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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백 서른 아홉 번째 밤
작가 : 솔온
작품등록일 : 2017.6.23

너와 만난 백 서른 아홉 번째 밤까지, 나는 이름 없는 너의 이름을 불러주어야 한다.
모든 것을 빼앗기고 잃어버린 내게, 무엇 하나를 되찾아주는 대신 너의 이름을 불러주어야 하는 나.
이름을 얻기 위해 그 어떤 소원이라도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는 너.
우리 둘 중에, 더욱 힘들고 아픈 사람은 누구일까.

아무도 모르는 산 속 마을, 자그마한 보건소에서 벌어지는 동화 같은 이야기.

 
2. 비가 내리는 마을(2)
작성일 : 17-06-23 21:37     조회 : 223     추천 : 0     분량 : 8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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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아, 봉이 왔나.”

 

 마을 어귀 쯤 다다랐을 때까지 비는 계속 되었다. 남자가 짐을 들고 앞서 걷는 것을 본 할머니가 먼저 그에게 말을 걸었다. 남자는 고개를 깊이 숙이며 할머니에게 인사했다. 승효는 인자한 얼굴로 웃는 할머니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분명히 얼굴 생김새는 다른데 풍겨오는 은은한 느낌도, 체격도 할머니와 비슷했다. 남자를 쳐다보다 곧 승효를 발견한 할머니의 눈이 그녀에게 닿았다. 눈이 마주친 승효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확 돌려버렸다. 코가 시큰거렸다.

 

 “뒤에 아가씨는 누구냐?”

 

 남자의 이름이 ‘봉이’였나보다. 승효가 어쩔 줄을 모르고 고개를 홱 돌려버린 사이 남자는 고개를 쓰윽 뒤로 돌려 승효를 쳐다보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자신에게 닿자 겨우 고개를 들던 승효가 몸을 살짝 움찔거렸다.

 

 “여기서 일한다던데, 용역 치고는 ...”

 

 용역? 용역이라니? 승효는 봉이의 말에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용역치고는 영 상태가 좋지 못하다는 의미가 가득 담긴 것 같은 봉이의 눈길이 승효를 향했다.

 

 “가만 있자... 여기 올 사람이.”

 

 무엇인가 생각이 났다는 듯 할머니가 고개를 올려 승효를 쳐다보았다. 승효와 눈이 마주치자 할머니가 주름이 깊게 패인 웃음을 지었다. 또 시큰. 똑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 마음이 울렁거렸다.

 

 “아이고, 그 의사선생님 인가보네.”

 

 할머니가 웃는 얼굴로 손뼉을 치며 말했다. 의사라는 말에 봉이가 승효를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의사? 저 사람이? 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는 것을 보며 입술을 앙 다문 채 웃던 승효는 할머니를 향해 대답했다.

 

 “안녕하세요. 박승효예요.”

 “몸이 그렇게 쫄딱 젖어서 어쩌누. 봉이 네가 어서 안내해드려라.”

 

 분홍빛 하늘이 어느새 빨갛게 변했다가 보랏빛으로 바뀌고 있었다. 승효는 슬쩍 젖은 몸이 으슬해지는 것을 느꼈다. 나뭇잎으로 가렸는데도 생각보다 많이 젖은 몸은 온기가 떨어지고 있었다.

 

 할머니에게 가볍게 목례를 마친 봉이는 짐을 들고 또 다시 어디론가 걷기 시작했다. 승효 역시 할머니에게 인사를 전한 뒤 아늑하게 생긴 자그마한 마을을 이리 저리 둘러보며 그의 뒤를 따랐다. 아담하고 아늑하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승효가 처음 느껴보는 딱 이상적인 농촌의 그 자체였다.

 

 빗물에 젖은 흙에서 촉촉한 물내음이 배어나오고 넓다란 밭과 과수원이 있고 마을을 뱅그르르 둘러싼 산에서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승효는 숨을 깊게 쉬며 마을의 내음을 온 몸 가득 채우고 있었다.

 

 “여기.”

 

 마을 입구에서 크게 멀지 않은 보건소는 금방이었다. 주머니에서 카드 키를 꺼내 보건소의 문을 열고 불을 켠 봉이가 짐을 하나, 둘 내려놓았다. 이런 마을에도 스마트한 방범 장치가! 승효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봉이는 똑같이 생긴 카드 키 하나를 승효에게 내밀었다.

 

 "오갈 때 꼭 잠그는 게 좋습니다. 장난치는 놈들이 있을 테니까."

 "카드 키는 하나 뿐인가요?"

 "예비용이 하나 있는데, 안 씁니다. 이제 주인이 생겼으니까."

 

 봉이는 턱턱 던져놓는 것 같으면서도 짐을 한 곳에 가지런히 정리해주었다. 꽤나 비어있었다고 들었는데 깨끗하고 깔끔한, 아동병동 같이 예쁘게 꾸며진 보건소의 내부를 승효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2층에 방이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봉이는 승효의 고맙다는 말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은 채 고개만 한 번 까딱거리고서 보건소 바깥으로 나갔다. 신기한 사람이다. 말도 짧고 퉁명스러운데 남을 도와주는 것을 보면 착한 것 같기도 하고.

 

 승효가 그의 뒷모습을 쳐다보다 제 발 앞에 놓인 짐들로 시선을 옮겼다. 아마 그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아직도 낑낑 거리면서 짐을 들고 헤매고 있을 것이었다. 아니, 마을은 찾았을까. 승효에게 그는 은인과도 같았다. 조금 전 길을 헤매던 것을 생각하면 아직도 속이 울렁거릴 것 같았다.

 

 “후.”

 

 길게 숨을 내쉰 승효가 제대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상쾌한 냄새까지 나는 이곳은 도시에서 멀다는 것만 빼면 매우 좋은 환경이었다. 오히려 승효에게는 조용해서 더 나을 지도 몰랐다. 조금 덜 치열하고, 조금 더 편안한 곳에서 쉬면서 할머니에 대한 기억을 천천히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조금 전에 마주친 할머니를 보고도 괜히 눈물이 툭, 하고 떨어질 것 같았다. 이대로는 길에 있는 모든 할머니를 마주친다면 울게 될 지도 몰랐다. 여기는 시골이라 할머니들이 많을 텐데 벌써부터 걱정이었다.

 

 “말로는 쉽지.”

 

 시간이 해결해줄 거라고, 시간이 약이라고. 결국은 시간이 지나고, 지나야 나아지는 거라고.

 

 그런 위로 섞인 말들을 수많은 사람들이 건넸고, 수없이 들어왔지만 승효의 마음은 새끼손톱의 반만큼도 위안이 되지 않았다.

 아버지와 어머니 없이 할머니와 단 둘이서 살아온 승효에게는 할머니의 부재가 너무나도 낯설고 아팠다.

 그걸 겪은 지 며칠이나 됐다고, 뭐 얼마나 지났다고. 일상생활에 돌아오지 못하는 승효를 더러 어른스럽지 못하다는 사람도 있었다.

 

 “…….”

 

 아니야. 일단 쉬자. 그만 생각하자. 잠시 멈추어 서서 생각을 이어가던 승효가 무거운 짐들을 천천히 계단 위로 올리기 시작했다.

 

 2층에 있다는 방을 향해 올라가자 도어락으로 잠글 수 있는 자그마한 문이 나왔다. 깔끔한 나무로 된 흰색 문이라 언뜻 보면 학생들이 좋아할 디자인인데 도어락이 달려 있는 것은 묘하게 이질감이 들었다. 승효가 두 손에 들고 올라온 짐을 내려놓고 도어락 틈에 끼어있는 종이를 빼어 들었다.

 

 『카드 키』

 

 휘갈겨지듯 대충 쓴 것 같지만 나름 예쁜 글씨로 적혀 있는 쪽지를 확인한 승효가 도어락에 아까 받았던 카드 키를 가져다 대었다. 삑, 삑, 하는 소리와 함께 앞으로 함께 살 사람을 반기는 듯 명랑한 소리가 울렸다. 승효가 열린 문의 문고리를 잡고 안쪽으로 쭉 밀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누가 살던 방처럼 깨끗하고 깔끔하게 정돈된 방은 동화 속에 나올 법한 파스텔 톤으로 꾸며진 방이었다. 아기자기하고 깔끔한 소품들이 놓여있고 분홍빛 침구에 창으로 들어오는 달빛이 빛나는 방. 뭔가 자신과는 어울리지 않는 귀여운 느낌이었지만 그 나름대로 나쁘지 않았다. 벌써 해가 다 지고 달이 떴구나. 승효가 천천히 방 안으로 걸음을 옮겨 짐 가방을 하나씩 옮겨두었다.

 

 두어 번을 더 다녀가자 짐을 모두 위로 올릴 수 있었다. 짐을 모두 방으로 가져다 놓은 뒤 다시 내려와 카드 키로 보건소의 문을 잠근 승효가 방 한 구석에 던져진 짐들을 쳐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저것들을 지금 푼다면 아마 밤을 새야 할 것이다.

 

 “내일 하자, 내일.”

 

 오늘은 너무 정신이 없으니까, 내일 하도록 하자. 갑자기 몰려오는 무거운 피로감이 승효를 짓눌렀다. 짐을 내일 풀기로 해놓고도 승효가 제일 커다란 짐가방 하나를 뒤적거렸다. 가장 먼저 꺼내든 것은 할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을 작은 액자에 담아둔 것이었다.

 

 “이것 봐요. 새로 살게 될 집이야.”

 

 승효가 액자를 집어 들고서 그 위를 가볍게 손가락으로 쓸었다. 두 사람이 찍혀 있는 사진 안에서 할머니는 활짝 웃고 있는데 자신은 민망한 듯 어색하게 웃고 있다. 활짝 웃어볼걸. 괜히 부끄럽다며 투정을 부렸던 그 때가 떠올라 승효의 마음이 시큰거렸다.

 

 “이럴 줄 알았음. 이렇게 빨리 갈 줄 알았음 내가 더 많이 예쁘게 굴었어야 했는데 할머니 속이나 썩였어.”

 

 액자 속에서 웃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은 해사했다. 얼굴에는 그 굴곡지고 모진 인생을 모두 담은 것처럼 깊은 주름이 패어있었지만 그 얼굴만큼은 소녀만큼이나 싱그럽고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그리운 얼굴을 쳐다보던 승효가 살짝 웃고서 침대 가장 가까이 있는 문갑 위에 액자를 내려놨다. 문갑 위에 있는 스탠드의 버튼을 누르자 은은한 빛이 방을 밝혔다. 승효는 그대로 침대에 누웠다.

 

 “할머니는 내가 안 씻고 자는 거 제일 싫어했지만, 오늘은 그냥 잘래.”

 

 승효는 폭신한 침대의 이불 위에서 적당한 달빛을 바라보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갑자기 노곤해지고 몸이 푹 늘어지는게 얼마나 피곤한지 이제는 눈도 뜨기 힘들었다. 내일은 휴일이니까 보건소도 노는 날이다. 조금은 풀어져 있어도 괜찮을 거다. 마음을 먹음과 동시에 승효가 천천히 잠에 빠져들었다.

 

 

 .

 .

 .

 

 

 딱, 딱!

 뭐야, 아침부터. 가벼운 소리가 승효의 귓가를 짜증이 나도록 두들기고 있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포근한 잠자리에 몸을 맡기고 늦잠을 좀 자보려고 했건만 대체 무슨 소리인지 자꾸 귀에 거슬리는게 제대로 잠을 자기가 힘들었다. 이제 좀 잦아들었나 싶으면 계속해서 울리는 소리가 이제는 자신의 머리를 때리는 것 같았다.

 

 딱! 계속해서 울리는 불규칙적인 소리는 아무래도 창문에서 나는 것 같았다. 해가 밝은 건 알지만 조금이라도 더 잠들어 있고 싶은 몸이 얼굴을 확 구겨버렸다.

 

 딱! 딱!

 

 “…하.”

 

 승효가 침대에서 거칠게 몸을 일으켰다. 저 소리를 멈추지 못하면 느즈막한 잠이란 없을 것 같았다.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승효가 짜증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어젯밤 예쁘게 달빛이 들어오던 창문 너머로 무엇인가 있다.

 

 “어, 일어났다!”

 

 꺄르르 거리며 즐거운 얼굴을 한 아이들이 창문 너머로 자그마한 돌멩이들을 던져 맞추고 있었다. 승효가 부시시한 모습으로 어린 아이들을 쳐다보았다. 네다섯 살? 일곱 살? 아직 초등학교에 입학하지 않았을 것 같은 아이들은 승효의 창문에 돌멩이를 던지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꺄아아-"

 

 승효가 침대에서 내려와 성큼 성큼 창문 쪽으로 걸어오자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할 때 술래가 다가오는 것처럼 아이들이 즐거운 비명을 내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져 사라졌다. 승효는 미간을 찌푸리며 밝은 햇빛이 들어오는 창가로 걸어갔다.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는 승효에게 이런 장난은 더욱 짜증이 나는 일이었다.

 

 "휴."

 

 다행히 창문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깨지거나 흠집이 난 것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자신의 집이 아니라 근무 기간 동안만 생활할 집이었기 때문에 조심스러웠던 마음이 사르르 풀리며 한숨이 푹 하고 스며나왔다.

 

 "……?"

 

 승효의 눈이 창문에 닿았다. 아이들이 분명 다녀간 것처럼 창문 너머로 손자국이 찍혀 있는데, 그 너머로 보이는 곳은 바닥에서 높게 떨어진 바닥이었다. 맞다, 여기 2층이었지. 승효는 내가 헛것을 보았나, 하며 머릿속으로 생각하면서도 분명히 찍혀있는 창문의 손자국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승효가 소름이 돋으려는 몸을 손으로 싹싹 쓸었다.

 

 꿈일 거야, 이건 꿈일 거야. 몇 번이고 고개를 도리질 쳐봐도 창문에 남은 손자국은 사라지지 않았다. 무엇이든 과학적이고 수학적인 판단을 좋아했던 승효에게 미신적인 요소나 귀신의 존재는 늘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생각할 필요도, 가치도 없는 일이었지만 직접 눈 앞에서 현실을 마주하고 나니 그 충격은 가히 지난 남자친구가 자신을 차버렸던 경험과도 같은 충격이었다.

 

 세상에 귀신이 있었다니. 그것도 이렇게 한낮에 다니는 아기 귀신 무리가! 다시 한 번 소름이 오소소 돋아나는 몸을 느끼며 승효의 미간이 찌부러질 대로 잔뜩 찌부러져 버렸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평온하고 따듯하기 그지 없는 마을은 어제와 다를 바가 없었다. 승효가 얼굴을 바짝 구기고서 바깥을 향해 눈을 굴리다 곧 보건소 쪽으로 커다란 바구니를 들고 걸어오는 봉이를 발견했다. 봉이는 시니컬한 표정으로 다리를 휘적거리며 앞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보, 봉이씨!"

 

 승효가 창문을 거칠게 열어 젖히고서 봉이를 찾았다. 승효의 다급한 목소리에 걸음을 멈춘 것인지, 애초에 보건소에 볼 일이 있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봉이가 승효와 눈을 마주하고서는 보건소 쪽으로 걸어왔다. 승효가 급하게 2층 도어락 쪽으로 달려가 문을 열었다.

 

 탕, 탕, 탕, 탕! 나무 계단 위로 거친 소리를 내며 뛰어내려가던 승효의 앞에 봉이가 서 있었다. 봉이는 물끄러미 승효를 쳐다보았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혹시 이 마을에, 요만한 크기의 아기 귀신들이 있나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무슨 되도 않는 소리를 하느냐는 듯 봉이가 단단하기 그지 없는 대답을 뱉었다. 그의 대답에도 승효의 동당거리는 가슴은 멈출 줄을 모르고 있었다.

 

 "요만한 애기들! 혹시 귀신 봤다던 사람들 없어요? 나 방금 봤단 말이에요."

 

 승효의 비명과도 같은 소리에 봉이가 눈을 살짝 찌푸렸다. 곧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겁에 질린 승효의 모습을 보던 봉이는 조금 전 보건소로 걸어오는 동안 자신이 보았던 것을 떠올렸다. 봉이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살짝 끄덕이자 승효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하기 시작했다. 어쩐지 조금 전에 보았던 아기들의 모습이 더욱 무섭게 왜곡되어 기억에 박혀버렸다.

 

 "정말 귀신인 거에요...?"

 "아뇨, 아닙니다. 여기 귀신은 없어요."

 "정말 없어요...?"

 "맑은 마을이라 잡귀가 들어올 일이 없으니 안심해도 됩니다."

 

 어쩐지 별로 설득이 되지 않는 소리였지만 차분하게 가라앉은 그의 목소리에 승효의 마음이 조금씩 진정 되고 있었다.

 

 "귀신을 어디서 봤습니까?"

 "창문 바깥에서 놀고 있었어요. 제가 다가가니까 사라졌고요."

 

 ...아아, 역시. 봉이는 고개를 두 어번 끄덕였다.

 

 "혹시 방에 좀 들어가봐도 되겠습니까?"

 

 

 

 .

 .

 .

 

 

 짐을 풀어놓은 것이 없었기에 그가 들어온다고 해서 문제가 될 일은 없었다. 오히려 그가 한 번 다녀가주는 게 안심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승효는 흔쾌히 그와 방으로 들어왔다. 봉이는 창문으로 다가가 이곳 저곳을 살펴보았다. 승효가 놀랄 것도 당연한 것이, 창문에 찍혀 있는 손자국은 한 둘이 아니었다.

 

 봉이는 흐음, 하고 숨을 내쉬며 창문 앞에 서 있었다. 그가 창문에 서자 넓은 그의 등으로 햇살이 모두 가려 방이 살짝 어두워졌다. 새삼 키가 크고 등이 넓은 그의 몸이 승효의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이제 괜찮을 거에요."

 

 잠깐의 찰나 사이에 봉이가 다시 승효 쪽으로 돌아섰다. 승효가 손자국이 무섭게 찍혀 있던 창문을 향해 다가갔다. 아무 것도 없었다는 듯, 오히려 처음 왔을 때보다 더 반짝반짝해진 창문을 쳐다보며 승효가 말했다.

 

 "정말 다시는 안 나타날까요?"

 "네, 정말로."

 "혹시… 봉이씨."

 

 봉이가 승효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승효가 겁을 잔뜩 먹었던 얼굴을 풀고 반짝거리는 눈으로 봉이를 쳐다보았다.

 

 "무속인이신가요...?"

 

 맙소사. 뭐라 더 할 말이 없다. 봉이가 아무런 대꾸도 않고 그대로 자리에서 돌아서서 방문을 열고 나갔다. 저벅저벅 사라지는 봉이의 모습을 보며 승효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그렇게 실수를 한 건가. 너무 확고한 눈빛으로 다시는 그럴 일이 없을 거라 하길래 궁금해서 물어본 건데.

 

 "아, 무속인이 아니고 영능력자냐고 물어봤어야 했나?"

 

 그래. 뜬금 없이 무속인이냐니 조금 그랬을 수도 있겠다. 그나저나 마실 것 하나도 챙겨주지 못했다. 승효가 급하게 계단을 뛰어내려갔다.

 

 "그렇게 내려오다가 다칩니다."

 

 아직 가지 않았던 듯 1층에 서 있던 봉이가 승효를 향해 말했다.

 

 "괜찮아요. 아, 봉이씨. 혹시 마실 거라도 좀…"

 "아닙니다. 이거 주러 온 겁니다."

 

 봉이가 품에 싸고 있던 소쿠리를 내놓았다. 승효가 자연스럽게 소쿠리를 받아들었다. 소쿠리 안에는 밭에서 갓 가져온 것 같은 많은 채소와 과일들이 담겨 있었다.

 

 "이건..."

 "이 마을 근처에 마트가 없습니다. 두 시간 정도는 차를 타고 나가야 마트를 갈 수 있는데 당장 먹을 게 없을 것 같아서."

 

 꽤나 묵직한 소쿠리에 승효의 몸이 약간 비틀거렸다. 승효는 옆에 있는 탁자에 소쿠리를 내려놓았다.

 

 "아, 감사합니다."

 "아래에 보면 봉지에 고기도 담겨 있습니다. 얼른 냉장고에 넣는 게 좋을 겁니다."

 

 아, 고기. 안 그래도 이 마을에 있으려면 채소만 먹어야 하는 걸까, 하고 잠시 생각하던 차에 부시럭거리는 소쿠리 아래를 확인한 승효가 고개를 끄덕였다.

 

 "직접 사다주신거에요? 감사합니다."

 "채소는 밭에서 뽑은 겁니다. 고기는, 어제 잡은 게 있어서."

 "네...?"

 

 고기까지 자급자족한다고...? 어제 잡았다고...? 승효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봉이를 쳐다보자 봉이는 아무렇지 않은 듯 대답했다.

 

 "마트에서 파는 고기도 다 어디선가 죽어서 온 겁니다. 그런 눈빛은 불쾌하네요."

 "아아, 죄송해요. 그냥 신기해서요. 어제 들어오면서 동물이 있는 건 못 본 것 같아서."

 "더 깊숙한 곳에 있습니다."

 

 아아, 그렇구나. 승효가 자그마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봉이가 승효를 향해 말했다.

 

 "저녁에 선생님을 환영하는 잔치를 할까 한다고 하십니다."

 "마을 분들이요?"

 "네."

 

 환영하는 잔치라니! 승효가 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봉이를 쳐다보았다. 봉이는 자신을 올려다보는 승효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하나 하나 어떤 것을 이야기 할 때마다 저렇게 눈을 땡그랗게 뜨고 놀라는 것을 보니 신기했다.

 

 "내키지 않으면 거절해도 됩니다."

 "아, 아니에요. 감사합니다. 저녁에 어디로 가면 돼요?"

 "데리러 오겠습니다. 해가 질… 아니. 5시 반쯤."

 "네, 알겠어요."

 

 할 말을 모두 전했다는 듯 봉이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인사를 전한 후 바깥으로 나가려 걸음을 옮겼다.

 

 "봉이씨!"

 

 뒤에서 부르는 승효의 목소리에 봉이가 걸음을 멈추고 승효를 쳐다보았다.

 

 "제 이름은 박승효예요!"

 

 계속해서 주어 없이 말하는 봉이를 보며 혹시 자신의 이름을 잘 모르는 걸까, 하며 내내 궁금했던 승효가 그를 향해 말했다. 봉이는 가만히 승효를 쳐다보더니 말 없이 살짝 웃었다.

 

 "압니다."

 

 자그마한 대답 뒤로 그가 멀어지기 시작했다. 압니다, 하는 그 자그마한 대답 뒤로 바람이 불었다. 여름의 아침과도 같은, 그런 시원하고 기분 좋은 바람이 불었던 것 같다. 승효가 그가 멀어지는 것을 지켜보다 곧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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