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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날아라, 종이비행기
작가 : 길성진
작품등록일 : 2017.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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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컨디션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던 나는, 무거운 짐을 나르던 도중 계단에서 굴러버렸다.
몸이 기울어질 때 이 뒤에 날 기다리고 있는 것은 '죽음'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그렇다. 원래대로라면 나의 덧없는 잿빛 인생이란 소설은 여기서 끝나야 정상이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유령으로서 눈을 떠버린 것이다.
바로, 30이라는 숫자가 나의 왼 눈 밑에 새겨져있는 상태로 말이다.
'30'
그건 나에게 남아있는 기간을 의미하는 죽음의 표식이었다.
그래. 남은 한 달동안은 생전에 해보질 못했던 못된 장난을 쳐보자!
그렇게 결심하고 장난을 치는 그때, 나는 나와 같이 유령인 어떤 소녀를 만났다.

"만약 다음 생이라는 것이 있다면……. 우린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운명적인 우리들의 만남과 다가오는 끝. 그리고, 그 속에 숨어있는 진실.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애절하면서도 어딘가 낭만적인, 그런 이야기다.

 
변하지 않는 것
작성일 : 17-06-12 00:31     조회 : 391     추천 : 0     분량 :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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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확실히 그 깡패같은 남자를 골탕먹인 건 통쾌하다. 그래도 조금만 더 장난을 치고싶다.

 방금 전처럼 속옷을 가져오는 것도 재밌겠지만, 그러기엔 속옷 코너의 주인이 조금 불쌍하지 않을까?

 '그럴거면 차라리 하지 말던가'라며 쓴소리를 들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싫다.

 확실히 내가 하고있는 짓은 상당히 민폐짓이긴 하지만, 그래도 적당한 선은 그어둘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속옷을 가져오는게 아니라, 카트에 담긴 물건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엉뚱한 짓을 할 생각이다.

 벌써부터 재밌어지기 시작한다. 나는 들뜬 기분으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층으로 향했다.

 카트에서 손을 떼는 순간이 담긴 물건을 만질 수 있는 순간이다.

 물총새가 튀어오르는 민물고기를 노리듯, 근처를 얼쩡거리며 기회를 틈타 물건을 허겁지겁 제자리에 가져다놓거나 선반에 적당히 올려둔다.

 그럴때마다 눈치채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카트를 사람도 있는데, 그게 어찌나 재밌던지.

 한 사람만을 집중적으로 괴롭히기 보다는 잠시 주인과 떨어진 카트를 노리는 것이 더욱 효율적이었다.

 그렇게 다음 대상을 확보하기 위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다다른 곳은 생필품 코너.

 진열대의 작은 손거울을 본 순간 확인해야 할 것이 떠올라 그대로 집어들었다.

 아무래도 내 예상은 적중한 것 같다.

 아침에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30'이었던 숫자는 온데간데 사라졌으며, 그 대신 1이 줄어든 '29'라는 숫자가 새겨져있었다.

 숫자가 줄어들었다는 것은 나에게 남아있는 시간이 줄어든 것이겠지.

 그리고 그 단위는 하루. 즉, 24시간이라는 소리이다.

 유령으로서 눈을 뜬 것이 어제 이맘때 쯤이니까….

 "갱신은 저녁에 이루어지는건가."

 그렇다면, 29일이 지나고나서 그 뒤엔 무슨 일이 일어나는걸까?

 알고 있다. 고민해봤자 할 수 있는건 여러 종교들의 의견을 빌려올 뿐이라는 것을.

 그러니 지금은 잠시 접어두고, 다음 기회에 느긋하게 생각해보기로 했다.

 거울을 제자리에 갖다놓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방용품 코너에서 식기들이 몇 개인가 담겨진 카트를 발견했다.

 카트의 주인은 잠시 다른 물건을 고르러 간 건지 보이지 않는다.

 때마침 잘됐다고 생각하며 그 곳에 있는 식기들을 집어 식기 진열대로 걸어갔다.

 그런 다음엔 허리를 굽히고 천천히 뒤로 이동하며 가져온 식기들을 전부 제자리에 돌려놓는다.

 카트의 주인인걸까? 누군가가 식기를 고르는건지 내 뒤에서도 철그럭소리가 들려온다.

 어차피 닿으면 통과하겠지.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그렇게 판단한 나는 계속해서 물건을 돌려놓으며 뒤로 이동했다.

 마지막에 남은 프라이팬을 돌려놓기 위해 뒤로 한 걸음 물러서는 그때.

 "아얏!!"

 "악!!"

 뒤통수에 뭔가 단단한 것이 부딪쳐 쭈그리며 신음을 흘리니 뒤에서도 곧바로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려는 찰나의 순간─

 이럴리가 없다는 생각이 스쳐지나가고 나의 육체와 정신은 동시에 정지했다.

 나는, 멈췄던 고개를 천천히 움직여 뒤를 돌아보았다.

 나와 같이 쭈구려 앉은 채, 믿기지가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날 바라보고있는 누군가가 있었다.

 돌아본 그곳에는, 소녀가 있었다.

 안에 입은 검은색 면티가 보이게끔 풀어헤친 빨간색 아디다스 져지와 저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짧은 검은색 돌핀팬츠.

 어깨에 살짝 못미치는 길이의 단발머리는 끝부분만이 안쪽으로 휘어있으며 앞머리는 깔끔한 선을 이룬다.

 섬세한 턱선과 정중앙을 향해 바르게 세워진 콧날, 보기좋을 정도로 작은 입술.

 진하지 않은 쌍커풀과 함께 인조라고 치부하기엔 자연스럽게 긴 속눈썹.

 하나부터 열까지 황금비율을 이루는 뚜렷한 이목구비의

 

 ─소녀였다.

 

 꽤 치명적인 모습에 본능적으로 이곳 저곳에 시선이 이끌리지만 그것도 잠시.

 소녀를 향한 나의 시선은 이내 한 곳에 고정될 수밖에 없었다.

 바로 왼 뺨이다. 그곳엔 '22'라는 숫자가 작게 새겨져있었다.

 "너………."

 우리 두 사람 사이에 형성된 미묘한 정적을, 맑게 울리는 소녀의 목소리가 깨버린다.

 잠시 후, 소녀가 옷을 털며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내밀어준 손을 향해 조심스럽게 손을 가져갔다.

 

 

 나보다 살짝 더 작은 키의 소녀.

 부드러움과 따스한 온기가 그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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