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판타지/SF
최초의 기억
작가 : 루룰루
작품등록일 : 2017.6.6

"난 죽으면 4년 후에 이름 모를 아이로 다시 살게 돼."
9번째 인생을 살고 있는 소녀, 소녀를 통해 음모를 파헤치려는 괴짜 청년.
소녀가 잊어버린 최초의 기억을 찾고자 한다.

 
1-8화. 인사부터 합시다
작성일 : 17-06-30 19:39     조회 : 455     추천 : 1     분량 : 4658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 UTX 탑승장은 팔레트처럼 다채로운 색으로 꾸며져 있었다. 그 색들은 이곳이 본래 깊고 어두운 지하라는 것을 감춘 듯했다. 평일 오전이라 주변은 한산했다. 클래식 서류 가방과 가죽 시계를 지는 골동품 같은 남성이 전광판 시계를 뚫어지게 보며 뒤꿈치를 들썩였다. 남성을 관찰하던 중 오른쪽 구석에서 하이힐 소리가 또각또각 들렸다. '공기정화실'에서 한 여성이 우아한 자태로 걸어 나왔다. 그녀는 가슴에 루비로 장미문양을 새긴 짧은 검정 원피스를 입었고, 왼팔에 영어로 '나는 신체의 자유가 있습니다'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옆에 있는 골동품 남성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힐끔 보더니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다. 나는 앞으로 걸어가 그 둘 사이에 섰다. 코끝에 진한 장미 향이 묻어났다. 아마 최근 출시한 '스모크 앤 로즈'라는 담배 향일 것이다. 여자는 귀에 이어폰을 꽂고 가만히 UTX를 기다렸다.

 "아침부터 저런 추한 꼴의 여자를 보다니."

 골동품은 내 귀에만 닿을 정도로 작게 말했다. 나는 그가 복장 따라 생각도 함께 낡아진 사람이라고 판단했다.

 두 사람을 관찰하다 보니 UTX가 부드러운 속도로 우리 앞에서 멈췄다. UTX는 기다란 세단처럼 생겼다. 검은 바탕에 하얀 광택이 빛났고, 전·후미등은 불에 타오르듯이 붉게 빛났다. 총 16개의 좌석으로 이뤄진 UTX는 자동으로 앞뒷문이 열렸다. 골동품과 여성은 서로를 피하듯이 정반대로 들어갔다. 뒤따라 나는 승차권에 적힌 좌석에 앉기 위해 앞문으로 들어갔다. 내 옆자리에 앉아있는 그녀는 심심한 표정으로 바깥을 내다보았다. 나는 자리에 앉아 그녀를 따라 창밖을 보았다. 아무도 없는 맞은편은 무지개 색깔이 가득했다.

 

 'UFT'에 내린 사람은 나 혼자였다. 평양으로 가는 동안 UTX에 오고 갔던 사람들은 서울에서 내렸다.

 기지개를 켜며 주변을 둘러보니 이곳이 '평양', 'UFT'라는 알림판을 제외하고, 내가 탔던 ULT와 별로 다를 게 없다. 크게 코로 숨을 쉬어보니 ULT와 다른 향이 났다. 후각의 차이가 장소의 차이를 넌지시 알려줬다.

 바깥으로 나와 길을 조금 걸으니 여기저기 공사장으로 가득했다. 뒤늦은 평양 신도시 화로 인해 옛 건물들은 이미 다 사라지고, 그 자리에 로봇과 기자재로 가득한 황야만이 남아 있었다. 나는 지도에 나온 대로 골목길에 들어가 오른쪽 모퉁이로 꺾었다. 이윽고 막다른 길에 들어서니 붉은 담벼락에 둘러싸인 오래된 단독 주택이 나왔다. 요즘 세상에 이런 집에 다 있네. 나는 철문 옆에 있는 초인종을 눌렀다. 초인종은 맑게 '딩동' 소리를 냈다. 이윽고 괴상한 잡음이 끼어들더니 철문이 덜컹 열렸다. 방문자 확인도 없이 불쑥 문을 열어줘 상당히 당혹스러웠다. 나는 가볍게 숨을 가다듬고 철문을 밀어 내부로 들어갔다. 시멘트 바닥으로 이뤄진 조그마한 마당에 집으로 들어가는 작은 계단, 그 옆에 화분이 여러 개 놓여 있었다. 꽃에 잠시 시선이 팔려 스르르 하며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누구세요?"

 풍경 소리보다 청아한 목소리였다. 고개를 살그머니 내놓은 그녀의 첫인상은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진하게 검은 머리카락에서 찰랑한 윤기가 흘렀고, 또렷한 이목구비가 어느 곳을 빼놓아도 흠잡을 수 없었다. 커다란 눈을 살포시 덮는 속눈썹과 동그란 얼굴이 그녀의 매력을 한층 더 돋보이게 했다. 나는 잠시 넋 놓다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아, 안녕하세요. 저는 남한 광주에서 온 한지금입니다."

 그녀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더니 내게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나는 그녀의 손짓에 홀려 돌계단을 올라 집에 들어갔다.

 집에 들어가니 옛 정취가 묻어나는 물건이 많이 보였다. 목재로 된 옷장과 수납장, 낡은 팬형 선풍기에 천으로 만든 덮개가 씌워져 있었다. 천장을 보니 낡고 먼지 낀 형광등에 줄스위치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내가 집구경을 하는 사이에 그녀는 부엌에 들렀는지 둥근 쇠 쟁반에 머그컵과 '우메기' 떡을 가져왔다.

 "지금 씨가 무슨 목적으로 온 것인지 모르겠지만 멀리서 왔다고 하니 뭐라도 대접해야겠다 싶어서요."

 외모뿐만 아니라 심성도 이리 곱다니. 잠시 그녀가 준비한 음식을 보고 '고맙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음식을 권했다. 음료는 흰 우유였다. 한 모금 마시고 우메기를 집으려는 찰나 뒤늦게 방문 목적이 생각났다.

 "저기, 혹시 메일 보내시지 않았어요?"

 "메일이요? 글쎄요, 우편이라면 모를까. 저는 메일이 없어요."

 세상에, 이 시대에 메일 계정이 없는 사람이 있다니. 아무리 현대 문물과 손을 놓았을지라도 탄생과 함께 생기는 것이 메일 계정인데.

 가만히 나를 보는 그녀의 시선이 약간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주소를 잘못 찾아왔나 보다. 나는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 아무 말이나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문화어를 안 쓰시네요?"

 나는 딱히 할 말이 없어 궁금하지도 않은 것을 물었다.

 "아, 그건..."

 그때 덜커덩하는 소리가 현관에서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웬 머리가 산발인 남자가 집에 터벅터벅 들어왔다. 나는 무단침입자인 줄 알고 움찔하며 놀랐다. 남자는 커다란 편의점 비닐봉지를 들고 갈 길을 가다 나를 보고 걸음을 멈췄다.

 "너, 너는 누군데 여기 있니?"

 나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다가 다시 그를 보며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켰다.

 "그래, 너."

 "어, 혹시 이메일 주인공이..."

 그는 메일이라는 말에 흠칫 놀라더니 비닐봉지를 떨어뜨렸다. 바닥에 인스턴트 음식들이 쏟아져 나왔다.

 "자, 잠깐. 그러면 네가..."

 남자는 잠시 바닥을 보더니 안경을 올리고 헐레벌떡 쏟아진 물건들을 봉투에 담아 어딘가로 달려갔다.

 "저, 저기요!"

 "제 아들이에요."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남자의 정체를 말했다.

 "아, 아들이라고요?"

 나는 다시 그녀의 얼굴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아무리 봐도 닮은 구석을 찾아볼 수 없다. 외모 유전자를 전부 아버지한테만 물려받았다 싶을 정도다.

 "네, 제 친아들이에요."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릇에 담긴 우메기를 보았다. 창에 엷게 들어온 빛이 그녀의 얼굴을 반만 비추었다. 코를 경계로 반쪽이 어두워진 그녀는 더욱 복잡한 심경을 품은 것처럼 보였다. 나는 남은 우유를 다 마시고 잘 먹었다고 인사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살짝 웃어주며 바닥에서 일어나 손대지 않은 우메기 접시와 빈 머그컵을 치웠다.

 남자가 이동한 곳을 따라가니 지하실로 향하는 계단이 있었다. 계단을 내려가니 요란한 기계음이 불협화음으로 들려왔다. 전선들이 한가득 보이더니 커다란 직육면체 기계들이 한가득 발광하며 빛을 내고 있었다. 남자는 안쪽에 놓인 책상 앞에 앉아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었다. 책상 왼쪽부터 오른쪽까지 모니터 5대로 채워진 책상 위에 붉은 레이저 키보드가 번쩍번쩍 빛났다. 나는 천천히 그를 향해 걸어갔다.

 "저기요, 만나러 왔는데 여기서 뭐 하세요?"

 그는 잠시 어깨를 들썩이더니 의자를 빙글 돌려 앉은 채로 날 보았다. 눈을 가리는 앞머리와 굵은 안경알, 평소 씻지 않는지 꾀죄죄한 냄새가 났다. 입가 주변에 관리하지 않은 삐죽삐죽한 수염이 그의 하루를 짐작하게 했다.

 "아, 그, 당신, 당신? 아무튼 게시판에 퍼진 글이랑 메일을 다시 읽어봤어. 꼬, 꼼꼼히."

 그는 어린 내 모습에 당혹스러운지 어떻게 날 불러야 할지 머뭇거렸다.

 "아, 그랬군요. 저는 남한 광주에서 온 한지금이에요. 나이는 12살이고, 약 360년 정도 되는 생의 기억을 가지고 있어요."

 "아, 그래. 지금이? 나는 네가 메일을 쓴 사람일 줄 몰랐어."

 "제가 어려서요?"

 그는 손사래 치며 고개를 저었다. 눈을 질끈 감고 과장되게 질색하는 그의 모습이 왠지 익숙했다.

 "아니, 아니. 그, 그냥 말이 안 되잖아! 어린 여자아이가 세상을 들썩인 인물이라고? 믿을 수가 있어야지."

 나는 그 말을 듣고 어이가 없어 허리에 손을 얹었다.

 "결국 어리다는 이유잖아요? 어린 게 왜요? 여자가 왜요?"

 나의 발끈에 그는 안경을 매만졌다. 이런 사람을 만나려고 부모를 속여 여기까지 오다니. 참으로 허망하다.

 "아버지의 죽음도 다 거짓말이군요? 하여튼 당신같이 음침한 은둔형 외톨이한테 시간을 빼앗긴 게 참으로 수치스럽네요."

 그는 내 말에 기를 차더니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네가 뭔데 우리 아버지를 논해? 그리고 은둔형 외톨이?"

 "왜? 어린이한테 주먹이라도 휘두르게? 은둔형 외톨이가 아니라 은둔형 쓰레기였네!"

 허탈한 감정이 분노로 북받쳐 올라 그에게 크게 소리쳤다. 내 말에 당혹한 그는 고개를 꺾더니 여기서 나가라고 손짓했다. 입가를 얼굴로 가리며 인상을 찌푸리는 그의 모습이 누구와 많이 닮았다.

 "야, 너 남한에 온 적 있어?"

 "야? 아니 남한 어린이는 예의를 밥 말아 먹었나. 이젠 어른한테 함부로 말을 놓네?"

 "아이씨! 짜증 나게 하지 말고! 온 적 있냐고 묻잖아!"

 그는 뒤로 주춤하더니 어설프게 방어 자세를 취했다. 후줄근한 트레이닝복 차림과 잘 어울리는 자세다.

 "아, 아니! 안 갔어! 왜!"

 그래, 누구와 많이 닮았다. 그런데 누구? 꼭 저런 행동을 자주 했던 애가 있었어.

 문득 책상으로 눈길을 돌리다 조그마한 액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가까이 다가오더니 나를 손으로 계단 쪽으로 밀기 시작했다.

 "야, 너, 나가. 빨리 나가! 네가 뭔지 모르겠지만 어서 당장 나가!, 빨리!"

 나는 그의 손을 어떻게든 뿌리치기 위해 저항했다.

 "아, 잠깐만, 잠깐만! 멈춰봐! 너 김지학 알지!"

 그는 그 말을 듣자 갑자기 팔에서 힘을 빼더니 내 몸에 손을 떼며 뒷걸음질 쳤다.

 "너, 너 어떻게 우리 아버지를... 메, 메일에도 이름은 적지 않았는데..."

 나는 팔을 털며 당혹해 하는 그를 쳐다봤다. 드르륵거리는 기계 소리가 배배 꼬인 생각의 굴레처럼 들렸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공지 3부는 1주일에 1화씩 올라옵니다. 2017 / 6 / 27 597 0 -
22 3-3화. 싫다잖아요 2017 / 8 / 5 374 0 4971   
21 3-2화. 한 오후의 소란. 2017 / 7 / 29 331 0 4773   
20 3-1화. 다만, 다음, 다시. 2017 / 7 / 28 330 0 5453   
19 2-8화. NOW is HUMAN 2017 / 7 / 27 326 0 4596   
18 2-7화. EDI is ROBOT 2017 / 7 / 23 315 1 5991   
17 2-6화. Maze of Name 2017 / 7 / 21 335 1 5771   
16 2-5화. I Know 2017 / 7 / 19 332 1 4759   
15 2-4화. The Mischief Makers 2017 / 7 / 16 376 1 4486   
14 2-3화. No Lie 2017 / 7 / 15 316 1 5437   
13 2-2화. I See You 2017 / 7 / 7 357 1 6379   
12 2-1화. Catch Me If You Can 2017 / 7 / 5 345 1 5127   
11 1-10화. 고발 2017 / 7 / 2 413 1 4955   
10 1-9화. 녹색지대 2017 / 7 / 1 397 1 4002   
9 1-8화. 인사부터 합시다 2017 / 6 / 30 456 1 4658   
8 1-7화. 궤도이탈 2017 / 6 / 27 358 1 5217   
7 1-6화. 님은 저곳에 2017 / 6 / 26 418 1 4205   
6 1-5화. 000,000,000,000,000 2017 / 6 / 26 346 1 4727   
5 1-4화. 고백 2017 / 6 / 21 299 2 5274   
4 1-3화. 답장 2017 / 6 / 17 328 2 5171   
3 1-2화. 신호 2017 / 6 / 15 322 3 4368   
2 1-1화. 지루함 2017 / 6 / 10 358 3 3160   
1 0화. Prologue 2017 / 6 / 6 567 4 1912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