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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황비를 위한 황제
작가 : pereua1004
작품등록일 : 2017.6.15

사랑하는 남편에게 배신 당하고, 외면당했으며, 버려졌다가, 끝내 그가 내린 사약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 이사벨라. 다시는 그를 사랑하지 않겠다는 무의식적인 유언을 남기고 눈을 감았건만.... “왜 어렸을 때의 모습인거야?” 과거로 돌아와 있었다.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소녀의 16년 동안의 수면을 대가로 16년 전의 시간으로 돌아온 이사벨라. 10살, 모든 일이 시작하기 전의 과거에서 본인의 삶을 바꾸고자 하는데![회귀 소설/성장 소설/이유 있는 회귀/일요일에 두 편/네이버 웹소설 챌린지리그와 동시 연재]

 
2. 서장, 회귀 편.
작성일 : 17-06-15 10:25     조회 : 215     추천 : 0     분량 : 8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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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감겨있던 이사벨라의 눈이 천천히 떠지기 시작하였다. 이사벨라는 초점이 흐릿한 눈을 여러 번 깜빡였다.

 

  “여긴……?”

 

  이사벨라는 조금 선명해진 시야로 방안을 둘러보았다. 침대의 주위에 쳐진 망사 캐노피 때문에 바깥이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낯익은 풍경이었다.

 

  “내 방?”

 

  이사벨라는 자신이 누워있는 곳이 ‘진짜 자신의 방’이란 사실에 놀란 표정을 지으며 몸을 일으켰다.

 

  “윽……!”

 

  하지만 몸을 일으키는 순간 강한 두통이 느껴졌다. 이사벨라는 신음을 내뱉으며 다시 누울 수밖에 없었다. 몸을 다시 눕힌 뒤에도 머리에서 통증이 가시지 않았다.

 

  이사벨라는 이마 위에 오른손 손등을 얹으며 눈살을 찌푸렸다.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통증이 가라앉기 시작하였다.

 

  이사벨라는 통증이 가라앉자, 이번에는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다행히도 방금 전처럼 머리에서 강한 통증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이사벨라는 통증이 미약하다는 사실에 숨을 짧게 내쉬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침대 주위에 쳐진 캐노피를 걷어내었다.

 

  조화롭지 못한 푸른색과 분홍색으로 꾸며진 방은 이사벨라의 ‘진짜 방’인 것이 틀림없었다. 이사벨라는 혼란이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내가 왜 별궁에 있지 않고, 여기에 있는 거지?”

 

  이사벨라는 자신이 낡아 빠진 별궁이 아닌, 자신이 태어나고 자랐었던 자신의 ‘진짜 방’에 있다는 사실에 혼란을 느꼈다.

 

  그 순간, 이사벨라의 머릿속에 문득 어떠한 여러 장면들이 빠르게 스쳐지나갔다. 이사벨라는 몸을 경직시켰다, 이내 숨을 길게 내뱉었다.

 

  “아, 나 죽었었지…….”

 

  이사벨라는 자신이 사약을 마신 뒤에 피를 토해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녀는 입가에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더 이상 그 어떠한 원망도 서려있지 않았다.

 

  자신에게 사약을 내린 그 남자, 황제에 대한 원망은, 이미 그녀가 죽어버린 탓에 마음속 깊숙한 곳으로 숨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이사벨라는 고개를 뒤로 살짝 젖혀,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천장에는 아름다운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이사벨라는 익숙한 그림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죽으면 태어난 곳으로 다시 돌아오는 걸까?”

 

  천사의 날개를 가진 여자가 그려져 있는 천장화를 눈에 담으며, 이사벨라는 살며시 눈을 감았다.

 

  “죽어서까지 제일 오고 싶지 않은 곳으로 오게 되다니…….”

 

  이사벨라는 죽어서까지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장소에 왔다는 사실에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도 그리워했었던 이 침대가 있다는 사실에 만족해야 하나?”

 

  이사벨라는 자신이 앉아있는 침대의 이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손을 뻗어 부드러운 이불 위를 쓰다듬었다.

 

  이불 특유의 푹신푹신한 감각과 포근한 느낌이 가득 느껴졌다. 이사벨라는 서글픔과 만족스러움이 뒤섞인 웃음을 지었다.

 

  “방치한 지 오래인데도 이불이 새 것처럼 깨끗하네.”

 

  이사벨라는 ‘그 사건 이후’부터 거의 방치했었던 방안의 깨끗한 모습에, 신기하다는 듯이 말하였다. 그리고 이불 위를 쓰다듬던 자신의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손도 작아지고 흉터도 사라졌네. 신기해라,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온 것 같잖아?”

 

  이사벨라는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온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순간, 이사벨라는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어린 시절로 돌아온 것 같아……?”

 

  이사벨라는 자신이 했던 말을 되풀이하며 자신의 자그마한 오른손을 바라보았다. 작았다. 그리고 깨끗했다.

 

  26살의 이사벨라가 가졌던 상처와 흉터투성이의 손이 아닌, 아주 어렸었던 때에 가졌었던 작고 깨끗한 손이었다.

 

  이사벨라의 몸이 떨리면서, 소름이 돋아났다.

 

  이사벨라는 급히 침대에서 내려와, 전신 거울 앞으로 달려갔다. 전신 거울 앞으로 달려가고 있는 발과 다리 또한, 성인 여자의 것으로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무척이나 작았기 때문이었다.

 

  “…….”

 

  이사벨라는 전신 거울 앞에 서는 순간, 몸을 뻣뻣하게 굳혔다. 그녀의 눈동자는 놀라움이라는 감정 때문에 확장되었다.

 

  허리까지 오는 길이의 연보라색 머리카락과 인형 같은 얼굴에 위치한 푸른 눈동자.

 

  거울이 비추고 있는 것은 분명 이사벨라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왜 어렸을 때의 모습인거야?”

 

  거울이 비추고 있는 이사벨라의 모습은 26살의 그녀가 아닌, 어린 시절의 그녀였다.

 

  이사벨라는 믿기지 않다는 듯이 자신의 얼굴을 만져보았다. 손에서 느껴지는 피부의 말랑말랑한 감촉은 무척이나 생생했다.

 

  이사벨라가 자신의 볼을 꼬집었다.

 

  “아얏!”

 

  볼이 얼얼할 정도로 세게 꼬집은 이사벨라는 붉게 변한 뺨을 문지르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녀의 눈가에는 눈물까지 맺혀있었다.

 

  “으, 아파. 너무 세게……. 아파?”

 

  자신의 뺨을 문지르며 스스로를 원망하려던 이사벨라는 자신이 아프다는 감정을 느꼈다는 사실에 당황하였다.

 

  아프다고? 죽었는데 아픈 것이 가능한 거야?

 

  혼란으로 인해 확장되어있던 이사벨라의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누군가가 방문을 두드렸다. 놀란 이사벨라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녀의 몸이 너무 놀란 탓에 경직되었다.

 

  곧 방문이 열리면서 한 여인이 방안으로 들어왔다. 방안으로 들어온 하녀 복 차림의 여인은 전신 거울 앞에 선 이사벨라를 발견하자, 인사를 건네었다.

 

  “좋은 아침이에요, 아가씨.”

  “마리?”

 

  방문으로 들어온 여인이 자신의 기억보다 앳된 얼굴을 가진 마리란 사실에, 이사벨라는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이름을 의아하게 불렀다.

 

  마리는 이사벨라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환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아가씨께서 어쩐 일로 이렇게 일찍 일어나신 거예요?”

  “…마리, 지금 내가 보여?”

 

  이사벨라는 마리가 자신에게 다가오며 말을 걸자, 혼란스러워하는 목소리로 물었다. 마리는 그녀의 질문에 고개를 갸웃하며 대답했다.

 

  “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아가씨께서 바로 앞에 계시는데 보이는 건 당연하잖아요.”

 

  마리가 왜 그런 질문을 하냐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이사벨라를 바라보았다. 마리의 대답에 이사벨라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내가 보인다고? 난 분명히 죽었는데, 산 사람인 마리가 죽은 나를 본다고?’

 

  이사벨라는 왼손으로 눈가를 가리며 고개를 숙였다. 뒤죽박죽하게 변해버린 머릿속 때문에 현기증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아가씨, 왜 그러세요? 몸이 안 좋으신 거예요?”

 

  마리는 고개를 숙인 채로 왼손 위에 얼굴을 묻고 있는 이사벨라의 옆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손을 내려 이사벨라의 둥근 이마에 자신의 손을 올려놓았다.

 

  “열은 없으신데…. 아가씨. 혹시 어디가 아프신 거예요? 주치의를 불러올까요?”

  “…….”

 

  마리의 질문에도 이사벨라는 대답하지 못하였다. 그녀는 여전히 왼손으로 눈가를 가린 상태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이사벨라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마리는 초조해지는 것을 느꼈다. 마리는 황급히 이사벨라의 침대 머리맡에 걸린 줄을 잡아 당겼다.

 

  줄을 잡아 당긴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방문 앞으로 한 하녀가 다가왔다.

 

  “부르셨어요?”

  “혜라, 어서 가서 주치의를 데려 오세요. 아가씨께서 몸 상태가 좋지 못하신 것 같아요.”

  “어머, 알겠어요.”

 

  마리의 명령에 혜라는 알겠다고 대답한 뒤, 빠른 속도로 달려갔다. 마리는 혜라가 달려가는 것을 보자마자, 시선을 다시 이사벨라에게로 옮기었다.

 

  이사벨라는 여전히 고개를 푹 숙인 채로 몸을 떨고 있었다. 몸을 심하게 떨고 있는 것이, 결코 좋지 못한 상태인 것 같았다.

 

  “아가씨, 혜라가 의원을 부르러 갔으니 조금만 참으세요.”

 

  이사벨라가 몸이 좋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고 판단한 마리는 걱정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달래듯이 말하였다.

 

  “……마리.”

 

  고개를 숙이고 있던 이사벨라가 눈가를 가리던 왼손을 떼어내며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그리고 눈물을 글썽이며 마리의 이름을 작게 불렀다.

 

  “네, 저 여기에 있어요.”

 

  이사벨라가 자신을 부르자, 마리는 이사벨라와 눈을 마주하며 대답하였다. 한참이나 망설이는 것처럼 입술을 들썩이던 이사벨라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마리, 오늘 날짜가 어떻게 돼?”

 

  이사벨라의 머릿속에서는 말도 안 되는 가정이 맴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떠올리고 있는 가정이 아니고서는, 현재의 상황을 납득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었다.

 

  사약을 먹고 죽었는데 어린 시절에 살았던 방으로 돌아왔으며, 몸은 어렸을 때처럼 작아졌다. 또한, 산 사람인 마리가 죽은 자신을 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혹시 지금 떠올리고 있는 ‘그 가정’이 맞는 것은 아닐까? 이사벨라는 반신반의하는 생각으로 마리에게 오늘의 날짜를 물었다.

 

  이사벨라가 사약을 마시고 죽었던 건 26살이었던 루케인력 1482년이었다. 하지만 만약 ‘그 가정’이 틀리지 않았다면, 올해의 년도는 1482년보다 적은 숫자일 것이다.

 

  이사벨라는 혼란으로 뒤범벅이 된 눈동자로 마리를 애처롭게 바라보았다. 마리는 이사벨라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당황하며 대답했다.

 

  “1466년 8월 31일이요.”

 

  1466은 1482보다 작은 숫자였다. 그렇다는 것은 이사벨라가 떠올린 ‘그 가정’이 맞았다는 소리였다.

 

  이사벨라가 스스로 떠올린 것임에도 말도 안 된다고 여기며 반신반의하던 ‘과거로 돌아간 것’이란 가정이 옳다는 뜻이었다.

 

  정말로 과거로 돌아온 것이었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는 모르지만, 분명 루케인력 1466년이었던 10살의 과거로 돌아온 것이다.

 

  그것도 이사벨라의 인생이 망가지기 시작했던 ‘그 사건’의 이틀 전인 8월 31일로 말이다.

 

  이사벨라는 자신의 가정이 맞았다는 사실을 확인시키는 마리의 말에, 그 자리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다리의 힘이 풀린 것이었다.

 

  ‘1466년이라니……. 그럼, 정말로 과거로 돌아왔다는 건가?’

 

  주저 앉아버린 이사벨라는 혼란으로 인해 몸을 더욱더 떨기 시작하였다. 옆에서 마리가 무언가를 계속 말하였지만, 이사벨라의 귓가에 닿지는 못하였다.

 

  ‘말도 안 돼. 과거로 돌아가다니, 그게 가능할 리가 없잖아.’

 

  이사벨라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모든 성황은 시간이 과거로 돌아갔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었다.

 

  어린 시절에 살았던 방이 기억 속 모습 그대로인 것도, 마리가 기억보다 앳된 얼굴과 목소리를 가진 것도, 이사벨라의 몸이 어려진 것도.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고 있는 ‘그 책’의 내용도.

 

  모두 시간이 과거로 돌아갔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정말로, 정말로 시간이 과거로 되돌아간 거라면……. 난 여태까지 살았던 삶을 또 다시 살아야한다는 건가?’

 

  끔찍한 생각이 머릿속을 침범하자, 이사벨라는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싫어!”

 

  이사벨라는 새된 비명 소리와 함께 제 어깨를 쥐고 있던 마리의 손을 거칠게 쳐내었다. 그리고 비명을 지르며 제 머리카락을 쥐어뜯듯이 움켜쥐었다.

 

 끔직한 감각이 온몸을 침범하였다. 비명을 질러도 몸속에 있던 끔찍한 감각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더 지독하게 이사벨라를 옭아맬 뿐이었다.

 

  “싫어! 싫단 말이야! 아악! 또 다시, 또 다시 그런……!”

 

  이사벨라의 비명이 멈춘 것은 한순간이었다. 비명을 지르며 자신의 머리카락을 쥐어뜯던 이사벨라의 몸이 경직되더니, 그녀의 몸이 쓰러지기 시작했다.

 

  “아가씨!”

 

  비명을 지르며 제 머리카락을 쥐어뜯던 이사벨라가 갑자기 쓰러지자, 마리는 새된 비명을 지르며 넘어가는 이사벨라의 상체를 품에 안았다.

 

  너무 놀란 마리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있었다. 마리는 애원하는 목소리로 이사벨라의 이름을 부르며 그녀의 몸을 흔들었다.

 

  하지만 이사벨라는 거친 숨을 내뱉으며 식은땀을 잔뜩 흘릴 뿐, 감긴 눈을 뜨지 않았다.

 

  이사벨라의 거칠어진 숨이 내뱉어지는 두 입술 사이에서는 여전히 ‘싫어’라는 말이 작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 * *

 

  고급스러운 물건들로 꾸며진 방안에 뜨거운 열기가 맴돌기 시작하였다. 화로에서 피어오르고 있는 주홍빛 불꽃이 아닌, 두 남녀가 만들어낸 뜨거운 열기였다.

 

  남녀는 서로 껴안은 상태에서 입을 맞추고 있었다. 침대 위에서 입을 맞추고 있기 때문인걸, 두 사람에게서는 무척이나 야릇한 분위기가 풍기었다.

 

  여자가 입을 벌리지 않은 탓에 혀를 얽지는 못하고 있었지만, 여자의 입술을 잡아먹듯이 물어뜯는 남자의 행동만으로도 두 사람 모두 쾌락에 흠뻑 젖어갔다.

 

  한참동안이나 여자의 입술을 물어뜯던 남자가 감고 있던 눈을 천천히 뜨기 시작하였다. 닫혀있던 눈꺼풀 사이로 드러난 그의 붉은 눈동자는 위험하게 빛나고 있었다.

 

  남자는 눈을 내리뜨며 얼굴을 더욱더 여자에게 밀착시킨 뒤, 뺨을 감싸던 손으로 여자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그리고 나머지 손으로는 여자의 보랏빛 머리카락 속으로 집어넣었다.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여자는 남자가 주는 쾌락에 빠져있었다.

 

  남자는 자신이 주는 쾌락에 흠뻑 바진 여자를 사랑스럽게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그의 손은 거칠었다.

 

  남자는 허리를 감싸고 있던 팔을 자신 쪽으로 끌어당기면서, 여자의 보랏빛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아!”

 

  깜짝 놀란 탓에 여자는 작게 비명을 질렀다. 여자가 작은 비명을 지르면서 벌어진 입술 사이를 남자는 놓치지 않았다.

 

  “으응…….”

 

  남자의 혀가 입안을 침범하자, 여자는 야릇한 신음소리를 내며 거친 숨을 내뱉었다. 남자는 그런 여자의 숨을 집어삼키면서, 더욱더 여자를 탐하였다.

 

  “벨.”

 

  한참이나 여자의 입술을 탐하던 남자가 입술을 떼었다. 그리고 욕망이 짙게 묻어나는 목소리로 여자의 애칭을 부르며 그녀를 조심스럽게 침대 위에 눕혔다.

 

  “아르…….”

 

  여자는 두려움이 조금 묻어나는 목소리로 남자의 애칭을 불렀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녀는 그의 목을 두 팔로 감싸 안고 있었다.

 

  “사랑해, 벨.”

  “나도 사랑해요.”

 

  남자의 사랑한다는 고백에 여자 또한 사랑한다고 대답하였다. 두 사람의 입술이 또다시 야릇하게 달라붙으며 말캉한 살이 얽혀들었다.

 

  여전히 여자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있던 남자의 손이 굴곡을 따라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 여자의 드레스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툭, 툭.

 

  여자는 남자가 자신의 드레스 단추를 풀기 시작하자, 푸른 눈동자를 파르르 떨었다. 남자의 커다란 손이 여자의 벌어진 드레스 안으로 파고들었다.

 

  여자는 남자의 커다란 손이 드레스 안으로 파고들며 낯선 감각과 함께 아찔한 쾌감을 선사하자, 더욱더 거칠어진 숨을 내뱉었다.

 

  남자의 손길에 모든 것을 맡기며 남자가 이끄는 대로 움직이고 소리 내던 여자는 남자가 자신의 안을 파고들자, 강한 통증과 짜릿한 감각에 놀라며 눈을 질끈 감았다.

 

  여자가 눈을 질끈 감자, 퍼즐 조각이 부서지는 것처럼 여자와 남자를 포함한 그들의 공간이 서서히 부서져갔다.

 

  하지만 부서진 공간의 퍼즐 조각들은 또다시 구의 형태를 이루며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완벽하게 구의 모양을 이루기 시작했다.

 

  공간의 조각들이 완벽한 구의 모양을 이루자, 방금 전과는 다른 풍경이 비추어졌다.

 

  이번에 드러난 풍경 또한 남녀가 정사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방금 전의 공간이 보인 풍경 속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남자는 방금 전에 보인 공간과 동일 인물이었지만, 여자는 다른 사람이었다. 여인은 방금 전의 여자와는 다르게, 갈색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다.

 

  남자는 나체 상태로 자신의 품에 안긴 여인을 사랑스럽다는 듯이 내려다보며, 그녀에게 짙은 키스를 퍼붓고 있었다.

 

  갈색 머리카락의 여인은 그런 남자의 키스에 기분 좋다는 듯이 반응하며 남자의 품을 더욱더 깊숙이 몸을 묻었다.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을 참담한 눈으로 바라보는 한 여자가 있었다. 여자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물을 흘리며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여자가 몸을 떨고 있는 탓에, 그녀의 보랏빛 머리카락과 푸르른 눈동자가 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살짝 열린 문 사이로 그것을 바라보던 여자는 결국 더 이상 보지 못하겠다는 듯이,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입을 틀어막은 채로 어딘가로 달려갔다.

 

  여자가 어딘가로 사라지자, 또 다시 공간이 퍼즐 조각처럼 부서져갔다. 그리고 부서져가는 공간의 끝부분에는 한 여자가 서 있었다.

 

  첫 번째 공간에서는 남자와 정사를 나누던, 두 번째 공간에서는 남자와 다른 여인이 정사를 나누는 모습을 참담하게 바라보던, 보랏빛 머리카락을 가진 여자였다.

 

  부서지는 공간을 싸늘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여자는 몸을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그녀와 똑같이 생긴 여인이 서 있었다.

 

  여자는 흔들리는 눈동자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여인을 보며 싱긋 웃었다. 그리고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가 여인의 귓가에 속삭였다.

 

  [또다시 나와 같은 선택을 하지 마렴, 이사벨라.]

 

  그리고 부서지는 공간처럼 여자의 몸이 서서히 부서지기 시작하였다. 여자가 발끝부분부터 서서히 부서지기 시작하자, 이사벨라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이사벨라는 투명한 눈물이 떨어지는 눈으로 여자를 바라보았다. 여자의 몸은 서서히 부서지면서 푸른 꽃잎들로 변하고 있었다.

 

  몸 전체가 완벽히 푸른 꽃잎들로 변한 여자는 부서져버린 공간의 퍼즐들과 함께 뒤섞였다.

 

  푸른 꽃잎들과 퍼즐들은 바람에 나부끼는 것처럼 움직이더니, 이사벨라의 주위를 천천히 감싸 안았다.

 

  꽃잎들과 퍼즐들이 이사벨라의 주위를 완벽하게 감싸는 순간, 내부에서 폭발이 일어나는 것처럼 꽃잎들과 퍼즐들이 허공으로 흩어졌다.

 

  흩어진 꽃잎들과 퍼즐들을 다양한 색을 가진 가루로 변하더니, 이내 사라졌다.

 

  사라진 꽃잎들과 퍼즐들이 있던 곳에는 여전히 이사벨라가 주저앉아있었다. 하지만 꽃잎과 퍼즐에게 감싸이기 전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여전히 얼굴에는 절망과 슬픔, 배신감 등의 부정적인 감정들이 가득했지만, 그녀의 모습은 방금 전과는 달라져 있었다.

 

  그녀는 더 이상 26살의 이사벨라가 아니었다. 그곳에 주저앉아있는 것은, 10살의 이사벨라였다.

 

  부정적인 감정으로 인해 잔뜩 일그러져 있던 이사벨라가 지친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그녀가 눈을 감자, 그녀의 주위를 이루던 새카만 공간이 부서지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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