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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과거를 산다
작가 : Lowe
작품등록일 : 2017.6.14

평소와 같이 잠이 든 주운은 꿈속에서 낯선 장소에 떨어진다.
처음에는 그저 꿈이라고 생각했던 그곳은 조금씩 그의 삶으로 자리잡게 되고, 그는 일련의 사건을 통해 꿈속에 그곳이 과거의 '고구려'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평범한 청년의 고구려 적응기..

 
4
작성일 : 17-06-14 23:27     조회 : 238     추천 : 0     분량 : 10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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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운!"

 

 마을에 들어서기 무섭게 족장이 달려나왔다. 왔냐고 묻는 말에 운고토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고, 아이들에게서 이야기를 잔해들은 족장도 입술을 실룩거렸다.

 

 마을 사람들 전체가 나를 걱정하는 척하며 내 상처를 보러 왔고, 내 다리를 물었던 여우는 운고토의 집 앞에 박제되었다. 마을 전체의 놀림거리가 된 건 기분 나빴지만 상처 때문에 미라주를 다시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녀는 저녁식사가 끝날 무렵 움막으로 조심스럽게 걸어들어왔다. 처음 봤을 때보다 더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단단한 줄기로 뒤로 묶은 머리 아래로 보이는 목선은 더운 날씨 때문에 흐른 땀 때문에 반짝이가 있었다.

 

 "메이라?"

 

 드디어 전부터 알고 싶었던 단어를 알아냈다. 괜찮다는 말을 알아내는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릴 거라곤 생각조차 못했지만 어찌됐던 알게 된 게 중요한 거니까.

 

 "메이라."

 

 상처에 약을 댄 그녀가 내 대답에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치료를 이어나갔다.

 

 "워 대궐."

 

 "다."

 

 그녀를 웃겨줄 생각으로 농담을 던졌지만 대답을 받는 그녀는 사뭇 진지했다. 오히려 평소보다 더 슬퍼 보였다. 혹시 그녀가 슬퍼하는 이유가 내가 상처 입어서가 아닐까하는 기대도 살짝 했지만 그렇다고 생각하기에는 그녀와 내 사이의 접점을 찾기가 어려웠다.

 

 치료가 끝났지만 그녀는 내 앞에서 무릎을 꿇은 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감사하다, 미라주."

 

 그녀는 내 말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고개를 한 번 깊게 숙인 그녀가 드디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선 그녀의 두 눈은 꼭 감겨있었고, 새하얀 두 손이 천천히 올라가 어깨에 걸쳐져 있던 끈을 어깨 아래로 떨궜다.

 

 순식간에 그녀의 몸을 가리고 있던 가죽이 바닥으로 추락했다. 숨이 턱하고 막혔다.

 

 "옷 입어요!"

 

 두 눈을 감은 내가 고개까지 돌리며 소리쳤다. 그녀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의 따뜻한 손이 내 어깨에 닿는 게 느껴졌고, 나는 매일 스스로 몸을 눕히던 잠자리에 타인에 의해 눕혀졌다.

 

 “다다다다다다다다.”

 

 뭔가 쓸 만한 문장을 만들고 싶었지만 기능이 정지한 뇌는 똑같은 단어만 쏟아냈다. 남자의 본능과 이성이 부딪히며 머릿속을 하얗게 지워버렸다.

 

 “다 하, 다 하! 미라주! 다 하.”

 

 그녀의 숨결이 얼굴에 닿자 지금까지 잘 참아왔던 욕구가 조금씩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그 순간 움막 안으로 차가운 밤공기가 스며들어왔다. 고개를 돌려 눈을 뜨자 움막 입구 틈사이로 안쪽을 들여다보고 있는 누군가의 얼굴이 얼핏 보였다.

 

 미라주가 다치지 않게 옆으로 눕히고 떨어져있는 옷을 집어 그녀에게 건넸다. 그녀가 내 팔을 붙잡았지만 나를 멈추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움막 밖으로 나가자 운고토 녀석이 기분 나쁜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하,”

 

 달조차 어두운 밤이라 내 표정을 읽지 못한 운고토가 귓속말을 속삭였다. 그제야 흩어졌던 퍼즐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운고토는 미라주를 협박해 나에게 보냈다. 겉으로 보면 치료가 목적이었던 것 같지만 아마 나에게 몸을 주라고 명령했던 것 같다. 그래서 첫 만남의 미라주는 어딘가 이상해보였고, 치료만 하고 밖으로 나간 그녀는 그에게 손찌검을 당했던 것이다.

 

 그리고 오늘 그녀가 맨몸을 드러내기 전에 보였던 그 표정은 절대로 스스로 원해서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다. 분노한 나는 20센티가 넘게 차이 나는 운고토의 멱살을 쥐었다.

 

 “샤사.”

 

 ‘또 한 번 이런 짓을 하면 그때는 가만 안 있어.’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내 가난한 언어 구사력으로는 불가능한 문장이었다. 결국 내 입에서 나간 말은 죽인다는 뜻을 가진 샤사라는 단어였다.

 

 “그 샤사 워? 카이?”

 

 방금까지 장난기로 가득하던 운고토의 얼굴이 순식간의 전사의 얼굴로 변했다. 언제라도 상대방을 죽일 수 있다는 자신감에 가득 찬 표정이 나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체격 차이에서 오는 위압감이 아닌 평생에 걸쳐 단련된 전사의 본능이 나를 짓눌렀다. 주먹을 뻗는 순간 둘 중 하나가 죽을 때까지 싸우게 된다. 이것이 내 본능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아마 매우 높은 확률로 죽는 건 내 쪽이 될 것이 분명했다.

 

 “아!”

 

 그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도박에 가까운 수였지만 도전해볼만 한 가능성이 있었다. 가장 먼저 운고토의 멱살을 쥔 왼손을 돌려 옷을 최대한 단단히 잡을 수 있게 만들었다. 그리고 선수를 양보한 운고토의 얼굴 중 가장 아플 것 같은 인중에 오른 주먹을 그대로 날렸다. 조금은 아파해주길 바랐는데, 운고토는 우습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의 주먹이 나를 향해 날아오는 게 보였다. 내 얼굴 만 한, 멧돼지 미만의 동물들을 한방에 저세상으로 보내버리는 돌과 같은 주먹이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오른 주먹을 최대한 아까 때렸던 곳에 날리려고 노력했다.

 

 그의 주먹이 닿을 때마다 내 몸이 허공으로 떠오르는 걸 느꼈지만 눈을 감고 있으니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내 작전은 자각하지 않으면 고통도 없다는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었다. 한참의 난투가 이어졌다. 몇 번이나 내 공격을 그대로 맞아주던 운고토가 뒤늦게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닫고 인중을 보호했지만 눈을 감은 내 주먹은 그의 예상과 달리 인중이 아닌 다른 곳에 날아가 꽂혔다. 결국 그는 내 양손을 봉인하는 쪽을 선택했고, 그의 선택은 정확했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지 엄청난 힘을 가지는 게 아니었기에 내 양손은 운고토에게 잡혀 옴짝달싹 하지 못하게 되었다.

 

 “주운!!”

 

 그때 족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잠시 뒤 내 손을 잡고 있던 커다란 손이 결박을 풀어주었다. 눈을 떠서 족장을 보고 싶었지만 아무리 눈을 뜨려고 해도 눈이 떠지지 않았다. 아마 심하게 두들겨 맞아서 눈이 심하게 부어오른 모양이었다. 앞이 안 보이는 건 답답했지만 다행이었다. 운고토가 놔줬음에도 불구하고 양팔이 안 움직이는 걸 보면 양팔이 다 부러진 것 같았고, 얼굴도 말이 아닐게 분명했다. 상처가 낫기까지 눈을 감고 사는 것이 정신건강이나 진짜 건강에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움막에 데려다준 족장은 곧바로 밖으로 나갔고, 한참동안이나 운고토를 혼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나를 본 미라주는 정말 슬프게 울었다. 아픔을 느낄 수 없었기에 그녀의 그런 걱정은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그녀의 간호 속에 잠든 나는 미라주와 손을 잡고 산을 거니는 행복한 꿈을 꾸었다.

 

 그리고 다음 날 기적이 일어났다. 너무 행복한 꿈을 꾼 터라 전날 있었던 난투극을 잊어버린 나는 기상과 동시에 눈을 떴고, 천장이 보이는 순간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음을 깨달았다. 상처를 보지 않기 위해 얼른 눈을 감았다.

 

 “응?”

 

 어젯밤까지 떠지지도 않던 눈이 아무렇지 않게 떠지다니 이상했다. 눈을 감은 채 몸을 움직였다. 어제 부러졌다고 생각했던 팔도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왼손을 들어 실눈을 뜬 눈앞으로 가지고 왔다. 아무런 상처도 없었다. 그렇게 내 시선은 손끝, 손바닥, 팔, 몸과 다리를 천천히 훑어나갔다.

 

 온몸은 미라주의 약으로 덮여있다시피 했지만 나뭇잎을 떼어내고 약을 닦아낸 곳에는 아무런 상처도 남아있지 않았다. 미라주의 약이 상상을 초월하는 회복 효과를 가지고 있거나 잠든 사이 내 상처가 스스로 치료됐거나 둘 중 하나였다.

 

 “악!”

 

 온몸을 나뭇잎으로 가린 내가 밖으로 나오자 나를 발견한 마을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워 주운!”

 

 안심시키려고 소리쳤지만 마을 사람들은 이미 도망가고 없었다. 약들을 씻어내기 위해 냇가에 도착했을 때 투명한 냇가에 내 얼굴을 보고 스스로도 놀랐다. 온몸을 덮은 나뭇잎은 내 얼굴까지 덮고 있었고, 그 모습은 기이하기 그지없었다. 하나씩 나뭇잎을 떼어내던 나는 귀찮음에 냇가로 뛰어들었다.

 

 몸을 휘감고 있던 나뭇잎과 온몸에 칠해져있던 약들이 물에 씻겨나갔다. 아침의 찬 공기와 차가운 물이 닿자 온몸이 떨렸다. 얼른 몸을 문질러 약을 씻어낸 후 밖으로 나오니 원래 차갑던 바람이 더 차갑게 느껴졌다.

 

 “뭐야!!”

 

 막 마을로 돌아가려던 나는 끔찍한 현실과 마주치게 되었다. 아까는 나뭇잎으로 덮여있어 몰랐는데 목욕을 마친 자신은 완전한 알몸이었다. 아무리 자연과 가까운 민족이라도 최소한의 옷으로 최소한 감출 것은 감추고 다녔다. 물론 알몸으로 돌아다닌다고 경찰에 잡혀가거나 하지는 않겠지만 이곳에서 내 이미지를 더 망치고 싶지 않았다.

 

 바보에다가 노출증 환자라니 최악이었다. 언제나 내 편을 들어주던 족장이 이번에도 내 편을 들어 줄 거라고 확신할 수 없었다. 온몸에 한기가 돌기 시작했다. 추위 때문인지 걱정 때문이지 모르겠지만 등골이 오싹했다. 최대한 몸을 숨긴 채 마을로 향했다. 빨래를 마친 여자들은 대부분 마을 외곽에 빨래를 말리러 갔을 것이고, 남자들도 사냥을 준비하느라 대부분 무기가 있는 움막에 있을 것이다.

 

 조심히만 움직인다면 누구에게도 걸리지 않고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냇가를 벗어나 일부로 나무가 울창한 지역을 선택했다. 나무에 몸을 숨기며 신중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마을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을 때 저 멀리서 천사처럼 웃고 있는 마유가 보였다.

 

 “마…”

 

 안 된다!! 마유에게 옷을 가져다 달라고 말하려던 내가 스스로의 입을 틀어막았다. 설명할 방법도 없거니와 혹시 누군가가 우리가 얘기하는 모습을 본다면 상황은 더 곤란해질 게 분명했다. 알몸의 성인 남자와 순진한 여자아이. 만약 오해를 산다면 끝장이었다.

 

 “주운?”

 

 귀도 밝지. 내 목소리를 알아챈 마유가 자리에서 일어나 내 쪽으로 걸어왔다. 저 멀리서부터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발소리는 빠르게 가까워졌고, 마유의 기척은 내가 서있는 나무 바로 뒤에 도착해있었다.

 

 “마유! 취가!”

 

 그때 아이 하나가 마유를 불렀다.

 

 “도!”

 

 다행히 마유는 친구를 따라갔다. 온몸에 힘이 풀려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때 마을에서 사냥을 하러 나가는 남자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숲속으로 다시 들어갔다.

 

 숲에 들어온 나는 주위를 살피며 내 상처를 치료할 때 썼던 것과 같은 커다란 나뭇잎을 찾아 헤맸다. 이 근처에 있을 게 분명했다. 시간 싸움이었다. 남자들이 사냥을 시작하면 아마 흩어져서 사냥감을 찾을 것이고, 사냥감보다 빨리 나를 찾아내고 말 것이다.

 

 그때 행운인지 불행인지 미라주가 숲속으로 향하는 것이 보였다. 그녀에게 이 모습을 보인다면 그녀와의 관계는 완전히 끝이 나겠지만 만약 그녀가 나뭇잎을 찾으러 가는 것이라면 그녀가 마을로 돌아가고 그 나뭇잎으로 몸을 가리고 마을로 돌아가는 것이 가능했다. 위험했지만 걸어볼만한 도박이었다.

 

 본격적으로 미라주를 미행하기에 앞서 중요한 부위라고 가릴 심상으로 진흙을 칠한 몸에 나뭇잎을 붙여봤지만 아무리 해도 붙을 생각을 않았다. 결국 진흙투성이가 된 알몸으로 그녀 뒤를 쫓았다.

 

 내 예상은 적중했다. 그녀는 얼마 안 가 커다란 잎들이 엉켜있는 장소에 도착했고, 능숙한 손놀림으로 잎들을 채취하기 시작했다. 저 멀리서 남자들의 목소리가 들려오긴 했지만 시간은 충분할 것 같았다. 하지만 세상은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만은 않았다.

 

 “아, 씨…”

 

 잎을 채취하는데 집중하고 있는 미라주 뒤로 뱀 한마리가 접근하고 있었다. 소리를 낼 수 없었기에 옆에 떨어진 돌을 던져봤지만 어림도 없었다. 몸을 숨긴 채 그녀의 이름을 불러볼까도 생각해봤지만 뱀이 있다는 걸 표현하지 못하면 그녀를 움직이게 만드는 건 지금보다 더 위험한 상황을 만들어낼지 몰랐다.

 

 그저 지나가는 뱀이기를 바랐지만 뱀의 움직임은 명백하게 새하얀 그녀의 다리 쪽을 향하고 있었다. 독사인지 아닌지 파악을 할 지식은 없었지만 ‘뱀=위험’이라는 내 상식이 나를 움직였다. 최대한 몸을 숙인 채 그녀가 있는 쪽으로 내려갔다.

 

 내 작전은 이랬다. 뱀이 사정거리 안에 들어왔을 때 빠르게 달려 나가 뱀을 걷어차고 옆에 있는 수풀로 몸을 숨긴다. 다만 정말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미라주가 돌아보기 전에 뱀을 걷어차고 수풀에 숨는 것까지 마쳐야했다.

 

 내가 마음속으로 숫자를 세고 달려 나가는 순간 미라주가 몸을 돌려 들고 있던 돌칼로 뱀의 머리를 내려찍었다. 뱀은 짧은 저항 끝에 바닥에 몸을 눕혔고, 알몸이 된 나는 무방비 상태로 그녀와 마주하게 되었다.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뒤쪽에서 남자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때 기적이 일어났다.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그녀가 무언가 생각난 듯 들고 왔던 바구니에서 내 잠옷을 꺼내든 것이다. 피로 얼룩덜룩한 걸로 봐선 씻어줄 생각으로 가지고 나온 것 같았다. 그녀는 던지듯 내게 옷을 건넸고, 나는 내 생애 가장 빠른 속도로 옷을 입었다.

 

 “후~”

 

 “후~”

 

 우리 두 사람은 동시에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마을로 돌아가는 길 그녀가 갑자기 나를 멈춰 세웠다.

 

 “왜요?”

 

 나를 인적이 드문 곳으로 데려간 그녀가 다짜고짜 내 상의를 풀어헤쳤다. 그리고 내 몸을 이리저리 만지기 시작했다. 내 몸을 살피던 그녀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누이나?”

 

 그때서야 그녀가 놀라는 이유를 알아챘다. 어제까지 다 죽어가던 사람이 오늘은 상처하나 없이 멀쩡하니 이런 반응은 당연했다. 아쉽게도 그녀가 놀란 이유를 알았다고 해서 나아지는 건 하나도 없었다. 설명할 만큼의 언어를 구사할 수도 없었고, 정작 스스로도 어떻게 내 상처들이 나았는지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을 이해시킬 수 있겠는가. 나는 그저 상의의 단추들을 잠그고 그녀가 들고 있던 약을 가리키며 말했다.

 

 “흐허”

 

 마을로 돌아오는 내내 뒤통수에 꽂히는 그녀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마을 입구에서 우리는 운고토가 이끄는 후발대와 마주쳤다. 그 역시 멀쩡한 내 모습을 보고 놀란 것 같았다. 그의 뒤에 서있던 남자들도 나를 보며 놀라는 걸로 봐선 운고토에게 어제 있었던 일에 대해 들은 게 분명했다.

 

 운고토의 눈과 목에는 푸른 멍이 들어있었다. 아마 그는 동료들을 모아 놓고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내가 이정도 그놈은 어떻게 됐을 것 같아? 두 팔이 부러지고 얼굴은 아주 작살이 났다고."

 

 애석하게도 내 몸 어디에도 운고토가 입힌 상처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해할 수 없다는 눈으로 나를 보는 운고토를 보며 재미있는 생각이 떠올랐다.

 

 "운고토, 메이라?"

 

 나는 사냥꾼 무리를 지나치다가 말고 동료들 사이로 운고토에게 괜찮냐고 물었다.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마치 승자가 패자를 걱정하는 것 같은 말투였다. 둔한 운고토조차 곧바로 눈치챌 수 있을 만큼 노골적인 도발이었다. 그는 빠르게 동료들의 마음속에 의심이 쌓트고 있다는 걸 눈치 채고 나를 향해 달려왔다.

 

 “다!”

 

 하지만 상황을 제대로 모르는 동료들은 나를 공격하는 운고토를 뜯어말렸다. 아무리 운고토라도 전사들 다섯 명을 뚫고 내게 달려오진 못했다.

 

 “흐허찬!”

 

 나는 기분 좋게 아침인사를 건네고 그들에게서 멀어졌다. 통쾌했다.

 

 “주운!”

 

 미라주의 목소리에 반응하기도 전에 내 고개가 앞으로 쏠렸다. 간신히 균형을 잡고 돌아보니 운고토가 씩씩거리며 서있었다. 죽일 기세로 내 뒤통수를 때린 운고토와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전사들과 미라주 모두가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응?”

 

 나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미라주에게 되물었다. 뒤통수는 노력 없이 볼 수 없는 곳이었고, 그 말의 뜻은 내가 억지로 보려고 하지 않는다면 뒤쪽에서 가해지는 공격에 대한 내 데미지는 언제나 0이라는 얘기였다. 멍하니 서있는 운고토가 정신을 차리고 내 얼굴에 주먹을 날리기 전에 얼른 등을 돌려 마을로 향했다. 완전한 승리였다.

 

 실제로 나와 운고토의 싸움의 결과를 아는 사람은 족장과 미라주 그리고 당사자인 나와 운고토가 전부였다. 재미있는 점은 마을 사람 대부분이 운고토에게서 직접 우리의 싸움에 대해 들었다는 것이다. 만나는 사람마다 마을에서 족장 다음으로 강한 운고토의 얼굴에 난 상처에 대해 궁금해 했고, 운고토는 창피했지만 나를 거의 식물인간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위안 삼으며 사람들에게 영웅담을 들려주었을 것이다.

 

 “주운?”

 

 마을에서 나와 마주치는 사람마다 신기하다는 듯 내 얼굴을 확인했다. 자기가 전해들은 이야기로는 제대로 걷지도 못해야 될 내가 어제보다 더 멀쩡하게 마을을 활보하고 다니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놀란 건 족장도 마찬가지였다. 아침 일찍 자신이 밖으로 나가기 전까지만 해도 온몸에 나뭇잎을 칭칭 감고 있던 내가 돌아다니는 모습은 그에게도 적지 않은 충격을 준 것 같았다.

 

 “주운!”

 

 기적을 직접 눈으로 본 족장이 나를 껴안았다.

 

 “누이나?”

 

 족장은 미라주와 같은 질문을 던졌지만 이내 질문을 거뒀다. 내가 알아들지 못한다는 것과 나조차 그 이유를 모른다는 걸 내 얼굴을 보고 알아챈 것 같았다.

 

 “그! 운고토?”

 

 친구들과 어울려 놀던 마유가 이쪽으로 달려와 물었다. 주먹을 맞대고 있는 걸로 봐선 싸웠는지 물어보는 것 같았다. 곤란한 표정으로 족장을 보니 족장이 마유를 안아들고 다른 쪽으로 걸어갔다.

 

 이 상황에 사냥을 떠났던 전사들까지 돌아와서 운고토와의 싸움에서 내가 이긴 것 같다는 소문까지 돈다면 나를 향하는 관심은 지금보다 훨씬 심해질 게 분명했다. 상관은 없었지만 족장의 아들과 사이가 심하게 틀어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하지만 이 상황을 정리할 길이 없었다. 말로 설명할 수도 있고, 몸으로 설명하는 대도 분명 한계가 있었다. 결국 나는 평범한 마을 사람으로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운고토!”

 

 

 

 해가 천천히 산 너머로 사라질 무렵 사냥을 떠났던 전사들이 각자의 전리품을 들고 마을로 돌아왔다. 마을 입구에는 평소보다 훨씬 많은 수의 마을 사람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마 대부분이 말을 못하는 나대신 운고토에게 정황을 듣기 위해서 여기까지 나온 것 같았다.

 

 마을 사람들과 전사들이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결판을 내야했다. 사지로 뛰어드는 기분이 이럴까. 나는 앞으로 달려가 마을로 들어오고 있는 운고토 배에 그대로 발차기를 날렸다. 족장이 지켜보고 있어서인지 운고토는 살짝 뒤로 물러설 뿐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다.

 

 “대궐, 라이가”

 

 나는 최대한 건방진 표정으로 운고토를 도발했다. 뒤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족장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운고토는 들고 있던 사슴(가방처럼 어깨에 가볍게 들쳐 메고 있었다)을 내려놓고 몸을 풀었다. 적당히 맞고 끝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의 표정은 분노 그 자체였다.

 

 결과는 간단했다. 나는 처음 발차기 빼고 운고토에게 아무런 타격도 입히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았다. 다행히 내 예상대로 족장이 달려 나와 운고토를 말려줬고, 나는 수많은 멍과 터진 입술 정도로 이 상황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소문을 믿던 사람들은 방금 전 눈앞에 펼쳐진 상황을 믿기로 결정했는지 다시 마을로 돌아갔다. 운고토의 힘에 대해 의문을 갖고 있던 전사들도 ‘역시 운고토’하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하나 다행인 건 내가 단순한 패배자가 아니라 강자에게 도전하는 전사라는 이미지를 가지게 됐다는 것이다. 그 이미지는 여우에게 다리를 물렸던 내 과거를 깔끔하게 세탁해주었다.

 

 “대궐…”

 

 게다가 마이주의 치료를 또 받게 됐으니 이정도면 훌륭한 마무리였다. 하지만 불쑥불쑥 떠오르는 숲에서의 악몽은 내가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마이주!”

 

 치료가 끝나고 움막을 나서는 마이주를 불러 세웠다.

 

 “워 취가 그.”

 

 데려다준다는 뜻이었지만 그녀가 웃는 걸로 봐선 제대로 된 문장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우리 두 사람이 움막을 나서는 걸 가만히 보고 있던 족장이 나를 보며 깍지를 꼈다. 뭐가 좋다는 건지, 괜히 얼굴이 빨개졌다.

 

 “뷰.”

 

 별을 보며 걷고 있던 나에게 미라주가 말했다.

 

 “응?”

 

 “뷰.”

 

 이번에는 미라주가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 뷰?”

 

 별을 뜻하는 단어인 것 같았다. 도담의 하늘은 정말 아름다웠다. 지금껏 살면서 가봤던 어떤 곳보다 많은 별이 떠있었고, 달도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이 커다랬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옆에 함께 걷는 사람이 있다는 것과 그것이 미라주라는 사실이 제일 기뻤다.

 

 하늘거리는 미라주의 손을 잡고 싶었다. 왠지 지금은 그녀의 손을 잡아도 괜찮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여자는 분위기에 약하다고 하니까. 내 손은 용기를 갖고 그녀를 향해 움직였다.

 

 “주운!”

 

 운고토였다. 속으로 내가 아는 모든 욕을 그에게 퍼부었다. 운고토를 발견한 미라주는 도망치듯 집으로 가버렸고, 운고토는 그녀를 신경도 쓰지 않고 나에게 다가왔다. 미라주를 따라가고 싶었지만 그녀는 이미 보이지도 않았다. 이 놈과 시이 좋게 지내겠다고 다짐한 내가 바보였다.

 

 “무어?”

 

 내 쌀쌀한 대답에 운고토가 살짝 주춤했다.

 

 “우이.”

 

 그가 건넨 건 둥근 돌이 달린 목걸이였다. 돌 안에는 태양이 그려져 있었는데 기계로 그린 것처럼 정밀한 그림이었다. 목걸이를 건넨 그는 기분 나쁘게 창피해하더니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뭐야?”

 

 이해가 안 됐다. 거기다 움막으로 돌아왔을 때 족장이 내가 든 목걸이를 보고 기뻐하는 걸로 봐선 의미가 있는 목걸이인 것 같았다. 그리고 목걸이의 정체는 다음 날 자연스럽게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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