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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지옥연애환담
작가 : 황도톨
작품등록일 : 2017.6.23

헬조선을 살아가는 흙수저 김진언.
회사에서 짤리고, 남친에게 차이고, 통장은 텅텅, 지옥의 구렁텅이에 빠지고 말았다.
그런 진언이 새로 입사한 회사는 진짜 지옥?
설상가상으로 지옥 최종보스, 진언의 직장상사님, 염라대왕은 까칠하기 짝이 없고...
지옥에서 일과 사랑 둘다 쟁취하라!

 
04. 첫출근, 첫재판
작성일 : 17-07-04 15:18     조회 : 387     추천 : 0     분량 : 7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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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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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에 홀렸다고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자신이 지금 지옥관광을 하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살다 살다 구미호한테 홀렸다는 이야기는 들었어도, 저승사자한테 홀렸다는 이야기는 나도 첨이네.’

 

 

 솔직히 그 계단에서는 내가 저렇게까지 필요하다고, 꼭 필요한 사람이라고 말해주는데, 까짓 좀 속아주면 어떠랴라는 심정으로 내려왔다. 한 5분쯤 내려오자 계단은 끝이 났고, 그 앞에 광경에는 입이 떡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지옥이 펼쳐졌다.

 

 

 저 멀리 어딘가에서 비명이 들렸다. 진언의 옆으로 분장이 분명 아닌 듯해 보이는 도깨비 같은 형상이 아무렇게 않게 지나가고 있었다. 그 위에는 무슨 죄를 지었는지 남자 하나가 다리를 절뚝이며, 팔이 묶인 채 끌려가고 있었다.

 

 

 감옥처럼 보이는 어떤 곳을 지나가면서 힐끗 쳐다봤더니, 거기엔 민속촌에서 봤던 대장간 같은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다른 점이라면 대장장이가 뿔이 달렸고, 쳐다보는 눈빛이 살벌했다는 거다.

 

 

 “진언씨, 똥물에 튀겨죽일 놈 이라는 말 들어보셨어요?”

 

 “네. 들어 보긴 했어요.”

 

 “저기~ 저쪽 보이세요? 연기 나는 쪽.”

 

 “네, 보여요.”

 

 “저기 가시면, 실사로 보실 수 있어요. 근데 냄새가 좀 나서 전 별로... 하하.”

 

 

 이제 이 남자의 싱그러운 웃음이 기괴하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주변은 흡사 동굴체험이라도 하는 듯 어두컴컴하고, 길도 울퉁불퉁해서 걷는 게 쉽지 않았다.

 

 

 “근데, 지금은 어디 가는 거예요?”

 

 “염라궁으로요. 특별한 일이 아니라면 재판은 거의 그쪽에서 이루어지니까요. 지금까지 길, 아시겠어요?”

 

 “길이라고 할 것도 없이, 외길이잖아요. 아니, 잠깐만요. 그럼 매일 이렇게 출근을 해야 한다는 거예요?”

 

 “네.”

 

 “지하철 도보 10분이라고 했으면서...”

 

 “하하- 사무실은 그렇긴 하잖아요. 아! 사무실 도착만 9시까지 하시면 되요. 여기까지 오는 건 업무라고 볼게요. 저기 건물 보이나요?”

 

 “네. 절 같은.. 거 말이죠?”

 

 “넵! 저기가 염라궁입니다. 전 슬슬 좀 현대적으로 고쳐도 좋을 것 같은데, 저희 대왕님이 조금 고루한 성품이시라서요.”

 

 “혹시, 그 대왕님이라는 분은 연세가....?”

 

 “글쎄요. 한 오천? 그 정도 되시려나? 별로 궁금해본 적이 없어서 저도 잘은 모르겠네요.”

 

 

 잠시 진언의 머릿속이 멍- 해졌다. 이미 여기까지 와서 뭘 더 신기한 걸 보려나 했지만, 직장상사 나이가 오천 살이라는데 또 문화적 충격이 오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 반만년 역사의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태어나고, 가장 먼저 죽은 자라고 하니 그 정도 나이가 되겠다 싶기도 했다.

 

 

 성큼성큼 천황이 먼저 안으로 들어가고, 그 뒤를 진언이 졸졸 따랐다. 정말 이제는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었다. 넓은 염라궁은 의외로 그리 사람이, 아니 귀신이 그리 많지 않았다. 두리번거리고 있는 진언에게 천왕이 어서 오라는 듯 손짓을 하자, 진언은 얼른 움직였다. 천왕이 문 하나를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진언도 그의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가 대왕께서 망자의 죄를 판가름하는 곳입니다. 지금 막 재판이 시작 하려는 모양이군요.”

 

 

 진언이 빠끔히 고개를 내밀어 쳐다보자 흡사 사극 세트장 같은 느낌의 방이 보였다. 어릴 적 늦은 밤 엄마가 보던 판관 포청천 같은 느낌이기도 했다. 갑자기 개작두라도 나타나서 저 남자의 목을 뎅겅 잘라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진언은 침을 꼴깍 삼켰다.

 

 

 천왕의 시선을 따라가자 한 남자가 보였다. 무릎을 꿇고 앉은 남자는 40대 정도로 보였고, 딱 봐도 삶에 찌들어 보였다. 진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는 것이, 지금 이 상황이 퍽 겁도 나고, 무서운 모양이었다.

 

 

 ‘왜 안 그렇겠어.’

 

 

 아직 죽은 것도 아니고, 심판을 받은 것도 아닌 진언도 여기까지 오는 데만도 엄청 주눅이 들었는데 말이다. 자신이 똥물에 튀겨지거나, 톱질이 당한다거나, 뜨거운 쇠막대기랑 강제포옹을 해야 하는 형에 쳐한다면 당연히 저렇게 될 거다.

 

 

 남자는 자신에게 판결을 내릴 저 윗자리에 계신 분을 힐끗 쳐다봤고, 진언 역시도 그의 시선을 따라 윗자리를 쳐다봤다. 자신의 직장 상사가 될 5,000살의 그분을.

 

 

 “이잉?”

 

 

 자기도 모르게 진언의 입술 사이로, 신음도 아닌 것이, 감탄사도 아닌 요상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리고 슬쩍 옆의 천황에게 눈으로 말을 걸어보기도 했다.

 

 

 - 야, 5,000살이라메?

 

 라고.

 

 

 - 어딜 봐서, 5,000살이야?

 

 라고도.

 

 

 높은 3개의 단 위, 황금용이 새겨진 의자 위에 위엄 있게 검은색 곤룡포를 입고 있는 남자는 기껏해야 20대 중후반, 정말 정말 동안이라고 봐도 30대는 절대로 넘지 않을 얼굴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무표정한 그 얼굴은 지금 사극 촬영 중인 배우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잘생겼다. 조금 창백하다고 할 수 도 있긴 했지만, 하얀 피부에 검은 눈동자, 살짝 찌푸린 눈썹은 반듯한 이마에 살짝 주름을 만들고 있었다. 뭔가 생각하는 듯 한 입술은 도톰하고, 적당히 붉었다. 슬쩍, 남자가 손을 들자, 검은 옷자락 사이로 길고 반듯한 손가락이 보였다. 단정하고 납작한 손톱이 정갈해 보이는 손이었다.

 

 

 “업경을 비추어라.”

 

 

 염라의 말에 2번째 단에 있던 거울이 빛을 내기 시작했다. 아무 것도 비추지 않던 거울이 일렁이는 듯하더니, 곧 초점을 찾고 사물을 비추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사물은 방안의 사물은 아니었다.

 

 

 처음 보이는 것은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남자의 얼굴이었다. 그리고 휙휙- 장면들이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그는 울기도 하고, 웃기도 했고, 화내기도 했고, 때론 슬퍼보기도 했다. 그 남자의 일생이 휙휙- 지나가고 있었다. 거울이 너무 빨리 바뀌자 진언을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평범하구나, 예까지 왔으면 뭐가 있을 터인데?”

 

 

 톡- 톡- 단정한 손톱이 용상을 두드렸다. 그러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던 남자의 팔이 후들후들 떨리기 시작했다. 불안한 동공이 방의 이곳저곳을 훑기 시작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염라의 얼굴은 느긋했다.

 

 

 “평범한 인간은 예까지 오지 않는다. 대부분은 그대로 윤회의 굴레 안으로 들어가지. 예까지 온 것은 아주 미묘한 경우이지.”

 

 

 톡- 톡-. 여전히 손톱이 용상을 두드리고 있었다. 아주 조금, 그 속도가 빨라진 듯도 했고, 꿇어앉은 남자의 팔이 좀 더 후들거리는 듯도 했다.

 

 

 “네 놈은 무슨 사연이 있어서 예서 이러고 있을고? 뭔가 있을 터인데?”

 

 

 톡- 톡-. 남자의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뭔가 말하려는 듯 남자의 입술이 떨어졌다, 붙었다. 슬며시 염라의 얼굴에 미소가 걸리었다.

 

 

 “되었다. 네 놈은 지옥행이다.”

 

 

 번쩍- 남자의 고개가 들렸다. 황망한 얼굴에는 핏기 하나 없었다.

 

 

 “억울합니다!”

 

 “무엇이?”

 

 “저, 저는 그렇게 착한 놈은 아니지만, 그래도! 누구한테 해코지 한번 한 적이 없습니다!”

 

 “그래?”

 

 “네! 그, 그리고 얼마 되진 않지만 매년 연말에는 사랑의 열매도 사고! 그! 텔레비전에 전화 기부도 몇 번 하고! 지하도에서 걸인에게 돈을 준적도 있고!”

 

 

 남자는 필사적으로, 자신의 일생에 선행을 끌어 모으고 있었다. 다급한 그의 무릎이 두어 걸음 염라의 앞으로 기어갔다.

 

 

 “업경.”

 

 

 염라의 입이 다시 업경을 찾자, 거울이 다시 일렁이기 시작했다. 막 울고 있는 남자의 모습을 비추고 있었던 처라 그의 얼굴이 일그러져 매우 추해보였다. 거울은 깜깜한 골목길을 비췄다. 남자는 얼큰하게 술에 취해서 비틀거리고 있었다.

 

 

 -저게 뭐야?

 

 

 업경 속의 남자가 가늘게 눈을 뜨고 골목의 골목을 쳐다보았다. 어슴푸레한 그림자들이 보였다. 고등학생 둘이 조그만 남자애 하나를 때리고 있었다. 게슴츠레한 남자의 눈이 화들짝 커지고, 맞고 있던 남자애의 눈과 마주쳤다.

 

 

 물기 어린 남자애의 눈에서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도와달라는 간절한 눈빛이 보였다. 그런 소년을 보며 놀란 남자의 눈이 왕방울 만해졌다.

 

 

 - 뭐야, 아저씨?

 

 

 날카로운 목소리에 남자가 고개를 돌리자, 학생이라기엔 큰 덩치의 남자애가 삐딱한 표정으로 남자를 쳐다보았다. 주먹 쥔 손에는 맞은 남자애의 피가 튀어 있었다.

 

 

 - 아저씨, 신경 쓰지 말고 가던 길 가쇼. 어?

 

 

 남자의 눈이 조그만 남자애에게 다시 돌아갔다.

 

 

 -돈, 많으면 우리랑 같이 놀던가.

 

 

 다른 남자애 하나가 골목길 안에서 소리 쳤다. 그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남자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다급하게 길을 걷기 시작했다.

 

 

 -꼰대새끼, 쫄기는.

 

 

 낄낄거리는 목소리가 남자의 뒤통수를 때렸다.

 

 

 업경이 다시 일렁이더니 껌껌한 골목길이 환한 지하철 안이 되었다. 남자는 비좁은 지하철 틈에 서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지하철이 멈추고,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며 남자는 치고 지나가자 졸던 남자가 깨어나 괜히 주변을 한번 둘러보았다. 그러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여자의 옆모습이 보였다. 입술을 깨문 여자는 바닥에 뭐라도 있는 것 마냥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핸드백 끈을 맨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어찌나 손에 힘을 주고 있는 지 탁- 하고 핸드백이 끊여져도 이상게 하나도 없어 보였다. 뭔가 이상해 남자의 눈이 주욱 여자를 훑자 뒤에 서 대머리 남자가 보였다. 열어젖힌 자신의 재킷으로 가리고는 있었지만, 여자의 엉덩이를 쓰다듬고 있는 손이 똑똑히 보였다.

 

 

 자기 말고는 본 사람이 없는지 주변을 둘러봤지만, 다들 아까 자신처럼 졸고 있거나, 자기 핸드폰을 쳐다보기 바빴다.

 

 

 입술이 마르는지 남자는 혀를 내밀어 입술을 적셨다. 여자를 한번 쳐다보자 이제는 곧 눈물 한 바가지를 흘릴 것처럼 눈물이 고여 있었다.

 

 

 무슨 말이라도 한 마디 할 것처럼 남자의 입이 열렸다. 그리고 그때 고운 목소리가 스피커에서 울렸다.

 

 

 “이번 역은 oo역, oo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 오른쪽입니다.”

 

 

 남자가 내릴 곳이었다. 열었던 입을 꼭 닫히고, 허둥지둥 남자가 내렸다. 지하철 문이 닫히고 열차가 출발하자, 슬쩍 남자가 뒤를 돌아보았다. 고개 숙인 여자의 얼굴에서 눈물 한 방울이 뚝- 하고 떨어졌다.

 

 

 업경이 다시 일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더 볼 필요도 없다는 듯이 염라는 업경에서 시선을 떼고 남자를 쳐다봤다.

 

 

 “이래도?”

 

 “제, 제가 그런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지, 네가 그런 건 아니지. 그러니 네 손발은 고이 보내주마. 허나,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눈을 가졌으니, 저 놈의 눈을 파내라. 죄를 고할 기회를 주었으나, 제 죄를 고하지 못하는 입을 가졌으니 저 놈의 입을 꼬메어라. 그리고 제 죄를 뉘우칠 때까지, 천리 가시밭길을 헤매게 하라.”

 

 

 서슬 퍼런 염라의 말에 남자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판결을 들은 진언의 얼굴 역시 새파랗게 질리긴 마찬가지였다.

 

 

 억울하다고 소리치는 남자를 어디선가 나타난 야차들이 끌고 갔다. 끝났네― 라는 표정으로 턱을 괴던 염라의 눈이 옆을 향하자 천왕은 싱글싱글 웃었다. 잔뜩 겁먹은 진언은 이미 천왕의 뒤에 숨어 있었다.

 

 

 “거기, 다음 죄인이냐?”

 

 

 슬쩍 진언의 눈동자가 주변을 둘러봤지만, 죄인이라고 칭할 만한 인간은 보이지 않았다.

 

 

 “꿇지 않고 뭐하느냐?”

 

 

 서 있는 인간 또한 보이지 않았다.

 

 

 “죄인이 아닙니다. 지난번에 말씀드린 인간 기록관입니다,”

 

 “아아~ 그것? 어디...?”

 

 

 슬쩍 염라가 고개를 빼고, 진언을 쳐다보는 듯 했다.

 

 

 “내 전에도 말했지만, 쓸데없는 짓이다.”

 

 

 염라는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검은 곤룡포를 펄럭이며 돌아앉았다. 어찌 보면 위엄 있는 모습이었지만, 진언의 눈에는 그게 꼭 어릴 때 삐진 동생이 흥!칫!뿡! 하면서 뒤돌아 앉아서 입을 삐죽이던 생각이 나서, 풋- 하고 웃고 말았다.

 

 

 갑자기 들리는 웃음소리에 방안의 눈 들이 전부 진언에게 쏠렸다. 웃으면 안 되는 거였나 싶어서 진언은 얼른 표정을 굳히고 시치미를 떼었지만, 감히 지옥에 염라대왕 앞에서 시치미를 떼 봤자였다.

 

 

 “그래. 우리 기록관 나으리께서 이미 지옥이 즐거우신가보이?”

 

 

 씨익~ 웃는 그 미소는 진짜 지옥의 미소였다. 분명 잘생긴 꽃미남이 웃고 있는데, 여긴 뜨거운 지옥인데, 등골이 서늘한 건 뭐란 말인가?

 

 

 “어떤가? 첫 재판을 본 소감이?”

 

 

 직장상사의 첫 질문. 진언은 침을 꼴깍 삼켰다.

 

 

 “안녕하십니까, 염라대왕님. 오늘 입사한 김진언입니다. 첫 재판을 본 소감은...”

 

 

 일단 상체를 최대한 숙여 폴더인사를 한 진언은 천천히 단어를 골랐다. 본의 아니게 말끝이 길게 늘어났다.

 

 

 천왕이 말하기로 자신이 여기에 뽑힌 건, 대한민국에서 정직성이 엄청나게 상위라고 그렇다고 했다. 세상에 나라꼴이 어떻게 돌아가기에, 그냥 평범하게 사는 자신이 그렇게 정직하다고 하는지 이해가 안가긴 했지만, 여튼 그렇다고 했다. 그럼 최대한 솔직하게 말해야 하나?

 

 

 하지만, 정말 솔직하게 말하면 저 옥좌에 앉아 있는 직장상사님께서 불호령이 떨어질지도 몰랐다. 그럼 약간 돌려서 말해야 하나?

 

 

 “자갈 굴러가는 소리가 예까지 들리는 구나.”

 

 

 진언이 시간을 끌자, 염라의 목소리가 먼저 들렸다. 미묘하긴 했지만, 그 목소리는 아까보다 더 짜증이 섞여 있었다.

 

 

 “천왕. 정직하고, 신실한 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사옵니다.”

 

 “내 보기에는 이제 그대의 안목이 서천 어딘가로 외출한 모양인데?”

 

 “황공하옵니다.”

 

 

 고개를 속이는 천왕을 보며, 진언은 속이 바싹 타올랐다. 자기를 뽑은 천왕이 자기 때문에 욕을 먹고 있는 걸 보자, 미안스럽기도 했고, 출근 첫 날부터 사람 잘못 뽑았네 라는 소리를 듣자 자존심이 상했다.

 

 

 “김진언! 소감 말하겠습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손을 번쩍 들고 소리쳤다. 뭐라도 해야 할 거 같았다.

 

 

 “솔직히! 너무 합니다!”

 

 

 자신이 여기에 뽑힌 건, 정직하고 거짓말을 잘 못해서다. 그럼 정직하게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아까 그 사람이 눈이 그렇게 되고, 입이 그렇게 될 정도로 잘 못한 건 없지 않습니까? 도와주면 물론 좋았겠지만, 사람은 누구든 사정이라는 게 있는 거고, 그 상황에선 겁날 수도 있는 거고요.”

 

 “그래서 과했다?”

 

 “네.”

 

 

 염라가 천천히 진언을 응시했다. 검은 머리카락의 남자가 검은 눈동자를 하고 그를 쳐다보았다. 악마라면 저런 눈동자일지도 모를, 새까맣고 어떤 감정인지 느끼지 못하는 것 같은 눈동자였다.

 

 

 “지옥은 생전의 죄를 벌 받는 곳이며, 지옥은 생전의 업을 지우는 곳이며, 지옥은 생후의 생을 결정하는 곳이다. 또한, 그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은 나, 염라대왕이다. 한낱 인간 따위가 과하다, 적다. 말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진언은 네가 물어봤잖아! 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는 게 낫겠다는 눈치정도는 있었다.

 

 

 “천왕. 우리 기록관나으리께서는 혼이 맑고 깨끗한 게 아니라, 뇌가 맑고 깨끗한 거 같소.”

 

 

 그 말을 남기고 염라는 검은 용포자락을 휘날리며 밖으로 나가버렸다. 진언이 염라가 남긴 말을 이해한건 이미 용상이 텅 빈 뒤였다.

 

 

 “천왕님. 제 소감 한 마디 더 해도 될까요?”

 

 

 천왕이 말 하라는 듯 진언을 쳐다보았다. 진언은 여전히 멍하니 염라가 가버린 방향을 쳐다보고 있었다.

 

 

 “지옥도, 사장이 개새끼인건 어차피 똑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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