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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다시 태어난다 해도 그대
작가 : 장윤봉
작품등록일 : 2017.7.6

여자는 죽어서라도 남자를 다시 만나고 싶지 않았다.

남자는 여자의 다음 생 끝까지라도 따라가고 싶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죽는 그 순간 간절히 빌었다.

그 사람을 다시 만나지 않게/만나게 해달라고.

그리고 하늘은 두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었다.

www_yppah@naver.com

 
역병 (2)
작성일 : 17-07-10 18:31     조회 : 287     추천 : 2     분량 : 4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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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 나와 함께 개경에 가자꾸나."

 

 혼기인 여인에게 사내가 고향을 떠나 자신과 함께 가자는 것은 기실 청혼이나 다름없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게으른 놈이니, 호래자식이니 하던 상대의 '옜다, 위로'에 넘어가 할 말은 아니었다.

 

 "...그건 개경식 농입니까?"

 

 너무 황당한 상황인지라 소명은 이 말이 무슨 뜻일까, 생각할 틈도 없이 농담이라 치부해버렸다.

 

 태자는 그 말을 듣고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 아니, 이 말을 하려던 것이 아니라,

 

 "마, 말이 헛나온 것이다!"

 

 입 밖으로 내려던 말과 입속에 숨겨야 할 생각이 뒤바뀌었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터질 것 같은 얼굴로 벌떡 일어나 자기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나는 더는 못된 척, 무력하게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다.`

 

 소명의 위로에 힘을 얻은 그는 그녀가 듣는 앞에서 다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무의식중에 자신의 위로가 되어준 그녀를 곁에 두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입 밖으로 치고 나가 버린 것이다.

 

 멍청한 놈아! 그걸 헷갈리면 어떻게 해! 애꿎은 자신의 머리를 쳐보았지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죄가 있다면 그 방정맞은 입에 있는 것을.

 

 

 

 그 날 밤 이후 소명은 내리 이틀 동안 태자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인생 최대의 흑역사를 만들어버린 그가 소명을 피해 다닌 탓도 있었지만, 그녀로 인해 굳건해진 책임감이 그를 병자들 곁에서 떠날 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그의 노력은 결국 보상받지 못했다.

 

 "송구하옵니다, 태자 전하. 치료법을 알아내지 못했나이다..."

 

 의원은 침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약초꾼인 정하와 함께 증상에 맞는 약을 써봤지만, 차도를 보이는 병자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어느덧 살아있는 병자는 열 명도 채 남지 않았다.

 

 "확실한 것은 병자들이 숨을 거두기 전, 기침할 때 코와 입을 통해 옮긴다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듣자 이틀 전 기침하는 아이 앞에서 무방비로 노출될 뻔했던 소명이 떠올라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그 아이도 옆방에 누워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방법으로 병이 퍼질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장군님의 마을은 지리상 남쪽으로 가는 길목에 자리 잡고 있다고 하니 그곳에까지 병자가 나온다면 걷잡을 수 없을 겁니다."

 

 그의 말은 절망적이었다. 병이니 당연히 치료법도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이 안일했다. 태자는 결국 이 백성들을 포기해야 한다.

 

 "이 마을을 불태우고... 우리도 속히 떠나야 된단 말이군."

 

 두 사람이 캄캄한 절망감을 나누고 있던 그때였다. 밖에서 누군가 인기척을 내며 문을 열고 들어섰다.

 

 "송구하옵니다. 본의 아니게 이야기를 다 듣고 말았습니다."

 

 "장군님."

 

 "장군님이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전하. 그저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어 끼어들었으니 부디 용서하십시오."

 

 마침 의원에게 물을 것이 있어 그의 방을 찾았던 장군은 `태자`라는 말에 놀라 문 앞에 서서 두 사람이 나누는 이야기를 모두 듣고 말았다.

 

 "의원님 말씀대로라면 누군가는 이곳에 남아 마을을 수습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부디 소인이 그 일을 할 수 있게 맡겨주십시오, 태자 전하."

 

 장군의 말대로였다. 결국, 누군가는 역병이 퍼질 대로 퍼진 이 마을에 남아 모든 것을 불태워야 했다.

 

 "다 같이 해결하면..."

 

 "전하, 이 일을 통해 업을 쌓는 것은 저 하나로 족합니다."

 

 결국, 산 사람까지도 죽여야 하는 일이었다. 병자들이 병을 옮긴다는 것을 안 이상 그들까지 모두 불타 없어져야만 했다. 모두 숨을 거둘 때까지 기다리기엔 위험부담이 컸다.

 

 태자는 다시 한 번 그를 만류하려 했으나 눈빛이 결연했다.

 

 "...아직 숨이 붙은 자들에겐 애석한 일이지만 그들까지 모두 죽여야만 하오."

 

 곧 죽을 목숨이라는 것을 알지만 살아있는 사람까지 죽여야 더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사실은 너무도 끔찍했다.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사실이 더 그러했다.

 

 "맡겨주십시오."

 

 

 

 병자들의 열을 조금이나마 내리기 위해 이마에 얹었던 머릿수건을 새것으로 갈아주고 방으로 돌아와 한숨 돌리려던 때였다.

 

 "소명아, 자느냐?"

 

 "아닙니다, 아버지. 들어오세요."

 

 장군은 소명의 앞에 앉더니 뭔가 망설이는 사람처럼 쉽사리 입을 열지 못하고 촛대니, 문고리니 하는 것들을 괜히 한 번씩 만져보면서 딴청을 피웠다.

 

 아버지가 이렇게 야심한 시각에 온 것을 보면 분명 급하게 할 얘기가 있는 것이 분명한데 소명은 그의 의중이 무엇인지 그저 의아할 뿐이었다.

 

 "저, 그... 소명아, 네가 올해로 몇이더냐."

 

 "? 열일곱이지요."

 

 "그래... 네가 벌써 그렇게 자랐구나."

 

 그는 과년한 딸의 손을 잡아보았다.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손을 아무리 활짝 펼쳐도 자신의 손바닥도 채우지 못했던 것 같은데 언제 이렇게 장성했는지, 혼자 힘으로 자란 것만 같아 대견할 따름이었다.

 

 불타는 집과 그녀를 뒤로 한 채 이 핏덩이를 안고 도망쳐 온 것이 벌써 17년 전이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이 마을이었고 이 아이만큼은 절대 잃지 않으리라, 결심하며 딸을 키웠다.

 

 그리고 이제 그 딸을 손에서 떠나보내야 할 때가 된 것 같았다.

 

 "소명아, 고맙다."

 

 장군이 소명에게 하고 싶은 말은 훨씬 많았지만, 이 정도로 끝내기로 했다. 그녀는 도무지 자신의 아버지가 갑자기 왜 이런 얘기를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피곤하기도 했고 아버지도 피곤해서 그러신가 보다, 하고 넘어갔다.

 

 딸의 손등을 쓰다듬는 아버지는 그저 웃고만 있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의원은 밤새 몇 가지 약재를 가지고 제조한 약을 병자들에게 먹일 물에 섞었다.

 

 "이 약을 먹으면 일다경(一茶頃) 이내에 잠들어 결코 깨어날 수 없을 겁니다."

 

 태자는 어떻게 해서든 병자들을 편안하게 보내주고 싶었다. 남은 이들은 이따금 정신을 차려도 여기가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의식이 희미해져 있었지만 그래도.

 

 의원에게 다른 방도가 없음을 들은 모두는 절망했지만 끝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특히 소명은 자신의 아버지가 마지막을 책임질 거란 말에 함께 하겠다고 했지만, 태자와 마찬가지로 장군의 완강함을 꺾을 순 없었다. 결국, 금방 마을로 돌아가겠다는 약조를 다섯 번은 받아낸 후에야 물러났다.

 

 병자를 돌보던 이들은 결국 아무도 구하지 못했다는 죄스러운 마음 반, 부디 병마에서 벗어나 편안해지길 바라는 마음 반으로 병자들의 입에 약물을 흘려 넣었다.

 

 이윽고 내내 꿈에서도 고통으로 신음하던 그들에게 평안함이 찾아왔다. 그 모습을 보는 일행의 마음은 편치 않았지만, 장군에게 마지막을 부탁하고 돌아섰다.

 

 소명은 왠지 모를 불안감에 마을을 나서면서도 계속 뒤를 돌아보았다. 분명 금방 돌아오겠다, 약조하셨는데도 왠지 모를 불길한 기분이 그녀를 감싸고 있었다. 발은 그녀의 마을을 향해 가고 있었지만, 마음은 아버지가 계신 곳으로 거꾸로 가고 있었다.

 

 한참 걸어온 일행은 언덕 위에 잠시 멈춰 지나온 마을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 보이는 마을 어귀에서부터 연기가 치솟기 시작했다. 짚을 얹은 지붕에 던져진 불은 금세 마을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초가가 손톱만 해 보일 정도로 멀리 떨어진 그들의 코에도 매캐한 냄새가 닿을 정도로 삽시간에 화마가 마을을 집어삼켰다.

 

 "이제 돌아가자. 장군님도 금방 뒤따라 오실게다."

 

 태자의 말에 소명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돌아섰다.

 

 사흘 만에 돌아온 마을에는 서경에서 합류한 염과 견룡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에게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알리기 전에 옷을 갈아입기 위해 집에 들른 소명은 간략하게 챙겨갔던 짐 꾸러미에서 서신을 발견했다.

 

 `소명이, 보거라. 이 아비는 역병에 걸려 돌아갈 수 없구나. 아비를 대신해 마을 사람들을 잘 부탁하마. 감히 허락된다면 부디 다음 생에도 너의 아비가 되게 해다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내 딸, 사랑한다.`

 

 글은 길지 않았다. 이게 지금 무슨 일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몸은 이미 뛰어나가고 있었다.

 

 "어딜 가는 것이냐?"

 

 집 앞에 있던 견룡의 말에 급히 올라타는 소명을 보고 태자가 물었지만, 그녀는 대답 대신 손에 들고 있던 서신을 떨어트리고 고삐를 잡았다.

 

 "빌어먹을!"

 

 서신을 훑듯이 본 태자가 짧게 욕설을 뱉고 이미 멀어져가는 그녀를 쫓아 말을 몰았다.

 

 

 

 장군은 마루에 앉아 병자들에게 먹이고 남은 약물을 들이켰다. 과연 의원의 말대로 머지않아 눈꺼풀이 천근만근 무거워졌다.

 

 "시노 아씨, 저는 여기까진가 봅니다. 부디 우리 소명이 앞길은 아씨가 밝혀주십시오."

 

 그는 손바닥 위에 한 쌍의 가락지를 내려다보며 혼잣말을 남겼다. 특이한 모양의 음각이 새겨진 맑은 흰 빛의 백마노 가락지였다.

 

 `이보오, 이 공(公)!`

 

 머릿속에서 들린 목소리였을까. 간신히 고개를 들어보니 앞에 그리웠던 그녀가 이전과 똑같은 모습으로 서있었다.

 

 "꿈에도 한 번 안 나와주시더니..."

 

 `오늘 나 활 쏘는 것 가르쳐준다 하지 않았소. 어서 갑시다!`

 

 "그래요. 어서 갑시다.."

 

 "아버지!!!"

 

 장군이 눈을 감기 직전 그녀의 환영은 사라지고 저 멀리서 뛰어오는 딸의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더는 말을 할 힘도 없었다.

 

 `소명아... 이 아비는 이제 좀 자야겠다...`

 

 잠드는 것과 동시에 그의 몸이 화염에 휩싸였다. 소명의 눈앞에서.

 

 "아, 아버지... 아버지이!!!"

 

 거짓말이다.

 이것은 아주 고약한 거짓말이다.

 

 당장에라도 불 속으로 뛰어들 기세였던 그녀는 태자의 손에 잡혀 더는 다가갈 수 없었다.

 

 "놔! 놓으라고!! 아버지!! 아버지!!"

 

 소명의 절규 섞인 울음소리는 화마까지도 주춤할 만큼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그녀는 이렇게 천애 고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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