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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소녀 류하 시리즈
작가 : 루날
작품등록일 : 2017.7.9

비정한 청부업자들과 범죄조직들이 판치는 부산을 배경으로, 오갈 데 없는 한 소녀가 방황한다. 무기력하고 무감정한 소녀가 거친 세계 속에서 살아남으며 성장하는 하드보일드하고 피카레스크한 이야기, 지금 여기서 개막.

 
2 - 소녀는 신을 믿지 않는다
작성일 : 17-07-10 20:36     조회 : 231     추천 : 0     분량 : 4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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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고등학교. ‘평범한’ 인생을 살았더라면, 나도 지금쯤 여기 다녔어야겠지.

 하지만 내 인생은 고등학교를 다닐 정도로 충분히 평범하지 못했다. 고작해야 의무교육이라는 중학생까지가 다였다. 어차피 고등학교를 나와서 뭔가 하고 싶은 일도 없었고, 어딘가 팔자를 펼 것 같지도 않았다. 사람이 고졸은 해야 먹고 살 수 있다지만, 애시당초에 딱히 먹고 살 이유도 못 찾겠는데 고졸이 웬 말이냐. 이미 어디 매여 사는 좆같은 경험은 중학교로도 충분했다.

 오빠는 죽는 순간까지도 내가 고등학교에 다니는 줄 알았을 것이다. 애초에 일 년에 한두번 만나는 게 고작인 인간이었으니까. 그 점에선 다행이라 하겠다. 내 입장에서도, 오빠 입장에서도.

 그래서 내가 가지지 못한 창창한 앞날을 가진 이 학교 학생들을, 부러워해야 하나?

 복도를 헤메는 중에 화딱지 난 선생의 버럭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중학생때도 저런 부류는 많았다. 고집 센 깡패들의 충돌. 다만 한 쪽은 어린데다 정당함이 없고, 다른 한 쪽은 나이가 많은데다 기계적인 정당함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충돌은 어떤 내용이든 보는 사람의 기분을 망쳐버린다.

 중학교 안의 인간 군상은 여럿으로 나뉘고, 복합적으로 겹치기도 했다. 하나는 하루살이들. 앞날도 막막하고, 그렇다고 하고 싶은 게 있는 것도 아니고, 그걸 일찍 알아채고 발버둥치는 부류들. 선생이랑 곧잘 충돌하는 것도 이런 부류다. 물론 개들 중에는 융통성 있어서 선생들 비위 잘 맞춰주는 애도 있는가 하면, 교실도 조그마한 사회라고 거기서 왕이라도 되어보려 했다가 민주주의의 참맛을 깨닫고 몇 달 내지 몇 년을 구석에 찌그러져 보내는 녀석들도 있다.

 그리고 기계들이 있다. 이 녀석들은 하루살이랑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자기 앞날이 막막하다는 걸, 자기가 하고 싶은 게 없다는 걸 자기도 잘 모른다. 어쩌면 막연하게 있을지도 모르고 그런 게 없다는 걸 스스로 알고 있는 경우도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 녀석들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애들이다. 그 결과가 잘 나왔건 못 나왔건, 그저 하라는 대로 할 뿐이다. 만약 수행평가가 사람을 죽이는 거라면 사람도 죽일 놈들이다.

 하나는 또 몽상가들이다. 어딘가 제정신이 아닌 녀석들. 대체로 유쾌한 녀석들이다. 자기 앞날 볼 줄 아는 능력은 없어도, 상상력만큼은 풍부한 녀석들이다. 나는 프로게이머가 될 거야. 나는 소설가가 될 거야. 라고 하는 애들. 개들 중 능력 있는 녀석은 어쩌면 정말 그 상상을 현실로 바꿀지도 모르지. 하지만 대부분은 능력 부족으로 현실과 타협하거나 날개를 꺾어버리겠지. 애초에 그럴 능력이 있는 놈이라면 이런 데 살지도 않겠지.

 남은 하나는 유령들이다.

 지켜본 다음에야 ‘아, 저런 애가 우리 반에 있었구나.’하고 깨달을 수 있는 아이들. 그러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누구더라?’ 하고 까먹게 되는, 그런 아이들.

 왕따를 말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보기에 따라서는 왕따보다 더 심한 상황일지도 모르겠다. 누군가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그 자리에 없다는 뜻이니까. 그렇다면 그 반에서 그 아이는 그대로 배경화면이 되는 것이다. 사회에 명목상으로는 속해있지만 사실은 속해있지 않은 주변인.

 대체 무슨 생각을 하다가 여기까지 오게 된 거지. 고등학교. 복잡한 생각을 들게 하고 기분을 나쁘게 만드는 공간. 중졸까지만 하고 그만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들에서 벗어나게 해 줄 탈출구가 보였다. 서고. 연화가 있는 곳. 물 안에 있다 뛰쳐나온 사람처럼 서고 문을 열었다. 열자마자 시간이 멈춘 사람처럼 연화가 책을 들고 서 있는 게 보였다.

 “늦게 왔네.”

 사람 따위는 배려하지 않는 책들의 공간에 문학소녀가 서 있다. 다른 사람이었더라면 어울리지 않았겠지만, 연화가 그 자리에 서 있으니 무엇보다도 자연스러웠다. 어쩌면 사람이 아니라 책에서 튀어나온 유령이 아닐까. 그러면 좀 더 이 분위기가 말이 될까.

 “미안, 어쩌다보니 일이 길어져서.”

 일이라고 해봤자 그 한현 아저씨네들과 노는 것 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놀다 오느라 늦었다’고 말할 순 없는 거 아닌가. 이유 없이 진땀이 흘렀다.

 “아니, 미안할 건 없어.”

 다행히 아무 신경도 안 쓰는 모양이다. 속으로만 한숨을 내쉬었다.

 “전에 빌려간 책은, 다 읽었어?”

 “그, ‘뉴욕 3부작’ 말이지?”

 “맞아. 혹시 빌려놓고 까먹은 건 아니지?”

 까먹지는 않았다. 다만 첫 페이지부터 무슨 말을 하는지 못 알아먹겠어서 잠시 덮고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을 뿐이다. 물론 그 뒤로 손이라곤 한번도 대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처음엔 아예 훔쳐 갈 생각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대출 반납이 되어버린 거지.

 “대답 안 해?”

 연화가 무표정하게 고개를 갸웃거린다. 짓궂다. 그 짓궂음이 날 땀흘리게 만든다.

 “아, 아직 다 못 읽었어.”

 “혹시 첫 페이지만에 나가떨어져서 포기한 건 아냐?”

 “아냐, 아냐아냐아냐.”

 이건 들켰다. 내가 생각해도 티가 너무 심하게 난 것 같다.

 “폴 오스터는 그러라고 있는 작가라서 괜찮은데.”

 “무슨 뜻이야?”

 “그 책. 나도 읽다가 포기했어. 아니, 다 읽었는데 기억이 안 난다고 해야 하나.”

 어쨌거나 그걸 다 읽긴 읽었다는 소리구나. 역시 문학소녀는 문학소녀인 모양이다. 대단해. 그런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연화가 존경스러워 보이기 시작했다.

 “아.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두 번째 단편 정도는 생각나는 것 같아. 탐정 나오는 거라서.”

 “탐정 좋아해?”

 “글쎄……. 굳이 따지면 좋아하는 편일까? 매튜 스커더?”

 “셜록 홈즈가 아니라?”

 매튜 스커더? 나는 탐정이라고는 셜록 홈즈밖에 모른다.

 “홈즈는 다들 아는 탐정이잖아? 나는 매튜 스커더의 원죄론적인 세계관이 마음에 든다구.”

 원죄론적 세계관?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탐정이라고 하니 갑자기 한현이 생각나서 묘하게 기분이 나빠졌다. 한현은 날 속여먹은 사람이 아닌가. 그런 인간의 집에서 얹혀 사는 나도 이상한 사람이지만. 아. 아무튼 한현은 나쁜 사람이다. 머릿속이 복잡하다. 그냥. 기분 나빠.

 아. 잠깐 기분 나빠했더니 연화가 이상하다는 듯 날 쳐다보고 있다. 내가 멋대로 대화의 흐름을 끊은 걸까. 헛기침을 조금 했지만 다시 아까 전의 주제로 돌아가기는 힘들어보였다.

 그때, 연화의 손목에 눈길이 갔다.

 손목에 붙은 반창고.

 손목을 다칠 일이 뭐가 있을까. 가장 생각하기 쉬운 건 아무래도 운동이다. 농구나 배구 같은 운동이라면 손목을 다칠 만하겠지. 하지만 운동을 하다 손목을 다치는 건 부러지거나 삐는 게 일반적이다. 부러졌다면 고작 반창고 하나로는 끝나지 않을 거고, 삐었다고 해도 파스를 쓰는 게 더 자연스러울 것이다. 무엇보다도 삔 것 치고는 연화는 손목을 자유롭게 쓰고 있다.

 애초에 연화가 운동을 열심히 할 것 같지도 않지만.

 운동이 빠지면 정말 가짓수가 줄어든다. 연화가 주먹다툼을 할 성격으로는 안 보이지만, 싸움을 할땐 보통 면상부터 후려갈기지 쪼잔하게 손목을 먼저 때릴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건 내가 해봐서 아는 것이다.

 생활에서 난 상처? 책장 넘기다 손가락 베이는 거면 모를까 손목을 다칠 일은 없을 것이다. 애초에 생활에서 손목을 다친다고 해도 삐는 게 보통. 그러면 또 파스 이야기로 넘어가고.

 사실, 이렇게 빙 둘러서 말해도 나는 이유를 이미 알 것 같았다. 애초에 내가 처음에 그 반창고를 보자마자 들었던 그 생각이 착각이 아무래도 착각이 아닐까, 괘씸한 생각이지만 그래도 부디 착각이 아니길 바라며 이런 저런 가능성을 배제한 것일 뿐이다.

 자해.

 자해만 해도 목을 조르고 벽에 머리를 박는 등 여러 방법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손목 긋기.

 손목을 그냥 한 두 번 긋는 걸로 큰 상처는 나지 않는다. 하지만 꾸준히, 수십 차례 긋는다면. 상처 위에 또 상처를 낸다면 반창고 수준이 아니라 응급실에 가야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연화는 나와 만나기 전부터 자해를 계속 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손목에 한 땀 한 땀 가느다란 자국을 새기고 있었던 게 아닐까.

 그런 거라면 우리는 어쩌면 서로를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괘씸한 망상이다. 친구가 스스로를 상처 입히며 살아가는 사람이기를 바란다니.

 하지만 꼭 확인해보고 싶었다. 내가 첫눈에 연화와 친해질 수 있을 거라 믿었던 게, 바로 그 추측 때문이니까. 어떻게 물어봐야 할까. 최대한 아무 생각 없는 척. 아니다, 역시 안 물어보는 게 좋을까. 그래도 알고 싶다.

 “저기 있잖아.”

 억지로 입을 열었다. 몸이 후들거렸지만 억지로 멀쩡한 척 있었다. 연화는 무표정하게 나를 쳐다보았다.

 “그, 손목은 어쩌다가, 다친 거야?”

 연화는 본능적으로 손목을 가렸다. 내가 예상한 게 맞은 걸까. 아무래도 역시 괜히 물어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의 적대감이 서린 눈빛. 연화는 자꾸만 반창고 붙은 손목을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어색한 시간. 뭐라도 말할까. 침묵은 늘 견디기 힘들다. 분위기를 깨자. 뭐라도 해야 하는데.

 “저기, 말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가르쳐줄까?”

 연화가, 이제껏 보여준 적 없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아니다, 표정이라기에는 너무 텅 비어버린 모습이었다. 단순히 무표정하다고는 말할 수 없는 표정. 유령을 마주하는 기분. 당장에라도 제자리에서 도망치고 싶었지만, 나에게는 어딘가 익숙한 느낌.

 연화는 손목에서 반창고를 거칠게 뜯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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