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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환상의 찻집
작가 : 그리운
작품등록일 : 2017.6.21

비가 엄청 오는 날이었어. 아무 가게나 들어가야 했는데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연 데가 없더라고. 딱 한 군데, 무너질 듯한 낡은 찻집 하나가 있었어. 거기서 만났어, 그사람.

 
빛 말고 빚
작성일 : 17-06-23 20:05     조회 : 223     추천 : 2     분량 : 4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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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청회색 하늘은 얄미운 비를 뿌렸다. 우산 따위 없었다. 후드를 뒤집어썼다. 눈 코 입만 내놓은 그 좁은 면적에 비는 달려들었다. 옷 색깔이 비슷해 내가 하늘인 줄 아는가 보다. 신발 바닥이 새로 깐 아스팔트에 디딜 때마다 고무 소릴 냈다. 주머니에 들어가 있는 손은 넘어질 때를 대비해 긴장했다. 뒷주머니에 손을 넣어 담뱃갑을 꺼냈다. 뒷주머니에 이었던 터라 각의 일부분이 찌그러졌다. 담배를 하나 물었다. 바람이 많이 불지 않는대도 라이터 불은 키기 무섭게 꺼져버렸다.

  카페에 들어갔다. 딱히 커피를 마시고 싶은 건 아니었기에 스무디를 시켰다. 자리에 앉기 무섭게 받아온 진동벨이 손에서 요동쳤다. 알바생은 내가 오자 영업용 미소를 지었다. 예쁘다. 말이라도 한 번 걸어볼까. 자리로 가려니 내가 앉았던 자리에 누군가 앉아있었다. 비켜 달라 하기에도 이상했다. 내 자리라는 표시를 안한 내 탓이겠지. 흡연부스 옆에 있는 자리에 앉았다. 커피를 먹는지 담배를 먹는지 알 수 없었지만 카페에 왔다는 기분이 나기엔 충분했다. 희미하게 흘러나오는 노래는 의자에 기대 눈을 감으니 잘 들렸다. 팝송이라 알아먹지도 무슨 노래인지도 몰랐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이젠 내가 시계를 보지 않는 이상 거울 노릇만 할 줄 알았던 휴대폰에 전화가 걸려왔어. 생전 연락이라곤 없었고 앞으로도 올 거란 기대도 하지 않았던 동생이었어. 생각도 못했던 상황이라 크지 않은 카페에 듣기 싫은 패턴 음악이 울려 퍼졌지. 옆에 있던 사람들이 나를 흘끔거렸어.

  “여보세요.”

  “야, 이이경. 너 미쳤어?”

  뜬금없는 전화에 뜬금없는 말이었어. 오랜만에 동생의 목소리를 감상하기 전에 당황부터 했어.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너 무슨 배짱으로 이랬냐?”

  “알아듣게 설명 좀 해. 내가 뭘 어쨌는데?”

  “와, 뻔뻔하기까지 하네.”

  나는 믿지 않았어. 아니, 믿을 수 없었지. 목소리가 점점 눌러져서 말을 이을 수가 없었어. 난 곧바로 은행에 달려갔어. 카페에서 멀지도 않았는데 숨이 차서 한 번 쉬었다 가야 했어. 꿈이었다면 힘들지 않았겠지. 여기서 꿈이 아니란 걸 알았어. 은행에 도착하니 사람이 별로 없었어. 원래 여기는 사람이 많아서 거짓말 좀 보태 한 시간은 기다려야 했었는데. 파란색 정장을 말끔하게 입은 여자가 나에게 영수증을 내밀었어. 그거 알아? 사람이 너무 어이가 없고 화가 나면 웃음이 나온대. 은행 안은 내 웃음소리로 가득했어. 아직 삭제하지 않은 단축번호 1번은 너의 번호였어. 통화음은 딱 한 번 갔어.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여자 기계음만이 나에게 말을 걸어줬어. 그녀의 SNS를 뒤졌어. 며칠 전까지만 해도 여행 글을 올리던 계정이 사라진 거 있지. 다행인지 불행인지 전화 기록부에 너와 가장 친한 친구의 전화번호가 있었어. 조용하게 귓가에 퍼지는 새소리가 이렇게 간절한 건 처음이었어.

  “혜경이? 너 몰랐어? 아, 헤어졌다했지. 혜경이 유학 가서 공부한다고 휴대폰도 바꾸고 다 연락 끊었어.”

 

  ‘사회 나가면 보증은 절대 서지 마라. 그건 가족이 서 달라해도 안되는 거야.’

  ‘알았어. 알았다구요. 귀에 딱지 앉겠어요.’

  사람은 참 멍청했다. 아니, 내가 멍청했다. 여자에 눈이 멀어 조직을 배신하고, 목숨 아까운 줄 모른 채 싸우는 인생 망치는 로맨틱하고 해바라기 같은 영화 속 남자 주인공이 여기도 있었다.

  “5천만 원이야, 5천만 원. 무슨 수로 갚을 거야?”

  난 만져보지도 못한 돈이야. 구경도 못 해본 돈이야. 난 모르는 일이야. 동생의 말소리가 점점 작아진다. 담배를 피우려 각을 꺼냈다. 손이 떨린다. 라이터를 담배 끝자락에 갖다 댔다. 불안했던 손에서 미끄러졌다. 앗 뜨거, 검지에 스쳐 지나간 불꽃에 정신이 들었다. 데이진 않았지만 뜨거운 열기가 꽤 오랫동안 남아있었다. 이게 데였다고 하는 거였나.

  하루하루가 상처투성이였다. 시간이 지났음에도 아직 여물지 않은 상처 때문에 면도 크림은 묻힐 수도 없었다. 부서진 렌즈는 너무 비싸서 살 엄두도 못 냈다. 학교는 나가지 않았다. 강의를 집중해서 듣고 교수님 눈 안에 들어간 학생은 아니었지만 지각 한 번 없이 성실히 다녔었다. 하루가 30시간이면 얼마나 좋을까, 아르바이트의 끝을 알리듯 쓰레기를 버리러 가게 뒤쪽으로 나갔다. 벽에 기대 고개를 들었다. 건물과 건물 사이를 두고 검게 물들어버린 하늘은 날 위로해주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연달아 계속된 알바에 지쳤는지도 모르겠어. 잠결에 껐는지 알람이 무용지물이 됐어. 잠을 깼을 때는 이미 어두워진 뒤였어. 전화 기록엔 부재중 전화만 열 개가 넘고 말았어. 허겁지겁 준비하고 달려간 호프집은 이미 꽉 차버린 자석에 사장님과 알바 동생만 죽어라 뛰어다니고 있었어. 혼나지 않았어. 혼날 시간조차 없었거든. 새벽 두시, 겨우 늦은 저녁을 먹을 수 있었어. 사장님이 수고했다고 치킨요리를 만들어 주셨어. 속 부대껴 죽겠는데 무슨 치킨이야, 불평 부렸다가 아까 늦은 것에 대해 혼날까 봐 웃었어. 잘 먹는다고 더 만들어 주려던 사장님에게 원래 입이 짧다고 거절했지. 호프집은 오전 6시가 돼서야 마감을 준비했어. 사실상 3시부터는 마시기로 작정해 12시부터 온 남자 무리들 말고는 없었어. 4명 다 술에 찌들어 자는 바람에 깨워서 택시를 태우랴 마감시간은 30분 늦춰졌어. 한 대 쥐어박으려다가 잠이 깨버리면 고소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쥐고 있던 주먹을 풀었어.

  오늘 하루는 내 스스로 재수가 좋다고 생각한 날이었어. 옷을 갈아입는데 쓰레기만 버리러 나가는 뒷문을 누군가 거세게 두드리는 거야. 이미 해는 떴고 알바동생도 있고 사장님도 있어서 무섭진 않았었어. 사장님이 문을 열어줬는데 왜 드라마에서만 나오는 덩치가 커다란 남자 세 명이 서있더래. 이이 경이라는 사람이 있냐고. 침을 삼켰어. 내가 또 뭘 잘못했지, 로커에 머리를 박고 그 짧은 시간동안 온갖 머리를 굴려댔지. 사장님이 날 부르기도 전에 내가 여기 있다고 모습을 드러냈어.

  “5천만 원, 앞으로 한 달이야. 못 갚으면 우리도 방법이 없어.”

  나참, 드라마에 나올 것 같은 깡패들에 영화에서만 본 신체포기각서라니. 차라리 날 죽여.

  남자들이 가고 사장님과 알바동생은 돈을 빌렸냐고 왜 그랬냐고 날 꾸짖었어. 사실대로 얘기하기엔 쪽팔리고 바보 같아 보일까 어쩔 수 없었다고 대충 얼버무렸어. 떠들고 다니기도 웃기잖아? 오늘따라 로커 문을 닫기 싫었어. 닫으면 안 될 것 같았어. 괜히 로커 문에 붙은 거울을 한참 들여다봤어. 안녕히 계세요, 끝까지 사장님은 걱정이 가득했어. 괜히 딴 사람에게까지 걱정시키는 기분이 들어서 그러지 말라고 웃어줬어. 그제야 잘 가라며 인사해주더군.

  지하철을 기다리는 시간은 길었어. 오는 거에 맞춰 뛰어내리면 이 지긋지긋한 인생도 끝나지 않을까, 부모님이야 땅을 치며 왜 그랬냐고 평생 나를 원망하겠지만 그것 또한 지금보다 달콤한 인생이지 않을까.

  신호를 기다리는데 시선을 아래로 깔았다. 신고 있는 운동화와 어울리지 못한 양말이 신경 쓰였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앞으로 걸어 나간다. 파란불 인가 봐. 고개를 들어 깜빡이는 불을 넋을 놓고 쳐다봤다. 삐, 삐빅, 삐, 몇 초 남지 않았다는 알림음이 울린다. 지금 건너가기 시작하면 중간쯤엔 쳐주지 않을까. 사람들이 모여들어서 주위를 둘러싸 시끄럽게 하는 건 싫지만 그거야 내가 갈 길을 배웅해주는 착한 사람들이라 치면 되니까. 설마 두꺼운 옷을 입었다고 죽지 않는 건 아니겠지.

  “죄송해요!”

  한걸음 내딛기 무섭게 누군가 내 어깨에 크게 부딪쳤다. 넋을 놓고 있다가 뒤로 나자빠졌다. 엉덩이가 아려왔다. 내게 내밀어진 손은 흥건히 젖었다.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보니 이미 땀범벅이 돼있었다.

  “앞을 보지 못했어요. 지금 급해가지고..”

  “어서 가보세요. 괜찮습니다.”

  “죄송합니다!”

  이젠 별 같지도 않은 사람이 방해한다. 혼자 일어나 손과 엉덩이를 털었다. 이 횡단보도는 이제 사용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었어. 감히 고개를 들었다는 거에 화가 났는지 햇빛이 눈을 파고들었어. 왜 네가 화를 내냐? 이젠 하늘에게 짜증을 부렸어. 쟤가 뭘 잘못했다고. 나, 너의 관한 걸 분명히 다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너의 잔해가 남았었어. 난 그걸 빚이라고 칭했어. 참 이상하지? 이제 내게 남은 건 빚밖에 없어. 빛 말고 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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