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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채운몽
작가 : 채헌
작품등록일 : 2017.6.19

조선 최초의 레즈비언으로 기록된 세종의 두 번째 며느리 세자빈 월, 기루 무사 소쌍을 만나 운명인 듯 우연인 듯 사랑에 빠진다. 아니라 해도, 아니 된다 해도 돌아설 수 없었던 그녀들의, 무지개빛 로맨스

 
27장. 아니라 해도
작성일 : 17-07-05 13:13     조회 : 246     추천 : 0     분량 : 7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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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다음 날, 날이 밝자마자 도곡이 월을 찾아왔다.

 

  “별 것 아닌 일로 걱정을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도곡이 두 손을 모아 합장했다.

 

  “이리 무사하시니 되었습니다.”

 

  “모두 부처님이 살피신 덕인 게지요.”

 

  “며칠 새 얼굴이 많이 안 되셨습니다. 혹 미령하신 것은 아닌지.”

 

  도곡이 걱정스러운 듯 월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아닙니다. 그저 잠을 설쳐 그런가 봅니다.”

 

  “며칠 전 절에 오셨을 때도 그렇고, 몸보다 마음이 더 무거워 보이십니다. 혹여 소승에게도 말 못할 고민이 있으십니까.”

 

  무거워 보이는구나. 스님 눈에 내 마음의 무게가 보이는구나.

 

  당연한 일이었다. 마음에 담은 이가 너무 크기에, 차마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크기에 무거웠다. 무겁고 버거웠다.

 

  바위덩어리를 얹은 듯 무겁고 버거웠으나 결코 내려놓고 싶지 않은 짐이었다.

 

  석가이가 차를 들고 들어왔다. 짙은 녹차 향기가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혔다.

 

  월은 석가이가 나가고도 쉬 대답을 하지 못했다. 도곡은 재촉하지 않고 월의 말을 기다렸다.

 

  차가 거의 식어갈 때쯤에야 월이 느리게 입을 떼었다.

 

  “마음이 무거운 이유가 있습니다, 스님.”

 

  월이 도곡의 따뜻한 눈빛에 마저 용기를 내었다.

 

  “마음에 들인 이가 있습니다. 그이를……, 연모하고 있습니다.”

 

  연모한다 한마디 했을 뿐인데 가슴이 턱 막히며 묵직한 것이 치받쳤다.

 

  연모한다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수많은 감정을 올올이 설명하기란 더더욱 어려웠다.

 

  그 복잡한 감정들이 눈물방울이 되어 투둑 떨어졌다.

 

  “저는 사랑 같은 거, 해서는 아니 되는 사람인데……. 그런 걸 바라서도 꿈꾸어서도 아니 되는 몸인데…….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 스님. 부정하려 해도 부정할 수가 없고, 밀어내려 해도 밀어낼 수가 없었습니다.”

 

  늘 침착한 도곡도 적이 놀란 낯빛이었다. 하지만 한번 터진 감정의 물꼬는 쉬 가무려지지 않았다.

 

  “지금도 그 사람이 너무 보고 싶습니다. 그이를 두고 궁에 돌아가는 것이 죽기보다 더 괴롭고 두렵습니다.

 

  이를 어찌하면 좋을까요. 이 마음을, 이 사람을 어찌해야 좋을 지요.”

 

  월이 끝내 어깨를 들썩이며 낮게 울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도곡이 눈을 감으며 염주를 굴렸다. 월의 울음이 잦아들자 도곡이 차분한 말투로 물었다.

 

  “빈궁께서는 어찌 하고 싶으십니까.”

 

  “모르겠습니다. 제가 어찌 하고 싶은지, 무얼 할 수 있는지. 사방이 꽉 막힌 벽으로 둘러싸인 듯합니다.

 

  생각가지들이 제각기 뻗어 나와 머릿속이 너무 어지럽습니다.”

 

  도곡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세상만사 이유 없는 일이 없듯 이유 없는 인연 또한 없는 법입니다. 아무리 잘난 이도 홀로 존재하지 않고, 너와 나는 인과 연의 법칙으로 연결되어 있지요.

 

  이생의 인연은 전생의 업과 과로 인한 것, 우리가 이 생에 만나게 되는 이유는 전생의 못 다한 마음을 다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랑하는 이는 사랑을 다하기 위해, 미워하는 이는 미움을 다하기 위해 이어지는 것이지요.”

 

  월이 젖은 눈으로 도곡을 보았다. 심흑색 눈동자가 물기에 젖어 더욱 애처로웠다.

 

  “이 생에서 마음은 접고, 다음 생에 만나기를 기원하라는 말씀이시지요.”

 

  도곡이 아무 말 없이 염주만 굴렸다. 월이 슬픈 미소를 지었다.

 

  다음 생에 만나더라도 그때도 어렵다면 어찌 해야 할까.

 

  그때는 소쌍이 세자빈이고, 자신이 기루의 잡일꾼으로 태어날 지도 모르는데. 그 생을 기다려 또 다음 생이 되어도, 또 다음 생이 되어도 닿을 수 없다면…….

 

  이미 소쌍과 자신이 억겁의 시간동안 몇 번이나 다시 태어나 이 생에 만난 것이라면…….

 

  그 생각을 하니 소쌍과 자신이 참을 수 없이 가여웠다.

 

  “마노라, 인생사에 옳은 답이란 없습니다. 시비나 호오를 가릴 수 없는 문제들과 연속해서 맞닥뜨리는 것이 인간의 생이고 고(苦)지요.

 

  위안이 되는 것이 있다면 인생이란 제 나름의 궤도를 가지고 있어 어차피 가야할 곳으로 가게 되어있다는 사실입니다.

 

  크게 보면 어차피 당도하는 곳은 같을 것입니다. 지금 이 길을 택하고 이것을 감당할 것이냐, 저 길을 택하고 저것을 감당할 것이냐의 차이인 게지요.

 

  빈께서는 무엇을 감당하실 지를 선택하시면 되는 것입니다.”

 

  “선택이요……. 어느 길로 가나 눈물겨운 가시밭길일 터인데, 그런 것을 어찌 선택이라 부르겠습니까.”

 

  “그 가시밭길을 누구와 걸을지는 마노라께서 선택하실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

 

  “저에게 묻지 마십시오. 다른 누구에게도 묻지 마십시오. 마노라께서 스스로에게 묻고, 스스로 답하셔야 합니다.”

 

  월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도곡이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너무 두려워 마십시오. 부처는 우리 마음 안에 계십니다. 다른 누구도 말고 빈궁 자신의 마음을 등불로 삼으십시오.

 

  그리 하면 어떤 가시밭길이라도 능히 헤쳐 나갈 수 있으실 겝니다.”

 

  한참 생각에 잠겼던 월이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는 보자기를 꺼내 짐을 싸기 시작했다. 도곡이 그런 월을 멀끄러미 바라보았다.

 

  “스님, 잠시만 여기 계셔주세요. 제가 빠져나갈 때까지만, 부탁드리겠습니다 스님.”

 

  “어디로 가시렵니까.”

 

  “저는 저의 마음이 이끄는 곳으로 가겠습니다, 스님.”

 

  월이 방문 쪽을 흘깃 살피고는 창문을 넘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부처님의 자비가 함께 하시기를.”

 

  도곡이 천천히 눈을 감았다.

 

 

  * * *

 

 

  탕탕탕, 탕탕탕.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향원각을 들깨웠다.

 

  “염병할, 양기가 뻗쳐 지랄병이 났나? 아침댓바람부터 어떤 놈이 이 난리를 부려?”

 

  설매가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하며 문을 열었다. 어느 새 해가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왔지만 매일 동이 트도록 등을 밝히는 기루로서는 꼭두새벽이나 다름없는 시간이었다.

 

  “어라?”

 

  설매의 눈이 둥그레졌다. 술 취한 오입쟁이겠거니 했는데 웬 고운 여인이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설매가 월이 들고 있는 짐 보따리를 흘끔 보며 물었다.

 

  “뉘시오?”

 

  “저……, 누굴 좀 찾아왔는데.”

 

  “여긴 아씨가 찾을 만한 사람이 없는뎁쇼.”

 

  “소쌍을……, 만나러 온 것이네.”

 

  역시나. 설매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뉘신데 소쌍 언닐 찾으시오?”

 

  그 사이 잠이 깨어 나온 난앵과 춘섬이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그건 묻지 말고, 소쌍을 좀 불러주시게.”

 

  “흥, 누군지를 알아야 불러주든 말든 하지.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 부탁을 어찌 들어달라는 거야?”

 

  난앵이 들으라는 듯 큰소리로 빈정거렸다.

 

  “그러게. 양반이면 뭐, 우리 같은 사람들은 다 자기들 종으로 보이나 보지?”

 

  춘섬도 콧방귀를 뀌며 눈을 흘겼다.

 

  “지금 소쌍이 없소.”

 

  설매가 퉁명스럽게 대꾸하고 문을 닫으려 했다. 월이 당황하여 팔을 뻗었다.

 

  “어, 어딜 갔는가? 언제쯤 돌아오는지는 모르는가?”

 

  “낮이고 밤이고 바람처럼 오가는 것을, 내 어찌 알겠소.

 

  그리고 내 아씨를 생각해서 하는 말인데, 이곳은 그쪽 같은 양갓집 규수가 드나드는 곳이 못 되오. 그러니까 다시는 얼씬도 마시구랴.”

 

  “이, 이보게, 잠깐만……,”

 

  설매가 월을 밀어내려는데 차가운 호통소리가 들려왔다.

 

  “손님맞이가 어째 그 모양이오!”

 

  천향이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난앵과 춘섬이 뒤로 물러났다. 설매가 인상을 잔뜩 일그러뜨렸다.

 

  “그럼 뭐, 양반집 아가씨를 꽃이라도 뿌려 맞으랴?”

 

  천향이 고개를 숙여 예의를 표했다.

 

  “저희 식구들이 실례가 많았습니다. 헌데 귀한 분께서 어찌 이런 곳까지 걸음하셨습니까?”

 

  “소쌍을, 만나러 왔네.”

 

  “기녀는 아니오나 기루의 사람입니다. 용건 정도는 말씀해주시지요.”

 

  “긴히 할 말이 있어 온 것이네. 그것까진 자네에게 이야기할 필요가 없을 듯하고.”

 

  천향의 시선이 월이 들고 있는 짐 보따리로 향했다. 월이 짐 보따리를 감추듯 안았다.

 

  “따라오시지요.”

 

  “천향아!”

 

  설매가 말리는 것을 개의치 않고 천향이 돌아섰다.

 

  소쌍의 방문 앞에 이르자 천향이 말했다.

 

  “손님이 오셨구나.”

 

  방 안에선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천향이 문을 열어젖히자 멍하니 누워있던 소쌍이 튀어 오르듯 몸을 일으켰다.

 

  “비, 빈께서 여긴 어찌……!”

 

  아연실색한 소쌍을 밀쳐두고 천향이 차분한 손길로 방석을 내어주었다.

 

  “앉으시지요.”

 

  월이 소쌍과 천향을 번갈아 보며 엉거주춤 앉았다. 소쌍은 여전히 입을 벌린 채 월을 보고 있었다. 천향이 공손히 절을 올렸다.

 

  “일전에 인사를 올린 적이 있사온데 기억하십니까.”

 

  “기억하네. 천향이라 하였던가.”

 

  “빈궁 마노라께서 천한 이름을 기억해주시니 감읍할 따름입니다.”

 

  “너 또한 기억력이 좋구나. 나를 알아본 것이냐?”

 

  “기생들은 스쳐 지나는 얼굴 하나도 허투루 보지 않습니다.”

 

  특히 나의 정인이 눈을 두는 이라면 말입니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월은 소쌍이 무슨 말이라도 해주길 바랐지만 소쌍의 시선은 월의 짐 보따리에 붙들려 있었다.

 

  침묵을 깬 것은 천향이었다.

 

  “귀한 손님이 드셨으니 제가 노래 한 곡 올리겠습니다.”

 

  “노래는 되었네.”

 

  월이 손을 들어 말리려 했지만 천향은 생황을 꺼내 들었다.

 

  천향이 눈을 내리깔고 생황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구슬픈 곡조가 흘러나왔다. 짝 잃은 봉황이 외로이 하늘을 날며 짝을 그리워하는 울음소리 같은 노래였다.

 

  한 곡을 끝낸 천향이 담담한 표정으로 일어섰다.

 

  “방해가 길었습니다. 그럼 두 분 말씀 나누시지요.”

 

  물러나 방문을 닫는 천향의 표정이 방금 연주한 음악만큼이나 처연했다.

 

 

 

  숨 막힐 듯 적요한 침묵이 다시 방안을 메웠다.

 

  “내가 와서 많이 놀랬느냐.”

 

  월이 소쌍의 눈치를 살피며 겨우 입을 열었다.

 

  “어쩌자고 여길 오신 것입니까!”

 

  소쌍의 목소리에 화가 실렸다.

 

  “빈궁을 노리는 자객이 있습니다! 혼자 다니시다 변이라도 당하면 어쩌시려고 이리 무모한 짓을 하셨습니까!”

 

  “네가……, 보고 싶어 왔느니라. 너를 보고 싶어서, 보지 않으면 죽을 것같기에 온 것이다. 너도 내가 보고 싶지 않았더냐?”

 

  보고 싶었다. 너무도 보고 싶었다. 너무 보고 싶어서 가슴이 터져버릴 것같았다. 한 번만 볼 수 있다면 지옥불로 떨어져도 상관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보고 싶었다. 하지만……,

 

  보고 싶어 해서는 아니 되는 사람이었다. 보아서는 더더욱 아니 되는 사람이었다.

 

  “누가 보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이러십니까. 세자빈께서 기루라니요!”

 

  “아무도 모르게 왔느니라. 내 석가이도 떼어두고……,”

 

  “빈만을 걱정해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혹여 일이 드러나면 빈께서야 가벼운 처벌로 지나가실지 모르나 기루의 사람들은 경을 칠 수도 있는 일입니다!”

 

  이런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니었다. 그리웠다고, 너무 그리워 그대의 치맛자락이라도 보았으면 하고 간절히 바랐다고, 온 가슴을 앓았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할 수 없는 말이었다. 해선 안 되는 말이었다.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 혀끝에 맺히는 말들을 소쌍은 필사적으로 눌러 목구멍 깊숙이 삼켰다.

 

  “미, 미안하다. 내 기루 사람들을 곤란하게 할 마음은 없었느니라.”

 

  월이 금방이라도 울 듯한 눈으로 소쌍을 보았다. 그 눈빛에 소쌍의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듯했다.

 

  “어찌 그리 이기적이십니까! 그런 마음이 없었다 하면 모든 것이 용서가 되고 괜찮아지는 것입니까!”

 

  “도, 도망치자 소쌍아.”

 

  짐 보따리를 보고 짐작했던 말이지만 막상 들으니 더욱 당혹스러웠다.

 

  “나와 함께 도망치자. 시간이 없다. 내일이면 나는 궁으로 돌아가야 해. 그러고 싶지 않아.

 

  나는……, 너와 있고 싶다. 너의 눈을 보고, 네 목소리를 듣고, 네 두 팔에 안겨있고 싶어.”

 

  월이 소쌍의 손을 잡아끌었다.

 

  “너와 함께라면 어디든 가겠다. 궁산 벽촌이라도 상관없느니라. 너와 함께 있을 수만 있다면, 나는……!”

 

  소쌍이 차갑게 그 손을 뿌리쳤다.

 

  “이기적인 데다 어리석기까지 하시군요.”

 

  “소쌍아…….”

 

  “대갓집 규수로 태어나 세자빈으로 사시는 분이 어디든 가시겠다구요? 궁산 벽촌이라도 상관없으시다구요?

 

  하아, 진짜 궁산 벽촌을 한 번이라도 보셨다면 쉽사리 그런 말은 못 하셨을 겁니다.”

 

  “괜찮대두, 너만 있으면, 나는 너만 있으면 괜찮다! 진정이다!”

 

  “허면 저의 마음은요?”

 

  소쌍이 냉랭한 시선으로 월을 보았다.

 

  “저의 마음은 생각지 않으십니까. 빈이 가시고자 한다면 저는 무조건 따라야 하는 것입니까. 어째서요?”

 

  “소, 소쌍아……. 어찌 그리 나를 차갑게 보느냐. 하루 새 눈빛도, 목소리도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것같구나.”

 

  “빈께서 원래 저의 모습을 알기나 하십니까?”

 

  월이 머뭇거리는 사이 소쌍이 문을 열어젖히고 나가서는 난앵을 껴안고 들어왔다. 월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어머, 이 언니 왜 귀신이라도 본 얼굴이래? 우리가 너무 잘 어울려서 놀라셨나?”

 

  난앵이 재미있다는 듯 까르륵 웃었다.

 

  “소쌍아, 이, 이게 무슨……!”

 

  “보면 모르시나? 무얼 하는 것인지.”

 

  난앵이 보란 듯이 색기 가득한 눈웃음을 흘리며 소쌍에게 입을 맞추었다. 소쌍이 난앵의 입술을 받아들이며 난앵의 치마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아잉, 언니도 급하긴.”

 

  난앵이 앙탈을 부리며 교태스럽게 몸을 뒤챘다. 소쌍의 손이 난앵의 어깨를 단단히 붙들었다.

 

  월은 크게 벌어진 눈으로 소쌍과 난앵을 보고 있었다. 난앵이 익숙한 손놀림으로 제 저고리를 풀어 헤쳤다. 그리고는 도도록하게 솟기 시작한 가슴 위로 소쌍의 손을 끌었다.

 

  소쌍의 손이 잠시 멈칫하다 난앵의 가슴을 세게 쥐었다. 월이 차마 볼 수 없어 고개를 돌렸다.

 

  “기루에도 오는 분이 조신한 척은.”

 

  월이 입술을 깨물었다. 난앵이 소쌍의 몸을 더듬으며 종알거렸다.

 

  “이봐요, 양반 댁 언니. 하룻밤 즐겼음 됐지, 촌스럽게 여기까지 찾아오고 그래요? 짐 보따리 싸들고 야반도주라도 하시게요?

 

  어휴, 역시 귀하게 자란 분들은 세상물정을 모른다니까.”

 

  난앵이 소쌍을 향해 눈을 흘기며 말을 이었다.

 

  “그러게 내 뭐랬소. 지체 높은 여인네들은 건드리지 말라니까. 천지분간 못하고 들러붙어선 사랑이니 뭐니 골치 아프게 군다고 내 그리 일렀잖소.”

 

  모욕감과 절망감으로 월의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잘 보세요. 이게 납니다. 이게 진짜 소쌍의 모습이란 말입니다. 이런 저라도 함께 도망치고 싶으십니까?”

 

  소쌍이 한껏 위악적인 미소를 지어보였다. 늘 샛맑고 청초하던 월의 눈망울이 원망을 가득 담은 채 소쌍을 노려보고 있었다.

 

  “왜요, 실망하셨습니까. 아니면 이걸로는 성에 안 차십니까. 더 보여드려요?”

 

  “그만 두어라!”

 

  월이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마당에 서 있던 천향이 뛰쳐나가는 월의 뒷모습을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어머, 저 언니 진짜 상처받았나봐. 가엾어라.”

 

  난앵이 빙글거렸다.

 

  “미안하다, 난앵아.”

 

  “미안하긴. 난 재밌기만 했는데요?”

 

  “그만 가봐라.”

 

  소쌍이 난앵을 안고 있던 팔을 풀렀다. 난앵이 두 팔로 소쌍의 목을 감았다.

 

  “이왕 한 김에 좀 더 하자. 난 좋은데.”

 

  소쌍이 고개를 저었다. 난앵이 샐쭉해져서 말했다.

 

  “왜, 내가 저 언니보다 못하오? 내가 훨씬 예쁜 것 같구만.”

 

  “그만 나가래도!”

 

  소쌍이 소리를 질렀다. 난앵이 쌔무룩한 표정으로 문을 닫아 붙이고 나갔다.

 

  “아아……!”

 

  소쌍의 입에서 상처 입은 짐승 같은 절규가 터져 나왔다.

 

  형체도 없는 마음이라는 것이 너무도 아팠다. 무거운 바윗돌로 생살을 짓이기는 듯했다. 날카로운 검으로 오장육부를 쪼개는 듯했다.

 

  소쌍이 가슴팍을 부여잡고 몸을 웅크렸다. 소리 없는 절규가 기―일―게, 이어졌다.

 

 

 

  “마노라!”

 

  기루 앞에서 손톱을 물어뜯으며 서성거리던 석가이가 월을 보고 한달음에 달려왔다.

 

  “내가 여기 온 줄은 어찌 알았느냐.”

 

  “여기밖에 가실 데가 더 있어요?”

 

  석가이가 얼른 쓰개치마를 씌워주다가 월의 손에 들린 짐 보따리를 보고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마님은 모르셔요. 진짜 큰일 벌어지기 전에 얼른 가요.”

 

  석가이가 짐 보따리를 빼앗듯 받아들고 손을 끌었다.

 

  “마노라, 손이 왜 이리 차가우셔요? 얼굴은 또 왜 이리 새파랗게 질리셨고요.”

 

  “괜찮다. 아무렇지도 않으니 어서 가……,”

 

  월이 말을 맺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져버렸다.

 

  “마노라, 마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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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15장. 창공에 희디흰 새 한 마리 2017 / 6 / 29 245 0 8806   
15 14장. 당신은 무엇입니까 2017 / 6 / 29 239 0 9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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