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에 도착한 준혁과 경일은 가장 먼저 오철식이 다녔던 남양평고등학교에 방문했다.
"선생님도 만나보게요?"
"수 십년은 지났는데 오철식을 아는 선생님이 있겠냐?"
준혁의 물음에 경일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럼 1)생기부?"
"생기부보다는 오철식이 반 명부부터 확인하자. 그게 가장 빠를 것 같다"
경일의 말에 준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렇네요. 생기부라고 해봐야 고등학교 1학년 때 구속되었으니 그 것 외에 특별한 기록도 없을 거 같고..."
"공문 가져왔지?"
준혁이 결재판을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이자 경일이 교무실 방향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드르륵
"저... 실례합니다"
순간 교무실 내 선생님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것을 느낀 경일이 조금 경직된 표정으로 말한다.
"경찰서에서 왔습니다. 뭐 좀 여쭤보려고 하는데 어느 분께..."
경일의 말에 교사들이 서로 눈치를 보고 있자 50대는 훌쩍 넘어보이는 노년을 바라보는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 학교 교감인 김재규입니다. 경찰관 분들이 여기는 무슨 일로..? 혹시 우리 애들이 사고를..."
"아, 아닙니다. 그건 아니구요. 저 여기서 할 얘기는 아닌 것 같은데..."
경일의 말에 재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옆에 학생상담실로 가시죠"
테이블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재규와 경일, 준혁이 마주앉았다.
"다시 한번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마산북부경찰서 형사팀에 근무하는 한경일이라고 합니다"
경일이 신분증을 꺼내 놓으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같이 근무하는 조준혁입니다"
"그 먼 곳에서 이곳까지.. 남양평고등학교 교감 김재규입니다"
재규가 마주 목례하자 경일이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말한다.
"저.. 저희가 이 곳에 방문한 이유는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학생이 사고를 쳤다던가 그런 이유는 아닙니다"
"그럼..."
"이 학교 졸업생 1명을 찾고 있습니다. 정확하게는 오래 전에 퇴학당한 학생이지만...혹시 그 학생 재학 당시 반 명부나 기록, 아니면 혹시나 그 학생을 알고 있는 선생님이 혹시 있을까 해서요"
"실례지만 무슨 이유로 그 학생을 찾으시는지 알 수 있을까요?"
재규의 말에 경일이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한다.
"아직 수사가 진행 중인 상태라 자세히는 말씀드리지 못하지만... 저희가 뒤 쫓고 있는 수사대상자입니다"
경일의 말에 짐짓 표정을 굳힌 재규가 말한다.
"형사님들도 아시다시피 반 명부라던가 학생들 인적사항이 기재된 기록들은 함부로 보여드릴 수가 없습니다"
"저 그래서 여기 공문을..."
준혁이 결재판에서 공문을 꺼내 내밀자 재규가 흘깃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공문가지고 안된다는거 형사님들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영장이 아닌 이상..."
"아 그건..."
준혁이 당황하자 옆에 있던 경일이 급히 말한다.
"아 물론 저희가 그 학생의 인적사항이나 전체 반 명부를 원하는 건 아닙니다 교감선생님"
"...?"
경일이 한숨을 내쉬더니 말한다.
"그... 하아, 저희가 수사 협조를 구하는 입장에서 너무 숨기려고만 했네요. 죄송합니다. 혹시 교감선생님이시라면 아실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십 수년도 더 전에 이 학교에서 있었던 살인사건이요"
"예? 살인사건이요?"
재규가 놀라 되물었다.
"반 친구가 부모님까지 들먹이면서 욕하는게 화가 나서 컷터칼로 그 친구의 목을 그었던 학생입니다. 이름은... 오철식이구요"
흠칫
순간 재규의 표정이 눈에 띌 정도로 경직되었다.
"알고 계십니까?"
잠시 주저하던 재규가 한숨을 내쉬며 대답한다.
"그 학생은... 제 학생이었습니다. 제가 그 때 철식이 담임이었죠"
재규의 말에 경일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정말이십니까?"
"...철식이는 본래 심성이 악하다거나, 요즘 말로 싸이코패스 뭐 그런 류의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불쌍한 아이였죠"
무언가를 떠올리는 듯 잠시 침묵하던 재규가 '그 일'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그 때...."
퍽
"야, 빵"
박수홍이 자리에 앉아 있던 오철식의 등을 걷어 찼다.
"...응 수홍아"
자리에서 일어난 오철식이 박수홍을 바라본다.
"내가 아침마다 자리에 빵 올려놓으라고 했냐? 안했냐?"
툭, 툭
박수홍이 신고 있던 삼선 슬리퍼를 벗더니 밑바닥으로 오철식의 뺨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미안... 오늘은 돈이 없어서..."
짝!
박수홍이 슬리퍼 밑바닥으로 오철식의 뺨을 '짝'소리가 날 정도로 후려갈겼다.
"니네 집 기초생활수급자인가 뭔가라서 나라에서 꼬박꼬박 용돈 주는 거 다 아는데 이게 개아리를 터네? 그지새끼야"
"... 그건 우리 아버지 치료비..."
"아이 쒸~발. 맨날 노가다판 뒹구는 노가다새끼가 무슨 치료가 필요해? 벌레처럼 하루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인생, 짧고 굵게 좋은 곳에 가시고 아들놈 용돈이나 챙겨주지. 애비 너~무한다. 그치?"
"..."
오철식이 고개를 숙인 채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오우 우리 철식이! 화 나쪄용? 내가 미안해~ 내가 너무 심했네. 화 풀어. 응? 화풀자?"
박수홍이 앞에 있던 오철식의 머리를 쓰다듬던 중 갑자기 머리채를 붙잡아 확 들어올렸다.
"앜!"
"내가 사과하고 있잖아 셔틀 새끼야"
"으..."
고통에 신음을 흘리는 오철식의 두 눈에 눈물이 고여있는 것을 확인한 박수홍이 피식 웃었다.
"우냐? 븅신새끼야?"
"..."
오철
"월요일은 무슨 빵?"
"....초코빵"
"대답이 늦고 짧다? 화요일은?"
박수홍이 다시 신고 있던 슬리퍼를 손에 들려고 하자 오철식이 급히 말한다.
"소시지빵입니다!"
퍽!
박수홍이 주먹으로 오철식의 명치를 가격했다.
"컥!"
"오늘부터 죽빵이다 븅신새끼야. 아, 명치니까 명치빵인가?"
바닥에 쓰러져 고통에 몸부림치는 오철식을 보며 박수홍이 '큭큭' 거리며 웃었다.
"그지새끼가 엄살은... 넌 형한테 고마워해야 돼"
"컥, 컥...으...."
박수홍이 숨이 안쉬어지는지 '컥, 컥' 거리고만 있는 오철식을 재밌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며 말을 잇는다.
"애미 없는 흙수저 새끼가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려면 몸이라도 튼튼해야지. 그런 철식이를 위해 형이 이렇게 직접 맷집도 키워주잖아?"
부들부들
신음을 멈추고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오철식을 박수홍이 발로 툭, 툭 건드리며 말한다.
"바닥에서 그러고 있으니까 꼭 벌레같다 철식아. 셔틀, 셔틀 하는거 기분 나빴지? 미안~ 앞으로 벌레라고 부를게"
"..."
"야 벌레. 화나? 대답이 없어"
박수홍이 쪼그려 앉아 쓰러져 있는 오철식의 두 눈을 마주보며 으르렁거린다.
"끝까지 말 안하네. 야 급식!"
"응 수홍아!"
오철식의 옆자리에 앉아 있던 왜소한 체격의 남학생이 달려온다.
짝, 짝, 짝
"우리 급식 축하해? 오늘부터 급식 졸업!"
"응...?"
급식이라고 불린 남학생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 있는 모습을 보며 박수홍이 손을 휘,휘 저었다.
"가봐 새끼야"
"..."
"가보라고!"
"미..미안!"
후다닥 달려가는 남학생의 모습을 보며 피식 웃은 박수홍이 다시 오철식을 바라보며 말한다.
"오늘부터 니가 내 급식까지 담당한다. 오케이?"
"..."
"와우~ 끝까지 씹네. 지조 있어. 니네 애미는 몸 팔고 다니다가 에이즈로 뒤졌다는 소문이 있던데. 애미랑 다르다~ 우리 철식이"
손으로 오철식의 뺨을 툭, 툭 두드린 박수홍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휴 얼굴에 뗏국물이 줄줄하네 더러운 새끼. 쉬는시간 거의 다 끝났네. 오늘 확실히 급식한테 인수인계 받아라. 제대로 안하면... 알지?"
부르르 몸을 떨던 오철식이 한 순간 '뚝'하고 움직임을 멈췄다.
조용히 일어난 오철식이 자리로 돌아가 책상 깊숙이 숨겨둔 컷터칼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박수홍 이 개새끼야!!!!!!!!!!!!!!!!!!!!!!!!!!!!!!!!!!!!"
자리에 앉아 있던 박수홍의 목덜미를 뒤에서 그대로 그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