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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날아라, 종이비행기
작가 : 길성진
작품등록일 : 2017.6.8
날아라, 종이비행기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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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컨디션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던 나는, 무거운 짐을 나르던 도중 계단에서 굴러버렸다.
몸이 기울어질 때 이 뒤에 날 기다리고 있는 것은 '죽음'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그렇다. 원래대로라면 나의 덧없는 잿빛 인생이란 소설은 여기서 끝나야 정상이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유령으로서 눈을 떠버린 것이다.
바로, 30이라는 숫자가 나의 왼 눈 밑에 새겨져있는 상태로 말이다.
'30'
그건 나에게 남아있는 기간을 의미하는 죽음의 표식이었다.
그래. 남은 한 달동안은 생전에 해보질 못했던 못된 장난을 쳐보자!
그렇게 결심하고 장난을 치는 그때, 나는 나와 같이 유령인 어떤 소녀를 만났다.

"만약 다음 생이라는 것이 있다면……. 우린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운명적인 우리들의 만남과 다가오는 끝. 그리고, 그 속에 숨어있는 진실.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애절하면서도 어딘가 낭만적인, 그런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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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6-14 07:55     조회 : 259     추천 : 0     분량 : 67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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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이한 인연으로 초대받은 저녁식사.

 누군가와 함께한 저녁이라는 사실에 스스로가 유령이라는 것이 의심스럽기도 하다.

 식사 후 디저트로 받은 미니 아이스크림까지 비우고난 뒤 자리에서 일어났을 땐 이미 하늘은 짙은 보라빛으로 번져있었다.

 "저기…… 잘먹었습니다. 저는 슬슬 가보도록 할게요."

 "응?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구나."

 내 말에 아현이 벽시계를 올려다보았다.

 "언제든지 와도 돼. 가는 길 조심하구."

 "저녁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잠깐."

 고개숙여 인사를 건내고 뒤돌아 발길을 옮기려던 순간 소녀가 멈춰세웠다.

 "너, 돌아가는 길은 기억해?"

 "아참……."

 예리한 지적이었다. 그러고보니 중요한 부분을 깜빡 잊고있었다. 시내에서 이 근처의 방면은 처음이라 낯설고 감이 잡히질 않았다.

 "적당히 걷다보면 어떻게든 될거야."

 늦은 시간에 두 사람을 번거롭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상세히는 아니더라도 왔던 방향정도는 대충 기억하고 있으니 무작정 걷다보면 익숙한 장소 정도는 들어서겠지.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하자 소녀가 신발장으로 가더니 운동화를 신었다.

 그리고 뒤돌아보며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데려다줄게."

 "어? 아, 아니. 괜찮아. 그렇게 해줄 필요까진……."

 "언니는 설거지하고 있을테니까 부탁할게~."

 때마침 테이블에 앉아있던 아현이 손을 흔들며 덩달아 대답하자 고개를 끄덕이곤 현관문을 여는 소녀였다.

 "빨리 나와."

 "……응."

 나는 얼떨결에 대답하고서 분위기에 휩쓸리듯 뒤따라 현관을 나섰다.

 

 

 

 

 

 어둑어둑해진 하늘 아래 이차선 도로 주변에 펼쳐진 드넓은 논밭에서 두꺼비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두세걸음 뒤로 소녀를 따라 빈번히 가로등을 지나치며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걷는 동안 소녀는 말이 없었다. 하물며 내 쪽에서도 먼저 말을 걸지 않았다.

 마땅히 떠오르는 주제도 없고 시원찮은 말주변으로 대화가 끊기면 난감할 것 같아 그만뒀다.

 그렇게 걸은 지 얼마나 지났을까. 앞장서 걷던 소녀가 문뜩 걸음을 멈춰 나도 순간적으로 발을 멈췄다.

 한동안 이어지던 침묵을 깨버린 사람은 환한 가로등 밑에서 뒤돌아 쳐다보는 소녀였다.

 "유가은이라고 했지? 좀 더 앞으로 와서 나란히 걷지그래? 조금 불편하거든."

 "……미안."

 내 나름대로의 배려라고 생각해 그렇게 한 행동이었지만 착각이었나보다. 하긴, 늦은 밤 뒤에 모르는 남자가 걸으며 따라온다는 건 썩 보기좋은 일은 아니겠지.

 티내진 않아도 꽤 신경쓰였나보다.나는 떨어진 거리만큼 걸었다. 나란한 위치가 되자 소녀도 다시 걷기 시작했다. 일부러 반걸음정도 사이를 두어 걸었으나 소녀는 아무렇지 않게 좁혀왔다.

 순식간에 어깨가 닿을 것 같은 위치가 되니 공기속엔 달콤한 향기가 섞이게 되었다. 버스의 옆자리 혹은 지하철의 옆자리에 또래의 이성이 앉으면 자연스럽게 의식을 하게된다.

 "집이 어디쪽이야?"

 "……시내 근처에 있는 맨션. 우리가 만났던 마트에서 십 분 거리쯤에 있어."

 "자취하는거야?"

 "응. 장학금 탄 걸로 돈이 꽤 생겼었거든. 그걸로 자취를 하고 있었어. ……절반은 할아버지가 물려주신 재산이었지만."

 "재산……? 돌아가신거야?"

 "작년 여름에. 친구 하나 없던 외톨이의 유일한 말상대였어."

 "외톨이라……."

 소녀가 말끝을 흐리더니 져지 주머니에 손을 넣으며 쓸쓸한 목소리로 이어 말했다.

 "사실 나도 외톨이였어. 중학교때도 그렇고, 고등학교때도 그렇고."

 "……그래?"

 내 물음에 소녀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비현실적이다.

 학창 시절, 나와 같이 외톨이인 여자애가 적게나마 있었지만 그들에게선 납득이 가는 이유를 적어도 하나쯤은 찾아볼 수가 있었다.

 물론 그것도 대부분이 겉모습에 불과한 것이지만. 그래서 저 외모라면 남녀구분 가리지 않고 꽤 인기있는게 정상이 아닐까.

 허나 소녀의 경우 거짓말이나 부풀린 말 따위가 아니라는 것을, 살포시 시선을 내리며 걷는 쓸쓸함에 단 번에 알 수 있었다.

 "친하지도 않은 남자애들한테서 몇 번인가 고백을 받았거든. 걔들한텐 신경쓸 여유가 없어 전부 거절했을 뿐인데 원망을 산거야."

 "그래서 보복을 당했다. 그런 이야기야?"

 "그래. 맞아. 나한테 차인 남자애와 걔를 좋아하던 여자애가 손을 잡더니 헛소문을 퍼뜨리면서 나쁜년으로 몰아가더라고. 게다가 서열도 꽤 높은 대단하신 분들이라 참 골치아팠지. 몸파는 년이라느니 체육복이나 돈을 훔쳐간 도둑년이라느니. 온갖 누명이란 누명은 죄다 뒤집어 씌우고는 킥킥대며 지켜보는 그 꼴이 정말 가관이었어."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싸늘한 표정을 지은 소녀의 앞머리를 살며시 흩날렸다. 바라본 눈빛엔 원망 한 줌이 섞인 슬픔이 깃들어있었다.

 내 학창시절을 말하자면 수아와 친했던 순간을 제외하곤 말상대가 하나없는 녀석이었다. 각자의 파벌에 속한 녀석들의 시선에서 나라는 존재는 신경조차 쓰이지 않았다.

 덕분에 직접적인 괴롭힘은 없었으나 소녀의 경우는 다르다. 비슷한 처지를 중학생 때 겪어본 적이 있다.

 괜히 꼬투리를 잡으며 악담을 하고, 가까이 둬선 안된다며 나에게서 모두를 멀리하게끔 이끄는 녀석이 있었다.

 지금에 와서야 중학생이라는 단어를 돌이켜보면 어린애들 수준으로 보이지만, 역시 인간의 악의는 나이에 관계없이 지저분하고 끈적하지 않을까 싶다.

 그야 사회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벌어지니까. 물론 이런 말을 한다고해서 자신은 깨끗하다고 할 생각은 전혀 없다.

 어제까지만 해도 유령이라는 입장을 이용해 타인에게 피해를 주며 키득거렸으니 말이다. 다만, 유령이 아니었다면 어제와 같은 짓은 절대로 하지 않겠지.

 악의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악의라는 건 모든 인간에게 잠재되어있기에 악의가 있다는 것 자체만을 문제로 삼으면 안된다.

 선의도 마찬가지이다. 선행을 베풀지 않다고해서 그 사람이 선한 사람이 아니라는 건 말도 안된다.

 그렇기에 사람은 상황에 따라 다양한 면모를 지닌 것이고, 얼마나 표출하느냐에 따라 자신 혹은 타인을 정의하는 것이겠지.

 문제는 악의를 뿌리로 삼아 행동하느냐 마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그 순간이 피해자와 가해자로 분리되는 순간이다.

 그러나, 소녀의 다음 내뱉은 한마디는, 단순한 괴롭힘으로 치부했던 안이한 내 판단을 깨부숴버리는 발언이었다.

 "등교거부로 출석일수가 모자라 결국 퇴학하게 되었어. 요즘같은 시대에 한심한 중졸이지."

 순간 발을 멈추고서 소녀를 쳐다보았다. 날 따라 멈칫한 소녀가 흘끗 뒤돌아보더니 살포시 시선을 내린다.

 그저 떠올리기 싫은 안좋은 기억정도라고 생각했으나, 그건 엄청난 착각이었다. 평범한 따돌림의 수준과는 다르게 소녀의 인생은 크게 망가진 것이다.

 잠시 멈춰섰던 소녀가 다시금 천천히 걸으며 이렇게 말했다.

 "참 아깝다고 생각해. 성적도 꽤 좋았거든. 휘둘리지 않고 버텨냈으면 복수를 했을텐데……."

 자조적인 미소로 웃어보이는 모습이 눈에 비춰질 때, 이런 생각이 스쳤다. 저 모습은 얼마 전까지의 내 모습을 그대로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후회와 자책, 그리고 원망으로 가득 차있다. 근본이 보랏빛으로 썩어버린 우리들은 어쩌면 닮은 꼴이지 않을까.

 "후회라는 녀석은 하여간 싸가지가 없어. 항상 뒤늦게 찾아오거든. ……라며 고등학교 1학년 때 교실에서 체육 수업 도중 교사가 말했어."

 "후회는 싸가지가 없는 녀석이다라……. 재밌는 표현이네."

 "그때 당시 반 녀석들은 '명언이냐', '멋있는 척이냐'며 히히덕거렸지만 적어도 내 안엔 장난기 없이 깊히 스며들었지."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궁금한 기색의 소녀는 다음 말이 나오길 기다리는 눈치였다.

 "하지만 내가 그 말의 무게를 실감한 순간은 최근이었어.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게 쇼크라 한동안 방구석에 틀어박힌 건 사실이지만, 충분히 일어설 수 있었어. 아니. 일어설 수 없는 게 오히려 이상했지. 하지만 그러지 않고 계속 썩어가는 길을 선택한거야. 녀석들끼리 히히덕거리는 것과 그 주변에 나 혼자 외로이 놓여있는 모습이 싫어서. 그래서 도망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흡사 수증기처럼 보이는 옅은 구름에 흐려진 만월은 누런 빛을 띄고있었다.

 "내 인생도 후회로 가득해. 좀 더 나은 판단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그걸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나는 기어이 좋지 못한 선택을 고집했지. 서서히 썩어가는 그 쪽이 편하니까."

 "그래도 장학금까지 탄 걸 보면 꽤 성실했나봐?"

 "결국엔 딴 사람이 돼버린 것 마냥 썩어버렸지만."

 "그럼 너는."

 한 걸음 앞섰던 소녀가 운을 떼며 멈춰섰다. 자그마한 기대가 담긴 날 향한 뚜렷한 시선속에서, 소녀가 입을 열었다.

 "나랑 같은 머저리인거야?"

 사실, 저 질문에 굳이 대답할 필요는 없다. 그정도로 이미 내 대답은 한참전부터 확고하게 굳어져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당연하지."

 라며 따스한 미소와 함께 아주 태연한 말투로 대답했다.

 정답이었는지는 소녀의 따스한 미소가 선명하게 알려주었다.

 분명 우리가 주고받은 미소는,

 우리같이 구제할 길 없는 밑바닥 머저리들만이 지을 수 있는 뒤틀린 따스함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무엇보다 큰 위안은 우리와 비슷한 존재가 곁에 있다는 것이라는 것을.

 서로가 잘 알고 있었다.

 

 

 

 

 

 

 "너, 어쩌다 죽게된거야?"

 "돈이 떨어져가지고 일일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거든. 무거운 상자를 나르는거였는데 계단을 올라가다가 그만 현기증이 났어. 그대로 넘어져버렸지."

 "……그렇구나. 미련같은 건 있어?"

 "글쎄. 후회가 없다고 한다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그건 보통의 선에서 끝나는 문제이고 유령이 될 정도로 깊은 여한이 되진 않았다고 생각해."

 "어째서?"

 "깊고 깊이 후회해보고 바라도 결국은 그토록 원하던 순간으로 되돌아갈 수 없으니까. 그래서 전부 포기해버렸거든."

 "……."

 "……아니.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는게 더 올바른 표현이겠네."

 방 안에 틀어박힌 채 하루하루 죽어가며 후회라는 먼지에 쌓여가는 것.

 그것이 바로 얼마 전까지의 내 일상이었다. 돌아가고픈 그 시절을 떠올리며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어보거나 때때로 눈물을 흘려보아도 결국 찾아오는 건 바라고 바랐던 그 시절이 아닌, 다음 날의 검푸른 하늘을 비추는 아침 해였다.

 돌아갈 수 없다.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줄곧 그래왔다. 결국 마멸되어가던 내가 다다른 곳은 '포기'라는 영역이였다.

 그래서 후회하고 자책한다. 그것의 반복만이 있을 뿐.

 "넌?"

 "나는 질식으로 죽었어."

 "질식……."

 소녀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화재사고로 건물이 불타고 있었거든. 불길은 거세지지, 숨은 막히지. 정신차려보니 연기를 너무 마셔댄 상태였던거야. 제대로 탈출하지 못했어."

 화재라……. 끔찍하다고 생각했다. 듣기론 가장 고통스런 형태의 죽음이 소사라고 한다.

 "……잠깐. 그러고보니 얼마전에 인터넷 기사를 읽은 적이 있어. 가스폭발로 화재가 났다며 사망자는 한 명이라는 기사를. 분명 내가 사는 곳에서 바로 옆 동네였던데. ……설마."

 "기사가 떠도 무리는 아닐거야. 대형 화재사고였으니까. 게다가 시내 근처에 사는 너의 옆 동네면 거리상 내가 사는 곳이랑 일치할테고."

 안타깝다는 감정 하나 없이 무감각하게 읽었던 그 기사의 주인공이 바로 내 옆에서 나란히 걷고있는 소녀였다니.

 등교거부를 할 정도로 끔찍한 고통을 안고있던 소녀는 훗날 끔찍한 고통으로 죽는다.

 역시 세상은 그리 공평하진 않은가보다.

 "넌 어때? 여한같은 건 없어?"

 "여한이라. 그러고보니 어디까지가 여한인 지 경계가 애매하네. 그래도 대답해보자면 계속 찾고있던 남자애가 있었어."

 "애인?"

 "애인…… 이었지. 그때 당시에는 말이야. 나의 첫사랑이거든. 하루 종일 걸어다니면서 찾았던 적도 있을 정도로, 그 남자애는 나의 전부였어."

 "실종이라도 된거야?"

 "비슷한거야. 전학이든 이사든 갑자기 사라졌으니 실종이지."

 "하루 종일이라…. 집념이 대단하네."

 "그 당시 아무것도 없던 나에겐 그것만이 희망이었고 기대였으니까."

 한 치의 거짓이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소녀의 표정은 진지했다.

 "많이 좋아했구나."

 "많이…… 좋아했지. 결국엔 찾지 못한 채로 인생이 끝나버렸지만."

 첫사랑 특유의 애달프고 씁쓸함이 묻어져나오는 흔한 이야기. 그럼에도 여전히 낭만적이라고 느껴지는건 어째서일까.

 지나간 기억은 추억으로써 미화된다는 그 흔한 말을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결국엔 그런 법이겠지.

 "그럼 넌 남은 시간동안 그 남자애를 찾아다니는 거야?"

 "아니. 그럴 생각은 없어."

 "그건 무슨…… 아."

 무슨 뜻이냐며 물으려던 순간, 대화를 하느라 정신이 팔려있던건지 어느새 우린 꽤 걸어온 상태였다는 걸 알아챘다.

 어느새 도착한 횡단보도 앞. 멈춰선 소녀는 그렇게 말했다.

 때마침 신호등의 불빛이 파란불로 바뀌었다.

 찾기를 포기한 것인지 아니면 이미 찾은 것인지. 물어보지도 않았고 소녀 또한 먼저 말을 꺼내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은 것은 소녀의 후련해진 표정 때문이었다.

 

 

 

 

 

 

 

 여기서부턴 시내와 가까운 익숙한 장소다.

 좀 더 대화를 하고싶은 마음이지만 내 흑심으로 더이상 소녀를 붙잡아두는 건 조금 미안했다.

 "……벌써 도착했네. 여기까지 데려다줬으면 충분해. 나머진 알아서 갈 수 있어. 고마워."

 그러자 소녀는 고개를 저었다.

 "시내에 따로 볼 일이 있거든. 방향은 같으니 조금만 더 데려다줄게."

 나로선 반가운 소식이다. 비록 오늘 처음만난 소녀이지만 통하는게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헤어지는 건 꽤 아쉬웠다.

 주변에 기다리는 사람은 물론 자동차도 거의 없었으나 건너는 횡단보도마다 신호가 바뀌길 정직하게 기다렸다. 또다시 유령이라는 자각이 결여된 건 아니다.

 소녀가 파란불로 바뀔 때까지 기다리기에 나 또한 그녀의 페이스에 맞춘 것이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 편이 더 오래 있을 수 있으니 내심 다행이라고 여겼다.

 급하지도 않기에 느긋한 마음으로 소녀와 걸음을 맞춰 걸을 무렵, 어느새 건너편이 시내 광장인 사거리에 도달했다.

 "나는 왼 쪽으로 꺾거든."

 너는? 라고 소녀가 눈빛으로 물었다.

 "난 직진으로……."

 아무래도 소녀와 함께 걷는 건 여기까진가보다. 아쉬워하는 기색이 작게 드러났는지 소녀가 작게 미소지었다.

 "또보자. 유가은."

 예상치도 못한 그 말에 안심해버린 걸 보면 나도 참 순수한 녀석인가보다.

 "응, 또보자."

 비록 소녀의 이름을 부르진 못했어도 서로 '또보자'고 말했다. 당장은 이름을 몰라도 서로에 대해 천천히 알아가면 된다.

 우리는 서로의 방향대로 횡단보도를 건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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