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기있는 드라마에서 남자주인공이 자주 하는 대사가 있었다.

　함께 보고있던 직원들은 좋다며 몸을 배배 꼬았지만 진탁을 그 말이 얼마나 낯간지러운지 다른의미로 온몸을 배배꼬았었다.

　"퍽 난감하군."

　하지만 지금 이처럼 절묘할 수가 있을까.

　정말 난감했다.

　추운겨울이라 히터를 빵빵하게 틀어놓은 덕에 더워진 혜선이 잘 덮혀져 있는 코트를 발로 뻥뻥차기 시작했고 덕분에 올라갔던 치마가 더 올라가 그녀의 두 다리를 시원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아슬아슬하게 보일까 말까 한 치마속에 진탁은 두 눈을 찔끔 감아버렸다.

　보지 말아야 하건만, 자기도 모르게 백미러로 향하는 두 눈에 진탁은 작게 한숨을 내 뱉었다.

　"선팅은 잘 되어 있겠지?"

　빨간색이 초록색이 될때까지 신호를 기다리자 주위에 차가 하나 둘씩 서기 시작했고 진탁은 괜히 주위를 살폈다.

　혹여나 누가 볼까 싶어서 겁이 났다. 그리곤 탄복했다.

　역시 자신이 신의 한수를 놓았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 여자도 술을 먹을 권리가 있지. 술먹다보면 꽐라가 될 수 도 있는거지. 물론 모두가 나쁜건 아니지만 저렇게 무방비하게 누워있다간 범죄의 상대가 되기 딱 좋은 상태였다.

　상상만 해도 아찔했다.

　"그래. 여자는 지켜줘야 하는 존재지. 아암. 잘했어. 아주 잘한거야."

　제 손으로 제 머리를 토닥이며 진탁은 자신을 칭찬했다.

　"으음."

　별안간 혜선이 앓는 소리를 내더니만 몸을 뒤쳑였다.

　"아, 더워."

　그리고 이젠 덥다며 손을 올려 블라우스 단추를 하나하나 풀고 있었다.

　"아이쿠야."

　깜짝 놀란 진탁은 급하게 핸들을 꺽곤 갓길에 차를 세웠다.

　갑작스런 끼어듬에 놀란 차들이 정신없이 클락션을 눌러대 도로 위를 시끄럽게 만들었지만 진탁에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여자가 조신하지 못하게 말이야."

　"아야."

　그리곤 몸을 돌려 단추를 풀고 있는 혜선의 손등을 찰싹 내려쳤다.

　"아가씨. 어디서 그러면 큰일납니다. 네?"

　"아퍼어.."

　"아프라고 떄린겁니다. 꼭 나쁜짓 하는것 같잖아. 짜증나게."

　술취한 사람 상대로 훈계아닌 훈계를 하며 작게 투덜거린 진탁은 조수석에 곱게 접혀져있는 담요 펴 혜선위를 덮었다.

　후우. 내뱉는 혜선의 한숨에 술냄새가 가득 올라왔다.

　"얼마나 마신거야. 어유 술냄새."

　코 끝을 가득 맴도는 술냄새에 얼굴 앞을 손으로 휘휘져어본 진탁은 창문을 살짝 열곤 다시 운전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차가운 바람이 차 안 가득 맴돌았다.

　시간이 시간인지라 몇 보이지 않는 차들과 뻥 뚤린 길덕분에 제법 빠른 속도로 운전을 하자 열린 창문틈 사이로 시원한 소리를 내며 바람이 들어오고 있었다.

　기분이 좋은 듯 진탁의 입에서 흥얼거리는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날 운전하는 것을 좋아했다.

　차 안 가득 빵빵하게 히터를 틀어놓고 창문을 살짝 열어 머리위는 시원하게.

　기분 안좋고 스트레스 풀고 싶을때 이렇게 드라이브를 하면 차가운 기운이 머릿속까지 깨끗하게 날려버리는 느낌이 들었다.

　"이대로 딱 조용한대에서 낚시하고 커피마시면 최곤데."

　힐끔 시계를 쳐다보니 11시50분이었다.

　"아, 일이 많은데.."

　입으로는 일이 많다며 말하고 마음은 안된다며 자신을 타이르고 있었지만 진탁의 머릿속은 이미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시간적 여유가 조금 모자르겠지만 내일은 1년에 몇번 안되는 정기휴일이니 가능할 수도 있었다.

　"그 다음이 어디였드라.."

　기분이 좋아졌다.

　빨리 끝내고 낚시를 갈 생각에 진탁의 엉덩이가 들썩이는 것 같았다. 거기에 라디오에서 나오는 흥겨운 노래까지. 완벽했다.

　곰곰히 거리와 시간을 가늠하며 그의 계획을 다 정리했을 때쯔음,

　"아저씨."

　"으악!"

　갑작스래 어깨를 붙잡는 손길에 놀란 진탁은 비명을 지르며 브레이크를 밟았고 지면과 타이어가 마찰을 하며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멈추었다.

　"하.. 깜짝이야."

　본능적으로 주위를 살핀 진탁은 아무도 없는걸 확인했고 안도의 한숨을 내 쉬며 가슴을 쓸어 내렸다. 머리가 쭈삣 서는 기분이었다.

　시간이 늦고 인적이 드물고 차가 없는 곳이라 다행이었지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가 있었다.

　"으으.."

　뒷자리에서 들려오는 신음소리에 그제서야 혜선이 생각이 난 진탁이 뒤를 바라보자 그녀는 배를 부여잡고 몸을 숙이고 있었다.

　"괜찮아요?"

　"흐윽.."

　다친걸까? 진탁은 불안한 기운에 안전벨트를 풀고 운전석에서 나와 뒷자리로 향했다.

　문을 열고 몸을 숙여 혜선에게로 가까이 다가가자 어깨를 붙잡았다.

　"괜찮아요? 어디 다쳤어요?"

　"으으.."

　"뭐라고?"

　좀 더 가까이 다가가자 자신의 입을 꾹 가리고 있는 혜선의 모습이 보였다.

　뭐라 웅얼거리며 말하는것 같았지만 그녀의 손에 가려져 잘 전달 되지 않았다.진탁은 귀를 가까이 가져갔다.

　"뭐라고요?"

　"속이 안좋아..."

　"아.. 이런."

　아까 브레이크를 급하게 밟아 몸이 앞으로 쏠리며 먹었던 술기운이 다시 올라는 모양이었다.

　갑자기 어깨를 붙잡은 이 아가씨 잘못도 있지만 제 불찰도 있었다. 진탁은 작게 한숨을 쉬곤 혜선의 잔득 구부러진 등을 쓸어주었다.

　"괜찮아요? 나와서 바람 좀 쐘레요?"

　"우읍!"

　"으악!! 안에다 토하지마!!"

　사색이 된 진탁의 행동이 바빠졌다.

　이대로 토하면 뒤에 밀려있는 예약고객도 낚시도 물건너가는 거였다. 그가 황급하게 혜선을 끌어내리자 그녀는 갓길에 잘 심어져있는 잔디를 향했 뛰어갔다.

　"우웩."

　자신이 술을 먹은것도 아니고 속은 멀쩡하건만 비위가 약한 진탁은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멀찌감치 떨어져 정신없이 들썩이는 혜선의 어깨만 쳐다보고 있었다. 소리만으로도 속이 안좋아지는 기분에 절로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진탁은 재빨리 뒷자리에 있던 당묘를 꺼내 혜선의 어꺠에 둘러줬다.

　잔뜩 움추린 덕에 올라간 치마 속에 훤히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혜선이 속에 있는걸 내 뱉기도 한참. 이제 좀 진정이 됬는지 바닥에 주저 앉는 혜선을 보곤 멀찌감치 떨어져 있던 진탁은 천천히 다가갔다.

　"괜찮아요?"

　"아안괜찮아."

　정말 안괜찮아 보였다. 언제 봤다고 말이 반토막이 되는지. 술이 꺠기는 커녕 더 올라온듯 잔뜩 풀려있는 동공에 진탁은 혀를 차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여기 암전히 있어요. 어디가지 말고."

　"어디가아.."

　"슈퍼. 물 좀 사올테니까 기다려요."

　진ㄴ탁은 밝게 비추는 가로등 불빛에 주황색으로 물든 4차선 도로를 건너갔다.

　혹시 낯선사람이 있나 없나 연신 주위를 살피며 슈퍼안으로 들어간 진탁은 냉장고에서 생수를 두개 꺼내곤 카운터에 있는 할머니에게 물었다.

　"혹시 소화제 있나요?"

　"속이 안좋아?"

　"네.. 좀."

　"이걸 어쩌나, 우리집은 약 안파는데."

　비위가 약한것도 병이었다.

　소화제를 하나 먹고 싶었건만, 편의점도 아닌 동네 구멍가게에 비상약을 팔리가 없었다. 할머니의 말에 진탁은 쓴 웃음을 지어보이며 명치를 쓱 쓰다듬어 보았다.

　"기다려봐요. 내가 매실 좀 타줄게."

　진탁을 위아래로 훑어본 할머니는 느릿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감사합니다. 미닫이 문을 열머 어디론가 향하는 노인의 등을 향해 꾸벅 인사를 해본 진탁은 밖을 살피며 주먹으로 가슴을 내려쳤다.

　"이 동네는 무슨 개미 한마리도 없구만."

　다행히도 수상한 사람은 보이질 않았고 늦은시간 강아지와 산책하는 여자 한명정도 지나갈 뿐이었다.

　그리고 차에 가려져 보이진 않았지만 그 여자도 말을 잘 듣고 있는지 움직이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여기. 한잔 들이켜."

　"감사합니다 어르신."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하며 건내는 물 잔을 받아든 진탁은 그대로 입으로 부어넣었다.

　민간요법이 통하는건지, 아니면 기분 상 그러는 건지 금방 속이 편해지는 기분이었다. 놀란 가슴과 위를 쓰다듬으며 진정을 하고있을때 자신을 위아래로 훑는 할머니의 시선이 보였다.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 천천히 위로 올라오는 두눈이 마주했다. 왜그러시지 하는 의아함이 들었지만 진탁은 어색하게 그리고 최대한 사람좋게 예쁘게 웃어보았다.

　자고로 웃는 얼굴에 침 못뱉는 법이었다.

　"아가씨야? 총각이야?"

　"네?"

　그의 반문에 할머니는 뭐가 미안하신지 미안한듯 웃으시며 말을 이어가셨다.

　"얼굴은 이쁘장하니 곱게 치마까지 입었는데 목소리가 꼭 사내같아서 말이야."

　"아.."

　진탁은 이제야 이해가 간듯 앓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또 깜빡했다. 지금 자신은 여장을 하고 있는 상태였다. 하도 찰나에 많은 일이 있어서 까맣게 잊고 있었다.

　"감기에 심하게 걸려서..아하하."

　"그렇치??"

　"하하. 네."

　"아가씨한테 미안하네. 나이먹으면 다 이래. 눈이 안좋아져서."

　시원하게 웃으며 그럴줄 알았다며 이런저런 말을 하시며 혹여나 맘이 상했을까 변명을 하시는 할머니의 모습에 왠지모를 죄책감이 드는 진탁이었다.

　대충 웃으며 괜찮다며 대꾸하던 진탁은 말을 바꾸며 지갑을 꺼내보였다.

　"얼마죠?"

　"응? 아.. 천 팔백원."

　"천..원하고 잔돈드릴게요."

　수고하세요. 잘가요 아가씨.

　딸랑하는 문소리를 내며 슈퍼밖을 나온 진탁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리곤 유리문 너머로 보이는 할머니의 등에 꾸벅 인사를 했다.

　"죄송합니다. 할머니. 저 사실 남자에요."

　잔뜩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며 진탁은 다짐했다.

　꼭 사람을 구할 것이다.

　여장은 절대 하지 않을것이다.

　그리고 이율리를 해고할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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