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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그녀가 어제 죽었다
작가 : 미루하
작품등록일 : 2017.6.25

제국력 하얀 달의 해 여섯 번째 보름날, 흐라드차 영주의 외동딸 실비아 흐라드차리가 죽었다. 지난 초승달에 17세의 생일이 지난 흐라드차 영애는 돌아오는 보름에 바출라 영주의 아들 카를 바출라프와 약혼식을 올릴 예정이었다.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으며 죽은 장소는 영주의 마을, 흐라드차의 유일한 여관 <흑사슴>의 이층 두 번째 방이었다.

평소 모험 소설을 즐겨 읽으며 모험을 꿈꾸던 영주의 딸은 생일 기념으로 모험을 떠나고 싶다고 졸랐다. 영주는 모험은 승낙하지 않았으나 대신 마을의 여관에서 하룻밤을 지내는 것을 허락했다. 영주는 딸이 머무는 만 하루 동안 여관의 직원을 전부 성의 시종과 시녀로 대치하는 조건으로 딸을 내보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싸늘하게 식은 시체였다.

분노한 영주는 범인을 찾지 못한다면 여관의 숙박객 전부를 교수형시키겠다고 선언했다.

 
월요일. 01
작성일 : 17-06-25 20:12     조회 : 298     추천 : 2     분량 : 5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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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돼지 무릎고기라니 생각도 못했는데 먹을 만하군요."

 

 남자가 세 갈래 포크를 집어 고기 위에 사뿐히 내려놓았다. 젓가락이나 수저를 다루는 건 서툴지만 포크와 나이프라면 능숙하다. 귀족가의 영애 못지않은 예절이다. 강물이 흐르는 것처럼 부드러운 연결 동작으로 우아하게 포크에 고기를 걸어 입으로 가져간다. 접시와 포크가 맞부딪혀 소리가 나지도 않았고 포크 날에 고기 결이 상하지도 않았다.

 

 예법 교사가 있다면 박수를 치며 만점을 줄 동작이다. 맞은 편에 앉아 있던 소녀는 남자의 예절바른 모습이 당연하다는 듯 서툰 손길로 포크를 다루어 고기를 잘랐다. 거친 동작에 값진 천진산 비단으로 지은 의상에 기름이 튈 뻔했다. 남자는 아무렇지 않게 냅킨을 꺼내어 소녀의 목께에 둘러주었다. 그 배려에 소녀는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카민은 쯧 하고 혀를 찼다. 네가 곱고 이뻐서 이렇게 구는 것이 아니다. 네 옷을 보라고. 눈을 가늘게 뜨는 카민의 행동에 소녀가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 이 지역의 전통요리따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본론부터 이야기하지 않고 음식을 칭찬하는 북대륙식의 예의에는 진력이 난다. 소녀, 유진이 소녀에게 어울리지 않는 큰 동작으로 턱을 괴더니 말했다.

 

  "난 여기서 죽고 싶지 않다. 용의 둥지를 발견해서 보물 속에 파묻혀 죽는 게 꿈이라고."

 

  누가 봐도 미인으로 자랄만한 금발의 소녀다. 이제 십육세, 십오세나 되었을까, 테이블 위에 턱을 괴고 있어도 동글기만 한 앳된 얼굴이다. 갈래머리를 묶은 푸른 리본이 그녀가 고개를 젓자 같이 흔들렸다. 그리 넓지 않은 일층 주점에 그녀의 목소리가 낭랑하게 울려퍼졌다. 또렷한 그 말에 웃음이 파도처럼 실내에 퍼졌다.

 

  어린 여자아이가 보물 타령을 하니 우스운 것이다. 너 또 헛소리 한다, 카민이 그녀를 노려보는데 다른 사람들은 웃음을 그치지 않았다. 심지어 여태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던 로브를 쓴 남자까지 살짝 웃는 소리가 들렸다. 남자답지 않게 한참 째려보던 카민은 흠흠 헛기침을 했다.

 

  묵고 있던 여관에 감금되었다.

 

  돌아온 치안대원은 찌푸린 표정으로 영주의 전언을 전했다. 범인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전부 교수형에 처한다고, 엄청나게 무식한 소리였다. 침묵과 금식을 지켜야 하는 묵도기간이라도 된것마냥 가라앉았던 분위기가 바뀌었다. 장례라도 참여한 것처럼 우울한 얼굴을 하고 있던 여자가 살짝 풀린 얼굴로 말을 꺼냈다.

 

 "며칠 만에 웃어 보는 것 같네."

 

  소녀의 발언에 제일 크게 웃었던 여자다. 그녀가 묶어올린 붉은 머리를 고쳐 묶었다. 불꽃을 자아내기라도 한 듯 선명한 붉은색 머리카락은 중앙대륙에서도 그리 흔한 색은 아니다. 거기에 선명한 붉은 눈이 똑바로 소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유진은 여자를 훑어보았다.

 

  붉은 머리에 붉은 눈, 날카로운 눈매에 흰 피부. 주홍빛 주근깨가 도드라져 있다. 매끈한 얼굴과는 달리 걸친 옷이나 거친 손마디를 보면 노련한 여행자다. 경갑에 가까운 두터운 가죽조끼 가슴 아래에는 세 겹으로 벨트를 맸다. 안에 단검이나 표창, 다트가 설치되어 있을 것이 분명하다. 인간성은 알 수 없으나 실력을 보면 동료로는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 유진의 평가를 모른 채 새삼스럽게 여자를 훑어보며 카민은 감탄했다. 미인은 아닌데 어쩐지 눈이 간다.

 

 "나는 이본느 테레지아. 용병이다."

 

 유명한 이름에 카민이 눈을 둥그렇게 떴다. 옆에 서 있던 비쩍 마른 남자가 입을 벌렸다. 카민과 거의 동시였다.

 

 "불꽃의 암사자?"

 "그런 여관 이름같은 호칭으로 부르지 말라고!"

 

  여검사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호통치는 것보다 더 빠르게 무언가가 날아와서 푹 소리를 내며 벽에 박혔다.

 

  카민은 잽싸게 입을 다물었다. 맞다, 불같은 성격에 붉은 머리, 거기에 붉은 눈. 일행 없이 혼자 돌아다니는 여자 검사. 별명을 무시무시하게 싫어한다. 그러고 보니 전부 맞다.

 

  비루먹은 노새가 힘을 잃고 무너지듯, 헐렁한 옷을 걸친 남자는 부들부들 떨며 굳어 있었다. 이본느는 얼굴과 얼굴이 닿을 정도로 남자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입에서 내뿜는 훈기가 남자의 뺨에 닿았다. 남자가 무어라 입을 벙긋거리는데 여자가 연인처럼 다정하게 속삭였다.

 

 "여자의 요청은 들어줘야지?"

 

  남자는 열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본느는 방금 던졌던 다트를 뽑아냈다. 남자의 귀 바로 곁 여관 벽에 꽂힌 다트는 가볍게 뽑혔으나 벽에 남은 흔적은 지워지지 않았다. 거 여관 주인이 화내게 생겼구만. 방금까지 서 있던 남자는 이본느가 이끄는 대로 의자에 털썩 의자에 앉았다. 자리에 앉혀준다기보다 포댓자루를 던지는 듯한 모양새였다.

 

 그나저나 방금 다트 두 개를 다른 방향으로 저 속도로 날린 거지? 살의는 없었으나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카민은 자신의 뒤에 박혀 있을 다트를 볼까 하다가 그냥 똑바로 앞만 보기로 했다. 그는 아무렇지 않게 이본느를 바라보고 눈을 찡긋했다.

 

  거 우리 같은 일 하는데 서로서로 봐주면서 삽시다. 왼쪽 눈을 살짝 찡긋해 보이는 신호는 중앙 대륙 용병 길드에서 동료라는 것을 드러내는 표시다. 카민이 유일하게 배워둔 신호였다. 그 신호를 받은 이본느는 턱을 살짝 집어넣으며 양쪽 눈을 떴다 감아 보였다.

 

 '나 중앙 대륙 용병 길드원 아니야.'

 

 그 신호를 알아보지 못한 카민은 눈을 깜빡거리며 멍하니 있었고, 유진은 뒷머리를 짚었다. 나중에 재교육이 필요하다. 유진이 탁자 밑으로 카민의 손바닥을 끌어와 암호로 적어주자 카민이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아, 거참. 성격 나쁜 누님이군. 누군 다트 던질 줄 몰라서 안 던지나. 나는 그냥 일반인답게, 상식인답게,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을 뿐이라고.

 

 방금 여검사가 날린 다트로 한순간 화기애애해졌던 분위기는 다시 얼어붙었다. 카민은 한숨을 쉬었다. 자기소개 한번 하기 힘드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대륙식으로 손을 가운데로 모으며 고개를 숙였다. 모두가 주목했다.

 

  이본느는 신호를 보냈던 남자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큰 키에 마른 체격, 사슬갑옷조끼에 팔다리의 관절부에는 가죽보호대를 찼다. 보호대가 적당히 낡은 걸 보면 꽤나 굴러먹은 용병인데 묘하게 동작이 여성스럽다. 길게 기른 하늘색 머리카락에는 남색과 붉은색 실을 섞어 매듭을 지었다. 하늘색은 중앙 대륙에서는 드물지만 서대륙에서는 비교적 흔한 색깔이다. 보통 중앙 대륙의 남자 용병은 머리를 짧게 자르는데? 다른 지방에서 왔기 때문에 저렇게 여자같은 머리를 하고 있구만. 이본느는 저렇게 머리를 땋은 녀석에 대한 소문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었다.

 

 용병의 상처 없는 얼굴이 뛰어난 실력을 의미하는 것처럼, 쓸데없이 긴 머리도 그와 비슷한 거겠지. 검이든 뭐든 실력이 있으니 저런 웃긴 모양을 하고서도 살아남았을 것이다.

 

 아니면 어디서 헌 장비만 얻었거나. 왜 저렇게 하는 짓이 어설프지?

 

 이본느는 카민의 손짓을 눈여겨보았으나 그는 더이상 용병의 수신호를 보내지 않았다. 저 자세에서 둘째 손가락을 꺾으면 비밀 의뢰를 받고 있다는 뜻이 되고 새끼 손가락을 들어올리면 동성 연애를 즐기고 있으며 파트너를 찾고 싶다는 뜻이 된다.

 

 사실 그녀는 저 남자가 지금 이 순간 새끼 손가락을 들어올리지 않을까 궁금해 하고 있었다. 중앙 대륙은 동성연애를 금기시하지만 서대륙에서는 그렇지 않다. 손짓도 그렇고 두 갈래 끈을 묶어 매듭지은 망토도 그렇고 서대륙에서 온 게 분명한데.

 

 이 남자는 죽기 전 일주일 동안 마지막으로 파트너를 구하려는 건 아닌가? 이본느가 훑어 보는 동안 카민은 여검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상상도 하지 못하고 아무렇지 않게 소개를 마쳤다.

 

 "카민입니다. 지금 의뢰를 받고 있습니다. 가능한 빨리 여기서 나가고 싶군요."

 

 #

 

 

 유진이 눈을 크게 떴다. 침묵의 결계는 그 지역 밖으로 나가는 것도, 안으로 들어오는 것도 막는다. 최후의 수단으로 가문에 소식을 전해서 아버지라도 불러들이려고 했는데...! 봉쇄된 것이다. 심지어 치즈문 축제에 참가가 늦어진다고 연락할 수도 없다. 더군다나 이 결계는 설정한 시간보다 더 빠르게 해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일주일은 꼼짝없이 갇혀 있는 것이다.

 

 "영주께서는 지금 소중한 딸을 죽인 범인을 찾고 계십니다. 하지만 이 여관에 계셨던 여러분들 중 범인이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여러분을 다 죽이면 범인도 죽을 겁니다. 그러니, 살고 싶다면 범인을 찾으십시오."

 

 

 #

 짙은 남색 로브를 입고 후드로 얼굴까지 가린 남자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느릿하게 말을 시작했다.

 

 "영광이 함께하며 정의를 수호하는 오폴레의 수호자들이여...."

 

 왕실에서나 시작할 정중하고 거창한 인사말이다. 머리에 쓰고 있는 투구는 전장의 신이 돌보며 발끝까지 걸친 거친 사슬갑옷은 험난한 업무끝에 얻은 고단한 시련? 뭐? 그가 줄줄이 늘어놓는 말은 여기저기 헤매면서 꽤 이런저런 이야길 들어본 이본느가 난생 처음 보는 말이었다. 그가 하는 말이 비단두루마리처럼 줄줄 흘러 끝이 없이 이어질 것 같자 치안대장이 말을 끊었다.

 

 "뭐, 뭐라구요."

 

 카민은 웃음을 애써 참았다. 이것도 동대륙의 예의범절이다. 가끔 카민이 말하는 방식도 이런 식이라고 유진에게 혼나곤 하는데 이 정도는 아니다. 결국 말이 잘린 남자는 결론을 이야기했다.

 

 "나는 수행을 하는 구도자로 이 곳을 나가서 갈 곳이 있습니다...."

 

 그가 살짝 들춘 후드 아래로 얼굴 절반에 있는 문신이 설핏 드러났다. 금빛으로 빛나는 그 문신은 중앙대륙에서는 어린아이라도 아는 유명한 것이었다.

 진실과 거짓을 가르는 자, 정의를 소환하며 거짓을 심판하는 자. 악을 처단하기 위해 자신을 신에게 바친 자. 그의 손톱 한 조각까지 전부 신의 것이며 그에게 자신이라는 것은 없다. 그에 비하면 동대륙 소영주의 딸 따위는 아무 것도 아니다. 이 문신이 정말로 중앙대륙의 문신이라면 그렇다.

 

 동대륙에서는 금빛 문신이 전혀 다른 것을 의미한다. 카민이 물었다.

 

 "그러니까 결국 내보내 달라는 거죠?"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고 신께서 안배하신 길을 인도하기를 요청합니다."

 

 그러니까 뭐?. 카민은 잠시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소녀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그녀가 호위보다 판단이 빨랐다. 소녀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여기 치안대장...정말로 전부 죽일 생각이군."

 "그렇습니다."

 

 범인을 찾지 못하면 방랑 신관마저 죽일 셈이다. 그 말뜻을 이제서야 눈치챈 카민이 뻣뻣하게 굳었다. 유진의 손을 잡은 카민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유진은 신호를 보내듯 호위의 손을 꽉 잡았다가 뗐다. 이놈, 정신 차려라.

 

 "저희와 함께 범인을 찾아주십시오."

 "그렇게 하겠습니다."

 

 무뚝뚝한 신관은 고개를 숙이지도 손을 내밀지도 않았다. 그는 오직 그의 신에게만 경배한다. 그러나 유진의 제안에 긍정했다. 소녀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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