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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최초의 기억
작가 : 루룰루
작품등록일 : 2017.6.6

"난 죽으면 4년 후에 이름 모를 아이로 다시 살게 돼."
9번째 인생을 살고 있는 소녀, 소녀를 통해 음모를 파헤치려는 괴짜 청년.
소녀가 잊어버린 최초의 기억을 찾고자 한다.

 
1-6화. 님은 저곳에
작성일 : 17-06-26 14:38     조회 : 417     추천 : 1     분량 : 4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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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 "광고 메일 전부 지워줘. 언론, 회사 그 어디든 상관없어."

 "... 120,312,511,602,305개가 남았습니다."

 "세상에, 광고만 112조나 된 거야?"

 "첨부 파일로 바이러스나 위험해 보이는 것들도 다 지워줘."

 "... 112,169,347,711,518개가 남았습니다."

 "찾아갈 주소를 적지 않은 메일을 지워줘."

 ".. 8,832,125,312,287개가 남았습니다."

 "하아, 아직도 8조나 남았어."

 "몰도바 항의 메일도 지워줘."

 "욕설 비방이 적힌 글도 다 지워줘."

 "자신이 외계인이라고 주장하는 글도 다 지워줘."

 "외모 품평", "취재 목적", "'인증'이라는 단어가 적힌", "지도상에 없는 주소", "의미불명 도배글", "주소만 적은 글", "

 

 "112개가 남았습니다."

 나루는 숫자 놀이에 지쳤는지 허락 없이 내 침대에 앉았다. 팔짱을 낀 채 앉더니 그것마저도 지쳤는지 곧장 양 손을 침대에 받쳤다.

 "좋아, 읽을 가치가 있는 메일이 112개나 있는 거지?"

 "네, 그렇습니다."

 츄카의 반응속도는 원래대로 돌아왔다. 눈동자는 부드럽게 움직였고, 얼굴 이목구비 움직임도 다시 자연스러워졌다. 악조건 속에서 임무를 마친 츄카와 모모에게 정말 고마웠다. 조력자 나루는 손으로 자기 몸을 받치는 것마저도 힘든지 나 몰라라 하고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우리 공원에서 좀 쉴까?"

 "응? 공원? 난 여기가 더 좋은데."

 나루는 뒤로 돌아눕더니 내 이불에 코를 박았다. 영락없이 밖에 나가기 싫어 떼쓰는 어린이였다.

 "가서 나루가 먹고 싶은 거 다 사줄게. 부모님이 쓰라고 주는 시간량이 꽤 있거든."

 만 16세 전까지 미성년자는 노동에 참여할 수 없다. 화폐가치가 상실된 오늘날, 어린이들은 무언가를 구매할 때 필요한 '노동 시간량'을 부모에게 용돈처럼 받아 써야 한다. 나는 군것질을 거의 하지 않기 때문에 내 시간 계좌에 많은 시간량을 모을 수 있었다. 원한다면 고급진 식사 한 끼도 대접할 수 있다.

 나루는 '먹을 것'이라는 말에 곧장 벌떡 일어나더니 구세주를 만난 표정을 지으며 내 손을 잡았다.

 "진짜? 진짜 다 사줄 거야?"

 초롱초롱하게 빛나는 나루의 눈이 부담스러워 얼떨결에 시선을 회피했다.

 "어, 어. 너무 비싼 거 말고... 아이스크림 정도?"

 나루는 '아이스크림'이라는 말에 신나서 폴짝폴짝 뛰었다. 흩날리는 머리카락이 찰랑찰랑 춤을 췄다. '아이스크림'이라는 말에 저렇게 신나다니, 도대체 어떤 가정환경에서 지내는지 조금 궁금해졌다. 그러다가 생각이 잠시 다른 틈으로 새어 곧바로 츄카를 바라봤다.

 "그나저나 츄카, 혹시 남은 메일 중에 한국도 있어?"

 나는 혹여나 하는 마음에 츄카에게 물었다. 츄카는 눈을 몇 번 깜빡이더니 대답했다.

 "없습니다."

 "하긴 이 좁은 땅에 있을 리가..."

 "하지만"

 츄카는 내 말을 끊더니 다시 몇 차례 눈을 깜빡였다. 깜빡이는 눈동자에 맞춰 쿵쿵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속없는 나루의 도약이 의도치 않게 긴장감을 조성했다.

 "이웃 나라에 있습니다, 1건."

 나루는 츄카의 말을 듣자 제자리에 멈춰 섰다.

 "거기가 어딘데?"

 츄카는 나루에게 고개를 돌리더니 다시 나를 바라봤다.

 "북한입니다."

 "부, 부, 부부, 북한?"

 나루는 격한 반응과 함께 동그랗게, 아니 똥그랗게 눈을 뜬 채 나와 츄카를 번갈아 봤다.

 

 우리는 집에서 나와 이동 캡슐에 탑승했다. 언더트리 중앙 지하에 있는 생태 공원에서 휴식을 취하고자 했다. 나루는 내 뒤를 따라다니며 고장이 난 기계처럼 같은 말을 지겹게 반복했다.

 "안돼, 안돼, 안돼, 안돼, 안돼, 안돼에에에엣!"

 우리는 나무 아래에 놓인 벤치에 앉았다. 나뭇곁이 살아있는 벤치는 상록수의 촘촘한 그늘과 함께 있어 아늑해 보였다. 유리 벽 너머로 보이는 인조태양은 푸른 잔디밭에 적당한 빛을 내뿜었다. 그 빛 아래 주민들은 잔디밭에 돗자리를 깔아 눕거나 나들이를 즐겼다. 한 아이는 자기보다 1.5배 정도 몹집이 큰 개랑 공놀이 중이었다.

 나는 아이스크림을 주문하고자 벤치 손잡이를 톡톡 건드렸다.

 "벤치, 녹차 아이스크림이랑 땅콩초코 아이스크림 각각 1개씩 부탁해."

 "예, 가격은 10분입니다."

 나는 팔걸이에 있는 지문 인식기에 검지를 올려 결제했다.

 "결제가 완료되었습니다,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루는 심술이 잔뜩 올라 씩씩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고사리손으로 주먹을 쥐고 내 팔을 투닥투닥 때렸다.

 "아, 진짜. 왜 그래? 땅콩초코가 별로야? 밖에서 파는 거랑 좀 다를 테니 일단 먹어봐!"

 "그게, 그게 아니잖아! 거기 가면, 거기 가면 안 돼, 위험해!"

 나는 지친 표정을 지으며 나루의 주먹을 꽉 잡고 뿌리쳤다.

 "아니 뭐가 위험하다는 거야? 한국전쟁이라도 겪어 봤어? 분단국가 시절 때 살아봤어? 어른들 말씀 따라 '공산당이 싫어요' 시위라도 하고 다녔어? 국경 너머로 놓고 온 핏줄이라도 있어? 왜 그래?"

 나루는 점점 입술을 늘이더니 눈가가 촉촉해지기 시작했다. 시한폭탄이 된 나루는 언제라도 터질 준비가 되었다.

 "나, 나루야. 진정해."

 "주문하신 녹차 아이스크림과 땅콩초코 아이스크림입니다."

 녹색과 갈색으로 이뤄진 줄무늬에 가슴과 모자에 'UT'라고 적힌 유니폼을 입은 휴머노이드가 갑자기 나타났다. 그리고 주문한 아이스크림을 내밀었다. 나루는 땅콩초코 아이스크림을 울먹이며 보더니 양손으로 받았다.

 "거, 고맙, 흐극 습니다."

 나는 남은 한 손에 있는 아이스크림을 집었다. 휴머노이드는 자기 할 일을 마치고 말없이 갈 길을 갔다.

 나루는 입가에 초코크림을 묻히더니 점점 울음을 그치려 했다. 나는 아이스크림을 한입 물고 입가를 손으로 닦으며 고개를 하늘로 젖혔다. 살랑거리는 나뭇잎 사이로 푸른 하늘이 아닌 반짝이는 유리가 보였다. 왠지 모르게 답답한 마음이 폐 안에 가득 들어차 깊게 한숨을 내뱉었다. 고개를 돌리니 나루는 벌써 바삭거리는 '콘'을 먹고 있었다.

 "나루야, 북한은 독재체제가 망한 지 벌써 300년이 됐어. 그 독재자들은 이미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고. 지금도 힘든 국가인 건 나도 알아. 하지만 영토 내 사람들의 혼란 방지 차원에서 독립 국가 선언을 해준 이후 이제 한국, 북한 둘 중 하나의 국적만 있으면 자유롭게 국경을 건널 수 있다고."

 나루는 나를 힐끔 보면서 남은 콘마저 다 삼켰다. 눈물은 어느 정도 멈췄지만, 토끼같이 눈이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위험하댔어, 아빠가."

 나는 아이스크림만 먹고 콘은 남겨둔 채 고개를 푹 숙였다.

 "그건 다 옛날 사람 이야기야. 언제적 이야기를..."

 "우리 아빠는 옛날 사람이 아니야!"

 갑작스러운 큰소리에 나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나루는 벤치에서 벌떡 일어나 나를 찌를 듯이 째려보았다.

 "뭐, 뭐야. 내가 말실수라도 했어?"

 갑자기 땅을 한 발로 쾅쾅 친 나루는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이동 캡슐 쪽으로 등을 돌렸다. 그러더니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고 '나빠'라는 말을 던졌다. 왼팔로 눈가를 가리며 나루는 달려갔다. 나는 멀어지는 나루를 붙잡지 않고, 가만히 지켜봤다. 주민들은 이 광경을 잠시 숨죽여 지켜보다가 다시 자기 할 일에 몰두했다. 이동 캡슐에 탑승한 나루를 보고 다시 또 한숨을 내뱉었다. 갑작스러운 피로감이 머리에 몰려왔다. 뭐라도 주문할 겸, 다시 벤치를 건드렸다.

 "벤치."

 "예, 부르셨습니까."

 편두통이라도 온 걸까. 머리가 지끈거려 손으로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아니야, 아냐."

 양손으로 두 눈을 꾹꾹 누르다가 정신을 차리기 위해 공원에 있는 조각상 분수를 응시했다. 흐릿한 분수 위에서 오줌을 싸는 저 동상이 큐피드인지 평범한 아이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좀 더 자세히 보려는 순간 시선이 점점 땅으로

  떨어지더니 둔탁한 소리와 함께 시야가 90도로 꺾였다. 이윽고 저 멀리서 커다란 무언가가 혀를 내밀고 달려온다. 소리가 뿌연 먼지가 되어 산산이 흩어지고, 잔디밭이 점점 물렁물렁하게 느껴진다.

 

 눈을 뜨니 내 몸이 살짝 떠 있다는 걸 느꼈다. 천장에 그려진 우주 지도가 지금 있는 장소가 어딘지 알려줬다. 나는 고개를 살짝 돌려 벽에 걸린 야광 시계를 보았다. 시침과 분침이 '10'에 겹쳐 있다. 침대 옆면에 있는 중력 스위치를 눌러 몸을 침대 위로 풀썩 떨어트렸다. 나루와 옆에 있을 때 쌓였던 한숨이 아직도 다 빠지지 않았는지 가슴팍이 답답했다. 거실로 나가려고 방문 앞에 서 있다가 문득 생각을 접었다. 부모님이 당황해하는 모습을 지금 보고 싶지 않다. 나는 다시 침대로 돌아가 누웠다. 푹신한 질감이 너무나 어색하다. 분침이 '0'을 향할 쯤에 다시 침대에서 일어나 베개도 없이 바닥에 누웠다. 팔을 머리에 붙이고 새우 자세를 취하자 비로소 내 자리를 찾은 것만 같았다. 지금 내가 왜 이러지, 이 말이 계속 머릿속에 팽이처럼 돌고 돌다가 어느 순간 뚝 끊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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