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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지옥연애환담
작가 : 황도톨
작품등록일 : 2017.6.23

헬조선을 살아가는 흙수저 김진언.
회사에서 짤리고, 남친에게 차이고, 통장은 텅텅, 지옥의 구렁텅이에 빠지고 말았다.
그런 진언이 새로 입사한 회사는 진짜 지옥?
설상가상으로 지옥 최종보스, 진언의 직장상사님, 염라대왕은 까칠하기 짝이 없고...
지옥에서 일과 사랑 둘다 쟁취하라!

 
03. 내 회사가 지옥일리 없어
작성일 : 17-07-01 21:05     조회 : 395     추천 : 0     분량 : 7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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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엄마, 나 회사 그만 뒀어.”

 

 

 일일 드라마에 눈을 고정하고 있던 진언모는 진언의 말에 빨래를 개던 손을 멈추고 말았다. 곧 침착하게 빨래를 개긴 했지만, 진언이 매의 눈으로 그 모습을 포착하고 만 뒤였다.

 

 

 “어이구~ 박 여사님, 놀라셨어요?”

 

 “놀라긴 뭘. 그래. 잘했어, 애를 회식을 그렇게 술을 먹이고 말이야. 이상한 회사였어.”

 

 “그런 거 아니야. 그냥 더 좋은 대우 해주는 데가 있어서 이직한 거야.”

 

 “더 좋은데?”

 

 

 옆에서 같이 드라마를 보고 있던 호언이 고개를 홱 소리가 날정도로 돌려서 진언을 쳐다봤다. 같은 고3인 정언은 자기 방에서 공부 중인데, 이 고3은 자기 쌍둥이 형은 그러거나 말거나 마이웨이였다.

 

 

 “누나, 월급 오르는 거면 나 용돈 좀 올려주라~”

 

 “뭐래~”

 

 

 진언은 가볍게 호언의 말을 무시하며 옆에 있던 수건을 집어 들었다.

 

 

 “어휴, 나둬. 내가 해. 밖에서 일하고 온 애가 무슨 집안일까지 해.”

 

 “엄마야 말로, 아직 팔도 안 나았는데, 너무 많이 일하는 거 아니야? 김호언! 뭐해, 너도 눈으로만 드라마보고 손으로는 빨래 개라고.”

 

 

 드러누워서 드라마를 보고 있는 호언의 엉덩이를 발로 차보지만, 그런 건 아프지도 않다는 듯이 호언은 진언의 말을 무시하며, 드라마에 빠져있었다.

 

 

 “나둬, 내가 개면 일만 더 늘어. 그래, 어떤 회사인데?”

 

 “인력회사 비슷한 건 가봐.”

 

 “인력회사면, 인력회사지 비슷한 건 또 뭐야?”

 

 “그게 정확하게 설명을 들은 건 아니라서...”

 

 “그런, 그 회사에서 뭐하는 건데? 지금이랑 똑같은 총무팀이야?”

 

 “그건 아니고, 기록 감독하는 그런 건가봐.”

 

 “건가봐는 또 뭐야? 너 정말 제대로 알아본 거 맞아?”

 

 

 결국 진언모의 손이 멈추고야 말았다. 오늘 드라마를 보면서 여자주인공을 배신한 남자가 여주인공 어머니에게 물김치 세례를 받을 때도, 여주인공을 시기한 못된 여자가 여주인공 머리 위로 화분을 떨어뜨릴 때도, 여주인공의 여동생이 남자 주인공 엄마의 가게 개업 떡을 먹다가 질식사를 해서 두 집안이 원수가 되는 장면에서도 결코 손을 멈춘 적이 없는 프로주부인 진언모가 손을 멈췄다.

 

 

 “그럼. 면접도 갔다 왔고, 월요일부터 출근하도 하라고 했어. 완전 괜찮은 회사였어.”

 

 

 진언모는 진언의 말에 멀리 있던 빨래 하나를 손에 쥐긴 했지만, 영 찜찜하다는 듯 진언을 계속 쳐다봤다. 사실 똑똑한 딸이었지만, 어떤 부분에는 헛똑똑이나 다름없는 딸이었다. 어릴 때부터 제 아빠가 사람은 성실과 정직이 최고 덕목이라 가르쳐서 그런지, 융통성과 약삭빠름과는 거리가 먼 딸이었다.

 

 

 그렇게 많이 아르바이트를 해도, 도무지 잔머리라는 게 늘지 않는 딸이, 자랑스럽기도 하고 가끔은 이 둔한 것아! 하며 머리를 쥐어박게 만들고 싶기도 했다.

 

 

 “연봉도 더 많이 줘!”

 

 “사람이 돈이 다가 아니야, 이것아.”

 

 

 계속 엄마가 의심스러운 눈으로 쳐다보자 진언이 한마디를 더 보탰지만, 엄마는 톡 소리 나는 대답을 하며 다시 빨래를 개기 시작했다.

 

 

 “치~ 돈 많이 주면 좋지 뭐. 똑같이 일하고, 똑같이 힘들면, 이왕이면 돈 많이 주면 더 좋은 거 아니야?”

 

 

 누워 있던 호언이 한마디를 거들었다. 제 딴에는 누나 편을 들어서 용돈을 좀 올리려고 하는 수작일 수도 있었다.

 

 

 “누가 똑같이 일하고, 똑같이 힘든데 돈을 많이 줘? 더 일하고, 더 힘드니까 돈 많이 주는 거야.”

 

 “아이고, 박 여사님. 요즘에는 안 그래요.”

 

 

 호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드라마를 보다 중단하다니 정말 답답하긴 한 모양이었다.

 

 

 “드라마 봐봐. 자, 저기 실장 보이지? 만날 일은 안하고 여자 뒤꽁무니만 쫓아다니잖아. 거기다가 만날 여주인공 트집만 잡고 있는 저 과장 보이지? 쟤들이 만날 회사에 실적 팡팡 터트리는 여주인공보다 훨씬 돈 많이 받아. 여주인공은 만날 야근하고 그러면, 쟤들은 칼퇴해서 그 시간에 여주인공 초밥이나 사다주고, 다른데 가서 음모나 꾸미고 있고, 그래도 회사에서 돈 더 많이 받는다고.”

 

 “그건 드라마지.”

 

 “현실은 반영한 게 드라마입니다요. 대기업 임원이 과로사로 사망했다는 이야기 들은 적 있어? 과로사는 밑에 일개미들이나 걸리는 거야. 헌신하면 헌신짝 되는 게 꼭 연애 이야기만은 아니라니깐.”

 

 “넌 일도 한번 안 해 본 애가 그런 건 어떻게 다 알아?”

 

 “인생은 티비에 다 있어.”

 

 

 무슨 큰 가르침이라도 되는 듯 자신의 인생 비결을 가르쳐준 호언은 다시 티비로 눈을 돌렸다. 집에서 제일 어린 것에게 인생의 가르침을 받은 진언과 진언모는 눈이 마주치자 피식 웃어버렸다.

 

 

 “가서 잘해. 윗사람 말 잘 듣고.”

 

 “알았어.”

 

 “정말 이상한 회사는 아니지?”

 

 “아휴~ 우리 박 여사님 이렇게 의심이 많아서 어쩔까? 걱정 마셔!”

 

 진언은 거듭 걱정되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엄마를 향해 큰소리를 탕탕 쳤다.

 

 

 

 

 

 

 

 

 

 분명 큰소리를 탕탕 쳤건만... 엄마가 평소에 말하던 것처럼, 자신은 헛똑똑이 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 읽으셨습니까?”

 

 “읽긴 했는데요...”

 

 

 출근 첫 날, 여전히 사무실은 텅 비어 있었고, 천왕 혼자서 느긋하게 녹차를 마치고 있었다. 좋은 세작이 들어왔다며, 진언에게도 맑은 녹차 한잔을 주고, 근로계약서를 진언의 앞에 내밀 때까지는 좋았다. 오히려 첫날부터 명확하게 작성한다는 점이 좋았었다. 게다가 차를 타오라고 하지 않고, 차를 타주는 상사라니! 하지만 문장 하나하나를 읽어 내려 갈 때마다 이건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팍팍 들기 시작했다.

 

 

 근무시간이나 연봉에 대해서는 공고를 본 것과 다름이 없으니 문제없었다. 하지만, 근무지가 현재 사무실과 다를 수 있다는 점에서는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다르면 다른 거지 다를 수 있다는 건 뭔가? 파견이나 외근이 있다는 건가? 여튼 넘어가고.

 

 

 3개월의 수습기간에 관한 사항이 있었고, 그 전에는 절대로 그만둘 수 없으며, 그만두게 되어서 생기는 불상사에 대해서는 책임질 수 없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 거기서 진언의 고개를 다시 갸웃했다. 보통 그만두게 되면 책임을 묻겠다고 하지, 회사에서 책임을 못진다라고 하지는 않지 않나? 이걸 작성한 사람이 문장력이 이상한 걸 수도 있으니, 일단 이것도 패스.

 

 

 가장 이상한 건 비밀유지조항이었는데, 이 회사에 뭐가 그렇게 중요한 사업상 기밀이 있는 건지, 회사 다닐 때는 물론이고, 퇴사 이후에도 절대로 회사 일에 대해서는 외부에 입도 벙긋하면 안 된다는 조항이 있었다. 존재 자체를 외부에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에 그래, 사장이 좀 예민한 스타일인가? 하며 이해를 했다. 심지어 퇴사 후 원한다면, 외부에 회사 일에 대해서 말하지 못하도록 최선을 다해 회사에서 돕겠다는 말도 적혀 있었다. 대체 무슨 수로 그걸 돕는 다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도와준다는 것은 긍정적으로 넘어갔다.

 

 

 다만, 위 조항들을 엄숙이 지킬 것을 맹세하고, 그 연대 보증인의 이름에 떡하니, 박팽년이라는 진언의 모친 이름이 적혀 있었던 것이다.

 

 

 “이건.. 대체... 일단, 저희 엄마 이름은 어떻게 아신 거죠?”

 

 “이력서 있었습니다. 가족관계란에.”

 

 “그럼 이 연대보증인 이라는 게 뭔가요?”

 

 

 진언의 검지가 박팽년 여사님의 이름을 가리켰다.

 

 

 “일종의 보험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종류의?”

 

 “위약금 같은 겁니다.”

 

 

 두 번째 만남이었지만, 진언은 천황이라는 사람의 대화법에 대해서 조금 알 것도 같다. 저 먼 구름을 잡는 것 같은 소리. 은근슬쩍 구렁이 담 넘어 가는 것 같은 대화법. 정확한 피드백이 오는 법이 없었다.

 

 

 “진언씨가 위 조항들을 지킨다면 아무 문제없습니다. 말씀드렸듯, 이건 그냥 일종의 보험이며, 위약금이기 때문에, 진언씨가 지킨다면, 보험도, 위약금도 필요 없을 테니까요.”

 

 

 이건, 뭔가 사기다! 라는 느낌이 진언의 머릿속에 울렸다. 저 선량한 얼굴로 웃고 있는 남자는 다시 사기꾼의 냄새가 폴폴 풍기고 있었다.

 

 

 “어.. 그럼 만약에 제가 이 조항을 못 지키면, 저희 엄마가 옥장판을 팔아야 한다거나? 정수기를 다섯 대 놔야한다거나? 뭐 그런 건가요?”

 

 “네?”

 

 

 진언의 말에 이번에는 천왕이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아니면, 황토매트?”

 

 

 진언이 한 번 더 말해봤지만, 천왕은 여전히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니까, 이걸 제가 못 지키면, 저희 엄마가 뭐가 어떻게 된다는 건가요?”

 

 “아~ 그 말씀이셨군요. 만약 그렇게 된다면 진언씨는 물론 진언씨 어머님은 신의를 어긴 자가 되는 겁니다.”

 

 

 이건 또 무슨 말일까? 차라리 옥장판 35개를 팔아야 된다는 말이 훨씬 쉬운 것 같았다,

 

 

 “매우, 매우, 매우 불명예스러운 거죠.”

 

 

 천왕은 매우 진지한 듯 했다. 그가 진지한 만큼, 진언은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혹시 물질적으로는 뭔가 있나요? 돈을 물어내야 한다거나? 받은 월급을 반환해야 한다거나?”

 

 “명예는 돈보다 훨씬 중요한 겁니다.”

 

 

 단호한 천왕의 말에 진언은 맥이 풀리면서도, 조금은 진지해졌다. 저 남자의 말이 맞다. 돈보다 명예는 더 귀한 거였다. 다만, 현대 한국에서 저런 말을 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게 진언이 알아듣지 못한 이유였다.

 

 

 “무슨 말인지 이제 대충, 전부는 아니지만 조금은 알 거 같아요. 여기에 사인하면 되나요?”

 

 “사인은 안 됩니다.”

 

 “도장은 안가지고 왔는데요.”

 

 “지장을 찍으시면 됩니다.”

 

 

 천왕은 재빨리 인주를 내밀었다. 새빨간 인주가 어쩐지 불길하게 보이는 건 진언의 착각이리라. 살짝 천왕의 얼굴을 보자 그는 인자한 미소를 보이고 있었다. 어쩐지 미소 또한 불길해 보이는 것도 진언의 착각이이라.

 

 

 진언은 마른 침을 꼴깍 한번 삼키고 인주에 엄지를 가져다 댔다. 어째 서늘한 인주의 촉감에 등골까지 서늘해 졌다. 다시 한 번 천왕의 눈치를 살핀다. 미소는 변함이 없었다.

 

 

 천천히 빨간 엄지손가락을 종이에 꾸욱- 눌렀다가 뗐다. 진언이 손을 떼자마자 재빨리 천왕이 종이를 거두어 갔다. 그리고 진언의 지장이 찍힌 것을 한 번 더 확인하곤, 서류를 갈무리 했다.

 

 

 “자, 그럼 이제 진언씨 업무를 알려드릴게요.”

 

 

 천왕은 서랍에서 손바닥보다 조금 큰 수첩 하나와 볼펜 하나를 진언에게 내밀었다.

 

 

 “필요할거예요. 그리고, 일단.. 진언씨 자리는 저기 예요.”

 

 

 천왕은 첫날 자신이 앉아 있던 자리의 대각선 자리를 가리켰다. 진언은 고개를 끄덕이고 앞으로 자신이 일하게 될 자리를 바라보았다.

 

 

 “근데 별로 저 자리에 앉아 있을 일을 없을 거 같긴 하네요. 우리 좀 일어날까요?”

 

 

 천왕을 따라 일어선 진언은 옹기종기 모여 있는 6개의 책상을 지나쳐서 문 앞에 섰다. 처음에 왔을 땐, 저기가 사장실이려나? 라고 생각했던 문 앞이었다. 드디어 사장과 인사를 하게 되는 건가 싶어서 진언의 심장이 조금 쿵쾅거렸다.

 

 

 하지만, 천왕이 문을 열었을 때 쿵쾅거리던 심장을 철렁 내려앉았다. 문을 열자 보이는 것은 아마도 지하실이었다. 아마도 지하실이라고 짐작하는 이유는 문 앞에는 그저 내려가는 계단만 있을 뿐 아무것도 없었다. 게다가 엄청 아래로 내려가는 듯 했다. 대체 4층 건물에 어째서 내려가는 계단이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조금 어두우니까 조심해요.”

 

 

 천왕은 생긋이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조금이라고 하기에는 아래는 너무 많이 어두워보였는데 말이다.

 

 

 “저기.. 여기는 어디로 통하는 건가요?”

 

 “아아~ 지옥입니다.”

 

 “네?”

 

 

 천왕은 여전히 미소 띈 얼굴이었다. 진언은 정신이 아찔해져가고 있었다. 역시 사기였다. 자기같이 좀 괜찮은 대학과 학점밖에 없는, 경력은 사무보조나 다름없는 계약직 2년 밖에 없는 사람에게 이렇게 괜찮은 일자리가 있을 리가 없었다. 그게 아니라면, 저 미소천사가 정신병자이거나. 요즘에 이상한 정신병자들이 사람을 공격하는 일이 많다고 하는데, 혹시 저 멀쩡한 남자도 그런 부류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진언은 이 자리를 박차가 도망가고 싶어졌다.

 

 

 그런 진언의 생각을 읽은 건지, 천왕이 내밀었던 손을 뻗어, 진언의 손을 잡았다. 손은 의외로 차가웠다.

 

 

 “제 설명이 조금 부족했다는 걸 인정해요. 하지만, 계약서 작성 전에는 저도 말씀 드릴 수가 없었답니다. 하지만, 거짓은 없어요. 저희는 진언씨를 채용했고, 이 일에는 정말 진언씨가 적임자예요.”

 

 

 흔들리던 진언의 눈동자가 천왕의 눈으로 향했다. 아아- 무슨 미친놈의 눈이 저리도 맑단 말인가?

 

 

 “좀 더 말씀드릴게요. 주식회사더헬은 지옥이고, 저는 천왕사자예요. 이 계단은 지옥으로 연결되고, 생각보다 금방 도착할 거예요. 그리고 거기가 진언씨 근무지예요.”

 

 

 진언은 맑은 눈으로 헛소리를 하고 있는 천왕을 볼 수 없어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좋아요. 다 좋아요. 천왕.... 직책을 모르니까 그냥 님 이라고 할게요. 천왕님께서 하신 말이 다 맞다고 쳐요. 다 현실이라고 치자고요. 그럼 제가 죽은 거예요? 전 아침에도 저희 집에서 밥 먹고, 씻고, 옷 입고, 그러고 나왔는데, 전 대체 언제 죽은 거예요?”

 

 “안 죽었어요. 살아 있어요.”

 

 “근데, 제가 어떻게 지옥을 가요!”

 

 “그래서 계약을 한 거죠. 산 자가 지옥을 올 수 있도록.”

 

 “그럼 제가 살아 있는데, 지옥을 왜 가요?”

 

 “일하러요.”

 

 “하고 많은 직장 중에 제가 왜 하필이면! 지옥에 출근을 해야 하냐고요.”

 

 “저희가 진언씨가 필요해요. 지상의 어떤 기업보다도 더.”

 

 “왜 하필 저예요?”

 

 “저희가 필요한 조건에 딱 맞는 사람이었으니까요. 지금 대한민국의 인구는 약 오천백만 명이예요. 진언씨는 거짓말한 횟수가 하위 0.01% 였어요. 그리고 그 오만천명 중에 신체적 여건상 거짓말을 할 수 없어서 못한 사람이 약 30퍼센트, 미성년자가 65프로였어요. 거기다가 출퇴근이 불가능한 분들을 제외하니 저희에게 남는 건 고작 백 명 정도였어요.”

 

 “그럼 아직 99명이나 더 있네요. 전 이만 가볼게요.”

 

 “그중 백수는 딱 한명이었습니다.”

 

 “취직 할 거예요!”

 

 

 백수라는 말에 울컥해선 진언은 소리치고 말았다. 전언보다 두어 계단 아래에 있던 천왕이 진언을 올려다봤다. 씩씩거리는 진언과 대조적으로 천왕은 아주 침착해보였다. 마치, 네가 이럴 줄 알았다는 듯이. 울고 떼쓰는 어린아이를 보는 듯이.

 

 

 “지옥은 아주 오래되었어요. 태초에 가장 먼저 태어난 인간인 염라대왕께서 가장 먼저 죽으셨고, 태초의 인간으로 지상에서 죽은 이를 심판기로 하셨을 때, 그때부터 있었어요. 그리고 앞으로도 대한민국의 인간들이 절멸하지 않는 이상 존재 할 겁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 살다보면, 아무리 신이라도, 제 아무리 사자라도 기억은 흐릿해집니다. 너무나 많은 일이, 너무나 많은 기억이 있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사자들은 간혹 소멸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간처럼 기록하기로 한 것입니다.“

 

 “그럼 천왕님이 그걸 기록하면 되잖아요.”

 

 “전 이미 너무 오래 지옥을 봤습니다. 무엇이든 저에게 지옥은 전부 자연스럽고, 일상적입니다. 아무 것도 기록할 만큼 특별하지 않습니다. 지옥에 생경한 이가 써야합니다.”

 

 “그러니까, 그걸 왜 제가 하필이면,”

 

 “가장 성실한 자였습니다.”

 

 

 이제 억울함을 호소하기 시작한 진언의 말을 자르며 천왕이 말했다.

 

 

 “백 명 중 가장 성실하고, 백 명 가장 곧았으며, 백 명 가장 마음이 아름다운 자였습니다. 그래요, 그 백수가 말입니다.

 

 한 치의 거짓 없이 기록할 것이고, 게으름 부리지 않고 성실할 것이며, 죄로 일해 벌 받은 이를 어여삐 여길 자였습니다. 하필, 직장을 잃은 이가 가장 어울리는 자였습니다. 지옥에 천운이 깃든 것이지요.”

 

 

 천왕의 맑은 두 눈이 진언을 바라보고 있었다. 또 다시 진언의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제가 그런 사람이에요?”

 

 

 작게 천왕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저는 그냥 쥐뿔도 없는 집 장녀에 가진 재산 하나 없고, 남은 학자금 대출이 오백이나 있어요. 빚쟁이라고요. 돌봐야 될 동생이 둘이나 있고, 홀어머니도 있어요.”

 

 “알고 있습니다.”

 

 “힘들게 공부해서 대학도 나왔지만, 전공 공부한 거 사실, 회사에 하나도 도움 안 될 거예요. 토익도 열심히 하고, 점수도 높지만, 사실은 외국인이랑 대화 한마디도 못할 거예요. 경력 2년이라고 했지만, 사실 전 회사에선 계약직이라 사무보조 밖에 한 게 없어요.”

 

 “배우시면 됩니다.”

 

 “정말, 정말 이런 제가 필요하신 거예요?”

 

 “저희는 진언씨가 꼭, 필요합니다.”

 

 

 그가 진언에게 꼭 필요한 말을 했다. 당신이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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