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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기억의 문
작가 : 최윤정
작품등록일 : 2017.6.24

<기억의 문>은 왼손에 무속의 몸주신을 봉인한 정신과 의사가 환자의 숨겨진 기억을 왼손 그림으로 그려내는 치유의 이야기와, 수몰지구로 지정되어 고향을 잃고 서울에 정착한 이들의 실종과 죽음의 진실을 파헤치는 두 가지 이야기가 중첩되는 구조로 이루어졌다.

 
봄날, 바닷가 - 4
작성일 : 17-06-30 09:50     조회 : 248     추천 : 0     분량 : 5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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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가 밀었으면서 내 딸이 밀었다고 이제까지 말했던 거야? 니가 밀었으면서!”

 

 “주경 엄마. 어린 아이였잖아요. 그 때 애들이 다섯 살이었어. 그리고 혜인이가 먼저 밀었다잖소. 그 때 주경이 무릎 상처 당신도 봤잖아.”

 

 아버님이 아내를 달래려 했지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어머니는 아버지까지 노려보며 믿을 수 없다는 듯 외쳤다.

 

 “당신도 한 통속이었지? 알고 있었으면서 혜인이가 밀어서 사고가 난 것처럼 꾸민 게 당신이지?”

 

 “얘들 하루에도 몇 번씩 싸웠다가 화해했다가 하던 거, 기억 안 나오? 매사에 싸워서 당신이 옷까지 아예 색깔을 정해준 거잖아.”

 

 “그래도! 그래도 물에 빠진 게 혜인이 탓이 아니었잖아. 혜인이가 밀었다고 해서 이제까지 난 숨도 제대로 못 쉬면서, 누구 원망도 못하고 살았는데! 이제 와서.......”

 

 “하지만 그 사고가 어떻게 주경이 탓이야? 애시당초 거기 데려간 우리 잘못이지.”

 

 “우리? 우리라고? 당신이 그 때 우리 혜인이만 안 놓쳤어도.”

 

 병실에 갑자기 침묵이 내려앉았다. 아버님도, 그 말을 던진 어머님도 모두 스스로의 말에 놀라 숨 쉬기를 잊은 듯했다.

 

 오랜 세월 애써 외면한 그 날의 사건이 침묵 속에서 생생하게 되살아나고 있었다.

 

 질식할 듯 짓누르는 침묵을 깬 것은 아버님이었다.

 

 “당신이 그 때 그 빌어먹을 해삼인가만 건지러 안 들어갔어도 일어나지 않을 일이었어. 애시 당초 그 바닷가에 가자고 한 것도 당신이었잖아.”

 

 아버님도 지난 20여 년간 짊어졌던 마음의 부채를 털어버리기로 한 듯했다.

 

 “당신이 해녀질하던 기분 낸다고 해삼 주우러 바다에 들어가지 않았으면 애초에 애들이 물에 빠질 일도 없었고, 그럼 수영을 못하는 내가 혜인이를 구하러 물에 뛰어들 일도 없었을 거 아뇨? 당신만 괴로웠다고 하지 말아요. 나도, 나도 그간 괴로웠다고. 주경이도 그렇게 괴롭다가 저 지경이 된 거 아니요?”

 

 아버님의 원망소리가 병실을 가득 채웠다.

 어머니는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아니 바닷가에서 애들 제대로 못 본 게 누군데요? 애들 미끄러운 바위에 올라가게 놔둔 게 누구냐구요? 차가운 바닷물 속에서 당신 딸 끌어내 살린 게 누구냐고오? 내가 주경이 살릴 때 당신은 뭐했어? 당신은!!!!”

 

 그 소리에 주경이 얼굴을 한사코 감싸고 있던 손을 내렸다. 수희는 주경의 어깨를 가볍게 흔들기 시작했다.

 

 “주경씨, 신 주경씨. 정신차려요, 신 주경씨.”

 

 하지만 늘 그렇듯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야 만다.

 

 주경의 얼굴이 어린아이처럼 변했다. 다섯 살짜리처럼 변한 표정, 아이다운 심술궂음이 가득한 얼굴로 주경이 입을 열었다.

 

 “근데 엄마는 왜 날 밀었어? 왜 날 발로 차 밀어 넣었어?”

 

 “주경아!”

 

 아버지가 벌떡 소파에서 일어났다.

 어머니 입이 떡 벌어진 채 다물어지지 않았다.

 

 수희는 주경의 양 손을 잡고 톡톡 두드리기 시작했다.

 

 “신 주경씨, 신 주경씨. 정신 차리세요.”

 

 하지만 주경은 원망이 가득한 눈으로 똑바로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엄마가 날 밀어 넣었잖아. 차가운 바닷물에. 주경이만 건지고 나는 밀어 넣었잖아.”

 

 일곱 살 어린아이의 원망 가득한 목소리가 병실에 울려 퍼졌다.

 

 입만 벙싯거리며 마른 비명을 토해내던 어머니가 세차게 고개를 흔들기 시작했다.

 

 “아니야, 아니야, 아가. 그게 아니야. 그게 아니야.”

 

 하지만 아이는 창자가 녹아내리는 어미의 고통에 무감했다. 버려진 자신의 원망만 쏟아낼 뿐이었다.

 

 “똑똑히 보았어. 엄마가 주경이를 안고 헤엄치면서, 살려달라고 다리를 붙든 나는 발로 차 물에 넣어서!”

 

 “아냐! 아냐! 아가, 난 주경이가 넌 줄 알았어. 초록 코트를 입고 있는 게 넌 줄 알았어! 그래서!”

 

 정신없이 외치던 어머니가 입을 꾹 다물었다. 경악에 찬 아버지의 눈길과 마주치고 난 후 자신이 토해내는 이야기가 무슨 의미인지 뒤늦게 깨달은 듯했다.

 

 주경 아버지는 갑자기 드러난 그 날의 일과, 어린애처럼 변한 채 소리 지르는 딸로 인해 허물어지듯 소파에 주저앉았다.

 

 “엄마가 날 죽였어!”

 

 주경의 입에서 쏟아지는 일곱 살 혜인이의 원망이 병실 전체를 천둥처럼 채웠다.

 

 ++++

 

 “저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아버님이 혼란스러운 얼굴로 수희에게 물었다.

 

 각자의 기억과 원망이 휩쓸고 간 병실은 이제 고요했다.

 

 엄마가 자신을 죽였다며 악을 쓰던 주경도, 그런 주경의 원망에 말도 못한 채 부서져라, 차라리 부서져버려라 가슴만 치던 어머니도 신경안정제를 맞고 깊게 잠들어 있었다. 주경은 환자의 침대에, 어머니는 간병인용 침대에.

 

 “묻어두면 좋았을 것을..... 혜인인줄 알고 주경이를 구하고 친딸은 발로 차 물에 넣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떻게 다시 아내를 봐야 할지 모르겠어요.”

 

 한 시간 새에 몇 년은 더 나이가 들어버린 아버님이 주름진 손가락으로 이마를 문질렀다.

 

 “큰 진실을 묻은 채 온전히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그간 주경씨가 받은 심적인 고통이 삶의 의지를 내기 어려울 정도의 우울증으로 나타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수희는 일부러 숨을 골랐다. 마음에 할 말을 받아들일 심적인 여유를 드리기 위해서였다.

 

 “사람들은 보통 생각하는 것들을 모두 입 밖에 내고 살지는 않잖아요. 제가 ‘아 오늘 저녁, 환자 방문하느라 너무 힘들었어. 이게 뭔 개고생이래’ 하는 생각을 지금 하고 있어도 아버님께 그런 말씀을 절대 안 드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아버님의 얼굴 주름이 차차 펴졌다.

 

 “어머님이 구하신 아이가 혜인이가 아니라 주경씨라서 다행이다, 하는 생각 해보셨지요? 하지만 절대 입 밖으로 소리 내어서 말한 적은 없으실 거구요.”

 

 아버님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의붓딸의 죽음과 친딸의 삶이 간발의 차이로 갈린 순간을 더듬는 듯했다.

 

 “내 딸이었다면, 주경이었다면 내가 그리 아이를 쉽게 놓쳤을까를....... 수없이 되짚어 보았어요. 물에 뛰어들어 아이 코트를 잡았는데, 애가 발버둥치다가 훅 코트에서 빠져나갔어요. 지금도........”

 

 아버님은 그날의 기억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듯 손을 떨며 괴로워했다. 수희는 아버님의 양손을 잡으며 쉿, 말을 그치게 했다.

 

 “여기 탁자 위에 양 손을 가지런히 손바닥을 위로 가게 놓으세요. 제가 오른손으로 톡톡 양 손을 두드릴거에요. 그러면서 왼손으로는, 자 보세요, 제가 검지를 좌 우로 움직일 거에요. 눈동자로 제 손가락 움직임을 쫒으시는 겁니다. 이건 EMDR 기법이라고, 괴로운 기억의 고통을 줄이는데 도움이 되는 치료법입니다.”

 

 수희는 오른손으로 아버님의 양 손바닥을 번갈아 두드리며 왼손 검지를 좌우로 움직였다. 왼손과 오른손이 리드리컬하게 같은 방향으로 좌우 움직임을 지속했다. 1분 가량 눈동자 움직임을 진행한 다음, 그 날의 일을 이야기하게 했다. 아버님은 좌우로 눈을 굴리며 그날의 일을 복기하기 시작했다.

 

 “재혼하고 처음 제주에 간 거였어요. 저 사람이 제주 출신입니다. 죽은 주경 엄마가 마지막에 제주에서 요양을 했어요. 그 때 혼자 된 저 사람이 이웃에 살면서 우리집 일을 도와줬지요. 주경 엄마 죽고 동네에서 수근 대는 사람들이 많아 한동안 친정에 가질 않았어요.”

 

 좌우로 흔들리는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그날따라 저 사람이 아주 기분이 좋았어요. 바닷가에 김밥이며 준비를 해서 소풍을 갔는데, 거기가 해삼이 많은 데라며 잠깐 들어와 몇 개 주워 오겠다고 했습니다. 말은 안 해도 고향을 늘 그리워하는 걸 아는 터라 말리질 못했습니다. 물에 들어간 저 사람이 자맥질을 하더니 뭔가를 들고 손을 막 흔들었어요.”

 

 좌우로 굴리는 눈동자를 품은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바로 그 전에 애들이 투닥거리길래 혼내고 코트를 입혔습니다. 평소 옷 가지고 싸워서 같은 디자인에 색깔만 다른 옷을 입혔는데, 애들이 자꾸 엄마 보러 간다고 하는 통에 정신이 없어서 손에 쥐어지는 대로 입혀놓았어요. 그랬더니 코트가 바뀌었더군요. 빨간 코트를 입었어야 할 주경이가 초록 코트를 입었습니다. 그 때는....... 그러려고 그랬는지, 둘 다 아무 말도 안했어요. 평소 같으면 혜인이가 막 뭐라고 하면서 싫은 소리를 했을텐데.”

 

 생사의 갈림길. 그 때 코트가 바뀌지 않았다면 아마 저기 누워 있는 건 주경씨가 아니라 혜인씨겠지.

 

 운명이란 때로 이렇게 우연으로 시작해 필연으로 귀결된다.

 

 “애들 엄마가 또 자맥질을 하는 것을 보고 애들이 신이 나서 바닷가로 내달렸습니다. 그러더니 엄마 쪽에 좀 더 가까이 있는 바위로 올라가더군요. 미끄러워 보여서 이리로 오라고 저도 챙기던 도시락을 팽개치고 애들 쪽으로 달렸습니다. 그 때 아마 예감을 했던 것 같아요.”

 

 아버님은 톡톡거리는 주경의 손을 밀치고, 양 손으로 눈을 감쌌다.

 

 “아버님. 그날 일은 사고입니다. 불행한 사고. 아버님의 탓도, 어머님의 탓도 아닙니다. 주경씨 탓은 더더군다나 아니구요. 마음 아프지만, 안 일어났으면 정말 좋았겠지만 일어나버린, 사고입니다. 자 손을 떼시고.......”

 

 주경은 양손으로 아버님 손을 얼굴에서 잡아뗐다. 그리고 다시 손가락을 펴 좌우로 왕복운동을 하며 눈동자를 움직이게 했다.

 

 “그 다음부터는 너무 순식간에 일어나 저도 정신이 없었어요. 달리다 보니 애들이 뒤엉켜 바위에서 미끄러져 내렸습니다. 그 밑 물살이 세었던지 순식간에 애들이 바다로 휩쓸리더군요. 저 사람이 그걸 보고 빠르게 헤엄쳐 왔습니다. 저도 바다에 뛰어들었구요. 하지만, 저는 수영을 못했어요. 깊지 않은 줄 알았던 물이 제 키를 넘겨서, 저도 물 속에서 허우적대기 시작했습니다. 저 사람이 애 하나를 안고 헤엄치는 것이 보이더군요. 그래서 일단 저는 남은 아이를 안았습니다. 그런데......”

 

 아버님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말을 잇기가 고통스러운 듯했다. 아버님은 말없이 1분 가량을 손가락을 따라 눈동자만 좌우로 움직였다.

 

 “품에 안은 아이는 몸부림치지, 저도 숨이 막히지..... 나도 모르게 안은 걸 늦춘 찰나 애가 제 코트만 남기고 쑥 빠져나갔습니다. 지금도........”

 

 지금도 가끔 꿈을 꾸시겠지. 품 안의 아이를 놓치는 꿈을. 그 꿈을 꿀 때마다 당신은 어떤 기분으로 깨어나게 될까. 놓친 것이 의붓딸이어서 다행이란 안도감일까, 의붓딸을 놓쳐서 정말로 미안하단 죄책감일까. 아마 두 감정은 오랜 동안 섞이고 섞여 애시 당초 무슨 감정을 느꼈는지, 무슨 감정을 느껴야 하는지도 모르게 되었을 것이다.

 

 “아버님, 제 손가락은 계속 바라보셔야 합니다. 말씀하시기 힘드시면 말로 안하셔도 돼요. 대신 손가락을 보면서 그 때 느꼈던 감정을 되짚어 보세요.”

 

 강력한 두려움과 죄책감과 안도감이 파편화되어 조각난 채 저장되었을 두려운 혼란스러운 기억이 오늘 이 손짓으로 조금이라도 가벼워지길, 수희는 간절히 기도하며 손가락의 좌우 운동을 지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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