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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환상의 찻집
작가 : 그리운
작품등록일 : 2017.6.21

비가 엄청 오는 날이었어. 아무 가게나 들어가야 했는데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연 데가 없더라고. 딱 한 군데, 무너질 듯한 낡은 찻집 하나가 있었어. 거기서 만났어, 그사람.

 
별반 다를 거 없는 하루
작성일 : 17-06-21 00:58     조회 : 352     추천 : 3     분량 : 4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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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나 내 몸 하나도 벅차. 헤어지자, 너 돈 없잖아. 남자 생겼어. 아니, 사실 있었어.'

  당시 아무 느낌도, 생각도 없었어. 아, 헤어졌구나, 하는 허무감. 평생 갈 줄 알았던 멍청함. 그날따라 바람이 세게 불어서 피부 위에 살얼음을 입고 있는 것 같았어. 이제 막 겨울이 온 주제에. 오늘 최고 기온이 17도랬는데 뻥 같아. 벌써 오리털 잠바를 입어야 하나 생각했어. 눈물이 흐르는데 바로 자국으로 남았어. 지울 수 있었고, 닦을 수 있었는데 그러지 않았던 건 보여주고 싶었을지도. 그녀는 이미 갔는데 그 자리에 서있던 이유는 뒤를 돌아볼 것이라 생각했던 걸지도.

  그 남자가 궁금했어. 얼마나 잘난 남자여서, 얼마나 잘난 사람이어서 날 버렸는지 얼굴이 보고 싶었어. 집착이라고 병명을 스스로 내렸어. 그러자마자 핸드폰을 껐고, 번호를 지우고, 문자내용을 다 지웠어. 평소와 같이 밥을 먹고, 두 다리 뻗고 자고,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에 잠이 깼어. 해바라기 샤워기 비를 맞으며 별반 다를 것 없는 하루가 시작됐지. 양치질하고 거울을 보자 꼴이 말이 아닌 거야. 예전에 내 장난으로 크림을 먹었다며 소리 질렀던 네가 생각나 쉐이빙크림을 버렸어. 수건에 박힌 곰돌이를 닮았다고 해준 네가 생각나 수건을 버렸어. 이것저것 다 버리니까 어느새 20kg짜리 쓰레기봉투가 꽉 채워졌어.

  쓰레기를 버리고 손안에서 제들끼리 부딪치는 동전들이 시끄럽다. 편의점 종소리와 알바생의 인사, 가볍게 고개만 숙였다. 컵라면에 물이 채워진다. 허연 김이 공중에 흩어진다. 나무젓가락을 갈랐다. 한쪽으로 치우쳐 갈라졌다. 재수가 없다. 칠칠찮았던 성격이라 입지 않았던 하얀색 티를 새삼스레 입었던 것이 문제였다. 빨간 국물이 여기저기 튀었다. 참 재수가 없다. 알바생 구함, 경력자 우대. 편의점에 뭔 경력? 비웃었다. 어디선가는 시켜줘야 쌓일 거 아냐. 투덜거렸다. 투명한 유리 벽에 누군가 한입 찢어 먹은듯한 종이가 떡하니 붙여져 쓸데없는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괜히 라면 국물을 튀었다.

  나뭇잎을 밟고 미끄러졌다. 큰 소리가 나진 않았다. 무릎이 찡했다. 전기가 온몸을 감싼 듯 저렸다. 익숙해졌을 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널브러진 나뭇잎을 침대 삼아 널브러졌다. 다 먹은 초코우유팩은 손에 너덜거렸다. 검지와 중지 사이에 달달한 냄새가 난다. 눈에만 빗방울이 떨어지는 것 같다. 뜰 수가 없었다. 좀 나와, 너까지 달려들지 마. 팔꿈치까지 걷어 올린 탓에 닭살이 일어난 피부가 눈두덩을 덮었다. 시꺼멓다. 손끝을 스친 나뭇잎이 무겁다.

  ‘사랑이 떠나가도 가슴에 멍이 들어도 한순간뿐이더라. 밥만 잘 먹더라. 죽는 것도 아니더라.’ 핸드폰 가게를 지나가다 들은 노래 가사가 내 얘기 같더라. 유치하지? 나도 알아. 애인이랑 헤어졌을 때 날 끌고 가 코인노래방에서 끝사랑을 부르던 친구보다 오글거리는 건 없다고 생각했어. 근데 막상 겪었더니 유치해지더라. 네가 옆에 없는 걸 보니 사랑은 떠나갔고, 가슴이 찌릿한 게 아픈 걸 보니 가슴에 멍이 든 건 알겠어. 하지만 진짜 한 순간이더라. 배꼽시계는 정확하다고 국밥집을 지나가니까 배가 고팠어. 잘 들어가더라. 죽지도 않았어. 휴대폰 가게 앞에서 노래가 끝날 때까지 서 있었어. 그냥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더라. 거의 끝날 때쯤 직원이 나와서 아직 무료 액정필름을 갈아준다고 갈 거냐고 물어보더라. 됐다고 했어. 딱히 새로운 필름으로 보고 싶은 게 없었거든.

  맥주 2잔을 먹고 취해서 여기저기 안겨서 애교를 부렸던 내가 소주 2병을 깠는데도 어지럽지 않게 됐을 때 알아차렸어야했다. 시끄러운 곳이라면 질색을 하던 내가 클럽을 가도 시끄럽지 않게 됐을 때 알아차렸어야했다. 돈이라면 많진 않았지만 데이트할 비용은 충분했었고, 알바도 꽤 성실히 다니고 있었다. 마침 올라오는 그녀의 SNS, 친구들이랑 여행 갔네. 너는 잘 지내나 보다? 댓글을 달려다 정신이 들어 지웠다. 이게 무슨 유치한 짓이야, 젠장. 핸드폰을 뒤집었다. 아, 맞다. 나 유치했지. 욕을 읊고 말았다.

 

  별반 다를 게 없는 하루였다. 아니, 그렇게 생각했다. 시작은 면도기였다. 새로 간 지 이틀밖에 안됐는데 그만 부러진 것이다. 할 수 없이 새로 꺼낸 면도기로 거울을 보며 새로 사 온 쉐이빙 크림을 발라 면도를 하는데 볼에 작지 않은 상처를 냈다. 따가움에 수건을 꺼내려다 위에 올려둔 안경을 떨어뜨렸다. 잘 보이지도 않는 바닥을 내려다보며 내디딘 발걸음에 안경렌즈가 산산조각이 났다. 신발을 신지 않았다면 분명 피를 봤을 것이다. 이미 봤지만.

  잡친 기분을 달래보고자 약속시간보다 일찍 밖을 나가 지하철을 타려는데 교통카드를 두고 왔다. 영화관을 가는데 앞뒤 열차 간격이 좁아 시간이 지연됐다. 영화관에 도착해 예매하려니 보고 싶었던 영화는 상영을 종료했다. 마른입을 축일 겸 콜라를 샀는데 앞도 안 보고 걷는 연인이 등을 쳐 콜라를 떨어뜨렸다. 내 영화관 옆 자석의 아저씨는 무슨 문자가 그렇게 많이 오는지 불빛으로 내 집중을 흩트려 놨다. 약속장소로 가는 버스는 사람이 너무 많아 30분간 서서 갔다. 기사 아저씨의 레이싱에 온몸이 흔들려 무릎이 아파졌고, 급정차하는 바람에 저 멀리서 캐리어가 굴러와 다리를 강타했다. 괜찮습니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제자리로 가져다줬지만 다리에 힘이 빠져 기울어졌다.

 

  “세상에 믿을 여자 없다고 했잖냐.”

  “니가 언제 그랬어, 임마.”

  “이 형님이 딱 감이 왔어. 그 여자는 처음에 봤을 때부터 딱 싹수가 보였다니까?”

  “그래, 니가 소개시켜주면서 잘해보라고 했었지, 그때?”

  “아, 그랬었냐? 야, 원래 사람이란 게 만나고 헤어지는 게 당연한 섭리.”

  “웃기고 앉았다.”

  생맥주에 찜닭을 시켰다. 옆자리엔 겉옷이 자리를 잡았다. 달곰한 닭, 시원한 맥주, 적당히 시끄러운 음악,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는 사람들의 말소리. 내 이별 소식에 한걸음에 달려 나온 친구 둘. 처음엔 그녀의 뒷담을 까다가 점점 여자를 사귀면 안 되는 이유라며 내가 못 사귀는 게 아니라 안 사귀는 거라며 위로하고 있는 친구들을 보고 있게 됐다.

  친구들이 잡아 준 택시를 탔다. 기사가 화장실이 급하다며 세워져 혼자 남은 차 안에선 빠르게 올라가는 숫자만 넋을 놓고 보고 있었다. 8,000원이면 올 거리에 9,800원이 나왔다. 화장실 간 돈은 빼줘야 하는 거 아냐? 뻔뻔한 기사아저씨가 얄미워 9,800의 거스름돈 200원을 받아 챙겼다. 카드계산 할걸. 비밀번호를 누르는데 자꾸 터치를 잘못해 3분동안 터치도 못하게 했다. 나한테 화가 났나 봐.

  옷을 벗고 은근히 뜨거운 물을 틀어 처음은 머리카락부터 발가락 사이까지 물을 뿌렸다. 나른해졌다. 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빌어먹을.”

  괜한 벽을 주먹으로 쳐댔다. 씨발, 쉽게 부서질 것 같은 벽은 놀리듯 멀쩡했다. 눈물이 나왔다. 이게 뭐야, 나한테 왜 이래. 요 근래 자신에게 수없이 던진 질문, 답을 찾지 못했다. 머피의 법칙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버거웠던 하루, 꼭 평소처럼 보내게 할 생각이 없었던 하루를 원망했다. 소리 내어 울지 않았다.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들숨 날숨이 힘들어졌다. 욕조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욕조 바닥을 쳐댔다. 아마 소리 내어 울었는지도 모르겠다. 들키지 않으려 손이 아파도 계속 쳐댔던 것같다. 왜 우는지 모르겠는데 울고는 있고, 슬픈 이유는 알겠는데 인정은 하기 싫었다. 한 번 터져버린 울음은 그칠 줄 몰랐다. 내가 눈물이 많은 사람이란 걸 처음 알았다.

  머리도 말리지 않은 채 침대에 누웠다. 하늘색이었던 침대 커버가 짙은 파란색으로 물들어갔다. 형광등에 죽은 벌레들의 개수를 셌다. 징그러워서 눈을 감아버렸다. 분명 감고 있는데도 형광들을 이길 수 없었다.

  물기가 없어진 손을 보았다. 살짝 붓긴 했지만 사람의 뼈는 쉽게 부숴 지는 게 아니더라. 잊고있었는데 보고 나니까 손이 얼얼했다. 눈을 하도 비벼댔더니 아려왔다. 자꾸 창문을 두드리는 바람소리가 듣기 싫어 열었다. 방충망까지 열어젖혀 바깥을 내다봤다. 담배 끝자락에 연기가 난다. 지나가는 차가 보인다. 차에 치일지도 몰라. 인사불성이 되걸어가는 술 취한 아저씨가 보인다. 싸움 나서 맞아 죽을지도 몰라. 치킨집 앞에 맥주병을 부딪치며 떠들고 있는 게 보인다. 치킨을 튀기다 불이 날지도 몰라. 난 미쳐 버렸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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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하객 17-06-21 05:29
 
글이 괭장히 짜임새가 있고 탄탄하네요. 로판으로 올리셨으니 사건이 있겠지만, 은희경 작가의 순수문학을 보는 기분이었어요. 열독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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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기 17-06-22 22:38
 
재밌게 잘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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