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응항 주변은 횟집이 즐비했고, 배도 주로 어선들이 이용하는 항이었다. 10톤급 이하가 정박해있는 항과 10톤급 이상이 정박해있는 항이 달랐다. 밀항을 할 선일호는 수협 맞은편에 정박해있었다. 수협이라고는 하나 조립식 패널로 지어진 1층짜리 낮은 건물이었다. 두 사람의 특등사수는 선일호를 겨냥할 위치를 잡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새만금 도매어시장 옥상에 몸을 숨겼다. 낮은 건물의 옥상에 몸을 숨길 때는 차양막(遮陽幕)이 필요했다. 준비가 안 된 차양막 대신 담요를 덮어쓰고 네 시 반부터 선일호를 향하여 조준하고 엎드렸다.
다섯 시가 가까워졌다. 잠깐 쉬는 동안에도 위통으로 땀을 흠뻑 흘렸다. 차가운 날씨가 아닌데도 한기를 느끼는 정수였다. 흘린 땀을 씻을 여유가 없었다. 나리는 정수가 눈을 감은 내내 정수를 지켜보고 있었다.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깨기를 반복하는 정수가 안쓰러웠다. 마치 자신 때문에 병을 만드는 것 같았다. 차라리 자신이 빨리 없어지면 병원에라도 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시간은 더디게 흘러갔다. 정작 떠날 사람은 자신인데 남겨질 남자가 걱정되는 것이다. 범인은닉과 도피로 수배를 받고 있다는 남자는 자신이 떠난 후 어떤 벌을 받을지도 걱정이었다. 나리는 샤워를 하고 화장을 다시 했다. 떠나야한다는 것이 허무했다. 생면부지의 곳으로 떠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해보지 않은 나리였다. 차라리 죽는 게 백번 나을 운명이건만 머나먼 나라로 떠나는 자신이 한스럽기만 했다. 그러나 시간은 가까이 오고 있었다.
정수가 침대에서 일어났다. 겨우 일어난 정수는 시계를 보았다. 지체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 바지와 상의를 입고 트렁크를 들었다. 소나타에 오르고는 내비게이션에 비응항을 쳤다. 모텔에서 15분 거리였다. 조수석을 열어서 나리를 태우고 운전석에 앉는다.
“당신! 힘들더라도 참고 견뎌야 해요. 최대한 빨리 갈 테니까...”
“당신이 어떻게 온다고 그래요? 안 죽으면 언젠가는 다시 만나겠죠. 우리가 이번에 만난 것처럼...”
“맞아요. 그러니까 딴 마음 먹지 말고 잘 버텨요.”
소나타는 비응항을 향하여 출발했다. 경찰들이 곳곳에 매복하고 있는 곳인 줄 모른 채 범의 아가리 속으로 들어가는 토끼 같았다. 소나타가 비응항에 가까워질 때 정작 그들을 걱정하는 두 사람은 따로 있었다. 헬기를 타고 내려온 김대식은 함께 탄 무리 중에 경찰특공대에서 차출된 특등사수가 두 명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두 사람을 사살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헬기를 타고 오는 내내, 군산경찰서에서 기다리는 내내, 조바심과 걱정으로 가시방석이었다. 자신이 배신한 결과가 두 사람을 죽게 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종일 머리가 하얗게 되고, 멍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되면 안 된다고 마음속에로 수도 없이 되뇌는 김대식이었다.
곽상근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이것이 송정수를 살리는 길이라고 생각이 들긴 했지만 자칫 죽음의 길로 가게 만드는 것은 아닌가? 의심이 들었다. 그것은 비응항 현장을 보고서야 깨달은 것이다. 곳곳에 무장한 경찰이 매복했고, 저격용 총까지 있는 것을 본 이후 잘못되고 있음을 뒤늦게 안 것이다. 후회를 해도 늦어버린 것이었다. 자신을 자책하고 가슴을 주먹으로 쳐봐도 소용없었다. 점점 시간은 흘렀다. 자신과 만나기로 한 장소에 제발 송정수가 나타나지 않기만을 기도하는 곽상근이었다.
해안을 끼고 비응항으로 접어든 소나타는 곽상근과 만나기로 한 선착장의 반대편으로 들어섰다. 비응항은 마치 C자 모양을 하고 있어서 그 안에 들어있는 배들의 주변은 빙 둘러 도로가 만들어져 있었다. 반대편으로 들어선 소나타는 대각선으로 보이는 축협이 바라다 보였다. 십분 전에 도착한 소나타는 해안도로에 차를 세웠다. 경찰의 매복을 알고 세운 것이 아니라 단지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잠시라도 나리와 함께 있을 마음으로 차를 정차한 것이었다. 그때 정차한 소나타를 축협 쪽에서 매복하고 있던 경찰들이 먼저 발견했다. 주춤거리는 소나타가 낌새를 챈 줄 알고 경찰들이 먼저 움직였다. 둥근 도로를 양쪽으로 에워싸면 빠져나갈 길이 없었다. 두 대의 차량은 소나타의 뒤를 치고 들어갔고, 두 대의 차량은 소나타의 앞을 치고 들어갔다. 앞에서 오는 두 대의 차량을 발견한 정수는 그때서야 뭔가 잘못 된 줄을 알았다. 후진을 하면서 백미러로 뒤를 쳐다 보자 뒤에도 두 대의 차량이 있었다. 막다른 길이었다. 소나타는 리비치호텔 앞에 정차했다. 네 대의 차도 더 이상 다가오지 않았다. 30미터의 거리만 유지한 채 대치하고 있었다. 잠시 후 핸드마이크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송 정수! 이제 다 끝났어. 그만 자수하게. 자넨 경찰이잖아.”
광역수사대장 김정현의 목소리였다. 정수는 핸들만 두 손으로 쥔 채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나 정작 나리는 침착했다.
“자수하면 정상을 참작하겠다. 김 우진을 우리한테 넘겨라!”
다시 들려오는 목소리는 단호했다. 나리는 포기한 상태지만 정수는 포기할 수 없었다. 최소한 무기징역을 받을 것이 뻔한데 이대로 나리를 경찰한테 넘길 수는 없었다. 정수는 여러 가지 변수를 생각했다. 짧은 시간임에도 머리를 재빠르게 굴렸다. 그때 김대식의 목소리가 들렸다.
“형님! 김 대식입니다. 이제 형님도 할 만큼 했습니다. 그만하시면 나리 씨도 이해할 겁니다.”
정수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정작 나리는 침착한데 마음의 동요는 정수가 있는 듯했다. 포기를 한 것일까? 포기를 하면 침착해지는 것일까? 나리는 정수에게 조용히 당부를 한다.
“정수 씨! 맞아요. 당신 할 만큼 다 했어요. 이제 그만해요.”
“안 돼! 이대로 당신 보낼 수 없어!”
“내 말대로 해요”
“...”
“운전대 나한테 맡기고 당신은 차에서 내려요.”
“어쩌려고?”
“이제 도망을 쳐도 내가 칠게요. 그러니까 당신은 내려요.”
“당신이 어떻게?”
“날 믿어 봐요. 어서요. 더 있으면 이 방법도 안 통해요.”
정수는 나리의 말에 반신반의하지만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것이 더 이상 없다는 것을 알고서는 운전대를 나리에게 넘겨준다. 운전대를 넘기면서 가슴이 미어졌다. 나리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대충 짐작이 갔다. 평생을 감옥에서 살 바에 이 방법을 택할 것 같았다. 알면서 핸들은 준 것이다. 그러면서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미안해... 미안해... 흑흑흑”
“울지 말아요. 고마웠어요. 이제 내려요. 어서요!”
정수는 조수석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자 앞에 선 두 대의 차량에서 형사들이 동시에 문을 열었다. 정수가 문을 닫자 소나타가 굉음을 내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불과 20미터도 가기 전에 탕! 하고 한 방의 총성이 울렸다. 총알은 정확하게 소나타의 운전석 유리창을 뚫고 나리의 어깨를 관통하여 가슴에 꽂혀버렸다. 굉음을 내던 소나타는 갑자기 방향감각이 없이 도로의 경계석을 들이박고 멈추어 섰다. 정수는 소나타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보닛에서 연기가 났다. 정수는 운전석을 열었다.
“나리! 나리! 정신 차려! 눈 떠봐!”
어깨를 관통한 총알로 어스러진 어깨를 끌어안고 오열하는 정수를 멀찍이서 바라보는 형사들이 구경하듯 쳐다보았다. 나리의 숨이 끄덕끄덕 차오르고 있었다.
“정...수...씨... 고마...워...요...”
“눈 떠봐! 정신 차려!”
“나... 힘들 때... 내...곁에... 있어...줘서... 고마워...”
“내가 미안해. 미안하다... 나리야. 내가 미안해...”
“아니... 미안해...하지... 마... 졸...려...”
나리는 숨을 거두었다. 하고 싶은 말을 마저 하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다. ‘외로울 때, 힘들 때 함께 했던 순간들, 정말 감사하다’는 말을 끝내 맺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다. 긴 인생이었다. 파란만장한 굴곡진 인생이었다. 짧은 여자로서의 삶, 그 삶은 세상의 지탄을 받는 살인마로 생을 마감했다. 부모형제한테 버림받았고, 친구들한테 절교 당했고, 세상 인연을 다 버리고 여자로 산 삶이 다시 버림과 배신의 연속이었다. 세상은 그녀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열심히 살려고 발버둥 쳤으나 모두가 그녀에게는 냉담했다. 태생이 여자가 아니라는 이유였다. 트랜스젠더라는 이유였다. 세상은 가난한 여자는 살아갈 수 있어도 가난한 트랜스젠더는 살아갈 수 없었다. 막다른 길에 선 트랜스젠더의 삶이 유독 나리만이 아니었다. 세상의 모든 트랜스젠더의 말로는 자살이 태반이지만 세상은 그들의 죽음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나리의 시신을 끌어안고 오열하는 정수의 손목에 차가운 수갑이 채워졌다. 놓지 않으려는 손에서 억지로 나리를 떼놓고는 코란도에 태워졌다. 나리를 서울로 후송하기 위하여 앰뷸런스가 도착했고, 시신은 흰 천에 쌓인 채 앰뷸런스에 실렸다. 잠시 군산경찰서에 경유한 후 두 대의 차량은 서울로 출발했다. 코란도에는 장석태가 타고 있었다. 코란도 뒷좌석은 앞좌석을 앞으로 밀지 않으면 뒤에 탄 사람이 내릴 수가 없는 구조였기에 범인을 호송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코란도 뒷좌석에 수갑으로 손목과 손잡이를 채웠기에 잠시 자리를 비운다고 해서 도망칠 수도 없었다. 장석태를 포함한 수사관 두 명이 정수의 호송을 맡았다.
코란도는 아홉 시에 군산을 출발했다. 막히지 않으면 세 시간이면 서울시경에 도착할 수 있었다. 빨라야 자정이라는 생각에 수사관들도 하품이 절로 났다. 정수는 코란도 뒷좌석에 탄 이후로 고개를 숙인 채 흐느끼기만 했다. 오른 팔은 수갑을 찬 채 매달려 있었다. 휴게소에 잠시 쉴 때에도 소변을 보겠냐고 묻는 말에 대꾸도 없었다. 언제부턴가 흐느끼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고개를 숙인 모습이 마치 지쳐서 잠이 든 듯했다. 자정이 지나서 코란도가 서울시경 주차장에 들어서고 헬기를 타고 먼저 도착한 수사관들이 정수를 인계할 요량으로 주차장에서 코란도를 기다리고 있었다. 장석태가 먼저 내리고 조수석의 의자를 앞으로 당겼다. 그리고는 정수를 흔들었다.
“송 정수 씨! 그만 일어나요. 서울입니다.”
흔들리던 정수는 아무 기척이 없었다. 다시 흔들었다. 그러자 마치 시체처럼 몸이 늘어졌다.
“이상합니다. 미동도 안합니다.”
수사관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수갑을 풀고 움직임이 없는 정수를 뒷좌석에서 끄집어냈다. 정수의 코에 가까이 간 수사관이 입을 열었다.
“이 친구 사망했는데요.”
“뭐? 사망이라고?”
광역수사대에 자정이 넘은 시간에 다시 앰뷸런스가 도착했다. 두 대의 앰뷸런스는 신촌 세브란스병원으로 옮겨졌다.
위통이 시작된 지 8개월만이었다.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위암을 판정받았을 때는 이미 3기였다. 수술을 하자는 담당의사의 말에 연쇄살인사건으로 지체되었다. 범인이 예전에 사랑했던 여자, 자신이 배신했던 여자임을 알자 그는 치료를 시작할 수 없었다. 응급처방으로 병원에서 주는 약이라고는 진통제가 전부였다. 진통제는 통증만 완화해줄 뿐 치료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밀항선만 태울 수 있다면, 그렇게 살릴 수만 있다면, 조금 지체되는 것은 아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녀를 살린 후 치료해도 늦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를수록 암은 다른 장기로 전이되었고, 마침내 생명을 앗아갔다. 상황이 그랬다. 상황이 그를 죽음으로 몰았다. 어쩌면 그녀의 죽음이 그를 죽였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삶에 대한 의지를 한 순간에 놓아버리자 심장이 멎어버린 것이다. 고통을 잊기 위한 선택이었을까? 그녀를 죽였다는 자책의 고통, 그리고 동반된 육신의 고통, 고통을 들기 위한 수단으로 죽음을 택했다. 살아서 함께 할 수 없던 두 사람은 죽어서 함께했다. 기구한 그들의 운명이었다. 정수는 아는 여자의 뒤를 따라 이승을 하직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