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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채운몽
작가 : 채헌
작품등록일 : 2017.6.19

조선 최초의 레즈비언으로 기록된 세종의 두 번째 며느리 세자빈 월, 기루 무사 소쌍을 만나 운명인 듯 우연인 듯 사랑에 빠진다. 아니라 해도, 아니 된다 해도 돌아설 수 없었던 그녀들의, 무지개빛 로맨스

 
32장. 내가 죽어 네가 살 수 있다면
작성일 : 17-07-07 13:12     조회 : 237     추천 : 0     분량 : 8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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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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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던 향이 고개를 흔들었다. 분명 눈으로 글을 읽고 있는데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휴우.”

 

  향이 책을 내려놓고 시선을 들었다. 눈물 흘리며 절규하던 중전의 모습이 뇌리에서 지워지지가 않았다.

 

  언제나 온화하고 다정한 어마마마셨다. 굳이 위엄을 내세우거나 꾸미지 않아도 자태에 고아함이 묻어났다.

 

  마음속부터 아름다운 분.

 

  그런 어마마마께서 흉중 깊은 곳에 그리도 지독한 상처를 품고 계시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하였다. 오랜 세월 속에 검게 썩어 문드러진 상처에선 누런 진물이 눈물처럼 흐르고 있었다.

 

  그 속을 미처 알지 못했던, 무딘 아들은 그저 부끄러울 따름이었다. 당장이라도 달려가 그 상처를 보듬어드리고 싶으나 아바마마의 엄한 얼굴이 제 앞을 가로막았다.

 

  무력하고 무력하구나.

 

  한 나라의 원량이라 하나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외조부의 누명을 벗겨줄 수도, 노비가 된 외조모를 구명할 수도 없었다. 외가의 일을 언급치 말라는 할바마마의 유언 탓에 어미의 눈물조차 드러내어 닦아줄 수가 없다.

 

  무력감과 절망감으로 몸을 떨던 향의 귀에 내관이 고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하, 권승휘 들었사옵니다.”

 

  문이 열리고 권승휘가 들어왔다. 회임을 한 후로 부쩍 향의 처소를 찾는 일이 잦아진 권승휘였다.

 

  “어쩐 일이오.”

 

  반기는 말 한 마디 없이 용건부터 묻는 향을 보고도 권승휘는 해사하게 웃었다.

 

  “저의 침소를 찾으시는 날인데 오지 않으시기에 소첩이 왔사옵니다.”

 

  “아, 그랬소. 내 생각할 것이 많아 깜박 잊었소. 미안하오.”

 

  “괜찮사옵니다. 언제 제가 저하 탓하는 것 보셨사옵니까. 오늘은 동궁전에서 뫼시겠사옵니다.”

 

  향이 귀찮은 기색을 숨기지 않으며 말했다.

 

  “오늘은 너무 피곤하오. 다음 날 적당한 때를 살펴 들를 테니 오늘은 그만 물러가시오.”

 

  권승휘가 다 이해한다는 얼굴로 다가앉았다.

 

  “저하께서 얼마나 심려가 크시겠사옵니까. 세자빈께서 폐족과 정을 통한 것으로도 모자라 역모까지 꾀했다니, 태평성대에 어찌 이런 변고가 있을 수 있단 말입니까.

 

  소첩도 이리 심란한데 저하의 심정이야 오죽하시겠는지요. 늘 씩씩하고 당당한 분이라 전심으로 믿고 따랐는데 그런 무도한 짓을 저지르실 줄은 소첩 또한 꿈에도 몰랐사옵니다.”

 

  “…….”

 

  “소첩이 한 잔 올리겠나이다. 이런 날엔 독주 한 잔이 약이옵니다. 여봐라, 주안상을 올리거라.”

 

  역시 준비해두었던 듯 곧바로 나인 단지가 주안상을 들여왔다.

 

  “어찌 그리 보시옵니까. 제 얼굴에 뭐라도 묻었사옵니까.”

 

  권승휘가 자신을 빤히 보는 향의 시선을 의식하고 수줍게 웃었다.

 

  “아니오. 그저 신기해서.”

 

  “무엇이 말씀이시옵니까.”

 

  권승휘가 회임한 것을 말하는 줄 알고 자랑스럽게 배를 내밀었다.

 

  “승휘가 궁궐 돌아가는 일에 이리 밝은지 미처 몰라서 말이오. 그저 태교에만 마음을 쏟는 줄 알았더니 실상 눈과 귀는 엉뚱한 데 쏠려있는가 보오.”

 

  “무슨 말씀이시온지…….”

 

  “세자빈이 잡혀온 것이야 모르는 사람이 없다 해도 그 혐의에 대해선 나조차 분명히 알고 있지 못한데 승휘께선 아주 상세히 알고 계시니 말이오.

 

  추국 중이라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말투가 확신에 차 있는 것도 그렇고……. 나보다 궁 안에 눈과 귀가 많은 것이오, 아니면……,”

 

  권승휘가 침을 꼴깍 삼켰다.

 

  “이번 일에 관련이 있는 것이오?”

 

  “관련이라니요. 그럴 리가 있겠사옵니까.”

 

  향이 권승휘를 뚫어져라 보았다. 속을 들여다보는 듯한 서늘한 눈빛에 권승휘의 어깨가 살짝 움츠러들었다. 향이 이내 시선을 거두고 무심하게 말했다.

 

  “아니오. 내 농을 한 것이오. 신경 쓰지 마시오.”

 

  “행여 농이라도 그런 말씀은 싫사옵니다.”

 

  “오늘은 아무래도 술 마실 기분이 나지 않는구려. 이만 나가보시오.”

 

  권승휘가 당황한 기색을 숨기며 서둘러 물러났다. 향이 묵묵히 술잔에 술을 따라 단숨에 비웠다.

 

 

  * * *

 

 

  질질 끌리는 소리 끝에 소쌍이 들어섰다. 아니, 옥 안으로 던져졌다고 해야 옳은 표현일 것이었다. 형문을 얼마나 당했는지 소쌍의 온몸엔 피떡이 앉아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소쌍은 월을 보자 입 꼬리부터 들어올렸다.

 

  “저는……, 괜찮습니다. 이 정도쯤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 지경이 되어서도 날 안심시키는 게냐.”

 

  월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 죄송합니다.”

 

  “무엇이 말이냐.”

 

  “폐족의 핏줄임을……,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 일부러 숨기려 한 것은, 아닙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폐족의 피를 타고났기에 부모와 일가를, 친구들과 삶의 터전을 잃었다. 그것으로는 충분치 않았는지, 월에게 대역죄인의 오명까지 씌우고 말았다.

 

  부모님께선 늘 고려 왕족의 일원임을 자랑스레 여기라 하셨다. 견딜 수 없는 고통과 수난을 겪으면서도 소쌍 또한 그리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에 와서는 진심으로 저주받은 핏줄이라는 생각이 들고야 말았다.

 

  “네가 전조의 왕족인 것이 어찌 너의 죄겠느냐. 그것이 죄가 된 세상에 태어난 것일 뿐이다. 도리어 미안한 것은 나다. 조선 왕실로 인해 부모를……, 여읜 것이 아니냐. 세자빈으로서, 내가 대신 사죄를……,”

 

  “아닙니다! 빈께서 사죄라니요, 가당치도 않습니다!”

 

  “너야말로 내게 미안해 말거라. 그런 거짓 자백도 그만두고. 자칫하다간 네가 큰 화를 입을 것이다.”

 

  “반역을 꾀했다는 누명보다는 낫지 않습니까. 지금으로서는 자객의 존재를 입증할 길도 없고, 조사가 길어질수록 빈과 저에게 좋을 것이 없습니다. 적당히 가벼운 죄를 둘러대어 벌을 받고 마는 것이 방책일 듯하여 그리한 것입니다.”

 

  “가벼운 죄라니, 세자빈을 겁박하고 가두어 둔 것이 어찌 가벼운 죄라 하느냐. 게다가 너는 폐족이라 가중처벌을 받게 될 것이다.”

 

  “빈을……, 안은 것보다는 가벼운 죄가 아닙니까.”

 

  소쌍이 희미하게 웃으며 속삭였다.

 

  “그것은 내가……, 내가 그런 것이지 않으냐. 너는 싫다고 하는데도 내가 억지로 너를……,”

 

  “싫다니요. 너무도 좋았습니다. 너무도 행복했습니다.”

 

  “다 나 때문이다. 나 때문에 네가 이런 일을 겪는 것이다.”

 

  “단 한 번이었습니다. 세상에 태어나서 꼭 한 번. 생을 바쳐도 아깝지 않다 생각했습니다. 그런 이를 만나고 안은 것만으로도 저는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어찌 그런 말을 하느냐. 어찌 그런 말을 해. 꼭 마지막인 것처럼, 그런 표정으로…….”

 

  “빈, 저의 부탁을 들어주시겠습니까.”

 

  “나가서 듣겠다. 풀려난 뒤에 너의 부탁을 들어줄 것이다.”

 

  “지금 꼭 말씀드리고 싶어 그럽니다.”

 

  소쌍의 눈이 애절하게 간청했다. 월이 할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무엇이냐.”

 

  “제 말이 맞다 하여 주십시오. 제가 겁박하였다, 저로 인해 산에서 내려올 수 없었다 말씀하십시오.”

 

  “그런 거짓말은 할 수 없다 하지 않았느냐!”

 

  “저를 위해섭니다. 저를 위해서 딱 한 번만, 그리 말씀해 주십시오.”

 

  월이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싫다! 나로 인해 네가 이 지경이 되었는데 거짓말까지 하여 네게 죄를 더 얹으란 말이냐. 나는 그리 할 수는 없다.”

 

  “빈……!”

 

  “어차피 내가 그렇다 한들 전하께서 쉬 믿으시지도 않을 것이다.”

 

  “적어도 대역죄의 혐의는 옅어질 수 있지 않겠습니까. 다른 증좌와 증인이 나오지 않는 이상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해도 대역죄로 빈을 벌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너는 어찌 하느냐! 너를 두고 혼자 옥에서 나가라는 것이야!”

 

  “이런 곳에 머무셔서는 아니 되는 분입니다. 옥에 갇혀있는 것만으로도 온갖 추문이 떠돌 것입니다. 우선 빈께서 나가신 후에……,”

 

  “싫다! 나는 네 곁에 있을 것이다. 이 정도쯤은 조금도 힘들지 않아. 떠들고 싶으면 맘껏 떠들라고 하여라. 무어라 떠들든 나와 무슨 상관이겠느냐!”

 

  “빈께서 이리 계시면, 그것 또한 저에게 벌이 됨을 모르십니까!”

 

  소쌍이 안타까운 얼굴로 월을 보았다.

 

  “빈께서 받으시는 고통의 열 배, 스무 배로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니 저를 위해서, 빈이 아니라 저를 위해서 그리 해주십시오.”

 

  그때 상궁들이 들어오더니 다짜고짜 월을 끌어냈다.

 

  “무슨 짓들이냐?”

 

  “처소로 모시라는 중전마마의 명이십니다.”

 

  “아니다, 나는 여기 있겠다! 옥에 있을 것이다!”

 

  월이 팔을 휘두르며 뻗대었다.

 

  “빈, 가십시오. 저는 괜찮습니다.”

 

  “싫다, 너를 이런 곳에 혼자 둘 수 없다! 놔라, 이것 놓으란 말이다!”

 

  상궁들의 완력을 당할 길 없는 월은 힘없이 끌려 나갔다. 소쌍이 창살 사이로 손을 있는 힘껏 뻗었다. 하지만 월의 손은 소쌍의 손에 닿지 못하였다. 소쌍이 소리쳤다.

 

  “제 걱정은 마시고 저의 말대로 해주십시오. 빈이 사셔야 저 또한 삽니다!”

 

 

 

  월이 나가고 난 얼마 후, 설매와 옥금이 옥으로 들어왔다. 옥졸에게 패물을 쥐어주고 몰래 들어온 것이었다.

 

  “소쌍아, 이게 대체 무슨 꼴이냐? 아무리 죄를 지었기로서니 사람을 이 지경으로 만들다니, 금수만도 못한 것들이 아니냐!”

 

  산전수전 겪은 설매조차 소쌍의 몰골에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옥금은 차마 소쌍을 보지도 못한 채 눈물을 찍어냈다.

 

  “우선 이거부터 먹어라.”

 

  설매가 보자기를 풀더니 사발 하나를 소중하게 내밀었다. 찰랑찰랑 채워진 시커먼 물에선 지릿한 고린내가 났다. 소쌍이 고개를 저었다. 냄새도 냄새거니와 입 속까지 다 터져 물 한 모금도 제대로 삼키기가 힘들었다.

 

  “핥아서라도 먹어, 이것아. 인중황이라고 똥 삭힌 물인데 장독에는 이게 명약이다. 어렵게 지어온 거니 한 방울도 남기지 말고.”

 

  “그래, 소쌍아. 억지로라도 먹어.”

 

  소쌍이 사발을 들고 입술에 가져다 댔다. 옥금이 사발을 잡아주었지만 퉁퉁 부은 입술 사이로 절반쯤은 그냥 흘러버렸다.

 

  “그러게, 내 뭐라 그랬냐. 우리 같은 천것들에겐 사랑도 사치라 하지 않았더냐. 보통 사람도 탈이 나기 십상인데 세자빈이라니, 어쩌려고 그런 짓을 저질렀누.”

 

  소쌍이 힘겹게 손을 들고 흔들어 보였다.

 

  “그래도 아직 손모가지는 잘리지 않았습니다.”

 

  “너는 그 꼴을 하고도 농이 나오냐?”

 

  설매가 무어라고 더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이미 벌어진 일, 푸념해봤자 달라질 것은 없었다.

 

  “어디 부러진 데는 없어?”

 

  “내가 워낙 통뼈잖냐. 사지 다 멀쩡하다.”

 

  씩씩한 척하는 소쌍을 보며 옥금이 또 눈물을 흘렸다.

 

  적어도 옥금은 소쌍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니 하려 해도 할 수밖에 없고, 아니 보려 해도 볼 수밖에 없는 것이 사랑이었다. 죽을힘을 다해 마음을 접으라 했지만 알면서도 어쩌지 못하는 것이 또한 사랑임을 옥금은 잘 알고 있었다.

 

  “천향 언니가 백방으로 알아보고 있어. 곧 풀려날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그러니까 소쌍이 너는 암 말도 말어. 행여 사랑이니 뭐니 그딴 말은 절대 꺼내지도 말란 말이야.

 

  그저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아무 짓도 안 했다고 딱 잡아떼. 없는 죄도 만들어 붙일 것들이긴 하다만 그래도 지금으로선 이게 최선이다.

 

  천향이가 수를 찾아낼 때까지만 버티란 말이야. 알겠어?”

 

  설매가 몇 번이고 다짐을 했지만 소쌍은 그저 희미하게 웃을 뿐이었다.

 

  “이제 그만 나오게들!”

 

  옥졸의 채근에 설매와 옥금이 마지못해 일어섰다. 쫓기듯 나서는 설매와 옥금의 뒷모습을 멀거니 바라보며 소쌍이 중얼거렸다.

 

  내가 살 길보다 빈을 살릴 길이 절실합니다. 부디 빈을 살릴 길을 찾아내 주세요, 제발.

 

 

  * * *

 

 

  처소로 들어가자 중전이 앉아 있었다. 비틀거리며 절을 올리는 월을 중전이 쏘아보았다. 평소와 다르게 매서운 눈빛이었다.

 

  “얼굴이 어찌 그 모양이냐. 본가에 가 정양을 하고 오라 했거늘 어찌 이런 꼴로 돌아왔느냔 말이다!”

 

  “…… 송구하옵니다.”

 

  다른 사람에겐 몰라도 중전에게만은 할 말이 없었다. 월이 고개를 푹 숙였다.

 

  “너는 어찌하여 이리도 나를 실망시키느냐!”

 

  서릿발 같은 음성이 정수리로 떨어졌다. 월의 고개가 더 숙어졌다. 중전이 힘겹게 흥분을 가라앉히며 말했다.

 

  “말해보아라. 네가 진정 불측한 무리와 어울려 모반을 꾀하였느냐.”

 

  “아니옵니다, 마마! 어찌 소첩이 감히 그런 짓을 도모했겠사옵니까. 억울하옵니다.”

 

  중전이 진심을 파악하려는 듯 월의 눈을 정면으로 들여다보았다. 월이 흔들림 없이 중전을 응시했다. 중전의 표정이 드러나지 않게 누그러졌다.

 

  “허면, 사통을 했다는 것은 무엇이냐. 그 또한 억울한 모함이냐.”

 

  “그것 또한…….”

 

  월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중전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럴 테지. 상대가 여인인 줄을 모르고 그런 모함을 한 것이겠지. 여인과 여인이 사통을 한다니, 그놈들이 자승자박을 한 꼴이지 않으냐.”

 

  “…….”

 

  “너를 밀어내고 제 피붙이를 별궁에 밀어 넣고 싶어 안달난 자들의 수작일 게다.

 

  참으로 딱한 일이지. 궁에서의 삶이 얼마나 비황하고 담한한 일인지 알면서도, 그저 권력을 쥐고 싶어 누이든 여식이든 밀어 넣으려고 눈이 벌게진 위인들.

 

  그리 들어온 여인들은 눈물로 평생을 보내게 되건만, 그런 것은 제 헤아릴 바가 아닌 것이지.”

 

  여전히 차갑지만 애정이 깃든 중전의 말에 월이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

 

  “울 것 없다. 너만 결백하다면 두려울 것이 무어 있겠느냐. 낭설은 쉬 퍼지나 결국 남는 것은 진실이니라.

 

  허나 이런 일이 벌어진 데에는 너의 책임도 없다 할 수 없다. 네가 애초에 빌미를 만들지 않았다면 너를 물고 뜯는 이들이 생겨났겠느냐.

 

  그러니 너는 너의 과오를 반성하며 자중하고 있거라. 추국이 마무리되면 내 너를 모함한 자를 벌하고, 너의 죄 또한 따로이 책할 것이다. 알겠느냐?”

 

  “…….”

 

  “어찌 대답이 없느냐!”

 

  “중전마마…….”

 

  눈물이 그득한 월의 눈을 본 중전의 눈빛이 가늘게 흔들렸다.

 

  “어찌 그런 얼굴을 하는 게야?”

 

  “마마, 마마, 살려주시옵소서……!”

 

  “너를 벌하겠다 하였지, 죽인다 하였느냐. 죽을죄를 짓지 않았다면 어찌 죽기를 걱정하느냐.”

 

  “마마!”

 

  월이 바닥에 쓰러지듯 엎드렸다. 중전의 안색이 확 바뀌었다.

 

  “비, 빈궁 네가 설마……!”

 

  중전이 서둘러 상궁을 불러 복도에 선 궁인들을 문 밖으로 물렸다.

 

  “네가 정녕 죽을죄를 저지른 것이냐! 그자와 진정 사통이라도 했다는 것이냐, 그런 것이야!”

 

  월이 차마 얼굴을 들지 못하고 흐느꼈다.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던 중전이 절망적인 얼굴로 말했다.

 

  “내 너에 관한 온갖 사특한 소문을 듣고도 귀에 담지 않았던 것은 너를 믿기 때문이었다. 너의 유난한 올곧음이 사람들에게 밉보이기에 그런 말들이 나도는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그 말들이 모두 진정이었더냐? 진정 네가 그리 추잡한……,”

 

  중전이 차마 입에 담지 못하겠다는 듯 입을 다물었다.

 

  “어찌하여 그런 짓을 저질렀느냐, 어찌하여! 궁에선 해야 할 것을 하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 않으면 된다 하지 않았느냐!

 

  내 그리도 일렀건만, 어찌 그런 짓을 벌였단 말이냐!”

 

  “그것이……, 그것이 너무도 어려웠사옵니다. 해야 할 것만 하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 않는 것이 제게는 너무도 어려웠사옵니다.

 

  저는 하고 싶은 것도 있고, 하기 싫은 것도 있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옵니다.”

 

  “무어라?”

 

  “고대광실에서 금의옥식을 누리나 단 한 순간도 행복하지 않았사옵니다. 처음으로 행복했사옵니다. 처음으로 사랑이라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처음으로 제가 살아있음을……,”

 

  “닥치거라! 그것이 세자빈으로서 할 말이냐! 네가 지금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고도 그런 말이 나오느냐!”

 

  월의 어깨가 더욱 서럽게 들썩였다.

 

  “행복이라 했느냐, 사랑이라 했느냐, 살아있는 것이라 했느냐! 그 모든 것을 송두리째 내어주고서야 얻는 것이 이 자리다. 범인으로서의 행복 따윈 바라지도, 구하지도 말아야 하는 것이 이 자리란 말이다!

 

  너의 그 허황된 욕심이 너를 망치고, 너의 일가를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네 이름을 더럽힐 것이다. 이것이 진정 네가 바랐던 일이냐?”

 

  월이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고개를 흔들었다.

 

  “모두 소첩의 잘못이옵니다. 소첩은 어찌 되어도 상관없사오니 모든 벌을 저에게 내려주옵소서!”

 

  중전이 얼음 같은 눈빛으로 흐느끼는 월을 내려다보았다. 가녀린 등허리가 애처롭게 떨리고 있었다.

 

  “살 길은 딱 하나다.”

 

  “이, 일러주시옵소서. 시키시는 대로 무엇이든 하겠사옵니다.”

 

  “그 폐족의 자백이 사실이라 인정하거라.”

 

  “예?”

 

  “폐족이 빈궁을 겁박했다 진술하지 않았느냐. 그의 진술이 맞다 인정하란 말이다.”

 

  “허나 그것은 사실이 아닐뿐더러 소쌍이 위험해지옵니다.”

 

  “어찌 이리 어리석을꼬! 지금 네가 어떤 상황인지 천지분간을 못 하는 게야? 그도 살고 너도 살고자 했다면 애당초 이런 짓을 벌이지 말았어야지! 둘 다 죽어야 하겠느냐, 아니면 한 사람이라도 살아야 하느냐!”

 

  멍하니 뜬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렀다.

 

  “둘 다 사는 길 따위는 없다. 네 한 몸이라도 부지한다면 천운인 줄 알아야 할 것이야. 네가 그리 하겠다면, 그자와 있었던 일 따위 깨끗이 잊고 다시는 그런 짓을 저지르지 않겠다 약조하면……,”

 

  중전이 떨리는 눈빛을 다잡으며 말했다.

 

  “내가 너를 도울 것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전하의 마음을 돌려놓을 것이야. 허나 그리하지 않겠다면 나는 너를 도울 수 없다. 너도, 그자도, 너의 일가도 모두 지옥으로 떨어지겠지.

 

  똑똑히 기억하거라. 이것이 네가 행복이니 사랑이니 하는 것들을 좇은 결과임을.”

 

  그 말을 끝으로 중전은 나가버렸다. 홀로 남은 월의 흐느끼는 소리만이 방을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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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23장. 그대를 어찌 보내란 말입니까 2017 / 7 / 4 280 0 8427   
23 22장. 뜨겁고도 날카로운 첫, 2017 / 7 / 3 255 0 6587   
22 21장. 악야惡夜 2017 / 7 / 3 244 0 6638   
21 20장. 지켜주겠습니다. 내가, 당신을 2017 / 7 / 3 256 0 5393   
20 19장. 어쩌면 그때에도 한번쯤 우리는 2017 / 7 / 2 242 0 8214   
19 18장. 지극한 마음으로, 마음을 2017 / 7 / 2 256 0 8518   
18 17장. 닿지 못하는 마음 2017 / 6 / 30 253 0 9153   
17 16장. 사랑이 거짓말이 날 사랑이 거짓말이 2017 / 6 / 30 232 0 6810   
16 15장. 창공에 희디흰 새 한 마리 2017 / 6 / 29 246 0 8806   
15 14장. 당신은 무엇입니까 2017 / 6 / 29 241 0 9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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