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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Fanatic
작가 : 길헤윰
작품등록일 : 2017.6.21

동생이 결혼을 한단다. 그래도 난 그리 상관 없었어. 그와 깊이 관계되지 않으려 했지.
몇 개월 후, 나라가 망하기 전까지는 말이야.
#계략/이중인격(?) 남주 #초식계 여주


 
2장. 사냥개와 도마뱀 # Unicorn
작성일 : 17-07-08 12:11     조회 : 275     추천 : 1     분량 : 7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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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헤일린은 옷시중을 따로 받지 않았다. 불편한 드레스를 입거나 화장할 때를 제외하곤, 대부분의 일을 스스로 했다. 별장을 떠나기 위해 셀리는 짐을 꾸리고, 헤일린은 스타킹을 신고 있었다. 나올 데는 다 나온 헤일린이라 그런지, 뭔가 매혹적이었다. 셀리는 헤일린의 모든 것을 좋게 보려는 경향이 강했다. 그녀는 셀리가 이성애자라는 걸 잘 알았지만 때론 그 시선이 거북했다.

 

 "셀리, 왜?"

 

 "죄송합니다, 아가씨. 그저 새삼스럽게 그 흉터가 신경쓰여서요."

 

 "아, 이거."

 

 헤일린의 왼쪽 어깨뼈에는 흉터가 하나 있었다. 라리마가 태어나지도 않았을 시절에 페리샤가 한 것이었다. 언제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 아마, 셀리의 어머니가 살아있을 때였던 것 같았다. 지금은 아프지도 않았다. 셀리가 그때 엄청 울었었지. 헤일린은 키득키득 소리내어 웃었다.

 

 "그건 마법으로 못 고치는 건가요?"

 

 "응. 치료마법의 단점이랄까, 치료 마법은 시간이 너무 오래지났거나, 손상이 너무 심각하거나, 상처난 본인의 트라우마가 너무 심하면 못 고쳐."

 

 "아가씨. 신관은 찾아가보셨어요?"

 

 "신력이라면 가능성이 높긴 한데, 난 종교를 믿지 않으니까. 게다가 파운데이션을 바르면 가려지니까 드레스 입을 때도 상관없잖아."

 

 왕국의 신관들은 대체로 돈을 밝혔다. 희소성이 높은 탓이었다. 마력도 신력도 부족한 탓에 신관들은 많은 돈을 벌었다. 의술이 제국의 도움으로 발전하기 전까지는. 셀리는 주인의 흉터가 신력으로 나을 수 있다고도 생각했다. 확실히 제국에서 신관들이 더 많긴 했지만, 필요하지 않다고 여겼다. 해당부위는 옷을 벗어야하기도 해서, 미혼 여성이 '나 좀 치료해주세요'라고 요청하기에도 애매했다.

 

 "괜찮아, 셀리. 내가 어릴 때 유니콘을 좋아했던 거 기억나니?"

 

 "예, 물론이요."

 

 "내가 가장 좋아했었던 장난감이 유니콘 모양이었단다. 어린 애들 장난감답지 않게 섬세했지. 페리샤는 내 손에서 그 장난감을 빼앗고 내 옷을 벗겼어. 그리고 그걸 불에 달구고 낙인을 찍었지. 나한테 순종해, 내 말을 들어! 그녀는 그렇게 요구했어."

 

 "그런, 사정이, 있었었……."

 

 "어린 아이의 피부는 매우 연약하지. 급히 물에 식혔지만 흉터는 남았어. 그러니까 이건 영광의 상처야, 셀리. 난 굴복하지 않았잖니?"

 

 헤일린은 셀리가 참 눈물이 많다고 생각했다. 저보다 언니인데 눈물은 갑절이나 더 많았다. 아니, 내가 삭막한 걸까? 그녀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면서 셀리를 달래주었다. 유니콘 흉터를 없앨 생각은 없었다. 그 장난감은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으니까. 헤일린은 10년이 지나서야 진상을 밝힌 것이 그나마 속시원했다.

 

 

 

 

 

 # Unicorn

 

 

 

 

 헤일린의 일상은 여전히 조용했다. 헤일린의 주변이 그렇지 않다는 게 문제였다. 라리마도 그랬다. 라리마는 정세가 바뀜에 불안함을 느끼면서도, 제국인들을 소개시켜달라는 요구에 귀찮음을 넘어 짜증스러움을 느꼈다. 헤일린에게도 리첸과 티타임을 같이 하자는 식으로 요구가 늘어났다. 그녀가 리첸, 리나와 어울릴 땐 페리샤의 말에 편승해 같이 욕한 이들도 태세전환을 했다는 게 우스웠다. 물론 도시적인 태도로 다 거절하고 있었다.

 

 "그래도 저희는 운이 좋았어요, 아가씨."

 

 "그래?"

 

 "반제국파 귀족들은 멸문당했거나 일반 평민이 되어버린 걸요. 재산은 모두 몰수되었고요. 수도가 이제 '라'가 되어버렸으니, 제국의 통치를 못 받아들이겠다는 사람들은 '거류민'으로 취급받고 있어요."

 

 거류민인가. 국적이 없어지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국인으로 국적을 다시 신고했다. 돈이 좀 있는 상인이나 영식들은 숨겨둔 재산을 찾아 이민을 가기도 했다. 베니아 령(領) 페닐 라(도시를 뜻하는 제국어). 공식적으로 왕국은 지도에서 사라졌다. '라'가 되었다는 셀리의 말은 그런 뜻이었다.

 

  기존의 체제가 사라지고, 혼란이 가득할 시기였다. 총통은 모두에게 기회를 주겠다고 했다. 벨페르고가 총통이 될 수 있었던 건 왕국의 평민들의 도움이 컸다. 수도만이라면 완전한 무혈입성은 불가능했다. 각 지방에서도 제국군의 도움 아래 체제가 잡혀가고 있었다. 귀족들은 머리를 굴려 기꺼이 친제국적인 태도를 보였다. 페리헬 가는 그러한 노력을 할 필요도 없었다. 아드리안이라는 연줄이 있었으니까. 왕족이 썩은 동앗줄이 될지는 아무도 몰랐지만, 지금 의지할 건 라리마의 약혼자 아드리안밖에 없었다.

 

 "4개월이야."

 

 "네?"

 

 "라리마의 약혼식 후 4개월. 그리고 개국되었지."

 

 "이제 개국된지 한달 넘었고요. 너무 빠르다고 생각하시는 거죠?"

 

 헤일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도 빠르게 체제가 잡히고, 정리가 되어갔다. 아직 처형될 사람이 많다고 했다. 총통은 평민에게도 귀족을 신고할 수 있는 권리를 줬다. 합당한 증거만 있다면, 조사 후 처형이 되었다. 제국법에 따른 처형으로 방법은 다 달랐다. 증거가 없다면 제국의 기사들이 조사를 직접 하기도 했다. 아드리나의 명령 아래, 경비단원들이 움직였다. 이들은 검은 제복을 입었는데, 사람들은 이들을 '검독수리'라고 불렀다. 아드리나의 주도 하에 신설된 특수부대라고 했다. 소문만 무성하지 무슨 일을 하는가는 정확히 다들 몰랐다. 헤일린도 검독수리가 진짜 있는가 궁금하긴 했다.그걸 장본인에게 물어볼 수도 있었다.

 

 "아가씨, 이야기 중에 죄송합니다만 베네딕트 경이 또 오셨습니다."

 

 헤일린이 있는 건물을 관리하는 집사였다. 집념의 리첸은 바쁜 와중에도 주기적으로 그녀를 찾았다. 서신을 보냈으나 헤일린이 무시했다. 피곤한 몰골로 찾아오는 게 미안하기도 했으나, 헤일린은 매정하게 대하기로 했다. 셀리조차 내보내지 않았다는 건 그런 의미였다.

 

 "내 몸이 좋지 않으니 이만 돌아가시라고 전해주세요."

 

 "아, 아가씨!"

 

 "왜 그러니, 셀리."

 

 "집사님만 가는 건 그러니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안 돼."

 

 이건 리첸과 헤일린과의 문제였다. 셀리는 보기 드문 주인의 단호함에 입을 다물고 집사를 짧게 배웅했다. 헤일린은 셀리의 꾀를 이미 한번 넘어가주었다. 두번은 선을 넘는 행동이었다. 순정남 베네딕트 경이 차였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똑같은 말로 만남을 거절한다는 말이 돌자, 부인들은 헤일린과 리첸에 대한 상상을 소문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리첸은 소문에 신경쓰지 않았지만 헤일린은 달랐다. 그녀는 리첸과의 소문이 조금 신경쓰이기 시작했다.

 

 "몸이 좋지 않으니 이만 돌아가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풀죽은 표정으로 돌아간 그는 곧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리나와 아드리안에게 달려왔다. 그들은 계속 저러면 감금시킬 필요가 있다고 속삭였다. 기특하게 일은 다 끝내놓고 간다지만,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부끄러움은 계속 그들의 몫이었다.

 

 "리나! 아드리안! 헬린이 안 만나줘!"

 

 "예, 압니다."

 

 아드리안은 결국 그를 돕기로 한 것인지 순순히 대답해주었다. 리나도 슬슬 나서는 게 좋다고 여겼다. 헤일린은 리나를 사람으로 봐주는 유일한 친구였다.

 

 "헤일린은 아마 우리를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우리의 계략을 말해줄 이유도 없었고요. 우리와 함께 일하는 이도 아니었으니까요. 다만 조금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거겠죠."

 

 "삐졌다는 말이야?"

 

 리첸 식으로 말하자니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리나는 사적인 관계에서 리첸이 너무나 단순하다고 생각했다. 겔린 경이 불쌍할 지경이군. 리나는 그를 의자에 앉히며 말했다.

 

 "게다가 헬린은 눈에 띄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리첸님이 그리 가시면 헬린에게 폐가 됩니다. 여자들의 혀는 생각보다 더 험악하다고요."

 

 "그건 생각하지 못했어."

 

 "다음엔 저도 같이 가지요. 그러니까 일단 일하고 계세요. 곧 그녀를 만날 거예요."

 

 그리고 정말 리나의 말대로, 헤일린을 만날 수 있었다. 베이지색 모자를 쓴 탓에 표정이 보이지 않았지만, 저택 문 앞에서 기다려주고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리첸은 기뻐하고 있었다.

 

 "리나, 어떻게 된 거야?"

 

 "서신을 보냈습니다. 성으로 초대한다고요. 공식 초대장이니 거부하지 못했겠죠."

 

 권력을 이용한 초대이긴 했지만, 헤일린이 거부했어도 해는 없었다. 리나는 헤일린의 화가 어느 정도 풀렸으리라 예상했었다. 마차에 오른 헤일린이 셀리의 인사를 받았다.

 

 "다녀올게."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아가씨!"

 

 마차의 문이 닫히자마자 마차 안은 침묵으로 휩싸였다. 성문이 열리고 성내의 응접실에 갈 때까지, 헤일린의 표정은 모자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리첸은 침묵이 어색한지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헬린?"

 

 "가서. 가서 이야기하지요."

 

 리나는 그런 헤일린을 힐끔 바라보더니,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향하는 곳은 아드리안이 주로 쓰는 응접실이었다. 응접실에는 아드리안이 기다리고 있었다. 헤일린이 들어오자마자, 아드리안은 따뜻한 차를 가져와달라 명령했다. 그들은 고급쇼파에 앉았고, 헤일린은 천천히 모자의 리본끈을 풀었다. 말간 눈동자와 단아한 분위기는 여전했다. 리나가 먼저 그녀에게 말했다.

 

 "헬린, 미리 이야기하지 못한 건 어쩔 수 없었어요. 아직 화났나요?"

 

 "아뇨. 아주 조금, 괘씸했을 뿐. 어찌 감히 그런 기밀을 들을 수 있었겠어요?"

 

 "헤일린, 그날 많이 놀랐죠? 혹 악몽이라도 꾸셨다면 미안합니다."

 

 "그래! 나도 미안해!"

 

 헤일린은 모두의 반응에 조금 놀랐다. 그날 일이야 끔찍하긴 했지만 헤일린에게는 별 거 아니었다. 이들은 왜 나를 신경써주는 걸까? 헤일린은 그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정신적 교감 이외에 이들과의 접점은 없었을 터였고, 그런 얇은 끈이 이리 질기지 않다는 것도 잘 알았다. 미안해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기뻤다. 제 심술을 받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정말 의외였으니까.

 

 "제가 죽었던 것도 아니고, 굳이 신경 안 써요."

 

 리첸은 정말로 단순하니까, 헤일린이 흑안이어도 그런 곳에 갈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겠지. 하지만 그때 그녀는 생각했다. 리첸은 과연 무엇을 보여주려 했는가? 개국되는 순간을 왜 그때 볼 수 있었을까? 쓸데없는 생각이었지만, 그런 주제는 헤일린의 머릿속을 붙잡고 놔주지 않았다. '네 존재를 스스로 부정하려 들지마'. 카드의 내용은 헤일린을 번민하게 만들었다.

 

 "리첸 경이 보내주신 드레스가 마음에 들었으니 봐주는 겁니다."

 

 "그래, 그래. 고맙다, 헬린."

 

 아드리안은 헤일린의 표정이 부드러워진 것을 보고 눈에 띄게 안심했다. 라리마에게조차 표정변화가 다양하지 않았던 그가 헤일린에게만큼은 다정했다. 아니, 지금은 오히려 기분이 좋아보이기까지 했다. 제 벽 안에 들였기 때문일까? 아직 헤일린은 아드리안을 제 벽 안에 들일지 말지 재고 있었다. 그렇기에 저 다정함이 좋기도 하지만, 미안하기도 했다.

 

 "이렇게보니 둘이 닮았는데, 눈치재지 못했군요."

 

 "아, 우리 둘 말인가요?"

 

 아드리안의 남색 눈동자, 리나의 남색 머리칼. 묘하게 닮은 이목구비까지, 둘이 남매라는 걸 그간 알 수 있었는데도 몰랐다.

 

 "닮았다해도, 조금뿐이니까요. 이복남매이니 모르셨을 수도 있습니다."

 

 귀족 가에선 이복형제가 흔했다. 페닐이나 제국이나 귀족가의 사정은 비슷비슷했다.

 

 "게다가 우린, '테닌'이라는 성을 좋아하지 않아요. 그게 우리가 이곳에 온 이유이기도 하죠."

 

 "!"

 

 이들은 공통점이 있었다. 다들 둥지를 벗어날 곳이 필요했었다. 그래서 헤일린은 제국을, 이들은 새로운 개척지를 선택했다. 리나와 아드리안, 리첸에게도 모두 힘든 점은 있었다. 이 사람들은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야. 난 그저 이곳을 언제 떠날까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사람들은 좀 더 큰 걸 해냈어. 새삼 존경심이 몰려들었다. 헤일린은 완벽하게 속내를 털어놓았다.

 

 "당신들을 피한 이유는 따로 있었어요."

 

 "네?"

 

 리첸과 리나, 아드리안이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헤일린은 작게 웃으며 말했다.

 

 "제가 당신들에게 기대려고 한다는 말이 있었거든요. 그런 상태에서 만나면 당신들을 바보로 만드는 셈이 되어버려요. 개국이 된 후, 저는 정말 애매한 존재가 되어버렸으니까요. 지금의 귀족들에게는 원망할 대상이 필요해요. 유능한 친구들이 욕먹는 게 싫었어요."

 

 "아……."

 

 내 존재를 나보다 더 아껴주려고 하는 사람들이 흠잡히는 게 싫었다. 그래서 헤일린은 차라리 리첸과의 소문을 부풀렸다. 한달 이상 만나지 않은 결과 사람들은 리첸과 헤일린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다. 혼란이 빠르게 진정되었기 때문에 초대를 거절하지 않았다. 헤일린의 진심에 모두 감동했다. 헤일린은 악의에 노출되어 살아왔지만, 주위의 모든 걸 배웠어도 악의만큼은 배우지 않았다. 악의, 미움, 증오. 모든 걸 파괴시키는 씨앗이었다. 이런 씨앗을 가진 친구를 사귀는 것도 위험했다. 그래서 페리샤에게 복종하지 않았다. 유니콘은 그녀에게 그녀 자신을 지켜야한다고 알려주었다.

 

 "여러분 모두 용감하세요."

 

 "헬린, 너무 띄어주지마."

 

 "헬린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론 당신같은 혼혈이 더 살기 좋아지도록 할 겁니다."

 

 "네, 맞습니다. 큰 그릇을 지닌 나라일수록 작은 자들을 돌봐야 하는 법입니다. 왕국의 나쁜 잔해들은 모두 정리할테니 위축되지 말아요."

 

 "나도 더 노력할 거다."

 

 그러니까 웃어. 리첸은 간만에 귀족다운 어투로 진지하게 말했다. 아드리안의 기분은 정말로 좋아보였다. 리나와 리첸이 일을 하러 가고, 헤일린이 다시 모자를 묶을 때까지는 그랬다.

 

 ***

 

 

 "부총통 각하, 페리헬 가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누구십니까?"

 

 "안녕하십니까, 부총통 각하. 저는 수석 집사 피엘이라고 합니다."

 

 문 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헤일린이 멈칫했다. 아드리안은 괜찮다는 듯 그녀에게 미소지었다.

 

 "서신은 두고 가십시오. 읽겠습니다."

 

 "꼭 얼굴을 뵙고 전해주라 하셨습니다."

 

 "전 바쁩니다. 두고 가시면 곧 읽도록 하죠."

 

 문을 경계로 나누는 대화에 헤일린이 긴장했다. 하지만 상황상 갑은 아드리안인 듯했고, 집사는 돌아갔다. 아드리안의 기사가 그에게 서신을 전해주었다.

 

 "보나마나 결혼식을 빨리 올리자는 거겠죠, 각하."

 

 "이번이 세번째입니다. 난 개국이 된 후 바쁜데 이 사람들은 결혼식이나 올리자고 하니."

 

 무의미한 확인이 끝난 후 아드리안이 헤일린을 바라보았다. 헤일린은 페리헬 가가 생각보다 조급해한다는 걸 이제서야 안 모양이었다. 집안의 분위기 같은 건 관심도 없던 터였다.

 

 "아, 신경쓰지 마십시오. 배웅해드리겠습니다."

 

 둘은 동쪽 입구로 향했다. 마차가 가장 적게 드나드는 곳으로, 신변의 보호에는 안성맞춤이었다.

 

 "라리마와의 약혼은 유지하실 생각이신가 봅니다."

 

 "예. 도움에 대한 대가입니다."

 

 도움에 대한 대가인가. 베니아 제국과 페닐 왕국의 교류가 활발했었던 건 사실이나, 이국인이 공직에서 일하며 자리를 잡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페니지 공작의 위세가 강했을 무렵, 그가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준 건 파울 페리헬, 바로 그였다. 헤일린은 그가 이유없이 도왔을리가 없다는 말이 목까지 차올랐으나, 말을 돌렸다.

 

 "부총통 각하께선 아직 할일이 많으시니 미뤄도 문제는 없지요. 백작님이 이리 급하실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네요."

 

 아드리안은 왠지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헤일린은 의아함에 걸음을 멈췄다.

 

 "아드리안."

 

 "네?"

 

 "절 친구라고 하셨으니, 아드리안이라고 불러주십시오."

 

 하지만 그건 가족이나 연인 간에나 할 수 있는, 즉 매우 가까운 이들이 부를 수 있는 호칭이었다. 전부터 느끼는 건데, 이 사람은 은근히 호칭에 집착하는 면이 있었다.

 

 "저도 헤일린이라고 부르고 있으니까요. 그 '부총통 각하'는 너무 딱딱하지 않습니까?"

 

 헤일린이 큰 소리로 웃어버렸다. 아드리안도 같이 웃었다. 그는 자연스럽게 헤일린을 에스코트했다. 배웅을 마친 그는 미소짓고 있었다. 돌아가는 마차의 모습도 빤히 바라보았다.

 

 "헤일린, '아드리안'은 싫습니까?"

 

 그의 처진 눈썹이 그의 기분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의 미소는 그녀의 웃음에 더 무너졌다. 오랜만에 그녀를 본 날인데도, 어째서인지 제 신세가 참으로 처량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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