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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악마의 반려(伴侶)
작가 : 미로
작품등록일 : 2017.6.15

인간계로 추방당한 악마 찬성을 우연하게 발견해 구해준 여자, 유 별. 찬성이 이계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붉은 돌을 찾아야만 한다고. 그렇게 갖는 것이 두려운 악마와 버려지는 것이 익숙한 여자의 동거가 시작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두 사람 사이에선 달콤하면서도 위험한 욕망이 피어나기 시작하는데... 저마다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어두운 음모들. 그리고 그 음모들을 마주하고 선 두 사람의 섹시하고도 매혹적인 로맨틱 판타지가 시작된다.

 
7. 제발, 날 두고 가지 마
작성일 : 17-06-15 20:57     조회 : 256     추천 : 0     분량 : 8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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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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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휴가철이라기엔 조금 이른 날짜 덕분에 적당히 한적한 부산의 한 해수욕장.

 

 별은 시원한 바닷물에 발을 담근 채 그 한적함을 즐기고 있었다.

 

 

 “이해가 되질 않는 군. 고작 소금물에 발을 담그기 위해 이 먼 길을 온 것이라니.”

 

 

 파도가 닿지 않을 만큼 멀찍한 거리를 유지한 채 별과 발을 맞춰 걷고 있던 찬성이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바다가 싫으면 벤치나 카페에 앉아있어도 된다고 그렇게 말했건만. 5분도 채 버티지 못할거면서 왜 굳이 따라 온 건지.

 

 

 “고작 물속에 발을 담그고 있는건 찬성 때문이잖아요! 난 당장이라도 물이 턱 끝까지 차오를 때 까지 이 안으로 걸어 들어가고 싶다구요.”

 

 “어떻게 그렇게 위험한 짓을... 더 이상 들어가지 마라. 위험해.”

 

 “이렇게 시원하고 이렇게 좋은데... 왜 물을 싫어하지. 고양이라서 그런가...”

 

 “시원하지만 안전한 것은 아니다. 불이 따뜻하다고 안전한 것이 아니듯. ...그리고 고양이와는 관계없다.”

 

 

 찬성이 마지막 문장을 작게 흐리며 말했다.

 

 찬성에게 있어 ‘물’은 ‘불’과 같은 존재였다. 찬성이 유별난 것이 아니라, 이인계에선 물의 위상이 그러했다.

 

 ‘물’과 ‘불’은 필요한 만큼 소량을 사용하면 득이 되지만, 그 이상을 사용하면 위험도가 급격히 증가하고, 더 나아가 사람을 사망에까지 이르게 할 수 있다. 때문에 위험한 물질이다.

 

 이것이 이인들의 기본적인 생각의 구조였다.

 

 찬성이 이를 주장하며 설득할 때면, 별은

 

 

 “물이 코 아래에 있으면 호흡을 방해하지 않아서 전혀 죽을 일이 없는걸요.”

 

 

 라고 반문했지만, 찬성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갑자기 바닥이 꺼지거나, 큰 파도가 덮쳐오는 등... 자연의 일은 모르는 거라나.

 

 길고 긴 토론 끝에 별은 찬성을 설득하길 포기했다.

 

 

 ‘그래, 발 담그고 바다내음 맡고 경치 구경하고 그러면 됐지. 뭔가 굉.장.히 아쉽지만 그걸로 됐지 뭐...’

 

 

 별의 마음속에서 오랜만에 바다에 놀러왔다는 기쁨과, 여기까지 왔는데 바다로 풍덩 뛰어들 수 없다는 아쉬움이 끊임없이 교차했다.

 

 하지만 아쉬움이 점점 자신의 영역을 넓혀갔고, 별은 점점 울상이 되어갔다.

 

 별의 표정이 썩 좋지만은 않다는걸 감지한 찬성은 투덜거리는 것을 멈추고 즐겁게 주변을 구경하는 척을 하기 시작했다.

 

 

 “날씨가 참 좋군.”

 

 “그렇네요.”

 

 

 별이 저 멀리 바나나보트를 타는 무리를 구경하며 영혼 함유량 0%의 대답을 건네자, 찬성은 별의 눈치를 보며 힘겹게 머리를 굴려 다음 건넬 말을 생각해냈다.

 

 

 “경치도 참 좋군. 이곳으로 오길 잘 한 것 같다.”

 

 “네, 경치가 좋죠. 홀딱 벗은 언니들도 많고.”

 

 “그래, 경치가 좋... 뭐라고?”

 

 “역시, 찬성은 비키니 입은 여자들 구경하고 있었구나.”

 

 

 별은 작은 목소리로 ‘남자들은 정말 다 똑같네.’ 라며 중얼거렸다.

 

 찬성은 생각도 못한 전개에 당황하여 반박할 타이밍을 계속해서 흘려보내고 있었다.

 

 그는 수영복을 입고 있는 주변의 많은 사람들을 크게 대수롭다 여기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이를 단시간에 설명하기엔 찬성의 기지가 부족했다. 한참을 말 한마디 꺼내지 못하고 있던 그는, 간신히

 

 

 “그렇지 않다.”

 

 

 라는 말을 뱉어냈다.

 

 

 “그렇지 않으면요? 뭘 보고 있었는데요? 어떤 경치가 좋았는데요?”

 

 

 별은 새삼 당황하는 그의 모습이 재밌어서 더 집요하게 질문했다.

 

 이렇게 당황해버리면 더 괴롭히고 싶어지잖아.

 

 초등학생 시절, 여자아이 치마 들추는 것이 삶의 낙이던, 그 당시엔 전혀 이해할 수 없었던 그 남자아이들의 마음이 약간은 이해되는 별이었다.

 

 

 “...그냥 앞을 보고 걷고 있었다.”

 

 “에이, 그게 뭐예요. 좀 더 제가 믿을만한 대답 없어요?”

 

 

 현재 찬성의 머리에선 저 정도의 대답이 한계였다.

 

 그렇다고 사실대로 ‘널 보고 있었다.’고 말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하늘을 보고 있었다. 색이 참 예쁘군.”

 

 “다른 건 없어요? 그것도 크게 믿어지진 않는데.”

 

 

 ...신났군, 신났어.

 

 

 “...바다의 색을 보고 있었다. 하늘이 반사되어 같은 색을 띄고 있군.”

 

 “하핫. 알겠어요. 이번엔 믿어줄게요. 오늘 하늘이 예쁘긴 하네요.”

 

 

 별은 언제 울상이였냐는 듯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는 찰방찰방 물장구를 치며 신발을 들고 있는 양 손을 파닥거렸다.

 

 

 ‘날 놀리더니 기분이 금세 좋아졌군. 알기 쉬운 성격이라 그나마 다행인가.’

 

 

 찬성은 언젠간 기회를 잡아서 이번 일이 오해였음을 꼭 해명 해야겠다 마음먹었다.

 

 

 “그런데, 세 번째 부탁은 언제 말해주실 거예요?”

 

 “세 번째, 네 번째는 그 부탁이 필요해지는 때가 오면 이야기 하지.”

 

 “그 때가 언젠데요?”

 

 “그건 나도 알 수 없다. 그 때가 오지 않을지도 모르고.”

 

 “그게 뭐예요~? 뭐길래 그렇게 꽁꽁 숨기는 거예요?”

 

 

 찬성은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옆에서 ‘궁금하다’며 폴짝거리는 별의 모습을 더 오래 지켜보고 싶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 때가 생각보다 금방 올지도 모른다. 그러니 조금만 기다려 줬으면 좋겠는데.”

 

 

 ‘치-’하는 짧은 소리와 함께 오른발로 돌부리를 걷어차듯 크게 한번 튕겨낸 별은 곧이어

 

 

 “알겠어요. 기다리지 뭐.”

 

 

 라고 하며, 찬성이 첫 부탁을 했을 때 지었던 그 오묘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

 

 

 부산으로 출발하기 전날 밤.

 

 그러니까 창덕궁에 있는 기사단 서울지부에서 탈출한 후.

 

 부탁할 것이 있다던 찬성은 ‘우선 위험하니 당장 어디로든 멀리 가야한다.’면서 별에게 목적지를 선택해 줄 것을 요청했다.

 

 

 “네가 원하는 곳이고 당장 갈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좋다.”

 

 

 그렇게 난데없는 부산행이 시작되었다.

 

 두 사람은 그 길로 곧장 기차역으로 가 출발이 가장 빠른 무궁화호에 올라탔다. 1초라도 빨리 서울을 벗어나는 것이 그들에겐 무엇보다 더 중요했다.

 

 

 “자, 이제 두 번째 부탁 말해봐요. 부탁이 딸랑 목적지 선택 하나일 리는 없을테구.”

 

 

 별은 궁금해서 못 참겠다는 듯이 자리에 앉자마자 찬성에게 물어왔다.

 

 기차가 출발하기도 전이었다.

 

 

 “두 번째는, 내가 인간계를 떠나기 전까지 네가 나와 함께 다녔으면 하는 것이다. 그게 그나마 안전해지는 길이니까. 날 믿고 따라다녀 줄 수 있겠어?”

 

 “그거야, 부탁이라고 할 수도 없겠네요. 오히려 제가 저 좀 데리고 다녀달라고 부탁해야 할 처지인걸요. 찬성은 왜 저를 굳이 데리고 다니려고 하는 거예요?”

 

 “나도 너를 돕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다고 해두지.”

 

 

 정확히 말하면, 지키고 싶다는 소망이었다.

 

 

 “그럼 두 번째 부탁은 없는 거네요? 하나 마나 한 부탁이니까.”

 

 “나와 함께 다니는 내내, 네 존재가 내게 피해나 짐이 될거라곤 추호도 생각하지 말 것. 이 부탁으로 대체하지. 꼭 들어주었으면 좋겠다.”

 

 “흠... 이리저리 짱구를 굴려 봐도 제가 찬성에게 득이 될 것 같진 않지만, 노력해볼게요.”

 

 “널 돕겠다는 내 소망을 이루는 것으로 충분히 이득이다. 그러니 괜한 생각으로 내 소망에 결례를 범하지는 않았으면 좋겠군.”

 

 

 별은 뭔가 내키지 않았지만, 불과 한 시간 전에 자신이 뱉었던 말 그대로라 차마 반박할 수 없었다.

 

 

 “알겠어요, 뭐...”

 

 

 그녀는 끝을 흐리며 생각이 많은 표정으로 창밖을 응시했다.

 

 각자의 생각에 빠져 조용해진 두 사람. 하지만 기차가 출발하고 첫 번째 역인 영등포역을 지날 쯤,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에게 기대어 단잠에 빠져 있었다.

 

 

 *****

 

 

 한참 바닷물의 시원함을 (발로나마)느끼며 즐기고 있던 별은, 배가 너무 고파서 쓰러질 것 같다는 찬성의 핑계에 어쩔 수 없이 해변에 있는 브런치 카페로 발을 옮겼다.

 

 바다가 잘 보이는 테라스에 운 좋게 자리를 잡은 둘은 소고기 스테이크를 곁들인 오리엔탈 샐러드와 고르곤졸라 피자를 주문했다.

 

 별은 고기를 겉만 살짝 익히는 미디움레어로 주문하길 원했지만, 찬성은 고기는 꼭 완전히 익혀야 한다며 극구 반대했다.

 

 

 “이인들은 덜 익힌 고기도 안 먹어요?”

 

 “아니, 잘 먹는다. 이건 그냥 내 개인적인 취향일 뿐이야.”

 

 

 끝끝내 자신의 취향대로 샐러드를 주문하는데 성공한 찬성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분명 처음 봤을 땐 ‘가리는 음식이 없다’고 했던 것 같은데 말이지...

 

 약 20분 뒤 서빙 되어 나온 음식은 굉장히 맛있었다. 찬성이 원했던 속까지 잘 익은 소고기는 매우 부드러웠고, 고르곤졸라 피자는 별의 마음속 랭킹에서 ‘지금까지 먹어본 피자 중에서 최고’라는 평가를 받았다.

 

 

 “여기 맛있죠? 되게 괜찮다. 내일 또 와야지.”

 

 

 별은 자신의 이 행복감을 찬성과 공유하고 싶었다. 다행히 찬성도 음식들이 꽤나 마음에 든 눈치였다.

 

 

 “그렇군. 우리 주방장이 구워줬던 스테이크에 견줄 만큼 괜찮아.”

 

 

 저 정도의 표현이 찬성에겐 대단한 칭찬임을 별은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찬성은 단 한 번도 밥을 먹으며 맛있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

 

 딱 한번, 별이 해준 제육볶음을 먹고 ‘먹을 만 하군.’이란 무뚝뚝한 평가를 남긴 적은 있었지만.

 

 

 “친한 주방장이 있나 봐요, 자주 가는 음식점의?”

 

 “아니, 우리 집 주방장.”

 

 “아, 가족분이 레스토랑 해요?”

 

 “아니, ‘우리 집’ 내가 사는 집의 주방장.”

 

 

 잠시 정적이 흐르고.

 

 집에 주방장이 있다고? 개인 집에?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면서 부러운 소리래.

 

 별의 혼란스러워하는 얼굴을 본 찬성은

 

 

 “왜 그런 표정이지? 누구나 집에 주방장 한 명씩은 있는 것 아니었나?"

 

 

 라는 대사를 능글맞게 뱉어냈다.

 

 찬성에게 한방 먹은 별이 어이없는 듯 코웃음을 쳤다.

 

 가끔 한번씩 재수없는 매력을 발산한단 말이지. 참 양파같은 남자.

 

 매사에 진지한 듯 하다가, 살짝만 놀려도 순진한 매력 뽐내며 당황하고, 가끔은 이런 재수 없는 부잣집 도련님 컨셉까지.

 

 별은 이 양파를 싫어하는 양파같은 남자의 면전에 대고 '재수 없다'고 얘기할 수 있길 다시 한번 소망했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친해지면 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

 

 

 식사를 마치고 나가는 길, 별은 열린 창을 통해 흘러들어오는 햇빛을 고스란히 받아 눈부시게 빛나고 있는 카페의 한 진열대에 시선을 뺏겼다.

 

 색색의 원석으로 장식된 다양한 장신구가 놓여 있는 그 진열대의 중앙엔, 하트모양으로 세공된 붉은 원석이 달린 목걸이가 진열되어 있었다.

 

 

 “귀환석을 찾았다면 이렇게 생겼었을까요?”

 

 

 그 영롱한 핏빛에 매료된 별이 목걸이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물었다.

 

 

 “글쎄. 나도 실제로 본 적은 없어서. 이만큼 아름다웠겠지. 붉고 투명한 돌이라 했으니. 이 목걸이가 마음에 든건가?”

 

 “네, 정-말 예쁘네요... 귀환석, 찾았으면 좋았을텐데요.”

 

 “그랬겠지. 하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애초부터 내게 귀환석 같은 것은 없었을 지도 모르겠어.”

 

 “뭐라구요? 어째서요?”

 

 “나를 인간계에서 죽게 만들고 싶었겠지. 본 모습으로 돌아온 후 하루면 전부 회복되었어야 하는 힘이 아직까지 반도 채 회복되지 않고 있는걸 보면, 아마 예정된 1년의 시간을 다 채웠어도, 저절로는 본모습으로 돌아올 수 없었을 거다. 규정과는 다르게 2중 3중으로 꽉꽉 잘도 봉인해놓은 모양이야.”

 

 “왜 찬성에게 그렇게까지...!”

 

 “무진이라는 자가 있다. 두 명밖에 없는 1급 무사 중 한 사람이지.”

 

 

 찬성은 인간계로 추방당하기 직전에 보았던, 짧은 백발에 백색의 제복을 입은 그의 뒷모습을 떠올렸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자연스럽게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무진은 힘을 탐하고 있다. 능력으로 치면 이미 이인계에선 현존최강이라고 해도 무방하지만, 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많은 것을 얻으려 하고 있어. 그가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나를 하루빨리 제거하는 편이 수월했겠지. 내가 어떻게든 방해했을 테니까.”

 

 “그런... 이인계로 돌아간다고 찬성이 안전해지는 건 아니였네요...”

 

 

 별이 마주 잡은 자신의 두 손을 꼼지락 거리며 걱정스러운 눈망울로 찬성을 올려다 보았다.

 

 

 “걱정하지마라. 네가 생각하는 것 보다 나는 훨씬 강하니까.”

 

 

 별의 끄덕거림을 마지막으로 두 사람은 카페를 나섰다.

 

 출구로 향하는 그 짧은 시간동안 별은 구석에 진열된 그 핏빛의 목걸이를 흘긋흘긋 세 번이나 돌아보았다.

 

 별과 찬성은 소화시킬 겸 해변가를 걸었다.

 

 그리고 잠시 후 두 사람은 나무그늘이 시원하게 진 나무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맛있는 것을 먹어 배도 부르고, 바닷바람도 시원하게 불고. 별은 자신을 둘러싼 조건 하나하나가 모두 만족스러웠다. 옆에 앉아 무언가 딴 생각을 하는 듯한 이 남자까지도.

 

 달고 시원한 것만 손에 들려있다면 정말 완벽 할 텐데, 라고 생각하던 그 순간. 저 멀리 점심을 먹었던 카페 바로 앞에 서 있는 귀여운 아이스크림 트럭이 별의 시야에 포착됐다.

 

 

 “찬성!”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던 찬성은 갑작스런 별의 부름에 몸이 들썩하고 튈 정도로 놀라며 별을 돌아봤다.

 

 

 “무슨 생각을 했길래 그렇게 놀라요?”

 

 “음? 아니? 아무 생각도.”

 

 “흐음... 찬성 저 아이스크림 사다 주세요.”

 

 

 별의 뜬금없는 요청에 찬성은 “뭐?”라고 반문했다. 별은 태연하게 아이스크림 트럭을 손으로 가리키며

 

 

 “저-기 아이스크림 트럭 있어요. 저 아이스크림 먹고 싶어요. 응?”

 

 

 하고 졸랐다.

 

 별은 찬성이 ‘같이 가자’고 했을 경우 어떤 말로 찬성을 설득해서 혼자 가게 만들지를 열심히 궁리했다. 하지만 그런 별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찬성은 너무도 흔쾌히

 

 

 “그래. 금방 사 올테니 어디 가지 말고 여기 가만히 앉아서 쉬고 있어.”

 

 

 라고 하며 벌떡 일어나 별의 머리를 쓱 한번 쓰다듬고는 아이스크림 트럭을 향해 가버렸다.

 

 일이 이렇게 순순히 풀릴 줄은 전혀 상상도 못했던 별은 당황 반 즐거움 반이 섞인 표정으로 잠시 그 뒷모습을 멍하니 지켜보았다.

 

 생각지도 못한 그의 다정함에, 별은 어쩐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찬성과 별의 거리가 어느 정도 멀어지자, 시멘트 바닥에서 피어올라온 아지랑이가 격하게 일렁거리며 그의 뒷모습을 흐려놓았다.

 

 별이 몸을 틀어 시선을 바다로 향했다.

 

 멀리 보이는 바다는 외국의 바다처럼 오색찬란한 에메랄드빛은 아니었다. 하지만 별의 눈앞에 펼쳐진 칙칙한 검푸른색의 바다도 나름대로 매력적이었다.

 

 별과 바다 사이엔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하나 놓여있었다. 그리고 별은 세네살난 남자아이가 엎드린채로 뒤로 기어서 그 계단을 내려가려고 시도하고 있는 장면을 목격했다.

 

 꼬마아이는 혼자였다. 그 주변엔 아이의 부모로 보이는 사람이 일절 보이지 않았다.

 

 놀란 별이 자리를 박차고 아이에게 달려갔다.

 

 

 “얘, 너 그렇게 내려가면 위험해. 누나가 내려다줄까?”

 

 “시러-”

 

 

 아이는 야무지게 대답을 한 후 그 짧은 팔다리를 바들바들 떨어가며 한 칸의 계단을 내려가는데 성공했다.

 

 아이가 뒤로 굴러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된 별은 계단에 앉아 아이가 중심을 잃으면 언제라도 붙잡을 준비태세를 하고 있어야만 했다.

 

 별의 손이 자신의 몸에 닿는 것이 느껴지면, 아이는 “혼쟈!”라고 소리치며 몸을 좌우로 흔들어 보임으로써 강력하게 거부의사를 표시했다.

 

 어쩔 수 없이 별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아이와 속도를 맞춰 계단을 내려가는 수밖엔 없었다. 어떻게든 중심을 잡으려 씰룩거리는 아이의 엉덩이를 보며, 별은 그저 흐뭇한 표정으로 몰래 아이의 모험에 동참했다.

 

 

 “아이고, 현우야!”

 

 

 아이가 가까스로 열 계단을 내려갔을 때, 아이의 엄마로 보이는 여자가 눈물범벅이 된 채로 별과 아이에게 달려왔다.

 

 여자는 아이를 잽싸게 안아들고 가쁜 숨을 내쉬며 끌어안았다. 한참을 ‘다행이다’라고 중얼거리던 여자는 별에게 연신 고맙다며 허리를 숙였다.

 

 얼마나 놀라고 얼마나 찾아 헤맸을까. 별은 아이를 안고 계단을 오르는 여자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여자의 뒷모습이 계단 너머로 사라졌다.

 

 이윽고 누군가 나를 그렇게 찾아 헤매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뒤늦게 별의 뇌리에 스쳤다.

 

 흐뭇해하고 있을 군번이 아니었다.

 

 별은 벌떡 일어나 계단을 뛰어올라갔다. 아니나 다를까, 양 손에 눈사람 모양의 아이스크림을 쥔 검은 옷의 남자가 처음 두 사람이 앉은 벤치의 주변을 이리저리 헤매고 있었다.

 

 주변을 수색한다기 보단 비틀거리는 모습에 가까웠다. 찬성은 마치 엄마를 잃어버린 아이처럼 빙글빙글 그 자리를 돌 고 있었다.

 

 

 “찬성...”

 

 

 별의 목소리를 감지한 찬성이 재빠르게 뒤로 돌았다. 찬성의 눈동자는 카페에서 보았던 목걸이처럼 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찬성... 미안해요. 난 그저...”

 

 

 별은 설명을 하며 찬성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뗐다.

 

 별이 채 두 번째 발자국을 바닥에 찍기도 전에.

 

 찬성이 쏜살같이 별에게 달려들어 별을 덮쳐 힘주어 안았다.

 

 찬성은 자신이 별을 혼자 두고 간 사이에, 그녀가 이인에게 발각되어 끌려갔다고 생각했었다.

 

 자신이 너무 안일했다고, 혼자 두는게 아니었다고.

 

 그리고 어떤 새끼인지 찾아서 반드시 죽여버리겠다고.

 

 별이 자신의 품 안에 있음을 온 몸의 온 감각을 동원해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 찬성은 별을 끌어안은 채로 한참을 서 있었다.

 

 별은 찬성의 몸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의 떨림과, 가쁜 그의 숨, 거친 그의 심장 고동 소리...

 

 그녀는 자신의 팔을 그에게 둘러 그의 등을 쓸어내렸다.

 

 한참을 토닥여도 찬성이 진정되는 기미가 보이지 않자, 별은 찬성을 팔로 살짝 밀어내어 틈을 벌린 후 찬성을 올려다 보았다.

 

 찬성의 불안정한 붉은 눈동자와 별의 눈이 마주쳤다.

 

 별은 늘 찬성이 자신을 위해 해 주었던 것처럼, 그의 볼에 자신의 오른손을 올려 그의 얼굴을 감쌌다. 그렇게 그 고운 손으로 그의 얼굴을 쓸어내리며

 

 

 “걱정하게 만들어 미안해요. 나 여기 있어요. 어디 가지 않아요. 그러니 불안해하지 말아요.”

 

 

 라고 속삭였다. 찬성은 자신의 얼굴을 감싼 그녀의 작은 손을 자신의 두 손으로 꼭 잡았다. 아직 불안하다는 듯, 그렇게 또 오랜 시간 그는 그녀의 손을 붙잡고 그녀의 온기를 느꼈다.

 

 

 “어디로 가버리지 말거라. 제발, 날 두고 가지 마. 이것이 나의 세 번째 부탁이다.”

 

 

 촉촉한 회색으로 돌아온 찬성의 눈동자가 가늘게 뜬 눈 사이로 별을 바라보며 절절하게 애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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