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스는 그를 구해준 낮선 여자에게 자신의 신체 반응을 들키면 안 된다는 것 외에 다른 생각은 떠오르지 않았다.
이런 산속에는 그의 목숨을 구해주느라 고생했을 여인에게 헛된 욕망을 품기 시작한 그의 육체를 속으로 향해 욕설을 내뱉으며 미처 생각하기도 전에 반사적으로 손을 움직여 여자의 가느다란 손목을 휘어 감았다.
그의 딱딱한 굳은살이 박힌 손바닥 아래 느껴지는 가늘고 보드라운 살결이 주는 느낌에 또다시 그의 신체 일부가 단단해지는 것을 느끼며 루카스는 딱딱하게 굳은 음성을 내뱉었다.
“지금 뭐 하는 거지?”
루카스는 그를 내려다보는 맑은 물빛 눈동자를 바라보며 그의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솔직히 루카스는 이런 깊은 산 속에서, 아니 그가 여인을 보면서 아름답다 느낄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해 본 적이 없었다.
아니 평소의 그는 이블린과 가브리엘을 제외한 다른 여인들과는 말을 섞는 일조차 귀찮아할 정도였다.
그의 배경과 외모에 홀린 듯 여인들이 먼저 유혹을 손길을 뻗어 왔지만 단 한 번도 흔들린 적 없는 그의 인내심에 자신도 만족해 왔지만, 오늘로써 그 생각도 끝이었다.
아무리 낙관적으로 생각해도 살아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그의 상태는 심각했었다. 그 자신도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생각하며 의식을 놓았을 정도였다. 그런 그를 이렇게 멀쩡하게 살려준 여인에게 감사의 인사는 못 할망정 헛된 욕망을 품는 그의 육체를 향해 속으로 저주를 퍼부으며 그녀의 얼굴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의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맑은 물빛 눈동자와 눈이 마주치던 그 순간 그는 속절없이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의 몰골이 고스란히 드러날 정도로 호수같이 맑은 물빛 눈동자, 새하얀 눈처럼 티 없이 맑고 깨끗한 하얀 피부, 달콤한 향기에 취할 것 같이 탐스러운 붉은 입술과 우아하게 휘어진 턱선과 가냘픈 목선.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신비한 은빛이 뒤섞인 하늘빛 머리카락이 살포시 내려앉은 작은 어깨.
“……. 네?”
붉은 입술이 사르르 벌어지면서 은쟁반에 떨어지는 밝은 빗물과도 같은 목소리로 한숨과도 같은 물음을 내뱉자 루카스의 턱과 몸에 잔뜩 힘이 들어가며 거친 호흡과 함께 가슴속에 떠오른 질문을 꺼냈다.
“이 손. 뭐하고 있는 중이냐고.”
오물오물.
무슨 말이 하고 싶었는지 입술을 오물거리는 여인을 보면서 루카스는 저도 모르게 그녀의 손목을 잡고 있는 팔에 힘이 들어갔다.
“아!”
그의 힘에 작고 고통스러운 신음과 함께 여인이 팔을 잡아당기자 루카스는 아쉬움을 느끼면서 그녀의 손을 놓아 주었다.
“난 그냥 상처가 잘 아물었나 확인해 보려고……. 그러고 보니 이제야 정신을 차렸네요. 상처를 치료한다고 하긴 했는데 혹시 어디 불편한 데는 없어요?”
“당신이 날 치료해 준건가?”
루카스는 그가 준 아픔도 신경 쓰지 않고 그를 걱정해 주는 여인을 향해 경계 어린 시선으로 바라봤다.
‘이 여자는 정체가 뭐지?’
그녀 혼자 그의 상처를 치유했다고 보기엔 그녀의 나이가 너무도 어려 보였다.
그는 이블린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수많은 치료사를 영지로 불러 들였다.
그가 만나본 치료사들은 모두 40이 넘은 남자들이었고 그들은 수하에 두세 명의 20대 정도의 제자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그들에게 치료학을 가르치고 있었다.
젊은 남자들이 이블린의 몸을 살피는 게 싫어 그 이유를 물어봤던 루카스는 보좌관으로부터 치료사들이 너무 귀해 왕실에서 왕실명부에 등록된 의사와 치료사들은 반드시 두세 명의 제자들을 양성해야 한다고 법으로 정해져 있다는 말을 듣고 마지못해 그들을 방으로 들여보낸 기억이 떠올랐다.
그들은 20대 후반의 나이에도 약초조차 제대로 알아보지 못해 일일이 치료사에게 확인받는 모습을 보며 저런 것들에게 어떻게 이블린의 치료를 맡기나 화를 내기도 했지만, 그 이후에 만난 다른 치료사들 역시 마찬가지라 어느새 그러려니 하게 되었던 것도 기억이 났다.
“네. 삼일 정도 의식이 없었는데 이렇게 일어난 것을 보면 치료가 잘 된 것 같아 다행이네요. 어디 불편한 데는 없는 거죠?”
“없다. 잠깐 지금 사흘이라고 했나? 내가 삼 일 만에 깨어났다고?”
“네, 왜요?”
루카스는 그녀를 잡아다 놓은 뒤 허전함을 느끼고 있던 손으로 그의 몸을 더듬었다. 보기 흉한 흉터가 남겠다고 생각했던 상처들은 어떤 방법을 사용했는지 모르겠지만 깨끗이 치료되어 있었다.
몬스터의 손톱에 너저분하게 찢어졌던 팔뚝도, 독이 묻어 있던 꼬리에 상처가 벌어지고 독이 퍼져 있던 복부 역시 그때의 고통스러운 기억이 아니었다면 상처가 있었는지조차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깨끗하게 낳아 있었다.
죽어가던 그를 삼 일 만에 살려내고 흉터 하나 없이 매끈하게 치료된 그의 몸을 확인한 루카스는 그녀를 바라보며 눈빛을 보냈다.
‘이 여자라면……. 이블린을 낳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당신은 누구지? 치료사 인가? 그렇다면 나와 함께 내 영지로 가지 않겠나?”
눈앞에 있는 여자가 그의 마지막 희망이라 생각한 루카스는 다급한 마음에 다짜고짜 여자에게 다가가 양팔을 잡고 질문을 쏟아냈다.
일레인은 곧장 손을 뻗으면 만질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와 그녀의 양팔을 구속한 뜨거운 그의 손길에 숨이 멎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눈앞에서 마주하는 그는 호수를 통해 바라보던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호수의 영상은 눈빛이 쏟아내는 뜨거운 열기와 갈망, 희망으로 빛나는 눈동자. 빛에 반사되는 매끈한 피부 등을 다 담아내지 못했다.
‘역시 내려오길 잘했어!’
황홀한 그의 모습에 넋을 잃은 일레인은 숨 쉬는 것도 잊은 채 그를 바라보다 숨이 가빠 오자 겨우 마른 입술을 열었다.
“저……. 너무 가까이…….”
“뭐?”
뒤늦게 여자의 말을 알아들은 루카스가 티 없이 하얗던 여자의 얼굴이 붉어진 것을 눈치채고는 허리를 뒤로 젖혀 얼굴을 떨어뜨렸다.
여전히 그의 팔에 잡힌 팔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열기는 그대로였지만 루카스의 얼굴이 조금 멀어지자 오히려 그의 강렬한 눈빛이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저, 치료사라면 사람을 치료하는 사람을 말하는 건가요?”
“그렇다. 당신 이름이 뭐지?”
“일레인.”
“일레인? 좋은 이름이군.”
그녀의 이름을 발음하던 루카스는 혀끝에서 부드럽게 감기는 느낌에 기분 좋은 떨림을 느끼고는 미소 지었다.
“일레인, 당신 날 치료해준 건가?”
일레인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 영지에는 아픈 동생이 있다. 내가 여기 온 것도 동생의 치료를 위해 주술사가 원하는 만년설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시간이 여의치 않아 나타나는 몬스터들과 싸우다 상처를 입고 죽어가던 것을 네가 살려 준 거지. 나와 함께 여지로 가서 내 동생을 치료해 주지 않겠나? 사례는 얼마든지 하겠다.”
이블린의 이야기를 꺼내는 루카스의 눈동자를 바라보는 이블린은 가슴이 먹먹해 옴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