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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미안해,너를 사랑하고 있어
작가 : 조세핀D
작품등록일 : 2017.6.27

사랑하는 남자와의 결혼 허락을 받기 위해 엄마를 찾아갔다.
약혼녀가 있는 남자와의 결혼은 절대로 허락할 수 없다는 엄마. 엄마에게 모진 말을 남기고 길을 걷다가 정신을 잃고 눈을 떴더니, 다른 세상이다. 인혜가 아닌 아랑으로 살아야 하는 세계.
친절한 노모에게 속아서 벙어리 공주 대신 '환'이라는 거대제국에 조공물품이 되었다.
화려하고 잔인한 남자의 밤시중을 들게 되는데... 강압적이었던 밤의 기억이 트라우마처럼 남아버렸다. 냉정한 세계에서, 살아갈 목적을 찾기 위해 발버둥치는 인혜.

'난, 왜 이곳으로 오게 된 걸까? 벌 인걸까? '

가장 보잘것 없는 신분으로서 이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치열해질 수 밖에 없다. 각자, 자신의 세상을 지키기 위해서는 이기적일 수 밖에 없게되고, 그 속에서 펼쳐지는 배신과 사랑....

황권을 쟁탈하기 위한 환 제국 왕자들의 다툼 속에서 원치 않던 정치싸움에 휘말려버리게 되고...지극히 계산적이고 이기적인 남자. 환의 태무황자는 어느새 그녀를 마음에 담아버린다.

자신이 남긴 상처때문에 차마 사랑을 고백 할 수 없게 되어 버린 남자. 태무.

"미안해. 그렇지만 그대를 사랑하고 있어."

수없이 연습했던 고백을 그녀에게 할 수 있을까.

생존과 욕망, 그리고 사랑. 그 속에서 서로의 의미를 찾아가는 판타지 로맨스.

 
1장. 혼란 4
작성일 : 17-07-10 17:37     조회 : 299     추천 : 0     분량 : 87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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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의 대화체는 ","로 수정.

 

 혼란4.

 

 "아니, 이렇게 섬세한, 세공이!! 사라사 아가씨, 이런 물건은 대체 어디에서 구하신 겁니까?"

 

 "그건 알려줄 수 없어요, 자꾸 감탄만 하지 말고, 얼마에 쳐 줄 수 있는지나 얘기해 봐요."

 

 한참이나 팔찌를 조물락 거리며 감탄사만 연발하던 상인이, 그러나 표정을 어둡게 굳히며 대답했다.

 

 "아가씨, 사실 이렇게 섬세한 세공은 가히 최고라고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보아하니 완전한 금이 아닌 듯 보여서 저도 어떻게 가격을 매겨 드려야 할지..... "

 

 상인의 우물쭈물한 대답을 듣고 있던 사라사가 상인의 손에 있는 팔찌를 가로챘다.

 

 "가격을 책정할 수 없을 만큼 귀하다는 거군요! 그런데 왜 자꾸 쪼물락 거려요! 팔찌 닳게! 안 살거면 내놔요. 다른 후궁아가씨들한테 팔려다가 그간의 정을 생각해서 내놔봤더니 원.쯧쯧."

 

 애늙은이 처럼 혀 까지 차며 팽 돌아서자, 갑자기 다급해진 상인이 다시 손을 뻗으며 말했다.

 

 "아, 안됩니다! 제가 제대로 값을 쳐드릴게요, 아가씨도 아시다시피 제가 아니타국 뿐만아니라 여기 환국의 상인들의 거래를 빠삭하게 꿰고 있는 부상회원 아닙니까(부자되는 상인 연합회)!! 제가 당장은 가진 금화가 없지만 금자 20개를 내어 드리겠습니다."

 

 "20개라뇨? 이거 너무 하는거 아닙니까? 비키세요, 다른 곳에 팔겠어요!"

 

 "아, 잠시, 잠시만요. 알겠습니다. 그럼 22개!"

 

 "40개!"

 

 "네? 안됩니다. 그럼 25!"

 

 "40개!"

 

 "그,,,그런.. 그럼 네 좋습니다.! 35개! 어떠세요? 이 이상은 더 이상 저도 안 됩니다!"

 

 사라사 옆에서 시녀 복장으로 가만히 서 있던 인혜가 상인의 눈을 피해 사라사에게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헴. 좋아요. 특별히 그것만 받죠."

 

 "아이고, 잘 생각하셨어요, 사라사 아가씨~~ , 누구도 그 가격으로 쳐주기 어려울 겁니다. 아시다시피 태무황자님의 상단으로 들어갔다면 이 값의 반도 못 받았을 거에요~"

 

 태무황자의 이름이 나오자 순간 몸을 움찔거리는 인혜를 느낀 사라사는 얼른 다른 주제를 던졌다.

 

 "그나저나 물어볼게 있는데, 요즘에도 장린(태무 황자의 총애를 받고 있는 후궁)은 목욕할 때 어떤 향낭을 쓴데요?"

 

 팔찌를 소중히 갈무리 하던 상인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뭐, 장린마마님이야 제일 비싼 향낭을 쓰시죠. 최근에 려국에서 들여온 향낭을 쓰시나 보던데 그게 아주 피부가 하얘진다고 소문이 나서, 너도나도 찾고 있지요."

 

 려국이란 이야기가 나오자 또 한번 아랑(인혜)을 흘긋 한 사라사는, 그러나 려국이라는 단어에 크게 반응을 보이지 않자 다행이라고 여기면서도 이상하게 생각했다.

 

 "이봐요, 우리가 아주 획기적인 향낭을 만들어서 팔까 하는데 다음에 올때는 어떤지 한번 봐줘봐요."

 

 "향낭이요? 그건 이미 독점으로 들여오는 상단이 따로 있어서 경쟁력이 그다지 없으실 텐데요."

 

 "그런것은 걱정말고, 담에 오면 한번 봐줘봐요 알겠죠? 그리고 오늘 우리의 대화는 비밀! 인거 알죠? 다른 곳에 우리의 이 거래를 소문낼 필요는 없잖아요? "

 

 "그럼요, 그럼요. 이런 거래일 수록 비밀이 많아야 가격이 올라가는 법이지요. 걱정마십시오. 아가씨."

 

 호언장담하는 상인을 바라보며 인혜는 미심쩍은 눈빛을 거두기 어려웠으나, 당장 급한 것은 자신이었으므로, 일단을 믿어보기로 했다.

 

 상인이 팔찌를 가지고 사라지고 탁자 앞에 둘러 앉아서 금자를 만지작 거리는 인혜를 보고 사라사가 물었다.

 

 "아랑,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너무 덜 받았다 생각하는 거에요?"

 

 생각에 잠겨있던 아랑이 고개를 들며 말했다.

 

 "사라사 아가씨. 저는요. 제 이름은 이제 아랑이에요."

 

 "네? 그럼요. 아랑. 아랑의 이름은 아랑이지요. 그게 갑자기 무슨 말이에요?"

 

 팔찌를 판 값으로 손에 금자를 쥐고 나자, 비로소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이 세계에서 거래를 했다는 사실이. 그리고 이제는 되돌릴 수 없다는 현실이. 그러자 자신의 이름부터 정리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언제까지 인혜와 아랑 사이에서 혼란 스러워할 수는 없었다. 이제 완벽한 아랑이 되자. 나의 진짜 이름을 숨기자. 정말 나의 모습을 소개해야하는 때가 아니라면 이름을 숨기자. 나는 이제 아랑이다.

 

 마음 속으로 자신의 이름을 아랑이라고 외친 인혜는 사라사에게 결연한 눈빛을 보내며 다시 말했다.

 

 "저는 아랑이에요. 여기서 살아볼게요. 저를 도와주세요. 사라사 아가씨."

 

 평소와 다른 눈빛을 직시하며 사라사 역시 진지하게 대답했다.

 

 "그럼요. 아랑. 당신은 이제 아랑이에요. 나는 당신을 언제나 도와줄거에요. "

 

 인혜는 진지한 대답에 놀라서 물었다.

 

 "그런데 사라사 아가씨, 저의 무엇을 보고 그렇게 도와주시고, 저를 언제나 도와줄거라고 장담하시는 건가요?"

 

 "아랑, 우리 아니타국의 공주들에겐 조금 특별한 능력이 있어요. 바로 진실을 아는 눈. 그 사람의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 남들보다 더 잘 알아채죠. 단순한 감이나 느낌이 아니라 우리는 그게 바로 보여요. 우리의 건국황제가 그런 능력을 타고 났기 때문인지 대대로 그 능력이 흘러요. 비록 그 능력이 많이 약해졌지만, 그래도 알 수 있죠. 나는요 아랑. 당신의 눈빛을 보는 순간, 당신의 진실함에 끌렸어요. "

 

 사라사는 찻잔을 입에 가져가며 아랑을 처음 만났던 날을 떠올렸다. 잔뜩 움츠려진 어깨와 작은 몸짓. 그럼에도 반짝거리던 눈동자. 그 안에 담긴 무한한 어떤 진실들. 순간 스쳐가는 잔상들은 도통 이해할 수 없는 그림들이었지만, 아랑의 절심함과 진실함이 그 사람의 성격을 파악하게 했다. 그리고 이 삭막한 왕궁에서 좋은 친구를 찾았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처음에, 아랑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그녀를 보면서 그녀의 진짜 이름이 있을 거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 이름을 포기하고 이 이름을 사용하기 까지 그녀는 얼마나 아파했을까. 마치 그 아픔이 눈을 통해서 전달되는 것 같아서 사라사 역시 마음이 아렸다. 하지만 언젠가는 이 진실한 사람이 자신에게 진짜 이름을 가르쳐 줄 것을, 자신의 진자 이야기를 해 줄 것을 확신했다.

 

 "그럼 속마음을 읽는 건가요?"

 

 "하하하핫, 아니에요. 저는 신이 아니어서 속마음을 읽을 수 없어요. 단지, 그 사람의 진실성이 바로 파악되는 거죠. 그래서 우리 왕국의 왕족들은 바람을 못 피웠어요. 대부분요. 그 덕에 왕실 핏줄이 적어졌지만요. 하하핫, 언니가 순순히 저를 이 나라로 보낸 이유도 바로 이 눈 때문이었어요. 제가 언니들 보다 잘 알거든요."

 

 "그 능력으로 나라를 빼앗기지 않고, 또 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나요?"

 

 남들이 들었으면 상처 받을 얘기를 조금은 직설적으로 물어오는 아랑을 보면서 사라사는 역시나 털털하게 대답했다.

 

 "우리는 무력은 약한 나라였으니까요. 그리고 제가 본 태무황자의 눈은요. 소름끼치게도, 모두 진실이었어요. 그 안에 있던 어둠. 파괴, 혼돈. 그리고 피에 대한 욕구. 이 모든 것이 '진실로 파괴하고자 하는 본성'그 자체였어요. 그것을 읽어버린 우리는 어쩔 수 없었죠. 왕국을 포기했어요. 백성을 몰살 시킬 수는 없으니까요. 성 문 코앞까지 다가와서 검자루를 휘적휘적 돌리는 남자 앞에 우리 언니는 무릎을 꿇었죠. 저는 그 눈을 보면서 이 땅으로 올 것을 약속했했구요. 피 흘림 없이 끝난 전쟁 덕분에 백성들은 안정을 찾았어요. 하지만 나라를 잃었고, 황국에 머리를 조아리며 높은 세금에 허덕이고 있죠. 뭐, 덕분에 언니는 섭정왕으로 아직 아니타공국을 다스리지만요. "

 

 사라사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랑의 몸이 움찔거리는 순간을 포착했다. 태무황자의 이야기가 나올때마다 그녀의 눈빛이 공포와 두려움으로 가득채워졌기 때문이다. 이 왕궁으로 끌려온 그 밤에 분명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아랑에게 깊은 상처로 남았으리라. 자신은 애초에 모든 걸 포기하고 와서 태무황자와 잠자리를 가졌었다. 딱 한번. 마치 통과의례처럼. 그와의 잠자리를 거쳐 가는 것이 여기 갇혀 있는 후궁들의 운명이었다. 그러다 운이 좋으면 총애를 받고, 그렇지 않다면 자신처럼 볼모의 역할을 감당하며 생활비를 벌기위해 고군분투하는, 노예생활.

 

 사라사는 사실 첫 경험이었으나, 언니들의 극성스러운 성교육으로 인해 그다지 고통스럽지 않았다. 태무황자 역시도 어떤 의무처럼 사라사에게 한번 몸을 묻고는 그대로 나가 다른 여인들과 밤새 술 축제를 벌였다고 했다. 아이를 낳아서 후궁의 실권을 잡으라는 언니들의 바람은 이루어질 수 없을 것 같다고 사라사는 생각했다.

 

 그러나 이 삭막하고 답답한 궁에서 사라사는 새로운 활기를 얻었다. 바로 아랑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것. 마른 꽃 같았던 아랑은 날이 갈수록 생기가 돋았다. 평소에 작은 생물들, 그들의 생명력을 사랑하던 사라사는 아랑에게 무언가를 해주면서 작은 동물들과는 다른, 기쁨과 보람을 느꼈다. 막내동생이 생긴다면 해주고 싶었던 일들을 해주면서, 언니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랑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었다. 후에 그녀에게 어떤 운명이 닥친다해도 자신이 그곳까지 함께 가주고 싶을 만큼.

 

 "아랑, 나를 언니처럼 생각해요. 나는 혼자가 아닌 것 같아서 너무 좋아요."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는 사라사를 보면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러나 이번에도 꾹 참았다.

 

 "네, 좋아요, 사라사 아가씨. 저를 그럼 동생이라고 여겨주세요."

 

 인혜는 이제, 아랑이 되었다. 그리고 '아랑'이라는 이름은 환국 역사서상 여인으로서 가장 많이 거론되는 이름이 된다.

 

 

 

 *앞으로 인혜라는 이름을 '아랑'이라고 통일해서 서술함. *

 

 

 

 

 달의 전각으로 돌아온 아랑은 금자가 들어 있는 궤에서 한 개를 꺼내들고 주아에게 건냈다. 금자의 반은 사라사의 처소에 두고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나마 안전한 곳에 보관한 참이다.

 

 "주아, 이것으로 내가 부탁하는 것들을 구입해줘. 부족하면 말해줘. 그리고 필요하다면 네가 쓰고 싶은 곳에 써도 돼."

 

 "아니, 아가씨, 이렇게 큰 돈은 어디서 나셨어요? 정말로 팔찌를 파셨나요? "

 

 "응, 나에겐 이제 팔찌보다 네가, 사라사 아가씨가 더 의미가 있어. "

 

 "아가씨. 그런 돈을 제가 어떻게 함부로 써요."

 

 "그러니까 우리 제대로 써보자. 못 먹었던 고기도 먹어보고, 그리고 저번에 말했던 비누도 만들어보자. 처음부터 성공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해보자, 응?"

 

 울컥한 기분에 덜덜 떠는 손을 뻗어서 금자 하나를 집어 든 주아는 이내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네, 저 같은 시종은 북문 출입이 꽤 자유로운 편이니까요. 북문은 백성들이 사는 거리와 붙어 있어서 시장이 가까워요. 거기 나가서 사올게요. 이제는 저도 환국어는 잘하니까요. "

 

 아랑은 주아의 씩씩한 대답에 안심하며 비누를 만드는데 필요할 것 같은 재료를 적어주었다. 이제는 글쓰기도 수월해졌다. 살려고 악착같이 배우다 보니, 한 달여만에 새로운 언어를 익혀버린것이다. 그러나 물건의 이름이나 시세에는 약해서 그런 것들은 옆에 간단히 설명도 해 놓았다.

 

 사라사와 아랑 덕분에 글을 쓰는 법까지 익히게 된 주아는 모르는 단어들을 아랑에게 물어가며 다시 한번 사올 것을 정리했다.

 

  태무황자의 후궁들은 스스로 생활비를 벌어써야 하는 만큼 바깥 출입이 꽤 자유로운 편이었고, 그의 시종들은 더할 나위 없었다. 사실 황자는 후궁들의 외도를 방관했는데, 그녀들이 외도를 했다가 발각되었을 때는 쫓아 내기만 할 뿐 그다지 그들과의 관계에 연연하지 않았다. 어차피 망국으로 돌아가봐야 환영해주지도 않을 뿐더러, 배신의 명목으로 더 많은 돈을 뜯어내었기 때문이다.

  때로는 그들의 재가를 허용하기도 했다. 대신 후궁의 신분에서 풀려나는 데에는 많은 비용이 들었다. 이 궁을 나가기 위해서는 많은 돈을 토해내거나, 죽거나 둘 중에 하나인 셈이다.

 

 한 두명의 후궁들이 이 궁을 떠나서 재가를 하기도 했고, 고국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일종의 위자료를 지불하고서. 그녀들의 행방은 알 수 없으나, 자유를 찾았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아랑은 시종의 옷으로 갈아입고 북문으로 향했다. 주아에게 재료를 부탁하긴 했지만, 자신이 나서서 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둘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태무황자가 다스리는 남지환은 기후가 온화하고, 큰 강줄기가 남지환을 가로지르며 흐르기 때문에 토지가 비옥했다. 그래서 그런지 굶주리는 사람이 적고 치안이 훌륭한 편이었다. 여인들이 홀로 다녀도 크게 위협받지 않는 곳이었다. 아랑을 포함해 혼자 다니는 여인들이 많이 보였다. 그에 긴장하던 어깨를 풀고 아랑도 발걸음을 늦추며 천천히 구경하기 시작했다.

 

 향낭을 파는 가게 앞을 지나가던 중 꺾어지는 골목에서 남루한 옷의 남자아이가 훌쩍이며 주저 앉아 있었다. 함부로 도와주지 말라는 주아의 말이 생각나서 그냥 지나치려던 아랑은 드러난 팔에 보이는 멍을 발견하고는 걸음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어차피 자신의 복색도 남루하고, 가진 것도 없다. 주아가 아침에 챙겨주고 나간 식사 중 걸어다니며 먹으려고 가져온 빵 한 조각. 말 없이 아이에게 빵 조각을 내밀었다.

 

 고개를 든 남자아이는 눈물이 그렁한 눈으로 빵 조각을 받아갔다. 아무리 치안이 좋고 살기 좋은 남지환의, 그것도 태무황자의 직접적인 다스림이 있는 왕도여도, 그늘은 있는 법이었다.

 

 둘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아랑은 아이가 편하게 먹도록 자리를 비켜주는 동시에 자기의 길을 걸어갔을 뿐이다.

 

 다른 향낭 가게를 서성이며 이것 저것 물어보던 아랑은 순간 어떤 향을 맡고는 몸이 굳어짐을 느꼈다.

 그 향이다! 매혹적이지만 날카로움이 느껴지던 바로 그 향! 돌아가지 않는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며 향기의 출처를 찾았다.

 

 아랑의 옆의 옆에 왠 커다란 남자가 서 있었다. 시종으로 보이는 자와 함께 였는데, 얼굴을 두건같은 천으로 가린 채 팔짱을 끼고 있었다. 그때 아랑의 시선을 예리하게 감지한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

 

 순간 아랑은 호흡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얼굴은 확신할 수 없지만, 향은 같은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다를 지도 모른다. 하지만 덩치 큰 사내, 날카로움. 그리고 그 향.

 

 남자는 아랑을 바라본 후 다시 정면을 향했다. 그에 아랑도 다시 시선을 거둬 들고있던 향낭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심장박동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그때, 그 남자가 갑자기 동선을 바꿔서 아랑의 뒤쪽으로 다가왔다. 너무 무서워서 그대로 굳어버린 아랑은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도망칠 수 조차 없었다.

 

 "최근에 가장 많이 팔리는 향이 어느 것인가"

 

 낮은 목소리가 뒤에서 울렸다. 가게 주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아랑을 밀치며 남자에게 몇 개의 향낭을 보여주었다.

 

 "바로 이것들입니다. 얼마나 드릴까요?"

 

 "그렇다면 최근 이 향낭을 찾았던 손님이 있었는가?"

 

 손에서 작은 향낭을 꺼내며 남자가 주인에게 물었다.

 

 "아주 특이한 향이군요. 이런 향은 북지환에서 많이 사용하는 향입니다. 이 곳 사람들은 이렇게 소박한 향은 잘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렇군."

 

 "그런데 어디에서 나오시고 이런 것들을 물으시는 건가요?"

 

 주인이 미심쩍게 물어보자. 조용히 있던 시종으로 보이는 자가 대답했다.

 

 "어허, 자네 보는 눈이 없군. 이 분이 바로 테마르크 상단의 총 책임자 되시네."

 

 "아이고, 제가 몰라뵈었습니다. 저희 상품을 조금 구경하고 가시겠습니까? 저희 가게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향낭들도 있습니다."

 

 주인의 말을 듣고만 있던 남자는 잠시 주인과, 아랑과, 향낭들을 둘어본 후 몸을 돌려 나가버렸다.

 

 "아니, 그냥 가시네. 이 기회에 좀 얼굴 좀 익혀 보려고 했는데 말이지. 참."

 

 아쉬움이 뚝뚝 묻어나는 목소리로 발을 돌리던 주인에게 아랑이 급하게 소매를 붙들며 물었다.

 

 "저기, 저기요. 저분이 누구시죠? "

 

 "저분? 테마르크 상단의 총 책임자라면 아마 셋째 황자님을 보필하는 사람인 듯 싶구만. 총 책임자 라지만 어디 황자님이 직접 돌아다니시겠나? 그 분 휘하에 있는 사람들이 움직이겠지."

 

 그럴까? 그렇다면 그 향의 정체는 뭐지?

 

 "저, 그럼 한가지만 더요. 저분한테 어떤 특이한 향이 나던데,아, 제가 향낭에 관심이 많아서요. 그 향은 누구나 쓰는 향인가요?"

 

 아랑의 거듭된 질문에 의심스런 시선을 두던 주인은 이내 표정을 풀며 대답해주었다.

 

 "아, 저 향 ~ 아주 민감한 후각을 지녔구만. 저 향은 슬로타샤국에서 들여오는 향이라네. 테마르칸 상단의 고위책들만 사용하지, 가까이 오는 자의 감각을 일시에 둔감하게 만드는 작용이 있어서 높으신 분들에게는 호위용 향으로 쓰이는데, 값이 어마어마하지. 저 향의 특징은 맡을 당시에는 화려하다고 느끼지만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향이기도해. 그런데 저런걸 기억하다니, 왠만치 향에 대해서 관심이 있지 않으면 잘 모를텐데, 대단하구만. 이봐요 아가씨! 우리 집에서 일해볼 생각 없나? "

 

 그 남자가 아니었구나,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을 때, 주인이 갑자기 일자리를 제시했다.

 

 "네? 일이요? 여기서 일하는 것 말하시는 건가요?"

 

  침착하게 주인의 진의를 살폈다.

 

  "그래, 일! 손님들에게 향을 추천해주고 파는 일! 그런 역할은 원래 우리 안 사람이 하는 건데, 셋째를 임신 중이어서 몸이 많이 무겁거든. 그래서 일할 사람을 찾고 있었는데, 이렇게 딱 나타나버렸구만!"

 

 주인은 선해보였다. 다만 장사꾼 특유의 능글능글함이 보이긴 했지만 딱히 아랑에게 위해를 가할 사람 같지는 않았다. 비누를 만들어 내기 전까지 돈을 벌 곳이 필요했는데 잘 된 일인 걸까?

 

 주인은 아침부터 점심 때 까지만 가게를 맡아달라고 했다. (이 곳에서의 시간 관념은 현대와 같다. 다만 1년이 13개월이며, 하루를 5개로 나눠서 부르고 있었다.)

 왕도의 곳곳에는 해시계가 놓여 있었는데, 사람들은 해시계를 본 따서 각 집안과 가게에 작은 사이즈의 해시계를 만들어두고 사용했다. 이곳에서는 하루를 26시간으로 나누어놓았는데, 그 나눔의 정도를 따져보았을 때, 현대에서처럼 24시간으로 생각해도 무방했다.

 

 "저, 그럼 생각할 시간을 좀 주세요. 제가 다른 일을 하고 있는 중이라서요..."

 

 단순히 놀고 먹는 여자가 아니라 일 하고 있다는 말에 더 반색한 주인은 일한 경험이 있어서 더 좋다며 내일 다시 만나자고 했다.

 

 "일이 풀리려니까 또 이렇게 풀리는 건가?"

 

 뜻밖의 행운에 놀라며 발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였다. 어디선가 튀어나온 팔이 아랑을 잡아챘다.

 

 "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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