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았다.” 괴한이 갈라진 문틈 사이를 들여다보며 희열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케렌과 엔은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하는 문을 보며 뱀을 재촉했다.
“자 저 책을 가져오라고.” 이제는 성인크기만 해진 뱀이 빨간색 가죽표지의 책을 가리키며 말했다.
뱀은 책의 중간지점을 펼치더니 알아들을 수 없는 나라의 말을 하면서 주문을 외우자 책에서 검은 연기가 나타나 아기와 뱀의 몸을 엮기 시작했다.
연기가 점점 짙어질수록 뱀은 조금씩 사람의 형태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자, 이제 너의 피를 이 책 위에 뿌려!!” 소년 형태의 뱀이 사악하게 소리쳤다.
엔은 잠시 망설이다가 이내 케렌의 단검을 집어 들어 손바닥을 깊게 그었다.
엔의 피가 책에 떨어지자 책에 파란 불꽃이 일렁이며 검은 연기가 더 짙어지는 듯 했으나 한순간에 하얀색 연기로 변하여 소년을 옭아맸다.
“켁켁. 이게 뭐야!! 살려줘!!!” 소년이 이리저리 몸부림을 치며 벗어나려고 했으나 연기는 더 짙어져 소년을 강하게 압박했다.
그때 문이 뜯어져 나가며 복면의 괴한들이 들어오다가 이상한 광경을 보고 경악하며 그대로 얼어붙었다.
“끄아아아아악 이건 말도 안돼!! 배반이야!!!” 소년이 다시 뱀의 모습으로 변하면서 칼날 같은 비늘들이 소년의 몸 곳곳에 박혔다.
소년은 비늘들에 찔려가며 변하는 순간에 아기를 꽉 잡아 상처가 나게 했다.
“한나야!!!!” 엔이 다가가려 하는 순간 엔이 도망가는 줄 알았던 괴한이 던진 단검이 그대로 엔의 심장을 관통시켰다.
“엔!!!!!!” 케넨의 절규가 울려 퍼지고
엔의 피와 뱀의 피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기의 피가 책에 떨어지는 순간 섬광이 번쩍이며 엄청난 소리와 함께 창문 밖으로 뱀과 아기가 빨려나가며 감쪽같이 사라졌다.
빨간 책 주변에는 핏빛의 진주들만이 흩어진 체 굴러다녔다.
괴한들 중 한명이 엔의 시신을 부여잡고 울부짖는 케넨 백작의 뒤로 돌아가서 그대로 케넨 백작의 목을 베었다.
고통에 찬 신음을 내뱉으며 쓰러지는 순간에 백작은 급하게 창가로 달려가 아기의 흔적을 찾는 우두머리의 얼굴을 확인하고 충격에 빠졌다.
“너, 너가 어떻게......!! 어찌......!” 이 외침을 마지막으로 백작 또한 그대로 눈을 감았다.
“세렌님, 아이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부하 한명이 다가와서 물었다.
“드디어 이신의 열 번째 후계자가 나타났군....... 아이를 놓친 것을 ‘그분’께서 아시게 된다면 우리는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아이는 죽었다고 보고 올린다.” 세렌이라 불린 우두머리가 창틀을 꽉 부여잡으며 대답했다. 그의 손목에는 초승달 문양이 새겨져있었다.
“세렌님......‘그분’이 알아채지 않으실까요?” 행동대장이 겁에 질린 체 하늘에 높게 뜬 핏빛의 초승달을 힐끔 쳐다보며 물었다.
“이제 나의 영혼식이 얼마 남지 않은 이 시점에 실수라니......” 우두머리가 분노로 떨며 엔과 케렌백작의 시신을 차갑게 내려다보았다.
“아이는 반드시 내가 찾아 죽일 것이야.” 우두머리가 뱀과 같은 노란 두 눈을 분노로 번뜩이며 다짐했다.
“반드시.”
* (이신 백작의 성)
어두운 하늘에서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검은 날개를 가진 인영이 하얀 물체를 안고 빠른 속도로 이신 백작의 성으로 날아왔다.
“여기인가.” 검은 날개의 인영이 소름끼치는 핏빛의 눈으로 성안을 살폈다.
이내 그 존재는 하얀 물체를 성의 입구에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다시 하늘 높이 올라가 주문을 외우자 성의 창문들이 모두 깨졌다.
“꺄아아악!! 이게 뭔일이야?!” 안에서 시종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부족한가.” 아직도 열리지 않는 문을 보며 ‘그’는 정원에 불을 냈다.
그제서야 성문이 열리며 시종들이 불을 끄기 위해 뛰쳐나오다가 문 앞에 있는 하얀 물체를 발견하고 멈춰 섰다.
하얀 물체는 다름 아닌 갓난아기였다.
그것도 영국 지방에서 부모와 함께 있어야 할, 이신 백작의 하나뿐인 손녀 이한나였다.
시녀장은 기겁하며 아기를 안아들고 백작의 이름을 외치며 성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아기는 다른 사람들은 눈치 채지 못한 하늘위에 있는 검은 인영에게 손을 뻗으며 방긋 웃었다.
“멍청하군, 죽을 뻔했는데 웃고 있다니.” ‘그’는 혀를 차면서도 문이 닫히는 순간까지 아기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는 엄지손가락에 키스하고는 달을 향해 치켜 올렸다.
“이한나....... 나의 엘리어스.......”
이내 ‘그’는 커다란 검은 날개를 펄럭이며 하늘 높이 날아올라 찢어지는 소리를 내며 빠르게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