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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채운몽
작가 : 채헌
작품등록일 : 2017.6.19

조선 최초의 레즈비언으로 기록된 세종의 두 번째 며느리 세자빈 월, 기루 무사 소쌍을 만나 운명인 듯 우연인 듯 사랑에 빠진다. 아니라 해도, 아니 된다 해도 돌아설 수 없었던 그녀들의, 무지개빛 로맨스

 
16장. 사랑이 거짓말이 날 사랑이 거짓말이
작성일 : 17-06-30 15:06     조회 : 231     추천 : 0     분량 : 6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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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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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군 나으리 드셨어요!”

 

  기생들이 후다닥 마당으로 내려섰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양녕과 왈짜패들이 마당으로 들어섰다. 미끌거리는 미소를 머금고 기생들을 하나하나 지나치던 양녕의 발이 소쌍 앞에서 멈추었다.

 

  “네가 이 집의 기둥서방이라고?”

 

  설매가 양녕의 눈치를 살피며 끼어들었다.

 

  “그저 곁방살이하며 잡일이나 거들어주는 아이입니다.”

 

  “내 아우를 때려눕힌 걸 보면 그저 잡일이나 하는 놈은 아닌 듯한데. 이름이 무엇이냐?”

 

  이번에도 설매가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을 하려는데 양녕이 손을 들었다. 설매가 입을 꾹 다물고 물러났다.

 

  “이놈아, 형님께서 이름을 묻지 않느냐? 어서 대답하지 못해?”

 

  덩치가 소쌍의 멱살을 잡아 흔들었다. 소쌍이 덩치의 손을 뿌리치고는 못마땅한 투로 대답했다.

 

  “소쌍이라……, 합니다.”

 

  “소쌍이고 대쌍이고, 얼른 눈 안 깔어? 이 자식이, 어느 안전이라고 눈을 땡그랗게 치뜨고 있어?”

 

  덩치가 당장이라도 한 대 갈길 듯 주먹을 쥐었다. 덩치를 가소로운 듯 쳐다보던 소쌍이 양녕의 시선을 마주하고서야 고개를 숙였다.

 

  “소쌍이라, 내 너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으마.”

 

  양녕이 소쌍의 어깨를 툭툭 치고 지나쳤다.

 

 

  * * *

 

 

  양녕의 무리가 시끌벅적하게 드는 소리를 들으며 천향은 단장을 하고 있었다.

 

  청포로 만든 화장수로 얼굴을 닦아낸 뒤 봉황 문양이 새겨진 백동 경대에서 자개 분첩을 꺼냈다.

 

  분꽃 씨를 갈아 만든 가루분을 면분솔에 묻혀 쓸어내리는 손놀림이 익숙하면서도 느릿했다. 분을 바르자 희다 못해 청옥빛을 띠는 천향의 고운 피부가 한결 더 맑아 보였다.

 

  버드나무를 태워 만든 미묵으로 느릿하게 눈썹을 그리자 반듯한 이마 위에 초사흘 초승달이 곱게 떠올랐다. 홍화꽃으로 색을 낸 연지를 바른 입술은 흰 눈밭 위에 떨어진 한 떨기 꽃잎 같았다.

 

  커다란 트레머리 가체를 얹고 비취옥 비녀와 선봉잠을 꽂은 뒤 향긋한 향을 풍기는 밀기름까지 귀밑머리에 바르고 나서야 천향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 * *

 

 

  “또 공을 들여 단장을 했구나. 화장이 오히려 네 아름다움을 덮으니 나를 볼 때는 단장을 하지 말라 이르지 않았느냐.”

 

  양녕이 방으로 들어서는 천향을 보며 언짢은 기색을 하였다. 그리고는 제 옆 자리를 손바닥으로 두들겼다.

 

  “절은 됐고, 어서 이리와 술이나 따르거라.”

 

  천향이 술을 따르며 말했다.

 

  “금기를 들라 할까요.”

 

  “아니다. 오늘은 내 너와 오붓하게 즐기고 싶구나.”

 

  “그럼 생황 소리 한 자락 올리겠습니다.”

 

  장지문 밖에 앉아있던 춘섬이 생황을 들였다. 천향이 생황을 소중한 것을 감싸듯 두 손으로 받쳐 들었다. 천향이 눈을 감고 숨을 불어넣었다.

 

  천향의 더운 숨에 생황이 오랜 잠에서 깨어난 봉황처럼 울음을 울었다. 청아하면서도 애잔한 울음소리가 느릿하게 흘러 나왔다.

 

  천향의 희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슬픈 봉황의 날개처럼 애처롭게 움직였다. 양녕은 생황 부는 천향을 보며 자작하여 연거푸 술을 들이켰다.

 

  연주가 끝나자 양녕이 대뜸 말했다.

 

  “네 마음에 둔 이가 있구나.”

 

  뜬금없는 말에 천향이 놀란 기색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당황한 것은 양녕이었다. 술을 한 잔 더 따라 마신 양녕이 물었다.

 

  “누구냐, 그 자가.”

 

  천향이 생황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 이름을 다 읊으려면 오늘 밤으로는 부족할 것인데 아뢰어 올리리까.”

 

  “뭐라?”

 

  “운정수성, 기생의 마음은 구름과 물처럼 흐른다 하였습니다. 구름과 물처럼 흘러가는 기생에게 정인이 따로이 있겠습니까. 만나는 사내가 모두 서방이고 정인인 게지요.”

 

  “구름이 모이면 비가 되고, 물도 둑에 막히면 고이는 것이 이치가 아니냐.”

 

  “내린 비는 다시 흐르고,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이지요.”

 

  또 한 잔 술을 비운 양녕이 입가를 슥 훔쳤다.

 

  “나의 제안을 거절하는 말이냐.”

 

  천향에게 첩이 되라 한 제안을 이르는 것이었다.

 

  세자의 탄일 진연에 나선 이후 한성 바닥에는 천향의 이름이 쫙 퍼졌다.

 

  천향을 찾는 인사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아이들은 ‘눈 땡그런 곡심이 지고 하늘에서 향기가 내려왔네’ 하는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

 

  몇몇 고관들이 천향을 첩실로 들이려 전두금을 경쟁적으로 내밀고 있다는 소문도 들렸다. 그렇게 치솟은 전두금이 아흔아홉 칸 기와집을 십여 채는 사들일 돈이라고 하였다.

 

  양녕은 작금의 상황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만 비밀히 품고 있던 것을 빼앗긴 기분이었다.

 

  아무리 아끼는 여인이라도 그 마음이 서너 달을 넘기지 못하는 양녕이었다. 세상에 피어난 수많은 꽃들을 최대한 많이 품어보는 것이 사내의 즐거움이라 믿었었다. 한 곳에 머물지 않았고, 마음을 약조하지 않았다.

 

  그런 양녕이었기에 첩이 되어 달라 청하는 것은 썩 어색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하였다. 천향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오로지 자신만 그 꽃을 보고, 그 향에 취하고 싶었다. 천향은 일언지하에 거절했지만 양녕은 포기하지 않고 제안을 반복하고 있었다.

 

  천향이 미소를 머금고 술을 따랐다.

 

  “어엿한 대군께서 어찌 화방작첩을 하려 하십니까. 대군의 명예에 누가 될까 두렵사옵니다.”

 

  “명예?”

 

  양녕이 콧방귀를 뀌었다.

 

  “천하의 파락호라 조선 팔도에 호가 났는데 누가 될 명예가 어디 있단 말이냐.”

 

  양녕이 천향 쪽으로 몸을 틀었다.

 

  “내 비록 중전을 시켜줄 수는 없다만 그에 못지않은, 아니 그보다 더한 부귀복록을 평생 누리게 해줄 것이다.”

 

  천향이 말이 없자 양녕이 성마른 목소리로 덧붙였다.

 

  “내 너의 식솔들의 뒷배도 되어줄 것이야. 그리하면 향원각이 조선 최고의 기루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어떠냐, 이래도 마음이 동하지 않으냐?”

 

  “기루 이름을 향원각이라 지은 연유를 아십니까?”

 

  “……?”

 

  “향원익청이라, 향은 멀리 둘수록 맑다는 뜻이지요. 아무리 마음을 끄는 향이라도 너무 가까이 두면 쉬 질리고, 불쾌해지게 마련입니다. 대군 나으리께서도 천 가지, 만 가지 향을 내는 천향을 그저 멀리 두고 즐기시지요.”

 

  “내 첩자리가 성에 안 차는 게지!”

 

  양녕의 흉터가 씰룩거렸다. 천향이 옆에 내려두었던 생황을 다시 집어 들었다.

 

  “한 곡조 더 올리겠나이다.”

 

  “되었다. 그만두거라.”

 

  양녕이 비운 술잔을 탁 소리 나게 내려놓고는 입술을 비틀었다.

 

  “참으로 고약스러운 년이로다. 자꾸 밀어내고 또 밀어내는데도 어찌 오히려 당기는 것 같으냐. 그것이 너의 사내 끄는 비법이겠지.”

 

  “꽃에 나비가 찾아드는 것이 꽃의 탓이옵니까, 나비의 탓이옵니까.”

 

  “…….”

 

  “향을 내어 나비를 부르는 것도, 나비가 꽃향을 쫓아 꿀을 빠는 것도 모두 제 지어진 몫을 하는 것일 뿐입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천향을 보던 양녕이 헛웃음을 웃었다. 웃음소리가 점점 커졌다.

 

  “내 이래서 너를 좋아하지. 천 송이의 꽃떨기가 천 가지 향을 뿜어내니 어느 나비가 혼을 빼지 않겠느냐.”

 

  양녕이 느물거리는 눈빛을 지으며 천향의 손을 잡아끌었다.

 

  “어떠냐, 이번엔 생황 대신 나를 연주해보는 것이.”

 

  양녕이 천향의 손을 아랫도리에 가져다 댔다. 아랫도리가 단단하게 부풀어 있었다. 천향이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손을 빼며 물러나 앉았다. 양녕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예쁘다 예쁘다 하면 상투 잡힌다더니 내가 꼭 그 짝이로구나. 이리 방자하게 굴어도 마냥 내가 봐줄 거라 생각하느냐?”

 

  “방자하게 굴고자 함이 아닙니다.”

 

  “그럼 뭐란 말이냐?”

 

  “대군 나으리를 위해 특별히 준비해둔 아이가 있기에 그러한 것입니다. 오늘 이 아이의 머리를 얹어주시길 청하옵나이다.”

 

  문이 조용히 열리고 난앵이 들어섰다. 양녕이 눈을 가늘게 뜨고 난앵을 훑어보았다. 어린 티를 다 벗진 못했지만 설매와 옥금까지 동원하여 치장한 덕분인지 제법 기생 탯거리가 났다. 난앵이 두 손을 다소곳이 무릎 위에 얹고 눈을 살짝 내리깔았다. 새까만 눈망울에 묘한 물기가 배어있었다.

 

  “흐음.”

 

  양녕의 흡족한 기색을 읽은 천향이 물러나려하자 양녕이 음충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천향의 손을 잡았다.

 

  “갓 피어난 꽃송이만큼 맛난 것이 없다만, 활짝 핀 꽃은 농익은 맛이 있어 그것대로 좋지. 어떤가, 자네도 함께 하는 것이.”

 

  “갓 익은 복숭아 곁에 물러터진 복숭아를 두려하심은 무슨 고약한 취미십니까. 혹여라도 나리의 입맛을 해칠까 저어됩니다.”

 

  양녕이 입술이 한쪽으로 비틀어졌다.

 

  “이리도 나를 살뜰히 위해주니 고맙기 그지없구나. 내 이 아이의 해웃채로 호백구와 비단 스무 필을 주겠네. 그 정도면 값이 되겠는가?”

 

  고개 숙이고 앉은 난앵의 얼굴이 눈에 띄게 환해졌다.

 

  “이 아이에게 큰 영광이 될 것입니다.”

 

  천향이 문을 닫고 나가려는데 양녕이 말했다.

 

  “사람들이 왜 먹지도 못하는 보석을 갖고 싶어 안달하는 줄 아는가.”

 

  “…….”

 

  “쉬 가질 수 없기 때문이지. 가지기 어려울수록 귀한 것이 되는 게야. 그리 천천히 오시게. 내 기쁘게 기다리고 있을 테니.”

 

  문이 닫히고, 난앵이 기다렸다는 듯 양녕의 입술을 감빨며 양녕에게 감겨들었다.

 

 

  * * *

 

 

  “사랑이 거짓말이 날 사랑이 거짓말이, 오매사복하신단 말 그 더욱이 거짓말이, 나같이 잠 아니 오면 어느 꿈에 뵈오리.”*

 

  툇마루에 걸터앉아 노래를 부르던 설매가 천향을 보고 눈을 째긋거렸다. 천향이 설매의 맞은편에 앉았다.

 

  “안주도 없이 웬 강술을 드시오?”

 

  개다리소반엔 안주 하나 없이 술병과 술잔만 덜렁 놓여 있었다. 설매가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염병할, 안주하려면 내가 해야 하잖어! 안 그래도 팔자에 없는 안주지기 노릇하느라 삭신이 다 쑤시는데 이 밤에 나 먹자고 안주하게 생겼냐?”

 

  천향이 설매의 잔을 집어 들고 술을 채웠다.

 

  “아, 얼른 안주지기 들여! 낼이라도 안주지기 안 들이면 나 나갈 거야.”

 

  “아이고, 반가워라. 스승님 나가시면 나야 군입 하나 덜고 좋지요.”

 

  천향이 술을 홀짝 들이켰다. 설매가 천향에게서 잔을 빼앗아 들었다.

 

  “오살할 년 같으니! 내가 미쳤지, 저리 못돼 처먹은 년을 제자로 들여 가지고 늙어서까지 이게 뭔 개고생이야!”

 

  “그러게 말이오. 스승님은 나 같이 못돼 처먹은 년을 왜 제자로 들였소?”

 

  “내가 못돼 처먹은 년이라 그랬다, 왜!”

 

  천향이 피식 웃었다.

 

  “삭신이 다 쑤신다면서 왜 안 자고 청승을 떨고 있소?”

 

  “청승이야 니년이 떨고 있지!”

 

  “내가 무슨 청승을 떤다고 이러시오?”

 

  “이년아, 세상만사 다 한 시절이다.”

 

  “…….”

 

  “지금이야 사내들이 니 앞에서 몸이 달아 어쩔 줄을 모르지만 그게 얼마나 갈 거 같으냐? 백년 내내 호사할 성 싶지만은 바둑판처럼 뒤집히고 파도처럼 흘러가는 게 인생이야. 나이 들어 니 미색도, 재주도 흐려지고 나면 누가 널 거들떠보기라도 하는 줄 아느냐?”

 

  설매가 술잔으로는 성에 안 차는지 술병을 째로 들고 꿀꺽꿀꺽 술을 마셨다.

 

  “대군이 너한테 눈 뒤집혀 있는 거, 얼마 안 가. 지금이 기회야. 못 이기는 척 별채로 들어앉아버리라고.”

 

  설매가 술병을 내려놓고 천향에게 다가앉았다.

 

  “쫓겨난 세자래도 왕자의 별댁이 되는 거다. 기녀로선 만나기 어려운 행운이지 않느냐.”

 

  “첩이 되어 살면 뭐 그리 좋을 게 있다고.”

 

  “안 좋을 건 또 뭐냐? 아무리 나빠도 기생 팔자만 하겠어?”

 

  “눈칫밥에 허기지고 샛정에 설움난다지 않소. 그 집 본처, 자식새끼는 물론이고, 노복들한테까지 사람 취급도 제대로 못 받고 살다가 제 손으로 목을 맨 이들이 내 아는 것만 열이 넘소. 스승님도 잘 아시면서 그러시오.”

 

  “그러게, 그 꼴 나지 않게 잘하믄 되지 않어. 규중절색이 되어 아양도 떨고 재주도 부리며 귀염 받으며 살란 말이야.

 

  사내들 뇌꼴스러운 거야 눈 질끈 감고 모르는 척 해주면 그뿐이다. 니 빌어먹을 놈의 성질머리만 쬐끔만 굽혀도, 할 수 있어.”

 

  “그게 말처럼 쉬우면 스승님은 왜 안 하셨소?”

 

  설매가 천향의 뒤통수를 퍽 쳤다. 천향이 팩 성질을 냈다.

 

  “때리지 좀 마시오. 나도 나이 먹을 만큼 먹었소.”

 

  “니가 먹어봤자 내 눈엔 아직 핏덩이 어린애야, 이것아.”

 

  천향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다 부질없어요.”

 

  “뭐가 부질없어?”

 

  “스승님도 아시잖소. 사내에게 사랑이란 신발 같은 거란 거. 처음이야 애지중지하지만 익숙해지면 무덤덤하고, 끝내는 내팽개쳐버리지요. 고작 그딴 것에 내 인생을 걸고 싶지 않소.”

 

  설매가 시큰둥하게 코웃음을 쳤다.

 

  “그럼 뭣에 걸려고? 니 재주? 그래봐야 천기의 재주일 뿐이다. 당장에야 좋다고 박수들을 쳐주지만 돌아서면 그네들이 기억이나 하는 줄 아느냐? 양반네들 눈만 벌겋게 뜨고 있지, 재주라고는 볼 줄 모르는 청맹과니들이 태반이다.

 

  아무리 이 악물고 연마해봤자 잠시 잠깐 눈요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게 우리 재주란 말이야.”

 

  설매가 침을 튀겨가며 말을 보탰다.

 

  “그리고 별댁으로 들어가면 있던 재주가 없어진다더냐? 어차피 대군의 관심이야 잠시잠깐일 게고, 남은 여생 한갓지게 재주나 닦으며 살면 그 또한 나쁘지 않은 인생 아니냐?”

 

  천향이 발끝을 톡톡 위로 차올렸다.

 

  “동기 시절엔 사내의 노리개가 되어 편히 누워먹을 궁리 말라고 그렇게 야단이더니, 이제 와 왜 다른 말을 하시오.”

 

  설매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며 대꾸했다.

 

  “내 늙고 보니 그게 인생이고 현실인 걸 안 게지. 날 봐라. 들여다봐줄 혈육 하나 없이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지 않느냐. 매일매일이 지겹고 공허해서 할 수만 있음 혀를 콱 물고 죽고 싶다. 너도 내 꼴 나기 싫음 정신 차려, 이것아.”

 

  “스승님께 왜 혈육이 없소? 나도 있고 옥금이도 있는걸.”

 

  “너도 있고 옥금이도 있다만, 피붙이와는 천양지차다, 이년아. 나도 옥금이처럼 떡두꺼비 같은 아들 하나만 놓아두었으면 얼마나 좋았겠누.”

 

  설매가 치마에 얼굴을 묻고 코를 팽 풀었다. 천향이 설매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모른 척하며 일어섰다.

 

  “취하셨소. 그만 들어가 주무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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