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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최초의 기억
작가 : 루룰루
작품등록일 : 2017.6.6

"난 죽으면 4년 후에 이름 모를 아이로 다시 살게 돼."
9번째 인생을 살고 있는 소녀, 소녀를 통해 음모를 파헤치려는 괴짜 청년.
소녀가 잊어버린 최초의 기억을 찾고자 한다.

 
1-4화. 고백
작성일 : 17-06-21 19:12     조회 : 298     추천 : 2     분량 : 5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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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 반 아이들이 하나둘 정답게 인사를 하며 헤어질 때 나와 나루는 학교에 남아있었다. '방과 후 호출'을 받은 우리는 하교 전에 도덕 선생님이 계신 교무실로 찾아갔다. 선생님은 진지한 표정으로 평소 우리의 수업 태도가 좋지 않다며, 커피잔 위에 떠 있는 얼음이 알맹이가 될 때까지 설교했다. 나루는 고개를 푹 숙인 상태로 선생님의 말꼬리에 맞춰 고개를 끄덕였다. 내 눈은 선생님을 향했지만, 시각 외 모든 감각은 전부 나루한테 쏠렸다.

 선생님이 커피를 입에 털고서야 우리는 복도로 나올 수 있었다. 나는 뒤돌아보지 않고 출입문을 향해 곧장 걸어갔다. 나루는 나에게서 세 발자국 정도 뒤에서 떨어져 걸었다. 나루는 말을 머뭇거리는지 '아', '그', '저'라는 소리만 연신 되풀이했다. 답답한 나루의 말이 내 가슴 밑부터 목까지 화산재를 가득 채운 것만 같았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려 나루를 쳐다봤다. 고개를 숙인 채 손가락만 만지작거리는 나루는 나를 힐끔 보더니 깜짝 놀라 걸음을 멈췄다. 째려보는 내 시선이 부담스러운지 나루는 창가 쪽으로 눈을 돌렸다.

 "지, 지금아 미안해. 나 때문에 추가 숙제나 받고. 그, 그래도 교육 이수시간이 깎이지 않아서 다행..."

 "너 어떻게 알았어?"

 지금 중요한 건 나루의 사과가 아니다. 가장 듣고 싶은 것은 나루가 내 정체를 알게 된 방법이었다.

 "그, 그게..."

 "그게 뭐?"

 나루는 고개를 다시 푹 숙이고 왼손 검지를 오른손 엄지로 쓰다듬듯이 만졌다. 나는 성큼성큼 나루에게 다가가 양손으로 나루의 조그마한 어깨를 꽉 잡았다.

 "뭐냐니까!"

 나루는 움찔거리며 놀라더니 눈가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그냥, 재, 재밌을 것 같았어."

 "뭐?"

 "지금이는 늘 똑똑하고, 대단하고, 다른 애들이랑 다르니까. 그, 그래서 그냥 지금이라면 저런 장난도 손쉽게 하겠다고 생각했어."

 나루는 말을 끝내더니 참았던 울분을 토한듯이 거칠게 숨을 내뱉었다. 나는 어이가 없어 나도 모르게 '허!'하고 쓴웃음이 튀어나왔다. 이건 마치 완전 범죄를 꿈꿨던 범인이 지나가는 꼬맹이의 말 한마디에 속아 멍청하게 자수한 꼴이다. 게다가 장난이라니, 제대로 한 방 먹었다.

 "그러니까 그냥 나한테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다는 거지?"

 "으, 으그ㅡ으, 흑, 응. 지, 지금이가 재, 재밌을 줄, 알고. 흐그으으ㅡ흑."

 나루는 갑자기 얼굴을 손으로 가리더니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가려진 얼굴 사이로 투명한 물줄기가 볼을 타고 촉촉이 내려와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떨어지는 눈물을 보니 죄책감이 밀려왔다. 가슴에 커터칼을 그은 것만 같았다.

 "허ㅡ흑, 지금아. 나, 나 싫어하지마. 싫어하면 안돼. 나, 난 지금이가 좋단 말이야."

 나루는 말을 마치더니 갑자기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뜬금없는 포옹에 잠시 당황한 나는 뻣뻣한 팔을 어찌할 줄 몰라 나루의 머리를 어설프게 쓰다듬었다.

 "그, 그래. 나도 나루 네가 좋아. 미안해, 내가 너무 심했지?"

 나루는 내 가슴에 파묻힌 상태로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며 앓는 소리를 냈다.

 "아니야, 으흐극, 아니야. 내가 더 잘못한 거야. 날 싫어하지 말아줘, 지금아. 나 정말 많이 사랑해."

 나는 나루의 머리를 아까보다 자연스럽게 쓰다듬으며,

 "그래, 그래. 나도 나루 널 사랑... 으헑, 헉! 뭐라고?"

 당황한 나는 나루의 몸을 뒤로 밀어 나한테서 떼어냈다. 나루는 토끼처럼 두 눈이 충혈됐고, 볼이 빨개진 상태로 눈물 자국으로 얼룩져 있었다. 바보같이 벙벙한 표정을 지은 채 날 쳐다봤다.

 "아니 잠깐만! 지금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나, 날 사랑한다고?"

 "응!"

 조금 전에 손가락 만지던 아이는 어디로 가고, 이제는 대답과 함께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아니 이게 무슨 강아지가 풀 뜯는 소리야! 네가 벌써 확고한 성 정체성을 가졌다고? 그 나이에? 그리고 난 아직 널 사, 사랑한다고 말한 적 없어! 포옹도 우정이 아니라, 사랑의 스킨쉽인거야?"

 나루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몰라 잠시 당황한 듯했다.

 "그럼 지금이는 내가 싫어?"

 나 역시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나루는 갑자기 히극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울다 웃는 나루의 모습에서 안도감과 괴이함이 뒤섞여 내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했다.

 "지금이가 이렇게 당황한 거 처음 봤어. 지금이도 소리칠 때가 있구나. 있잖아, 난 성 정체성이니 뭐니 그런 거 잘 모르겠어."

 나루는 안도의 한숨을 한 번 쉬고 내 눈을 마주쳤다.

 "그냥. 그냥, 지금이가 좋아."

 나루가 이렇게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아이인 줄 몰랐다. 나루는 속이 개운해졌는지 가슴 언저리에 손을 얹고 다시 크게 숨을 쉬었다. 그리고 창밖을 보며 말했다.

 "지금아, 어서 집에 가야겠어. 우리 집에서 같이 발표 준비할래?"

 나루를 따라 바깥을 보니 하늘 위에 떠 있던 하얀 태양은 붉게 가라앉았다. 땅에 삼켜지는 태양을 보며, 나루는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혼잣말하듯 내게 읊조렸다.

 "비밀로 할게."

 '비밀'이라는 말이 내게 커다란 당목이 다가온 것만 같았다.

 

 나루는 즐겁게 '반달'을 콧노래로 부르며, 내 손을 잡고 걸었다. 길 곳곳에 세워진 '에코트리'가 푸른 링을 그리며 정화 공기를 내뿜었고, 기둥 디스플레이로 '언더트리' 입주 광고가 나왔다. 자가 비행차들이 도로를 따라 공중 위로 파스텔 물감칠하듯 질주했다. 알록달록한 선들이 하늘을 도화지 삼아 옅게 그려지다가 사라졌다. 상가에 들어서자 다양한 물건들이 여기저기 있었고, 판매대를 정돈하는 종업원들의 이마에는 'R'이 차갑게 새겨져 있었다. 나루는 여기저기에 있는 휴머노이드들을 두리번거리며 살펴보았다.

 "있잖아, 지금아. 휴머노이드들은 아프지 않았을까. 지워지는 주삿바늘도 따끔하고 아픈데, 저건 영영 지워지지 않잖아."

 나루는 바닥과 정면 사이를 보며 걸었다. 딱 그 사이 속에, 내 대답이 머물렀다. 바닥도, 정면도 아닌 그, 사이.

 

 나루는 100층짜리 '오메가 타워'에서 살았다. 미래의 바벨탑이라 불리는 이곳은 웅장하면서도 괴상하게 생겼다. 둥근 원통형으로 생긴 오메가 타워는 꼭대기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매우 높았다. 내부로 들어가니 팔 방향으로 제트팩 의자 8개가 벽에 고정되어 있었고, 일정한 높이마다 주황등이 벽에 부착되어 있었다. 회색빛 벽에 은은히 퍼진 주홍빛이 타워의 생명에 영원을 담은 것 같았다. 오메가 타워는 늘 이대로 주홍빛을 지닐 것만 같다.

 나루는 나를 제트팩 의자에 앉혔고, 나루도 맞은편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내게 왼쪽 팔걸이에 있는 키패드에 '100-2'를 누르라고 했다. 나는 '1', '0', '0', '2'를 순서대로 입력 후 오른쪽 '추진' 스위치를 눌렀다. 그러자 의자는 자동으로 보호덮개를 씌우더니 바닥에서 탄산 터지는 소리와 함께 곧장 공중으로 수직 상승했다. 꼭대기 층까지 순식간에 튀어 올라간 의자는 100층에 도달하자 덜컹하고 멈췄다. 1층에서 보이지 않았던 천장이 가까이 보였고, 대신 바닥이 아득히 멀게 보였다. 의자는 벽면을 따라 이동하더니 '100-2'가 적힌 자동문에 들어갔다. 문에 들어가자 의자는 이동을 멈췄다. 우리는 의자에서 내렸고, 나루는 벽면에 있는 반납 스위치를 눌러줬다. 제트팩 의자는 자동으로 이동하더니 문밖으로 나갔다. 닫힌 문 너머로 의자가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아침에 아무리 예쁘게 머리를 꾸며도 여기서는 말짱 꽝이야."

 "진짜 심장 질환이 없다는 것에 감사할 정도야."

 나루는 내 대답을 듣고 싱긋 웃더니, 뒤돌아 현관문으로 자연스레 걸어갔다. 나도 비틀비틀 움직이며 나루를 따라갔다. 나루는 까치발을 살짝 들어 초인종을 눌렀다. 초인종 소리는 '반달'이었다. 이윽고 문이 열리며 한 여성이 고개를 내밀었다. 나루는 발칵 문을 열더니 그 여성에게 와락 안겼다.

 "모모! 나 왔어! 오늘은 내 애인도 데려왔어!"

 나는 뒤에서 조용히 허리를 숙이며 정중히 인사했다. 모모는 나루를 안은 채 따뜻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며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 흔들리는 앞머리 사이로 희미한 반짝임이 보였다.

 "은나루 님의 애인이시군요. 어서 들어오세요."

 나루의 집은 평범한 가정집이었다. 회색과 흰색이 반반으로 된 투톤 벽지, 살짝 낮은 천장 아래 적당히 밝은 반투명 유리 조명이 보통의 분위기를 풍겼다. 모모는 부엌에서 저녁 준비를 시작했고, 나루는 내 손을 끌고 어딘가로 데려갔다. 그곳은 나루의 방이었다. 나루는 방에서도 내 손을 놓지 않더니 갑자기 침대에 나를 눕혔다. 그리고 내 옆에 누워 내 얼굴을 빤히 보았다.

 "뭐, 뭐해, 나루야?"

 "내가 어디에서 봤는데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침대에 누우면 서로 더 좋아하게 되더라고. 그런데 침대에서 뭘 하는지 모르겠어."

 나루의 생각은 아무도 모르는 비밀의 장소에 쌓인 눈밭 같았다. 나는 저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고, 나루는 뭐가 그렇게 웃기냐며 궁금증을 주체할 수 없어 내 몸을 흔들었다. 나는 반격으로 나루의 겨드랑이를 간지럽혔다. 나루는 간지럼을 참지 못해 숨이 넘어갈 듯이 웃었다.

 

 우리는 한 차례 전쟁을 마치고, 천장을 바라보았다. 남은 웃음을 털어내며 숨을 가다듬었다.

 "지금아, 내가 좋아하는 거 보여줄까?"

 나루는 내 대답도 듣지 않고 갑자기 천장을 향해 박수를 두 번 쳤다. 그러자 나루의 방 안에 있는 모든 물건이 사라지고, 오직 우리 둘만 이 공간에 남아 있었다. 침대도 보이지 않아 우리는 바닥에 몸이 뜬 것처럼 보였다.

 "신기하지? 모든 물건이 투명해졌어! 여기 이불에 들어가면 우리 몸도 안 보인다!"

 나루는 허공에 손짓하며 무언가를 집으려 했다. 그리고 그것을 꽉 잡고 우리 몸을 덮었다. '투명망토'처럼 우리의 몸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우와! 이런 기술을 일반 가정집에서 본 건 처음이야."

 "아직 마술쇼는 안 끝났어."

 나루는 다시 천장을 향해 박수를 한 번 더 쳤다. 방 안이 순식간에 깜깜해지더니 천장부터 바닥까지 우주 공간으로 바뀌었다. 나는 가정에서 이런 시각연출을 체험할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나루는 손으로 나를 부르더니 어느 한 곳을 향해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나는 저 검은 틈 사이로 하얀 별들이 모인 저곳이 좋아."

 우리는 정말 우주 속을 떠다니는 것만 같았다. 나루는 가만히 자신이 가리켰던 하얀 은하수를 보았다. 문득 나루의 눈이 장대비처럼 쏟아지는 향수에 홀딱 젖은 것처럼 울멍울멍했다.

 나루는 '그만!'이라고 소리쳤고, 우주는 다시 평범한 방으로 바뀌었다.

 "어때, 지금아? 재밌지? 멋있지? 신기하지?"

 젖어있던 나루의 눈도 '그만'이라는 말과 함께 사라졌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나루에게 대답했다.

 "응, 재밌었어. 멋있고, 신기하고, 최고야."

 나루는 내 대답을 듣더니 침대에서 폴짝거리며 만세를 외쳤다. 신난 나루를 즐겁게 보던 나는 무심결에 방 한 쪽에 놓인 책상을 보았다. 그리고 그 위에 놓인 책 한 권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나루는 침대에 철퍼덕 앉아 나를 유심히 보더니 날 따라 책상 위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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