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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은혜로운 열애사
작가 : 우연리
작품등록일 : 2017.6.2

"귀신의 노래를 들어본 적 없죠?"

은혜가 물었다.

"춤 추는 건 본 적 있습니다."

차트를 넘기던 무열이 대답했다. 콧등을 타고 내려온 안경을 끌어 올리려다 그냥 벗어 버렸다. 은혜만 있는데 뭐 어떠랴 싶었다.

"어땠는데요?"

"굳이 말로 해야 압니까?"

은혜와 무열이 조소를 머금었다. 삐딱한 그들의 입술은 동시에 답을 뱉었다.

"최악이죠."



귀신이 들리는 여자 주은혜와 귀신이 보이는 남자 최무열의, 미스터리로맨스릴러 은혜로운 열애사.

 
들리는 게 전부는 아니다 (5)
작성일 : 17-06-18 22:42     조회 : 300     추천 : 1     분량 : 5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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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개새끼, 헐, 반푼이.

 

  초면에 만난 여자치고 거침없는 말본새였다. 그리고 무열은 입이 험한 사람을 싫어한다. 입단속 하나 못하는 인간 중에 제대로 된 경우가 없었다.

 

  가뜩이나 날카로운 그의 눈빛에 싸늘함마저 감돌았다. 은혜는 몸을 움츠렸다. 자신의 실수를 깨닫기도 전에 이미 상황은 차갑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쪽이야 말로 무당 같은 겁니까."

 

  "아, 아뇨. 따지자면 그 쪽이랑 비슷한……?"

 

  말을 끌던 은혜가 고개를 갸웃 꺾었다. 비슷한가.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지. 은혜 역시 무지했다. 무열의 질문에 답해줄 수 있을만한 군번이 아니었다.

 

  역시 매꽃 선녀를 찾아 가자. 내일, 아니 지금 당장 차를 몰고 그녀의 대문을 두들겨야겠다. 얻어맞는 한이 있어도 붙들고 늘어져야지.

 

  「저기, 아가씨.」

 

  "네?"

 

  「저 영우 선배라는 총각이 나 보는 거, 확실한 거지?」

 

  춘자가 괜히 눈치를 살피고 속닥이며 물었다. 얼떨떨한 표정의 은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아요."

 

  「그럼…….」

 

  은혜는 귀를 쫑긋 세웠다. 춘자가 은혜에게 조근 조근 말을 이어갈수록 그녀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우는 듯 웃는 듯, 은혜는 그녀의 부탁을 경청했다.

 

  한참을 속닥거리던 두 여자가 동시에 무열을 향해 돌아섰다. 바지춤을 잡고 애교를 부리는 강아지를 밀어내던 무열이 시선을 느끼고 그녀들을 마주봤다.

 

  은혜가 입술을 달싹였다.

 

  "영우 선배 총각."

 

  "……저 말입니까?"

 

  끄덕 끄덕. 은혜가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냥 영우 말대로 경비를 부를 걸 그랬다는 뒤늦은 후회가 무열에게 찾아왔다.

 

  어처구니가 없다는 무열의 반응에도 은혜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정확하게는 아줌마의 전언을.

 

  "영우 잘 부탁해요."

 

  "……."

 

  "아까 보니까 영우가 잘 따르는 것 같던데. 알다시피 우리 애가 착하긴 한데 숫기가 없어서 내가 걱정이 많아요. 병원 생활은 잘 할지, 사람들이랑 잘 지낼지. 그래도 다행이네, 이렇게 듬직한 선배가 있어서."

 

  "……."

 

  "우리 영우, 우리 불쌍한 아들……. 꼭 좀 부탁할게요."

 

  담담하던 은혜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잠자코 춘자의 전언을 듣던 무열이 허리를 깊이 숙였다. 은혜의 입을 빌리는 내내 춘자가 그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던 것처럼.

 

  "걱정 마십시오. 제가 잘 보살피겠습니다."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고마워요, 총각, 내가 정말 고마워. 끝없이 중얼거리는 춘자의 감사를 은혜는 자신의 목소리로 무열에게 전달했다.

 

  한참을 서로가 고개 숙이던 시간이 지나고 뜨끔한 정적이 찾아 왔다. 은혜는 이 순간이 어떤 순간인지 깨달았다. 지켜보는 무열의 얼굴도 차분했다.

 

  "아줌마, 가요?"

 

  「그려. 이제 가야지.」

 

  춘자가 떠난다. 소원도 똑바로 이뤄 주지도 못했는데.

 

  「됐어, 이제. 우리 영우 얼굴도 보고, 직장 구경도 하고, 선배도 만나고. 아줌마가 고집 부려서 뭐해. 더 피해 주지 말고 얼른 갈 길이나 가야지.」

 

  마지막까지 은혜를 위로하는 건 춘자였다. 영혼을 처음 떠나보내는 것도 아니면서 은혜의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착잡했다.

 

  "김치……. 제대로 못 줬는데."

 

  「무슨 소리여. 아가씨는 똑바로 갔다 줬지. 우리 아들내미가 쏟아 버린 거뿐인데.」

 

  "그래도……."

 

  「고마워, 아가씨. 정말 고마워. 고생했어. 이제 아줌마 갈게. 아가씨도 밥 잘 챙겨 먹고, 운동도 좀 하고. 응? 젊은 사람이 건강하게 지내야지.」

 

  "어우, 알았어요."

 

  마지막까지 잔소리를 퍼붓는 아줌마에게 어쩔 수 없이 웃어 버렸다. 아직도 바닥은 붉은 물기로 질척였다. 새빨간 색체에 눈이 시려 그만 감아 버렸다.

 

  「고마워, 아가씨. 고마워요, 총각. 잘들 지내. 잘들 살아.」

 

  ……아들을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지 않을까. 이렇게 떠나는 건 싫을 텐데. 그러나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한 번만 더, 한 번만 더 하다 보면 영영 떠나지 못할 거다.

 

  「정말 고마웠어.」

 

  아줌마는, 춘자는, 어머니는 숨죽인 오열 끝에 운명을 따라 묵묵히 떠나갔다.

 

  흩뿌려진 김치 국물이 휴게실 바닥에 스며들었다. 지독한 흔적이 남을 것 같지만, 금세 사라질 거다. 모든 게 그렇다.

 

  조용하다.

 

  춘자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허공을 더듬듯 속눈썹을 팔랑이던 은혜가 무거운 혀를 굴렸다. 저기요, 작게 무열을 부르자 그가 돌아다본다.

 

  "갈 때, 말이에요."

 

  누구에게든 묻고 싶었던 말이었다. 은혜만은 알지 못하는 궁금증이었다.

 

  "어때요?"

 

  "……."

 

  문맥을 다 잘라낸 짧은 질문에 함축된 의미는 무궁무진했다. 어때요? 어때 보여요? 어떻게 보여요?

 

  떠나가는 그들은 어때요? 행복해 보여요? 잃었던 길을 찾아 가는 그 모습은 홀가분한가요?

 

  그들을 눈앞에서 떠나보내는 당신은, 어떤가요?

 

  무열은 생각했다. 생각해야만 했다. 왜냐하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던 질문이기 때문이다.

 

  "……퍼즐 맞출 때, 잃어버린 한 조각을 찾아서 끼워 맞추는 기분입니다."

 

  가만 가만 그의 대답을 듣던 은혜가 웃음을 터트렸다. 역시 의사는 의사인가 보다. 정확한 진단이었다.

 

  세상이 잃어버린 퍼즐 조각 같은 그들.

 

  오늘도 은혜는 거대한 퍼즐 하나를 완성했다. 그건 눈앞의 이 특이한 남자도 마찬가지일 테지.

 

  어쨌든 오늘 밤은 푹 잘 수 있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아, 매꽃 선녀. 그래. 이 야밤에 쳐들어가는 건 예의가 아니지. 내일 날이 밝거든 그녀를 찾아가자.

 

  우선 죽음 같은 잠을 잔 뒤에.

 

  입가에 미미한 미소를 띤 채로 은혜는 발걸음을 떼었다. 그리고 휴게실을 나서려는 순간, 단단한 손아귀에 팔뚝이 사로잡혔다.

 

  "어디 가십니까."

 

  "……집에 가야죠?"

 

  뭐가 잘못 됐냐는 은혜의 대답에 무열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긴 손가락으로 우아하게 한 지점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니, 명령했다.

 

  "치우십시오."

 

  "……네?"

 

  "아니면 경비 부르겠습니다."

 

  "아니, 저기요."

 

  "병원의 청소부 분들은 김치나 치우려고 계시는 분들이 아닙니다."

 

  "이건 제가 아니라 그 쪽 후배 분이……."

 

  "이거 누가 가지고 왔죠?"

 

  "……제가 가지고 왔죠."

 

  "원래 쓰레기는 가지고 온 사람이 치우는 겁니다."

 

  "그런 게……!"

 

  맞긴, 하지. 쓰레기는 가지고 온 사람이. 응, 맞긴 한데. ……내가 치워야 하나. 확실히 이대로 나가는 건 좀 양심에 찔리긴 하다.

 

  뭔가 억울한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수긍되기도 했다. 은혜가 멈칫 멈칫 물러서자 무열은 여직 잡고 있던 팔뚝을 놓아 주었다.

 

  근데 저걸 어느 세월에 다 치운담. 은혜의 처진 눈꼬리에 근심이 매달렸다. 소파까지 튄 저 시뻘건 국물들을 언제 다 쓸고 닦는단 말인가.

 

  "저기……."

 

  은혜에게 큰 숙제를 남긴 채 훌쩍 떠나려던 무열이 흘긋 눈길을 주었다. 은혜는 주저하면서도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려 했다.

 

  아니, 도와줄만 하잖아. 이게 어쩌다 이런 상황이 됐는지 유일하게 이해해줄 수 있는 남자였다.

 

  똑같은 반푼이. 특이한 체질. 미묘한 동류로서의 연대감, 뭐 이런 게 생길 법 하지 않나? 그러니까 좀 도와 달라고.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은혜의 작태에 무열은 인상을 찡그렸다. 그리고 처참한 잔해를 남긴 김치를 질린 눈으로 흘겨보며 말했다.

 

  "자기 일은 스스로 하세요."

 

  "……."

 

  그리고 그는 긴 다리를 내뻗어 순식간에 사라졌다. 정말로 텅 빈 휴게실. 그 공허함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던 은혜가 뒤늦게 알아챘다.

 

  저 싸가지 의사는 원칙을 주장한 게 아니라, 단순히 자신의 결벽증을 해소했을 뿐이라는 것을.

 

  “뭐 저런 인간이 다 있어?!”

 

 

  *

 

 

  "……그래서?"

 

  "그래서는 무슨 그래서요. 김치 하나하나 주워서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리고. 그리고 국물, 미친 김치 국물! 무슨 닦고 닦아도 고춧가루가 계속 나와. 바퀴벌레도 아니고 번식을 하나, 진짜. 아, 죽는 줄 알았어요! 계속 화장실까지 가서 걸레 빨고 또 빨고. "

 

  "아니, 그딴 김치는 어찌 됐든 내 알 바 없고."

 

  "그럼 뭘요?"

 

  장장 1시간 동안 한탄을 늘어놓던 은혜가 물었다. 아직도 손에서 김치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한동안 김치는 쳐다도 안 볼 테다.

 

  어젯밤, 광란의 김치 청소를 겨우 끝마친 그녀는 그대로 집으로 돌아와 침대가 아닌 바닥에다 뻗었다. 덕분에 온 삭신이 쑤시는 상태였다.

 

  그래도 매꽃 선녀를 찾아와 징징대니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평화로워지는 것 같았다. 아, 이 맛에 아줌마들이 수다를 떠는구나.

 

  매꽃 선녀는 뻐근한 어깨를 돌리는 은혜를 한심하게 바라보았다. 이 모자란 년. 새벽부터 쳐들어 와 장사 망치는 것도 모자라, 사람 속까지 뒤집어 놓을 심산인가 보다.

 

  "그 남자 말이다, 그 의사! 그러고 그냥 헤어졌어?"

 

  "그럼 그 싸가지를 왜 또 찾아요. 청소 다 했다고 검사라도 받아요?"

 

  "뭐 궁금하지도 않냐? 너 같은 반푼이를 처음 만나 놓고, 그냥 쿨하게 빠빠이해?"

 

  "뭐……."

 

  그러고 보니 그렇다. 살면서 처음 만나 본 동류인데, 너무 쉽게 헤어졌나. 그치만 김치나 치우라는 남자를 굳이 붙잡아다 물어 볼 건덕지도 시원찮았다.

 

  "궁금 안 하다면 거짓말이죠."

 

  "아, 그렇겠지. 이름이라도 알아내던가, 대화라도 좀 해보던가."

 

  매꽃 선녀가 가슴께를 팡팡 쳤다. 은혜는 빈말로도 똑 부러진 성격이라 할 수 없었다. 오히려 조금 맹하여 지켜보는 사람 복장 터지게 만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굳이 뭐라고 더 묻겠어요. 뻔히 다 아는데……."

 

  머리를 긁적이던 은혜가 문득 허한 목소리를 늘어놓았다. 결국 매꽃 선녀도 완벽히 자신을 이해하지는 못하는구나 싶은 듯 했다.

 

  "그 사람도 그렇게 생각했겠죠. 별 다른 말이 없었던 걸 보면. 그냥 나쁘진 않더라구요. 나 같은 사람이 세상에 하나 더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뭐,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쯧쯧."

 

  혀를 찬 매꽃 선녀가 은혜의 귀로 시선을 옮겼다. 저 귀만 없었어도 평범하게 살았을 년이 사서 고생을 한다.

 

  "어휴."

 

  내가 인심 쓴다. 매꽃 선녀는 서랍장을 열어 누런 종이 한 장을 꺼냈다. 부적을 쓰는 종이였다. 은혜가 관심을 보이며 다가왔다.

 

  "갑자기 무슨 부적을 쓰시게요?"

 

  "몰라도 돼."

 

  유려하게 붓을 놀린 매꽃 선녀가 금세 기이한 문양을 만들어냈다. 후후, 성의 없이 입으로 불어 바짝 말리더니 뚝딱 완성된 부적을 대충 접어 은혜에게 던진다.

 

  "이거나 가지고 댕겨라."

 

  "엥. 이게 뭔데요?"

 

  "거, 알 거 없다니까. 그냥 가지고 댕겨. 비싼 거다. 내 특별히 공짜로 주는 거니까 감사하게 생각해."

 

  "어……."

 

  그리고 매꽃 선녀는 이제 꺼지라며 은혜를 과격하게 내쫓았다. 수류탄마냥 날아오는 팥으로부터 도망친 은혜는 늘 그렇듯 서둘러 돌아가야 했다. 정체도 모르는 부적과 함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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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이브 17-06-19 05:14
 
쉽게 잘 들어와서 한번에 다 읽었네요.
은혜의 앞날이 기대됩니다.
작가님 화이팅하세요.
오늘도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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