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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아캄파나 여백작의 고민
작가 : 박레드
작품등록일 : 2017.6.3

아캄파나 여백작의 영지에는 감자도 못 캐는 소드마스터와, 글씨도 못 읽는 드래곤과, 기면증에 걸린 현자가 산다.

 
아캄파나 백작의 고민 - 10
작성일 : 17-06-17 00:12     조회 : 224     추천 : 1     분량 : 57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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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리니의 머릿속이 순간 새하얗게 비어버린다. 레인우드의 붉은 입술 옆, 가지런히 모인 자신의 손톱. 그녀의 시선은 그 손톱에서 떼어질 줄 몰랐다. 위 아래로 옮기기에는 자신의 심장이 불에라도 데인 양 펄쩍펄쩍 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잘 지냈냐는 그 흔한 인사 한 번이 없었지. 하긴, 이제 100년이 훌쩍 넘었으니 슬슬 내게 질릴 때도 된 건가?”

 그러기만을 바란 지가 그의 말대로 100년이 훌쩍 넘었다. 이상한 소리 말라 버럭 소리치려던 브리니는 각고의 인내 끝에 다시 입술을 꾸욱 닫아냈다. 어차피 장난이고, 또 의미 없는 말일 것을 다 알고 있었음에도 아무렇지 않은 척 하기가 힘들다.

 그에게 브리니 아캄파나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존재일 테다. 지금껏 보내온 그의 생 전부에서, 또 앞으로 보내게 될 영생의 전부에서 오직 그녀만이 레인우드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 테니까. 남자는 브리니를 사랑한다. 때문에 브리니는 자신을 향한 그의 애정을 곡해하고 싶지 않았다. 방향은 조금 다르더라도, 그것이 레인우드를 향한 자신의 사랑이었다.

 그의 손아귀에서 슬쩍 손을 빼낸 브리니가 천천히 팔을 들어올린다. 잠시 허공에 멈춰있던 손가락이 레인우드의 눈가를 슬슬 쓸었다. 가까이에서 보니 양쪽 눈 전부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잠에 못 든 지 얼마나 됐어?”

 “나흘.”

 “제도에 유지하고 있는 마법진 때문이야?”

 “맞아. 거기에 더불어 공중정원까지 내 수중으로 넘어왔어. 공중정원의 수호 골렘이 며칠 전에 명을 다 했거든. 그곳 마법진이 완성될 때까지 당분간 잠에 못 들어.”

 브리니의 손에 몸을 맡긴 남자가 눈을 감는다. 평온한 얼굴이었다.

 “네게 너무 많은 일이 맡겨진 거 아니야?”

 “이 정도는 예상했던 일이니까.”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눈가를 쓰다듬은 후, 천천히 손을 뗀다. 그에 따라서 레인 우드도 조용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직전에 비해 배는 고단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아무래도 휴식은 내가 아니라 네게 더 급한 거 같네. 제도의 마법진이라도 당분간 나한테 맡기는 게 어때.”

 “내가 그렇게 무능력한 남자로 보여?”

 그렇지 않다는 건 브리니뿐만이 아닌 세상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예전이라면 억지로라도 제도 마법진의 통솔권을 넘겨받았을 텐데, 하필 또 몸이 성치 않은 덕에 그리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팔을 내린 브리니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내젓는다. 레인우드는 그녀 못지않은 황소고집이라 어차피 무슨 말을 해도 들어먹지 않을 게 뻔했다.

 소리 없이 숨을 내쉬던 레인우드가 다시 입을 연다.

 “가려고?”

 “너도 곧 수업이라며.”

 “그렇긴 해. 그럼 내일 점심이라도 나랑 같이 먹을까?”

 “글세. 메드울에게 물어봐야 될 텐데……”

 “내가 너랑 먹고 싶다는데 누가 감히 훼방을 놔.”

 그의 말에 브리니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어차피 같은 아카데미 부지 내에 있으니, 레인우드가 메드울을 찾아 가는 데에는 딱히 걸림돌이라 부를 만한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메드울은 레인우드의 관심을 다소 꺼려하는 부분이 있다. 단순히 상사라는 상하관계 때문만은 아니었다. 사람 속을 읽는 것이 숨 쉬는 것만큼 익숙한 메드울에게, 심연처럼 어두워 그 어떤 것도 보이지 않는 레인우드는 충분히 기피할 만한 존재였다. 그녀는 자신 때문에 이곳까지 끌려온 그가 타인으로 인해 괜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으면 했다. 어찌 보면 그것이 브리니가 보일 수 있는 최소한의 양심이었다.

 “좋아, 내일 점심에 이곳으로 올게. 난 이가 시릴 만큼 달달한 딸기 케이크가 먹고 싶어.”

 “아예 가게 하나를 내줄테니 실컷 먹어.”

 “그건…… 노력해볼게.”

 짧게 인사를 건넨 브리니가 집무실을 빠져 나간다. 내내 좋지 않은 표정을 짓고 있더만, 방을 빠져나갈 때 역시 어둡고 우울한 얼굴이었다. 레인우드는 그녀의 흔적이 사라진 문을 한동안 말없이 바라봤다. 보이지는 않지만 충분히 알 수 있다. 3층을 벗어난 인기척이 곧 계단을 타고 내려서 건물 밖으로 향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로서는 참으로 오래간만에 느끼는 브리니의 향이었다.

 “카인.”

 그러나 지금 상황에선 그다지 반갑기 만한 재회는 아니다. 레인우드의 불음에 집무실 벽 한편에서 새까만 그림자가 일어선다. 천장에 달라붙어 수없이 방을 배회하던 어둠은 금세 그의 앞에 도달해 하나의 형체로 바뀌었다. 그 형체는 흡사 인간의 형상과 비슷했다. 짧게 뒷목을 주무른 그림자가 레인우드 앞에 무릎을 꿇는다. 느릿하게 눈을 껌뻑이자 순식간에 증발할 것만 같은 어둠은 익숙한 얼굴의 남자로 변모해 있었다.

 “그녀가 아캄파나를 벗어났으니, 곧 소식을 들은 약탈자들이 이곳으로 몰릴 거다. 천공에 내 마력을 둘러놔.”

 마력을 둘러놓는다는 것은 일종의 영역표시를 의미한다. 정확히는 ‘내게 대적할 자신이 있다면 뚫고 와라’ 라는 선전포고에 더 가까웠지만.

 그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던 카인이 한 박자 늦게 고개를 들어 올렸다. 무언가 마음에 차지 않는 듯한 얼굴이다.

 “그건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주인의 힘은 공중정원에 대부분 들이 붓고 있다고. 이곳까지 쫓아올 놈들은 이미 그 사실까지 알고 있을 걸.”

 “그래서.”

 “차라리 날 아가씨에게 붙여놔. 물론 그녀의 자존심이 조금 상하기는 하겠지만, 주인의 부탁이라 말하면 충분히 받아드릴 것 같은데.”

 레인우드는 아주 잠깐 그의 의견을 되새겼다. 잠을 자지 못한 것과 별개로, 힘의 제약이 생긴다는 부분에선 그의 입장에서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공중정원은 고대의 마도병기가 잠들어 있는 곳. 괜히 한 눈 팔다 침입자라도 들어온다면 일이 상당히 난감해진다. 마도병기는 사라져버린 아크드래곤의 혼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존재 자체만으로도 세계를 멸망시킬 강대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레인우드에게는 세계의 균형을 유지시켜야 할 중대한 의무가 존재한다. 만약 침입자로 인해 마도병기가 되살아나기라도 한다면 그 의무가 깨져버리게 되는 것이다.

 “내 말대로 진행해.”

 그러나 레인우드는 브리니의 자존심을 건들 생각이 없었다. 털끝만큼도. 전혀.

 “어휴, 이거 또 이러네. 이봐, 주인아. 아가씨가 비록…… 신을 죽인 대가로 영생의 업보를 지게 됐지만. 그럼에도 분명 현존하는 마도사들 중 가장 완벽한 마도사라고. 주인이 몇 년 동안 달라붙고 있는 그 마법진도, 아가씨의 손만 닿으면 아주 뚝딱일걸?”

 레인우드는 그의 말을 무시하고 품속의 만년필을 집어 던졌다. 허공을 헤집고 날아간 만년필은 한 바퀴 크게 돌아 그대로 카인의 발치에 안착한다.

 “무시하지 말고 아무 대답이라도 좀 해봐. 아, 정말― 왜 꼭 아가씨한테만 무리 하는 거야? 다른 놈들은 아주 못 부려먹어서 안달인 주제에!”

 “알아서 뭐하게.”

 “그야 그 때문에 내가 열 배는 더 고생하게 생겼으니까!”

 그리 말하면서도 레인우드가 던진 만년필을 품 안에 갈무리 한다. 레인우드의 마력이 진하게 농축된 이 마도구는, 동제국 아카데미 천공 위로 선황제의 땅이라는 이름표를 새기게 될 것이다.

 말없이 창밖만 응시하던 남자가 얼마안가 그 무거운 몸을 일으킨다. 곧 있으면 아카데미 내에 가장 값비싼 수업이자, 그가 담당하고 있는 과목인 ‘마도학의 이론’ 수업이 시작 될 시간이었다. 카인 역시 우측에 놓인 괘종시계를 확인하고는 그를 따라 몸을 일으켰다.

 “너는 그 여자에게 너무 약해.”

 “신경 꺼.”

 서류를 챙긴 레인우드가 카인의 곁을 지나 문으로 다가선다.

 “절대 잊지 말라고, 주인. 신이 된 자는 사사로운 감정 따위에 휘둘려선 안 된다는 걸.”

 말을 마친 카인은 다시 한 줌의 그림자가 되어 천장 너머로 자취를 감추었다. 그의 부재를 확인한 레인우드가 포켓에 넣어 두었던 안경테를 콧등 위로 안착시킨다. 평화로운 면학의 공간. 그는 사람 내음이 풀풀 나는 이 장소가 퍽 마음에 들었다.

 브리니 역시 그렇게 느낀다면 좋을 텐데.

 

 ++

 

 “지금 뭐하는 거야? 검 쥐는 법 하나 제대로 못 모르면서, 감히 이 몸과 대련을 하고 싶다고?”

 “그, 그게 아니라 제가 지금 너무 떨리는 마음에……”

 “그게 훨씬 더 어줍잖아 보이잖니. 감정 하나 제대로 못 조절하는 주제에 그 커다란 무기를 어찌 사용하려고? 검술 훈련은 때려 치고 가서 앉은뱅이 학문이나 더 배우시지!”

 소녀의 말에 주변을 뱅 둘러앉은 학생들이 낄낄 웃음을 터트린다. 곳곳에서는 휘파람 소리와, 그 휘파람에 가려진 야유 소리가 소란스럽게 포진되어 있다. 멀찍이 서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던 브리니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고개를 젓고 있는 건 그녀만이 아니었다. 옆에 나란히 선 다른 시종들 중에는 혀를 차거나 아예 고개를 돌리는 자도 빈번했다. 역시 저 나이대의 젊음은 귀천을 따지지 않고 모두 동일하다. 아마 시종들 모두가 그리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문제는 메드울의 나이만 너무나도 동떨어져 있다는 사실이었지만.

 “다음은 누구야? 난 앞으로 4분 후에 그늘 아래로 갈 예정이니까 빨리 말하렴.”

 “저요!”

 “아니, 저로 해주십시오! 저희 가문의 검술을 시험해보고 싶습니다!”

 눈에 띄어도 너무 띈다. 심지어는 딱히 긍정적인 의미라 표현할 수도 없는 존재감이었다. 브리니는 다시 한 번 주위 시종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다행히도 마음씨 넓고 인간미 넘치는 타 귀족의 시종들은, 그녀의 사과를 아주 유쾌하게 받아드렸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저희 아가씨가 워낙에 천방지축이라……. 제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괜찮습니다. 오히려 즐거워 보이는 걸요? 힐더의 황자가 방문한다는 소문이 돈 후 한동안 분위기가 어두웠었는데, 버니니 아가씨 덕분에 우리 반은 아주 활기차고 보기 좋아요.”

 “활기찬 수준이 아니지요! 저렇게 영리하고 지혜로운 아가씨는 제 생에 처음 봅니다. 엘프라는 종족은 본래 다 그런 것인가요? 브릴 양은 어때요? 다른 엘프를 본 적이 있나요?”

 그녀를 향한 시선에는 순수한 호기심과 흥분으로 짙게 물들어 있다. 다소 난처한 기분이 들었지만, 본인이라도 처신 잘하자는 생각에 브리니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예. 퀼랜드의 왕도를 걸으면 종종 다른 엘프를 볼 수 있어요. 다들 하나같이 특출한 외향과 능력을 갖고 있는데…… 궁금하시면 나중에 꼭 방문해 보세요. 퀼랜드는 문화가 아주 아름다운 왕국이랍니다.”

 “세상에나― 부러워라. 엘프들은 우리 제국과 통 교류하지 않으려 해서, 우린 그들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요.”

 모를 만 했다. 엘프는 크라수스 제국와 힐더 제국에 진한 적대 감정을 품고 있으니까.

 “아무리 봐도 인형처럼 고고하고 아름다우시군요. 우리 아가씨와 마음이 잘 맞으면 좋으련만.”

 저 껍질에 든 실체가 100살에 다다른 노인내라는 걸 몰라서 하는 소리이다. 그래도 브리니는 그들이 무한한 착각 속에서 헤엄치게 얌전히 내버려 뒀다. 그저 선택의 실수로 ‘버니니’라는 인물을 끝도 없이 망쳐버린 것에 대하여, 버니니 당사자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할 뿐이었다.

 “더스트 황자는 만나 보셨어요?”

 익숙한 이름에 브리니가 슬쩍, 고개를 들어 올렸다. 힐더 제국의 황자, 더스트 멕프레이 힐더. 이제껏 나온 대화 주제 중 가장 흥미로운 주제였다.

 “저 도련님 마중하러 기숙사 건물로 가다 우연히 마주쳤어요!”

 “어머나! 그 분은 어떤 분이신가요? 소문만 무성하지, 실제로는 뵌 적이 없어 너무 궁금해요.”

 적발의 물음에 갈색 머리 시종이 곰곰이 머리를 굴린다.

 “현 힐더 제국의 황제랑 아주 판박이. 이 한마디로 전부 설명이 가능해요.”

 역시 그녀만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 아니다. 브리니가 시종의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할 동안, 주위에 빽빽이 모인 여시종들이 더스트에 대한 이야기 꽃을 피웠다.

 “그렇다면 미남이라는 소리잖아요? 그것도 거친 매력의 미남! 하아, 심장 떨려라.”

 “호호! 우리가 떨릴 게 뭐가 있어요? 게다가 그 제국은 크라수스와 여전히 냉전 상황이라구요. 잘못하다간 괜히 이쪽만 피 볼 수도 있어요.”

 “듣자 하니, 더스트 황자가 힐더 제국 후계 서열에서 두 번째라고 하더군요. 그렇게 귀한 분이 이런 동쪽 끄트머리엔 무슨 일로 오게 된 걸까요.”

 “그러게요. 우리 같은 사람이 그 깊은 의중을 어찌 알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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