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후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이 작품은 가상의 왕이 등장하는 픽션소설임을 밝혀둡니다. 따라서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사건 등은 실제 역사와 다소 차이가 있답니다.
【태양이 된 달 – 왕이 된 여자】
제9화 : 지금은 미모를 가꾸어야 할 시간
-- 나는 소중하니까!
청계천을 중심으로 의관, 역관 등 중인들이 주로 거주하면서 형성된 중촌(中村)의 소박하고 정갈한 한옥의 별당 사랑채 앞으로 돌아 흐르는 계류의 물소리가 고즈넉하였다.
조강호는 휴식을 취하며 미모가꾸기에 몰두하고 있었다.
사랑채 마루에 큰 대(大)자로 드러누워 한 쪽 다리를 다른 쪽 다리에 올려두고 발가락을 리듬감있게 까닥까닥 거리고 있는 강호는 얼핏 보기에도 괴상해 보였다.
얼굴 위로 하얀 광목천을 살폿이 올려다 놓았는데
한약재를 갈아 만든 분말을 물에 개어 흠뻑 적신 천이었다.
광목천은 얼굴 형태를 따라 타원형으로 오려진 모양이었다.
천은 얼굴에 꼭 맞게 덮어 놓았고 두 눈과 입을 덮지 않게 동그랗게 오려져 있었다.
한약재 특유의 쌉싸름한 향이 사랑채 마루에 가득하였다.
강호의 모습은 완전히 집에서 놀고 먹는 한량 그 자체였다.
며칠 전 비현각에서 날카로운 식견으로 세자를 들었다 놓았다 하던 카랑카랑한 목소리의 그 동부승지 조강호가 맞나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세자 저하께서는 언제 오실라나?
십고초려(十顧草廬) 이야기를 하시더니...
은근 사람을 기다리게 만드시는 분이란 말일세...
밀고 당기기 전법의 강자시라니깐!
나도 치고 들어가기 전법 외에 다양한 전법을 좀 더 알아봐야 겠는걸...
손자의 병법서를 다시 파고들어야 하나?
하얀 광목천을 얼굴 위에 드리운 강호는 두 눈을 감고 중얼거렸다.
“지금 뭐하고 계십니까? 이 괴상하고 웃기는 모양새는 또 뭡니까?”
언제 왔는지...
누워있는 강호를 내려다보며
은우가 말한다.
하늘거리는 하늘빛 치마에 분홍 저고리를 단정히 차려입은 은우는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처럼 아름다웠다.
총총히 땋아내린 머리카락이 바람에 부드럽게 흔들렸다.
“설마 그 나이에 시체놀이를 하시는 것은 아니지요? 강호 오라버니”
한약재를 적신 광목천을 얼굴에 덮어 쓴 강호가 괴상하기도 하고 웃겨서
은우는 다소 한심함이 배어나오는 말투로 놀리며 말하였다.
광목천을 덮은 얼굴로 눈을 편안히 감고 있던 강호는
은우의 목소리에 감은 두 눈을 번쩍 떴다.
마치 죽은 시체가 다시 살아나 눈을 번쩍 뜨듯이...
“헉... 에구머니나? 아이쿠... 우리 오라버니 시체놀이 하시는 거 맞네...
심심하시구나? 그죠? 강호오라버니!“
은우는 강호의 움직임에 잠시 놀라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어허~ 시체 놀이라니? 지금 미모를 가꾸고 있는 중이다. 은우야...
나는 소중하니까!“
“이 해괴한 짓이 미모를 가꾸는 방법이라구요? 도대체 어떻게요?”
은우는 강호의 얼굴에 덮은 천이 괴상하면서도 또 궁금하여 물었다.
“백지는 윤부증백(潤膚增白) 약제이지. 백지는 피부(皮膚)을 윤택하게 하고, 색소침착(色素沈着)을 경감시키며, 피부를 하얗게 하는 작용을 가지고 있단다. 백지를 곱게 갈아 분말로 만든 후 미지근한 물에 잘 갠 후 적당한 점도가 되면 이 광목천 위에 펴 바른 뒤 그 천을 얼굴에 덮고 있으면 백지의 성분이 피부에 침투가 빨라져서 화색이 살아나지.
피부가 건조하고 피부색이 어두울 때 사용하면 좋단다.“
“정말이십니까? 화색이 살아납니까?”
강호의 자세한 설명에 호기심이 동한 은우가 다시 한번 물었다.
“그럼... 이 오라버니의 발명품이 어디 실망시킨적이 있더냐?
이것은 이 오라버니가 개발한 미백동안 화장품인 셈이지.
알지 않느냐? 은우도... 이 오라버니께서 조선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천재인거!“
“그럼요. 아주 자알 알죠... 괴상한 천재신거!”
“그렇느냐? 괴상한 천재로 그리 알려졌느냐??”
“네... 천재보다는 괴상한에 더 초점이 맞춰져서 장안에 소문이 자자합니다.”
은우는 <괴상한>을 말할때에 한 층 더 강조하여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 그럼 괴상한 천재에다 미모를 첨가하자꾸나!
괴상한 미모의 천재! 어떻느냐? 나는 썩 마음에 드는구나! 하 하 하“
강호는 세상 사람들의 평가는 전혀 상관없다는 듯이 호탕하게 웃었다.
“사내 대장부가 미모는 가꾸어서 어디에 쓰십니까?
이럴 시간 있으시면 학문이나 힘쓰십시오!“
은우는 그런 강호가 한심한 듯 혀를 차며 말했다.
“항문?”
“허걱... 아뇨! 학. 문.”
“아~ 학. 문! 우리 아버님 같은 소리를 하는구나 은우야...!
알았다. 알았다. 잔소리 좀 그만하거라“
강호는 은우의 쫑알거리는 목소리가 싫지 않으면서도
잔소리 좀 그만 하라며 손사래를 치면서 일어나 얼굴에 붙어있는 광목천을 떼어냈다.
그 괴상한 미용법을 한 때문인지 오늘따라 유난히 강호의 얼굴이 촉촉하게 광이 나며 반질반질하게 보였다.
훤칠한 키에 균형잡힌 마른 몸
하얀 얼굴에 날아갈 듯한 기러기 모양의 눈썹이
무척이나 잘 어울렸다.
그래서 미모가 꽃과 다를바 없다고 스스로 자신을 칭하여 부르는 이름 - 꽃미남 조강호
“그런데 그 누더기 같은 헝겊을 얼굴에 덮는 것이 효과가 있긴 있나 봅니다.
얼굴이 촉촉하면서도 반짝반짝 광이 나는게... 저도 하나 만들어 주십시오!“
은우는 그 괴상한 것을 자기도 만들어 달라고 하는 것이 부끄러운지 몸을 배배 꼬았다.
“하~ 그렇지? 은우야...
이 오라버니의 오늘날의 화려한 미모가 그냥 완성된 것이 아니란다.
물론 워낙에 잘나게 태어나긴 했어...
태생부터 완성형 미남이긴 했지만 노력이 얹어져서 더욱더 완벽한 꽃미남이 된 것이지... 암! 그렇고 말고~“
“예... 예... 그렇습니다.”
은우는 자화자찬을 늘어놓는 강호를 바라보며 영혼없는 대답을 하였다.
“그러니 저도 하나 만들어 주시는 겁니다. 약속하신 겁니다.
저도 노력을 얹어져 더욱더 완벽한 꽃미녀가 되어 보렵니다.“
“그래? 좋구나. 은우야...
의지가 아주 좋아!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이 될까마는 미모 증진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의지가 아주 가상하여 내가 특별히 하나 만들어주지“
“호박이라뇨? 강호 오라버니!”
은우는 자신을 호박이라고 놀리는 강호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동그랗게 치켜뜬 눈이 귀여워서
강호는 은우 얼굴의 뺨을 자신의 두 손으로 쭉 늘리고선
귀여워 죽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호박이란 말은 취소다. 얼굴이 달덩이처럼 커다란 것이 우리 은우는 수박이구나! 수박이었어! 푸 하 하 하 하”
“오 라 버 니... 빨리 이 두 손 놓으세요~”
은우는 두 뺨이 늘려진 채 울상을 지으며 강호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오려고 바둥거렸다.
그런 은우를 바라보며 은은히 오라버니 미소를 짓는 강호
“자... 여기 있다.”
강호는 광목천을 은우의 얼굴 크기로 맞춰 자르고
두 눈과 입의 위치에 맞은 자리를 동그랗게 오려냈다.
그리고 똑같은 모양으로 연거푸 다섯 개를 만들어 비단으로 싸고 난 후 백지를 갈아 만든 분말을 넣은 통을 함께 내밀었다.
“은우 너에게만 특별히 만들어 주는 것이다. 구하기 힘든 한정판인 것이지.”
“헤 헤 감사하옵니다. 강호오라버니”
강호 오라버니가 얼굴을 만진 것은 자신의 얼굴크기를 알아보려고 한 것이구나
물론 두 뺨을 옆으로 쫙 찢어 못생긴 얼굴을 만들긴 했지만...
어렸을 때부터 기발한 상상력으로 창의적인 물품을 뚝딱뚝딱 만드는 조강호
모양은 늘 괴상했지만 성능만큼은 최고였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은우였다.
“그런데... 은우 너!”
“왜요? 오라버니?”
“요즘 우리집에 자주 오는구나? 마치 꿀이라도 발라놓은 것처럼?”
“그런가? 예전과 비슷하게 다니는 거 같은데...”
은우는 무언가를 감추다가 들킨 사람처럼 난처한 듯 말꼬리를 흐렸다.
“외삼촌과 진호오라버니가 청나라에 연행사로 가셨으니까 어머니께서 강호 오라버니를 자주 들여다보라고 하셨어요.
오라버니께서 하도 괴상한 일을 많이 벌이니까 어머니께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세요...“
“고뤠? 고모님께서? 그렇다 해도 요즘엔 우리집 출입이 너무 잦단 말이야! 기 은 우~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예를 들면 푸른 도포 입은 사나이?“
“네? 푸른 도포 입은 사나이?
무슨말씀을 하시는건지?
아니예요... 아니라구요!”
은우는 절대 아니라는 듯이 강하게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러나 소중하게 감추어놓은 마음을 들킨 것처럼 은우의 뺨은 복사꽃처럼 발그스레하게 물들어갔다.
“어~ 강한 부정은 원래 강한 긍정을 나타내는 것!”
강호는 은우를 놀리는 것이 재미있어 계속 장난을 쳤다.
‘언제 이렇게 많이 컸느냐? 우리 은우... 어여쁘게 자랐구나!’
그 때 대문 밖에서 “이리 오너라~”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는... 푸른 도포 입은 사나이?
분명 일전에 강호를 찾아온
푸른 도포를 입은 조선제일미남 선비님의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