졸리는 상황에서도 느껴지는 부유감에 대한 로망. 아예 사라진 건 아니니까. 한현의 말이 크게 무서웠던 건 아니다. 정말로, 그게 무서워서 뛰어내리지 못한 건 아니다.

 그냥, 하찮은 목숨을 내다버릴 용기가 없었을 뿐이다.

 잠깐만, 그걸 용기라고 불러야 할까? 목숨을 버리는 데 쓰는 것도 용기인가? 쓸데없는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머리는 점점 복잡해져 가고.

 침착하자. 쿨해지자. 늘 그러려고 했듯이.

 나는 어디라도 내가 편한 장소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바닷속이라면 편할 줄 알았다. 저렇게나 커다란 그림자가 반갑다고 손을 흔들어주는 게,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것처럼 보였다. 분명히 그냥 미역 같은 게 물살에 흔들리는 것이겠지만 조금이라도 정신을 놓으면 환각이 머릿속을 지배해버리고 만다. 어서 와. 어서 와. 여기는 편할 거야.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바닷속 또한 괴로움과 절망의 연속이라면. 한현이 말한 대로라면.

 아, 한현의 말을 두려워하고 있는 게 맞는 걸까. 머릿속이 복잡에 복잡을 거듭해 간다. 더 이상은 내 마음속을 괴롭히지 마.

 그래도 아직은 진정할 수 있다. 통제 가능 범위라고.

 누구든지 옆에 있어줄 사람이 필요했다. 연화라면, 연화라면 나를 구해줄 수 있을 거야. 연화의 이름을 떠올리자 조금이나마 마음이 편해졌다. 연화의 옆에서라면 나는 좀 더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다. 연화는 나를 이해해주니까. 연화는 나를 이해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니까.

 그냥 단순한 기호의 교환이 아니라, ‘대화’를 할 수 있는 친구니까.

 지금 여기에서 연화네 학교로 출발한다면, 시간에 딱 맞출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내가 조금 빨리 도착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먼저 가서 기다리는 것도 꽤나 재미있는 일이다.

 오늘 연화를 만나면, 무슨 대화를 할까.

 맞아, 뉴욕 3부작을, 다는 아니지만 그래도 세 단편 중에 두 번째 단편 정도는 읽었지. 저번에 못 만나서 이야기 못했는데, 그 소설 이야기라도 해볼까.

 아니면 저번에 홧김에 훔쳐간 책 이야기를 하는 것도 괜찮겠다. 아니다, 이건 끝까지 숨겨놓는 게 좋으려나. 그래야 책 하나를 공짜로 얻을 수 있으니까.

 어쩌면 밴드 이야기를 해 보는 게 좋을지도 몰라. 요새 사무소 일도 바쁘고 책도 읽느라 베이스 연습을 하나도 못했다. 게다가 연화한테 내가 베이스 친다고 한 적이 한 번도 없구나.

 밴드라도 한번 하자고 해볼까. 정말 그냥 한번 막 던져보는 소리지만.

 걱정이 줄어들었다. 발걸음은 가벼워졌다. 걸어가는 속도가 좀 더 빨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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