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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최초의 기억
작가 : 루룰루
작품등록일 : 2017.6.6

"난 죽으면 4년 후에 이름 모를 아이로 다시 살게 돼."
9번째 인생을 살고 있는 소녀, 소녀를 통해 음모를 파헤치려는 괴짜 청년.
소녀가 잊어버린 최초의 기억을 찾고자 한다.

 
1-2화. 신호
작성일 : 17-06-15 18:50     조회 : 322     추천 : 3     분량 : 4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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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 작업을 마치고 나니 창밖에 뜬 인공태양은 겹겹으로 막이 씌워지고 있었다. 계절이 봄이라서 그런지 바깥은 너무 어둡지도, 밝지도 않았다. 역삼각뿔 형태의 유리 벽 속에 담긴 빛의 구는 열매처럼 짙고 붉게 익어갔다.

 "지금아! 저녁준비 끝났어! 얼른 밥 먹자!"

 학교에서 먹었던 점심이 아직도 배에 남은 것 같은데 벌써 저녁이라니. 라는 생각도 잠시, 너무 작업에 몰입했는지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방정맞게 울렸다.

 "네, 금방 나갈게요."

 원래 지금이라면 이 나이에 좀 더 밝게 말했을까? 아니면 반항아의 기질을 보였을까? 내가 나다움을 모르니 정말 괴롭다.

 방문을 여니 매콤하면서도 이국적인 향이 코를 두드렸다. 엄마, 아빠는 식탁에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나는 그 둘 사이 좌석에 앉아 차려진 음식들을 유심히 보았다. 엄마는 그런 나를 보며 밝게 말했다.

 "어때? 맛있어 보이지? 이게 그냥 카레가 아니라 인도식 커리야! 이름이...어...잘...잘프렌치?"

 "잘프레지?"

 "응, 맞아! 잘프레지! 지금이는 역시 똑똑하다니까. 아무튼, 아빠가 직접 인도사람한테 선물 받은 걸로 만든 거야. 지금이가 한번 맛보고 아빠한테 평가해줘."

 엄마는 말을 끝낸 뒤 입 모양으로 '아주 맛있다고'라는 말을 소리 없이 덧붙였다. 아빠는 우리 둘의 모습을 가만히 보더니 너털웃음을 지었다.

 "됐어, 여보. 얼른 먹자고. 요리했던 내가 더 배고파."

 우리는 서로에게 '잘 먹겠습니다'라고 한 후 수저를 들었다. 식사 위에 올려진 '베이비 로메인 상추 샐러드'는 안초비 드레싱과 잘게 갈린 파르메산 치즈가 잘 어울렸다. 커리는 양파, 피망, 토마토, 버섯이 잘 볶아져서 식감이 훌륭했고, 특유의 향신료와 알싸한 매운맛이 우리 가족의 취향을 저격했다.

 "너무 맛있어, 여보!"

 "맞아. 진짜 아빠 우리 몰래 주방장으로 일했던 거 아냐?"

 "맛있다니까 다행이네. 많이 만들었으니, 많이 먹어."

 낮에 보았던 의기소침한 아빠는 온데간데없었다. 사람이 동전의 양면처럼 쉽게 뒤바뀔 수 있나 싶었다.

 "생각해보니 오늘 뉴스를 안 봤네."

 아빠는 내 맞은편에 비어있는 의자를 향해 V자 모양으로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러자 잘생긴 한 남성이 의자에 홀로그램으로 등장하여 저녁 식사 자리에 함께했다. 그는 멋있는 정장을 입고 있었지만, 머리에는 정보수신 모자를 착용하고 있었다. 모자에 뾰족뾰족 튀어나온 안테나는 가시 철퇴 같았다. 아나운서는 다소곳이 앉아 나를 쳐다보다가 곧장 고개를 숙인 후 우리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지구의 소식을 정확히 전달하는 이엔(EN)입니다."

 "이엔! 오늘 국내 주요 소식 부탁해요!"

 이엔은 아빠의 말을 듣자 식탁 중앙 위에 뉴스 화면을 송출했다. 엄마, 아빠는 시선을 살짝 올린 상태에서 밥을 먹었고, 나는 음식에만 몰두했다. 아무리 똑똑한 아이여도 12살부터 뉴스에 관심을 가지면 수상쩍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첫 번째 소식은 채소 가격의 안정화입니다. 올해 봄, 채소 생산량은 작년 봄과 비교하였을 때 월등히 증가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전문가는 이에 대해 지속해서 진행 중인 기후 보호 정책과 환경 기술발전이 농업 환경에 좋은 영향을 준 것이라는 분석이 있습니다."

 "맞아, 옛날에 비하면 정말 많이 싸졌어. 예전에 내가 이 지구에서 받은 노동시간량을 상추쪼가리에 다 쏟을 정도로 비쌌다니까. 지금은 3~4분 정도 노동시간을 지불하면 야채를 살 수 있으니. 정말, 다행이야."

 엄마는 말을 마치더니 마지막 남은 상추 샐러드를 전부 자기 접시로 가져갔다. 이엔은 엄마를 보며 방긋 웃었고 다음 뉴스 화면을 띄웠다.

 "다음 소식입니다. '휴머노이드 차별법' 통과 이후, 전 지구 내 휴머노이드 이마에 'R'이라는 글자가 새겨졌다는 소식입니다. 이 R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이후..."

 아빠는 마지막 남은 카레 한 수저를 입으로 넣으려다 멈추더니 그릇에 내렸다. 상추를 입에 물고 있던 엄마는 곧장 이엔을 향해 X자 모양으로 손가락을 움직였고, 이엔은 말을 멈추더니 고개를 숙였다.

 "다음에도 신속하고 정확한 뉴스로 찾아오겠습니다."

 이엔은 의자에서 사라졌다. 다만, 참을 수 없는 정적이 식탁 위에 흘러 내렸다. 떨리는 아빠의 두 눈동자에서 흘러나오는 분위기는 부엌에 숨 쉴틈 없이 가득 채웠다. 엄마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아빠 곁으로 다가갔다. 양손을 아빠의 어깨에 올린 엄마는 안타까운 눈으로 아빠를 바라봤다. 엄마의 눈망울은 검은 밤에 천천히 내리는 흰 눈과 같았다.

 "들어가서 좀 쉴래? 설거지는 내가 할게."

 "아니야, 내가 할게! 식기세척기에 넣기만 하면 되는데 뭘."

 엄마는 나를 보며 방긋 웃었고, 아빠는 애처로운 눈으로 날 보았다.

 "그럼 설거지는 지금이한테 맡길게. 난 너희 아빠를 맡아야겠어."

 아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안해, 나 때문에. 오늘은 좀 일찍 잘게."

 아빠는 부엌을 벗어나 곧장 안방으로 걸어갔다. 우리의 위로가 부담스러웠는지 아빠의 두 어깨는 더 땅으로 축 처진 것만 같았다. 그 너머 창밖을 보니 인공 태양은 어느새 작게 수축하여 보름달처럼 바뀌었다. 별 없는 어둠 속, 홀로 있었다.

 

 부엌 정리를 마치고 난 후 거실 소파에 풀썩 앉았다. 엄마는 안방에서 나와 냉장고에 남아있던 토마토 2개를 꺼냈다. 하나는 자기 입에 물고, 남은 하나는 나에게 살짝 던져줬다.

 "요리에 쓰고 남은 거라서 가져왔어. 어휴, 저 사람은 뉴스를 왜 보려고 해서."

 나는 말 없이 토마토를 베어 물며 내 옆에 앉은 엄마를 지긋이 봤다. 아직 탄력이 느껴지는 얼굴 피부, 잘 다듬어진 코, 살짝 윤기가 빠졌지만 그래도 검은 긴 머리. 하지만 울적한 엄마의 표정이 그것들을 점차 나이 들어 보이게 했다. 나는 분위기 전환을 위해 속없는 아이처럼 말했다.

 "아빠는 언제 다 나아? 아빠가 다시 건강해졌으면 좋겠어."

 엄마는 다시 토마토를 한 입 베어 물면서 왼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근봥 다 놔을궈야아, 곡정아지마."

 "에이, 더러워. 다 먹고 말해."

 "크흠...흠! 이거 자식 교육에 너무 안 좋은 모습만 자꾸 보여주네. 나름 아이들이 존경하는 경찰인데 말이야."

 엄마는 나를 보더니 웃으면서 다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뭐, 아빠는 나한테 맡겨. 지금이는 지금이한테 중요한 일에 신경 써야지. 이건 어른들끼리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니까."

 엄마는 마지막 토마토 한 입을 입에 넣은 후에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내 오른쪽 손에 꽉 움켜쥔 무언가를 조심스레 건네줬다. 엄마는 안방으로 유유히 걸어가며 내게 말했다.

 "부돡할게~ 늗좜 좌지 말고. 하아~ 양치도 꼭 해!"

 내게 준 것은, 토마토 꼭지였다.

 

 현재 시각, 저녁 8시 40분. 본격적으로 일의 시작이자 마무리를 작업하기 좋은 때다. 나는 책상에 놓인 홀로그램 PC를 작동시켰다. 웅하고 울리는 기계 소리와 함께 곧장 방 중앙에 거대한 가상 화면이 나타났다.

 "츄카! 준비됐어?"

 츄카는 조용히 눈을 감은 채 있었다. 자신이 맡은 작업물을 꺼내기 위해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한 듯했다. 잠시 후 츄카는 눈을 번쩍 뜨더니 곧장 대답했다.

 "예, 게시글을 자유롭게 올릴 수 있는 전 지구 내 사이트에 한해서 준비했습니다. 주요 대상은 커뮤니티, 포털, SNS, 기관, 언론, 개인 사이트 내 방명록 등등 있습니다. 게시글은 각 나라 주요 사용자층에 맞춰 해당 국가 언어로 전부 수정했습니다."

 "좋아, 9시가 되는 순간 전부 동시에 올리는 거야. 게시글 원문자 위치 파악이 불가능하도록 해외 서버로 우회한 후에 올리도록 하고. 암호화 메일은 나와 관련된 정보가 없도록 해."

 "예, 몰도바에 사는 미확인 생명체로 설정했습니다."

 츄카의 완벽한 일 처리에 안도하여 반중력 침대에 몸을 누웠다. 매트리스에 살짝 뜬 내 몸과 함께 마음도 둥실둥실했다.

 "완벽해, 츄카. 작업을 완료한 후에 PC 자동 종료를 부탁할게. 12시간 뒤에 보자!"

 "예, 알겠습니다."

 적당한 백색소음, 감긴 눈 사이로 스며들어오는 빛, 무중력. 나는 우주 어딘가로 날아가는 듯 했다. 사실 나는 기이한 지적 외계 생명체가 아니었을까. 아니면 외계 생명체에게 개조를 당한 불운의 인간일까. 소득 없는 공상은 PC 종료와 함께 끝났다. 정적, 어둠, 무중력. 나는 우주에서 길을 잃은 미아가 됐다. 나와 닮거나 나를 알려줄 누군가를 찾기 위한 먼 여정. 그리고 길을 잃었다. 알 수 없는 '끝'을 생각해 본다. 찾고 싶은 '최초'를 떠올려 본다.

 

 풀썩하며 매트리스에 몸이 떨어졌다. 이윽고 미세한 진동이 침대에서 울렸다. 흔들리는 매트리스와 함께 내 몸도 저절로 부르르부르르 떨렸다. 반중력 침대에 설치된 알람은 참으로 인간미가 없다.

 거실로 나가니 아빠가 소파에 앉아 유심히 TV를 보고 있었다. 나는 졸린 눈을 비비며 아빠에게 다가갔으나 아빠는 나를 눈치채지 못했는지 아무 미동도 없었다. 아빠는 손에 쥔 커피가 식는 줄도 모른 채 오로지 화면에만 집중했다.

  나도 아빠를 따라 시선을 TV 화면으로 돌렸고 몇 초 뒤에 내 입가에 있는 잔 근육들이 저절로 들썩이기 시작했다. 나의 SOS가 세상에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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