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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채운몽
작가 : 채헌
작품등록일 : 2017.6.19

조선 최초의 레즈비언으로 기록된 세종의 두 번째 며느리 세자빈 월, 기루 무사 소쌍을 만나 운명인 듯 우연인 듯 사랑에 빠진다. 아니라 해도, 아니 된다 해도 돌아설 수 없었던 그녀들의, 무지개빛 로맨스

 
25장. 이렇게 돌아서면
작성일 : 17-07-04 13:51     조회 : 233     추천 : 0     분량 : 7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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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희읍스름한 달빛이 동굴 안으로 비쳐들었다.

 

  달빛에 드러난 두 사람의 알몸이 수줍은 듯 서로를 파고들었다.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듯 월의 뺨이 발긋했다. 소쌍이 월의 뺨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이름에 뜻이 있더냐.”

 

  순간 어린 시절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 어머니, 제 이름은 무슨 뜻이어요?

 

  - 너의 이름은 사라질 소에 두려울 쌍을 쓴단다. 어찌 쓰는가 하면……,

 

  젊은 어머니가 흙바닥에 나뭇가지로 한자를 써주고 소쌍에게도 따라 써보라 한다.

 

  - 왜 이런 이름을 지어주신 거여요?

 

  - 우리 딸, 씩씩하게 잘 살라고.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닥쳐도 겁먹지 말고 잘 헤쳐 나가라고.

 

  - 어머니, 걱정 마세요. 제가 세상에서 제일 강하고 씩씩한 어른이 되어서 어머니도, 아버지도 지켜드릴게요.

 

  - 진정 그리 해주겠니?

 

  - 물론이죠! 그러니까 오래오래 사셔야 해요. 소쌍이 곁에 오래오래…….

 

  “두려움이 사라진다…….”

 

  눈앞에 맺혔던 젊은 어머니의 모습이 사라졌다. 월이 쿡, 하고 웃었다.

 

  “왜 웃으십니까.”

 

  “정말 어울리는 이름이지 않으냐. 겁이 얼마나 없는지 무서운 왈짜패들과도 싸우고, 궁에도 기생 복장을 하고 들어오지 않았더냐.”

 

  소쌍이 희미하게 웃었다. 이제까진 그랬다. 부모를 잃고, 친구를 잃고, 살던 집과 추억마저 모두 잃고 나자 두려운 게 없었다.

 

  두려운 게 없으니 거침없이 살아졌다. 아무리 거칠고 드센 왈짜라 해도 죽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을 이길 순 없었다. 아무리 괴로운 일이 생겨도 무덤덤하게 보아 넘겨졌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미칠 듯이 두려워졌다.

 

  가지면 잃을까봐, 잃어서 고통스러울까봐, 그 고통으로 다시 가슴을 쥐어뜯어야 할까봐.

 

  그러나 가지지 않는 것 또한 고통스럽긴 마찬가지였다.

 

  어찌 하면 좋단 말입니까!

 

  소쌍은 고통과 고통 사이에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동시에 거대한 두려움이 이토록 선명한 희열을 안겨준다는 사실에, 씨앗만한 희열이 집채만한 두려움을 단숨에 짓누를 수도 있다는 사실에 조용히 놀랐다.

 

  “내 이름은 월이다.”

 

  이름마저 어여뻤다. 월궁항아처럼 아름다운 월에게 그보다 더 잘 어울리는 이름은 없을 듯했다.

 

  “달 월 자가 아니라 넘을 월 자를 쓴다. 생의 파도를 지혜롭고 담대하게 넘으라는 뜻에서 지어주신 이름이다.”

 

  월이 허공에 제 이름자를 써보였다. 소쌍이 속으로 한 번 더 월, 이라고 발음했다. 생의 파도를 씩씩하게 넘는 월의 모습을 그리자 훨씬 더 잘 어울리는 듯했다.

 

  “그러고 보면 부모님의 마음이란 다 같지 않느냐. 자식이 마주칠 생의 고비들이 한없이 걱정스럽고 안쓰러우신 게지.”

 

  잠시 말이 없던 월이 입을 열었다.

 

  “네가 사내가 아닌 것을 알고 있었다.”

 

  “어, 어찌 아셨습니까.”

 

  “상처를 치료하면서 알았느니라.”

 

  “놀라지……, 않으셨습니까.”

 

  “조금.”

 

  “죄송합니다.”

 

  소쌍이 시선을 떨어뜨렸다.

 

  “네가 나를 속이려 일부러 사내 복색을 하고 다닌 것도 아닐 터인데, 무엇이 죄송하단 말이냐.”

 

  “그것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된다. 그럴 만하니 그리 했겠지. 어쩌면 네가 현명한 것이다. 이 나라 조선에선 사내 옷을 입어야 숨이라도 쉬지 않느냐. 나도 너처럼 사내 옷을 입고 훨훨 여행이나 다니면 좋겠구나.”

 

  월이 굳은 소쌍을 보며 괜찮다는 듯 웃었다.

 

  “나는 네가 무엇이라도 상관치 않는다. 아까 본 뱀 같은 것만 아니면 된다.”

 

  소쌍의 얼굴이 계속 굳어있자 월이 짐짓 화내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말했다.

 

  “허면 나도 내가 세자빈인 것을 네게 미안해해야 하는 것이냐.”

 

  “그런 것이 아니오라……,”

 

  “그럼 얼굴 좀 펴거라. 잘생긴 얼굴이 못나지지 않으냐.”

 

  소쌍이 진지한 얼굴로 입을 뗐다.

 

  “찌푸리고 있어도 잘생기지 않았습니까.”

 

  “뭐라고?”

 

  월이 곱게 눈을 흘기며 소쌍의 가슴을 콩 때렸다. 소쌍이 과장되게 아픈 시늉을 하는 바람에 웃음이 터졌다. 소쌍도 웃으며 월을 꼭 끌어안았다.

 

  그 순간, 소쌍은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선택하는 건 자신이 아니라 운명이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그리고 해야 하는 것은 운명의 파도에 몸을 내맡기는 것뿐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 도곡의 가르침대로 모든 것이 자신을 통해 흘러가도록 내어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소쌍은 기꺼이 운명의 파도에 몸을 던지듯 월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월 또한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로 나아가는 이의 눈빛으로 소쌍을 보았다.

 

  “나를 잊지 말거라. 너의 눈에, 너의 손에, 너의 입술에 나를 온전히 담아가거라. 나 또한 그리 할 것이다.”

 

  “그리 하겠습니다.”

 

  두 사람의 입술이 또 한 번 겹쳐졌다. 두 사람의 심장과 심장이 맞닿았다. 겨우 진정됐던 심장이 다시 쿵쿵 뛰기 시작했다. 서로의 몸에서 전해지는 온기가 서서히 온몸을 덥혔다.

 

  어마어마한 행복과 동시에 심장이 쪼개지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사랑을 알게 되는 순간, 그 끝 또한 알게 되는 것은 참혹한 일이었다.

 

  태어나 처음 사랑을 하는 어린 연인들은 비로소 그걸 알았다.

 

 

  * * *

 

 

  다음 날, 갓밝이가 채 되기도 전 소쌍이 눈을 떴다. 바깥에서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느껴졌다. 소쌍은 월부터 살폈다. 월은 자신의 품에서 새근새근 잠들어있었다. 월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은 소쌍이 검을 들고 동굴 입구로 나갔다.

 

  사내 하나가 꼭 무언갈 찾는 듯이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복면을 하고 있는 것은 같았지만 키나 체격이 지난번 자객과는 달랐다. 자신을 살피는 시선을 느꼈는지 사내가 두리번거렸다. 소쌍이 동굴 안으로 들어가 월을 깨웠다.

 

  “으음, 왜 그러느냐.”

 

  “쉿!”

 

  소쌍이 조용히 하라는 시늉을 하고 월에게 옷을 입혔다. 월은 잠기가 가득한 채로 소쌍이 입혀주는 대로 옷을 입었다.

 

  “빈께선 여기에 계십시오. 밖에서 무슨 소리가 나더라도 절대 나와서는 아니 됩니다.”

 

  월이 잠이 확 깬 얼굴로 소쌍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어딜 가려는 게냐.”

 

  “잠시 살펴볼 것이 있어 나갔다 오겠습니다.”

 

  월이 불안한 눈빛으로 소쌍의 손에 들린 장검을 보았다.

 

  “아주 잠깐이면 됩니다.”

 

  “금방 돌아오는 것이지?”

 

  소쌍이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소쌍이 나가려는데 월이 소쌍을 돌려세우고 입을 맞추었다. 두 사람의 꽃 같은 입술이 또 한 번 붉게 맞닿았다.

 

 

 

  사내가 동굴 입구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소쌍이 전날 월이 주워놓은 열매 하나를 반대쪽으로 휙 던졌다.

 

  사내의 고개가 홱 돌아간 순간 소쌍이 검을 쥐고 뛰어올랐다. 등 뒤의 서늘한 기운에 사내가 본능적으로 몸을 틀었다. 소쌍의 검이 은광을 내며 공중을 갈랐다. 간발의 차로 사내의 옷자락만 그었을 뿐, 사내에게 닿지는 못했다.

 

  전혀 놀란 기색 없이 소쌍을 보는 사내는 진양대군 유의 수하 태길이었다. 태길이 곧바로 소쌍을 알아보고 물었다.

 

  “빈께선 어디에 계시냐.”

 

  소쌍이 움찔했다.

 

  “빈이라니, 무슨 말이냐.”

 

  “세자빈 말이다.”

 

  “나 같은 놈이 그런 것을 어찌 알겠느냐. 잘못 짚어도 한참 잘못 짚었다.”

 

  “네가 빈과 숨어있는 것을 알고 있다. 일각도 지체할 수 없으니 어서 말하라.”

 

  소쌍의 눈이 태길을 날카롭게 훑었다.

 

  “빈을 해치러 온 것이 아니라 안전하게 모셔가려 온 것이다.”

 

  “그런 거짓말에 속을 것같으냐!”

 

  소쌍이 태길에게 달려들었다. 태길은 검도 뽑지 않은 채 유유히 몸을 틀었다. 소쌍이 연거푸 검을 휘둘렀지만 태길은 정확히 반 보씩 움직이며 검을 피했다.

 

  “나는 빈만 모시고 가면 된다. 그러니 말하라.”

 

  “빈을 모셔가려거든 나부터 베어야 할 거다.”

 

  “생각보다 말이 잘 안 통하는 자로구나.”

 

  태길이 할 수 없다는 듯 검을 빼들었다. 소쌍이 검을 고쳐 쥐고 태길에게 달려들었다. 태길이 소쌍의 검을 비껴내며 몸을 아래로 굽혔다. 소쌍이 하마터면 중심을 잃고 넘어질 뻔했다.

 

  미처 자세를 가다듬을 틈도 없이 태길이 솟구쳐 오르며 검을 휘둘렀다. 태길의 검세에 소쌍의 눈이 커졌다. 얼마나 빠른지 검이 보이지 않았다. 마치 수십 개의 검이 곳곳에서 날아드는 기분이었다.

 

  소쌍은 힘겹게 태길을 막아냈지만 점점 뒤로 밀렸다. 상처가 많이 나아지긴 했어도 힘을 주는 건 무리라 더욱 상대하기가 어려웠다.

 

  태길은 먹이를 궁지로 몰아넣는 맹수처럼 가차 없이 몰아붙였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땀이 앞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흘러내렸다. 맹렬한 공격에 금세 지쳐버린 소쌍의 다리가 후들거렸다.

 

  태길이 바람 같은 몸놀림으로 소쌍의 다리를 쳐 무릎을 꿇게 하고는 검으로 목을 겨누었다.

 

  “나는 보기보다 인내심이 없는 사람이다. 마지막으로 묻겠다. 빈은 어디에 계시느냐.”

 

  “그만두거라!”

 

  월이 화가 난 얼굴로 동굴에서 나왔다.

 

  “안 됩니다, 빈! 나오지 마십시오! 도망치십시오!”

 

  월은 망설임 없이 소쌍 곁에 와 섰다. 월을 본 태길이 검을 거두고 예를 차렸다.

 

  “지난번에도 나를 데리고 가려 했던 자가 맞느냐.”

 

  “그러하옵니다, 마노라.”

 

  “누가 보냈느냐. 세자 저하냐, 아니면 주상전하냐.”

 

  “그것은 말씀드릴 수 없사옵니다. 그저 마노라를 사가까지 안전히 뫼시라는 분부만 받잡을 뿐이옵니다.”

 

  “가시면 아니 됩니다, 빈!”

 

  소쌍이 외쳤다. 월이 눈빛으로 소쌍을 다독이고는 태길을 노려보았다.

 

  “네가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내가 어찌 믿고 너를 따르겠느냐.”

 

  태길이 무릎을 꿇고 품에서 작은 인장을 꺼내어 바쳤다. 용이 새겨진 인장이었다. 왕과 왕족을 지키는 근왕병 중에서도 소수의 정예 무사들에게만 내려지는 표식이었다. 손바닥에 놓인 인장을 묵묵히 보던 월이 고개를 들었다.

 

  “이 자는 나를 지켰을 뿐, 아무런 죄가 없느니. 이 자는 조금도 다치게 해선 아니 될 것이야. 약속하거라.”

 

  “저는 분부 받은 임무만 행할 뿐이옵니다. 저의 임무는 빈을 안전하게 사가로 모시는 것이옵니다.”

 

  “빈, 가시면 안 됩니다! 저 자를 믿을 수 없습니다!”

 

  월이 태길의 눈을 똑바로 보며 대답했다.

 

  “어차피 죽이려 한다면 죽을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 오늘 죽은들 내일 죽은들 무어 그리 차이가 있을까.”

 

  월이 걸음을 떼자 태길이 따랐다.

 

  “아니 됩니다, 빈!”

 

  이렇게 가면 다시 볼 수 없을 지도 모른다. 소쌍이 월을 잡으려 하자 태길의 검이 다시 소쌍의 목을 겨누었다.

 

  “따라오지 마라. 보는 눈이 많다.”

 

  그의 말에 수긍하듯 월이 고개만 살짝 돌린 채 말했다.

 

  “걱정 말고 돌아가 상처를 치료하거라. 집에 도착하면 기루로 연통을 넣겠다.”

 

  “빈!”

 

  소쌍의 절규에도 월은 돌아보지 않았다. 섣불리 마음을 드러냈다가 소쌍마저 위험해질지 몰랐다. 월은 한 번 더 소쌍을 끌어안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며 발길을 옮겼다. 저만치 떨어져 은밀히 지켜보던 시선도 월의 뒤를 따랐다.

 

 

  * * *

 

 

  사가에 다다르자 태길은 고개를 숙인 뒤 바람처럼 사라져 버렸다. 누구의 명을 받았는지는 끝끝내 답을 하지 않았다.

 

  태연한 얼굴로 문턱을 넘은 월은 문이 닫히자마자 힘없이 주저앉았다. 당당한 척 했지만 극도로 긴장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월이 들어서자 석가이가 숨넘어가는 얼굴로 달려 나왔다.

 

  “아이고, 마노라!”

 

  석가이가 고개를 빼고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대감마님, 마님, 마노라께서 오셨습니다!”

 

  봉여와 민씨가 버선발로 마당에 내려섰다.

 

  “어찌 되신 겝니까! 다친 덴 없으십니까!”

 

  민씨가 월의 곳곳을 살폈다. 월이 애써 힘 있는 목소리로 답했다.

 

  “괜찮습니다. 다친 데 하나 없이 말짱합니다.”

 

  그제야 민씨가 안심이 되는지 울음을 터뜨리며 주저앉았다. 사흘 동안 가슴이 새까맣게 타버린 민씨였다. 안 좋은 말이 날까, 드러내어 월을 찾을 수도 없고 궁에 알리지도 못하였다. 그저 딸만 믿으며 애를 태울 수밖에 없었던 사흘이었다.

 

  “이게 웬 일이랍니까! 어찌하여 길을 잃으신 겝니까! 사흘이나 산속에서 어찌 버티신 겝니까? 얼마나 놀라고 무서우셨습니까?”

 

  “에이, 어머니도. 제가 얼마나 씩씩한지 잘 아시지 않습니까. 길을 찾느라 좀 헤매긴 했으나 놀라지도, 무섭지도 않았습니다. 열매를 따먹어 배도 곯지 않았고요.”

 

  월이 씩씩하게 웃어 보였다. 봉여가 민씨를 다독여 일으켜 세웠다.

 

  “자세한 이야기는 천천히 듣기로 하고, 우선 마노라께선 들어가 쉬십시오. 적잖이 고단해 보이십니다. 석가이는 마노라를 방으로 모시거라. 돌쇠는 따뜻한 목욕물 준비하고.”

 

  석가이가 얼른 월을 부축하여 방으로 들었다. 월이 보료 위에 앉자 석가이가 바닥에 냅다 엎드렸다.

 

  “마노라, 죽여주셔요. 이년이 죄인이어요. 이리 눈만 멀쩡히 뜨고 있음 뭐한대요. 길 하나 찾지 못하는 바보천치인 것을. 이놈의 눈, 이놈의 눈!”

 

  석가이가 제 눈두덩을 주먹으로 퍽퍽 쳐댔다.

 

  “너의 잘못이 아니다. 그만 하거라.”

 

  “아니에요. 저는 이 자리에서 맞아죽어도 할 말이 없구만요. 그냥 혀를 콱 깨물고 죽어버려야 해요. 아님 목을 탁 매버리거나.”

 

  석가이가 제 목을 힘주어 쥐었다 사례가 들려 켁켁거렸다.

 

  “되었대두. 네가 죽으면 나는 어찌 사느냐?”

 

  월의 말에 석가이가 동작을 멈추었다.

 

  “네가 나의 가장 친한 친구고, 하나밖에 없는 자매고, 믿을 수 있는 유일한 신하인데 네가 없으면 나는 어찌 하라고 그런 말을 하느냐? 그런 말은 농으로도 하지 말거라.”

 

  “으헝헝! 마노라, 다 저 때문이어요. 저를 죽여주시어요, 마노라!”

 

  “우는 건 나중에 하고, 우선 붓과 먹을 좀 가져다 다오.”

 

  석가이가 눈물방울을 단 눈을 끔벅거렸다.

 

  “갑자기 그것들은 왜?”

 

  “이유는 묻지 말고, 얼른!”

 

  월의 진지한 표정에 석가이가 잽싸게 붓과 먹, 종이를 가지고 왔다. 빠르게 먹을 간 월이 붓을 집어 들고 정성을 다해 글을 적었다. 편지를 봉투에 넣으려던 월이 멈칫했다.

 

  “향도 좀 가지고 와다오.”

 

  사흘 만에 집에 들어와서는 다짜고짜 글을 쓰더니 향까지 대령하라니, 석가이는 좀처럼 알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어서, 기다리고 있을 게다.”

 

  “누가요?”

 

  석가이가 향로를 가져다주며 물었다.

 

  “누가 기다린다는 것이어요?”

 

  월이 대답은 않고 편지에 향 연기를 고루 쬐었다. 자신의 마음 또한 향처럼 배어들기를, 그리하여 소쌍에게 제 마음이 알알이 전해지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무슨 글이길래 이리 정성을 들이셔요? 마님께 드릴 속죄문이라도 쓰신 거여요?”

 

  “소쌍에게 전할 서간이다.”

 

  “소쌍……, 악공이요? 갑자기 소쌍 악공에게 서간은 왜……!”

 

  석가이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지체할 시간이 없다. 걱정하고 있을 것이야. 얼른 전해주고 오거라.”

 

  “걱정하고 있다니, 소쌍 악공이 마노라를 왜……? 서, 설마 마노라, 지금껏 소쌍 악공과 계신 거여요?”

 

  월이 가타부타 대꾸를 않자 석가이의 턱이 툭 떨어졌다.

 

  “저, 정말이셔요? 어찌 소쌍 악공이 마노라와……, 이게 대체 어찌된 일이어요? 예?”

 

  방금 전까지만 해도 죽여 달라던 석가이가 정인의 부정을 의심하는 사내처럼 눈을 게슴츠레 떴다.

 

  “나중에 다 말해줄 터이니 얼른 이것부터 전해주고 오거라. 소쌍이 속을 태울 것이다.”

 

  소쌍이 속을 태운다는 말에 석가이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아이고, 그럼 안 되지요, 우리 소쌍 악공님께서 속을 태우면 아니 되지요. 그건 그런데……,”

 

  석가이가 또 다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찌 소쌍 악공님이 속을 태우신대요?”

 

  “다녀오면 말해줄 터이니 어서 다녀오래두.”

 

  “꼭이어요. 꼭 다녀오면 곡절을 다 말씀해주시는 거여요.”

 

  거듭 다짐을 받고서야 석가이가 부리나케 달려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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