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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금요일에 만나요
작가 : 시더우드
작품등록일 : 2017.6.6

감정의 무게를 재어본 적이 있으신가요?
노래 가사처럼 사랑과 우정 중 무엇이 더 무거울까요.
죄책감과 질투 중 어느 것이 더 가벼울까요.
감정의 경중에 따라 우리는 선택을 하기도 하고 또는 선택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여기 한 명의 남자와 두 명의 여자가 있습니다.
이름을 붙이기 어려운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그들은 자신의 선택을 고민합니다.
선택이 어떠하든 누군가는 상처를 받을지도 모르지요.
어쩌면 모두가 행복할 수도 있겠지요.
서로의 선택이 바꿔 가는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아홉번째 금요일 : 중력, 가까워지기
작성일 : 17-06-26 23:35     조회 : 262     추천 : 0     분량 : 4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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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되겠다. 지금 가자."

 금요일 마지막 수업의 쉬는 시간, 나는 건이에게 선언했다. 이대로 남은 수업을 6시까지 모조리 듣는다면 놀기는커녕 완전히 지쳐버릴 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수업을 듣는 내내 머릿속에 맴돌았기 때문이었다. 평소 모범생처럼 칼같이 수업 시간을 지키던 나의 발언에 건이는 놀랐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곧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오늘따라 일찍 끝내 주던 아침 수업의 교수님도 중간고사도 끝났는데 3시간을 꽉 채워 강의를 해 둘다 평소보다 기운이 빠졌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나는 교수님이 다른 학생과 이야기하는 틈을 타 건이의 팔을 툭치고 가방을 챙겨 조용히 교실을 빠져 나갔다. 교실 밖에 나와 눈이 부신 초여름의 햇살을 마주하니 드디어 살 것 같았다. 이런 걸 즐기려고 대학에 온 거 였지, 맞아.

 

 시험이 끝난 날의 공기는 확실히 무언가 다른 것 같았다. 우리는 아무런 죄책감 없이 들뜬 마음으로 캠퍼스를 빠져 나왔다. 평소에 맑은 날보다는 비 오는 날을 더 좋아했는데, 왜 사람들이 쾌청한 날에 소풍을 가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서울숲으로 가는 버스는 아직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사람도 없었다. 나만큼이나 건이도 즐거워 보였다. 원래도 웃는 얼굴이긴 했지만 평소보다 훨씬 풀어진 얼굴이라는 것을 이제는 알았다. 큰 덩치를 버스 안 쪽 좌석에 욱여 넣으면서도 기분이 좋아 보였다.

 

 정류장에 내리자마자 숲 냄새와 강 냄새가 한꺼번에 훅 끼쳐왔다. 별로 멀리 오지도 않았는데 이런 냄새를 맡을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우리는 소풍 온 유치원생들처럼 차가운 음료수와 김밥을 샀다. 평일의 애매한 시간대라 그런지 사람이 많이 없었다. 종종 우리와 같은 대학생 커플 혹은 친구들이 보였다.

 "저 강아지 좀 봐. 너랑 똑같이 생겼다, 야."

 유독 신이 나서 뛰어 다니는 하얀 사모예드가 있었다. 아직 애기인 것 같은데도 주인은 힘에 못 이겨 거의 끌려 다니는 수준이었다. 덩치는 커다란데 하얗고 방실 방실 웃는 것이 꼭 건이와 닮았다. 그러나 귀여워하는 나와 달리 건이는 가려지지도 않는데 내 뒤에 은근슬쩍 숨었다.

 "너 설마 강아지 무서워하니?"

 "응…나 강아지, 고양이, 비둘기 다 무서워 해."

 사모예드가 우리 쪽으로 달려오자 더 벌벌 떠는 건이를 보니 어이가 없어 웃음이 터졌다.

 

 분수대 근처에 자리를 잡고 방금 포장해 온 김밥을 늦은 점심으로 나눠 먹는데 건이가 한껏 기지개를 펴더니 말했다.

 "여기 오니까 진짜 대학생 된 거 같다."

 "뭐?"

 "너가 그런 말 하니까 되게 이상하다."

 "왜? 나도 새내기인데."

 "평소에 안 그렇게 보여. 엄청 세상 통달하고 허허 하고 다니는 신선 같아. 그 때도 그랬잖아. 성민이가 술 먹고 취해서 선배한테 완전 객기 부렸을 때. 우리 다 어쩔 줄 몰라 하는데 너가 성민이 데리고 나가서 정신 차리게 해서 다들 놀랐어. 우리끼리 건이 진짜 선배같다, 이랬어."

 건이는 재수를 해서 그런지 참 새내기답지 않은 면이 많았다. 동기인 남자애들도 처음 마주치는 상황에 실수를 한다거나 어쩔 줄 몰라하는 경우가 많은데, 건이는 그런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언제나 웃음을 지으며 상황을 능숙하게 모면했다. 그런 점에서는 좋을 것 같지만, 또 다른 애들처럼 새로운 상황에 설렘을 느낀다거나 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나 조차도 대학에 들어오는 것을 기대했으나 건이는 이미 학기 초 부터도 그런 감정은 전혀 없는 것이 여실히 느껴졌다. 그러나 건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냐, 나도 똑같아. 나는 그냥 잘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는 거야."

 "뭐야, 그게 신기한 거라니까."

 "그런가…"

 어떨 때는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사람 같다가도 이럴 때는 꼭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처럼 보였다.

 "그래도 지금은 왜 갑자기 대학생 된 거 같다고 생각했어?"

 "그냥. 이 시간에, 이렇게 밖에서 햇빛 쬐고 있으니까. 마음이 편안해."

 마음이 편안하다니. 건이한테 정말 처음 듣는 말이었다. 고양이처럼 볕을 쬐고 있는 건이를 보니 데려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건이의 하얀 피부가 점차 빨갛게 달아올라서 서울숲에서 피크닉 겸 광합성 하기는 그만하기로 했다. 이제 한강으로 가야 할 시간이었다. 자전거를 탈까 싶었지만 오늘은 왠지 걷고 싶은 날이라고 건이와 나는 의견을 모았다. 서울숲에서 뚝섬까지 한강변을 따라 천천히 걷기로 했다. 머리 위 탁 트인 하늘과 유유히 흘러가는 강을 구경하며 걷다 보니 뚝섬에 도착하기도 전에 날이 조금씩 저물기 시작했다. 해가 저물자 기다렸다는 듯이 롯데타워가 반짝 불을 켜기 시작했다. 워낙 멀리서도 빛을 내뿜고 있다 보니 우리의 종착지가 꼭 저 곳이어야 할 것만 같았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갈 수록 건물 옆으로 동그란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설마 저거 달인가?"

 달인지 아닌지 긴가민가 할 정도로 주황색을 띈 동그란 달이 떠오르고 있었다. 마치 건물에 매달린 열쇠고리 같았다. 우리는 한참 달이다 아니다 말씨름을 하다가 뒤를 돌아 해를 지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저것이 달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너무 신기해서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지만 핸드폰 카메라로는 조명처럼 보일 뿐이었다.

 

 달이 점차 노랗게, 동그랗게 빛나며 롯데타워에서 멀어 져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정말 완연한 보름달이었다. 달이 완전히 떠오를 때쯤 뚝섬에 도착했다. 멀리 걸어온 만큼 조금 지치기도 해서 편의점에서 맥주 한 캔 씩을 사서 강이 바라보이는 벤치에 앉았다. 바람이 세게 불어서 건이는 모자를 벗었다. 둘 다 바람에 머리카락이 깃발처럼 흩날렸다. 머리 위에는 달이 떠오르고 강변에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흩날렸다. 며칠 전까지 시험에 시달리던 우리에게 비현실적인 광경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서 였을까, 나도 모르게 혼자 생각해 오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참 달 보는 게 좋더라. 해는 눈이 부셔서 제대로 못 보는데 달은 보름이면 밀도까지 관찰할 수 있어서 재밌어. 저기 봐, 저기 어둡게 보이는 게 달의 바다래."

 "이름 예쁘다. 달의 바다."

 나처럼 건이도 뚫어져라 보름달을 바라보았다. 나는 보름달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달처럼 거리를 유지했으면 좋겠어. 달은 일정한 거리 이상을 넘어오지 않아서 좋은 것 같아. 그 선을 넘게 되면 지구 해수면이 높아지거나 하면서 어딘가 망가지게 될 거란 걸 아는 것 같잖아. 아주 정확하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게 마음에 들어. 나도 항상 그렇게 살고 싶어."

 맥주 때문이었을까. 나는 말을 마치고서 너무 현학적인 이야기를 했나 싶어 얼굴이 붉어졌다. 그러나 건이는 내 이야기에 미소를 지었다.

 "좋은데? 달처럼 거리를 유지하는 거. 그런데 나는 이렇게 달을 보면 저 달이 끝도 없이 다가와서 지구가 무너지는 상상을 해."

 "응? 무너진다고?"

 내가 놀라자 건이가 눈을 반짝 빛내며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뭐야, 나보다 더 허세 부리잖아. 더한 걸 얘기했어야 하나 쓸데없는 승부욕이 오르는데 건이가 말을 이었다.

 "나 아델 노래 되게 좋아하는데, 스카이폴 노래를 들으면 딱 그런 장면들이 상상돼. 막, 운석들이 지구에 떨어져서 조약돌 던지기 하는 것처럼 강물이 요동치는 거야. 땅은 흔들리고. 그런데 나는 그 장면을 가만히 앉아서 보는 거야, 이렇게."

 건이가 곧바로 핸드폰을 꺼내더니, 액정을 가득 채운 메시지들을 읽지도 않고 음악을 틀었다. 생각해보니 오늘처럼 오랫동안 건이가 핸드폰을 보지 않았던 것도 처음인 것 같았다. 그러나 생각을 채 마치기도 전에 음악이 흘러나왔다. 건이가 먼저 눈을 감더니 말했다.

 "그대로 따라해 봐."

 눈을 꼭 감은 건이가 너무 진지해 보이면서도 웃겼지만, 나도 친구를 위해 눈을 감고 음악에 집중했다. 저 멀리서 들려오는 어쿠스틱 사운드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진중한 오케스트라 반주가 귀를 울렸다.

 

 This is the end. Hold your breath and count to ten.

 이게 끝이야, 숨을 참고 10 까지 세어 봐.

 Feel the earth move and then hear my heart burst again.

 지구가 움직이는 걸 느끼며 내 심장이 다시 뛰는 소리를 들어 봐.

 

 가사는 비극적이기까지 한 느낌인데도, 눈을 감고 차갑고 상쾌하게 느껴지는 강바람을 코로, 피부로, 숨결로 느끼며 들으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 찰나의 순간, 내 앞에 펼쳐진 시간들이 무한하게 느껴졌다. 누군가에게 이런 무방비한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는데, 부끄럽지 않았다. 음악을 듣다 눈이 마주친 우리는 서로를 향해 활짝 웃어 보였다. 이 특별한 순간을 공유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눈 앞에 펼쳐진 드넓은 하늘을 바라보니 앞으로 내 앞에 어떤 일이 펼쳐지든 상관이 없을 것 같았다.

 "어때, 재밌지?"

 건이가 다시 반달 웃음을 지었다. 처음으로 보는, 소년 같은 웃음이었다.

 "예쁜 달 보면서 지구가 무너지는 상상이라니. 너도 참 신기하다."

 "너는 거리를 유지하는 달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며. 비슷하지, 뭐."

 그래, 생각해보니 거기서 거기구나. 음악을 마저 듣고 나니 이제 집에 갈 시간이 가까워져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 문득 건이에게 이 말을 건네고 싶었다.

 "건아."

 "응?"

 "우리는 서로 달 같은 사람이 되어주자. 좋은 거리를 유지하는…친구."

 나는 말 끝을 흐렸다. 건이는 마음에 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마지막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좋은 거리를 유지하면서, 서로를 향한 중력을 잃고 떨어지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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