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소희유희
작가 : 미루하
작품등록일 : 2017.6.24

완벽쟁이 까탈스러운 상사/덜렁거리는 평범한 여직원 부하/
둘이 함께 이계 이동하는 로맨스판타지.

 
04 왕국
작성일 : 17-06-26 12:27     조회 : 335     추천 : 2     분량 : 4790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하루종일 서류와 씨름하고 있을수만은 없다. 

 

 다음 달에는 개국기념 무도회가 열릴 예정이고, 왕가에 여주인이 없으니 왕이 그 또한 총괄해야 한다. 어째서 이런 일까지 해야 하는가 하고 불평하면서도 왕은 어찌어찌 신하들에게 떠맡기고 최소한의 결정만 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반드시 그가 결정하고 싶어하는 일이 있었다.

 

 즉, 새로운 차와 음식을 가려 무도회에 내놓을 메뉴를 정하는 일이다. 왕은 다양한 음식을 먹어보았으며, 새로운 음식에 도전하는 것을 즐겼다. 즉, 그는 미식가였고 세계의 다양한 요리법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었고 구운 고기건 신선한 야채건 가리지 않고 모든 요리를 즐겼다. 

 

 스테이크를 구우라고 하면 굽지는 못하겠지만, 익힌 스테이크를 먹으며 어떤 조미료를 얼만큼 넣었는지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미각이 예민했다. 본래 음식에 섞인 독을 감별하기 위해 어렸을 때부터 여러 가지 훈련을 받았으나, 그는 이 지루하고 괴로운 일을 즐거운 훈련이라 생각하고 편히 즐겨왔다. 

 

 새로 들여온 차는 향이 괜찮았다. 

 

 시종이 향을 맡으며 코를 두 번 킁킁대는 일은 그리 흔치 않았다. 혀끝으로 살짝 맛을 본 다음 한참 동안 서 있다. 즉시 반응하는 독이 퍼질 정도의 시간이 지나서야, 그는 왕에게 약간 식은 찻잔을 건네주었다. 

 

 "나도 뜨거울 만큼 따뜻한 차를 마시고 싶다고."

 "전 적당히 식은 차가 좋습니다, 폐하."

 "그럼, 우리가 각자 잘못 태어났군."

 

 늙수그레한 시종장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신분에 관한 농담을 할 때마다 아버지 뻘인 시종장은 엄격하게 반응했다. 자네 아니면 내가 어디가서 이런 농담을 하겠는가 하고 몇 번이고 꼬드겨도 넘어오질 않았다. 지루하고 원칙주의자인 완고한 노인 같으니라고. 세르게이는 다시 한 번 차를 홀짝였다.

 

 "장미 차가 체내에서 마력을 쌓도록 도와준다는 효능이 있다던데, 사실인가?"

 "마법사협회에 문의하겠습니다, 폐하."

 

 언제는 피부에 좋다고 귀족부인들이 싹 쓸어갔는데, 지금은 또 마력에 좋단다. 일 년에 한 계절에만 피는 부크라흐 장미는 꽤나 재배하기 까다로운 작물이었다. 기존에는 공작가에서만 이 장미를 재배해 왔다. 즉, 나라 전체에서 나는 부크라흐 장미 꽃잎을 전부 따다가 쌓아서 꽃차를 만들어도 기껏해야 백 명이 일 년 마실 분량도 채우지 못할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이 차는 특정한 몇몇 인물만이 마실 수 있는 매우 고가에 비실용적인 물건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눈앞에 있는 말린 장미 꽃잎 더미를 보면, 보리와 밀을 생산하는 밭을 전부 엎어 버리고 부크라흐 장미를 심겠다고 나선  농민이 적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국민을 먹이려면 빵이 필요하고, 빵을 구우려면 보리와 밀이 필요하다.

 지금 이렇게 많은 꽃잎이 있다는 건….

 

 향은 좋았다. 

 맛도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은 편이다. 

 

 그는 한숨을 쉬었다. 붉게 투명한 찻잔에 얇은 파문이 퍼졌다.

 

 "국왕이 꽃잎차 향이 그리 좋지 않다고 하더라고 소문을 퍼트려." 

 

 "네, 폐하."

 

 시종장이 고지식한 건 이럴 때는 좋았다. 공작이었다면 "아니 이 향이 안 좋다니! 우리 집안에서 힘들게 기른…!” 어쩌고 저쩌고하며 바로 격하게 반응할 것이다. 실제로 향은 좋았다. 다만 국왕이 즐기는 차라고 유명해졌을 때 벌어질 일을 생각하면 머리가 아프다….  

 

 마호가니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똑, 똑. 두꺼운 카펫이 깔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둔중한 징 박힌 군화 소리가 먼저 들렸다. 누구인지 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다. 왕의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걸렸다. 공작가의 색인 남색 옷을 입은 시종이 고개를 숙이며 종을 흔들었다. 거구의 공작 앞과 정말로 어울리지 않는 소리였다. 맑고 깨끗한 딸랑 소리가 멈추고 난 후, 시종이 큰 소리로 공작의 입장을 알렸다.

 

 “막심 막시밀리안 공작이십니다.”

 

 세르게이의 시종장이 앞에 나서서 가볍게 목례를 했다. 국왕을 대신하여 인사하는 것이므로, 공작 앞에서도 가벼운 예를 취한다.

 

 

 “이번 주 보고서입니다.”

 “분명히 달마다 제출하라고 했을 텐데….”

 

 공작의 입가가 씩 올라갔다. 말을 사랑해 마지않는 공작이, 힘들게 구한 제국산 종마와 교배한 암말이 낳은 망아지가 제 아비를 쏙 닮았다고 자랑하던 때와 비슷한 정도로 의기양양한 표정이었다. 뛰어난 성과를 자랑하고 싶은 모양이다. 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말하고 싶어한다면 들어주겠다. 어디 내키는 대로 말해보아라, 하고 허락한 셈이다.

 

 “제국식 드레스를 입고, 넘어지지 않고 걷는 법을 익혔습니다.”

 “…어떤 드레스?”

 

 왕의 배우자가 될 여성에게 맞추어 새로 제작한 옷은 서른 벌이 넘는다. 제국의 최신 유행을 따른 드레스도 그 중에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안저고리와 겉저고리, 부풀린 속치마와 여덟 겹 스란치마가 그 중에 포함되어 있던가? 아냐, 일단 단순한 복식으로 시작했던 것 같은데? 고개를 갸웃거리는 왕에게 공작이 드레스의 모양을 손가락으로 그려 보여 주었다.

 

 하늘하늘하게 펄럭이는 단순한 드레스는 치맛자락이 바닥까지 끌릴 뿐, 특이할 것이 없는 복식이었다.

 

 ‘이건 누가 내가 입어도 걸을 수 있겠는데…?’

 

 아들만 둘 있던 공작가에 처음으로 ‘딸’이 생긴 셈인가.

 교육을 시키라고 보내놨더니 애정을 갖고 훈육하고 있다. 세르게이 왕은 이맛살을 살짝 찌푸렸다.

 

 “궁중 무도회의 예절, 역사, 악기, 다도. 언어.”

 

 하나 하나 읊는 왕의 목소리는 낮고 차가웠다.

 

 “지금 왕의 배우자로써 배워야 할 것이 한둘이 아닌데, 여태껏 옷을 입고 걷는 방법조차 익히지 못했단 말인가.”

 

  공작은 바닥에 무릎을 털썩 꿇었다. 둔중한 체구가 바닥에 내리앉으며, 쿵 소리가 나며 붉은 카펫이 구겨졌다. 시종들이 흠칫 놀랐다.

 

 “죄송합니다, 폐하!”

 

  공작은 오늘도 보고 왔던, ‘소이’의 모습을 떠올렸다.

 

  맑은 눈에 이국적인 이목구비, 또렷한 콧날에 둥글고 부드러워 보이는 입술은 옅은 분홍빛이다. 찰랑이는 검은색 머리는 허리까지 내려오고, 올려 묶고 진주 비녀를 꽂으면 훌륭한 귀족 부인처럼 보였다. 적당히 살집이 있는 체격에 근육도 있다. 굳은살이라곤 없는 부드러운 손을 보면 확실히 곱게 자란 태가 났다.

 

 그녀는 신의 사도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인간적이었다.

 

 처음 공작가로 옮겨지던 날, 화장실에서 작은 소동을 일으켰던 그녀는 느닷없이 깊이 잠들어 깨어나지 않았다. 귀한 손님이 다친 것이 아닌가 공작은 노심초사하였으며 신관의 협조를 부탁했다. 신관들이 정성껏 기도하고 의식을 치러도 그녀는 깨어나지 못했다.

 

 손에는 두꺼운 금팔찌 같은 것을 꼭 쥐고 있었는데, 놓지를 않았다.

 

 공작은 그녀를 제일 좋은 손님방에 머물게 했다. 투명한 비단 커튼으로 햇빛을 가리고, 남국산의 기분이 좋아지는 향을 피웠다. 그녀가 눈을 뜨지 못해도 갖가지 계절에 맞는 꽃을 꺾어다 장식하였다. 남색 비단 보료를 깔고 흰색 비단 이불을 덮었다. 믿을만한 시녀를 시켜 그녀에게 계속해서 말을 걸고 기도를 하도록 했다.

 

 그런 보람이 있어 나흘째에 그녀가 눈을 떴다.

 집무 중이었던 공작은, 다급하게 호출을 받고 마차를 불러 집으로 돌아갔다. 시녀가 문을 열어, 넓은 창문으로 햇빛이 비쳐 들어왔다. 그는 정중하게 두 팔을 벌리며 인사를 하였다.

 

 “어서 오시오, 신의 사도여.”

 “!@#^^!#$!@#@#%#%%&*(%@$?”

 

 왕국의 언어가 통하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공작은 두툼한 손으로 턱수염을 만지작거렸다. 목뒤가 서늘해 왔다. 말조차 통하지 않는데 어떻게 일 년 안에 왕비가 될 정도로 교양을 갖추게 하지? 이건 공작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그는 조심스레 이십여년 전 가정교사에게 배웠던 녹슨 제국어로 인사를 해 보았다.

 

 “<사도, 여, 제구그그그, 어는, 하아실, 줄, 아아아십, 니까?>”

 사도여, 제국어는 하실 줄 아십니까.

 

 왕이나 제국의 사신이 아닌 다른 이에게 존칭을 하는 건 오랜만이었다. 느릿느릿 정성들여 말하는 그 태도에 어떤 걸 느꼈는지, 여자는 갈색 투명한 눈을 깜빡거렸다. 창문으로 들이치는 햇빛에 검은색이라고 생각했던 머리카락이 비쳐서 갈색으로 보였다. 그녀는 아주 작고 연약해 보였다. 그리고는 입을 오물거리며 갈아입힌 하얀 비단 옷을 만지작거리며, 뭔가 계속해서 물어보았다.

 

 “^%#?”

 “…사도여?”

 

 천국에서도 당연히 왕국어를 쓸 줄 알았다. 아니, 하다못해 제국어라도 쓸 줄 알았다. 나중에 제국의 거만한 놈들에게 자랑이라도 해야겠군. 왕국어를 모른다는 것은 당황스러웠지만, 제국어를 모르는 것은 통쾌했다.

 

 하지만 지금 제일 난감한 점은,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여자가 조그만 입술을 다시 벌렸다. 눈이 가늘어지며 광대뼈가 올라가고, 입이 벌어져 흰 이가 드러났다. 자신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그녀가 또박또박 말했다.

 

 “소, 이. 임, 소, 이.”

 “…?”

 “소, 이.”

 

 다시 손가락으로 상대를 가리키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다시 한 번 제 가슴팍을 팡팡 두드린다. 속옷과 다름없는 얇고 흰 비단 잠옷이 팔랑이며 가슴께가 살짝 드러났다. 사교계의 드레스보다 훨씬 노출은 덜하다만, 결혼한 여성이 남편 앞에서만 보일 법한 - 남에게 보여서는 안될 은밀한 복장이다. 수치심이라곤 없는 건지 아니면 천국에서는 예절이 다른 건지, 그녀가 인내심있게 다시 말했다.

 

 “소, 오, 이, 이.”

 

 공작의 짧고 굵은, 검술로 단련된 거친 손가락이 여자를 향했다.

 

 “소이.”

 “소이!”

 

 여자가 다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어깨가 들썩거릴 정도로 크게 웃었다. 그녀가 공작을 손가락으로 똑바로 가리켰다. 이 무례한 행동에 곁에서 지켜보던 시녀가 흠칫 놀라 제 치맛자락을 밟았다. 공작은 신경쓰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막심, 막시밀리안.”

 

 자기소개를 하자는 뜻이었던 것 같다. 공작의 이름을 듣고 만족해 하는 듯, 거의 비슷한 발음으로 여자가 혀를 굴렸다.

 

 “맠-심. 맠시밀-리안.”

 “막심. 막시밀리안.”

 “마크심.”

 “막, 심.”

 

 세 번 쯤 따라하고 나서, 그녀는 곧 거의 비슷한 억양을 흉내낼 수 있었다.

 
 
자신만의 이미지를 등록해보세요
재희 17-07-27 22:42
 
아직 박팀장이 안 나와서 그런가ㅎㅎ막심 마음에 드네요~!!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25 그 여자의 거래 (5) 2017 / 7 / 20 281 0 4504   
24 그 여자의 거래 (4) 2017 / 7 / 20 295 0 4260   
23 그 여자의 거래 (3) 2017 / 7 / 20 276 0 4068   
22 그 여자의 거래 (2) 2017 / 7 / 20 273 0 5494   
21 그 여자의 거래 2017 / 7 / 20 287 0 5094   
20 그 남자의 사정 2017 / 7 / 18 295 0 4398   
19 그 남자의 사정 2017 / 7 / 12 285 0 3831   
18 다른 남자의 사정 2017 / 7 / 12 281 0 5061   
17 그 남자의 사정 2017 / 7 / 12 299 1 5132   
16 왕국의 그녀 2017 / 7 / 12 274 1 5049   
15 왕국의 그녀 2017 / 7 / 12 308 1 4095   
14 왕국의 왕 2017 / 7 / 8 295 1 5571   
13 왕국의 왕 2017 / 7 / 8 286 1 3481   
12 왕국의 그녀 2017 / 7 / 8 290 1 4620   
11 왕국의 그 남자 (이어서) 2017 / 7 / 8 294 1 1969   
10 왕국의 그 남자 (1) 2017 / 6 / 26 331 2 2528   
9 왕국의 그 남자 (계속) 2017 / 6 / 26 514 2 4211   
8 05 왕국의 그녀 2017 / 6 / 26 319 2 3885   
7 04 왕국 (1) 2017 / 6 / 26 336 2 4790   
6 03 왕국의 그녀 2017 / 6 / 25 308 2 3727   
5 02 왕국의 그녀 (1) 2017 / 6 / 25 349 2 5056   
4 01 왕국 2017 / 6 / 25 328 2 4545   
3 프롤로그. 아직은 현대 03 (1) 2017 / 6 / 24 342 3 4101   
2 프롤로그 - 아직은 현대 02 2017 / 6 / 24 313 3 4572   
1 프롤로그 - 아직은 현대 01 (1) 2017 / 6 / 24 522 3 4281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산촌의녀
미루하
그녀가 어제 죽
미루하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